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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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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4.02.1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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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글자
19쪽

16화. 놀러가요, 오빠! - 1

DUMMY

“커흠, 흠…….”


어색한 차림새, 어색한 포지션. 나는 굉장히 어색해하고 있다. 이번에 처음 산 봄 옷인데, 잘 어울리려나. 스키니진 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찰싹 달라 붙는 면바지에, 원색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표출하는 셔츠, 교복 마이 같기도 한 검은 외투. 얼마 전에 잘 다듬은 머리는 왁스로 적당하게 볼륨있게 띄웠다. 한껏 멋을 부린 모양새. 괜히 이러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연신 세워진 자동차 창문에 내 모습을 비춰보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좋아, 이상하지 않겠지.

정웅도, 넌 젊고 잘 생겼어. 훈남이 따로 없구만. 키도 180은 안 되지만 그 근처 정도는 되니까. 조금 까만 피부가 흠이지만 비비크림을 발랐으니까 두 톤 정도는 피부색이 올랐을 거야. 자신감을 가져. 이 정도면 매력있는 남자야!


“오빠♡”

“어, 어! 깜짝이야.”


스스로도 엄청 기대하고 있어서 괜히 속으로 ‘이런 속물 새끼’ 하면서 자책하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청아하고 달콤한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뒤돌아보니 아리따운 여자애 한 명이 서 있다.

예쁘다기보다는 상큼하게 귀여운 느낌이다. 분홍색, 노란색 같은 전체적으로 밝은 계통의 옷에, 꽤나 짧은 치마 밑으로 드러난 다리도 예쁘다. 교복 위로 드러났을 때엔 잘 몰랐는데 이렇게 사복으로 보니 몸매도 꽤나 괜찮은 것 같다. 고개를 까딱하며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눈 앞이 다 아찔한 것 같다. 뭔가 달달한 향기마저 풍겨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아, 이것은 청춘─ 그래, 그런 것이겠지. 결코 연관성은 없어보이지만 이 여자애, 미래다. 환골탈태라면 이런 때에 쓰는 말이지 않을까.


“많이 기다렸어요?”

“아니, 가자.”

“네. 오늘 잘 부탁드려요? 히힛.”

“……부탁은 무슨.”


미래는 그런 상큼한 복장에 상큼한 분위기로 상큼하게 웃으며 상큼하게 말한다. 아아, 정말 어지러워서 현기증이 날 것 같다. 단지 미래의 옆에 서 있었을 뿐인데 미래의 상큼함에 온 몸이 지배당하는 것 같다. 애써 태연한 척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걷는다. 미래는 방긋방긋 웃는 표정이다.

어째 굉장히 연인 같은데. 아니, 기분 탓이겠지. 내 착각일 뿐이야. ……그렇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렇잖아? 데이트 같아 보일 거 아냐? 잘 차려 입은 남녀 두 명이 같이 길을 걷고 있는데. 거기다, 미래는 나한테 꼬박꼬박 ‘오빠’ 하면서 말하고. 누가 봐도 연인으로 볼 거야, 아마. 이렇게 된 데에는──





“웅도 님! 웅도 님!”

“……왜. 웅도 ‘님’은 또 뭐고.”


평화로운 교실. 쉬는 시간. 나는 마찬가지로 평화롭게 휴대폰을 살피고 있다. 딱히 재미있거나 하진 않지만 별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휴대폰 인터넷. 인터넷 뉴스를 보며 반일감정을 고취한다거나, 뭣도 모르는 정치 뉴스 들어가서 드립이 난무하는 댓글란을 보는 건 나의 큰 즐거움이다. 성빈이는 성미와 지선이와 함께 매점을 갔고, 리유는 평상시의 모습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듯이 엎드려 자고 있다. 나 참, 저렇게 자면 집에서 잠이 올까. 희세 역시 마찬가지로 고고하고 우아하게 책을 읽고 있다. 애들의 중심인 희세가 저렇게 따로 떨어져 책을 읽는 건 의외일수도 있겠지만 사실 희세는 책을 많이 읽거든. 그것도, 종이책으로. 의외로 책벌레일수도.

