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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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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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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2.0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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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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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글자
22쪽

13화 - 3

DUMMY

터벅터벅 계단을 오른다. 무언가 공허하다. 인생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린 것 같은, 붕 뜬 기분. 아니, 아니야. 그 정도 일 가지고 남자가 기가 죽어서 이렇게 있을 순 없지. 그 더러운 기분, 잊어버리고자 이렇게 씻으러 가는 게 아닌가. 그래, 씻자. 씻고서 모든 더러운 마음과 기분을 씻겨내려 버리자. 천천히 걸어 샤워장으로 향했다. 다행이 가는 길에 여자애들을 만나거나 하진 않았다. 아무리 선생님한테 허락 맡고 가는 거라 해도, 나 자신이 조금 압박감을 느끼긴 한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여자애들이 쓰는 샤워장이잖아?

문 앞에 도착한 나는 선생님이 주신 코팅된 종이를 문 앞에 잘 보이게 붙였다. 혹 떨어질지 모르니 입김을 불어가며 꼼꼼히 붙였다. 좋아, 이 정도면 훌륭한 진공이다. 당당하게 문을 박차고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문은 얼른 닫았다. 괜히 창피하잖아, 여자애들이 보면.


샤워장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선 신발장이 있다. 신발장을 거치면 그 옆으로 옷을 놓으라고 둔, 가구라고 해야 할까, 문은 없고 칸막이만 있는 책장 같기도 한 그런 게 있다. 적당한 중간 칸에 옷을 벗어 두었다. 혹시나 지나가는 여자애들이 볼까 두려워 문은 꼭 닫고 속옷도 안쪽에 넣고 앞을 유니폼 바지로 가렸다. 사람 일은 항상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옷 놓는 곳을 지나 작은 공간에는 꼭 목욕탕처럼 큰 거울이 있다. 그 앞에는 빗과 드라이기도 있다. 나는 슬쩍 거울에 내 몸을 비춰보며 씨익 웃었다. 요즘 운동을 안 했더니 슬슬 배 쪽에 살이 붙는 것 같다. 식스팩 까지는 아니어도, 잦은 축구와 아이들과의 깽판(?)으로 다져진 복근이 꽤나 있었는데, 지금 거울에 비치는 내 배는 평평하며 완만하다. 운동 좀 해야겠는데. 공연히 어색해져서 얼른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샤워장은 그리 크지는 않다. 샤워꼭지 12개 정도 있는, 적당한 크기. 애초에 3층에도 똑같은 시설이 있으니까, 실질적으로 쓰는 인원은 반으로 줄어들지. 가지런히 비누가 놓여 있고 핑크색 벽면에 달달한 좋은 향이 날 것 같은. 음, 여고는 샤워장도 좋구나─ 하기는 개뿔, 개판이다. 샤워기 옆 비누칸에는 검고 끈적해보이는 비누 때들이 끼어 있고, 비누가 제대로 놓여 있는 곳이 없다. 누런 벽면엔 검은 반점 같은 물곰팡이도 있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물이 빠지는 하수구 부근의 머리카락들. 여자애들 특유의 긴 머리카락들이 엉켜있듯 한 덩어리를 이루어 하수구를 막아버릴 듯 검게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저건 좀, 무섭다. 징그럽다고 해야 하나. 청소 좀 하지. 남자애든 여자애든 사는 데는 다 비슷비슷 한건가. 샤워 바구니를 내려놓고 물을 틀었다.


“읏, 차가워.”


지금은 봄이 완연한지라, 사실 찬물로 씻는다 해도 별달리 큰 애로사항은 없다. 그래도 갑자기 차가운 물을 쏟아 부으면 차갑다. 그리고 지금 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싶다. 뜨거운 물로, 녹아 버릴 것처럼 몸에 물을 끼얹으면 조금은 낫겠지. 그런 다음에 또 엄청 차가운 물로 파악 쏟으면 정신이 번쩍 들겠지. 그런 이상한 짓을 하면 몸도 마음도 깨끗해질 것 같다. 그래, 그렇게 하자. 샤워기의 방향을 뜨거운 물 쪽으로 틀었다. 다행이 보일러가 아직까지 작동하는 지 뜨거운 물이 잘 나온다.


