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 - (2)
곰이는 반려견이었다.
두 해 전 겨울에 집에 올 때 길가에 떨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모습이 안스러워 밥을 준 것이 지금까지 같이 지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견종은 모른다.
아무래도 믹스견, 잡종 같았는데 말도 잘 따르고 대소변도 잘 가리는 편이다.
몇 차례나 곰이의 머리와 몸을 쓰다듬어 준 후 진성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홉 시라…….”
병원에 들렀다가 집에 도착하니 어느새 9시에 다다른 시간이었다.
혼잣말을 내뱉으며 진성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다이얼을 눌러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오늘도 한 마리. 갖다드릴까요?
“네.”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이 났다.
진성은 치킨을 시켰다.
이틀이나 삼일에 한 번은 시키는 편이었다.
어차피 집 밥은 잘 먹지도 않고, 몸을 많이 움직이는 탓에 닭을 먹는 것이 영양적으로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치킨에 맥주가 빠지면 섭섭하지.”
샤워를 하고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치킨이 도착했다. 뒤를 이어 냉장고에 잔뜩 진열된 맥주 한 캔을 꺼내서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
목을 타고 넘어가는 이 맛이란.
“그래. 인생 뭐 있냐?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하고 병원비도 내가 벌어서 내가 감당하고 있고, 퇴근 후에 치맥이면 나쁘지 않지.”
다음 날.
땅땅땅!
진성은 때아닌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180이 채 안되는 키지만 그간의 갖은 노동일로 체형 자체는 좋았다.
운동을 하지 않았어도 선천적으로 몸이 좋았고 무엇보다 힘 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몇 번의 망치질이 끝이 났다.
뭉툭한 망치로 두들긴 것은 쇳덩이었다.
아니, 쇳덩이라기보다는 형체를 갖추고 있는 갑옷이라고 하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생각보다 속도가 더디네.”
하던 작업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윽.
진성의 시선이 한 쪽을 향했다.
그 곳에는 투구를 쓰고 검을 들은 성인 남성의 크기만한 피규어가 있었다.
거짓말 조금 더 과장을 보태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피규어였다.
“힘들었지.”
정확히 1년 하고도 반 년이 걸렸다.
사람의 골격을 연구하고 그것을 뼈대로 삼아 골격위에 살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시쳇말로 맨 땅에 헤딩을 하듯이 시작한 일이기도 했다.
그 일이 이제 끝을 보려고 하는 상황이었다.
“흐음…….”
진성은 현재 스케일 아머를 제작 중이었다.
이름 그대로 철판을 작게 잘라서 가죽 천에 꿰멘 것을 스케일 아머라고도 하는데, 꿰메는 방법에 따라 여러 분류로 나뉘진다.
진성 역시 디테일을 위해서 철판을 하나 하나 자르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것은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완성을 목표로 시작을 한 일이었으니까.
들어가는 비용도 정말로 최소로 했다.
주위에서 재료를 구하기 쉬운 상황도 한 몫 했다.
조선소 용접 일을 하면서 너무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멋있단 말이야.”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들처럼 진성 역시 게임을 좋아하고, 여자 가수들이나 연예인을 좋아하는 취미를 지녔을 뿐이었다. 물론 그 취미가 조금 더 발전을 하기는 했지만, 그러다보니 게임 속의 캐릭터나 만화 속의 캐릭터에 관심이 많아지게 된 것이었다.
지금 만드는 캐릭터도 한 때 돌풍을 일으켰던 게임, 레벨 오브 레전드의 트린미다어라는 캐릭터였다.
그냥 말 그대로 남자 중의 남자였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느꼈던 희열을…….
아무튼 이 갑옷만 걸치면 제작은 완료가 된다.
“후훗.”
진성은 기쁜 마음으로 스케일 아머를 들었다.
그리고 상의를 탈의한 듯한 피규어의 몸에 부착시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규어가 완성이 되었다.
“피규어의 완성은 사진이지.”
들어와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뭔가를 제작할 때 마다 기념으로 남겨두고 업로드 하는 것도 살아있는 흔적을 남기는 좋은 일이었다.
다 떠나서 진성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이다.
“다음은 할크 버스터나 제작해볼까나?”
벌써부터 다음 피규어 제작 대상을 생각하고 있는 진성이었다.
마당에서 작업을 마치고, 작업물을 집 안으로 옮겨놓은 뒤에야 진성이 향한 곳은 병원이었다.
휴일이라 오전부터 작업에 매달렸고, 점심 즈음이 되서야 병원으로 향하는 것이다.
설령 작업이 끝나지 않았더라고 해도 중단을 하고 병원을 향했을 진성이다.
오늘은, 어쩌면 오늘은 눈을 뜰지도 모를 확률이 있을지도 모른다.
절대로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도 일과가 되어버렸다.
진성은 그로부터 5시간이 지난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부터 또 월요일이 돌아오겠구나.”
28살.
적지 않은 나이었다.
남들은 연애도 하고 미래를 위해서 자기 발전에 이바지 할지는 몰라도, 진성에게 있어서는 그런 것까지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은 뭐를 하더라도 어머니가 깨어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른 것은 뒷전이었다.
혼잣말을 한 것처럼, 향후 수중 용접 일을 하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돈 때문이었다.
일 자체야 위험하다.
하지만 리스크가 큰 일은 그만큼의 수당을 받기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용접일 자체는 우리나라가 아닌 캐나다 쪽만 가도 좋은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진성은 단호히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는 어머니의 치료가 가장 걸렸다.
그 이유를 포함해서 걸리는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진성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복잡한 건 딱 질색이다. 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일단은 이것으로 만족하자.”
그리고는 거실에 위치한 컴퓨터 본체의 전원을 켰다.
어쩌면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하고 싶은 것과 할 것을 하는 버릇이 생긴 진성이었다.
평일에도 몸이 피곤하지 않는 날이라던가 여유가 조금 되는 시간에는, 컴퓨터 게임을 하곤 했었다.
때마침 게임에 접속해서 스트레스를 푸려는 것이었다.
맥주 한 캔.
치킨 한 마리.
컴퓨터 게임.
그리고 제작하는 취미.
이것이 진성에게 유일하게 허용되는 사치였다.
아,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꾸욱.
진성이 컴퓨터 책상 위에 올린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직업병의 일종인지는 몰라도, 게임을 할 때도 약간의 주변 소음이 있는 것이 마음이 편안해졌다.
뭐, 그런거다.
짧으면 20분, 길면 1시간 정도가 한 판인 게임을 시작했는데 마침 한 판 정도가 끝났을 때였다.
“응?”
TV에서 낯익은 단어가 흘러 나왔다.
헌터.
그것은 다름 아닌 헌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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