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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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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작성
14.02.2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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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
20쪽

17화 - 3

DUMMY

“어, 어이!”

“……?”


평화로운 점심시간. 오늘은 점심을 대충 도시락으로 때웠다. 값싸고 편해서 좋은 도시락. 다 먹고는 자유시간이다. 미래는 한참 나랑 얘기하다 디시질 하러 간다고 제자리로 돌아가 휴대폰 삼매경이고, 리유는 옆에서 나랑 미래가 얘기하는 걸 가만히 듣다 하품을 하며 마찬가지로 제자리로 돌아가 엎드려 자고 있다. 저러는 게 정상이다.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에 리유가 깨 있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성빈이는 오래간만에 지선이랑 논다고 어디 나갔다. 해서 나는 평화롭게 휴대폰으로 텍스트 소설을 읽고 있었다. 헌데 그런 나의 평화를 깨는, 악의 무리.

희세는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나는 자리에 앉아 있고, 희세는 꼿꼿이 서 있는지라 내가 올려다보는 각도가 된다. 앉아서 보니까 오늘따라 가슴이 더 커 보인다. 어째 희세는 보면 얼굴보다 가슴에 먼저 시선이 가는 것 같다. 아니, 변태라 그런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니까, 이건.


“이, 이봐!”

“왜. 쳐다보잖아.”

“마, 말을 걸면 대답을 해야지! 어디 눈짓으로 대충 찌그리려고 해?!”

“아아, 알았어. 왜?”


희세의 시비에 나는 눈을 들어 희세를 쳐다봤다. 처음 시선은 가슴으로 갔지만 그 뒤론 줄곧 희세의 눈을 쳐다봤다. 하지만 희세는 다시 한 번 나를 부른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이렇게 판을 차리면서 시비를 거는 거지. 내 대답에 희세는 정작 본인은 대답하지 않고 뚱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비어 있는 내 앞쪽 자리에 덥썩 앉는다. 거긴 지선이 자리인데. 뭐, 성빈이랑 성미랑 같이 어디 놀러 나갔으니 상관없으려나.

그나저나 진짜 가슴밖에 안 보인다. 오늘따라 특히 더. 교복 블라우스를 엄청 줄인 것도 아닌데, 가슴 부분이 터질 듯이 팽팽한 게 매력적이다. 좀만 더 가면(?) 단추가 팽 하고 튕겨져 나갈 것만 같다. 아니, 말이 그렇다고. 너무 대놓고 쳐다보면 당연히 변태 취급할 것이 뻔하니 힐끔힐끔 시선을 분산시키며 감상했다.


“너, 너 같은 변태 새끼도, 일단 남자애긴 하잖아.”

“……그렇지, 나도 남자긴 합니다. 남자가 변태인 게 뭐가 죄인가 싶긴 하지만.”

“시, 시끄러 변태새끼가! 지금 또 가슴 봤지?!”

“아아, 안 봅니다, 안 봐요.”

“……피이, 진짜 변태새끼.”


희세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살짝 볼에 홍조가 돌아 머뭇거리며 말한다. 창피함? 그 당당하고 화려한 나희세 님께서 뭐가 부끄러워 저리 행동할까. 이어지는 희세의 말에 나는 불퉁하게 대답했다. 아무리 들어도, ‘변태새끼’ 라는 말은 솔직히 적응하기 힘들다. 아예 처음부터 내리깔고 들어오는데 어떻게 좋게 보겠어.

희세는 내 시선을 신경 쓰며 몸을 돌리고 가슴을 가리며 말한다. 나는 무죄를 주장하며 손을 들고 마찬가지로 시선을 돌렸다. 예전 같으면 솔직하게 시인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증거 있어? 눈에 궤적 추적하는 신경 센서라도 달았어? 안 봤다면 안 본거지. 뭐 별 게 있겠는가. ……점점 성추행범이 변명하는 것과 비슷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기분 탓이겠지. 난 어디까지나 대한민국 평균 남자 고등학생 정도니까.

