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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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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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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0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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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13화 - 2

DUMMY

0.1 ─ 이상한 기척을 느꼈다. 촉각이라는 제 6의 기관이 존재한다면 충분히 그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눈을 감고, 공기의 흐름을 느낀다. 이것은……! 위험한 촉이구나.


0.6 ─ 생각은 들지만 사람 몸은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다. 황급히 휴대폰의 동영상을 멈추려 손을 뻗었다.


1.2 ─ 아니, 동영상보다는 지금 바지를 올리는 게 더 급한 것 같은데! 이 상황을 들켰을 때, 차라리 야동을 보고만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것보다 몸의 움직임은 느리기에, 나는 다른 손으로는 바지를 올리고자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


‘철컹.’

“…….”

“…….”


문이 열렸다. 열린 문에선 눈부신 빛이 들어온다. 그리고 그 빛을 역광으로 받아, 잘 보이지 않는 한 사람. 키가 늘씬하게 크고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의 소유자─ 사감선생님이다. 사감 선생님이 안경 너머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느꼈지. 하지만 내 욕구는 내 말을 듣지 않았어. 음, 내 생각엔 좀 자극적인 것 같군, 안 그래? 아이… 이런.


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격이 되었다. 휴대폰에 틀려 있는 야동은 미처 끄지 못하고 정지만 누르고 홈 키를 눌러 겨우 바탕화면으로만 나왔고, 바지 역시 미처 다 올리지 못해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엉덩이를 쭉 뺀 흉한 자세로 엉거주춤하게 서 겨우 중요 부위만 가렸다. 선생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나와 대치하고 있다.


“……오호.”

“아, 아, 안녕하세요! 하하!”


잠시 정적과 함께 이어진 대치. 선생님은 곧 씨익 웃는 표정이 되시더니 방으로 들어오셔서 문을 닫으신다.


“무얼 하고 있었을까, 우리 꼬꼬마는……?”

“으아, 자, 잠깐만요……!”


나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기에, 멍하니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선생님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말한다. 으악, 잠깐만! 지금 바지도 안 올렸는데! 거기다가 지금… 그 상태라구요! 가까이 오지 마요! 하지만 선생님은 미처 저지할 겨를도 없이 성큼 내 앞으로 다가오신다.


“어멋…♡”

“으아악! 이건 너무하잖아요?”

“후후후. 부끄러운 거야, 꼬꼬마?”


선생님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내 어깨를 꾸욱 누르며 자리에 앉힌다. 그리곤 슬쩍 시선을 아래로 내리더니 은은한 미소와 함께 말씀하신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 소리치듯 말하며 얼른 바지를 올린다. 허나 얄궂게도 내 바지는 편한 체육복인지라, 바지를 올려 입는다고 해도 그리 효과가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생님이다. 이 상황을 친누나에게 들켜도 굉장히 창피한 상태인데, 가족도 아니고 남!! 성인 여성인 여선생님한테!! 들키다니!! 부끄러움보단 수치심이 강하게 느껴져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조, 좀 노크 좀 하고 들어오라구요!!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잖아요, 프라이버시!!!”

“주말엔 내가 여기 왕이라고 예전부터 말하지 않았나? 그보다 깡도 좋네? 여자애들이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기숙사에서, 잘도…… 후후.”

“아앗! 잠, 잠깐만요!”


선생님은 안경을 올려 쓰며 농염한 웃음을 지으신다. 그러더니 전광석화와도 같은 속도로 잽싸게 내 휴대폰을 뺏으신다. 으아, 안 돼! 그것만은! 하지만 선생님은 매정하게도 휴대폰을 뺏어 화면을 켠다.


“Ah, fuck! more! more fucking me!! Fuck!! Ah…”

“……이런 취향이구나, 너.”

“아뇨!! ‘이런 취향’은 뭔데요!!”

“그래도 신토불이인데, 웬만하면 국산 봐.”

“뭘 추천하는 건데요, 선생님이!! 아악, 돌려 줘요!!”


