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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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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작성
14.02.1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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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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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글자
19쪽

14화 - 4

DUMMY

틀렸어, 이제 꿈도 희망도 없어.

아, 망했어요~

신도 부처도 없는 건가, 이 세상은.


지금 내 기분이 그렇다. 오늘 하루는 왜 이리 병신스러울까. 변태라는 누명을 벗어보고자 노력하려 했을 뿐인데 정작 그런 노력을 펼치기도 전에 꿈이 거세당했다. 게다가 점점 수위가 강해져선. 앞의 두 사건은 그나마, 사건을 본 사람이 당사자 두 명밖에 없고, 서로 창피하니 서로 말을 할 만한 이유가 없으니 공론화될 가능성도 매우 적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극도로 창피한 일도 아니었고. 실수를 한다면 충분히 발생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마지막 정희와의 사건은……. 휴우. 지금도 혼자 있고 싶다. 그 사건 이후로 오후 내내 쭉 여자애들과의 소통을 중단하고 마음의 문을 닫은 체 엎드려만 있다. 생각해봐, 여자애들 다 보는 앞에서 그랬는데(?). 창피하다 못해 수치심에 절로 얼굴이 달아오른다.


“우, 웅도야~”

“…….”


옆에서 성빈이가 부르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됐어, 다 필요 없어. 난 변태 쓰레기인걸. 나로 인해 괜히 어색하고 껄끄러운 일이 일어나니까, 아예 아무하고도 보지도 얘기하지도 않아야지. 애초에 남자애가 여고에서 잘 지내리라 생각한 것부터가 잘못이지. 아니, 애초에 자위를 배운 시점에서부터 잘못이야. 거지같은 일본 야동 사이트……. 아니, 애초에 태어난 게 잘못이지. 이 기구한 팔자, 뭣하러 태어나서 이러고 아등바등 사는지. 자기비하 따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연달아 이런 좌절을 겪으니 나는 크게 의기소침해져 자기비하의 끝을 달리고 있다. 그냥 잠만 자고 싶은데 수업시간에는 대놓고 엎드려 자면 선생님이 뭐라고 하니 꾸벅꾸벅 졸 따름이다. 아, 귀찮다. 그냥 편해지고 싶어. 나 같은 변태가 살아서 무엇 하겠어. 밥만 축내고 또 음흉한 눈짓을 하며 여자애들을 보며 음심을 다지겠지. 커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잉여 쓰레기 인간이 돼서 성폭행이나 강간이나 성추행이나 하고 다니겠지. 난 그런 변태니까.


무기력함은 한 번 빠지면 늪처럼 계속 빠지게 된다. 나도 지금 그런 상태가 된 것 같다. 어느 것 하나 할 의욕을 못 느끼고 그저 한숨만 내쉬고 있다. 바보 같네. 병신 같네.


“야.”

“……?”


불만에 찬 목소리. 기력 없는 머리를 들어 보니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불만스런 표정인 희세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약간 한심해 보인다는 느낌으로 내려다본다.


“너 뭐야.”

“……변태요.”

“짜증나. 따라와.”

“…….”


희세의 말에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확하다. 희세는 그런 나를 짜증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다시금 엎드렸다. 하지만 그 무기력한 목덜미로 찰싹 소리가 나게 희세의 매운 손이 작렬한다. ‘안 따라와! 멍청아!’ 하는 호된 꾸짖음도 함께. 나는 순한 양이 돼 희세를 따랐다.






“뭐야, 너. 뭐하자는 거야.”

“……뭐가.”


그런건가. 싸구려 훈계. 너 답지 않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의기소침하냐. 이런 게 왕따까지 극복했던 정웅도가 맞냐. 실망이다. 널 변태로 놀리는 건 내 재미니까, 풀 죽어 있지 마라. 남자새끼가 그런 걸로 풀 죽어 있을 양이냐. 모든 잘못을 변태인 것에 돌린 체 아무것도 안 하려 하잖아. 그런 건 비겁하잖아. 얼른 원래대로의 너로 돌아와. 나다운 게 뭔데.

그런, 뻔한 훈계겠지. 지금 아니꼬운 표정으로 노려보며 말하는 희세 역시.


“눈에 영혼이 없잖아. 지금도.”

“……뭐 별로 상관없잖아. 변태에게 걸맞는 눈빛이지.”

‘찰싹!’

“!”