어쨌든 희세의 괜한 시비 덕분에 별다른 얘기도 안 했는데 뭔가 서먹해졌다. 희세랑 얘기하려면 무슨 수렴청정하는 대비마마 얼굴 가리는 발 같은 거라도 설치해야 하나.


“…….”

“뭔 얘기 하려고 온 거 아니었어?”

“어, 그, 그래! 얘기. 따, 딱히 할 것도 없잖아? 어차피 너, 이런 시간에 하는 것도 없이 무료하게 보내고 있으니까! 후훗, 내 얘기 들을 수 있는 건 엄청난 기회라구.”

“아아, 알겠습니다. 서론은 거기까지 하고. 무슨 말?”


희세는 뚱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몸까지 아예 앞쪽으로 돌려 표정도 잘 안 보인다. 에휴, 뭔 놈의 자존심을 이런 데서 이렇게 부리는지. 내가 먼저 한 마디 하니 꼬투리라도 잡듯 좋은 기세로 줄줄 말한다. 그냥 어제 성빈이가 나한테 와서 ‘말하고 싶어서 왔는데.’ 하면 얼마나 예뻐. 조금은 솔직하지 못한 건 희세의 단점이려나. 뭐, 저렇게 억지부리는 것도 나름대로 귀여운 면이 있긴 하지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희세의 말을 유도했다.


“그, 막 변태라고 한 거…… 기분 나빴어?”

“어, 어.”

“그, 그럼 미안…… 기분 상해 보였어.”

“어어, 됐어. 변태라는 말 듣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닌데.”

“…….”


막상 말을 해보라니까 정작 본론은 안 꺼내고 사과부터 하는 희세. 그러게 처음부터 이렇게 살갑게 말하면 어디 덧나나. 그래도 얌전하게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하는 희세는 굉장히 예뻐 보인다. 그리 썩 좋지 않은 태도의 내 대답에 희세는 기분 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이크, 너무 막 대했나. 희세 쪽에서 또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하는 식으로 말하며 짜증부리고 가 버리면 또 안 좋은 건 내 쪽이다. 결국에 삐친 거 풀어줘야 하는 건 내 쪽이니까.


“너도 일단은 남자애잖아.”

“어, ‘일단은’ 이란 말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응, 어쨌든.”

“그래, 남자 맞아. 왜?”

“…….”


대화는 제자리걸음이다. 아까 했던 말을 이번엔 시비조가 아니게 말하는 희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빤히 희세를 쳐다보는데 여전히 홍조를 띄고 말하기 머뭇거려 하는 희세다. 희세는 얼굴이 되게 하얘서, 얼굴이 빨갛게 되면 굉장히 티가 많이 난다. 가만 보면 정말 예쁜 희세다. 솔직하게 말하면 같이 다니는 여자애 4명중에선 단연 가장 예쁜 것 같은 희세다. 나머지 애들이 안 예쁜 게 아니라, 희세가 감히 넘을 수 없을 만큼 예쁜 거지만.


“여자친구! ……사귀었던 적 있어?”

“엥? 여자친구? 내가?”

“……그래, 너! 너 여자친구 있었던 적 있나구!”


뭐야, 그렇게까지 망설이면서 물어보는 게 겨우 그런 것인가. 내가 여자친구 사귀었던가 어떤가 하는 게 당최 왜 궁금한 건지. 거기다 희세 성격이라면 그런 세세한 건 따지지도 않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내가 지금까지 희세를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있었을 것 같아?”

“……응.”


나의 어두운 말투에 희세는 불안한 눈치로 나를 살피다 짧게 대답한다. 의외네.


“에, 의외네. ‘너 따위가? 후훗, 여친이 있을 리가 없지, 변태새끼인데!’ 하고 매도할 줄 알았는데.”

“내, 내가 언제 그런 식으로 말했다고! 내, 내가 무슨 마녀야, 그렇게 표독스럽게 말하게?!”

“하하하, 장난장난.”

“……피이.”


