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324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2.09 13:49
조회
2,415
추천
58
글자
24쪽

14화 - 2

DUMMY

이미지 변신에 나서기로 한 나. 하지만 막상 무얼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착한 이미지를 보이고 싶은데, 아무 일도 없는데 뭘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없는 일 억지로 만들어서 할 수도 없고. 답답한 마음에 점심시간이 됐다. 뭐, 뻔한 시간이다. 오늘은 희세는 친구들하고 먹겠다고 빠지고, 성빈이와 리유 셋이서 간단하게 도시락을 시켜 먹었다. 아무래도 간편하고 싸니까, 도시락이 좋다. 남는 시간은 평화로이 노는 시간.


“저기.”

“응? 나?”


성빈이와 나는 제자리에 앉고, 성미와 지선이 자리가 비어 리유가 그 자리에 앉아 셋이 떠들고 노는데 누군가 와서 말을 건다. 특색 없는 긴 생머리에 안경, 살짝 작게 떠 이지적이고 냉정해 보이는 눈빛. 특유의 생기 없는 얼굴빛에 약간 쌀쌀맞게 느껴질 정도의 냉정한 말투. 하지만 반장은 기본적으로 착한 아이다. 다만 저 말투나 행동거지는 그냥 그런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냥. 말투나 태도가 쌀쌀맞고 냉정해 보이지만 실은 남을 배려하는 착하고 소심한 보통의 여자애가 맞다. 자주 반의 일을 도맡아 하고 보이지 않는 데에서 혼자 끙끙대며 일하는 걸 몇 번 봤으니까. 그런 걸 볼 때마다 꽤나 애처로워 보여 많이 도와줬다. 그래서 반장하고의 친밀도는 성미나 지선이 정도 수준? 성빈이나 리유, 희세처럼 아주 친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말을 걸고 얘기나 몇 마디 나눌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도와줬으면 해서.”

“아, 뭔데?”


봐, 이 정도라니까. 처음엔 내가 도와준다는 도움의 손길도 어색해서 거부하던 애였는데, 지금은 스스로 도와달라고 부탁할 정도잖아. 이 정도면 친해진 것이라 생각하고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표정한 반장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핀다. 웃으니까 살짝 예쁘네. 성빈이와 리유에게 말하고 일어나 반장을 따라간다.


“어…… 반장?”

“응?”


반장을 따라 걸어가며, 나는 살짝 어색한 기분으로 말을 걸었다. 이유인즉, 반장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그랬다. 반에 꼭 그런 애 있잖아. 존재감 별로 없고, 성적은 높은 편이고, 일은 성실히 하는데 기가 약하다고 해야 하나, 캐릭터가 별로 없어서 정말 존재감이 별로 없는 애. 반장 역시, 약간 떠밀리다시피 반장이 된 격인지라. 누가 봐도 희세가 반장이 되는 게 맞아 보이지만, 희세 본인이 반장 선거 전에 미리 ‘그다지 하기 싫은데’ 하고 말했다고 한다. 해서 지금 반장이 반장이 됐지. 사실 반장이라고 반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반의 중심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그냥 잡심부름 많이 하는 일꾼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그 리더십을 발휘하는 반의 중심 역할은 희세가 하고 있지. 서, 설마, 귀찮은 잡무와 실무는 반장에게 떠넘기고 본인은 화려하게 학교 생활을 즐기려고 하는 희세의 계략……! 나희세, 무서운 아이…….

하지만 난 반장의 이름을 모른다. 그래도 좋은 이미지 쌓으려는데 이름을 모르면 안 되잖아. 사실 굉장히 실례되는 일이긴 하다. 지금이 학기 초도 아니고, 꽤나 기간이 흘렀는데도 이름을 못 외우다니. 게다가 이번이 처음 물어보는 게 아니라, 저번에도 물어 봤었거든. 조금 껄끄럽지만, 물어 봐야지.


“반장 이름이 뭐더라?”

“……그거 실례 아니야? 이번이 세 번째인데.”

“아아, 미안. 이름을 되게 못 외워서. 정말 미안.”

“……한채영.”

“아아~ 맞다 그거였지!”


