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렙을 위한 조건 - (5)
스윽.
“근데 이 새끼가…”
진성의 물음에 변득구가 손을 올렸다.
뺨을 때리려는거다.
진성은 애초에 맞아줄 의사가 없었다.
그래서 날아오는 손의 손목을 잡았다.
“뭐고? 이거 안 놓나?”
“싫습니다.”
“하. 이 씨발놈 보소?”
“…….”
그때였다.
“무슨 일입니까?”
진성의 등 뒤에서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도 낯익은 목소리였다.
바로 신탁현이었다.
“마, 안 놓나?”
“무슨 일입니까?”
“이 새끼 한테 물어보소.”
신탁현의 물음에 변득구도 저자세로 나섰다.
헌터협회의 이사라는 직함이 가지는 무게 때문이다.
“이진성 씨. 손 놓으세요.”
“…예.”
진성도 마지못해 손을 놓는 척 했다.
솔직히 싸움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다.
더러워서 피하는거다.
진성의 입장에서 변득구가 똥이었다.
평생 마주치지 않아도 될 놈인데 마주친 상황도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시발 새끼. 조만간 보자.”
“…….”
변득구가 꼬리를 내리듯 건물 입구 쪽으로 가버렸다.
그게 더 짜증났다.
부들부들.
진성은 저도 모르게 쥔 주먹을 풀었다.
트라우마까지는 아니지만 어릴 적에 당한 것이 떠오른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맞은 사람은 오래 기억을 해도 때린 놈은 금방 잊어버리는 기억.
뭐, 고쳐지지 않는 귤레라고 해두자.
하지만 어릴 적과는 달리 이제는 선배도 아니고 그냥 아무 사이도 아닌 놈이다.
헌터로 각성한 이상 1:1로 하면 아니…….
‘저 놈도 헌터로 각성한 것인가?’
의문점이 짙어지는 그때.
신탁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커피나 한 잔 할까요? 이진성 씨.”
“아. 네.”
대답을 하는 순간에도 진성은 몰랐다.
머지않아 변득구와 좋지 않은 일로 다시 부딪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지금의 진성으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
“…무슨 일이길래 그런 상황까지 갔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예전에 알던 사람인데 사소한 다툼이 있었어요.”
“타이거 길드의 변득구 씨와 안면이 있었었군요.”
그 말에 진성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역시나 헌터가 맞았던 모양이다.
“타이거 길드요?”
“예. 한 두 달 전에 생성된 길드인데 말이 길드지 실상은 제갈파 놈들이 만든 길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
제갈파.
진성의 기억에도 있는 조직이었다.
학창시절에 깡패를 하려면 아니, 제대로 깡패로 크려면 제갈파 식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으니까.
그 뒤로는 잘 모른다.
변득구가 그 제갈파에 들어갔다는 것 외에는.
하지만 현재 부산의 최대 조직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러니까 그 뒤에 세력 다툼 같은 것을 포함한 여러 일이 있었는데, 그때 전체를 통일하다시피 한 것이 바로 오성파였다.
진성이 아는 것은 딱 그 정도였다.
그것도 어깨너머로 들은 것이라 확실하지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타이거 길드의 전신이 제갈파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길드로 따지면 중소 길드 정도는 되겠지.
세세한 것 까지는 모른다.
그래도 콧방귀 조금 뀌는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진성의 평가는 딱 그 정도였다.
문제는 저 놈이 헌터인가 아닌가에 관해서였다.
헌터라고 할 경우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 같은 업계에 있다보니 언젠가는 한 번 부딪힐 것이다.
추후에 부산에 새로운 상위 던전이 생기면 그 이권 다툼에 저 놈은 분명히 달려들 것이다.
길드 자체에서 사체를 처리하는 기관을 설립해서 운영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합법적으로 허용된 일이라면 아니, 불법이라도 돈 되는 일은 달려들 놈이다.
그 천성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다.
깡패들을 모두 비하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진성의 입장에서 변득구는 필요악도 아니었다.
그냥 회생 불가능한 쓰레기다.
인성 자체가 쓰레기라는 것이다.
진성의 생각을 뒤로한 채 신탁현의 말이 이어졌다.
“몬스터의 사체를 처분하는 회사를 만들었다고 명함을 돌리더군요.”
“네?”
“변득구 씨가 말입니다. 사체를 처리하는 업체의 대표라고 하더군요.”
“아, 그럼 헌터이기도 하구요?”
“그렇지요. 석 달 전에 제갈파에서는 처음으로 나온 각성자이니까요. 아마 제가 아는 정보로는 변득구씨가 타이거 길드의 부길드장일겁니다.”
“아…….”
“물론 신생 길드라서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업으로 따진다면 중소 기업에도 못 드는 병아리 길드니까요.”
피식.
오늘 들은 말 중에 가장 체중이 확 내려가는 듯한 시원한 말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몰랐다.
머지않아 좋지 않은 일로 다시 부딪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때의 진성은 알지 못했다.
며칠 후.
애초에 예상했던 우려와는 달리 사냥은 이제 순조롭게 이어졌다.
대신 공격 방식이 1층에서부터 바뀌었다.
화르르르.
“파이어 버스터!”
의도적으로 정시원이 스킬 이름을 외쳤다.
진성으로 하여금 스킬 이름을 기억해두라는 의도였다.
하긴 여러 상황에 닥쳤을 때 시전을 하라고 지시를 할 수도 있어야 하니까.
파티장.
즉, 자신은 파티장이었다.
단순히 탱커였으면 탱킹만 하면 되겠지만, 파티장이니까 운영도 해야했다.
즉, 안전적인 사냥을 위해서는 자신이 커멘더의 역할도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의견은 정시원이 아닌 정수빈이 낸 의견이다.
솔직히 커멘더의 역할은 뒤에서 보조를 하는 힐러가 하는 것이 더 맞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래서 그 의견을 그냥 따르기로 했다.
여튼 정시원이 구체를 날리고 몬스터들이 미쳐서 날뛰면 진성, 본인이 그 앞에선다.
그리고 그 바로 뒤에 불의 벽, 파이어 실드가 펼쳐진다. 물론 진성은 등 뒤에서 뜨거운 기운을 느끼면서 싸움을 해야하지만, 그래도 제일 처음에 벌어졌던 상황은 펼쳐지지 않았다.
수월한 사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뭐, 나쁘지 않아.”
손발이 맞아가는 탓에 속도 역시 혼자서 사냥을 할 때보다는 빨랐다.
또한 아직 대장장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으니 추출 스킬은 사용하는 것이 불가했다. 그래도 재료아이템을 조금 더 싸게 분배해서 가지고 가니까 이것 나름대로 이익인 셈이었다.
이대로 많이 잡아 18레벨까지 달성한 후, 거미굴로 가면 딱 좋을 것 같았다.
“변종 던전만 생성되지 않으면 진짜 더 좋을텐데!”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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