“음, 음. 좋네.”


적당히 뜨거운 물의 온도를 조절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쏟아지는 물로 향했다. 전신으로 뜨거운 물이 줄줄 흐른다. 뜨겁다. 약간 화상을 입을 수도 있을만큼. 그리 추운 날씨가 아닌데도 샤워장에 뿌연 김이 생길 정도로, 물은 뜨겁다. 물이 닿는 가슴 쪽이 따끔따끔할 정도다. 하지만 나는 묵묵히 뜨거운 물을 받았다. 원래 가슴은 뜨거워야 하지 않은가.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허나 가슴이 너무 뜨거워 몸을 살짝 숙여 머리를 내밀었다. 으악, 머리 녹겠다! 머리에 화(火)의 기운이 많으면 대머리가 된다던데. 이러면 모발건강에 안 좋지 않을까? 아직 탈모를 걱정할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뜨거운 물은 차가운 물보다 적응이 빠르기에, 금세 나는 뜨거운물에 적응했다. 뭔가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몸이 나른해지며 얼굴이 빨갛게 됐다. 뜨거운 기운 덕분이겠지. 혼자 쓰기엔 꽤 넓은 샤워장인데, 나 하나가 뜨거운 물을 펑펑 트는 바람에 온통 김이 가득 찼다.


‘쿵.’

“?”


무언가 큰 물건 같은 게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울리듯이 소리가 나는 걸 보니 꽤 멀리서 그런 것 같은데. 뭐 떨어질 거라도 있나? 혹시 벽에 매달아 놓은 책장이 떨어졌다거나. 하지만 문을 열고 나가기엔 귀찮다. 물이 뚝뚝 떨어질 테고, 이렇게 젖은 상태로는 설령 책장이 넘어졌다고 해도 일으키기도 힘들고. 그거 고치는 중에 누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엄청 난감하잖아. 다 씻고, 제대로 옷을 갖춰 입고 나가는 게 현명할 것 같다. 무엇보다 지금 뜨거운 물 덕에 굉장히 나른하고 기분이 좋다. 그래, 다 씻고 나가는 게 현명하겠다. 절대 딱히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다.


‘드르륵.’

“???”


막 물을 끄고, 머리를 감으려 샴푸를 짜려고 샤워 바구니 쪽으로 몸을 숙이는 찰나,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라고? 문을 누가 여는데? 짧은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촉은, 제 6의 기관 촉이 알려주는 이 느낌은, 아까 선생님에게 들켰던 그것과 똑같은 느낌. 그래, 이 기숙사는 여고 기숙사.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나 외의 남자는 없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그렇다면, 문을 연 것은……!

항상 말하지만, 생각하는 것보다 몸이 느리다. 그래도 고개를 숙인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난 본능적으로 몸을 문 쪽으로 하지 않고, 적당히 엉거주춤하게 엉덩이를 빼고 몸을 구부려 주요 부위를 노출시키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 해도 알몸인 건 알몸이지만 그리고 숙였던 몸을 들어 문 쪽을 바라봤다.


“뭐야, 같이 씻자니까 왜 혼…….”

“…….”


문을 열고 밝은 기색으로 말하는 여자애. 높은 톤의 목소리가 틀림없이 여자애라는 것을 증명하고, 뿌연 김 사이로 보이는 검고 긴 머리칼이 두 번째로 여자애라는 것을 증명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운이라고 해야 할지. 뜨거운 물을 잔뜩 틀어재낀 덕에 샤워장은 온통 안개가 낀 듯 침침한 느낌이다. 하지만 어느 사이, 절묘하게 김이 사라지고 문 앞에 선 여자애가 또렷하게 보인다.