다들 각자 따로 놀고 있는 사이, 나는 그렇게 평화롭게 혼자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돌아다니는데 미래가 다가온다. 또 무슨 드립을 치려는 건지, 웅도 ‘오빠’ 가 아닌 웅도 ‘님’ 이라 부른다. 나는 그 수작질을 원천차단하기 위해 초장부터 태클을 걸었다. 미래는 배시시 웃으며 내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웅도 님의 그것은 큰가요?”

“……뭣?”


미래의 말에 나는 불순한 생각이 들어 살짝 볼이 발그레 해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평범하게 수수하게 예쁘장한 여자애가, 뽈뽈뽈 내 자리 앞으로 와서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뭐라고 답변해야 하지. 어, 크지! 친구들하고 비교해봤는데(?), 평균보단 확실히 큰 것 같아! ……라고 답변하면 안 되지! 미쳤어?!

이건 일종의 드립이다. 드립에는 각각 마치 자물쇠와 열쇠가 있듯 해당하는 대답이 갖춰져 있다. 그런 것도 없이 무작정 치면 그게 무리수인 것이고. 상대방이 그 드립의 답을 모른다면 드립은 실패하게 된다. 왜냐하면, 모르는 그것에 대해 설명하다보면 이미 재미는 저 멀리 사라져 버리거든. 다행히도 나는 이 드립의 답을 알고 있다. 다만, 여자애에게 저런 말을 직접 들으니까 기분이 이상해져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변태가 아니라 대한민국 평균치인 남자 고등학생이다.


“웅도 님의 그것은 큰가요?”

“훗, 그 수작, 알고 있지. 야망 말하는 거지? 난 야망이 크지. 상남자가 될 거거든!”


미래는 드립에 해당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 반복하는 특징이 있다. 무언의 압박이겠지. 얼른 대답하라는. 해서 나는 얼른 대답했다. 미래는 내 대답에 더욱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아니요, 그것 말구요. 그거 있잖아요, 그거?”

“그거……?”

“후훗, 뭐냐구요? 자·아·ㅈ……”

“으아아아아아─!! 닥쳐 이 미친년아!!”


무심결에 미래의 말을 듣고 있다 너무도 깜짝 놀라 큰 소리를 치며 미래의 입을 막아버렸다. 이 년이 무슨 수작질을! 19금으로 만들 일 있나?! 이 이상 수위가 올라가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되버렷! 겨우 큰 목소리로 미래의 뒷말을 막았지만 그 반대급부로 반 모든 여자애들이 나를 쳐다본다. ‘미친년’이라는 자극적인 욕설 덕분에 주목도는 굉장히 높다. 아아, 미래란 여자애는 진짜…… 뭐만 하면 이렇게 일이 커지게 된다.


“미, 미친년이라뇨!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꺄앗─”

“조, 조용히 해!”


미래는 쳐다보는 모두의 시선 따윈 안중에도 없이 여전하게 존댓말을 쓰며 말한다. 다른 애들이 듣는데도 전혀 의식하는 게 없다. 나는 화악 얼굴이 잔뜩 달아올라 엄청난 부끄러움을 느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넘어갔지만 개의치 않고 얼른 미래 팔목을 잡고 복도 바깥으로 나갔다. 여자애들이 막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난다. 이거 또 쓰레기 이미지 된 것 같아 서글픈데.




“아 쫌! 어지간히 해야 할 거 아냐!”

“에엣! 왜 화내시는 거에요! 전 그냥, 그냥 재미있으라고 그런 건데!”

“그딴 거짓 눈물 보이지도 마! 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여자애들도 버젓이 다 있는데!”

“……헤헷, 거짓인 줄은 어떻게 알아요?”

“어휴…….”


미래를 데리고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계단 통로 옆 복도로 왔다. 미래는 나의 다그침에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 하지만 그런 수작질은 나에게 통하지 않지. 대뜸 더욱 다그치니 미래는 서글프며 동시에 웃는 표정으로 글썽이던 눈물을 닦는다. 연기 잘하는구나, 미래. 사실 나도 깜빡 속아 넘어갈 뻔 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곤 ‘아니 어떻게 여자애가!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하며 다분히 훈계조로 미래에게 말했다. 미래는 잔소리가 듣기 싫은 어린애처럼 고개를 살살 내저으며 질색인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자*.”

