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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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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2.02 19:57
조회
2,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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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글자
22쪽

12화 - 3

DUMMY

“우와! 우와! 짱이야! 쩔어!”

“아하하.”


앉아서 무슨 돌고래 쇼 같은 걸 보고 있다. 허허, 재미있네. 돌고래가 번쩍번쩍 사육사 위로 지나가기도 하고 펄쩍펄쩍 물 위로 나와 뛰며 재롱을 부려 볼거리가 많다. 나는 주위의 애들을 보고 한숨 쉬듯 웃으며 말했다. 다 초등학생 이하인 애들뿐이다. 뭔가 한심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 한심한 건 아니지만 좀, 그렇잖아. 그래도 리유가 천진난만하게 좋아해서 그건 좋다. 귀여워서 볼을 꾸욱 누르자 ‘왜에?’ 하고 돌아본다. ‘그냥’ 하고 고개를 돌리니 피식 하고 웃으며 다시 돌고래를 쳐다보는데 여념이 없다.


“아앙.”

“음음.”


돌고래 쇼 보는 것도 끝나고, 이제 볼 것도 그다지 남지 않았다. 아쿠아리움 주위에 있는 동물원까지 가서 리유가 보고 싶어 하는 동물들 실컷 봤기에, 이젠 동물도 지겨울 정도다. 리유는 길가에서 솜사탕을 하나 사 달라고 징징대서 그걸 사 주니 좋다고 먹으며 걷고 있다. 단 걸 병적으로 좋아하는 리유니 솜사탕을 좋아할 만도 하다. 야금야금 떼 먹는 걸 보니 정말 어린 아이처럼 귀엽다. 지켜주고 싶은 본능이 생길 정도로. 손을 잡고 같이 걷고 있다.


“이제 뭐 할래?”

“응, 동물은 이제 지겨운데.”

“나도.”


리유는 내 질문에 동물들은 그리 살피지도 않고 솜사탕에만 신경이 빠져서 건성으로 대답한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솜사탕에 혀를 쭉 뻗어 녹이면서 장난 치는 리유. 흐뭇한 웃음을 띠고 말했다.


“그럼 일단 나가자. 더 뭘 하는 건 가면서 생각하고. 정 할 거 없으면 집에 가면 되지.”

“우웅! 집에 가는 건 아직 싫어! 해가 진 것도 아닌데!!”


리유는 내 말에 잔뜩 불평하는 얼굴로 말한다. 나도 지금 집에 갈 생각은 없다. 아직 오후 한창인걸. 모처럼만에 밖에 놀러 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는 건 그렇지.


하지만 나오면서 생각해봐도, 딱히 놀 만한 건 없는 것 같다. ‘같이’ 생각하자 했는데 리유는 솜사탕에 빠져 별다른 얘기도 안 하고, 내가 물어 보는 것도 잘 듣지 않는 것 같다. 애초에 별다른 계획 없이 그냥 ‘아쿠아리움에서 논다’ 정도만 생각하고 온 여정이기에 그렇다. 이렇게 잉여 시간이 남는 건 계획에 없는데.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그 곳」에 가는 수밖에…!”

“그 곳……?!”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이 돼서, 마치 로봇을 출격시키는 함장처럼 말했다. 리유는 내 표정에 마찬가지로 진지한 표정이 돼서 대답한다. 리유의 손을 잡고, 큰 길을 건너 목표한 곳으로 향했다.


“큰 결심하고 온 데가 여기야?”

“어어. 왜, 좋지 않아?”


리유는 눈을 반쯤 뜨고 흘겨보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리유 답지 않게 나를 놀리는 모습이지만, 그럴 만도 하지. 그냥 평범한 카페다. 뭔가 있는 것처럼 잔뜩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현실은 이 모양이니 리유의 반응이 저런 모양이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너랑 얘기하고 노는 게 제일 재미있어.”

“……헤헤, 그래? 나두나두!”


리유는 묘하게 수줍어하며 환히 웃으며 대답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가만히 있는다. 그래, 이럴 땐 도리어 당당하게 가는 게 나을 수 있지. 일단 커피를 시키자고 말하고 고른다. 리유는 당연히 달달하고 초콜릿이 들어가는 어떤 커피를 고른다. 나는 적당한 카페라떼를 골랐다.


“음. 나, 너에 대해 알고 싶어.”

“응? 뭐를?”