성빈이. 확실하게 성빈이다. 굳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나 역시 돌 같은 표정이 돼서 성빈이를 쳐다봤다. 성빈이는 속옷 차림. 정확하게,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고 있다. 개나리색 산뜻한 느낌의 속옷. 뭐랄까, 기하학적인 꽃 같은 무늬가 있는 엄마의 아주머니 같은 브라도, 성인 여성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누나의 브라와도 다르다. 그 나이 또래에 맞는, 귀여운 느낌이면서도 너무 어린 느낌이 나지도 않는, 정말 여고생다운 발랄한 속옷. 아버지는 잦은 출장으로 집에 안 계시고, 엄마와 누나와 같이 살던 나이기에 여자애 속옷이란 것 자체는 그리 충격이 되지 못한다. 충격인 것은, 그걸 내 또래 여자애가 입고 있는 것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라 그렇지.

잡티 하나 없이 매끈한 성빈이의 피부. 정말 매끈하다는 말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우윳빛깔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말일까. 스윽 쓰다듬으면 하얗게 녹아내릴 것 같이 매끈하고 희다. 거기에 문에 서 있어 뒤쪽에서 비치는 역광으로 인해 적나라하게 보이는 몸의 곡선은. 나도 모르게 시선을 그 쪽으로 고정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흣……!”

“아아……!”


성빈이와 나는 2초 정도 멍하니 서로를 쳐다봤다. 무슨 상황인지 서로 파악이 안 돼서 멍한 것이다. 그러다 성빈이는 부끄러움이 몰려오는지 작은 신음을 내뱉고 팔로 가슴 쪽을 가린다. 나 역시 멍하니 있다 마찬가지로 부끄러움이 몰려와 중요 부위를 가렸다. 생각해보니까 내 쪽이 더 적나라하잖아! 성빈이는 비록 여자애라 가릴 곳이 더 많다 해도 속옷을 입고 있으니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건 없지만, 난 문자 그대로 알몸이잖아! 게다가 아무리 변태 변태 해도 내가 또래 여자애에게 알몸을 보이는 걸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여기는 변태는 아니다. 안 그래도 아까 전에 선생님한테 들켜서 얼마나 창피했는데! 다시금 아까의 그 수치심이 재현되려 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쁜 내 본성은 성빈이의 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성빈이는 잔뜩 일그린 표정이 됐다.


“꺄아───!!!!”

“자, 잠깐만 성빈아! 이건 큰 오해가!”


성빈이는 여자애 특유의 아주 높은 톤의,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을 지른다. 나는 잔뜩 당황하게 됐다. 어째 여자애가 나를 보고 저런 반응을 보일 때면 나도 모르게 당황하게 된다. 아니, 상황이! 꼭 내가 일부러 노리고 있다가 성빈이의 알몸을 구경하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이잖아! 거기다 내 알몸을 노출하며 히죽 웃으며 좋아하는 건 덤이고! 완전 변태잖아, 이거! 이제 나비가 되는 건가! 난 불완전변태가 좋은데! 잠자리가 되고 싶었어!


‘미끌.’

“우아아악!”

“꺄아아아아!!!!”


