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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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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2.1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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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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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글자
20쪽

15화 - 2

DUMMY

“웅도 오빠♡”

“히익!”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오전의 수업이 끝이 나고 점심시간, 애들과 함께 점심 먹으러 가기 위해 막 모이고 있는 찰나에 미래가 내 옆으로 와 말한다.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다. 거기다 엄청 창피하다.


“오빠?!”

“무, 무슨 말을…….”

“아니, 그러니까 이게, 그게!”

“왜요, 오빠라고 하면 안 되나요?”

“넌 좀 조용히 하고!”


희세는 대번에 도끼눈이 돼선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정말 오래간만에, 희세가 선선한 표정으로 ‘오늘은 오래간만에 너랑 밥 같이 먹어줄까.’ 하며 와 줬는데. 대번에 적대적인 표정이 돼 나를 경계한다. 성빈이 역시 약간 이상하다는 눈치로 나와 미래를 번갈아 쳐다본다. 성빈이 입장에선 이상하겠지, 친해진다고 아까 쉬는 시간에 가서 몇 마디 나눈 것밖에 없는데 벌써 ‘오빠♡’하고 아양 떠는 목소리로 말하니. 아니, 그 전에 친구인데도 존댓말에 오빠라는 칭호가 더욱 거슬리겠지.

나는 왠지 변명하는 투가 돼서 약간 당황하게 됐다. 잠깐, 어째서?! 내가 무슨 불륜이라도 저질렀어? 애초에 내가 부탁한 것도 아니고, 미래 혼자 저러는 거잖아! 난 상남자가 될 남자, 이 정도에 당당하지 않고 비굴하면 안 된다.


“오빠, 저한테 할 말 없어요?”

“아니…… 애들 앞에선 존댓말 쓰는 건 좀 그만 하지.”

“에엣! 너무해요! 그럼 그 약속은 전부 거짓말 인가요! 흐으우…….”

“무슨 약속! 이상한 설정 짜지 마! 내가 언제 그랬다고!”

“…….”


미래는 마치 어릴 적에 결혼을 약속하고 지금 만나서 그걸 기억 못하는 남주인공을 탓하는, 일본 만화의 소꿉친구 같은 표정과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잔뜩 신경질을 내며 부정했고. 하지만 희세와 성빈이의 미심쩍은 표정은 여전하다. 이런, 괜히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쨌든 전 오빠랑 얘기하지 않으면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거에요. 흥!”

“아이…….”

“……어쩔 거야!”

“자, 잠깐만.”


미래는 새침하게 말한다. 나는 그 미래의 말에 당황스럽고 난감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희세는 팔짱을 끼고 특유의 아니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묻는다. 방금 전에, 성빈이랑 리유랑 함께 ‘오늘은 오래간만에 돈가스집 가자!’ 하고 얘기하고 있었는데. 큰 맘 먹고 가는 거였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방해꾼이 등장하게 됐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미래. 저기압으로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는 희세. 난감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성빈이. 뭣 때문에 이런 건지 잘 상황파악을 못해 눈치만 살피고 있는 리유. 개판이구나. 결국 여기선 내가 결단을 내려야겠구나.


“이, 일단 셋이 가고 있어. 얘기 빨리 끝내고 뛰어 갈게.”

“……피이, 맘대로 하셔. 그냥 셋이 먹을 테니까. 아─ 이럴 꺼면 정희랑 애들이랑 먹었지!”

“미안 미안. 금방 갈게.”

“몰라, 꺼져!”

“이따 봐, 웅도야.”


나의 미적지근한 결론에 희세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하지만 조금은 납득을 했는지 기지개를 쭉 펴며 앞서 나간다. 미안하다는 내 말도 거친 대답으로 무시하며 가 버린다. 성빈이는 잔잔한 미소를 띠고 말하며 몸을 돌린다. 리유는 ‘웅! 빨리 와야돼!’ 하며 종종걸음으로 희세 옆으로 따라 붙는다. 셋은 저들끼리 수다를 떨며 금세 복도 바깥으로 나간다. 후우, 어떻게든 넘기긴 했구나.