반장은 조금 말을 끌며 말한다. 뜸을 들이며 말하는 건 반장의 특징이지. 마음에 안 드는 말투로, 약간 서운한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하니 뭔가 조금 마음이 찔리긴 하지만 최대한 익살스럽고 활기차게 말했다. 이에 반장은 넌지시 자기 이름을 말한다. 아, 채영이었어. 이름이 좀 옛 이름 같고 흔하니까 잘 안 외워지잖아. 따, 딱히 반장이 이미지가 너무 없어서 못 외우는 건 아니고. 채영이와 함께 복도를 걷는다.

어딜 가나 했더니, 도서관 쪽으로 가고 있다. 도서관과 채영이. 참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 점심 시간이라 그런가 도서관에는 사람 한 명 없다. 아니, 딱히 점심시간이 아니라고 사람이 있긴 할까. 팍팍한 인문계 고등학교 현실상 느긋하게 이런 데서 책을 읽을 만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냐고.


“뭐 도와주면 되, 채영아?”

“책 조금만 들어주면 되. 그리고…… 키 안 닿는 곳 책도 꺼내주면 고맙고.”

“응, 그런 거야 얼마든지! 으쌰 으쌰!”

“……흐흣.”


채영이의 조용조용한 말투에 나는 활기차게 대답했다. 지나치게 오버해서 말해서 그런가, 채영이는 내 말투가 재미난 지 살짝 웃는다. 그래도 나쁜 분위기는 아닌지라 나 역시 살짝 웃었다.

채영이가 지시하는 대로 책을 빼고 정리하고 있다. ‘근데 이건 뭐하는 책인데?’ 하고 물으니 ‘응, 담임선생님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하고 짧게 대답하는 채영이다. 흐음, 과연. 반장답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다지 자기한테 도움 되는 일도 아니고, 반에 대한 일도 아니고, 애들한테 보여 지는 일도 아니고, 수고롭기만 수고로운 일인데도 묵묵히 하고 있는 채영이를 보니 참, 기분이 좋다. 나도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담임 선생님이 찾으시는 책은 꼭 다 위쪽에 있는 오래된 책들이다. 나는 어느 책이 어디 있나 잘 모르기에 책을 못 찾고 허둥대고 있다. 채영이가 능숙하게 번호를 보며 책을 찾는다. 오, 멋있네. ‘도서관 자주 오나봐?’ 하고 물으니 ‘……도서 위원도 같이 하고 있으니까.’ 하고 대답한다. 그렇구나. 확실히 이미지하고 잘 맞아. 채영이는 굉장히 성실한 아이구나.

문득 힐끔 채영이를 쳐다보게 됐다. 묵묵히 책을 찾고 있는 채영이. 채영이는,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 처음에도 딱히 무덤덤한 말투와 행동이라, 나를 썩 피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왕따 사건 때에도, 그다지 바뀌지 않은 태도였을 뿐 아니라 딱히 따돌림을 하진 않았다. 어쩌면, 나를 변태라고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래, 이런 애들이 한 명 한 명 쌓인다면 나는 변태가 아니게 되는 거잖아?!


“채영아.”

“……?”


채영이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돌려 나를 쳐다본다. 정말, 표정으로 ‘?’ 라고 말하는구나. 여자애면 그래도 발랄하게 ‘어, 왜?’ 하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잠시 헛기침을 하고 물었다.


“네가 볼 때에, 나 변태 같아?”

“……갑자기 그건 왜.”


채영이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아니, 그렇게 왈칵 붉히는 건 아니고, 볼 끝만 살짝 상기된 수준이다. 굳이 ‘변태’에 관한 걸 물어봐서가 아니라 그리 친하지 않은 남자애인 내가 말을 걸어 그런 정도인 것 같다. 낯을 가리는 소심한 성격인 채영이이니 분명 그러리라. 최대한 자연스럽게, 채영이를 자극하지 않을 말을 생각하며 말했다.


“다들 당연하게 나보고 ‘변태 씨’ 라고 하니까, 진짜 변태라고 인식하는 건가 하는 생각 들어서.”

“……별로.”

“그치?! 별로 아니지?”

“…….”