성빈이는 그러나 입을 가리고 비명만 지를 뿐이고, 딱히 무엇인가 하지는 않는다. 희세였다면 엄청난 기세로 욕하며 나를 때리거나, 혹은 아예 도망가버리거나. 문을 쾅 닫아버리거나 할 텐데. 겁먹은 반응이라고 해야 할까, 대강 그런 반응이다. 나는 중요 부위를 가린체 설명하기 위해 성빈이 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성빈이는 더욱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친다. 아, 지금 이 상태에서 다가가는 건 큰 위협이겠구나. 지금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상태니까. 나는 놀란 성빈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몸을 뒤로 틀며 살짝 뒷걸음질 쳤다. 위협적인 상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면 성빈이도 겁먹지 않겠지. 아니 내가 뭘 했다고! 하지만 여자애들에겐 남자애의 존재 자체가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나는 차분하게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왜 꼭 그럴까. 나는 뒷걸음질 쳤다 무언가 매우 미끌거리는 것을 밟고 균형을 잃었다. 다리는 쭈욱 뒤쪽으로 밀렸고, 나는 어떻게든 균형을 잡고자 몸을 뒤쪽으로 뻗었다. 이에 다시금 무언가 밟은 쪽 다리는 앞쪽으로 쭈욱 나갔고, 마치 발차기를 하듯 허공에 쫘악 다리를 차 버렸다. 딛고 있던 다리를 중심으로, 그대로 뒤로 넘어지게 됐다. 넘어지면서 든 생각은, 아. 비누. 거기 비누 좀 주워주게. 비누 좀 주울걸. 들어올 때 속으로, ‘성한 비누가 없네’ 하고 생각했었잖아. 그 여기저기 부서져 있던 비누 조각들 중 하나였던거야. 지금 밟은 건. 생각은 거기까지 이어지고, 내 뒤통수에는 큰 충격이 이어졌다.


‘쾅!’

“꺄아아! 어, 어어! 어……!”


웅도는 뒷걸음질 치다 비누를 밟고 그대로 미끄러져 쓰러졌다. 중요 부위를 가리고 있었지만 균형을 잡기 위해 손을 파닥파닥 거리느라 그대로 중요부위가 드러났다. 거기에 다리를 쫙 벌리며 발차기를 하듯 다리를 허공에 뻗는 바람에 말할 것도 없이 적나라하게 중요 부위가 그대로 드러났다. 뿌연 김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건만 어째 그 부위만큼은 그대로 보였다. 순간 그 물건을 본 성빈이는 깜짝 놀라 얼른 눈을 가렸다. 하지만 이내 박이 터지듯 큰 소리가 나자 깜짝 놀라 다시금 눈을 떴다. 죽은 듯 바닥에 누워 있는 웅도. 성빈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난감해 하고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성빈이는 얼굴이 잔뜩 빨개졌다.




“씻자~”

“아, 귀찮아.”

“으응, 씻자니까!”

“아, 알았어. 먼저 가 있어.”

“응응! 빨리 와!”


성빈이는 절친인 성미와 함께 놀고 있었다. 딱히 통제가 없는 일요일이기에 느긋하게 휴대폰으로 TV를 보고 있던 성미였다. 약간 냉소적인 면이 있는 성미답게 아침나절부터 뉴스를 보고 있다. ‘여고생이 무슨 뉴스야~’ 하며 옆에서 생떼를 부리는 성빈이. 학교에서는 모두에게 천사 같은 모습이지만 정말 허물없이 친한 성미에겐 옆에서 이렇게 앙탈 아닌 앙탈을 부리기도 한다.

성미는 심각한 얼굴로 ‘이거 봐. 등교하던 여고생 강간 사건. 상상해봐, 끔찍하잖아. 정말, 세상이 흉흉하네. 성빈이 너도 조심해. 너는 나랑 다르게 예쁜데다 쌔끈하니까.’ 하고 말한다. 성빈이는 입을 삐죽이며 ‘쌔끈하긴 누가. 그리고 우린 등굣길도 없잖아. 학교에서 사는데.’ 하고 대답했다.

성빈이는 어린애가 보채듯 성미에게 같이 샤워를 하자고 조른다. 샤워는 하고 싶지만, 혼자 샤워하는 건 좀 그렇다. 집에서라면 얼마든지 하겠지만, 성빈이에게 기숙사 샤워장은 묘하게 조금 무서우니까. 아침이라도 그 으스스한 분위기는 어디 가지 않는다. 귀찮다고 고개를 젓던 성미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성빈이는 기뻐하며 자기 방으로 돌아가 샤워준비를 했다.