나는 팔짱을 끼고서 희세 특유의 깔보는 듯한 말투와 만물을 내려다보는 여왕님 같은 눈빛을 흉내 내며 새침하게 말했다. 뭐, 좀 과장 보태긴 했지만 실제로 이러니까. 하지만 희세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잔뜩 뾰로통해져서 입을 삐쭉인다. 오, 이건 이것대로 귀여운데. 괜히 사감 선생님이 나 놀려먹으며 희열을 느끼는 게 아니구나. 뭐, 나는 저렇게 대놓고 뾰로통해져서 삐쳐 있진 않지만.


“어, 여자친구는 한 번도 안 사귀어 봤어. 고백은 중학교 2학년 때 정도에 해 봤지만─ 차였지, 하하.”

“……그래? 어떤 년이 찼데. 재수없어.”

“우와, 편 들어주는 거? 아니, 그 땐 내가 오죽 찌질했어야지. 지금도…….”

“누, 누가 누구 편을 들어줘! 어, 엄청 재수 없게. 맘대로 판단하지 말아줄래? 기분 나쁘니까?”

“아유, 알았습니다요, 나으리.”

“나, 나으리는 뭐야?! 그 말투, 기분 나쁘니까 하지 마!”


희세는 내 말에 작게 대답했다. 의외의 편 들어주는 말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이내 희세는 잔뜩 짜증스런 표정으로 위엄 있게 말한다. 그래, 이래야 희세 답지. 내가 방금 전 흉내 냈던 희세의 모습 그대로 고압적이고 도도한 표정으로 잔뜩 깔보는 듯한 말투로 말한다. 이에 길을 행차하는 귀족을 배웅하는 중세 농노 같은 느낌으로 조롱하듯 대답하니 희세는 더욱 새침한 태도가 돼서 말한다. 그래, 좀 더 매도해줘! 하앍! 그리고 채찍이랑 저온 촛농이랑 로프도…… 음, 이건 좀 위험한 드립인데. 그래도 어울리잖아, 희세랑. 여왕님 희세. 가만 보면 난 참 상상력이 뛰어난 것 같다. 망상력인가.


“근데 여자친구는 왜?”

“그…… 그냥! 너, 너 같은 애랑도 사귀어주는 바보 멍청이 같은 년 있나 궁금해서!”

“에에, 심하네. 진짜 있었으면 어떡하려고. 그럼 또 미안하다고 했을 거 아냐.”

“미, 미안하긴 누가! 그 년이 병신인 거지.”


희세는 내 말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신경질을 낸다. 한 번 짜증을 내기 시작하니 방금 전의 착하고 예의바른 희세는 사라지고 다시금 짜증스런 희세로 돌아왔다. 이래야 희세답긴 하지. 이 쪽이 행동을 예측하기 편하긴 하다. 희세는 팔짱을 끼고 씩씩대며 몸을 돌린다. 나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희세를 쳐다봤다.


“……지, 지금은 사귄다거나, 하는 생각 없어?”

“응? 뭘.”

“뭐, 뭐라니. 여자친구 얘기하고 있었잖아.”

“아, 여자친구. 좋지, 있으면 아─.”


희세는 부끄러워하면서 몰아치듯 말한다. 그냥 평범하게 말하면 될 것을, 왜 저렇게 괜히 부끄러워하면서 성을 내며 말할까. 꼴에 나도 남자애라고 의식하는 것일까. 허허, 희세답지 않은 일인데. 하긴, 그래서 아까 말을 꺼낼 때 ‘너도 일단 남자애지’ 라고 말했구나. 정작 나는 그리 이성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는 편인데. 아, 물론 저 압도적인 볼륨감의 가슴 쪽이나 잘록하고 매끄러운 라인을 그리는 허리와 골반이라던가 보면 확실히 두근거리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육체’만 보는 거랄까. ……점점 쓰레기 같은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차는 것 같은 느낌인데 역시 기분 탓이겠지.


“……여, 역시 있으면 좋겠지, 여자친구?”