“얏……! 여, 여자애가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어떡해!”

“하하하. 수업시간에 자지 말라는 건데 그런 말도 하면 안 돼요?”

“……으으.”


미래는 뜬금없이 엄한 단어를 말한다. 나는 펄쩍 뛰며 어찌할 바를 모르며 말했지만 미래는 까르르 웃으며 잔뜩 웃는 표정으로 말한다. 괜히 부끄러워져 나만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 솔직히 너무하잖아 이건. 이미지 파괴자도 아니고. 미래 때문에 점점 여고생에 대한 환상이 무너져 간다고. 가뜩이나 여고 다녀서 볼 꼴 못 볼 꼴 많이 보고 있는데. 아니, 아니야. 미래는 인터넷 드립에 푹 절여져 있는 정상이 아닌 여자애야. 진짜 여고생은, 그래, 성빈이처럼 하늘하늘 예쁘고, 희세처럼 틱틱대며 욕하고, 그런 맛이 있는 거지. 리유는…… 리유는 솔직히, 여고생의 귀여움이라기 보단 그냥 어린애지.


“보지 마세요, 그런 눈으로!”

“아 쫌! 적당히 하라고, 적당히! 왜 하필 그 단어 앞에서 도치법으로 말하는데!”

“꺄하하하하하. 반응 귀여워요, 오빠!”

“으유…….”


미래의 연이은 섹드립에 나는 더욱 당황해 잔뜩 태클을 걸었다. 어이어이, 그렇게나 성우급으로 귀엽고 예쁜 목소리로 발랄하게 섹드립 치지 말라고. 반칙이잖아. 애초에 난 남중에서 넘어온 상남자다. 여고생이 이렇게나 당당하게 야한 말을 하거나 엄한 단어를 말하는 것에 내성이 전혀 없다구. 단지 미래가 말하는 걸 듣기만 했을 뿐인데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미래는 그런 내 반응이 좋다고 까르르 웃는다.


“아 몰라. 그딴 이상한 드립이나 칠거면, 그냥 들어가서 잠이나 잘래.”

“아아~ 왜 그래요~ 할 말 있어요, 마침 잘 됐네요. 둘밖에 없으니까……♡ 말할 수 있어요.”

“……어?”


나는 심통이 난 표정으로 미래를 두고 쌩 교실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미래의 ‘아앙~’ 하는 앙탈과 함께 내 팔을 붙잡는 그 소리에 움직일 수가 없다. 거기에 그 말 뒤로 이어지는 끈적한 말투의 미래 목소리. 아, 진짜 어떻게 안 되냐, 저 애?! 자기 목소리와 말투의 매력을 알고 저러는 거야?! 진짜, 반칙이야 반칙.


“이번 주말에, 놀아주세요!”

“응?”


주말에 놀아달라니. 아, 그러니까 그런 건가. 희세네 집에서 노는 것처럼 미래네 집에 가서…… 뭐, 새삼스럽지도 않지. 여자애 집은, 여자애 방은 이미 희세네 집에 가서 경험해봤으니까. 아니면, 다른 데로 놀러가는 거? 그것 또한 어색하지 않지. 이미 리유랑 같이 주말에 놀러 갔었으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평상시 수다 떠는 것처럼 점심이나 저녁 한 끼니 먹는다거나. 그것 역시 성빈이랑 같이 부끄러운 알몸사건 이후로 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까 나, 나름대로 많이 놀긴 했구나, 여자애들하고. 어지간한 여자친구 사귄 것만큼은 놀았네. ……뭐, 각각 다 다른 여자애들이긴 하지만.

