???(1)
"죽을 인재가 아닌데 말이지···."
아무 곳에서 흘러나오는 탄식이 날 더욱 자극한다. 뭔가 이상하다.
"상성이 좋지 못했다. 누군가 출격은 할 줄 알았지만, 그게 '길로틴 글래스'였던 것인지 몰랐던 거지. 최선을 다해서 싸웠지만 목이 꺾인 상태로 죽었다고 한다. 한 팀으로 활동하는 '진'의 손에 죽은 모양이다. 이제 만만하게 볼 수 없다는 것으로 명심하면 되겠지. 제대로 '진'이 살상 병기로 활약하게 된다면 우리의 존속도 위험해질 수 있다."
"꼭 복수할 겁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래주게."
복수든 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희생을 했다고 치자. '제우스', 건방지게 좋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짜 제우스'는 따로 있을 텐데 우리 중에서는 유일하니까 그렇다 치는 이명이라도 죽었으면 그게 더 병신인 거 아닌가?
혼자서 위치를 걸릴 줄 모르고 개인주의를 주장하던 등신이 당한 걸 좋은 희생이었다는 것도 웃기고, 그런 희생을 미끼로 하여서 죽어서까지 공을 가로채려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자살을 함으로써 모두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 것인가? 죽으면 다 영웅인 줄 알아.
이딴 식으로 분개해봤자 안 좋은 인상일 뿐이다. '가짜 제우스'가 죽은 것을 추모해서 내 공은 묻혔다고 치자. 아무렴 내 공이란 걸 밝혀도 별 소리를 못 듣겠지.
"'길로틴 글래스'가 사라졌다고? 상성이 괜찮아졌네."
"그런가. '아프로디테'가 편해지게 된 건가."
그건 좋겠다. 능력 상성이 없어졌다는 건 앞으로 활약할 여지도 많다는 것이고, 실제로 능력도 까다로우니 그다지 말리진 않는다. 아무렴 내가 모두를 위해서 한 장애물을 없앴다는 건 하늘이 알 일이다. 모르면 어쩔 수 없고, 정말 하찮다.
"모인 이유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거사를 위해서지. 앞으로 1주일 남았다. 오늘 처음으로 말한 얘기니까 몰랐을 수도 있겠지. 준비물은 간단하게 수배 중인 희생양들 10마리다. 준비 자체는 어렵지 않을 거다. 그러나 당부할 건 하나다. 1주일 사이에 기관 인물들을 처리해도 좋다. 필수는 아니다. 권장에 불과하다. 당연히 시민을 죽여서는 안 되고, 언론에 우리의 짓이라는 소문이 하나라도 돌면 실패 확률이 늘어난다. 지금도 불안정하기 때문에 자숙하는 것도 좋다. '길로틴 글래스'를 죽인 게 좋은 소식이긴 해도 그 때문에 경계를 취할 테니까 조심해라."
단순 요약하면 웬만해서 기관 사람들을 건들면 안 된다는 얘기다. 그거야 간단하다. 애초에 그 새끼들은 내가 이런 집단 소속인 걸 모를 테다. 얼굴이 알려져 있지 않으니 이렇지. 조심스럽게 멀리서 암살을 하는데 걸릴 일은 없겠다. 망원경만 있으면 어디서든 난 무적이다. 걸리지만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그렇지.
아무래도 좋다. 나와는 관계가 없다. 죽이지 않아도 되고 죽이더라도 들키지 않는 걸 우선으로 하면 된다는 건가? 그렇다면 몹시 간단하다. 전자라면 일상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고, 후자라면 어차피 암살이라 들킬 염려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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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출한 김에 펀의점이나 다녀오기로 한다. 과정은 간단하다. 먼저 알바생의 위치와 CCTV, 방범거울의 위치를 확인한다. 알바생의 시선이 어디로 갔는지 제대로 확인한다. 그 뒤에 알바생이 빈틈을 많이 보인다면 슬쩍 소리 없이 품 안에 냉동들을 넣는다.
CCTV는 걱정할 것 없다. 방범거울은 무리더라도 CCTV를 뚫어져라 쳐다 보진 않을 것이기에 잠시 능력으로 가림막만 해주면 된다. 게다가 한 제품만 터는 것이 아니고 여러 종류를 1개씩 터는 거라서(디테일은 하나밖에 안 남은 물품은 피하는 것이다.) 재고 정리를 하더라도 당장 눈치를 못 챌 가능성이 농후하다.