“그럼, 솔직히 여자친구 안 생겼으면 좋겠다는 남자애가 있을까? 다들 없어서 난리인데.”

“……응. 그렇지.”


희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무언가 결의를 다지는 듯한 그런 표정이다.


“여자친구는 왜 사귀고 싶은데?”

“음. 뭐, 당연한 거 아닐까? 한창 이성에 관심 많을 나이니까. 별건 없겠다. 같이 밥 먹고, 데이트 하고, 가벼운 스킨십 같은 것도 할 수 있을 테고. 걔네 집에 놀러간다거나 우리 집에 데리고 온다거나. 추억 만들 일 가득이잖아?”

“……응.”


내 말에 희세는 왜인지 다시 뚱한 표정이 돼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 불타는 청춘, 왜들 그렇게 여자친구 여자친구 안달이 나서 그런 걸까. 가만 생각해보면 같이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사랑? 그런 건 잘 모르겠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여자애 좋아하는데 별다른 이유가 있나. 좋아해서, 사귀다보면 어느 순간 사랑이란 걸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씨익 웃으며 약간 음흉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리고…… 포옹이라던가, 키스라던가, 여자친구가 허락해준다면 조금 야한 짓도 할 수 있을 거 아냐.”

“……이 변태새끼가! 그, 그딴 이유로 사귀고 싶다는 거야?!!”

“아하하. 사실 그 반응이 보고 싶어서 그런 건데. 일부러 그러겠어, 내가.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겠지.”

“……여, 역시 너한테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결국엔 그럴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잖아!!”

“아아, 네네. 한창 때잖아요. 봐 주세요.”


이제는 희세가 잔뜩 매도하고 부끄러워하는 걸 즐기는 경지까지 이르게 된 것 같다. 사실 막 화내고 욕하는 게 듣기 좋을 리가 없지만, 가만 보면 희세는 그런 게 ‘부끄러워서’ 그렇게나 화내고 욕하는 것이다. 자기가 부끄러워하는 걸 감추기 위해. 그런 느낌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렇게나 귀여울 수가 없잖아. 지금도 볼이 빨개져서 입을 꾹 다문다. 리유와는 다른 느낌으로 귀엽다.


“그럼 너는 어떤데?”

“……나, 나?”

“어. 애들이 자꾸 나한테만 물어보더라고. 어떤 여자애가 좋냐, 남자애들은 뭐 어떻게 해야 좋아하나. 넌 어떤데?”

“…….”


희세는 내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돼 대답이 없다. 얼굴은 빨개진 그대로, 아니꼬운 표정으로 말문이 막혀 나를 노려본다. 아하하. 정곡을 찔렀나. 사실 여자애들의 이런 질문이 싫지는 않다.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여자애든 남자애든, 사춘기에는 이성에게 관심 있는 게 당연한 거니까. 아니, 굳이 사춘기에 국한된 게 아니라, 평생 그렇지 않을까. 서로 다른 점이 많기에 서로에게 끌리는 것이 이상하고 부끄러워 해야할 게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니까.

여자애들도, 관심은 많이 있는데 여자 고등학교라는 특성상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경험 있는 몇몇 애들의 일부 말만 듣고 자기들끼리 환상을 키우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 와중에 ‘변태 씨’ 라고 불리고 실제로 변태 취급 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일반적인 남자애의 표본 정도 위치인 나는 적절한 먹잇감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희세 패거리 애들이나 성미 정도 되는 애들은 많이 물어본다. 굳이 이성친구 같은 측면이 아니라도, 남중의 생태계(?)라던가, 남자애들 평소에 무슨 개망나니짓 하고 노는가 같은 것. 그 때마다 깔깔대며 웃어줘서, 나도 즐겁게 얘기하는 편이지만.

하지만 희세가 그런 대화에 참여하는 건 본 적이 없다. 뭐랄까, ‘저런 천박한 대화에는 참여하지 않겠어.’ 하는 고귀한 아가씨 같은 느낌이랄까. 아니,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거지. 그래서 대놓고 직구로 물어봤다.


