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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나는 누구인지 모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TYE
작품등록일 :
2021.05.13 11:12
최근연재일 :
2021.07.1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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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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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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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3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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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데이트(13)

DUMMY

결전의 날이 다가오니 한없이 살림들이 처리하기 어렵다는 게 느껴진다. 미리 정리하려고 한다면 이사 날짜를 정하는 것처럼 한참 있어야 했다. 사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죽음이란 늘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독사가 대표적이고, 자연사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어디서도 일어나는 게 신기하지 않은 일이라 곧 있으면 쓸모 없어질 짐들이 방치될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세상을 기준으로 '멘데이트'에게는 한 번만 일어날 일이며 놀라울 만도 하다. 그나마 냉장고 안에 상할 음식들은 더 이상 없다. 친가에서 보내준 소박한 음식들도 말끔히 처리해서 설거지를 해놓은 뒤였기에 다시 용기만 보내줄 일이 남았으나 우편으로 붙일 시간도 없다.


그보다.


이러한 일들보다 놀라운 것은 '멘데이트'의 환경이다.


"막는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나."


이불을 제치고 일어나니 집 안이 빛으로 가득하다. 어렴풋이 구조는 기억이 나나 빛으로 둘러싼 공간에서 거리감각은 말끔히 없어져 있다. 눈부셔서 실명이 될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는 않다. 밝기는 해도 흰색 페인트로 칠한 느낌이 강하다. 의외로 직사로 내 눈을 공격한다는 느낌은 안 든다.


전화가.


전화가 온다. 아무래도 '아프로디테'에게서 온 게 확실하다. 유일하게 전화기만큼은 건드리지 않아 눈에 훤히 보여지고 있다. 소통할 의사가 있다는 걸 강조하는 모습이다. 의도적으로 환경을 조작하고 폰만 남겨놓는 건 아는 빛 능력자 중에서 '아프로디테'가 제일이다. 능력 활용 자체를 보고서 간부급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로디테'."

"고작 해봐야 눈 가리개뿐이지. 그렇다고 진짜 눈을 가리기보다는 이게 나은 것 같으니까."

"왜지?"

"실명이라도 걸어서 못 나가게 할 작정도 있었지만, 그러면 죽인 거나 다름 없는데 그러고 싶진 않지."

"안대처럼 해도 되는데?"

"시련을 주고 싶어서지."

"어떤 시련?"

"늘 하던 루틴대로라면 옷장에도 가야겠고, 욕실에도 가야겠고, 부엌에도 가야겠지. 안 그래? 부엌은 거의 무리겠지. 전기레인지를 어떻게 조작하려고? 냄비는 정확히 올릴 수 있을까? 화재가 날 텐데? 욕실에서는 수도꼭지를 틀 수 있을까? 옷은 어떻게 입으려고?"

"옷 정도는 입을 수 있겠지."

"맞아, 옷 정도는 옷장에서 꺼내면 보일 테니까. 옷 정도는 입을 수 있겠지."


물렁하다.


"시련이라기에는 물렁한데. 셋 다 행한다는 조건에서는 문제가 되겠지만, 옷은 그렇다 쳐도 나머지 난이도가 높은 두 개를 포기하면 나의 승리인 시련이 아니냐고."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


'멘데이트'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결벽증이나 강박증,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올바르게 행동하는 일이 편안할 뿐이다. 그저 자기 방식대로 편안한 인생을 살고픈 게 '멘데이트'이며, 그렇다면 때로는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할 방침도 있다. 그러려고 하는 중이다.

그러나 시련이란 말과 무관하게 아직 움직이도 않은 채 시련은 종료된다. 빛이 거둬지고 색이 돌아와서 평상시에 알던 집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의외로 '아프로디테'가 버티질 못한다.


"집행복은 위치를 알겠고, 일반적으로 깔끔하게 사는 녀석이니까 옷만 입는다고 하면 어쩔 도리가 없지. "

"막진 않고?"

"내가 이런 식이 아니라 몸으로 가지 말라고 막아섰다면 어떻게 했을 거냐?"

"무력화를 시키곘지."

"손발을 꽁꽁 얼려서?"

"동상은 안 시키겠지."

"그러면, 내가 니 눈을 막을 텐데?"


그럴 경우에는, 딱히 '멘데이트'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도 있으며, 방금 생각 난 내용은 그다지 유쾌하지도 않다.


"이건, 단을 위한 일이 아닌 것을 명심해 주면 좋겠어."

"그렇게 보여, 충분히."

"단을 위한 일이었으면 서둘러서 너를 사살하고 행동에 옮겼겠지."

"서로 개인적으로 벌이는 짓이잖아."

"편을 들어주면 내가 벌이는 짓이 잘못된 거지. 다시 말해서 정당성은 네 쪽에 있다는 주장이야."