채영이는 내 말에 고개를 돌리며 매정하게 말한다. 딱히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그리 표현을 잘 못하는 소심한 성격인 채영이라 그런 것이다. ……그럴 거야, 아마. 딱히 내 말이 들을 가치가 없어서, 혹은 듣기에 기분 나빠서 저렇게 홱 고개를 돌린 건 아닐 거야. 그렇게 믿자. 그래도 ‘별로’ 라고 말 했잖아! ……그게 내가 변태인 것에 별로라고 생각하는 건 지, 아니면 나 자체가 별로라는 건 지 잘 모르겠지만. 조용히 입을 다물고 채영이가 부탁한 일이나 한다.


“읏…….”


채영이는 작은 A자 모양 사다리를 가지고 높은 곳의 책을 꺼낸다. ‘높은 곳은 나 시키지’ 하는 말이 나오려다 잠시 생각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저번에도, 내가 한다고 나섰다가 정작 책이 어디에 뭐가 있나 잘 몰라 결국엔 채영이가 꺼냈었다. 거기다 그런 말 하면 틀림없이 별로 좋아하진 않겠지. 희세였다면, ‘의자 가져다 놓고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잖아! 지금 여자라고 무시하는 거?’ 하고 화냈겠지. 그래, 얌전히 있자.

하지만 채영이, 뭔가 불안해 보인다. A자 모양 사다리는 너무 작고 약해 불안하게 흔들릴 것만 같다. 사다리가 작은지라 그걸 타고 올라가서도 손이 잘 닿질 않아 연신 팔을 쭉 뻗고 몸을 책장 쪽으로 뻗는 채영이. 사다리 좀 앞 쪽으로 붙여서 하지. 정 안 닿으면 내가 위에 올라가고 채영이가 밑에서 ‘B열 3번째 책. 응, 그거랑 그 옆에 책.’ 하고 리모콘처럼 조종하면 될 텐데. 능동적으로 찾는 건 못해도 시키는 건 잘 하는데. 하지만 역시, 말은 하지 못하고 생각으로만 그치고 힐끔 채영이를 쳐다볼 따름이다.


“조금 위험한 것 같은……”

“어, 어!”

“에엣!?”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과업이나 제대로 수행합시다─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려다 또 뭔가 불안한 마음에 여전히 채영이를 쳐다본다. 가뜩이나 말수도 적은 애, 몸도 가녀린데다 힘도 하나도 없어 자칫 잘못하면 무거운 책의 무게에 휘청 하며 쓰러질 수 있다. ……그건 너무 과장된 건가. 불안한 마음에 ‘위험한 것 같은데.’ 하고 말하려는데 정말로 위험해 보이는 채영이. 크고 아름다운 책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있다 균형을 잃고 휘청휘청 하고 있다. 나는 얼른 위기를 감지하고 채영이 앞으로 갔다.

이런 위기상황은 많이 봐 왔지. 주로 리유가 많이 빠지는 상황인데. 책장이 쓰러지거나, 기찻길에 빠지려고 흔들흔들 하고 있거나 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많이 봐 왔는지라 이 정도 상황은 신속·정확하게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다. 뭐, 그런 상황을 해결할 때마다 변태라고 불리는 여러 사건들이 뒤이어 일어나 굉장히 난감했지만, 지금은 그럴 일이 전혀 없을테지. 무엇보다 사람 구해주겠다는 좋은 일인데 변태라고 할 리가. 휘청이고 있는 채영이를 붙잡아 균형만 잡아주면 끝인 일이다. 잠깐만. 근데…… 어디 잡아야 하지?! 엉덩이? 히익! 허리? 어멋…… 골반? 아앜! 당최 잡을 만한 선택지가 없잖아! 어딜 잡아도 변태인 선택지잖아!!


“꺄앗!”

“우아악!”


붙잡을 곳이 애매하다고 쓰러지고 있는 채영이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설령 내 몸으로 쿠션 역할을 대신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채영이를 구해야지. 채영이는 외마디 가냘픈 소리를 내며 그대로 내 쪽으로 쓰러진다. A모양 사다리는 힘없이 옆으로 나동그라지며 채영이를 떨군다.


“아야야…….”

“으읏…….”