“너도 관심 있지 않아? 남자애.”

“……나, 나는! 벼, 별로.”

“에에, 거짓말 같은데. 내 눈을 바라봐. 넌 거짓말 못 하고.”

“……어, 없어! 어…… 그래, 있어! 관심 있어!!”

“아하하. 거짓말은 못 하네. 착해, 우리 희세.”

“……누, 누가 우리 희세야?! 어, 엄청 재수 없어, 취소해.”


희세는 의외로 이쪽 계통에 굉장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성격이다. 리유는 알면서 그러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성빈이는 약간은 부끄러워하지만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지만, 희세는 조금만 성적인 것이나 이성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누구보다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의외로 미래랑 친해진 것 같다. 미래는…… 어휴, 말할 것도 없지. 어떨 때 보면 나보다 당당하게 변태짓이나 섹드립을 치는 것 같다. 저번에는 얘기하다 갑자기 희세 가슴 만져버리는 것도 봤다니까. 희세가 정색하고 화내서 괜히 나만 쩔쩔 맸지만. 내가 만진 것도 아닌데!

어쨌든 단지 그 쪽으로 대화 주제를 바꾸기만 했을 뿐인데 희세는 굉장히 부끄러워하며 새침하게 말한다. 순식간에 짜증 게이지가 꽉 찬 느낌으로 말하지만 진실을 꿰뚫을 수 있는 통찰의 눈을 가진 난 그게 짜증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한 장치라는 걸 알아볼 수 있게 됐다. 후후, 귀여워. 거짓말은 못 하고 솔직하게 인정하니까 더 귀엽다. 더 부끄러워하는 걸 보고 싶은데. 변태라서 그런가.


“너는 남자친구 안 사귀어 봤어? 많이 사귀어 봤을 것 같은데.”

“……무, 무슨 의미야, 그게?”

“아아, 아니. 이상한 의미로 그런 게 아니라. 너 예쁘잖아. 몸매도 죽이고. 그러니까 분명 남자애들한테 인기 많았을 것 같은데. 그런 말이야.”

“…….”


희세는 내 첫 마디에 움찔 하며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많이 사귀어 봤다’ 는 말을 ‘헤프다’ 정도로 오해한 것이라 판단하고 얼른 풀어서 설명해줬다. ‘몸매도 죽이고’에선 조금 언짢은 표정을 짓지만 칭찬투성이의 말에 조금 우쭐한 표정이 되는 희세다. 우월한 게 사실이니까, 나라고 없는 말 지어내면서까지 칭찬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희세는 잠시 말이 없다.


“예전에 말 했잖아. 남자새끼들 다 변태 같아서 그런 건 신경도 안 썼다고. 돌대가리야, 그런 것도 까먹게?”

“아, 그랬지. 아깝네.”

“……뭐, 뭐가 아까워?! 무슨 말이야?!”

“아니, 그냥 그렇다고. 너나 나나.”

“…….”


희세는 내 말에 또 뚱한 표정이 돼서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얼굴 빨갛게 된 건 어느 정도 가라 앉아 평소의 희고 뽀얀 피부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약간 핑크빛으로 혈색이 도는 희세. 언짢은 표정인 걸 보니 기분이 안 좋나보다. ‘너나 나나’ 라는 말로 나랑 희세를 동일 선상에 놔서 기분이 안 좋아진 걸까. 하여튼, 자존심 하나는 강한 희세니까. 또 잔뜩 나를 낮추고 희세님을 높여주셔야 겠구만.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선 아까처럼 비꼬는 투로 말하면 정말 정색하고 화를 낼 분위기니까, 적당히 상황 봐서 해야겠지.


“……그, 그럼…… 사귄다거나…… 그, 그, 그런 생각은…….”

“응?”

“여, 여자친구 말야!”


