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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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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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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1.31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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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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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글자
19쪽

11화 - 4

DUMMY

리유는 귓속말을 한다더니 내 팔을 살짝 잡아 당겨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그러더니 냅다, 내 볼에 뽀뽀를 하는 게 아닌가.


“으에에에에에엣~~~!!!”

“히이이익!!”


나는 순간 움찔 하며 볼에 닿는 리유의 작은 입술의 느낌을 느꼈다. 하지만 그걸 잘 인지하기도 전에, 귓전으로 찢어지는 듯한 희세의 비명이 들린다. 리유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얼른 나에게서 떨어진다. 아오, 귀청 떨어지겠네.


“뭐, 뭐, 뭐, 뭐 하는 거야?!!!”

“에, 에에… 나 뭐 잘못한 거야?!”

“아오, 귀 나가겠다야.”


희세는 굉장한 소리로 소리를 지른다. 리유는 울상이 돼서 나를 방패삼아 희세에게서 몸을 가린다. 힐끔 보니 희세는 물론이요, 성빈이까지 깜짝 놀라 멍한 표정이다.


“이, 이… 이 변태새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순진한 리유를!!”

“야, 누가 들으면 무슨 내가 리유 해꼬지 한 줄 알겠다!! 내가 뭐 어쨌다고!”

“윽…… 뭐!! 이 변태야!!”


희세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친다. 얼굴까지 살짝 붉어져 있다. 나는 억울한 마음에 잔뜩 따졌다. 난 진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억지 주장도 정도가 있지! 희세 역시 그게 억지라는 걸 알기에 일순 말을 못 잇지만 다시금 큰 소리로 날 매도한다. 대체 어째서, 왜!


“뽀, 뽀뽀 했잖아!”

“아아. 그렇지.”

“그렇지?! 이 파렴치한! 저질! 쓰레기!”

“아니 내가 왜 그런 어휘까지 들으며 지탄 받아야 하는데?!”


성빈이가 놀라서 입을 손으로 가리고 한 말에 나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 대답에 희세는 더욱 강력한 말로 나를 매도하며 욕을 한다.

아니아니, 나도 지금 그거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데, 현실을.


여자애가 내 볼에 뽀뽀를 했다고─!!!


리유의 부드러운 입술이 닿는 순간, 그런 느낌이었다. 흑백 만화였던 세상이 갑자기 리유의 입술과 내 볼을 기점으로 화악 동심원이 퍼지듯 컬러 만화로 바뀌는 듯한, 그런 느낌. 뺨이라도 맞은 것처럼 리유 입술이 닿은 볼이 얼얼하다. 괜히 화끈화끈 부끄럽기도 하다.

아니, 이건 별 게 아니야. 그래, 이런 때야 말로 내 장점인 궤변과 변명과 자의적 해석이 필요한 때지. 그러니까 이건! 간단한 애정표현 같은 거야! 아빠와 딸, 그래 그런 사이 있잖아! 서양 애들은 친구들이 만나면 뽀뽀로 인사한다잖아? 그런 거지! 리유가 무언가 의미를 담아서 뽀뽀를 한 건 아닐 거야! 수줍음 많이 타는 리유가 무슨 감정을 가진 뽀뽀를 이렇게 단숨에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라고 해도, 같은 또래의 여자애가 서슴없이 내 볼에 뽀뽀를 한 것에 동요하지 않을 남자애가 어디 있겠는가.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건 어쩔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내 옆의 두 여자애는 잔뜩 흥분한 상태로 나와 리유를 쳐다보고 있다. 특희, 희세가.


“리유 너!! 뭘 한 거야!!”

“응? 왜? 뽀뽀 한 건데.”

“아니, 그건 아는데!! 왜, 왜에!!”


희세는 나에게 뭐라고 해봤자 별 소득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리유에게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리유는 천연덕스럽게 답한다. 당황스러운 건 도리어 희세다.


“벼, 변태새끼는 남자애잖아!”

“응? 남자애던 여자애던 상관없다는 건 히이가 말하지 않았어?”

“으으…… 그거랑 이거랑은!!”


옳지, 잘 한다 리유!! 정확하게 희세의 논리로 오히려 희세를 당황하게 만들어 버렸어! 내가 한 것도 아닌데 괜히 기분이 좋다. 희세는 과연 당황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 더욱 큰 소리로 말한다. ‘그렇게 함부로 뽀뽀하면 안 돼! 여자애는!’ 하고 말한다. 리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희세를 쳐다보며 ‘왜 안 되는데? 웅이 좋아서 뽀뽀한 건데, 혼날만한 짓이야?’ 하고 물어본다. 크으… 저 극도의 천연… 진짜 단순히 내가 좋아서 뽀뽀한 거야!? 그런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감정을 난, 난 뭘로 해석하려 한 거지… 쓰레기가 되는 기분이다.