만화였다면 와장창 혹은 쿠당탕 하는 요란한 효과음과 함께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겠지. 하지만 이건 현실이다. 그런 건 없이 오직 욱신거리는 고통만이 몸을 관통할 뿐이다. 얼핏 보면 굉장히 야릇한 광경으로 보이기도 한다. 도서관 책장과 책장 사이는 그리 넓은 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나와 채영이 역시 그리 몸집이 작은 편이 아니다. 채영이는 작고 가냘픈 편이긴 하지만, 나이는 열일곱밖에 안 되도 육체는 얼추 성인에 가깝게 다 자란 상태니까. 그래서 좀 더 야릇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속으로 생각한 그대로, 쿠션 역할이 되어 채영이를 받치고 있다. 채영이가 들고 있던 책은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다. 나한테 안 떨어진 게 천만다행이다. 나는 아파 죽겠지만 채영이는 무사한 것 같다. 헌데…….

자세가 조금 애매하다. 그러니까, 이런 자세를 전문용어로 뭐라고 하더라. 기승위? 여성상위? 아, 요즘은 여성상위 시대니까! 이 정도 체위(!)는 기본이지! 으하하!… 명백히 성희롱이다, 이거.

나는 채영이의 허리를 양 손으로 붙들고 있다. 그것도 꽤나 꽈악 세게. 아마 넘어지는 채영이를 붙잡기 위해 본능적으로 그런 것 같은데. 채영이는 그대로 쓰러져 내 위에 앉아있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고, 그 위로 채영이가 앉아있는 모양새다. 난 채영이의 허리를 꽈악 붙들고 있고.

채영이는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불편한 자세와 쓰러지는 채영이의 몸을 받은 충격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까앗!!”

“으어억…….”


곧 야릇한 상황과 자세를 인지한 채영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어나며 냅다 내 배를 손으로 꾸욱 눌렀기에 나는 둔탁한 신음을 냈다. 채영이는 그리고는 나에게서 한 3m 정도 떨어져 서 있다. 나는 자세를 수습하고 겨우 일어났다. 책장과 책장 사이가 좁아 거의 접혀있다시피 쓰러져 있었거든. 간신히 일어나 채영이를 살폈다.


“괜찮아?”

“…….”


채영이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빤히 나를 쳐다볼 뿐이다. 얼굴을 잔뜩 붉힌 체로. 뭔가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않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인다. 음, 이거 골치 아픈데. 분명 채영이는 이 상황을 오해한 것이다. 내가 자신이 쓰러지려한 걸 받쳐준 사실은 전혀 보지 않고 내가 자신을 만진 것만 보고 있어. 아니, 한창 여린 마음씨의 소녀 감수성이니 이해는 하겠다만, 거기에 원래 성격이 소심하고 말수 적은 성격인 것도 인정 하겠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나를 변태로 매도하는 건 정말 아니지! 생명의 은인인데! 아니, 생명 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엄연히 여자애가 다칠까보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구해준 신사인데! 변태라니, 당치도 않지! ……사실 그냥 나 혼자 설레발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워낙 변태로 오해받는 일이 많으니까.


“저…… 채영아?”

“히익! 오, 오지 마!!”

“에 에엣?! 오, 오해야, 채영아!”


내가 한 마디 하며 슬그머니 한 발자국 다가가니 발작하들 몸서리를 치며 뒷걸음질 치는 채영이. 명백히 오해하는 표정이다. 아아, 저 표정. 익숙한 저 표정. 벌레나 역겨운 것을 경멸하듯 쳐다보는 것과 동시에 꽤 많은 양의 두려움까지 섞여 있는, 그런 표정.…… 누가 보면 내가 강간 미수라도 한 줄 알겠다야!! 저 표정은 최근에 봤었지, 성빈이가 내 알몸 봤을 때.…… 괜히 창피해지려 하네.


어쨌든 손을 내저으며 아니라고 말하지만 채영이에게는 이미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미… 미안! 갈게!’ 하며 떨어뜨린 책을 줍고 가 버린다. 그 도망치듯 도서관을 나가는 모습에 나는 더욱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변태 이미지를 벗어 버리기는. 좋은 이미지를 쌓기는. 아줌마 여기 변태 이미지 하나 추가요! 어휴……. 채영이는 그나마 말수도 적고 누구에게 소문을 내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니 그것이라도 위안을 삼아야지.…… 무슨 위안을 삼아, 나 좋게 봐주던 애 한 명 나가 떨어진 건데!! 아우!!



“그래가지고!! 아휴”

“변태 씨가 잘못 했네.”

“어째서!! 내 말을 잘 듣긴 한 거야?!”