선생님은 내 휴대폰 화면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살색 물결의 향연에 악의 가득한 웃음을 지으신다.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소리를 최대로 키우신다. 순식간에 좁은 방 안은 헐떡이는 숨소리와 야릇한 교성으로 가득 찬다. 너무너무 부끄러워 휴대폰에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선생님은 좀처럼 휴대폰을 돌려주시지 않는다. 몇 차례나 손을 뻗어 겨우 선생님에게서 내 휴대폰을 찾았다.


“후훗, 방해한 것 같아서 미안해지네.”

“그럼 나가주세요!! 제발!! 창피해 죽겠으니까!!”

“후후, 얼굴 빨개진 꼬꼬마도 귀여워.”

“아아…… 으아아! 그만 두세요!!”


나의 절규에 선생님은 은은한 농염한 미소를 지으시며 슬쩍 내 쪽으로 몸을 숙이신다. 잠깐, 그러면 가슴골 보이거든요?! 왜 그렇게 목 늘어난 티 입고서 그렇게 저 보라는 듯이 몸을 숙이시는 건데요?! 거기다 그 손! 왜 그 손을 바루하지 못하고 제 쪽으로 향하는데요! 으아아!!

선생님은 가녀린 손을 내 얼굴 쪽으로 가져다댄다. 그러더니 서서히 얼굴에서 목으로, 목에서 쇄골로, 쇄골에서 가슴 쪽으로 점진적으로 손을 내린다. 선생님의 손이 지나간 자리마다 찌릿찌릿거리는 기분이 들면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아 등골이 다 오싹해졌다. 야릇한 기분이 전신을 맴돌아 정신이 다 아찔하다. 안돼, 안 돼! 여기서 이성을 잃으면 안 돼! 얼른 선생님을 팍 밀쳤다.


“안 돼요!!”

“어멋. 어딜 만지는 거야?”

“아아, 아앗.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후후…… 우리 꼬꼬마, 여고 다니니까 소녀 감수성 다 됐네?”


밀쳐낸다는 게 또 덥석 선생님 가슴을 팍 만지며 밀쳐내 버렸다. 희세였다면 당장 싸대기를 한 대 시원하게 날렸겠지만 나보다 한참 나이가 있는 성인 여성인 선생님은 그리 당황하지 않고 다만 정색하곤 말씀하신다. 가뜩이나 당황한 상태인데 그런 실수까지 저지른 나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쩔쩔매며 빌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재미있다는 듯 보며 웃으신다.


나는 억울함과 수치심이 섞여 얼굴이 터질 듯 빨개진다. 문득 내 방 문고리가 보인다. 멀쩡하게 아직도 버튼이 눌려 있는 상태다.


“아니, 저거 문 안 잠겨요?!”

“응, 안 잠겨.”

“좀 말 좀 해줘요 그럼!! 문 잠궜는데 기껏! 제대로 잠겨 있었으면 이런 참사도 안 일어날 꺼 아니에요!!”

“어머, 누가 누구한테 화내는 걸까? ‘여고’ 기숙사에서 어떤 짓을 하고 있던 꼬·꼬·마 씨♡?”


선생님의 말에 나는 입을 꾸욱 다물었다. 뭐라고 말을 이을 수가 없다. 선생님은 여유 있는 미소를 띠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내려다보신다. 팔짱을 끼고 안경을 올려 쓰고 미소를 띠고 있는 그 모습에 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과 수치심을 느끼며 절로 고개를 숙였다.

창피해 죽겠다. 자살하고 싶다. 가뜩이나 예전에도 누나한테 들켰을 때 얼마나 놀림거리가 됐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야동에 이어서 그것마저 들켰다. 다만 그 때는 지금처럼 현장에서 발각당한 건 아니고, 미숙한 뒤처리 덕에 들킨 것이다. 그 때에도 누나만 보면 잔뜩 부끄러워지고, 당분간은 못 할 정도로 정신적 충격이 컸는데. 지금은 아예 남인 선생님이다. 내가 아무리 선생님에 비해 어려도 남자애고, 선생님이 아무리 나에 비해 나이가 많아도 여자다. 어색한 건 어색한 거다. 선생님은 전혀 그런 티가 없어 보이지만.