나는 갑자기 적극적인 태도가 돼서 말했다. 나도 모르게 돌직구를 날리는 게 내 버릇 중 하나지만 방금 이건 순간적인 우발성의 말이 아니라 내가 의도하고 말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리유에 대해 궁금하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같이 걸어다니며 생각해보니 사실 리유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은 게 아닌가. 리유에 대해 1000자 내외로 서술해보시오 라고 한다면, 아마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아는 리유라고 해봤자, 굉장히 귀엽고, 귀여움 받는 걸 좋아한다는 것 정도 뿐. 무슨 과거가 있었고, 어떤 이유로 귀여움 받기를 좋아하는지,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그런 건 하나도 모른다. 아니, 알려고도 안한 것 같다. 그래서 조금은 책임감을 느낀 나는 리유에 대해 알고 싶어 졌다.

……딱히 내가 느낀 설렘에 대한 것을, 리유에 대해 알게 되면 조금은 더 괜찮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는 건 아니다. 딱히 이러는 게 점점 연인 관계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 건 아니다.

잠깐만. 그럼 진짜 연인 같은데? 손잡고, 카페 와서 서로에 대해 알아 가는 얘기를 하고, 이윽고 밤이 돼 두 사람은 도심 속 일렁이는 불빛 사이로 사라진다…… 는 개뿔!! 무슨 뜻인데, 그거?!


“가족 구성은 어떻게 됩니까?”

“나, 엄마, 아빠, 남동생 한 명, 여동생 한 명.”

“집은 몇 평이죠?”

“음…… 잘 모르겠는데. 안방, 내방, 동생방, 여동생방, 거실, 화장실, 안방 화장실, 부엌 이렇게 있어.”

“부친의 수입은 얼마 정도 되는가요?”

“몰라, 회사 다니는 것만 알고 있는데.”

“모친께선 전업주부인가요, 아니면 맞벌이인가요?”

“엄마는 집에 있어. 근데 이런 건 왜 물어 보는거야?”


그러게나 말이다, 대체 왜 물어보는 건지!! 이런 걸 알아가려고 한 게 아니잖아! 무슨 회사 면접 보냐! 아니, 회사 면접에서도 이런 개인적인 건 안 물어보겠다!! 질문들이 하나같이 너무 직설적인데다 무례한 질문들이잖아!! 그나마 리유가 천진난만하게 대답해줘서 망정이지. 아니, 그걸 이상하게 느끼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대답하는 애도 문제가 있지만. 문제가 있다면 이상한 정신 상태의 나겠지. 처음 가족사항 물어보는 것까지는 장난이었는데. 일부러 면접 보는 면접관 같은 태도로 말하다보니 흥이 올라 나도 모르게 이렇게 돼 버렸다. ‘아아, 장난 장난.’ 하고 말하자 리유는 ‘장난인데 우리 집 재산을 왜 탐내?’ 하고 물어본다. 어이어이, 어떻게 해야 그런 방면으로 돌아가는 건데. 아버지 수입 물어 봐서? 나는 웃으며 계속 ‘장난이야, 장난. 미안해. 기분 나빴어?’ 하고 얼버무렸다.


“애들하곤 무슨 일 있어서 어색하게 된 거야? 궁금해.”

“응, 그건…….”


아킬레스건처럼, 뭔가 금기시 돼서 차마 리유에게 꺼내지 않았던 말. 말하면 리유가 슬픈 표정을 지을까봐 차마 말하지 않았던 질문. 과연 리유의 표정은 조금씩 식어간다. 마음속에서 약간 뜨끔 하는 기분이 들지만 나는 잠자코 리유를 쳐다봤다.


“나도 사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어… 내가 너무 어린아이 같이 굴어서, 그런 것 같아.”

“아니, 충분히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인데. 귀엽잖아.”

“에…헤헤헷. 근데 다른 애들은 그게 아닌가봐.”


리유는 무작정 내 ‘귀엽잖아’ 라는 말에 비실비실 웃는다. 정말, 보면 볼수록 귀엽다니까. 하지만 뒤이은 말을 할 때엔 조금 쓸쓸한 표정의 리유다. 정말, 알 수가 없네. 여자애들도 귀여운 거 좋아하지 않나? 리유, 인형처럼 귀엽고 예쁘니까 다른 여자애들도 충분히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질투할 정도로 귀여워서 그런가? 그치만, 여자애들은 예쁜 건 질투해도 귀여운 건 그냥 귀여운 대로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았는데. 내가 여자애가 아닌지라 모르겠다.


“남자애 아는 애는 나 말고 없어?”