"정당성이라."

"그렇다면 어떻게 할래?"


이미 '멘데이트'는 우선 순위를 정해둔 상태다.

만약, '아프로디테'가 살신성인으로 막는다면 얌전히 포기할 생각이다. 아까 말한 정당성이란 게 없다. 계획이 실패하면 그저 배신자가 될 뿐이다. 동료를 죽이는 건 죽음으로 갚음을 당해야 마땅하다. 설령 계획이 성공을 하더라도 미리 '아프로디테'를 죽인다는 일은 불편하다. 성공과 실패는 결과론이다. 그 전에 '아프로디테'가 죽어야 하는 일이라면 안 죽는 미래를 찾는 게 빠를 수도 있다. 그 다음 계획을 찾는 것도 중요할 테고 말이다.


"···내가 괴로운 짓만 골라서 하기가 있냐."


도박은 성공한다. 어느 정도 성공한다고 믿은 도박이라 감흥은 없다. '아프로디테'의 뜨거운 결심이 있었다면 저지 당했을 테지만, 그럴 용기가 없던 모양이다.


- - - - - - - - - -


아침은 생략하고 씻기만 하고 나오게 된다. 냉장고는 빈 공간을 차갑게 하는 중이다. 아쉽게도 입욕제나 쓰다만 비누나 바디 워시, 로션, 샴푸, 스킨, 파운데이션······ 그런 것들을 남기고 가는 건 마음에 걸린다. 혹시나 싶어서 '아프로디테'에게 양도할까 물어보았지만 받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이 마지막 드라이브인가?"

"일어난다면."

"그런데, 가족한테는 얘기 안 해도 되는 거야?"

"미리 죽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리냐."

"···하긴."


식사는 간단하게 김밥으로 해결하기로 한다. 차 안에서 먹기에 딱 좋은 음식이며, 심지어 '아프로디테'는 한 손 운전으로 한 쪽에는 기어와 함께 일부러 자르지 않은 김밥을 움켜쥐며 먹는다. 자신도 위험한 행동인 걸 아니까 제대로 먹는 건 신호를 지킬 때뿐이다.

목적지는 기관과는 조금 떨어진 건물의 옥상으로 한다. 어차피 기관 건물 자체가 커다랗다는 점에서 주변 어떤 건물에서 바라봐도 장엄해서 풍경들이 훤히 보인다. 신경 쓰이는 건 옥상까지 가는 데에 CCTV가 어느 구도로 있는지가 중요하다. 겉으로는 평범한 성인 여성 2명처럼 보이겠으나, 어느 각도에서 찍히는가에 따라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애초에 옥상을 목적지로 둔다는 점부터 이곳 영상을 기관이 입수한다면 곤란해질 수 있다.

그러나 단원 전용 외투는 결코 들킬 수가 없다. 설계 자체가 접으면 지갑 크기만 해서 휴대하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다. 핸드백에 넣기만 해도 어차피 옥상에는 CCTV가 없으니 입는다고 자경단이라고 들킬 일은 없겠다. 그렇다고 올라가자마자 입을 의향은 없다. 어딘가에서 볼 수 있는 가능성, 특히나 폭력조직이 망을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옥상엔 반응이 없지?"

"용케도 우리뿐이네."


이번 작전 자체는 자경단 전체에게 참석을 강요해 놓았다. 그러나 시간 자체는 미묘해서 전반적으로 간단하게 정오를 중심으로 모이기로 해놓았다. 그에 비해서 '멘데이트'와 '아프로디테'의 집결 시간을 굉장히 빠른 편이다. 오전 9시 30분, 무려 2시간 30분 일찍 나온 셈이다.


"아직도 생각은 똑같은 건가?"

"기다리고 있지."

"시뮬레이션은 해봤고?"

"잔챙이들은 어느 정도 뿌리치고 들어갈 수 있겠지. 말단들까지 능력자로 구성되었을 경우에는 보스에게 돌입하는 것 자체가 버거울 수도 있지. 틈은 있겠지. 그렇지만, 그 틈이라는 건 나만 노리는 게 아니라 기관에서도 보스의 목을 치려고 노릴 게 분명하곘지.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는 내가 그 보스에게 죽고 보스가 상대적 열세를 느끼고 생환하는 거지."

"치밀한데, 다 가정이네?"

"멋대로 죽기도 쉽지 않지."

"그럼 살아서 돌아올 가능성도 있는 건가."

"계획이 실패하고 개죽음을 안 당하면."


속 편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전장에 한복판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을 테다. 습격 소식은 알아도 규모 자체는 파악한 게 아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놈들이 어느 정도의 전력으로 저 건물을 박살낼지 상상이 안 간다. 혹은 돌입하지 않더라도 기관뿐만 아니라 주변부까지 초토화 시킬 심산으로 온 것이라면 가만히 있어도 목숨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뭔가 심상치 않나?"