“뽀, 뽀뽀는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해야 하는 거야, 리유야.”

“응! 웅이 좋아하는데.”

“에엑!”

“에에엣!”

“……!”


뭐, 뭐냐 이 전개는. 이 갑작스런 고백은 대체 뭐란 말이냐. 성빈이가 아이 타이르듯 말하자 리유는 아무렇지도 않게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이에 성빈이와 희세 두 여자애는 더욱 놀라 소리쳤다. 나는 움찔 하며 온 신경이 그 쪽으로 쏠렸지만 최대한 들리지 않은 척 무심하게 걷기만 했다.


“그, 그게 무슨 의미인 줄 알고… 말하는 거야, 리유 너!”

“에에,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나, 웅이 좋아하면 안 돼?”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희세의 말에 리유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말한다. 갈수록 큰 수렁으로 빠지는 기분인데, 이거. 여자애한테 고백을 받다니, 그런 건 정말 상상도 못 해봤는데. 사나이 정웅도, 이제야말로 봄날이 찾아오는 것인가!


“비니도 히이도 다 웅이 좋아하지 않아?”

“……!”

“……!”


리유의 말에 여자애 둘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나는 슬쩍 눈치를 보게 됐다. 힐끔 희세를 쳐다보는 성빈이. 마찬가지로 성빈이를 쳐다보는 희세.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저딴 변태새끼를 누가!! 불쾌해, 불결해! 짜증나!!”

“리, 리유야, 그 좋아한다는 의미가…”


희세는 잔뜩 짜증만 내고, 성빈이른 리유에게 자세한 사항을 물어본다. 젠장, 잔뜩 기대했는데. 역시, 그럴 리가 없나. 성빈이와 희세의 반응을 보니 조금은 이성이 돌아오는 게, 리유가 말하는 ‘좋아한다’ 라는 말은 이성적인 의미가 아닌 것 같다.


“응? 친구로? 남자로? 남자로 좋아하는 건 뭔데?”

“으응, 그러니까…… ……사귀는 거 있잖아.”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그냥 좋은 게 좋아하는 거 아니야??”

“…….”


보라구. 저런 반응이잖아. 내가 이래 뵈도 추리력은 좀 되잖아. 두 가지 사건이나 주동자를 맞춘 나야. 이 정도 결말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어. 근데 왜… 슬프지. 성빈이와 희세도 조금 벙찐 표정으로 리유를 쳐다본다. 슬슬 얘네도 리유가 한 말의 의미를 알게 되겠지.


“그, 그러니까! 저 변태자식이랑 데이트 하고 싶다던가, 손을 잡는다던가! 호, 혹은 키, 키, 키스… 라던가! 저, 저 변태새끼가 하면 당연히 성추행이지만!”

“어이어이. 난 그럴 자유도 없는 겁니까.”

“시끄러!! 저리 꺼져, 가까이 오지 마! 쳐다보지도 마!”

“쳐다보지도 말라는 건 좀 심하지 않수!”


희세는 굉장히 부끄러워하며 겨우 리유에게 말한다. 옆에서 내가 한 마디 하자 마치 내가 성희롱이라도 한 것처럼 질색을 하며 말한다. 너무하잖아, 그건! 옆에서 한 마디 거든 것밖에 없는데!


“손은 지금도 잡을 수 있는데! 봐. 뽀뽀는 방금 했고.”

“…….”

“…….”


리유는 여전히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얼굴에 띠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내 옆으로 쪼르르 붙어 손을 잡는다. 아이처럼 작고 부드러운 손. 꼬옥 내 손을 잡기에 나는 좀 애매하지만 마찬가지로 꼭 리유의 손을 잡았다. 희세는 더 이상반박할 대답을 찾지 못하고, 성빈이 역시 얼이 빠진 표정이다. 이 여편네(?)들아, 얘 그냥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으로 ‘좋아한다’ 라고 말하는 거라니까.

하여간, 여자애들은 왜 그렇게 이성 간에 좋아하는 걸로 저렇게나 호들갑인지. 상상은 안 되지만, 실제로 리유가 나 좋아한다고 자기들하곤 상관없는 남 일인데 왜 저렇게 호들갑들인지 영 모르겠다. 아마 리유가 여동생처럼 귀여우니까 그런 거겠지?