하긴, 따지고 보면 위에서 생각해본 경우의 수 모두 그냥 친구여도 얼마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이고, 지금 나는 학교가 여고고 친구들이 다 여자애니까 여자애들하고 그렇게 놀게 된 거지. 딱히 그 애들이 나한테 이성적인 감정이 있어서 그렇게 논 건 아니잖아. 뭐, 여자에 대한 면역이 거의 없는 나만 잔뜩 두근두근 거렸지만. 어쨌든, 미래가 뭘 제안해도 그 세 개 중에 하나리라.


“○○시로 놀러가요! 거기 꼭 가보고 싶은 데 있거든요!”

“○○시라…… 뜬금없이 왜?”

“중학교 때 친구가 거기 전학 갔는데, 엄청 좋다고 했거든요! 놀러 가주세요! 네?”


미래는 잔뜩 기대한 눈이 돼서 나에게 가까이 와 내 양 팔을 붙들고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한다. 나는 부담스러워 살짝 고개를 밀어내며 미래를 쳐다봤다. 흥분하면 자기 말만 하며 과도하게 몸을 밀착하는 건 미래의 습관인 것 같다. 그것 덕분에 괜히 사람 난감하게 만들지.

물론 내가 거절할 이유도 명분도 전혀 없다. 오히려 두 손 들고 환영해도 모자랄 판이다. 여자애가 먼저 놀러가자고 하는데, 거절할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거기다 마침 미래는 막 친해지려는 시기이고, 이러한 만남과 즐겁게 노는 행위가 두 사람의 친밀감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계기가 되리라.

─라는 건 거창한 말이고, 사실 그냥 심심한 주말에 여자애랑 같이 놀면 좋잖아. 굳이 여자애가 아니더라도, 친구랑 같이 주말에 놀면 그냥 재밌잖아? 가뜩이나 주말만 되면 나는 그대로 잉여인간이 된다. 컴퓨터도, 운동을 할 만한 환경도 전혀 되질 않으니까. 운동을 한다고 내가 근육 키우고 그런 운동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축구·농구·풋살 등 애들이랑 하는 운동을 좋아하는 건데 여긴 그럴만한 애가 한 명도 없으니까.


“그래, 놀자.”

“와! 고마워요! 히힛.”

“어어…… 어.”


나는 별다른 감정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미래의 반응은 나와는 반대로 굉장히 강렬하다. 환히 웃는 표정으로 나를 포옥 안는다.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 기분이다. 우앗, 뭔가 뭔가 뭔가……! 이상하잖아, 이건! 미래는 잠시 내 품에 안겼다가 떨어진다. 나를 올려다보며 싱긋 웃는 미래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와, 놀랐잖아. 미래는 ‘그럼 갈게요, 주말에 놀 준비해요!’ 하곤 종종걸음으로 교실로 돌아간다. ……여자애가 나를 안은 건 처음인가. 확 하고 안겼을 때 가슴이 닿아서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여자애 특유의 달달하고 향기로운 냄새도 화악 느껴졌고. 허락된다면 계속 품에 껴안고 있고 싶은 느낌. 좋은 향기 나는 푹신한 인형을 꼬옥 껴안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기분이었다. 음, 이거 감상문이 너무 디테일한가. 괜히 창피한 마음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미래를 따라 나도 교실로 돌아갔다.



─그랬던 게 며칠 전이다. 왠지 심장이 떨린다. 오늘 미래, 왜 이렇게 예쁘지. 은은한 아로마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샴푸 냄새인가? 게다가 목소리는 업그레이드라도 한 것처럼 한껏 교태롭고 귀엽고 예쁘고. 옷도 귀엽고. 이상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기숙사에서 한참 꾸미고 옷도 몇 번이나 골랐다. 마치 첫 데이트라도 나가는 수줍은 소년처럼. 희세네 집에 놀러갈 때나 리유랑 아쿠아리움 갈 때에도 이렇게 꾸미진 않았다. ……정말 무슨 감정이라도 있는 거냐, 정웅도.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다만 미래는 다른 애들과는 경우가 다르잖아. 다른 애들은 충분히 친해진 뒤에 같이 놀았으니까 옷차림에 신경을 덜 쓰게 된 거고, 미래는 아직 그리 친하진 않으니까. 사실 드립만 서로 오가는 수준이지 정말 친한 건 아니니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꾸미고 옷차림에 기합을 잔뜩 준 체로 나온 거지. 결코 이성적인 감정을 느낀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다만 미래가 껴안았던 건 아직도 느낌이 생생하긴 한데. 잡생각을 떨치고자 고개를 흔들었다.