"어디가?"

"저 도로."


막연하게 도로를 가리키는 '아프로디테'의 말에 잠시 헷갈린다. 그러나 곧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한다.

10차선 도로를 꿰찬 열 대의 승합차가 눈에 밟힌다. 우연일 수도 있다. 차종은 전부 다르고, 그저 우연히 같은 시각에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라 보이기도 하다. 신경이 날카로운 나머지 뭐든지 의심을 한다고 주장도 가능하다. 지형의 한계로 다음 신호까지 동행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사라진다.


"거물이 꼭 거물의 손에 죽을까?"

"확률은 높지."

"하지만, 막상 까고 보니 대단한 거물도 아니라면?"

"그 때는 계획을 수정해야지."

"제발 그래주면 좋겠네."

"그러나 대단한 놈이 위에 군림하고 있겠지."

"조직이 그렇긴 하겠지."

"우리의 정보력이 맞다면."


걱정되는 건 '멘데이트'가 아니라 '아프로디테'다. 진짜 전장에서 살아남을 능력은 될지 걱정이다. 애써 죽지 않아도 될 생명이 없어지는 건 좀 슬플 일이다. 이것도 역시 이기적인 발상이다.


죽기 위해서 죽지 말라고 하니.


매우 비범한 발상이다.


"근데, 얼마나 자신감이 있으면 기습을 하려고 할까."

"그렇긴 해."

"우리가 전력으로 붙어도 개차반으로 뒤질 곳이 국방연인데, 무식해서 그러는 걸까."


그러니까 '부단장'이 비장의 수가 있을 거란 예상을 했다. 못 찾아내서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지만, 그래서 신중해야 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가령 수소 폭탄 같은 비밀병기로 초토화를 시키는 계획이라면 '나'는 어디로 날아가는지 궁금해진다. 살인이 아니라 살상에 불과한 행위는 발사 스위치를 누른 자의 몫일까? 만에 하나 큰 스케일을 고려해 보는 것이다, '멘데이트'는.


"뭔가 있을 법한데······ 뭔가, 간다?"


'아프로디테'의 의구심에 눈을 저절로 기관의 앞으로 향하게 한다. 그러나 미심쩍은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시선을 기관의 앞이라는 초점만 맞추고 거리를 멀리하여 특이점을 발견하는 데에 애를 먹는다.

오늘 시위는 없다. 시위대의 사정을 모르지만, 오늘은 없는 듯하다. 흔적만은 현수막으로 남아 있다. 딱히 기관에서도 강경 대응으로 현수막을 치우지는 않는 모양이다. 괜히 건드렸다가는 민심만 아프게 하는 결과이니 회유책에 가깝다.

그런 배경을 떠나서 원래 시위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유달리 기이함이 드는 사내(아마도)가 차지하고 있다. 오직 홀로. '데몬'처럼 특징한 두드러져 있다기보다는 분위기로 정복하고 있는 중이다. 느닷없이 지나가는 시늉도 내지 않고, 가만히 서서 통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멍하니 기관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풍경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조짐을-


쿵-!


"···벌써?"


생각보다 이르기도 하며, 단순히 분위기에서 압도한 것이 아니라, 일어난 일도 그 임펙트를 따라가고 있다. 사뿐하게, 시위대가 넘볼 수 없는 수준의 현상을 그는 기관 앞에서 보여준다.

수소 폭탄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사뿐히 기관을 밟으려고.


그가 무언가를 한다는 조짐을 느끼기 전에-


쿵-! 쿵-! 쿵-!


기관 건물의 외벽이 소음과 함께 함몰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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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용병(1) 21.06.18 37 0 13쪽
36 희생자 4 21.06.17 33 0 13쪽
35 멘데이트(15) 21.06.17 34 1 12쪽
34 멘데이트(14) 21.06.15 36 0 13쪽
» 멘데이트(13) 21.06.13 3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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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멘데이트(11) 21.06.11 3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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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멘데이트(5) 21.06.04 32 0 11쪽
24 멘데이트(4) 21.06.03 33 0 12쪽
23 멘데이트(3) 21.06.02 36 0 12쪽
22 멘데이트(2) 21.06.01 39 0 12쪽
21 멘데이트(1) 21.05.30 37 0 11쪽
20 희생자 3 21.05.29 43 0 12쪽
19 ???(4) 21.05.28 38 0 13쪽
18 ???(3) 21.05.27 38 0 12쪽
17 ???(2) 21.05.26 36 0 12쪽
16 ???(1) 21.05.26 39 1 12쪽
15 희생자 2 21.05.25 3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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