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렙을 위한 조건 - (16)
‘설마?’
자신을 떠보기 위한 것인가?
아니, 근데 애초에 떠보려는 목적이 없을텐데?
진성의 머릿속에 복잡해지는 순간.
정수빈이 말했다.
“그 말, 그리고 그 마음 나중에 가더라도 변하면 안돼요.”
“응?”
“지금처럼 소수 인원으로 사냥을 하는 거 말이에요. 저도 사람 많아지는 것 질색이니까요.”
“아, 그래.”
진성은 또 한 번 놀랬다.
이렇게까지 정수빈이 말을 많이 한 것은 맹세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뭐지? 뭐지?’
진성은 그 속내를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그래서 멈춰 서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정수빈은 이미 출구를 나간 상태였고, 출구 앞에서 정시원이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빨리 오라는 정시원 특유의 제스처였다.
“알았어. 간다 가.”
대답을 하는 순간에도 뭐가 뭔지 파악이 되지 않는 진성이었다.
*
“오빠.”
“어?”
“오빠, 우리 언니 좋아하죠?”
“컥!”
아이스티를 마시다말고 진성은 사레가 걸렸다.
“으. 더러워.”
“아. 좀.”
기침을 몇 번 하니 사태가 진정되었다.
대신 눈시울이 빨개져있었다.
그 틈을 정시원이 치고 들어왔다.
“좋아하는구나?”
“아닌데.”
“어허! 언니 없다고 너무 단호하게 대답하는 거 아니에요? 언니, 다시 오라고 할까요?”
“시원아. 그건 좀…….”
너무도 갑작스런 질문이라 대답을 하기가 곤란했다.
순간적으로 곤란했다는 거다.
‘좋아하는건가?’
하긴 감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런데 이게 참 얘매했다.
깊게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지만 일단 지금은 아니었다.
스윽.
“뭐야, 뭐야, 뭐야, 뭐야? 진짜로?”
정시원이 얼굴을 들이밀며 되묻는 것을 해결부터 해야했다.
진성이 오른 검지를 들어 정시원의 이마를 쿡하고 찌르면서 밀어냈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거든.”
“에이, 사람이 왜 솔직하지 못해요?”
“그냥 치맥이고 뭐고 집에 갈까?”
“오, 그렇게 나온다 이거죠? 후회안할 자신 있어요?”
“응. 안해.”
늘 이런식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시원이가 정말로 동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성적으로 본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 저울을 넘어서 완전히 동생으로 인식을 한 것이다.
그냥 편했다.
사실 오늘도 일을 마친 후에 셋이서 간단히 한 잔 하기로 했는데, 정수빈은 급한 약속이 생겨서 함께하지 않은 상태였다.
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쿨하게 사라졌다.
“흥!”
“대신 영화 보여줄게.”
“그런다고 내가 넘어갈 줄 알아요?”
“버터 오징어도 살게.”
“흥.”
“팝콘도.”
“음.”
“츄러스도!”
“콜!”
*
“뭐, 나쁘진 않네.”
진성은 집으로 오기가 무섭게 침대에 누웠다.
헌터로 각성한 이후 체력적으로는 크게 힘든 것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사냥을 할 때의 이야기였고 무장 상태를 해제하면 힘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무장상태를 해제하더라도 반지는 두 개 이상 끼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침대에 누우면서 그 반지마저 빼버리자 급격한 피곤함이 몰려왔다.
이제 내일이면 사냥터를 옮긴다.
조금은 싱숭생숭했다.
헌터가 된지도 2달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과연 돈이 될까?’에서 안정적으로 돈을 모을 수가 있는 사실을 확인했고 조금은 타성에 젖은 감도 있었다.
생활이 여유로워지니까 용접일을 하던 시절의 버릇이 점차 사라진 것을 인지못했던 것이다.
물론 목숨이 오가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니까.
상대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몬스터를 죽이고 전리품을 취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성질이다.
그래서 파티를 구했다.
초반에는 티격태격했지만 이제는 손발이 척척 맞았다.
여기까지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변수를 항상 예측해두고 안전, 안전을 필두로 하는 성격 탓에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죽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진짜로 좋아하는건가?’
단지 오랜기간 동안 연애를 하지 않아서, 그런 순간적인 감정일거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솔직히 다른 것 제쳐두고 외모만 놓고 보자면 정수빈은 진성의 이상형에 가까웠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이상형에 99%일치하는 것이 바로 정수빈이었던 것이다.
단, 성격은 제외였다.
“수빈이의 얼굴에 시원이의 성격이면 좋을텐데…….”
순간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다.
아무튼 이것은 신중히 생각을 해 볼 문제였다.
조금 더 나아가서 혼자 좋아한다고 치자.
그런데 상대방이 거부하면?
파티고 나발이고 해산이 될 것이 뻔했다.
거부를 한 마당에 얼굴을 보면서 같이 사냥을 하는 것이 불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일단 B급 던전 그리고 암브로시아를 얻을 때까지는 아무 생각하지 말자.’
진성은 이내 다짐했다.
애초에 어머니의 치료를 우선순위로 잡은 것이 아니던가?
그 후에 파티가 깨지든, 혹은 성공을 하고 진도가 쭉쭉 나가서 동자공이 깨지든 상관이 없다.
‘그래. 일단 레벨업만 생각하자.’
가만!
갑자기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자신의 레벨은 이제 20이 되었다.
D급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 레벨이 20이기도 했다. 하지만 진성은 거미굴에서 23이나 24까지 올리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정수빈의 레벨이 27이고, 자신의 레벨이 20 마지막으로 정시원이 18이었다.
어차피 정시원의 레벨 때문에 D급 던전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이 모든 것이 단독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고 의논을 해서 내린 결론이기도 했다.
거미굴에 대한 변수?
그딴 것은 없다.
단 한가지, 변종던전이 생성되는 것만 제외하면 없을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진성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럼 어디, 베틀엑스 제작 스킬 좀 살펴볼까?”
[ @ ]
“꺄아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엄청나게 큰 소리로 울리고 있었다.
머릿속에도 크게 메아리 치고 있었다.
“뭐지?”
진성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말을 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진성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몸은 움직이지 않고 심지어 목도 움직이지 않는데, 눈동자만 까딱거리는 것 같았다.
‘피?’
사방은 온통 붉었다.
비릿한 피냄새가 풍겨져 왔다.
그리고 저 먼발치에 뭔가가 있었다.
‘시발!’
그 뭔가를 확인한 순간 욕지기가 치밀었다.
가고일?
그리핀?
아마 형상만으로 따지자면 가고일이 맞을 것이다.
가고일 두 마리가 사람의 몸을 맨 손으로 뜯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한 놈과 눈이 마주쳤다.
‘…….’
촤아아.
놈이 행동을 멈추고 날개를 펼쳤다.
그러더니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진성은 두 눈에 힘을 꽉 주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 밖에 할 것이 없었다.
꿈.
그래, 차라리 꿈이었으면 했다.
몸 자체가 움직여지지 않았으니까, 꿈이었으면 했다.
망치라도 있었으면 저 놈의 머리에 충격을 줘서 단번에 죽여버렸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참으로 싫었다.
‘자. 와라!’
그리곤 질끈 눈을 감았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우린 곧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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