“응, 남동생하고 아빠 말고는…… 초등학교 때엔 조금 얘기했던 것 같은데, 기억도 안 나.”

“흠…….”


그 말에 괜히 안도하는 마음이 드는 건 내 이기심일까. 따, 딱히 저 질문은! ‘경쟁자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이기적이고 나쁜 마음으로 물어본 게 아니야! 그냥, 여자애들한테도 잘 못 말하는 리유인데 나한테는 금방 말을 잘 했으니까! 그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였어! 안 그래도 지금 물어보려고 했다고.


“남자애들한테 말 잘 못 하지.”

“웅!”

“……근데 나한테는 어떻게 처음 말을 걸었데?”

“그, 그야~”


리유는 수줍음이 많다. 비교적 다른 여자애들에 비해 솔직한 편인 리유지만, 리유가 제대로 말을 못 한다면 그건 수줍음 때문이다. 당당히 말을 잘 하는 희세가 가끔 마음에 품은 말을 잘 못 하는 건 자존심 때문인 것과 비슷한 듯 다른 면일까. 지금이야,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떻게 친해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전부터 친했던 것 같지만, 분명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리유에게 한낱 낯선 남자애에 불과했을 텐데. 그것도, 여고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학교에 입학한, 180이 되지 못한 안타까운 키 178에 결코 덩치가 작지 않은 남자 고등학생.


“……그러게. 에헤헤. 기억 잘 안 나는데?”

“에휴, 뜸 들이길래 뭐 있는 줄 알았는데.

“헤헤헤헤. 기억력이 안 좋아서.”


리유는 멍한 표정으로 기억해보려 애쓰지만 곧 못 기억한다고 쿨하게 말한다. 별 기대는 안 하고 물어봤지만, 정말 아무 소득도 없으니 조금 허탈하다. 다른 질문을 하려 입을 열었다.


“나 변태라고 하는 건 신경 안 쓰여?”

“응? 변태? 웅이 너 변태였어? 스스로 인정?”

“아니, 아니! 그…… 여자애들은 다 그렇게 말하잖아, 나 변태라고.”


리유의 패턴에 휘말릴 뻔했다. 나는 애써 부정하며 이어 말했다. 말도 잘 못 거는 남자애인데다, 변태기까지 한 나인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나를 잘 따르고 친해졌냐, 그런 말이다. 사실 진짜 물어보고 싶은 건. 리유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한다.


“근데, 내가 볼 때 웅이 너는 변태가 아니야.”

“그치, 그치?! 당연한 거지, 이 나이 또래면!”

“웅웅.”

“그렇다니까! 여자애들이 너무 과민반응 하는 거야! 후훗.”


나는 리유의 맞장구에 더욱 승승장구하여 당당하게 말했다. 오래간만에 가슴을 펴고 내 주장을 말했다. 그래, 나는 평균인 것이다. 딱히 변태이거나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가만히 또 생각해보니, 리유의 그 대답에 신뢰성이 의심된다. 리유가 과연 제대로 된 ‘변태’의 기준을 아는 걸까. 순수한 리유의 눈에는, 내가 변태로 안 보일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리유의 말의 공신력은, 할머니들이 나보고 ‘아유, 훤칠하니 잘도 생겼네! 연예인이 따로 없어!’ 하고 말하거나, 여자 친구가 없다는 말에 친척 어르신들이 ‘세상에, 웅도 같은 애를 안 채가고 뭐한데! 요즘 여자애들은 다들 눈이 삐었구만, 삐었어! 하여튼, 드라마가 지지배들 다 망친다니까. 아 여보 뭐해 드라마 봐!’ 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좀 더 명확히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넌지시 리유에게 물었다.


“근데, ‘변태’ 는 어느 정도 기준으로 놓고 말하는 건데.”

“응? 음─ 지하철에서 엉덩이랑 가슴 몰래 만진다거나?”

“헙.”

“자기 꼬추 보여주면서 흐흐흐 거리거나.”

“야이…….”

“로프 같은 걸로 묶거나 묶이거나, 그러고선 채찍질을 한다거나, 촛농을 떨어 뜨린다거나?”

“잠깐만! 너무 심하잖아!! 어째서 그렇게 상세하게 아는 건데?!!”


리유의 첫 번째 말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런 쓰레기는 충분히 많이 있지. 심지어 여기가 수도권 학교였다면 실제로 경험을 해서 여린 여고생의 마음에 굉장히 상처가 된 사례도 분명 있을 거야. 다행이야, 그리 큰 도시가 아니라 지하철 따위가 없어서. 리유를 지킬 수 있게 됐어.