“그야, 물론 안 들었지. 네가 변태인 건 너무 당연한 거잖아?”

“아니야!! 그렇게까지 당연시 여기지 마!! 내가 왜! 어째서! 얼마나 신사적인데!!”


나는 약간 말싸움 하듯 말하고 있다. 성미는 특유의 냉소적인 말투로 나를 놀리듯 말한다. 아까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사람 심리라는 게, 굳이 해답이 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말이라도 해서 공감을 얻으려는 그런 게 있잖아. 해서 채영이랑 별로 친하지도 관계도 없는데다 특유의 냉소적이고 냉철한 성격으로 제 3자의 위치에서 잘 사건을 이해하고 파악해줄 것 같은 성미에게 말을 했는데. 다른 의미에서 전혀 의미 파악이 틀린 것 같아 괴롭다.

성미는 씨익 웃으며 냉정한 말투로 말한다. 성미는 나를 놀려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하기에, 무슨 말을 하든 결국 나=변태 라는 결론으로 수렴하게 된다. 처음에 성빈이가 소개해줄 때엔 창피하다고 말하는 걸 망설이던 수줍은 소녀였는데. 점차 알게 되니 조금씩 심한 말을 한 마디씩 내뱉더니 지금은 이 지경이다. 나오느니 한숨이다.


지금은 체육시간, 성미랑 같이 체육창고로 가고 있다. 아, 저번에 우리가 짐 넣었던 체육창고 말고, 요즈음 쓰는 정말 체육창고. 피구에 쓸 공을 가질러 가야 하는데 굳이 성미가 나를 데리고 왔다. 선생님은 분명 성미만 시켰는데, ‘변태 씨 가자!’ 하며 데려왔다. 귀찮기도 하고 구태여 따라올 이유나 의리 따위 없었지만 ‘변태 씨’ 라고 말하는 성미를 보니 오기가 생겨 따라오게 됐다.

난! 변태가! 아니라니까!! 그래, 방향 선회다. 나를 변태라고 여기지 않는 애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는 방법이 아니라, 나를 변태라고 생각하는 애들의 인식을 바꿔 보는 거야. 일단은 그나마 친한 축에 속하는 성미이니, 내 말을 잘 들어줄 수 있으리라. 열쇠로 달그락 자물쇠를 열고 체육창고로 들어갔다.


“에휴, 정리 좀 하지. 으헉! 먼지!!”

“그러게. 어우~ 장난 아니야.”


체육창고는 공통적으로 어둡고, 정리돼 있지 않고, 먼지가 많다. 분명 우리처럼 가끔씩 물건을 꺼내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성미는 왼쪽 선반의 여러 공들을 만지다 한 마디 한다. 나 역시 반대편 선반의 축구공들을 들어보며 말했다.


‘끼익, 철컹.’

“히잇! 뭐, 뭐야?!”

“바람 때문인 것 같은데. 봐.”

“우으으…… 어둡잖아! 열어!”

“열어도 계속 닫히는데?”


체육창고의 문은 저절로 닫힌다. 성미는 깜짝 놀라 살짝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설마 문이 잠겼겠어? 그럼 이게 만화지. 과연 문은 별다른 문제 없이 열린다. 다만 내가 손을 놓으니 다시금 바람에 의해 문이 닫히려 한다. 성미는 신경질적으로 외친다. 약간 겁에 질린 것 같은 표정과 목소리에 나는 조금의 귀여움을 느끼고 알았다고 하고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저런 면이 있네, 저 성미가. 아니, 잡생각은 집어 치우고, 얼른 내가 변태가 아니라는 거를…….


‘툭.’

“응?”

“히익!”


공을 찾으며 말을 꺼내려다, 문득 바닥에 반짝이는 물체가 있다. 오옷, 동전? 운 좋은데! 허리를 숙여 동전을 줍는데 엉덩이에 무언가 톡 부딪힌다. 뭔가 둔탁하고, 살짝 말랑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손도 아니고, 엉덩이에 옷에 싸인 피부의 촉감만으로 그런 걸 완벽하게 파악하긴 힘들다. 하지만 외마디 비명이 나오는 건 확실하게 들린다. 고개를 돌려 보니 성미다. 내가 동전을 주우며 허리를 숙여 엉덩이를 쭉 빼서 성미 엉덩이와 부딪힌 것 같다. 아아, 이거… 좀 난감한 상황인데.