“웅도 오빠♡”

“아이, 뭐야 뭐! 왜 애들 앞에서 그런 말 해서! 창피하잖아!”

“에에?! 그럼 오빠라고 하지 마요?”

“……아니! 그게 문제라는 게 아니라!”


미래는 분명히 엄청 예쁘고 귀여운 미소녀가 아니다. 눈매나 입술이나 오밀조밀하니 예쁘장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쁘장한’ 정도이고 전반적인 평은 그냥 수수한 일반적인 여고생이다. 하지만 목소리가, 목소리가! 너무 맑고 청아해서, 엘프라는 종족이 노래를 부른다면 이런 목소리일까 싶을 정도로 예뻐서! 근데 그 목소리로 ‘오빠’ 라고 불러주면! 아, 정말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내 성에 미래가 ‘오빠라고 하지 마요?’ 하는 말을 하는데 도저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다. 나는 한숨을 쉬며 내 자리로 돌아가 털썩 앉았다.


“그래, 뭣 때문에. 빨리 얘기하고 밥 먹으러 가야 해.”

“엣, 처음에 말 걸었던 건 오빠잖아요? 전 그 말 들으려고 온 건데.”

“아…… 그런가.”


생각해보니 또 그렇다. 저번 쉬는시간에 내가 먼저 말 걸어놓곤 무단으로 까먹고 있었구나. 살짝 미안해지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그러니까.”

“으흥흥… 그런 말은 모두가 있는 데서 듣긴 부끄러운데……♡”

“……이상한 상상 하지 마! 내가 무슨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엣, 그런 거 아니었어요?”

“아니거든!! 아오!!”


어떻게 보면 고백일수도 있겠다. 내가 하려던 말은 ‘친구가 되어 줄래.’ 정도의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건 조금 창피하니까, 아니 그보다 보통 그렇게 의식적으로 ‘친구가 돼주세요!’ 하고 사귀진 않잖아. 자고로 친구는 그냥 되는 거지. 그걸 말로 하려니까 무슨 하이틴 드라마 찍는 것도 아니고, 좀 창피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어 심호흡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미래는 무슨 곡해를 했는지 수줍게 볼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낭군님의 사랑의 전언을 듣는 수줍은 조선숙녀 같은 느낌이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팍 치밀어 오른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해버렸다. 그리곤 조금의 후회가 든다. 이런, 전혀 친한 사이도 아닌 여자애한테 큰 소리로 말하다니. 굉장한 실례가 아닌가. 고운 소녀 감수성에 상처가 될 지도 몰라.


“그럼, 바깥에서 나가서 말해요. 저 걸으면서 얘기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에에…… 맘대로 하시오, 그러자.”


하지만 어째 내 고성에 전혀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것 같은 미래다. 방긋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안한다. 종잡을 수 없는 괴팍한 성격의 미래에 나는 슬슬 지쳐가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랐다.




“친구가 돼 줬으면 좋겠어.”

“에, 에엣?! 그, 그런! 벼, 변태! 오빠는 변태였군요!”

“어째서 변태가 나오는데, 평범하고 좋은 말이었잖아!”


복도를 나와 건물 바깥까지는 별 말 없이 걸었다. 바깥으로 나가니 햇살이 따가울 정도로 강렬하게 내리쬔다. 이제 봄이 완연하여 바깥은 슬슬 더운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건, 기분 나쁜 따가운 햇살이 아니다.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강인하고 기분 좋은 햇살. 한창 뛰놀 혈기왕성한 나이에 회색의 네모난 건물에만 갇혀 있다 이렇게 햇살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나는 무덤덤하게 미래에게 말했다. 미래는 순식간에 얼굴빛이 흙빛으로 바뀌며 나에게서 네 걸음 정도 떨어지며 말한다. 나는 가슴이 철렁하는 기분이 들며 당황해서 말했다. 목소리가 예쁜 미래의 목소리로, 그것도 ‘오빠’ 라는 말과 함께 곁들여 변태로 매도당하니 그 상처의 깊이가 다르다. 리유가 나보고 변태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 아니, 그것보다 더 커.