두 번째 말 역시 조금 놀랐다. 리유가 당당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꼬추’ 라는 말을 해서 살짝 부끄러워졌다. 어린아이 같은 리유다운 어휘 선택이지만, 남사스러운 건 남사스러운 거니까. 그렇다고 사전에 등재돼 있는 원본으로 말하면 더 이상하잖아!

마지막 말에선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소리치듯 말했다. 너무 정확하고 자세한 변태에 대한 정보잖아! 마치 직접 경험해보거나(!) 보기라도 한 것처럼! 일반적인 여고생이 알 만한 내용은 아니다. 내 경악에 리유는 히히히 하고 웃는다. 평소와 비슷한 웃음인데 어째 귀여운 느낌이 안 들고 무서운 느낌이 든다.


“동영상을 봐 버렸어.”

“……어, 그… 실수로?”

“응. 남동생 있다고 했잖아. 나보다 한 살 어려서, 한창 때거든.”

“아아…….”


동영상을 봐 버렸다는 리유의 대답에 순간 나는 인터넷의 위험함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저 순수하고 귀여운 착한 어린 아이가 그런 더러운 정보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다니! 이 더러운 인터넷! 모범적으로 국내 포털사이트처럼 철저하게 성인 컨텐츠를 막으라고! ……잠깐. 그건 싫은데. 아니,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나의 이 이중성은. 내가 야한 걸 못 보는 건 싫어. 그치만 리유가 보게 되는 건 싫어. 나의 리유는 그렇지 않아. 하지만 이어지는 리유의 말에 나는 급격히 납득하게 됐다.

남동생. 그 자식이 리유의 순결성을 더럽힌 주범이구나. 하지만 충분히, 그 녀석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한 살 어리다면 중 3, 충분히 불타오를 나이다. 애초에 나랑 한 살밖에 차이 안 나잖아, 그러면? 나는 야동을 중 1때부터 봤으니까, 중 3때라면─ 야, 그래도 중 3이 보기에는 너무 수위가 강한 거 아냐? 그런걸 봐, 중 3짜리 꼬마애가! 아, 물론 나도 고 1밖에 안 되긴 했지만! 난 적어도 야동은 순애물(?)로 본다고! 여자애들이 공포에 질려서 덜덜 떨며 우는 그런 기획물이 뭐가 좋다고! 애초에 그거 다 설정인데! 아니, 근데 지금 왜 야동 컨셉을 다 말하고 있는 건데!


“그거…… 남동생이 알아? 너한테 들킨 거?”

“으응, 몰라. 남동생이 창피해 할까봐 말 안했어.”

“잘했어, 정말 잘 했어. 부탁이니까 제발 남동생이 눈치 못 채게 해 줘. 같은 남자로써 부탁한다.”

“으, 응. 알아. 안 그래도 나도 말하기 부끄러워서.”


리유가 뭔가 해탈한 것 같은 잔잔한 눈빛이 돼서 말하자 나는 리유의 작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손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손을 잡고 싶어서 잡는 게 아니라, 간절하게 부탁하기 위해서이다. 그건 나의 과거의 엄청난 흑역사 때문─ 내가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그 수치심을 알기 때문이다. 난 그나마, 누나가 나랑 나이차이가 많이 나기에,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다.


─아하하하하!! 정웅도 니 새끼 그런 여자 좋아하냐!! 야메떼 야메떼!! 이꾸 이꾸!! 크하하하하!!

─아 쫌!! 어, 엌!! 왜 다 지웠어!! 아아아악!!!

─동생의 순수한 미래를 위해서 이 누나, 눈물을 머금고 지웠다! 꺄하하하, 그래도 여자들 이쁘긴 하드라. 남자들은 하나 같이 오타쿠처럼 생겨서 거지같긴 했는데.

─아아아악! 그걸 다 하나하나 감상하고도 지웠어! 이 악마가!!

─뭐. 엄마한테 말해줄까? 엄마~ 웅도가!

─아악, 안 돼, 제발!! 누님,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누나는 자기 개인 노트북이 있으면서도 간혹 집에 있는 PC를 쓰는 일이 있기에 그런 참사가 발생했다. 아마 리유네 집도 마찬가지로 집에 컴퓨터가 한 대밖에 없기에 그런 일이 발생했겠지. 아무리 잘 숨겨도, 결국에 용량 자체를 숨길 순 없기에 꼬리가 잡힐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컴퓨터 실력이라면. 리유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리유 손을 놓고 나는 다시금 자리에 털썩 앉았다.