희세는 다시 왈칵 부끄러움을 토해내며 외친다. 참, 얘도 소녀는 소녀구나. 남자애 앞이라고 그런 말 꺼내는 걸 저렇게나 부끄러워하다니. 그것도, 자기 남자친구 사귀고 싶다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남 일인 내 여자친구 얘기 하는데 저렇게나 얼굴이 빨개지다니. 아니면, 이런 주제로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걸지도? 미래라면 쌩쌩거리면서 거침없는 섹드립을 퍼부을 텐데.


“내 주제에 무슨 여자친구겠어─ 내 한 몸 건사 못하는데. 보면 알잖아, 맨날 변태 같은 생각만 하고, 변태 같은 눈초리로 여자애들 쳐다나 보고. 딱 봐도 싫어하는 짓만 골라서 하잖아? 네가 지적하듯이.”

“…….”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솔직한 내 생각이다. 아직 건전한 이성교재 경험이 한 번도 없다보니, 망상만 가득해져서 지금은 여자애들 보면 눈요깃거리(?)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까. 말하면서도 또 희세 가슴을 힐끔 보고 있는 나니까. 이젠 죄책감도 죄악감도 들지 않는다. ‘남자가 변태인 게 뭐가 그리 잘못인가!’ 하면서 애써 자위하고 있잖아. 희세에게서 정말 기분 나쁘다고, 하지 말라는 얘기까지 들었는데도. 아, 모르겠다. 눈이 가는 걸 어떡하라고.

내 대답에 희세는 굉장히 불만에 찬 표정이 됐다. 얼굴은 빨개져서, 무언가 말하려다 멈칫 한다. ‘응?’ 하며 쳐다보는데 여전히 아니꼬운 표정이다.


“……됐어, 이제. 필요 없어.”

“에에. 다 끝났어? 남자 취향 같은 거 안 물어 봤는데. 어떤 남자 좋아하는데?”

“필요 없다니까, 꺼져. ……재수 없어.”


희세는 의자를 뒤로 빼고 천천히 일어나며 말한다. 내 너스레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그대로 싸늘하게 말하고 뒤돌아 간다. 우와, 이러면 이건 어떻게 수습하기도 힘든데. 가끔 저렇게, 아무 위로도 드립도 통하지 않게 굉장한 저기압이 될 때가 있는데. 아무래도 지속적인 내 변태적 눈총이 거슬렸나보다. 기분 나빴겠지. 이 놈의 눈이 문제야, 눈이.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


“희세야!”

“……뭐!”

“넌 분명히 남자친구 생길 거야. 그만큼 예쁘고 귀여운데.”

“……됐어, 필요 없어!”

“에에. 부끄러워서 그런 거지? 야, 희세야?”

“아 쫌 가라고! 말 걸지 마!”

“에이, 왜 삐쳐서 그런데.”


희세는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아져서 조용히 자기 자리에 돌아가 책을 본다. 이번엔 역으로 내가 희세 앞으로 가서 작은 목소리로 희세에게 말했다. 희세는 여전히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도 살짝 볼이 붉어진 걸 보니 역시 부끄러운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저럴 땐 본인 부끄러운 게 식어야 하니까, 어느 정도 혼자 내버려 두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 나중에 미안하다고 해야겠다.


작가의말

희세 얘기만 나오면 가슴 얘기가 엄청 많이 나오는 건 웅도 잘못이 아닙니다. 희세 잘못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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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8

  • 작성자
    Lv.24 주문피아
    작성일
    14.02.21 17:19
    No. 1

    재밌다재밌어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1 17:22
    No. 2

    재미있게 봐 주신다면 감사합니다! 후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4 주문피아
    작성일
    14.02.21 17:21
    No. 3

    빨리 희세를 덮쳐요 현기증날것같단말이에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1 17:22
    No. 4

    어멋, 그러면 범죄입니다. 금지사항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2.21 17:35
    No. 5

    그만하고 눈치 까라, 망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1 17:38
    No. 6

    ...마치 저에게 하는 말처럼 보여 뜨끔하게 되네요. 기분 탓이겠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바람의향수
    작성일
    14.02.21 19:27
    No. 7

    개인적으로 사감선생님과 러브러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1 19:48
    No. 8