“이러니까 저희, 연인 같지 않아요? 후훗.”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연인은 무슨.”

“에에, 오빠라고 불러주기까지 하는데! 실제 제 친구는 자기보다 세 살 많은 오빠랑 사귀어도 반말 하고 오빠 소리도 안 해준다구요?”

“누가 해 달랬나, 네 자의로 그러는 건데.”

시큰둥한 반응에 미래는 입을 삐쭉이며 말한다. 그런 경우는 나도 많이 알지친구 녀석 여자친구랑 전화하는 거 봤는데. 한 살 어리다는데 그냥 친구처럼 지내더라고. 뭐 어떻겠어, 여자친군데. 미래는…… 지금 와서 갑자기, ‘웅도 오빠’ 라고 안 하고 ‘웅도야’ 이러면 이상할 것 같다. 어색하기도 하고, 애석할 것 같기도 하고. 딱히 ‘오빠’라는 말을 못 듣게 되는 게 굉장히 안타까운 그런 건 아니다. 아니 사실 오빠 소리 계속 듣고 싶어. 정말 오빠는 아니지만. 그냥 말만으로 좋잖아, 오빠.


“손 잡아요?”

“아니, 손을 왜 잡아.”

“그럼 싫어요? 너무해요?”

“……근데 왜 말 끝을 올리는 거야, 이상하게.”

“근성체에요, 근성체! 그것도 몰라요!”

“……아니, 현실에서 그렇게 발현시키니까 진짜 이상해서.”


여러모로 정신상태를 해부해보고 싶은 미래다. 정말 미래랑 지내다보면 ‘이상하다’ 는 말을 남발하게 되네. 그만큼 미래가 이상한 거니까. 미래와 함께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번 역은 함정, 함정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없습니다.”

“……진짜 그러면 무섭겠는데.”

“들어왔을 때엔 맘대로 였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아하하.”


기차에서도 끊임없이 드립을 날리는 미래. 나는 적당히 웃으며 시덥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미래는 마냥 좋다고 깔깔댄다. 확실히, 리유랑 여행 가는 거랑은 확실한 차이가 있다. 리유랑 놀러갈 때에도 이것과 마찬가지로 기차 타고 갔었는데. 그 때는 별달리 느껴지는 것 없이, 말 그대로 나들이나 소풍 가듯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지금 미래와 같이 가는 건 다르다. 확실히…… 좀 의식하게 된다고 해야 하나. 미래가 내 또래 여자애라는 사실을. 잘 생각해보면, 잘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데이트잖아. 또래 여자애랑 주말에 다른 지역으로 기차 타고 놀러가면 그게 데이트 아니야? 달리 뭘 더해야 데이트라고 하는데.


왠지 희세가 이 사실을 알면 또 한바탕 뭐라고 할 것 같은 기분인데. 자기랑 안 놀아주냐고. 아니, 내가 뭐 희세 남편이라도 됩니까? 희세가 뭔데, 내 자유를 속박합니까. 여기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공화국입니다. 나에겐 내 운신의 자유가 있어. 거기에, 나는 상남자가 될 남자. 자고로 영웅은 열 여자 마다하지 않는 법이지. 영웅은 색을 밝힌다는 말도 있고. 영웅은 공부따윈 안한다는 말도 있고. ……딱히 내가 바라는 것만 모아놓은 건 아니다. 난 영웅도 아니고, 그냥 남자 고등학생인 게 함정이긴 하지만.


“무슨 생각 하세요?”

“응, 희세 생각.”

“흐응~ 너무해요! 저랑 데이트하는데 왜 다른 여자 생각을! 적어도 지금은 저만 바라봐 주세요. 지금 웅도 오빠는 제 남자니까♡”

“무, 무슨 소리야. 드립 좀 작작 쳐.”