하긴, 나도 리유가 귀여운 사촌 여동생, 좀 더 가면 귀여운 딸(?) 같은 느낌인지라, 딸바보 아버지의 마음을 한 톨 만큼은 이해하기에 리유에게 버러지 같은 남자가 붙어서 사귄다면 당장이라도 패주고 싶은 마음이다. 뭐,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나도 떨어져 나가야겠지만.


“그러니까, 「친구」로서 좋아한다는 거지?”

“응! 웅이 좋아하는 것만큼 너희도 정~말 정말 좋아해!”

“……그치! 그런 거지! 에에, 뭐야. 나도 리유 많~이 좋아해!”

“우헤헤헤, 웅!!”


성빈이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리유는 한껏 웃으며 대답한다. 손을 하늘로 뻗어 이만~큼 원을 그리며 말하는 건 보너스다. 귀엽네. 그 대답에, 뚱한 표정으로 리유를 쳐다보던 희세는 대뜸 환한 표정이 돼서 말한다. 밝게 미소 지으며 리유를 꽈악 껴안는다. 희세 쪽에서 먼저 들이대는 경우는 좀처럼 없기에, 리유는 입을 함지박만큼 벌리고 좋아서 한껏 웃는다. 나참, 애정결핍도 아니고, 자기 좋아한다는 걸 저렇게나 좋아하다니. 나도 많이 좋아해줘야겠다. 힐끗 옆을 보니 성빈이도 방긋 웃는 표정이다. 아마 나처럼 리유가 잔뜩 좋아하는 모습이 흐뭇해서 그런 거겠지.

뭐 어쨌든 그런 식으로 어물적 넘어가고 밥이나 먹으러 갔다. 봄날이 찾아왔나 했는데 역시나 간단한 착각이었고. 공언한 대로 7800원짜리 치즈왕돈가스도 시켜먹었고. 그 뒤로는 간단하게, 오후 내 공부한 뒤로 해산. 뭐 별 게 있겠는가.






‘툭’

“70점 이하로 받은 건 리유 혼자뿐이에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

“에에… 죄송합니다…”


담임선생님은 종이를 돌돌 만 것을 가지고 리유 머리를 통 하고 친다. 담임선생님 전용 지시봉. 물론 하나도 안 아프다. 리유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단 말만 한다. 아아.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다.



시험이 끝났다. 시험 기간에도, 희세가 리유를 붙들고 열심히 공부를 시킨 건 말할 것도 없다. 그 덕에, 성적은 꽤나 올랐다. 아니, 그렇게 괄목할만한 성장은 아닌데. 200등에서 140등으로. 그래도, 꼴찌 가까운 성적에서 나름 중간까지 올라간 걸 보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다 희세의 노력 덕분이지. 특히 수학과 영어에서 눈에 띌 만큼의 성적 향상이 있었다. 거진 예전에 비해 20점 이상 씩은 올랐으니까. 문제는 국어.

아─ 그 전에 리유는 국어는 나름대로 성적이 나와서, 리유가 딱히 건드리질 않았다. 하지만 그게 구멍이 될 줄이야. 전교에서 유일하게 국어를 70점 아래로 받아 국어만큼은 당당한 전교 꼴찌가 된 리유다. 여고인지라 기본 국어가 성적이 높은 편인 것 같다. 나도 85점인데, 이 정도면 남고에선 수준급인 점수일텐데 지금은 중하위권 점수다. 하긴, 평균이 70점을 넘기니. 담임 선생님이 국어 선생님인지라 더욱 리유에게 뭐라고 하고 계신다.

희세와 성빈이의 성적은 뭐, 예상한 대로 나왔지만 두고 봐도 참 화려하다.

희세는 당연한 것처럼 전교 1등. 그것도, 평균 98점이 빛나는. ……평균이 98점이라고. 나는 100점 맞은 게 하나 없고 제일 높은 게 91점 맞은 건데. 평균이 98점이면 틀린 거 세는 게 점수 세는 데 더 빠르겠다. 새삼 희세의 엄청난 능력에 감탄하게 됐다. 정작 그러면서도 본인은 ‘이번에 문제 쉬워서 다 맞을 수 있었는데…’ 하면서 억울해한다. 그것조차 얄밉지는 않다. 자존심이 세고 승부욕이 강한 희세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법 하지, 그런 생각만 들 뿐이다.

