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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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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2.03 11:35
조회
3,155
추천
55
글자
21쪽

12화 - 4

DUMMY

“아하하─ 에헤헤─”

“…….”


리유는 신이 나서 깡충깡충 뛰며 내 앞에서 노닌다. 나는 귀여운 딸의 재롱을 보는 아빠의 미소를 지으며 리유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오늘은 하루종일 리유랑 놀았구나. 재미있었다. 확실히.

아니, 재미있는 순간보단 자꾸 리유를 의식해서 혼자 부끄러워하고 혼자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지만, 뭐 상관 없으려나.


편하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뭐,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겠지. 여자애로 느껴도, 뭐, 상관없잖아? 범죄야? 남자가 여자애 좋아하는 게 변태냐구.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섭리인데. 자기합리화 같은 게 아니라, 리유가 한 12살이면 죄책감을 느껴야겠지만 엄연히 리유는 나랑 동갑인걸. 그러니까 내가 잘못인 게 아니라 리유가 엄청 동안인 게 나쁜 거야. 동안이라기 보단 성장을 멈춘 것 같은 느낌이지만.

지금은 다 놀고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고 있다. 벌써 오후 늦은 시간이기에, 해가 약간 노랗다. 어째 이제는 내 손을 잡지 않는 리유다. 뭐, 나라고 리유 손 잡는 것에 환장한 것은 아니기에 딱히 손을 잡진 않는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우우웅. 왜?”

“그냥, 귀여워서.”

“흐흥. 내가 좀 귀엽긴 하지!”


조금 빠른 걸음으로 리유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리유는 그 손길을 느끼며 나를 올려다보며 물어본다. 무미건조하게 한 말에 리유는 기분이 좋아져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말한다. 리유답지 않은 당당한 말이지만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조차 야무지게 보여 귀엽다. 가슴은 평평해서 아무것도 없긴 하지만. 혼자 앓고 있어봐야 뭐 하겠는가. 그냥 있는 그대로, 리유를 귀여워하면 그만인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곤 고개를 끄덕이는 나. 그래, 뭘 복잡하게 생각하냐. 있는 그대로의 리유를 귀여워하면 되는 거다.


기차표를 사고 선로들이 쭉 있는 위에서 기다리는 시간. 나는 의자에 앉아,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리유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리유는 여자애인데도 굉장히 활동적으로 움직이며 다닌다. 까르르 웃으며 서서 가만히 반대쪽 철길을 보기도 하고, ‘저거봐 저거봐’ 하면서 내 옆으로 와 말하기도 한다. 저거는 무슨, 그냥 화물 기차다. 그게 신기한가?


“리유야.”

“웅?”


리유는 내 부름에 고개를 돌리고 나를 본다.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게 앙증맞다. 나는 앉아 있고 리유는 서 있기에, 드물게 내가 리유를 올려다보는 게 됐다. 그래봤자 리유 키가 너무 작고 나는 키가 큰 편이기에 눈높이 차이는 그리 나지 않지만.


“넌 왜 이렇게 귀여운거야.”

“에─ 헤헤헤헤. 에헤헤헤헤. 왜, 갑자기?”


리유는 잠시 내 말을 듣고 생각하더니 이내 기분 좋은 웃음을 내며 팔짝팔짝 뛴다. 그러더니 다시금 궁금한 표정이 돼서 물어본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귀여워서, 불안해서.”

“에? 귀여운 게 불안해? 무슨 말이야?”


리유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왠지 수렁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계속 말을 이었다.


“다른 남자애가 귀여워 할까봐.”

“……에에~ 뭐야, 말도 안 되잖아 그건~ 다른 남자애가 어디 있다고!”


말해놓고도 굉장히 부끄러워져서, 리유의 말을 들으며 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방금 전에 한 말, 진짜 집착하는 것 같잖아. 내가 뭐 리유 남자친구도 아니고. 그런 걸 신경 쓸 입장은 아니잖아. 방금 전까지 있는 그대로의 리유를 귀여워하자 하고 생각했는데 대뜸 그런 집착 발언을 하다니. 창피해서 어디 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리유의 말을 들으니 더욱 부끄러워졌다.


“언젠가 살다보면 다른 남자애들도 만나게 될 거 아냐.”