“그러니까, 섹*프랜드 얘기 아니었나요?”

“무, 무, 무슨!! 너 미쳤어?! 내가 언제! 으핳, 야아아…….”


무심결에 나는 정말 큰 소리로 외칠 뻔했다. 정말 크나큰 충격이다. 망치로 겁나 쎄게 뒤통수를 쳐맞은 느낌이다. 여자애 입에서, 그것도 저렇게 예쁜 목소리로 ‘섹*’ 라는 단어를 말하는 건 처음 들어봐. 야동 빼고. 거기다 내가 말한 ‘친구가 돼 줘’의 어떤 구석에서 그런 식으로 곡해할 수 있는 걸까. 정말 알면 알수록 골때리는 여자애인 것 같다, 이 근미래라는 여자애.


“그치만, 오빠처럼 혈기왕성한 나이 대라면 분명히 관심 있을 텐데요?”

“없어, 그런 관심!! 여자애가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고!! 아오, 진짜.”

“오오…… 생각보다 순정파네요, 오빠?”


관심 있어, 엄청! 하지만 이런 급진적인 건! 싫어, 그건 싫다고! 진짜 너무 이상하잖아! 내 대답에 미래는 눈을 찡긋 하며 말한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화끈거리는 내 볼의 열기를 느끼며 걷기만 한다. 정말, 이런 말에 동요하는 내가 다 한심스럽다. 아무리 한창 때의 나이라고 해도 그렇지. 강도 높은 섹드립을 치고 있는 미래지만 실상 그 태도는 전혀 그러한(?) 것 없이 숫제 장난 일색이다.

하긴, 성인 여성의 농염한 섹드립을 학기 초부터 사감 선생님에게 많이 많이 받아 그 쪽 방면으론 내성이 조금 생긴 나에게 이 정도는 약한 수위에 불과하지. 그래도 놀라긴 했어, ‘섹*프랜드’ 라는 어휘는.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게 여고생의 입에서 나올 줄을!


“별 큰 의미는 없어. 그냥 친구가 돼 달라는 거야.”

“응? 오빠는 친구 많지 않아요? 반에서 이미지도 좋고, 다른 많은 친구들도 있고. 왜 저 같은 여자애랑 친구가 되려고 하는 거죠?”

“……몰라, 그냥.”


미래는 나를 올려다보며 야무진 목소리로 묻는다. 잠시 변명을 생각하다 별 수 없이 대답했다. ‘리유가 말 걸어보라고 해서 걸어봄’ 이라고 어떻게 말해. 그냥 내가 먼저 다가간 걸로 위장하는 편이 낫겠다.


“……좀 신경 쓰였다고 해야 하나. 혼자 있는 게.”

“어멋, 싸구려 동정심? 그런 건 싫은데요.”

“아니야, 그런 거! 적어도 그건 진짜 아니야.”

“그걸 어떻게 증명해요? 오빠.”

“내가 그 싸구려 동정심 받는 걸 엄청 싫어하니까!”


가장 듣기 싫은 말을 들어버렸다. 그래서 결코 내가 화를 내야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화를 내 버렸다.


─저 아이, 혼자 놀고 있잖아. 불쌍해 보여. 내가 친구가 돼 줘야지.


이런 마인드가 안 되게, 제발 이런 생각으로, 싸구려 동정심으로 친구를 하거나 하진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나는 활달한 편이다. 결코 친구가 적거나 하지 않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늘 내 주변엔 애들이 모였고 나 역시 그걸 뽐내거나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당연하게, 너무 당연하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 와서 며칠간의 따돌림을 당하고 그런 다짐을 하게 된 것이었다. 짧은 기간의 따돌림이었지만 그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세상 모두가 내 적이 된 것 같은 기분.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느낌. 그런 상황에서, 별 감흥도 없는 가볍고 값싼 동정심으로 다가오는 건, 그 사람에게 더욱 큰 상처다. 내가 당해봐서 알기에, 그 느낌이 들지 않게 각별하게 조심했다. 특히 소심하고 여린 마음인 여자애들에겐.