희세는 내 대답에 불문곡직 따귀를 때린다. 불이 번쩍 들어오는 기분이다. 아버지한테도 맞아본 적 없는데. 타인에게 뺨을 맞아보는 건 처음이다. 문학작품이나, 혹은 인터넷 잡글 같은 데서 읽었을 때, 뺨은 맞았을 때 고통보다는 모욕감이나 분노 등이 더욱 크고 때리는 상대방도 그것을 의도하고 때리는 것이라고 한다던데. 아니, 모욕이나 분노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순수하게 고통이 느껴지는걸. 볼이 얼얼하고 화끈화끈해. 나름 손이 매운 편인 희세라 그런가. 희세 역시 딱히 나한테 모욕감이나 분노를 주려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때린 것 같은데.

예상 시나리오에 뺨을 때리는 건 전혀 없었기에, 나는 조금 얼떨떨해졌다. 정신은 확실히 밝아졌다. 찰진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지만 인적이 드문 복도 쪽이기에 이 광경을 본 애는 아무도 없다.


“뭐하는 병신 짓거리야?! 찌질이 연극? 불쌍한 척? 네가 뭐 약소민족 따라하는 패전국이야?! 치졸해, 옹졸해, 비겁해!”

“…….”


희세는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말한다. 이건 그나마 충격이 덜하다. 내가 예상한 싸구려 훈계에 있는 레파토리니까. 그래도 첫 타자를 따귀 때리기로 시작해 굉장히 충격적이긴 하지만.


“너 변태인 게 싫어? 변태 씨라고 불리는 게 싫어?”

“…….”


희세의 말에 나는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다. 무언가 막혀 있다 뻥 뚫리는 기분? 그래, 그 한 마디 때문에, 그 한 마디 듣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의지 때문에 지금 이렇게 벌레가 되고 싶을 만큼 자학하고 있었지. 나는 걸신들린 사람이 먹을 것을 발견한 것처럼 절박한 표정이 되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만 싫어. 널 놀려야 모두의 재미니까.”

“…….”


희세는 사악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희망이 꺾어지는 것 같은 기분에 희세가 더욱 얄밉게 느껴진다. 조금 치켜 올라간 희세의 눈매가 오늘 따라 몹시도 얄밉게 보인다. 예쁜 눈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 눈매가 꼭 여우새끼 같다. 희세는 그 눈으로 나를 보더니 갑자기 한 발자국 다가온다.


‘툭!’

“남자새끼가 이런 것 가지고 풀 죽어서. 이런 말은 안 할게. 그럼 그것도 또다른 남녀차별이니까.”

“……어.”


희세는 나에게 다가와 내 양 어깨에 손을 툭 올리고 말한다. 완전하게 얼굴을 서로 마주보게 돼서 조금 난감하다. 희세는 계속 말을 잇는다.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죽을상을 짓고 그럴만한 일은 아니잖아! 남자고 여자고를 떠나서, 그렇게 부정적인 에너지를 뿜고 있으면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구. 넌 반에서 한 명밖에 없는 남자애니까. 그리고…… 그, 그거야! 좀 설 수도 있고 그러지 않아? 뭐, 뭐라는 거야, 에에에. 어쨌든!”

“……?”


희세는 말하면서 부끄러운지 내 눈을 피하며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뒤에 붙이는 ‘뭐라는 거야’ 하는 혼잣말은 정말 희세답지 않다. 저건 내가 혼자 망상할 때 뒤에 주로 붙이는 건데. 어이어이, 저작권 침해라고, 그거. 내 유행언데. 희세는 짜증 부리듯 ‘아 됐으니까!’ 하고 내 어깨에서 손을 땐다. 그러더니 다시금 야무진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어쨌든! 기운 차려! 그렇게 풀 죽어 있으면 보는 사람이 다 짜증나니까!”

“어…….”


생각지도 않은 희세의 위로에 나는 도리어 멍한 기분만 든다. 희세가 굳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나를 이렇게까지 북돋아줄 필요는 없을 텐데. ‘기분 나쁜 변태’ 정도로 나를 인식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 친구로는 생각해주는구나. 그건 기쁜데. 여고생 입으로 ‘설 수도 있지’ 하는 힘든 말도 꺼내서 최대한 내 기분 배려해서 위로해주고. 다시금 약간 날카로운 그 눈매가 예뻐 보인다.




“아아이…….”

“자, 얘기 해!”

“??”