“응. 근데 웅이 너는 변태가 아니야. 확실히.”

“……왜?”

“몰라. 그치만 변태 같은 분위기는 아니야. 눈이 변태 같지 않잖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데.”


눈이 변태 같지 않게 생겼다는 건 무슨 뜻일까. 변태는 하늘이 내리는 건가. 변태의 눈을 하고 태어나는 건가. 아니면, 내가 리유 몸을 스캔(?)할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기에, 그 스캔하는 눈총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그러는 걸까.


“가령 내가 이렇게 해도─”

“……!”


리유는 그렇게 말하며 내 쪽으로 바싹 얼굴을 들이민다. 거의 리유의 볼과 내 볼이 마주 닿을 정도로. 약할 정도지만 리유의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가깝다. 은은한 샴푸 냄새와 달달한 좋은 냄새가 순간 코끝을 찌른다. 쌔근쌔근 작은 리유의 숨소리까지 다 들린다. 왠지 모르겠지만 온 몸의 신경이 다 긴밀하게 리유의 모든 것을 느끼려 발악한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민감하게, 리유의 모든 게 그 짧은 순간에 느껴진다.


“아무렇지도 않잖아. 변태였으면 무슨 짓이든 했을 텐데. 에, 얼굴 빨개졌네? 아무랬어?”

“……아무랬어는 무슨 말인데! 그, 음… 솔직히 창피하긴 하잖아, 얼굴을 그렇게까지 가까이 들이미는데.”

“에에~~ 헤헤헤. 부끄럼쟁이네.”

“시끄러. 네가 이상한거야. 여자애가 그러면 안 되지.”

“흐흥. 희세 있었으면 뭐라 했을걸?”


한 2초 정도 있었으려나, 리유는 얼굴을 떼고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나는 화악 달아오른 얼굴 그대로 잔뜩 긴장한 체로 리유를 쳐다봤다. 리유는 내 얼굴을 보며 까르르 웃는다. 이, 이 요망한 꼬맹이가……! 갑자기 그런 짓을 하면, 난, 난… 심장 터지는 줄 알았잖아. 희세 가슴을 볼 때보다 도리어 더 심장이 떨린다. 이건 아예 무슨 키스 하는 것처럼 얼굴이 가까이 닿은 거잖아. 정작 리유 본인은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그런 게 없어 보인다. 어디까지 천연인 거야, 이 아가씨는……. 희세 있었으면 난리 났을걸. 리유는 까르르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아아. 창피하네.

가끔 보면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정말 아무 의도 없이 천진난만해서 하는 것인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어떨 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게 의도하고 하는 행동이라면 정말, 리유는 밀당의 귀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잖아. 저번에 뽀뽀해서 계속 오늘까지도 하루종일 신경 쓰게 만들고, 지금은 또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얼굴까지 밀착해버리고. 그러면서 또 저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 지어서 내 죄책감을 더욱 돋우고…… 아니, 아니겠지. 리유는 정말 순수해서 그런 걸 거야. 그렇게 믿어. 그랬으면 좋겠어. 믿음으로 다른 이를 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리유는 꼭 그랬으면 좋겠어. 제발. 이 더러운 세상 속에서, 너만은 나의 작고 귀여운 리유로 남아 줘…….

……이거 좀 무서운데. 스토커 같잖아. 말하는 것만 보면.


“지금 생각해보니까, 처음 봤을 때 나도 굉장히 당황했던 거 같아.”

“에. 네가?”


리유는 문득 방긋 웃으며 말한다. 그 질문은 아까 했던 것 같은데. 어쨌든 말하니까 나는 받아 친다. 리유는 회상에 잠긴 우수에 찬 표정으로 말한다.


“그 때에, 굉장히 당황스러워서 어떡해든 피하려고 했는데. 근데 네가 일일이 잘 대답해주고, 얘기해줘서 굉장히 기뻤어. 남자애랑 얘기하는 건 거의 처음이었으니까.”

“음. 그랬나?”


잘 기억이 안 난다. 내 기억엔─ 그래, 그건 확실하네. 뭔가 굉장히 기쁜 것 같은 표정으로 나한테서 도망치는 리유 모습. 그 때엔 ‘뭐 하는 미친년이야.’ 하는 격한 생각을 했는데. 그 때의 웃는 표정은, 기뻐서였구나. 내가 말 걸어 줘서?