“…….”

“…….”


미래는 좀 특이해서, 적나라하게 말하면 ‘또라이’ 같아서 나도 모르게 초면부터 막말에 태클까지 걸고, 편한 말투로 말을 했다. 그래서 그 민감한 부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막 말했는지도 모른다. 나도 미래도 말없이 걷기만 한다. 굉장히 어색한 기분. 아, 이건 역시 사과해야겠지. 내가 잘못한 게 100%니까.


“저… 미안해, 괜히 소리 질러서.”

“네, 오빠가 친구가 돼 달라고 부탁한다면, 전 얼마든지요. 오히려 제가 기쁜걸요?”


내 사과를 듣고 대답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자기 말을 하는 건지 미래는 힐끔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희세보단 조금 작고, 리유보단 큰 정도인 미래인지라 나를 꽤나 올려보는 각도가 된다. 야무지게 말하는 그 말이, 목소리가 너무 예쁘고 귀여워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을 뻔 했다. 습관이란 건 무섭구나. 늘 리유 머리 쓰다듬어 줬으니까, 본능적으로 귀여운 걸 보니 쓰다듬으려 했어. 키도 어째 리유만큼 작진 않지만 비슷하게 작고 아담한 사이즈라 나도 모르게. 몸통 중간 즈음에서 멈춘 손은 무안하게 허공을 맴돌다 다시 내려갔다.


“점심이나 같이 먹을래? 돈가스집 가기로 했는데.”

“아! 그래도 되나요? 그럼 저야 좋죠! 헤헷, 늘 혼자 밥 먹었는데.”

“그래, 그럼 같이 가자. 오늘은 내가 사줄게.”

“엣, 정말요! 고마워요, 오빠! 히히히.”

“…….”


이건 좀 심하다 싶은데. 대화만 보면 아주 정상적인 남자 선배/여자 후배의 대화 같다. 근데 미래, 나랑 동갑이라니까! 아무리 빠른 년생이라고 해도 그렇지! 너무 정확하고 확실한 존댓말에 굉장히 듣기가 거북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동갑인 남자애에게 존댓말을 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다른 여자애들한테도 이렇게 존댓말을 쓸까. 그럼 ‘언니’ 라고 하려나. 우왁, 그건 그것대로 어색할 것 같은데. 애초에 왜 같은 동갑한테 언니 오빠 하는 건데. 이상해. 확실히 이상해.

하지만 대화 끝에 미래가 맑고 청명한 목소리로, 약간 콧소리 담긴 애교 섞인 목소리로 ‘고마워요, 오빠!’ 라고 하니까 도저히 반박할 말이 없다. 청각만으로 사람을 요리할 수 있다면 분명 미래는 그 쪽 방면에 소질이 있을 것이다. 그냥 너무 좋다. 더 오빠 소리를 듣고 싶다.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어 방만한 자산운용을 하며 미래가 원하는 것 모든 것을 사주고 싶다는 생각이 0.6초 정도 들었다. 아아, 위험하다. 어쩌면 고도로 계산된 술수일지도 모른다. 역시 여자는 요망한 것이야…….


“근데, 존댓말은 왜 자꾸 쓰는 거야?”

“음…… 신경 쓰이나요?”

“……아무래도.”


걸어가며 쓸데없이, 내 독단으로 미래 데려가면 뭐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뭐, 상관없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친구가 돼서 같이 밥 먹는 건데. 용돈도 별로 없는 내가 아끼던 돈까지 꺼내 사 준다는 것도, 친구가 된다는 그 말을 이행하기 위한 작은 선물이다.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같이 걸어가며 무난히 할 말이 필요해 미래에게 물어봤다. 미래는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묻는다. 나는 또 ‘오빠’ 소리를 안 한다고 할까 두려워 살짝 주춤거리며 말했다. 미래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한다.