성빈이는 성적이 많이 올랐다. 전교 8등. 배치고사 때 15등정도 했었는데, 팍 뛰었다. 어떻게 그렇게 올랐어 하고 물어도, ‘그냥 시험기간에 반짝 열심히 한 건데… 문제가 쉬웠어.’ 하고 대답할 뿐이다. 나참, 너만 쉬운 게 아니라 다 같이 쉬웠을 거 아니야. 희세가 너무 괴물이라 그렇지, 성빈이도 한 성적 하는 여자애다. 성실하니까.

나는… 조금 떨어졌다. 저번엔 중상위였는데. 지금은 중간 정도. 110등이다. 너무 놀았나. 좀 후회되는 마음이 없잖아 있네. 희세가 리유 공부시킬 때 같이 조금이라도 할 걸 그랬나.


“나머지 공부에요! 선생님이 준 숙제, 선생님이 퇴근하기 전까지 다 해 와욧!”

“네…”

“그렇게 풀죽은 목소리는 내지 말고. 해올 수 있죠?”

“네.”


담임선생님은 어째 애들하고 친해지셨음에도 학생들에게 계속 존댓말을 쓰신다. 게다가 맞춤형 교육인지, 어린애 같은 리유에겐 어린애 대하듯 잘도 하신다. 다른 애들한테는 가끔 막말도 하시는데. 리유는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아하. 나머지 공부 같은 건가.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인데. 다른 애들은 시험이 끝나 모두 기쁜 표정이지만 리유만은 울상이다.


“망했어.”

“아니야, 잘 했어. 나머지는 다 성적 많이 올랐잖아?”

“으응, 그래두!! 히이 네가 알려준 만큼 안 오른 것 같아!”

“에이, 아니야. 공부는 그렇게 단기간에 오르는 게 아니니까. 기말고사 때 잘 보면 되지.”

“에에! 그럼 기말고사 때도 똑같이 하는 거야!”


리유는 희세의 말에 벌써부터 기말고사 때 걱정을 하며 애처롭게 말한다. 희세는 리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기말고사는 빡세게 안 할게’ 하고 안정시킨다.


시험이 끝난 주라, 학교에서 관대하게도 이번 주는 오후 보충도 야자도 모두 빼준다. 그래봤자 시험 날 3일 빼고 목요일, 금요일 이틀 뿐이지만. 해서 고등학생임에도 오후 5시에 정직하게 학교가 끝나는 진풍경을 보게 됐다. 우와아─ 혁명인가, 이건! 공무원이야 우리가?! 5시에 정시 퇴근이라니! 아, 하긴. 시험기간엔 12시에 끝나지. 그치만 시험기간엔, 다음날 과목 공부하느라 마음이 편치가 않잖아. 지금은 정말 아무 거리낄 게 없다. 남고에 진학했다면 아이들과 미친 듯이 목 놓아 소리 지르며 PC방에 가던, 축구를 하던 하며 오늘을 즐기겠지만, 여기선… 할 게 없다.


“뭐 축하 기념 파티라도 할까?”

“리유는 어떡하고.”

“아. 그렇네.”


할 게 없는 내가 한 마디 하자 희세는 아니꼬운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며 말한다. 힐끗 리유를 보니 리유는 우울한 눈으로 초롱초롱하게 나를 쳐다본다. 그렇네, 리유는 어디 못 놀러 가고 나머지 공부 해야겠구나. 과연 리유의 품에는 선생님이 뽑아 준 유인물이 한 가득 들려 있다. 뭘 저렇게나 많이 주셨대. 리유는 정말 울 것 같은 모양새이다. 울고 싶겠지, 다른 애들은 다 집에 가고 교실은 텅텅 비었는데 자기 혼자만 시험 끝났음에도 공부를 해야 하니.


“그럼… 뭐 어떡하지. 할 게 없는데.”

“난 집에 갈래. 드라마나 볼래.”

“아, 그래.”


희세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한다. 성적이 엉망인 리유와는 대조되는, 승자의 여유있는 웃음. 뭐, 본인은 올백을 맞지 못한 걸 아쉬워하는 입장이라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성빈이를 봤다.


“성빈이 넌?”

“난 오래간만에 성미랑 지선이랑 노래방 가려고.”

“아아, 그래. 재미있겠네.”

“응. 같이 갈래?”

“아아, 아니야.”