“에에, 그렇겠지만, 음… 다른 남자애들한테는 이렇게 못 할 것 같아.”

“……왜?”


리유의 말에 나는 귀가 솔깃해졌다. 그건, 리유의 이유에 따라 내가 리유의 귀여움을 ‘독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서 그런 걸까. 리유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말한다.


“다른 남자애들은… 생각도 안 해봤는걸. 다른 남자애들하고 얘기하는 건… 몰라, 부끄럽잖아!”

“……나는 안 부끄러워?”

“웅! 웅이는 착하니까! 헤헤헷. 그리고 내가 이상한 얘기 해도 잘 들어주잖아.”


이상한 말 하는 건 알고 있군, 본인이. 그야, 리유 너부터가 내 말 잘 들어주고 궁금해하는 눈으로 쳐다봐주니까, 그에 따른 보답으로 그렇게 하는 거지. 그런 건 둘째 치더라도, 이상한말 해도 이상한 말 하는 리유 자체가 귀여우니까, 절로 시선이 가는 건데. 리유의 대답에 내 마음 속 한 구석에선 묘한 쾌감이 올라온다. 아니, 쾌감 까진 아닌데. 유쾌하다고 해야 하나.

「독점」이구나…… 당분간은, 리유의 귀여움은 당분간은 내가 독점할 수 있어. 그리고 나만 리유에게 신뢰를 느끼는 게 아니라, 리유도 마찬가지로 나를 신뢰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 더욱 기쁘다. 마음 같아선 일어나서 리유를 꼬옥 껴안고 싶지만 그럴 순 없지.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손 잡는 것도 볼 닿는 것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리유지만 포옹은 좀, 오해의 소지가 있잖아.


그나저나 참, 연인들 데이트처럼 흘러간 하루였네. 사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데이트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냥 나 혼자 두근거렸던 망상 가득한 나들이었을 뿐일까. 그래도, 리유도 꽤나 귀엽고 예쁜 옷으로 차려 입고 왔을뿐더러 도시락까지 싸오고. 그 정도 정성이면 어느정도, 나한테 신경 쓰인다는 반증이 아닐까.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모르겠다. 여자애들은 정말, 하나같이 모르겠다. 리유도 여자애긴 하니까. 저렇게 작고 귀엽지만. ……뭔가 위험한 발언을 한 것 같은 기분인데. 철컹철컹?


“야~ 히히히.”


리유는 다시금 까르르 웃으며 나에게서 멀어진다. 노란 안전선의 볼록볼록한 발판을 밟으며 재미있어한다. 나는 그런 리유를 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후훗, 귀여워. 아마 리유는 나를 이성으로 인식하지 않겠지. 그럼 리유에게 난, 뭘까? 그냥 착한 덩어리? 에이에이, 그 정도는 아니겠지. 착한 오빠? 리유에 비해서 내가 나이 들어 보이는 게 사실이니, 남들이 볼 때에도 그게 타당하겠다. 착한 오빠.


“우~~와아아아 히히히히.”

“하지마, 위험해.”

“에헤헤. 재미있는데! 어차피 낮으니까 떨어져도 상관없잖아!”

“그래도 위험하니까 나와.”


리유는 선로로 떨어지는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발끝을 디디고 좋아하고 있다. 위험천만해보이는 모습에 나는 살짝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하지만 리유는 천진난만하게 웃을 뿐 좀처럼 비키진 않는다. 나참, 애도 아니고. 지하철이었다면 투명한 벽이 있어서 저런 짓 못할 텐데. 뭐, 기차역도 바보는 아닌지라, 기차가 올 때엔 반드시 ‘삐이이이이─’ 하고 요란한 소리 내면서 광고하면서 오니까.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는 보너스다. 자, 잠깐만, 지금 방금 들린 거 아니야?!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고!


“어, 어어…….”


마침 적절하다 싶을 정도로 리유는 벼랑 끝에서 균형을 잃고 흔들흔들 하고 있다. 이젠 지극히 예상 가능한 패턴이다. 왜 꼭 리유가 저기서 저러고 있는 때에 열차가 들어오는 건지.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 키만큼이나 높이가 있다. 떨어지면 고운 리유의 다리에 상처가 들어 흉이 질 수 있다. 그런 것보다 기차가 들어오고 있다고, 지금! 사망한다고!! 저러고 있어도 목이 턱 하고 날아갈 수도 있어! 으악, 그건 안 되잖아!