“응?”


샤워장으로 들어가려던 성빈이. 문 앞 바닥에 흰 종이가 떨어져있다. 뭔가 하고 주워볼 법도 하지만, 성빈이는 왠지 이걸 주우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평소의 착한 심성의 성빈이라면 종이를 주웠겠지만 묘한 기분에 살짝 발로 구석으로 종이를 밀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성빈이에게 샤워실은, 좀 무서운 공간이다. 특히 밤엔 더욱 무섭다. 불이 켜 있어도 무섭다. 창문 쪽은 어두컴컴하니까. 거기서 귀신이라도 보일 것 같고, 또 여자애들이 많이 쓰니까 하수구엔 머리카락도 많고 기본적으로 머리카락들이 많이 빠져 있다. 금방이라도 물귀신이 나올 것만 같고, 또 거울도 많기에 거울에 비친 자신들 중 꼭 한 명 즈음은 자기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다. 괜히 어젯밤에 공포특급 어쩌고 인터넷 글을 봤다고, 성빈이는 생각했다. 성미와 같이 샤워하기로 했지만 막상 혼자 오니 또 무섭다. 그치만 성미가 올 때까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에에, 무서워서 기다려쪄요? 우쭈쭈, 우리 성빈이~’ 하고 성미가 놀릴 것 같다. 놀림 받는 거야, 워낙 친한 성미니까 상관 없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좋진 않다. 그래, 나도 열 일곱 살이나 됐으니까! 하고 당당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목욕탕 쪽에 ‘쏴아─’ 하고 물소리가 들린다. 에?! 아무도 없는데?! 이 시간에 샤워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여고생들이라지만 다들 나태하게 늘어져 있다 오후나 저녁이 돼서야 어기적 샤워를 한다. 어디 놀러간다는 애들은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서 나가니까, 이런 애매한 시간엔 오히려 샤워실에 누가 있을 리가 없다. 아무도 없는 샤워실에 물이 틀어져 있다. 그건 역시, 귀신?!

하지만 성빈이는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옷장에 옷이 가지런히 정리돼 놓여 있다. 그건 성미가 입는 유니폼 바지와 똑같이 생겼다. 정희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남자애처럼 털털한 성격인 성미, 편하다는 이유로 자기 친오빠 유니폼 남는 것을 가지고 와 기숙사에서 입고 다닌다. 그 편리함은 성빈이도 성미가 가져온 걸 입어봐서 알고 있다. 성빈이는 미소 지으며 가지런히 옷을 벗었다. 뭐야, 그렇게 귀찮아하더니 먼저 와 있다니. 설마, 자기가 무서워하는 거 알고 먼저 와서 있어준 걸까? 남성적인 성격에 냉소적인 말을 잘하지만 의외로 친구를 잘 챙겨주는 성미의 성격상 그럴 수도 있다. 그런 생각에 성빈이는 기분이 흐뭇해져서 미소를 지었다. 옷을 벗어 성미의 옷이 놓여있는 칸에서 한 칸 옆의 칸에 정리해 놓았다. 아예 붙여 놓으면 좀 그러니까.

좀 이상한 건, 정리를 잘 안 하는 성미의 성격상 늘 대충대충 옷을 넣어놓는 걸 자주 봤는데 지금 이건 정갈하게 정리돼 있는 것이다. 뭐, 그건 변덕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성빈이는 속옷까지 벗으려고 브라 끈을 풀기 위해 등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다 잠시 멈칫 했다. 아무래도 성미 얼굴을 먼저 보고 싶다. 틀림없이 시큰둥한 얼굴로,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하고 반겨 주겠지. 멋대로 자기를 배려해준다고 생각한 것 같은 기분이지만, 그래도 괜히 기분이 좋은 성빈이이기에 얼른 문 앞으로 갔다.


“뭐야, 같이 씻자니까 왜 혼…….”

