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 - (1)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네.”
이진성이 큰 소리로 인사를 하자 주위 사람들이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 중 코가 유난히 빨간 사내가 다가왔다.
“날도 더운데 가볍게, 한 잔 하겠는가?”
“오늘은 제가 좀 피곤하네요. 월 말에 한 번 해요.”
“그 말 벌써 다섯 번 째 하는거 알고 있는가 모르겠네. 허허.”
“차라리 아저씨도 이 기회에 술 끊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만?”
“예끼. 술은 내 인생이야. 한 잔 안 할거면 어서 가던길 갔으면 하네만.”
“알았어요. 내일 뵈요. 다들 내일 봐요!”
힘찬 목소리로 대답을 하며 이진성은 일 터를 나섰다.
“휴우.”
버릇처럼 내뱉기 시작한 한숨도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니까 일이 안 풀려서 내쉬는 것이 아닌, 사고 없이 하루의 일과를 마친 안도의 한숨인 것이기도 했다.
이진성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었다.
“올해가 팔 년차인가? 구 년 차인가? 아. 헷갈리네.”
이진성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활전선에 제대로 뛰어들었다.
뭐, 이유는 간단한다.
생활고.
집이 찢어지게 가난 했었기에 돈을 벌지 않으면 생활 자체가 되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란 아르바이트를 모두 섭렵하여 생활비를 벌었다. 그래봐야 집에 보태는 수준에 불과했었지만.
공부?
“그런 것은 타고난 얘들이나 하는 것이었지.”
자신에게는 해당상황이 없었다.
장학금을 받아서 다닐 성적도 나오지 않았을뿐더러….
차라리 머리보다는 몸을 쓰는 일이 더 편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르바이트도 다져진 몸이 아니었던가?
운동신경도 좋아서 초등학교 때는 야구부 활동을 했었지만,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집안이 몰락하면서 선수의 꿈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뭐, 내 의지가 그 정도 밖에 안됐던 것이니까.”
누구나 탓을 하기는 쉽다.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있겠지만 만일 같은 상황이 와도 자신은 운동을 포기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다.
집안이 몰락한 이유는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었다.
사업을 하셨는데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처음부터 있었던 대출 빚을 떠안아 버린 것이다.
다행히 사채 빚까지 있던 것은 아니어서 한시름 놓을 수 있었지만, 그래서 이진성이 선택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매우 좁았다.
사지가 멀쩡하니까 일이라도 해서 가계에 보탬이 되는 마음이 먼저였다.
하지만 현실은 냉담했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순간 순간 나쁜 유혹에 빠져 유흥업소 웨이터 일도 잠시 했었지만, 장래가 없다고 판단해서 접었다.
여튼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야 일반 아르바이트였지만,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조금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어머니가 혼자 버는 돈으로는 월세와 대출금 원금과 이자하고 생활비 내면 빠득했었으니까.
그래서 시작한 것이 용접공 일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쉽지는 않았다.
하루하루가 매우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숙련이 되고 몸에 적응이 되다보니 지금까지 와버린 상황이었다.
보수도 물론 괜찮았다.
정규직이긴 하되 잔업을 자주 해서 350에서 400만원 가량을 받았다.
평균을 내면 그랬다.
아무리 숙련이 되었다고는 해도 일이 고되니까 그런 것이다.
한 달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풀로 잔업을 할 수 있으면 그게 철인이게?
이렇게 이진성은 일을 열심히 해왔고 같은 나이대의 친구들에 비해 수익이 괜찮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모은 돈은 없었다.
“휴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이진성이 도착한 곳은 대형병원이었다.
익숙한 발걸음이었다.
로비에서 접수를 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친 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6층의 버튼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6층에서 내렸다.
그리고 왼 쪽 복도 끝에 위치한 병실로 들어갔다.
특실이었다.
“오셨어요?”
들어가기가 무섭게 진성을 향해 말을 건네는 이가 있었다.
간병인이었다.
진성이 말했다.
“오늘도 별다른 일은 없었죠?”
“예.”
무미건조한 대답.
매일 매일이 되풀이 되는 일이지만, 그래도 뭔가 다른 일이 있었다는 말을 기대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엄마. 나 왔어.”
“…….”
진성의 말에 병실은 침묵이 맴돌았다.
그 정적을 깨기라도 한 듯 간병인이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
진성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별다른 일은 없었어. 내가 이제는 짬밥도 좀 되거든. 한 내년이나 내 후년에는 수중용접 일을 할 거 같아. 전혀 위험하지 않고 보수는 조금 더 준다고 했거든.”
“…….”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고 일어나. 일어나서 위험하니까 하지말라고 아니, 아무 말이라도 한 마디만 해줬으면 좋겠어.”
“…….”
병실 안에는 침묵만이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진성은 병원을 나섰다.
간병인에게 오늘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나오는 길이기도 했다.
3년.
벌써 3년 째 되풀이되는 일상이었다.
25살 되던 해 갑자기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음식점에서 서빙 일을 하셨었는데, 갑자기 원인도 모른 채 쓰러지셨다고.
그 후 병원으로 옮겼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병원에서는 정확한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뇌사 상태는 아니었다.
의식은 있다고 했었으니까.
코마 상태?
아니다.
분명히 어떤 증상이라고 얘기를 했었는데, 정확하지는 않겠단 말이 더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무튼 의식은 있되 깨어나지를 못하는 상태였다.
일터에 있는 자신을 대신해 간병인이 대소변을 다 책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간병비를 포함해서 병원비로 나가는 돈이 매 달 250만원.
진성이 돈을 모으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스윽.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방 2개 달린 1층 집이었다.
마당도 있었다.
가건물로 된 구조라서 마당도 넓었다.
조선소 근처인데다가 땅 값도 싼 편이라, 24살 때 4천만원을 주고 임대로 살게 집이었다.
그러니까 어머니께서 사고가 나기 전의 일이었다.
그때였다.
왈왈!
한 쪽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났다.
진성의 시선이 소리가 나는 곳을 향했다.
동시에 몸을 돌려 그 곳으로 걸어갔다.
“하. 나를 반겨주는 것은 곰이, 너밖에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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