나는 껄끄러워하며 정희의 시선을 피했다. 정희는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이놈의 입이 화근이지. 입이 방정이야. 희세가 나를 위해 위로해줬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나를 좌절하게 됐던 얘기를 하나 하나 말했다. 처음엔 간단하게 말하고 대상자도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희세가 눈을 빛내며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계속 물어보는 바람에 결국 말했다. 약간 애교까지 섞인 콧소리로 말해서 결국 말해버렸지. 어쩌면 그건 미인계가 아니었을까. 나희세, 무서운 아이……!

희세는 내 고민을 모두 듣더니 아까의 악의 미소 비슷한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잠시 짓더니 이내 표정을 밝게 바꾸고 ‘그럼 도와줄게!’ 하고 말한다. 뭔가 굉장히, 굉장히 불길한 느낌인데. 그러더니 거의 강요하다시피 나를 이끌고 정희 곁으로 데리고 왔다. 그래, 눈 딱 감고 그냥 아까 일 미안하다고만 해야지. 제발 희세에게 그런 얘기 미주알 고주알 다 말했다는 것만 희세가 발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창피하잖아! 남자새끼가 여자애한테 꽁알꽁알 다 일러바친 것 같잖아!


“뭔데, 뭐?”

“응, 웅도 아까 너랑 부딪히고 한 것 때문에 되게 상처 받은 것 같아서. 서로 얘기해서 풀으라고.”

“아아…….”


하지만 꼭, 희세는 내가 바라는 것의 반대로 움직인다. 제발 말하지 말았으면 했지만 기어이 말했다. 과연 정희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뭐야, 변태 씨 마음에 두고 있었어? 아하하, 내 엉덩이가 한 엉덩이 하긴 하지.”

‘탁.’

“야아이…… 여자애가 그럼 안 되지.”

“왜왜, 또 꼴려?”

“……그런 말도 하지 마!!”


역시 호쾌한 성격의 정희다. 그런 뒤끝은 전혀 없구나. 도리어 남자애인 내가 더 찌질해 보일 정도다. 거기다 더해서 말하는 수준도 수위를 넘나든다. 남자애인 나를 도리어 부끄럽게 만들다니. 정희도 확실히 무서운 아이이긴 해. 정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한다.


“야, 사나이 정웅도가 뭐 그래?! 가슴 쫌 만졌다고, 뭐 닳어? 까놓고 말하면, 내 가슴이 잘못 한 거지! 거기 달려 있었으니까! 아하하하.”

“……그렇게 말하고는 있는데 너 얼굴 빨개졌어.”

“아하하, 무슨 소리야! 전혀 창피하지 않아! 창피하지 않으니까!! 아 썅!!”

‘팍 팍 팍!’


아주 당당하게 농담 식으로 말하는 정희. 하지만 말하면서 점점 눈에 띄게 얼굴이 달아오른다. 내 지적에 부끄러움이 폭발했는지 내 등짝을 손으로 팍팍 치며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하다 갑작스럽게 깊은 화를 분출하며 의자를 발로 차 버린다. 여자애 치곤 굉장한 공격성과 폭력성이다.


“아 어쨌든 만진 건 만진 거잖아! 됐어, 너 좋았으면 됐지. 아주 표정 볼만 하더라?”

“내가 언제!! 난 그냥, 그냥 받친 거잖아?!”

“그래도 좋긴 했을 거 아냐?! 남자애니까!”

“아니, 안 좋았어!!”

“얼마나 욕심이 많은 거야?! 희세 것 정도는 돼야 만족하는 거야?! 수캐 같은 놈!”

“으악! 희세 얘기는 거기서 왜 나오는데!! 게다가 수캐라니!!”


정희는 기어이 그렇게 드러난 공격성의 화살을 나에게 돌린다. 그러더니 적나라한 가슴공격(?)을 가한다. 그래, 좋긴 좋았어! 특히 그 탄력이! 그치만 그런 소감까지 다 말해버리면 완전변태가 돼서 나비가 될 테니까! 희세와 싸우듯이 정희와 말싸움을 하게 됐다. 어째 평화롭게 웃는 쪽으로 가더라. 괜히 옆에 있던 희세까지 왈칵 얼굴이 붉어져서 난감한 표정이 됐다. 아아, 모르겠다. 결국엔 정희가 잠시 머리를 식히곤, 쿨하게 ‘됐어, 잊어.’ 하고 끝을 냈다. 얼굴이 빨개져서 괜히 무안해서 내 어깨를 툭툭 치는 정희. 키는 나만큼이나 커서, 사실 부끄럽지만 그렇지 않은 척 하는 게 은근 귀엽다. 희세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다음 타겟.”