“존댓말 캐릭터니까요.”

“……어?”

“존댓말 캐릭터요. 좋지 않아요? 공손하고, 참할 것 같고, 말도 잘 들어줄 것 같고. 아아, 참된 여성 캐릭터의 표본이지 않나요!”

“아니야, 전혀! 그냥 존댓말만 쓰는 거잖아! 애초에 존댓말 캐릭터가 그런 섹드립을 쳐?!”

“에헤헤, 섹드립이라니. 아까 그 섹*프렌드, 역시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군요?”

“아니, 아니야! 그런 게! 애초에 여고생이!”

“꺄하하─”


존댓말 캐릭터라니……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아니 이상하잖아, 무슨 만화 설정도 아니고! 거기다 뒤이어 이어지는 미래의 말에 나는 또 잔뜩 당황하게 돼 버렸다. 별로 이해하고 싶진 않지만, 굳이 이해하자면 그런 거 같다. 존댓말은 일종의 만화 캐릭터 설정 같은 거. 이유가 있다거나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 단순히 자기가 정한 설정대로 행동하고 연기하는 거구나. 하아.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미래와 친구 되는 거, 갈 길이 멀구나.





“왔…….”

“어, 미래도 데려왔어.”

“안녕하세요.”


돈가스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서니 바로 눈에 잘 띠는 자리에 세 명이 나란히 앉아 있다. 다행이 아직 음식을 시키지 않은 모양이다. 성빈이는 뒤돌아 있어서, 리유는 희세 말을 들으며 희세를 쳐다보고 있느라 내 쪽을 못 봤고 의외로 가장 먼저 나를 보고 반긴 것은 희세. 하지만 뒤따라 들어오는 미래를 보고 바로 표정이 굳어 버린다. 조금 어색한 기분에 뒷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미래는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그…… 그거야! 친구 하기로 했거든. 그래서 같이 밥 먹기로 했어.”

“오빠가 사 주신다고 해서요! 헤헷.”

“……사 줘?”

“아… 어! 처음이니까!”


방금 전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엔 굉장히 밝은 표정의 희세였다. 순수하게 반가움 가득한 얼굴. 하지만 미래와 함께 들어오니 순식간에 엉망진창인 표정이 됐다. 자리에 앉아도, 그 어색하고 화난 것 같은 냉랭한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성빈이도 약간 난감한 표정으로 사태를 지켜본다.


“너 나 밥 사준 적 있어?”

“아…… 없지.”

“하! 아주 잘 나셨네, 둘이 다 해먹지 그래?”

“무, 무슨 말을…….”


희세는 대놓고 ‘나 기분 안 좋아’ 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솔직히 뜨끔 하긴 하지만 그건 변명거리가 있다. 희세한테 밥 사준다고 하면 틀림없이, ‘여자애라고 또 밥 사주는 거지? 나 참, 얼마나 고리타분하고 가부장적인 거야, 너란 애는? 여자애는 그저 보기 좋은 꽃으로만 보는 거지? 멍청이, 바보.’ 하고 욕하고 변태로 매도할 게 뻔하잖아. 그래서 안 사준 건데…… 단단히 삐친 모양이다.


“저…… 그건 역시 질투하는 말인가요?”

“무, 무슨! 뭐야, 기분 나빠. 이상하게 존댓말이나 쓰고. 이딴 변태자식한테 ‘오빠~ 오빠~’ 하는 꼬락서니 하곤. 그러니까 친구가 없지!”

“어이어이, 너무 심하잖아 말이.”

“뭐! 내가 없는 말 지어냈어! 흥!”


이 와중에 미래는 전혀 개의치 않고 희세에게 직구를 날린다. 희세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얼굴까지 살짝 빨개졌다. 의외의 타격을 받아 창피한 건가. 그러면서 엄청 미래를 험담한다. 나는 안색이 굳어지는 미래를 보고 희세에게 말했지만 희세는 막무가내다. 미래는 굳어진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희세를 본다.