“뭐, 한 건 이해하는데. 들켰다고 그렇게 죄인 같은 표정 짓지 마. 네가 뭐 나 강간했어?”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창피해서 그런 거잖아요!!”

“후후, 그래야지. 늘 말하잖아? 그 나이 또래 남자애들은 항상 불끈불끈한 상태니까. 이해해.”

“그렇게 쿨하게 이해한다고 하지 말아주세요! 더 비참해지니까!!”


선생님은 왜 또 이런 부분에서는 관대하신 건지, 어른의 눈을 하곤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신다. 그 관대한 말투가 나를 더욱 창피하고 비참하게 만든다.


“나가주세요. 혼자 있고 싶어요.”

“어멋♡ 질풍노도네. 선생님이 도와줄까♡”

“도와주긴 뭘 도와줘요!! 어, 어떻게 도와줄 건데요?”

“……말해도 돼? 말 하면 들을 거야?”

“아닙니다. 용서해주세요. 그냥 나가주세요. 그런 과도한 관심 됐으니까!!”


선생님은 너무 도발적인 말로 나를 더욱 당황케 만든다 ‘도와주다’니, 뭘!! 하지만 그 뒷이야기를 들을 용기는 나지 않는다. 듣는다는 선택지를 고르면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정말 해 버릴 것 같은 기세의 선생님이니까. 선생님은 여전히 날 귀엽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신다. 그러나 썩 기분이 좋진 않다. 리유 정도나 되면 자기가 귀여움 받는 걸 좋아하겠지, 난 남자애에다 전혀 귀엽지 않다고. 뭐, 선생님이 볼 때엔 한참 애기니까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하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본다면 키 178짜리 덩치 큰 남자 고등학생이 뭐 귀엽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간다.


“뭐─ 천천히 즐겨. 방해해서 미안하네.”

“안 해요, 안 해!!”

“후후. 선생님은 이만 비켜줄게. 즐거운 시간 보내.”

“됐거든요! 아, 안 한다구요!!”

“후후후…….”


선생님은 숫제 날 놀리는 말투다. 배시시 웃으시고는 슬쩍 나가신다. 선생님이 나가고 방에 우두커니 혼자 남은 나는 그야말로 만신창이이다. 몸도, 마음도, 모두……. 특히 마음이 걸레짝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총으로 난사 당해서 너덜너덜하게 된 것 같은 기분이야.


정신연령이 어떨 진 몰라도, 기본 남자가 17~18살 정도 되면 육체는 다 컸다고 생각한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중 3때부터 키 크는 것도 거의 멈췄고, 이만하면 다 컸다 싶다. 근데 그런 나의 소우주를……! 피도 섞이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엄청 추한 모습으로…… 아아아아~!! 자살하고 싶어! 진짜로! 나는 의자에 멍하니 앉아 허공을 쳐다봤다.


사람은 왜 사는 걸까. 밥 먹고 똥 싸고, 일하고, 공부하고, 자고. 왜 매일 뻔한 것들을 반복하며 사는 걸까. 그건, 사랑하는 사람과 몸을 부비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각박한 세상, 이리저리 치이고 깨지고 부서지고, 온통 상처투성이인 마음을 서로 보듬어주고, 껴안아주고, 체온을 느끼고. 상처투성이인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치료해주는 것이다.