“위험해, 멍청아아!!”

“우으아아아아~~”

‘철컹철컹─ 철컹철컹─!’


어머님, 기차는 너무나 빨랐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굉음과 함께 돌풍을 일으켜 리유의 핑크색 원피스를 들췄습니다. 환히 보이는 분홍빛 팬티에 저는 왈칵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하지만 기차의 열차 소리를 듣고 전자발찌가 떠오른 건 어째서일까요. 성 범죄자를 구속하는 전자발찌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저는 변태일지도 모릅니다. 변태인 게 싫은 게 아니라, 그걸로 인해 리유의 경멸 어린 시선을 받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라니, 잘도 그런 말을 생각해낸다! 민족의 비극인데! 왜 그런 걸 여기에 대입시켜서 말하는건데! 이 쓰레기야!!

기차는 다가오고, 리유는 넘어지려는 급박한 상황이기에 나는 얼른 몸을 일으켜 날아가듯 리유에게 다가갔다. 저번 주말에 리유에게 책장이 넘어질 때처럼 급박하게 움직였다. 얼른 리유를 뒤에서부터 백허그 하듯 단단히 붙잡고 뒷걸음질 쳐 뒤로 빠졌다. 리유는 다행이 나의 이끌림에 뒤로 빠졌고, 아슬아슬하게 기차가 지나갔다. 강한 바람에 리유의 원피스가 거의 배 위까지 팍 올라갔다가 다시 잔잔해지며 내려간다.


“…….”

“…….”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짧은 순간에 리유를 구해냈다는 기쁨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에 웃음이 걸렸다. 그런데 주위의 분위기가 뭔가 싸늘하다. 담배를 피우고 있던 아저씨도, MP3를 듣고 있는 아가씨도, 짐을 가득가득 옆에 두고 계신 아주머니도, 할머니도, 청년도, 군인도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니, 그 쳐다보는 게 ‘한 생명을 구한 당당한 청년’을 바라보는 경외로운 시선이라면 내가 이상함을 느낄 리 없지.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내 쪽을 쳐다보고 있으니까 그게 이상하다는 거지. 아니, 원래대로면 박수라도 쳐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리유 구했는데! 뭐, 철로에 떨어진 생판 남인 애를 구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상한 시선이 곧 어째서인지 깨닫게 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놔.”

“어?”


리유의 낮고 경직된 목소리. 얼음처럼 차가운 그 목소리는 듣는 것 만으로 내 마음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다. 친해지기 전, 희세가 나에게 막말을 할 때에도, 정희가 내 추리에 본색을 드러내고 냉정한 말투로 말할 때에도 이렇게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진 않았다. 지금은 리유의 뒷머리만 보이는데, 리유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이거 놓으라구!!”

“어…… 어? 으악!!”


내가 잘 못 알아듣자, 리유는 한 번 더 말하며 굉장히 짜증스런 말투로 말했다. 그제야 나는 내 손의 위치를 확인함과 동시에 손끝에서 느껴지는 생경한 느낌을 느꼈다. 조금이지만, 분명 조금이지만 느껴지는 확실한 말랑거림. 연인끼리 ‘누구~게’ 하며 남자친구가 여자 친구 뒤에서 눈을 가리듯, 내 손은 리유 뒤에서 꽈악 리유의 가슴팍을 움켜쥐고 있다. 아주 당당하게.

나는 변명의 여지가 있다. 그건 리유를 구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이렇게 꽈악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어딜 뭘 잡을지 고민할 겨를이 있겠는가. 아니, 그럼 내가, ‘흐흐 위기상황이네 데헷 리유 가슴 만져야지 난 빈유가 좋으니까!’ 하는 생각을 했겠냐고!! 그럼 그거야 말로 진짜 변태지! 변태가 아니라 싸이코지!! 나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얼른 놓았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이 화악화악 달아오른다. 풀무처럼 김이 훅훅 나올 것만 같다.