“아, 미안.”

“벼, 변태야! 무슨 생각으로……!”

‘끼이익, 쾅!’

“으햣, 꺄앗!!”


성미는 잔뜩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서 세 발자국 정도 멀어지며 말한다. 나는 뭐라고 변명을 하려 했지만 체 입을 떼기도 전에 쾅 소리를 내며 때 좋게 문이 닫힌다. 큰 소리와 함께 어둠이 찾아오니 성미는 다시 겁에 질린 표정이 돼서 비명을 지른다.


“벼, 변태야! 저리 꺼져! 나, 나한테 뭘 하려고!”

“어이어이, 아무 짓도 안 했다고. 내가 뭐 마법 써서 문 닫았겠수?”

“그, 그…… 힛! 서, 설마, 이러려고 체육창고로……?!”

“야! 진짜! 나 데려온 거 너잖아!!”


성미는 소녀 감수성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다. 누가 그랬던가, 부끄럼쟁이는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평소엔 냉소적이고 독설을 거침없이 내뱉는 성미이지만 지금은 왠지 부끄러운 소녀 1이 돼선 굉장히 보수적이고 수줍은 표정과 태도로 나를 대하고 있다. 어째 억지스런 이유로 나를 변태로 몰아가는 수법은 희세의 그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뭐, 희세처럼 아예 완전한 억지인 건 아니고,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기도 하니까. 진정시키고자 양 팔을 번쩍 어깨 높이로 들고 진중한 표정으로 성미에게 다가갔다. 항복의 의미일까, 이 자세는. 나는 아무 의도도 없다는 걸 표현하는 것이다. 조금은 내 마음이 먹혔는지 성미는 겁먹은 표정에서 조금 언짢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보소, 내가 뭘 하겠어? 나는 한낱 평범한 고등학생일 뿐…… 으악!”

“꺄아아앗!”


나는 성미에게 다가가며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 사실이 그러니까. 하지만 그 말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이쿠 발이 미끄러졌네. 왜 하필 거기에 돌부리 같은 게 있는 것일까. 아니, 체육창고면 실내인데?! 바깥도 아니잖아!


“……!”

“……!”


음, 그러니까 이런 걸 전문용어로 뭐라고 할 텐데. 강간? 히잌! 내가 성미를 덮치고, 성미는 나에게 깔린 것처럼 됐다. 내가 쓰러지며 그대로 성미를 덮치며 쓰러져서, 나는 성미를 포갠 체 뜀틀 할 때 쓰는 흰 쿠션 위로 쓰러졌다. 쿠션의 높이가 있기에 아예 눕듯이 쓰러진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성미를 덮치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이 된 건 사실이다. 필사의 노력으로 팔꿈치로 몸을 고정시키고 멈추었기에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별 생각 없이 그대로 쓰러졌다면 아마 얼굴이 그대로 성미 가슴에 파묻혔겠지. ……잠깐만. 그럴 걸 그랬나? 으앜 그러면 이미 훌륭한 변태잖아!


지금 체육창고는 문이 닫혀 어둡다. 거기에 성미는 잔뜩 겁먹은 상태고. 그런 상황에서 내 결백을 주장하다 그대로 성미를 덮쳐 버렸다. 실수라곤 하지만, 성미가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겠지. 얼마나 놀랐는지 비명도 못 지르고 얼어붙어 있는 성미가 안쓰러워 보일 정도이다. 아니, 근데 왜 나는 자꾸 이런 상황에만 처하는 건데! 어떻게 꼭 이런 장소에서, 이런 상황에! 아, 근데 묘하게 달달한 좋은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여자애들은 기본적으로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은은한 아로마 향 같기도 하고, 좀 아찔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


“벼, 변태야아아!!!”

“으헉, 아악! 잠깐 이건 오해가!”

“이, 이…… 변태새끼가!! 죽어, 죽어!!”

‘팡, 팡!’

“악! 아악! 잠깐만, 거기는!”