그렇다, 그렇기에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스러운 행위. 그 때만큼은, 그 침실 안에서만큼은 어떤 권력자라 해도, 어떤 독재자라 해도 그저 편한 오빠일 뿐이다. 편한 오빠이자, 편한 남편이자 친구와도 같은 친근한 대상. 평소에는 돌처럼 무뚝뚝한 남자일지라도, 침대 안에서는 자기 아내에게 어리광을 피울 수도 있다. 회사에선 어떤 남자보다도 능력 있고 강인한 철벽 그녀일지라도, 침대에서만큼은 남편에게 약한 여자일 수 있다. 자신들의 민감하고 약한 부분까지 모두 보일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과 만나, 서로 같은 침실에서 사랑을 나누고 싶다…… 는 게, 내가 생각하는 성 행위의 정의이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고 있는 건… 그 성 행위의 전 단계인… 그걸 들켜버렸잖아! 아아아악!!


“아아아악!!”


나는 깊은 사색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팔짝팔짝 뛰며 절규했다. 이제야 현실이 본격적으로 인식돼서 그렇다. 정말 미칠 듯이 창피하고 수치스럽다. 아아, 어떡해야 하나. 정말 어찌해야 하나. 아아아아. 손 끝이 저릿저릿한 느낌이야. 울고 싶은 기분이다. 정말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침대에 힘없이 몸을 던지고 배게에 얼굴을 파묻었다. 내가 취하고 있는 행동들을 리유가 하면 참 귀엽겠지만, 난 덩치 큰 남고생이기에 그냥 흉하고 찌질할 뿐이다.

이래서 성희롱을 그렇게나 큰 형벌로 치는구나. 이래서 희세가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엄청 뭐라 하는구나. 선생님이 날 성희롱한 건 아니지만, 전혀 연고가 없는 다른 이성에게 본인의 은밀한 부위를 보이는 것은 정말 엄청 큰 수치심을 유발한다. 여자들은 불편하겠네, 그런 게 아무리 옷을 입어도 드러나니. 앞으론 정말 웬만하면 희세 몸매를 음탕한 눈빛으로 보지 말아야겠다. 스스로 겪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는 나다. 그나저나 지금은 너무 창피해서 땅 파고 그 안으로 들어가 묻히고 싶다. 한동안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그대로 죽은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숨만 쉬었다.


“하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한숨을 팍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깜빡이며 좁은 내 방 내부를 쳐다봤다. 두 평 남짓한 이 작은 공간. 여기서, 난 무엇을 하려 했던가. 바로 위층에 여자애들이 살고 있고, 지금도 숨 쉬며 자고 있고 혹은 수다를 떨고 있고. 방을 나가면 바로 성인 여성의 보금자리인 사감실도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또 들킨 게 그나마 선생님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성인 여성이시니까, 적어도 처녀(!)는 아닐 테고. 아니, 부끄러운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나이가 스물아홉인데. 게다가 아까 그 여유 있는 태도로 봐선 분명하다. 그 눈빛은…… 실제 물건(?)을 한 번 이상은 봤었던 태도야. 어쨌든 선생님은 별로 놀라지 않고 도리어 ‘그럴 수도 있다’ 라는 식으로 납득해주셨잖아. 만약에, 만약에 다른 여자애가 문을 열고 그 현장이 발각됐다면……. 아아. 신이시여. 그것만은 제발. 나도 나대로 충격이겠지만, 그 여자애도 엄청난 충격이겠지. 가녀린 소녀 감수성에 엄청난 상처를 입힐 수도 있어. 좀 흉악하긴 하잖아, 그게. ……뭐, 애초에 내 방을 벌컥 열어 젖힐만한 애는 거의 없지만. 그 정도로 친한 건 성빈이지만 성빈이는 성격상 절대 그렇게 문을 열리가 없지. 희세 정도라면 벌컥 열 수 있겠지만 희세는 기숙사에 안 살잖아.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들켰다는 수치심은 어쩔 수 없다. 당분간 이걸로 또 얼마나 놀리실지. 어쩌면 약점 잡힌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공허한 시선을 들어 바닥을 봤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휴대폰. 아까 절규하면서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 던졌었다. 바닥에 놓여 있는 휴대폰은 뭔가 불쌍한 느낌마저 들었다. 녀석은 그저 주인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한 것일 뿐인데. 주인님을 위해 열심히 영상을 틀고, 소리까지 틀어줬는데 주인이란 놈은 정작 자기 성을 못 이겨 이렇게…… 휴대폰을 들어 품에 간직했다. 휴대폰은 마치 생명이라도 있는 양 따뜻하다. 영상을 틀어놔서 액정이 열 받은 것이겠지만.