아아, 그래서 사람들이 그런 이상한 눈으로 얼어붙어서 나를 쳐다본 거구나!! 떠올려봐! 덩치 큰 남자 고등학생이, 자기보다 머리 하나 반은 작은 여자애 가슴을 뒤에서 왈칵 움켜잡으며 자랑스럽게 환히 웃는 모습을! 아니, 그 환희에 찬 웃음은! 리유를 구해냈다는 자랑스러움에서 발생한 거지, 가슴을 만지게 돼서 기뻐 그런 게 아니야! 그 정도 환희를 느낄 거면 희세 정도는 돼야지! 아니, 무슨 소리야, 그게!!


리유는 살며시 고개를 돌린다. 내 쪽을 쳐다보는 리유의 눈은 명백한 경멸의 뜻이 담겨 있다. 안 돼, 안 돼!


“리유야, 잠깐만, 잠깐만 이거는 오해가! 나는 정말 그럴 의도가 아니라!“

“이…… 이 변태새끼야!!”

“크하악!!”


나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손발을 휘저으며 허둥지둥 변명하려 했다. 아니, 변명이 아니지! 자기변호지! 이건 정당방위라고! 지금 나도 나대로 창피해 죽겠다고! 여자애 가슴 만진 건 처음이니까!! 하지만 리유는 듣지 않는다.

투명할 듯이 흰 리유의 얼굴은 사과처럼 빨개져서, 울먹이는 듯한 표정이 돼선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리곤 외마디 소리치고 작은 주먹으로 내 배를 퍼억 때린다. 아프다. 타격이 아픈 게 아니다. 아무리 리유가 마음 먹고 강하게, 내 배를 때린다 해도 전혀 아프지 않다. 아픈 건 마음이다. 유일하게 나에게 변태라고 하지 않던 리유가, 나에게 그렇게까지 강렬하게 ‘변태새끼’ 라고 말하니까 마음 깊숙한 곳까지 상처가 나고 그걸 헤집어내는 것 같이 아프다. 신이시여, 어째서 이런 시련을…….


“변태, 변태, 왕변태에에~!! 웅이 같은 거, 착하지도 않고 완전 변태 변태 변태야!!”

“아니, 내 말을……! 난 너 구하려다!”

“시끄러~!! 마, 마, 마, 만졌잖아!! 얼마 있지도 않은데!! 얼마나 변태면!”

“아니야, 아니라고!”


리유는 흥분 상태가 돼서 내 말은 전혀 듣지 않고 빠르게 나에게서 멀어지며 말한다. 내가 다가갈수록 더욱 빠른 속도로 멀어진다. 리유는 평소의 리유답지 않게 소녀성이 폭발해서, 잔뜩 부끄러워하며 말한다. 억울해 보이는 표정은 희세가 나에게 성희롱 당했다고 주장할 때의 그 표정과 흡사하다. 물론 지금 리유는 실제로 성희롱을 당했지만. 그것도 엄청 직빵으로. 리유는 계속해서 내 말을 무시하고 계단으로 내려간다. 나는 그런 리유를 쫓았다.

아무리 빠르게 도망쳐도, 나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는 리유다. 이렇게 말하니까 엄청난 스토커 같지만 그런 말이 아니라, 리유의 저질체력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리유의 손목을 잡았다.


“이거 놔! 변태 변태야!”

“자, 잘못 했어!”


리유의 작은 손목을 부술 듯이 세게 쥐자 리유는 있는 힘껏 손을 뿌리치며 몸을 돌리며 말한다. 정말 싫어하는 그 모습에 내 마음은 찢어지는 것만 같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의도가 어찌 됐든, 실수였든, 사실은 그대로잖아. 그래, 내가 만졌다! 만져서 미안하다! 솔직히 별 느낌도 안 났다! ……아니 안 난 건 아닌데. 아니 어쨌든! 미안하다, 잘못 했다!


“…….”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제발…….”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리유는 여전히 얼굴이 발그레 해선 나를 쳐다보고 있다. 두려움과 언짢음이 섞여 있는 표정. 나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다시금 간절하게 말했다. 진심이다. 만날 하는 말 있지 않는가. 리유만큼은 이 더러운 세상 속에서 깨끗한 웃음을 가진 아이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근데 그 리유가 나를 변태라고 하며 피한다면, 정말 세상이 산산히 부서지는 것 같은 충격을 느끼게 되니까. 간절하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그… 구, 구해주느라 그런 거니까……!”