성미는 곧 펑 하고 얼굴이 빨개진다. 거센 힘으로 나를 밀치더니 엄청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른다. 나는 잠시 좋은 느낌의 성미 냄새 때문에 이성을 잃었다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손을 내저으며 결백을 주장하지만 이미 늦었겠지. 어떻게 봐도 변명 같겠지. 그렇지만 이건 기억해줘. 나 역시 돌부리의 마수에 빠진 피해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뭐라는 거야!! 성미는 왈칵 나를 밀쳐내고 그대로 냅다 내 엉덩이를 발로 차 버린다. 호쾌하고 빠른 공격에 다른 의미로 정신이 아찔하다. 성미의 발차기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 쾌검……! 아니, 발차기니까 쾌각이려나. 어찌나 세게 차는지 무슨 북을 치는 것처럼 ‘팡 팡’ 하는 소리가 난다. 고통이 체 가시기 전에 성미는 다시 한 번 발로 엉덩이를 찬다. 고통에 찬 표정으로 나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앞으로 나뒹구는데 번쩍 발을 들고 있는 성미가 보인다. 으악, 잠깐만! 지금은 앞부분이라고! 거길 그 호쾌함으로 그렇게 차 버리면 난, 난……!


그러더니 정말 의외인 건, 성미는 그대로 주저앉아서 울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우와, 어떡해야 하냐. 어떤 상황이던 여자애가 울어 버리면 남자는 당황하게 돼 있다. 방금 전까지 매정하게 내 엉덩이를 걷어차 버리고 중요한 그곳마저 없애버리려던 여자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쉽게 울어버린다. 괜히 미안해져서 ‘괜찮아? 노, 놀랐어?’ 따위의 말을 하지만 성미는 ‘저리 꺼져, 변태새끼야! 꺼지라고!’ 하며 손으로 탁탁 나를 칠 따름이다. 너무 놀라서 그럴까. 안절부절 못하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성미 옆에서 성미를 달래주느라 진땀이 다 난다. 성미는 잠시 아이처럼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조용히 울고 있다.


작가의말

어제 늦게 올렸으니 오늘은 일찍 올릴게요! 그리고 딱히 변태는 아닙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9 17화 - 3 +18 14.02.21 2,108 54 20쪽
68 17화 - 2 +25 14.02.20 2,155 54 18쪽
67 17화. 여난. - 1 +23 14.02.20 2,352 44 18쪽
66 16화 - 4 +25 14.02.19 2,318 58 22쪽
65 16화 - 3 +23 14.02.19 3,070 56 19쪽
64 16화 - 2 +23 14.02.17 3,065 72 20쪽
63 16화. 놀러가요, 오빠! - 1 +21 14.02.16 2,874 63 19쪽
62 15화 - 4 +17 14.02.15 2,507 62 25쪽
61 15화 - 3 +24 14.02.14 2,311 53 24쪽
60 15화 - 2 +17 14.02.13 2,396 60 20쪽
59 15화. 가까운 미래에, 당신은. - 1 +23 14.02.12 2,513 64 19쪽
58 14화 - 4 +21 14.02.11 2,261 59 19쪽
57 14화 - 3 +18 14.02.10 3,803 139 21쪽
» 14화 - 2 +17 14.02.09 2,416 58 24쪽
55 14화. 나는 변태가 아니야! - 1 +21 14.02.08 2,484 51 19쪽
54 13화 - 4 +28 14.02.07 3,022 76 19쪽
53 13화 - 3 +21 14.02.06 2,450 56 22쪽
52 13화 - 2 +25 14.02.05 2,104 57 20쪽
51 13화. 전화위복 - 1 +21 14.02.04 2,698 53 17쪽
50 12화 - 4 +16 14.02.03 3,155 55 21쪽
49 12화 - 3 +24 14.02.02 2,586 73 22쪽
48 12화 - 2 +16 14.02.01 2,497 76 17쪽
47 12화. 데이트? 소풍? - 1 +23 14.02.01 3,041 65 18쪽
46 11화 - 4 +11 14.01.31 2,606 57 19쪽
45 11화 - 3 +21 14.01.31 2,711 69 17쪽
44 11화 - 2 +9 14.01.30 2,538 56 17쪽
43 11화. 시험 - 1 +7 14.01.30 3,003 106 19쪽
42 10화 - 4 +11 14.01.29 2,901 70 23쪽
41 10화 - 3 +11 14.01.29 2,759 56 22쪽
40 10화 - 2 +7 14.01.28 3,739 85 2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