어쨌든 뭐, 잔뜩 창피하고 수치스럽고 괴로운 정신을 어떻게든 수습은 했지만 더 할만한 여력은 나지 않는다. 산통이 다 깨졌지, 이건. 아니, 애초에 여자 선생님한테 들키고, 여자 선생님이 말로 잔뜩 조지고(?) 나갔는데 다시 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그 정도로 욕정에 찌들어 있는 쓰레기는 아니라고, 나라고. 이미 다 가라앉기도 했고.

비명을 지르며 절규하고, 혼자 좌절하고 절망하고, 그러니 잔뜩 땀이 났다. 아까 선생님한테 들켰을 때 등줄기에 흐른 식은땀도 있고. 그 전에, 하던 중(?)에 적당히 흐른 땀도 있고. 땀이 흘러 몸이 찜찜하고 심리적인 이유로도 온통 끈적끈적한 기분이다. 그래, 샤워를 하자. 깨끗한 물에 몸을 깨끗하게 씻는 거야. 그럼 더럽혀진 이 마음도 깨끗하게…… 될 리가 없지! 하아, 그래도. 씻을까.


샤워 준비는 간단하다. 유니폼 반바지와 반팔 티만 입고, 속옷과 수건을 샤워 바구니에 넣고 나가면 끝이다. 다만 샤워실에 올라가기 전에 선생님께 허락을 맡아야 하지만.

젠장, 그걸 생각 못 했구나. 샤워하기 전에 선생님한테 말해야 하는 것을. 왜 간단한 샤워마저 이런 통제를 받아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인데, 왜 학교가 나의 자유를 통제하는가! 하는 불평을 할 수 없는 게, 그런 식이면 난 쫓겨나야 하니까. 원칙적으로 여기서 살면 안 되는 거니까. 반드시 선생님을 동행하고 샤워장에 가야한다. 아니면 최소한 허락이라도 맡고. 근데…… 방금 전에 들켰었는데 어떻게 말해! 어떻게 선생님 눈을 보냐고!! 으아아!! 다시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아니, 아니야. 난 샤워를 하겠어. 그게 뭐 큰일이라고! 내가 내 의지대로 씻고 싶을 때 씻겠다는데! 나는 자유인이다. 그럴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인간이란 말이다. 성큼성큼 당당하게 사감실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막상 사감실 문 앞에 서니 다시금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조심스럽게 문을 노크했다.


“누구야?”

“저, 접니다.”

“어멋♡ 들어와.”

“어멋♡는 뭐에요!! 어휴.”

‘철컹.’


선생님은 낮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하다 더듬거리며 말하는 내 목소리에 금세 반기는 목소리가 되신다. 약간 끈적거리는 야릇한 목소리로 말해 더욱 내 화를 돋우신다. 짜증을 잔뜩 부리며 사감실로 들어간다.


“으흥. 좀 실망인데. 벌써 끝난 거야?”

“뭐가요!! 안 했다니까요!! 아 진짜, 아무리 그래도 저도 남자인데! 섹드립 좀 작작 쳐요!”

“후후, 다행이네. 안 한 거였다면♡ 선생님 실망할 뻔 했잖아. 그렇게 빠르면…♡”

“아 쫌!!”


선생님은 계속해서 무리한 성적 농담을 하신다. 부끄럽기도 하고, 괜히 아까 들켰던 게 떠올라 나는 더욱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이런 격한 반응 보일수록 선생님이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선생님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손오공이겠지.


“응, 왜 왔어? 상담하러?”

“아뇨, 샤워하려구요.”