원래부터 빵빵한 외관의 바람막이 안에 집어넣으면 들킬 일이 없다. 과자 따위를 훔치는 게 아니라 부스럭 거리는 소리로 들킬 수 없다. 그래서 삼각김밥도 꺼린다. 비닐이 스치는 소리가 위험하다.
그렇다고 막 훔치는 것만 하지는 않고 양심적으로 하나는 계산을 한다. 애초에 계산을 하지도 않고 나가는 것부터 계산을 하지 않았는데 물건이 사라지는 건 의심할 수 있어서 그런 저열한 짓은 하지 않는다. 가장 싼 삼각김밥을 손에 쥐고 계산하러 간다.
오늘의 쇼핑은 이걸로 끝이다. 내일도 떨어진다면 가는 것이고, 아니면 안 가도 된다. 거의 돈을 버는 행위다. 급여가 있긴 해도 불안정하고 쪼잔한 급여라서 막 낭비하지 않는다. 소비도 생산성 있게 하는 것이다.
얼른 원룸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특이한 얼굴이 보인다.
"저 놈, 그 장애인인가."
금발에 화상이라면 '그 불 능력자' 말고는 모른다. 머리 길이를 보면 오늘 회의 비슷한 것에 나왔던 그 모습 그대로다. 단지 입고 있는 옷만 달라서 한순간은 못 알아봤다. 특히나 입은 옷이 거무튀튀해서 평소의 차림과는 달라서 헷갈렸다.
진지하게 검은색으로 무장한 놈이 어디로 가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딱히 신경 쓸 건 아니라지만 간단히 관찰만 한다. 그걸로 특종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방치하고픈 마음이 굴뚝 같다. 그래서 눈만 쫓는다.
하필 주변이 대형 병원이 있었고, 그 밑에 부속으로 장례식장이 있는데 그 장례식장 방향을 향해 간다. 주차장 입구를 가로지른다. 병원에 가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전혀 일상복이 아니다. 집에 어떤 옷이 있는지는 다 알진 못해도 그래 보인다.
"알까 보냐."
그렇다고 몸까지 쫓아가기에는 들고 있는 짐이 너무 많다. 빨리 냉장고 안에 넣던가 해서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냉장으로 진열되어 있던 인스턴트이니 만큼 한 번이라면 해동되면 맛이 더럽게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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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되어야 더럽게 맛이 없어진다고 했는데, 이미 그 전에 맛이 없다. 물린다. 좀 더 색다른 걸 먹고 싶다고 해도 편의점의 모든 메뉴를 섭렵한 이상 다음 신상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무료함이 지속될 것이다.
그러면서 무료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연재되는 드라마나 시청한다. 이 방구석에 TV 따윈 없으니까 이런다. 모니터로 전체 화면을 하고 침대에 누워서 시청 중이다. 동시에 거의 본능적으로 뜨끈하게 돌린 도시락을 거의 다 먹는 중이다.
"심심하다."
그러나 좋아하는 드라마라서 보는 게 아니라 먹을 때의 관례 같은 것이라 보는 것이지 별로 도움이 되진 않는다. 1화부터 시청 중인데도 마땅히 흥미를 가질 부분이 없어서 지루하다. 무언가 배경설명이 장황하게 늘어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한가, 의문이다.
볼 때마다 저런 내용이면 내가 발로 써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단지 저들이 인기가 있는 건 인지도 때문인가.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자극적이지 않은 걸 쓰면 자신이 점잖아 보여서 그런가? 인류의 무언가를 탐구한다는 게 뜻깊은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의무감을 갖고 실천하는 게 그런 족속들의 공통점인가? 그럴 필요 없이 자기 꼴리는 대로 사는 세상이라서 이렇게 된 건데 고차원, 저차원, 이딴 거 상관 없이 탐구하고 있다는 게 의문이다.
명확한 답은 없지 않나? 어떤 식이든 누구에게 비난 받을 수밖에 없다면 만인을 위한 진리 따위 필요 없다.
위잉
폰이 울린다.
[부단장/공지]
항상 이렇다. 어렵게 사이트에 접속해서 직접 확인하고 원하는 지원자가 있으면 받는 식으로 어지러운 일처리다. 이것만은 마음에 든다. 굳이 한 사람을 지명해서 이 일에 적합한 인재라고 마구 부려먹진 않으니까 마음이 편안하다.