“그럼 반말로 할게. 됐지?”

“……뭐, 맘대로 해! 재수 없으니까.”

“아…… 그, 이럴려고 데려온 게 아닌데…….”

“됐어요, 오빠 잘못 아니니까. 음, 그럼 성빈이랑 리유한테도 반말로 말해도 되나?”

“응, 괜찮아.”

“어, 어.”


아까와 마찬가지로 미래의 의외의 강한 공격에 희세는 다시 한 번 움찔 한다. 하지만 심통이 단단히 난 희세인지라 툭 내뱉듯이 말하고 고개를 돌린다. 자존심 강한 희세이니 한 번 정한 태도를 바꿀 리는 없고. 아아, 이거 시작부터 꼬인 것 같은 기분인데. 미래는 소심할 것 같다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어 버리고 기세부터 희세를 압도해 버렸다. 그리곤 당돌하게 성빈이와 리유에게 말한다. 리유는 방긋 웃으며 대답하고 성빈이 역시 희세 눈치를 조금 살피다 일단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미래랑 직접 얘기했을 때엔 수줍어하거나 소심할 것 같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다만 친구가 전혀 없으니까, 단순히 그럴 것이다─ 나는 남자애니까 어떻게 다른 개념으로 섹드립을 치며 접근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다. 지금 보니 성빈이랑 리유랑도 잘 얘기한다. 반말을 쓰지 않고 평범하게 얘기하니까 정말 평범한 여고생이다. 벌써부터 리유 다루는 법을 터득했는지 리유에겐 귀엽다고 칭찬해줘 리유의 함박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성빈이와도 하하호호 거리며 잘 수다를 떤다. 방금 소개 받은 사이여서 진심으로 우러나는 수다를 떠는 건 아니고 다분이 의식적이고 가식적인 수다이긴 하지만. 이 정도 사교성이면 결코 평균에서 떨어지는 수준은 아닌데, 왜 친구 한 명 없이 혼자 있었던 걸까?

희세는 잔뜩 삐쳐서 아예 미래 쪽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다. 거기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아서 완전히 고립돼 있다. 늘 무리의 중심이 되는 희세이기에 더욱 처량해 보인다. 하긴, 지금은 얘기의 중심이 미래에 관한 것이기에 희세가 끼기엔 무리인 분위기다. 나는 희세와 미래 사이에 껴서 굉장히 난감해졌다.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분명 넷이 먹기로 한 점심이었는데, 특히 희세가 기대했던 돈가스 집이었는데 괜히 미래를 데려와 이런 분위기가 됐으니 책임감이 느껴진다. 작은 목소리로 ‘미안해, 희세야.’ 하고 말해도 희세는 ‘닥쳐, 됐어.’ 하고 마찬가지로 작게 대답한다. 작은 목소리지만 찬 기운이 풀풀 풍기는 게 심상치 않다. 아아, 이런.

결국 희세는 점심 먹는 내내 한 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돈가스만 먹는다. 반면 미래는 깔깔 웃으며 성빈이와 리유와 잘도 얘기한다. 금세 친해진 것 같은 세 사람. 나는 중간에 껴서 어색해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고. 체할 것 같다.


작가의말

저는 오늘 굉장히 한가했습니다. 오래간만의 휴일이기에, 잔뜩 써서 한 2.4만자나 3.6만자 정도 쓰고, 오늘은 8000자만 올리고 비축분을 삼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제 게으른 근성은 결국 밤 9시까지 이 정도밖에 못 쓰게 됐네요. 이 정도가 제 능력이죠, 후훗... ㅠ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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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7

  • 작성자
    Personacon 피리휘리
    작성일
    14.02.13 21:23
    No. 1

    츤츤츤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21:29
    No. 2

    데레데레하게 될 날이 언젠간 오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2.13 21:25
    No. 3