“드립 같아 보여요? 후훗…….”

“…….”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솔직하게 희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는 계속 보여주는 앙탈을 부리며 마찬가지로 뒷말은 끈적한 목소리로 말한다. 덜컥 심장이 두근거려서 짐짓 허세를 부리며 말했지만 미래는 입을 가리고 은은한 미소를 짓는다. 그건 꼭, 사감 선생님의 농염한 눈웃음과 비슷해 보인다. 이거이거, 정말 미래한테조차 농락당하는구나.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섹드립까진 어떻게 넘어 가겠는데, 가끔 저렇게 정색하고 사감 선생님처럼 놀리면 그건 당해낼 수가 없다.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평정을 유지하는 척 하며 미래와 얘기하려 했다. 기차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작가의말

오늘은 나름대로 선전해서 오전 중에 다 썼습니다. 아직 하루의 반절이 남았으니, 오래간만에 비축분을 쌓을 기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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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1

  • 작성자
    Lv.59 케이루스
    작성일
    14.02.16 13:10
    No. 1

    저 캐릭터 나오고 나서 뭔가 어색해요 ;ㅁ; 드립만 계속 날려서 그런 느낌을 받는 건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6 13:37
    No. 2

    그, 그렇다고 하니까 의기소침하네요... 다음 편부터 없애버릴까요;; 나쁜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2 은빛날개의
    작성일
    14.02.16 13:43
    No. 3

    왠지 히로인들 캐릭터가 나친적의 그것과 비슷하다고느끼는건 저뿐인가요.. 세x라던가 리x라던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6 14:02
    No. 4

    그렇게 느끼신다면... 거의 맞습니다. 희세-세나(츤데레, 거유)라던가, 미래-리카(섹드립) 라던가. 그렇습니다. 함량미달인 것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아히이잇
    작성일
    14.02.16 13:49
    No. 5

    드립이... 장난 아니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6 14:02
    No. 6

    저는 15세 미만 청소년 관람불가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중학생 정도면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수준 아닌가요, 이 정도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똑딱똑딱
    작성일
    14.02.16 14:44
    No. 7

    으으 쌓아서 보려고 했으나 내 손은 이미 클릭을...

    우리 모두 상상 속 데이트를 즐깁시다 하핫... 또르르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6 14:45
    No. 8

    아마 안될 거에요... 흑흑.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dsafsdas..
    작성일
    14.02.16 15:13
    No. 9

    기차는 목적지를 향해가고 차가없고 잠은 자고 섹드립은 실현되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6 15:26
    No. 10

    어멋... 너무 잘 아시는 거 아니세요! 왜 꼭 학생들은 자동차가 없어서 기차나 버스로만 여행을 가야 할까요! 후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2.16 16:32
    No. 11

    H, ero를 따로 두면 그냥 변태지만 그것들을 합치면 Hero가 되는 것입니다! 즉 변태=영웅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부담스럽;;;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6 16:48
    No. 12

    저도 슬슬 수위 조절과 드립 조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래는 태생부터가 드립과 섹드립을 위해 만들어진 년인데... 몹쓸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Yaksa
    작성일
    14.02.16 19:58
    No. 13

    조만간 젖물릴 삘인데 선이 있는거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6 20:08
    No. 14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6 rosemary..
    작성일
    14.02.16 20:55
    No. 15

    위에 분!!!!!!!!!!!!!!!!!!!!! 수위가너무 높음 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젖이라닝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6 21:35
    No. 16

    그그그 그렇지요?!! 뭐랄까 너무 적나라하잖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1 디플럭스
    작성일
    14.02.17 00:26
    No. 17

    웅도를 아기처럼 키운다는 의미죠!!
    어떤 생각들을하시는 겝니까!! (아...왜 코피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7 07:50
    No. 18

    그, 그래도 너무 수위가 쌔잖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olfam
    작성일
    14.02.17 00:57
    No. 19