“…….”


문을 열었을 때, 기대하던 성미의 시큰둥한 얼굴은 없고 웬 시커먼 덩어리가 보인다. 울끈불끈, 역동적인 느낌의 근육. TV에서 본 보디빌더들처럼 번들거리는 느낌에 중량감이 느껴지는 그런 근육은 아니지만 확실히 굴곡이 있는 몸이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애는 바로 웅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거기 왜 있냐고 물어보고 싶은 건 성빈이 자신인데.

웅도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다. 거기에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고 있어 온 몸이 물에 젖어 있다. 그런 상태의 알몸을 직접 아무런 여과 없이 쳐다보니 성빈이는 순간적으로 왈칵 볼이 붉어졌다. 부끄럽다. 부끄럽다는 걸 인지한 순간 자기가 속옷 차림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부끄러움은 불난 집에 석유를 퍼부은 듯 더욱 커졌다.


“꺄아아아───!!!”


성빈이는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렀다. 웅도는 잔뜩 당황한 표정이 돼서 손을 내저으며 이 쪽으로 다가온다. 성빈이는 더욱 겁에 질렸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착하고 사람 좋은 웅도이건만, 지금은 어째 아까 성미가 보여준 강간범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어째서, 어째서 샤워장에 있는 거야?! 설마, 여자애 알몸을 보려고? 아니면, 더 엄한 짓 하려고?! 성미가 했던 ‘너는 예쁘고 쌔끈하니까, 특히.’ 하는 말이 귓전에 맴도는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웅도가 아니라 그저 강간범으로만 보인다.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하지만 섣불리 도망도 못 치고 얼어붙은 체 성빈이는 비명만 질렀다. 웅도는 웅도대로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뒷걸음질 치다 비누를 밟고 쭈욱 넘어진다. 성빈이가 그걸 보고 놀랄 겨를도 없이, 웅도는 그대로 쓰러져 바닥에 머리를 크게 부딪혔다.


“…….”

“……으읏!”


성빈이는 그런 상황 속에 덜덜 몸을 떨다 얼른 웅도에게 다가가려 했다. 저렇게나 세게 바닥에 부딪혔는데 아무 미동도 없다는 건 기절했다는 뜻이니까. 살펴보려다 문득 자기가 지금 속옷 차림이라는 게 눈에 띈다. 혹시 모르니까, 갑자기 팍 하고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성빈이는 얼른 옷을 차려 입었다. 다행이 주말이라 편하게 입는 짧은 면바지와 면티이기에 금방 입고 웅도에게 갔다.


“에, 에!!”

‘쏴아─’


웅도는 하늘을 보고 대자로 뻗어 누웠기에, 중요 부위가 그대로 당당하게 드러나 보였다. 성빈이는 잔뜩 부끄러워서 제대로 눈도 못 뜨고 그 쪽을 최대한 손으로 가리며 갔다. 괜히 얼굴이 화끈화끈한 기분이다. 하지만 이내, 그런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깜짝 놀라 경악에 가득 찬 표정이 됐다. 물은 틀어져 있는데 웅도는 죽은 듯 누워 있다. 바닥에 찧어 있는 머리에서 붉은 피가 실처럼 물과 섞여 실타래를 이루고 있다. 바닥 쪽이 온통 피투성이다. 성빈이는 겁이 났다. 지체하지 말고 얼른 쳐다볼걸. 괜히 멍하니 시간 보내다 웅도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한 마음으로 웅도를 쳐다본다. 차마 머리를 들어 상처를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이대로 지체하고 있을 순 없다. 머리가 돌기 시작하자 성빈이는 얼른 일어나 1층을 향해 달려갔다. 자기 혼자 여기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보다는 사감 선생님한테 빨리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으이구…….”


선생님은 쓰러진 웅도를 보고 얼굴을 찡그린다. 우선은 웅도의 수건을 중요 부위에 덮어 눈살을 찌푸리는 광경을 제거했다. 성빈이는 여전히 부끄럽지만 괜히 책임감을 느껴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선생님은 웅도의 머리를 들어 본다.