“어멋♡ 아직 같이 샤워하는 건 너무 이르지 않나……♡?”

“아뇨, 아뇨!! 누가 누구랑 같이 샤워해요!! 아 정말!!”


상담은 무슨 상담을 하겠는가. 선생님한테 들킨 충격으로 인한 소년감수성을, 다시 그 선생님한테 상담을 하다니. 어지간히 변태 아니고선 그렇게는 못 하겠다. 선생님의 섹드립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뭐 하나만 꼬투리가 잡히면 줄줄 이어지는 연환공격에 나는 정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이 터져 버릴 것 같아. 여자한테 농락당하는 거, 이젠 너무 싫다. 아니, 언제 뭐 좋아서 당한 적이 있겠냐만은.


“으흥흥♡ 어디 보자…… 그럼 너 따위 때문에 내가 귀한 시간 버려가면서 샤워장 앞에 서 있어야 한다는 거야?”

“……뭐, 지금 시간대면 씻는 애가 있을까요?”

“후훗. 몰래 여자애들 알몸 보려는 속셈이야?”

“그럴 리가요!! 무슨 또 엉뚱한 소문 퍼지려고!!”


선생님의 말에 나는 펄쩍 뛰며 말했다. 기껏 리유 가슴 한 번 만졌다고─물론 그게 작은 일은 아니지만─ 엄청난 왕따에 시달렸던 나다. ‘여자애 알몸 보려고 샤워장에 숨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소문 나버리면…… 아아, 그 때엔 왕따가 아니라 매장이겠지. 그대로 여자애들에게 멍석말이를 당해도 할 말이 없을 거야. 그리고 애초에 볼 생각도 없어! 아니, 무척 보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보지는 않을 거야! 나중에, 먼 훗날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때 같이 샤워할거야! ……뭔데 이런 변태적인 포부를 당당하게 말하고 있지.


“그럼 자…… 이거 붙여 놔.”

“오. 언제 이런 걸 만들었데요?”

“교무실에서 할 것 없을 때 만들었지. 붙여 놓고 씻어. 최대한 네 존재감을 퍼뜨리면서.”

“네, 감사합니다.”

“아마 이 시간대에 씻는 애들은 없을 거야. 미친년들 다 자고 있거든.”

“미, 미친년이라뇨.”


선생님은 심드렁하게 말씀하신다. 선생님이 주신 건 코팅한 종이. 큰 글씨로 ‘지금 남자 정웅도 씨 께서 목욕중이오니 여성동지들은 출입을 금할 것’ 이라고 쓰여 있다. ‘남자’ 쪽은 굉장히 큰 글씨에, 진하게 처리에 빨간색 글씨로 강조돼 있다. 으흠. 코팅된 종이 뒷면엔 뾱뾱이라고 해야 하나, 그거 있잖아. 유리 같은 것에 입김 하─ 불어서 붙이는, 그거. 진공상태가 돼서 잘 붙는 거. 그게 달려 있어 문에 붙이기 좋을 것 같다. 나는 꾸벅 인사하고 그걸 샤워바구니에 넣었다. 선생님은 씨익 웃으며 손을 내저으며 안녕 하신다.


작가의말

전편에, 13편인데 12편이라고 당당하게 써 놨더라고요... 어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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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12화 - 2 +16 14.02.01 2,496 76 17쪽
47 12화. 데이트? 소풍? - 1 +23 14.02.01 3,040 65 18쪽
46 11화 - 4 +11 14.01.31 2,606 57 19쪽
45 11화 - 3 +21 14.01.31 2,711 69 17쪽
44 11화 - 2 +9 14.01.30 2,538 56 17쪽
43 11화. 시험 - 1 +7 14.01.30 3,003 106 19쪽
42 10화 - 4 +11 14.01.29 2,900 70 23쪽
41 10화 - 3 +11 14.01.29 2,759 56 22쪽
40 10화 - 2 +7 14.01.28 3,738 8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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