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렙을 위한 조건 - (18)
스윽.
진성이 내려두었던 망치를 집어들었다.
여차하면 바로 망치를 날려 머리통을 부술 생각이었다.
어차피 죽여야 끝이 나는 거니까.
그런 것도 모르고 아니, 아는지 모르겠지만 거미는 춤을 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BGM만 깔아주면 참…….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정시원이 동영상 촬영을 끝냈다.
“오빠. 뭐해요?”
“응?”
“던전 마무리 짓죠. 오빠가 막타 치세요.”
“그래.”
떨떠름한 대답과 동시에 생각에 잠겼다.
‘이거 던전 맞아?’
아니, 춤추는 거미가 보스가 맞을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끝내야 할 타이밍이 분명했다.
손에 쥔 망치를 힘차게 던졌다.
‘어라?’
아니, 던지고 보니 알았다.
망치가 아닌 도끼를 던졌다는 것을.
그러니까 왼 손으로 망치를 쥐고 오른 손에는 여전히 도끼가 쥐어져 있었다는 것을.
‘뭐, 상관있나?’
진성의 생각을 뒤로한 채 머릿속으로 음성이 울렸다.
-던전 클리어.
*
“오히려 큰 원숭이 던전보다 훨씬 쉽네요?”
“그런 것 같아.”
진성은 순수히 인정했다.
생각보다 쉬워도 너무 쉬웠다.
물론 마력증폭 효과가 일차적이고 이차적으로는 거미굴의 특성 때문이겠지.
2공동만 봐도 알집은 화기로 다 태워버리면 그만이니까.
사냥을 마치고 카페로 자리를 옮긴 지금.
진성과 정시원의 대화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옆에서 정수빈만이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스윽.
“그리고…….”
의도적으로 말을 끊은 정시원의 시선이 갑자기 옆에 앉은 정수빈에게로 향했다.
끊어졌던 정시원의 말이 이어졌다.
“언니! 아무리 내 언니라고 하지만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니야?”
“뭐가?”
“언니도 밥 값은 해야지. 맨날 버스만 타잖아.”
“버스?”
“…웁!”
그 말에 진성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가리지 않았으면 더 큰 사태가 발생한 것을 방지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정시원의 한 말의 저의를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이로 커피가 조금은 새서 흘러 내리고 있었다.
“악. 더러워!”
“…….”
정수빈이 재차 말했다.
“무슨 버스?”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이득을 취하는 사람을, 공짜 버스 탄다고 빗대어 말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무슨 버스를 탔는데?”
“…….”
진성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둘이 장난을 치는건지 아니면 진담인건지 헷갈리네.’
물론 정수빈의 클래스 때문에 처음에는 오해를 한 것도 사실이다.
힐을 거의 주지 않았었으니까.
정시원의 말이 이어졌다.
“큰원숭이 던전에도 힐을 줄까 말까였는데, 이제는 줄 일도 없게 생겼잖아. 그러니까 버스가 아니고 뭐겠어?”
“나름대로 집중은 하고 있어.”
“…….”
음, 묘하게 분위기가 이상했다.
특히 정수빈의 태도가 그랬다.
진중한 거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장난 같이 느껴진다고 해야할까?
그 사이 진성은 휴지로 손가락의 커피를 닦아내는 중이었다. 그런 그를 정수빈이 빤히 쳐다봤다.
“응?”
“시원아. 나를 탓할거면 오빠도 같이 탓을 해. 오빠도 이번에는 하는 거 없잖아.”
“왜 없어? 오빠는 사기성 아이템 만들어줬잖아.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어가야지!”
“…….”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그냥 놔두었다가는 진짜로 싸움으로 번질 것 같은 기분?
진성이 중재(?)를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자자. 그만들하고 저녁에 무슨 영화를 볼지 고민부터 하는게 먼저일 거 같은데?”
“…….”
[ @ ]
다음 날.
전 날에 장난으로 나온 이야기이긴 했지만 진성은 자신과 정수빈이 밥값을 하기 위한 묘안을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좋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정시원의 딜로도 사냥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원의 원맨쇼 밖에 되지가 않았다.
‘내키지가 않으니까.’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진성 역시 남에게 기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운동을 하던 습관 때문인지 자신이 앞에 나서서, 이끄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방법이 없었다.
정시원의 불속성 계열의 스킬 자체가 거미들을 태우고, 알집을 태우는 것에 특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상성의 효과다.
거미의 약점이기도 하고.
반대로 동일한 조건에 물이나 얼음 속성의 스킬을 사용하는 유저였으면 조금 힘들었지도 모른다.
얼릴 경우 단순히 얼리는 것 뿐이지, 죽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 역시 익사….
진성의 상식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아무튼 사냥을 하면서 방법은 찾아보면 그만이다.
“오늘 한 번만 더해보고 거미굴도 두 타임을 뛰어야겠어.”
혼잣말을 내뱉으며 진성이 차에 올라탔다.
*
-던전 클리어.
시스템의 음성이 머릿속에 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성의 말은 이어졌다.
“수빈아. 힐!”
“네?”
무슨 의미냐고 되물었지만 진성이 재차 말했다.
“힐! 내 오른 팔에 힐!”
“…….”
정수빈의 시선이 진성의 오른 팔에 향했다.
그곳에는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들어나 있었고, 너무 선명하다 못해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언제 물려준거지?’
너무나 편안한 사냥 탓에 잠시 다른 생각을 한 사이 물린 것 같았다.
보스, 대왕 거미 앞에 다가간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아니면 도끼로 머리를 찍기 전에 물려준건가?’
정수빈이 생각에 잠기는 사이 정시원이 재촉했다.
“언니. 뭐해? 힐 주라구!”
“…그레이트 힐!”
‘으.’
힐이 들어오기 무섭게 진성은 이를 악물었다.
따끔거리는 순간적인 고통 때문이었다.
‘신기하긴 신기하단 말야.’
하얀 거품이 일면서 상처가 수복되는 광경은 정말로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광경을 보기 위해 일부러 상처를 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제의 일 때문에 불화점이 생기는 것도 좋은 모양새가 아니었다.
장난이든 장난이 아니던간에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은 진성의 성격도 한 몫 했다.
정시원의 말이 이어졌다.
“오빠. 아무리 언니의 힐이 받고 싶다고 해도 자해는 좋지 않아요. 아, 거미한테 일부러 물려준거니까 자해는 아니네요.”
“…….”
정수빈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아, 들킨건가?’
진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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