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출과 실험 - (5)
“네. 지금 오셔도 돼요.”
-알겠어요.
뚜욱.
진성이 버튼을 눌러 통화를 종료했다.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는 여자 목소리였다.
목소리로 나이를 분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자신보다 어릴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뭐, 선 자리도 아니니까.’
그래도 여자라는 생각에 들뜬 것도 사실이었다.
잠시 후, 카페 입구의 문이 열리고 한 명이 카페로 들어왔다.
동시에 진성의 눈도 커져만 갔다.
‘오!’
아이템의 옵션을 확인했을 때보다 눈이 더 커지고 있었다.
그것을 진성만 인지하지 못했다.
눈이 커진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외형과 외모 때문이었다.
키는 169? 170정도 되어보였다.
얼굴.
더 정확히는 얼굴.
얼굴은 귀여움과 예쁜 것이 공존하는 사기급 얼굴이었다.
뭐랄까.
요즘 한참 주가를 달리고 있는 아이돌 AUA의 설…….
판박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헌터로 각성한 이후 시력이 좋아져서 파악을 빨리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두 번째는 옷.
곤색 계열의 박스티와 청바지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그 박스티 사이로 빨간 것들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여자가 다가왔다.
“혹시 아이템 파시는 분 맞죠?”
“아. 네.”
진성의 대답에 여자가 고개를 푹 숙였다.
가슴골이 보였는데 진성은 순간적으로 시선을 회피였다.
그 사이 여자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진성도 시선을 돌렸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여자가 말했다.
“죄송해요. 약속 시간에 맞춰서 올 수 있었는데 파충류 새끼들이 발악을 해서 조금 늦었어요. 헤헤.”
“…….”
이 여자 뭐지?
진성은 혼란스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진성은 생각보다 여자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대화 자체를 여자가 주도해갔고 판매 이외의 말들을 하게 된 셈이었다.
이름. 정시원.
나이. 20살.
헌터가 된지는 이제 일주일.
원거리 딜러.
언니가 한 명 있음.
그녀도 헌터. 중급 레벨의 소유자.
같이 사냥을 했지만 호텔 숙소에 가서 씻느라 같이 오지 않음.
정시원이 말했다.
“오빠는 아, 오빠라고 불러도 돼죠?”
“네. 그러세요.”
“아이참 오빠는 말 놓으세요. 그런데 오빠는 몇 살이에요?”
“28살인데요.”
“아이참 말 놓으라니까요? 제가 한참이나 어린 동생인데 괜찮아요.”
“그렇게 놓으라고 하면 제가 막 못 놔요. 천천히…….”
진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가만, 천천히 놓을 필요가 있는건가?
어차피 아이템을 거래하고 나면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사이였다.
성격 자체가 털털하고 붙임성이 좋은 것은 알겠으나, 뭔가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서였다. 물론 연락하고 지내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명분이 없었다.
진성의 생각을 뒤로한 채 정시원의 말이 이어졌다.
“오빠. 그럼 이제 아이템을 보여주세요.”
“아, 잠시만요.”
대답과 함께 가방에서 반지를 꺼냈다.
그리고 반지를 건넸다.
“감정 좀 해볼게요.”
“그러세요.”
진성의 말을 들으며 정시원은 감정을 하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채 10초도 지나기 전에 정시원의 말이 이어졌다.
“진짜 이런 아이템도 있었네요. 마력 증가라니, D등급 아이템도 아닌데 장난이 아닌 것 같아요. 이거 보스 잡아서 획득한거에요?”
“뭐, 대충 비슷해요.”
그 말에 정시원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 미치겠네.
얼굴과 얼굴 사이가 가까워진 것 땜에 그런거다.
순간적으로 심장박동수가 빨라진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이 아니었다.
정시원의 말이 이어졌다.
“오빠. 혹시 스텟을 행운에 모두 찍은 것은 아니죠?”
“그럴리가요.”
“하급 던전에서 이런 악세서리를 구하기가 어려운데, 행운에 올인하지 않고서야 음음.”
“하하…….”
진성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시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혹시 더 없어요?”
“네?”
“아이참, 반지 더 없냐구요?”
“있기야 한데…….”
스윽.
그 말에 정시원이 오른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네?”
“아니, 있는 거 저한테 다 파세요. 제가 원거리 딜러라서 마력 증폭 아이템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몇 개나 있어요?”
30개 정도가 남아있었지만 진성은 거짓말을 했다.
“5개요.”
“그럼 지금 저한테 파세요. 일단 그 전에 인계 버튼 눌러주세요. 반지 꺼낸 다음에 판매글 다시 올려요. 거래는 깔끔하게 진행하죠.”
“그래요.”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나쁜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시원의 말대로 아이템을 꺼내서 판매글을 올리고 인계, 인수를 끝마쳤다.
인계 확인은 자신이.
인수 확인은 정시원이 함으로서 거래가 종료된 것이다.
진성이 말했다.
“다, 끝났죠? 이제 그럼 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는 싫었지만 더 이상의 명분은 없었다.
솔직히 진성도 아쉬웠다.
그렇다고 오해를 사기는 싫었다.
정시원의 자신의 이상형이라기보다는 그냥 저런 동생 한 명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었으니까.
그래서 말을 꺼낸건데, 진성의 말을 정시원이 잘랐다.
“오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저녁이나 한 끼 해요!”
“저녁요?”
“네. 언니랑 묵고 있는 호텔 근처에 근사한 레스토랑 하나 있거든요. 언니도 거기로 오라고 하면 되니까 같이 식사나 해요.”
진성이 말했다.
“음, 호의는 고마운데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만난지 이제 30분도 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소개팅 목적도 아니고 단지 아이템의 판매자와 구매자의 입장에서 만난거다.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다지만, 이런 급작스러운 전개는 진성 자신이 사절을 하고 싶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거든.’
그래도 최대한 말은 돌려서 했다.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어찌됐든 반지 5개를 그러니까, 4500만원을 일시불로 지불한 재력의 소유자였다. 훗날에 자신의 아이템을 또 살 수 있는 고객이라는거다.
나이가 적고 많고는 여등 상관이 없었다.
“사실은 부산이 초행이라서 길을 잘 모르거든요. 오빠는 부산 사람인 것 같아서 아, 제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알겠어요.”
“네.”
뭐, 아쉽진 하지만 이제 진짜 끝맺음을 낼 시간이 다가왔다.
‘그냥 간다고 할 걸 그랬나?’
변덕이 머릿속을 지배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무를 수도 없었다.
“그럼…….”
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카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여기까지는 완벽했다.
그때, 문이 열렸다.
멈칫.
진성이 걸음을 멈추었다.
동시에 진성의 눈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생에 가장 많이 커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명의 여자 때문이었다.
‘오…….’
진성은 오늘 여신을 보았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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