“……어.”

“……괘, 괜찮아! 닳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얼마 없으니까……”


리유는 얼굴이 잔뜩 붉어져서 말한다. 아예 온 몸이 다 빨개진 것 같은 느낌이다. 목덜미까지 붉게 물든 게 보인다. 내가 고개를 들자 리유는 창피한지 내 눈을 피하며 말한다. 리유의 소심한 대답에 고개를 든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과, 받아주는 거야?”

“……응. 구해줘서 고마워.”

“응, 응! 아아, 다행이다. 정말 어떻게 되는 줄 알고….”

“가, 가까이는 오지 마!”

“아니 왜! 이러면 용서한 게 아니잖아!!”


리유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겨우 대답한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가가자 움찔 하며 뒷걸음질 친다. 내 고함에 리유는 마찬가지로 큰 소리로 ‘그, 그치만! 아직 창피하단 말야, 변태야아!!’ 하고 말한다. 그 변태라는 말에 다시금 비수가 날아와 가슴에 꽂히는 것 같다. 제발, 제발 세상 모든 여자애들이 변태라고 해도 되니까, 너만은……!

……근데 사실, 의외로 만져보고 놀라긴 했다. 아, 아예 존재하지 않는(?)건 아니구나. 조금, 정말 조금이지만 미미하게 말랑거리는 느낌이 있긴 했다. 그걸 의도하고 만진 건 아니지만. 결국 내 사과를 받아주긴 했지만 아직까지 어색한 리유다.




“…….”

“…….”


굉장히 어색해졌다. 기차를 탈 때에도, 기차 안에서도, 기차에서 내려서 걷고 있는 지금까지도 거의 한 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내가 쳐다만 봐도 리유는 흠칫 놀라는 느낌이고, 조금만 가까이 몸이 닿으려고 해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보여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말을 걸 수도 없다. 아무리 사과는 받아 줬어도, 방금 전에 가슴을 움켜줬던 변태 같은 남자애에게는 말 거는 것조차 허용할 수 없구나. 하아.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건 사실이니까. 그 때 가슴 말고 배나 허리 같은 데를 잡지……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이래선 오늘 재미나게 놀았던 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손 잡고 두근두근 했던 것도, 리유에게 들었던 ‘웅이는 착하니까’ 하는 말도, 리유의 신뢰도 모두. 유리창 깨지듯 와장창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변태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게……. 하아.


“어…… 저.”

“…….”


리유와 우리 집의 갈림길. 아까 아침에 만났던 곳이다. 아침까지만 해도 리유랑 굉장히 사이좋았는데. 리유도 까르르 웃으며 밝은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어색하다. 내가 말을 걸자 리유는 살짝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가ㄱ 그건, 진짜 미안해. 좀 어색한데…… 진짜진짜 잘못했으니까…… 좀 용서해주라.”

“……응.”


리유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찬가지로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럼 뭐해, 대답은 아까도 했다구. 지금 역시 나에게서 세 발자국 이상은 떨어진 상태에서, 굉장히 경계하는 태도로 날 대하고 있잖아? 이러면 희세나 성빈이하고보다 더 사이가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인데. 시험 끝나고 리유 기분 좋게 해 주려고 놀러온 건데, 도리어 이 찝찝한 관계만 선사했다고 생각하니 자괴감이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 한다.


“엇.”

‘쪽.’

“헤헤헤.”


애써 리유의 시선을 피하며, 이제 돌아서 학교나 가려 하는데 갑자기 리유가 예고도 없이 다가와 내 팔을 잡는다. 양 손으로 내 팔을 잡아 힘껏 끌어 내린 뒤 볼에 뽀뽀를 한다. 저번에 뽀뽀 받았던 반대쪽 볼에. 깜짝 놀란 내가 움찔 하며 리유에게서 떨어지자 리유는 얼굴이 빨개져서 어색하게 웃고 있다.


“아, 아까는! 창피해서 그랬어. 지금은 괜찮아.”