    사감 선생님은... 아무래도 그건 사도에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케이루스
    작성일
    14.02.21 21:23
    No. 9

    솔직히 리유는 연결된다면 철컹철컹일 것 같고... 나머지는 다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죠 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1 21:32
    No. 10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아뇨, 웅도 주제에 누굴 고를 처지가 되겠습니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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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0 dsafsdas..
    작성일
    14.02.22 00:48
    No. 11

    '본다'는 행위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본다는 것은 물체 표면에서 반사된 가시광선이 안구 시신경을 거쳐 뇌로 전달된 정보를 보는 사람의 뇌가 형상화한 이미지에 불과한 건데요. 보는 것은 빛이요 그걸 느끼는 것은 내 뇌니 누굴 탓해야합니까. 산이 거기있어서 오른다는 명언이면서 네 가슴이 거깄어서 본다는 변태가 되는 세상이죠 이는 공평하지 못한 처사입니다. 그러니까, 남주는 친구로서 좀 더 자세히 관찰할 권리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2 08:15
    No. 12

    우홋! 도시 반박할 수 없게 만드는 말이군요! 똑똑한 신사님은 당해낼 수 없습니다. 좋아, 그럼이 기세로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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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9 Yaksa
    작성일
    14.02.22 00:52
    No. 13

    통찰은 개뿔 지 좋아하는 것도 모르면서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2 08:15
    No. 14

    얼마나 얼마나 더 답답해야 할까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6 rosemary..
    작성일
    14.02.22 01:11
    No. 15

    오늘 학원 16시간채우고 문피아 들왓더니 N가 떡하니있네..... 음냐 행복하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2 08:15
    No. 16

    제 미천한 글에 행복을 느끼신다면야~ 저 역시 행복하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4 11:32
    No. 17

    아아....너는어때?
    희세 너같은 여자친구면 좋겠지만
    그럴린 없으니까 뭐 근데 남중 생태계 같은건 안 궁금해?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5 다주리
    작성일
    14.09.23 03:04
    No. 18

    희세...오늘은 가슴에 승부 뽕을 넣고 온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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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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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17화 - 2 +25 14.02.20 2,155 54 18쪽
67 17화. 여난. - 1 +23 14.02.20 2,352 44 18쪽
66 16화 - 4 +25 14.02.19 2,318 58 22쪽
65 16화 - 3 +23 14.02.19 3,071 56 19쪽
64 16화 - 2 +23 14.02.17 3,065 72 20쪽
63 16화. 놀러가요, 오빠! - 1 +21 14.02.16 2,874 63 19쪽
62 15화 - 4 +17 14.02.15 2,508 62 25쪽
61 15화 - 3 +24 14.02.14 2,311 53 24쪽
60 15화 - 2 +17 14.02.13 2,396 6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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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14화 - 2 +17 14.02.09 2,416 58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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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13화 - 4 +28 14.02.07 3,022 76 19쪽
53 13화 - 3 +21 14.02.06 2,450 56 22쪽
52 13화 - 2 +25 14.02.05 2,104 57 20쪽
51 13화. 전화위복 - 1 +21 14.02.04 2,699 53 17쪽
50 12화 - 4 +16 14.02.03 3,155 55 21쪽
49 12화 - 3 +24 14.02.02 2,586 73 22쪽
48 12화 - 2 +16 14.02.01 2,497 76 17쪽
47 12화. 데이트? 소풍? - 1 +23 14.02.01 3,041 65 18쪽
46 11화 - 4 +11 14.01.31 2,607 57 19쪽
45 11화 - 3 +21 14.01.31 2,712 69 17쪽
44 11화 - 2 +9 14.01.30 2,538 56 17쪽
43 11화. 시험 - 1 +7 14.01.30 3,004 106 19쪽
42 10화 - 4 +11 14.01.29 2,901 70 23쪽
41 10화 - 3 +11 14.01.29 2,760 56 22쪽
40 10화 - 2 +7 14.01.28 3,739 8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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