그런다고 해서 개무시하고 항상 놀 수 있는 노릇도 아니다. 아예 무시하고 잠적을 탄다면 저절로 단에서 안 좋은 시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에는 잘린다. 단순히 단에서 잘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목이 잘린다. 어떤 킬러가 동원되는지 몰라도 비밀 엄수를 위해서 싹을 잘라버린다. 들은 얘기라고 해도 신신당부를 한 걸 보면 거짓은 아닌 모양이라 나도 이에 따르고 있다.
'길로틴 글래스'를 죽이기 위해 동원된 건 이 이유 때문이었고, 그 결과 정당하게 내 공로로 들어와야 했던 게 한 명의 개죽음으로 무마되었다. 정말 개죽음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전선에 나가서 뒤졌어야 했나. 본인 입으로 들킬 염려가 없다면서 자부심이 강했다가 뒤져서는 숭고한 희생이라니 말도 안 된다. 어디까지나 부주의로 인해서 생긴 일인데, 너무한 거 아니냐.
······라는 건 내 생각에서 그친다.
이제 이 몸이 내 것인 건 맞더라도, 이젠 신기하다. '이전 몸'에서는 대화하는 느낌이라도 있었는데, 이 몸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나 이상한 일도 아닌 게 '이전 몸'이 특이한 경향이긴 했다. 그것이 의지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건가. 한순간은 능력이 2개라고 착각하기도 했는데, 그럴 수도 있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정말 심심하다. 이건 '이 몸'이라서 그런 것보다는 외롭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딱히 삶의 의미가 없다는 게 확 느껴진다. 본래 '이 몸'이 가지고 있던 감정까지 전도되어서 괴롭히고 있다. 심지어는 한 때 자살 계획까지 써놓았던 몸인데 여전히 건재한 것은 역시 각오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러면서 '나'의 생각으로는 자살하는 대신 즐기려고 일부러 이 생을 살고 있는 것이라.
"아, 오늘 깨야 되겠네."
한참 따분한 일들을 하느라 지루했다. 게임이라도, 그 클리어를 못했던 게임을 다시 켜면서 다음 일은 생각하기로 한다. 어차피 게임을 하는 도중에 다음 일을 생각할 수는 없겠다. 그토록 만만한 게임이 아니라는 걸 몸소 느꼈으니 모든 사념은 게임에 집중된다. 죽지만 말고 도달할 수만 있다면 그 끝에는 행복하리라 생각된다. 생각만 된다.
사실은 게임이란 과정에 있어서 소중한 것이지 결말을 지나면 언제나 허무할 텐데, 이것 또한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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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간 아무 일도 없었다. 절도부터 시작한 여러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해도 잡하지만 않으면 아무 일도 아니다. 서에 불려 간 일은 대충 2년 전에 졸업했고, 그 뒤로는 승승장구하는 편이다. 굳이 따지자면 일으킨 손해액은 그다지 높지도 않은 편이다. 자잘한 것만 훔쳤지 억 단위로 넘어가지도 않는다. 기물파손은 거의 한 적도 없으며, 따라서 몸값도 높지 않다. 수배범이 되어도 고작 몇 백만원에서 그치지 않을까 싶다.
"거사가 코앞이다."
부단장이 강조한다. '약속의 날'이 다가왔고, 그 아침에 발을 딛고 있는 무리들이 버스 안에 모여 있다. 정돈되어는 있어도 다 같은 마음은 아니겠다. 귀찮다. 무언가 혁명을 이룬다는 느낌보다는 겉치레를 왜 해야 하는지 필요성이 안 느껴진다.
"너희들은 들은 바대로 무조건 식을 지킬 필요는 없다. 각자 정해진 위치에서 대기하다가 헤어지면 된다. 돌아갈 때 버스를 쓸 필요도 없다. 살기만 하면 된다."
산다는 것만큼 주특기도 없다. 그런 간단한 일 따위 금방 해치울 수 있다. 간단한 브리핑을 끝으로 버스와 캠핑카는 차고에서 나와 목적지로 향한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기에는 아주 추하다. 집에서는 그렇게 멀지도 않은 곳인데 괜히 이런 먼 곳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게 껄끄럽다. 고작 복장을 맞춘다고 이러는 건지 낭비에 가까운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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