“어, 어…… 정말 괜찮아?”

“응! 어차피 나, 가슴도 별로 없는걸. 헤헤헷.”

“야, 너무 그렇게 말하지는 마.”

“히히. 가슴 없으니까 부끄럽지 않은걸! 에헤헤.”


리유는 굉장히 수줍어하며 말한다. 그러더니 당당하게 가슴을 쭉 펴고 말한다. 물론 가슴은 없지만. 나는 감동받은 표정으로 리유를 쳐다봤다. 아아, 어찌나 이렇게 착하고 영특한 아이인지! 뽀뽀 받은 볼이 전기가 계속 가해지는 것처럼 저릿저릿한 느낌이다.


“또 구해줬네? 웅이가?”

“그…렇긴 한데. 좀 미안하게 구했네.”

“괜찮아, 이제 안 창피하니까! 나도 사람들 많으면 창피하긴 하니까.”

“응. 미안.”

“아니야.”


리유는 이제는 완연히 어색함을 털어내고 평소처럼 밝은 말투가 돼서 말한다. 그런 리유의 태도에 나도 조금은 자신감을 찾고 말했다. 리유는 방긋 웃는다. ‘구해줘서 고마워!’ 하고 말한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용서해줘서 고마워.’ 하고 대답했다.


“그럼 갈게!”

“아, 잠깐만.”

“응?”


나는 리유를 불러 세웠다. 리유는 막 몸을 돌리려다 다시금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뽀뽀해준 거, 고마운데. 다음엔 안 해줬으면 좋겠어.”

“에에? 왜에? 기분 나빴어? 이상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리유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이 돼서 물어본다. 그렇게 인식할 수도 있겠네. 기껏 뽀뽀 해줬는데 하지 말아달라니까. 나는 조금 쑥쓰러워서 볼을 긁으며 뜸을 들이다 말했다.


“……헷갈리니까.”

“……응? 어? 뭐, 뭐가?”

“……아, 됐어. 나 간다!”

“응? 으응? 뭔데?? 뭐 말하는 건데???!!”


그 말을 하고 공연히 나는 굉장히 창피해져서 도망치듯 뒤돌아 뛰었다. 뒤쪽에서 리유의 궁금증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잔뜩 달렸다.


잘 모르겠지만 적당히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네. 확실히 깨달은 게 있다면…… 리유는 작고 귀여운 ‘여자애’ 라는 점. 확실히, 지금까진 너무 리유를 의식하지 않고 행동했던 것 같아. 여자애라는 점을. 리유도 확실히, 부끄러워하고 소녀 감수성 넘치는 평범한 소녀니까. 너무 놀리거나, 너무 막말하거나,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열심히 학교까지 달려간다.


작가의말

알바를 안 나가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편하다고 글을 쓰는 것이 정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전 내내 시간을 낭비했네요 ㅠㅠ 누가 그랬던가. 잉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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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14화 - 2 +17 14.02.09 2,416 58 24쪽
55 14화. 나는 변태가 아니야! - 1 +21 14.02.08 2,485 51 19쪽
54 13화 - 4 +28 14.02.07 3,022 76 19쪽
53 13화 - 3 +21 14.02.06 2,450 56 22쪽
52 13화 - 2 +25 14.02.05 2,104 57 20쪽
51 13화. 전화위복 - 1 +21 14.02.04 2,699 53 17쪽
» 12화 - 4 +16 14.02.03 3,155 55 21쪽
49 12화 - 3 +24 14.02.02 2,586 73 22쪽
48 12화 - 2 +16 14.02.01 2,497 76 17쪽
47 12화. 데이트? 소풍? - 1 +23 14.02.01 3,041 65 18쪽
46 11화 - 4 +11 14.01.31 2,607 57 19쪽
45 11화 - 3 +21 14.01.31 2,712 69 17쪽
44 11화 - 2 +9 14.01.30 2,538 56 17쪽
43 11화. 시험 - 1 +7 14.01.30 3,004 106 19쪽
42 10화 - 4 +11 14.01.29 2,901 70 23쪽
41 10화 - 3 +11 14.01.29 2,760 56 22쪽
40 10화 - 2 +7 14.01.28 3,739 8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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