    남자는 라이터의 불을 지핀다, 탁탁, 소리가 들려오는데 그 소리가 헤어진 그녀와의 하룻밤들을 떠올리게 해서 조금 음란하게 느껴진다고 남자는 생각해본다. 그는 지금 혼자 다리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서있다. 크리스마스 전날, 눈도 오지 않는 추운 밤에 사람들은 서로를 부대끼고 걸어다닌다. 평소에는 인적이 드문 고가도로마저 그렇다. 달리는 자동차들의 스포트라이트, 주황색 불빛을 반짝이는 가로등, 서로를 의지하고 긴 다리를 걸어가는 연인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난간 너머 짙은 남색 물결을 본다. 불은 파란색일때 가장 뜨겁다고 하지, 그럼 바다는 검은 색일때 가장 차가울까?
    남자는 지금 세시간째 홀로 한강대교에 서있다.
    아침에 그녀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았을 때는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피곤이 가시지 않았던 까닭도 있었다. 지난 밤, 서로 기운 빠져 침대에 누워있을 때 땀으로 번들거리는 몸으로 그녀는 그에게 속삭였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꿈결 같은 단어들이었다. 그를 아련한 꿈에 빠져들게 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차게 만드는 그런 행복한 말들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그가 느꼈던 기분은, 같은 꿈이어도 악몽과 같았다.
    그는 세시간이 넘게 난간에 위태롭게 기대어있는 지금까지도 이별의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녀를 만난 건 조그만 클럽에서였다. 거기서 그녀는 기타를 치며 아름답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그 열정적인 모습에 반해서 노래를 부르고 내려온 그녀에게 말을 걸고 말았다. 그 후로 많은 일이 있었는데, 적어도 그의 기억 속에서는 즐거운 일들뿐이었다. 작지만 포근한 아파트를 마련하고, 거기서 동거하며 서로가 서로의 음식을 먹어주고, 이른 새벽에 옆집에 들리지 않게 조그만 목소리로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부르던 기억들.
    그녀는 그에게 언제나 미래였다. 그리고 그에겐 이제 미래가 없다. 그는 차가운 밤바람에 외투를 조이며, 지금껏 그녀와 나누어던 메시지들을 핸드폰으로 하나 하나 읽어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삭제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한 번 전화해보려다가, 말았다. 대신 우울한 기운을 달래려 평소 즐겨읽던 소설을 핸드폰으로 읽어보기 시작했다. 불은 파란색일때 가장 뜨겁다고 하는데, 저 짙은 빛깔의 강물은 지금 그토록 차가울까? 이별통보처럼 그에게 차갑게 엉겨붙을 저 물결들에 대해서, 남자는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씨발, 내가 왜 그런 년 때문에 죽어야하지?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생각했다. 순간적으로 찬란하게 다가온 죽음의 이미지가 기울어지는 그의 몸을 붙잡았다. 그는 젊었고, 더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살고 싶었다. 앞으로에 대한 희망이 차고 넘치는 가운데, 벌써 삶을 포기하는 건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떻게든 이 불같은 감정에 기대어 차가운 우울함을 벗어나고자 했다. 힘겹게 발걸음을 옮겨 다시 세상으로 향하려던 그때, 그러나 그는 휴대폰에서 우연처럼 나타난, 앞으로의 일들은 존재할 수 없다는 선고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다음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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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7 07:53
    No. 20

    ...저는 지금 한 생명을 잃은 건가요? 그보다 이거, 거의 한 편의 글이 되겠는데요... 무서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4 09:17
    No. 21

    아아....딸기100%가 생각나는건 저 혼자인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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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16화 - 3 +23 14.02.19 3,070 56 19쪽
64 16화 - 2 +23 14.02.17 3,065 72 20쪽
» 16화. 놀러가요, 오빠! - 1 +21 14.02.16 2,874 63 19쪽
62 15화 - 4 +17 14.02.15 2,507 62 25쪽
61 15화 - 3 +24 14.02.14 2,310 53 24쪽
60 15화 - 2 +17 14.02.13 2,396 60 20쪽
59 15화. 가까운 미래에, 당신은. - 1 +23 14.02.12 2,513 6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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