“그 다음에 혼자 밥 먹으려고 하는데 네가 걸어 오길레 깜짝 놀랐어!”

“아아. 그건 좀 우연이긴 했지.”


아, 생각나네. 흑역사였던 정웅도의 찌질했던 학기 초. 아니, 그건 누구라도 있을 수 있는 방황이니까! 단순하게 적응을 잘 못 해서 그런 거잖아. 부끄럽고 자시고 할 게 아니야. 그치만 부끄러워.


“그 때에도 나한테 먼저 말 걸어줘서, 너무너무 기뻤어.”

“아아… 그랬나?”


마찬가지로 잘 기억은 안 난다. 나는 별 것 아닌 걸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리유는 아닌가보구나. 리유는 계속해서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약간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으면서도 감정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을 잇는다.


“그 때, 난 생각했어. 이건 운명이라고.”

“우, 운명이라니.”

“웅이 너는 착한 애라는 걸! 절대 변태 따위가 아니라는 걸!”

“……그거냐.”


리유에 말에 나는 움찔 당황했다. 무, 무슨 운명이라는 건가. 서, 설마 갑작스런 고백?!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나는 다시금 허탈함을 느꼈다. 어째 계속 리유의 말에 농락당하는 것 같은 기분인데. 사감 선생님의 농염한 농락과, 희세의 과격한 매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인 리유의 밀당이다. 뭐, 본인은 의도하고 하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래서 난 웅이 네가 너무너무 좋아!”

“……그러냐.”


여자애가 남자애한테 ‘좋아한다’는 말을 이렇게 쉽게 하다니. 뭐, 아이처럼 순수하게 말하는 리유의 말이니 그러려니 한다. 그래도 그걸 직접 리유 입에서 나오는 말로 들으니 공연히 볼이 달아오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지려는 걸 억지로 누르고 최대한 시큰둥한 반응으로 대답했다. 침착해, 정웅도. 저 좋아한다는 건 진짜 ‘좋아한다’ 는 의미가 아니야. 이건 그러니까 리유의 함정이야. 리유와는 그렇게 한동안 더 얘기를 이어 했다. 더는 리유에게 무언가 물어보면 더욱 부끄러워질 것 같아 어줍잖은 평소 잡담 같은 것이나 했다. 리유는 까르르 웃으며 내 말을 경청한다. 이게 좋아. 리유는. 내 말 잘 들어주는 거. 뭐만 말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곤 내 말을 들어준다. 리유와 얘기하는 게 즐거워 한동안은 그렇게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아르바이트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그렇다고 더 연재가 되냐구요? ...하루에 16000자씩 올렸는데, 더 올리면 죽어요;; 어쨌든 한층 홀가분해졌네요. 아, 물론 아예 그만둔 건 아니지만요. 주말알바지만.


어쨌든,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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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15화. 가까운 미래에, 당신은. - 1 +23 14.02.12 2,513 64 19쪽
58 14화 - 4 +21 14.02.11 2,261 59 19쪽
57 14화 - 3 +18 14.02.10 3,803 139 21쪽
56 14화 - 2 +17 14.02.09 2,415 58 24쪽
55 14화. 나는 변태가 아니야! - 1 +21 14.02.08 2,484 51 19쪽
54 13화 - 4 +28 14.02.07 3,021 76 19쪽
53 13화 - 3 +21 14.02.06 2,449 56 22쪽
52 13화 - 2 +25 14.02.05 2,103 57 20쪽
51 13화. 전화위복 - 1 +21 14.02.04 2,698 53 17쪽
50 12화 - 4 +16 14.02.03 3,155 55 21쪽
» 12화 - 3 +24 14.02.02 2,585 73 22쪽
48 12화 - 2 +16 14.02.01 2,496 76 17쪽
47 12화. 데이트? 소풍? - 1 +23 14.02.01 3,040 65 18쪽
46 11화 - 4 +11 14.01.31 2,606 57 19쪽
45 11화 - 3 +21 14.01.31 2,711 69 17쪽
44 11화 - 2 +9 14.01.30 2,538 56 17쪽
43 11화. 시험 - 1 +7 14.01.30 3,003 106 19쪽
42 10화 - 4 +11 14.01.29 2,900 70 23쪽
41 10화 - 3 +11 14.01.29 2,759 56 22쪽
40 10화 - 2 +7 14.01.28 3,738 8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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