    미래가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이는 건 대체 어째서지... 왠지 엄청 익숙한 느낌... 학교에서 자주 본 듯한... ...어? 생각해보니까 이 소설의 히로인들과 비슷한 성격인 여자애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있었어요, 저! 특히 희세랑 아주 똑같은 여자애가 있었어!
    슬슬 주인님이라는 어휘도 나와주면 좋겠는데. 뭔가 '주인님'이라는 단어에는 굉장한 프라이드가 느껴진단 말이죠. 요즘 주인님이라는 단어를 쓸 일이 많아서 그런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21:31
    No. 4

    아뇨... 그게! 여자애가 남자애한테 '주인님' 이라고 하면 이상하지 않아요?! 나만 그런가? 나만 가부장적인가? 뭔가 종속된 것 같고... 음... 여튼 이상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2.13 21:41
    No. 5

    보통은 이상하죠. 그런데 막상 부르고 나니까 별 느낌 없던데요? 노예의 프라이드!(?)
    아마 작가님이 정상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22:06
    No. 6

    남자가 그러는 건 괜찮지만, 여자가 그러면 잡혀갑니다. 뭔가 이상하지만 그렇잖아요, 그렇게 돌아가는 세상이니까. 아, 물론 저는 주인님이라고 부를 여자가 있으면 대환영입니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없기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6 rosemary..
    작성일
    14.02.13 21:42
    No. 7

    주인님은 다메요...!! 또다른 누님캐릭의 등장이 절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22:07
    No. 8

    후후, 누님 캐릭터를 좋아하시는군요. 그러고보니 요즘 사감 선생님이 뜸한데... 애초에 서브 캐릭터로 설정을 잡아놔서 등장 비율이 조금... 아쉽긴 하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로야크
    작성일
    14.02.13 23:07
    No. 9

    누님 캐릭터 사랑합니...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23:14
    No. 10

    누나는 좋지요, 저도 좋아해요. 다만 이 이상 끼워 넣을 여지가... ㅠ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케이루스
    작성일
    14.02.13 23:54
    No. 11

    파티가 붕괴되고 있군요. 희세랑 멀어지면 안되는데...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4 07:07
    No. 12

    뭐...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금방 화해하겠죠. 허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dsafsdas..
    작성일
    14.02.14 00:28
    No. 13

    누님캐릭터? 암환자 어떤가요. 아파서 한 이년 꿇은 전학생.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4 07:08
    No. 14

    저 아만자에여. 아만자라구요. 음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광인입니다
    작성일
    14.02.14 01:12
    No. 15

    좋다.. 누난데 암환자였던... 그래서 막 작고 연약한 누난데.. 몸매는 크고우람한.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4 07:08
    No. 16

    음... 작고 연약한데 몸매가 크고 우람하다니... 베이글녀 같은 스타일인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3 23:31
    No. 17

    아아...이런 밉보일짓을...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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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16화 - 4 +25 14.02.19 2,318 58 22쪽
65 16화 - 3 +23 14.02.19 3,071 56 19쪽
64 16화 - 2 +23 14.02.17 3,065 7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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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15화 - 4 +17 14.02.15 2,508 62 25쪽
61 15화 - 3 +24 14.02.14 2,311 53 24쪽
» 15화 - 2 +17 14.02.13 2,397 60 20쪽
59 15화. 가까운 미래에, 당신은. - 1 +23 14.02.12 2,513 64 19쪽
58 14화 - 4 +21 14.02.11 2,262 59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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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14화 - 2 +17 14.02.09 2,416 58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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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13화 - 3 +21 14.02.06 2,450 56 22쪽
52 13화 - 2 +25 14.02.05 2,104 57 20쪽
51 13화. 전화위복 - 1 +21 14.02.04 2,699 53 17쪽
50 12화 - 4 +16 14.02.03 3,155 55 21쪽
49 12화 - 3 +24 14.02.02 2,586 73 22쪽
48 12화 - 2 +16 14.02.01 2,497 76 17쪽
47 12화. 데이트? 소풍? - 1 +23 14.02.01 3,041 6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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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11화 - 3 +21 14.01.31 2,712 6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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