“뭐, 그리 심한 상처는 아닌 것 같다만은. 찢어진 것 같아. 병원 데려가야겠는데.”

“네, 병원이요?! 입원하는 거에요?”

“아니, 입원 씩이야. 가 봐야 알겠지만. 드는 것 좀 도와줄래?”

“네, 네.”


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신다. ‘가만히 샤워나 하지 허우대도 멀쩡한 놈이…… 어휴.’ 하고 한숨을 쉬신다. 짜증이 가득한 표정. 성빈이는 가만히 그런 선생님과 웅도를 쳐다본다.


“근데, 넌 어쩌다 발견했냐? 내가 샤워장 문 앞에 종이 붙여놓으라고 말 했는데. 안 붙였리는 없고. 은근히 부끄럼 많은 애니까.”

“네? 종이요?”


선생님과 성빈이는 낑낑 힘들게 웅도를 들었다. 키 크고 건장한 남자애인 웅도를 여자 두 명이서 들기란 참 힘든 일이다. 그것조차, 성빈이는 힘이 약해 별 도움이 안 되고 선생님이 대부분 들고 있다. 선생님의 말에 성빈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입구 쪽으로 와서야 진실이 밝혀졌다. ‘여기 있네. 떨어지기 쉬웠나, 다음부턴 제대로 만들어 줘야겠네.’ 하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성빈이는 얼굴이 화악 달아오른다. 아까 전에 굳이 줍지 않고 구석으로 가져다 놓은 흰 종이다. 평소처럼 그냥 주워서 봤다면 결코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 들어가지 않았다면 웅도가 넘어져서 이렇게 다치는 일도 없었을 텐데. 후회가 막심하지만 어쩔 도리는 없다. 선생님을 도와 열심히 웅도를 나를 뿐이다.


작가의말

따, 딱히 독자 분들이 예상하는 대로 뻔하게 스토리가 진행돼서 이상한 기분이 들진 않습니다. 기분 탓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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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15화 - 4 +17 14.02.15 2,507 62 25쪽
61 15화 - 3 +24 14.02.14 2,310 53 24쪽
60 15화 - 2 +17 14.02.13 2,396 60 20쪽
59 15화. 가까운 미래에, 당신은. - 1 +23 14.02.12 2,513 64 19쪽
58 14화 - 4 +21 14.02.11 2,261 59 19쪽
57 14화 - 3 +18 14.02.10 3,803 139 21쪽
56 14화 - 2 +17 14.02.09 2,415 58 24쪽
55 14화. 나는 변태가 아니야! - 1 +21 14.02.08 2,484 51 19쪽
54 13화 - 4 +28 14.02.07 3,022 76 19쪽
» 13화 - 3 +21 14.02.06 2,450 56 22쪽
52 13화 - 2 +25 14.02.05 2,104 57 20쪽
51 13화. 전화위복 - 1 +21 14.02.04 2,698 53 17쪽
50 12화 - 4 +16 14.02.03 3,155 55 21쪽
49 12화 - 3 +24 14.02.02 2,586 73 22쪽
48 12화 - 2 +16 14.02.01 2,496 76 17쪽
47 12화. 데이트? 소풍? - 1 +23 14.02.01 3,040 65 18쪽
46 11화 - 4 +11 14.01.31 2,606 57 19쪽
45 11화 - 3 +21 14.01.31 2,711 69 17쪽
44 11화 - 2 +9 14.01.30 2,538 56 17쪽
43 11화. 시험 - 1 +7 14.01.30 3,003 106 19쪽
42 10화 - 4 +11 14.01.29 2,901 70 23쪽
41 10화 - 3 +11 14.01.29 2,759 56 22쪽
40 10화 - 2 +7 14.01.28 3,739 8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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