오, 그 이름 되게 오래간만에 들어보네. 하긴, 꼭 나랑 희세랑 리유랑만 놀으라는 법은 없지. 같이 노는 패밀리가 무슨 구속력을 지닌 건 아니니까. 그건 그렇고, 다들 리유 때문인지 따로 노는 걸로 계획을 잡았구나. 아닐 수도 있겠지만. 리유는 울상이 돼서 희세와 성빈이를 쳐다본다. ‘나만 빼놓구!!’ 하고 억울한 듯 말한다.

나는, 솔직히 할 게 없다. 친구라곤 여기 있는 여자애 세 명이 전부인데, 세 명 다 각자의 사정대로 따로 움직인다는데. 나 혼자서 놀 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기껏 가지고 있는 건 품에 있는 휴대폰. 데이터 다 써서 인터넷도 안 되는 휴대폰. 아아, 어쩔 수 없나.


“같이 있어 줄까?”

“에에, 정말!”


리유는 금세 우울한 표정에서 환히 웃는 표정이 됐다. 희세는 순간 얼굴이 흙빛이 됐다 ‘맘대로 하셔, 난 집에 가니까.’ 하고 말하고 쌩 가버린다. 성빈이 역시 ‘리유랑 같이 노는 거네. 그럼 난 갈게.’ 하고 가방을 싸들고 간다. 교실엔 나랑 리유 둘만 남았다.


“이거 언제 다 하냐.”

“으응, 그러니까. 조금만… 헤헷, 도와주면 안 될까?”

“안 돼. 네가 다 해.”

“우우웅! 너무해!”


나는 하는 것도 없으면서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었다. 애초에 리유 공부 시키려고 하는 나머지공부인데, 그걸 내가 도와주면 쓰나. 난 그냥 말동무일 뿐이지. 리유는 불평하면서도 묵묵히 유인물을 푼다.


“저번에 주말에 공부했던 때, 재미있지 않았어?”

“어, 어─ 뭐, 그렇지.”


어이어이, 그 때 울먹이면서 뛰쳐나가서 펑펑 운 게 누군데. 문제 일으킨 게 누군데 재미있었다 어떻다 얘기를 꺼내는 거야. 뭐, 화해하고 오후부턴 다시 평화롭고 즐거이 공부하긴 했지만.

……괜히 그 때 리유가 볼에 뽀뽀한 게 떠올라서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아니, 왜 그런 걸 의식해?! 그냥, 사촌 여동생이 뽀뽀한 거라고 생각하면 돼. ……보통 사촌 여동생이 사촌 오빠한테 볼에 뽀뽀를 하나? 아니아니, 정정. 아빠한테 딸이 뽀뽀한 거라고 생각하면 돼.


“리유야.”

“웅?”

“넌 내가 좋아?”

“응응! 왜?”

“……아니다.”

“에에! 뭔데! 왜에~??”


나는 쓸데없는 걸 물어보곤 공연히 얼굴을 붉혔다. 아니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리유가 나를 좋아할 리가… ‘이성적으로’ 말이다. 애초에 아직은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개념이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좋긴 할 것 같다, 리유가 날 좋아한다면.

중학교 때, 여자애들한테 인기 많은 녀석에게 한 말이 있다. ‘나도 너처럼 누군가 어떤 여자애가 날 좋아해주기만이라도 하면 참 좋겠다.’ 라고. 녀석의 대답은 걸작이었는데, ‘너는 진짜 씹못생긴 돼지년이 너 좋아한다고 해봐. 어떡할려, 사귈겨?’ 하고 말했다. 나는 5초 간 깊은 고민을 한 뒤, ‘가슴 크면’ 하고 대답했다. 이 쓸데 없는 걸 지금 왜 말하냐면, 리유가 좋아해준다면 굉장히 기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방금 했거든.

일단 귀엽잖아. 게다가 귀여워 해주는 거 좋아하고. 좀 서툴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고, 예쁘고. 그냥 뭐든 챙겨주고 싶고. 아─ 모르겠다. 괜히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 같다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리유는 생떼 부리듯 나에게 계속 물어보지만 난 대답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주신 유인물을 다 풀고, 퇴근하기 직전의 선생님에게 제출하는 것까지 같이 지켜봤다. 그리곤 이번엔 내가 밥을 사주겠다며 리유 밥까지 먹이고 헤어졌다. 음. 나름 재미있었네. 시험기간 치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설들 다 잘 지내셨나요. 혹은 정체되고 있는 고속도로 차 안 한 켠일수도 있겠군요. 그 안에서라도 잠시나마 제 글이 시간 떼우기가 된다면 참 감사합니다.

...데이터가 없잖아! 빌어먹을 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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