“아아, 그만 했으면 좋겠는데.”

“안 돼. 얘기하면 다 풀린다니까.”

“아아…….”


희세의 억지에 나는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푹 쉬었다. 뭔가 덫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다. 지체 없이 바로 성미에게 향했다.


“응?”

“에…… 본인은, 그… 체육창고에서 저질러버려서 굉장히 죄송합니다…….”

“…….”


성미 앞에 주볏주볏 서니 지선이와 성빈이와 수다를 떨고 있던 성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본다. 나의 떠듬거리는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본다.


“뭔데, 변태 씨.”

“그, 미안하다고! 아까 덮쳐서!”

“왜 네가 화를 내?! 내가 신고해야 되는 거 아냐!”


나는 슬슬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나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에 성미도 지지 않고 맞선다. 아아, 이런. 생각해보니까 성미 말대로 화내야 할 건 성미인데. 나는 공손한 말투로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네요. 용서를 구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말했다. 성미는 ‘흥, 무슨 사과가 그래. 작위적이야.’ 하고 답한다. 다행히 성미는 방금 전 정희처럼 무리수를 던지거나 공격적인 말투로 말하거나 하진 않아 수월하게 사과를 받아줬다. 그저,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성빈이가 듣는 앞에서 ‘덮쳐버려서!’ 라는 말을 한 게 못내 후회스러울 뿐이지. 뭐, 성빈이는 그것보다 더 심한 꼴도 봤으니 상관없으려나.


“여튼 됐어. 변태 씨 변태인 건 예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앞으론 어둡고 좁은 데에는 변태 씨랑 동행하면 안 된다. 그거 배운 셈 치면 되지.”

“……내가 무슨 괴물 비슷한 거냐. 어쨌든 고맙다. 사과 받아줘서.”

“됐어, 괜히 어디 소문내고 다니지 말고. 희세 아는 것으로 끝내. 솔직히 창피하긴 하니까, 나도.”


정희랑은 다른 의미에서 쿨한 성미다. 끝맺음이 참 깔끔하잖아. 희세는 두 번째 과업의 성공에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은 말할 것도 없이, 반장. 채영이.


“저…….”

“……!”


채영이는 성미와 정희와는 달리 난관이 예상된다. 성미나 정희는 둘 다 여자애 치곤 쿨한 성격에 강한 멘탈이기에 그나마 쉽게 사과하고 쉽게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채영이는…… 전형적인 소심한 여고생에 유리 멘탈에 상처 받기 쉬운 소녀 감수성이기에 굉장히 난감하다. 나는 한 마디 ‘저…’ 하는 말밖에 안 했는데 그 반응이 남다르다. 움찔 하며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란다. 거기에 그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나라는 것을 확인하곤 왈칵 순식간에 볼이 발그레해져선 내 시선을 피한다. 틀렸어, 이미 아까 전 사건을 떠올리면서 부끄러워 하고 있잖아. 나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의기소침해져서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옆에서 희세가 눈을 부라리며 입모양으로 ‘얼른 안 해?!’ 하고 말해 다시금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 같은 눈으로 채영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 아까…… 도서관에서 그래서 미안. 그게…… 실수였어, 실수였으니까.”

“아, 아니야! 내, 내가 넘어진 건데……”


괜히 부끄러워져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채영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눈을 크게 뜨고 앉아 있는 채영이를 쳐다보자 다시금 말문이 막히는 채영이. 머뭇거리다 다시 말을 잇는다.


“고, 고맙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너무 창피해서…… 미안, 미안해.”

“아, 아니야~ 창피할 만 하니까, 솔직히 그 정도 스킨십이면.”

“……! 그, 그건…….”

“아아, 미안. 또 괜한 말해서. 어쨌든 미안해. 진짜 진짜 미안.”

“……으응, 아니야. 내가 넘어지는 거 네가 받쳐준 거잖아. 그게 더 고마워. 고맙다고 말 못하고 도망가서, 난 그게 미안해.”


채영이는 의외로 꿋꿋이 사과를 한다. 그런 타입이구나, 자기 하고 싶은 말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타입. 때 좋게 내가 먼저 말을 걸어주니 물꼬가 터서 하고 싶은 말 하게 된 거겠지. 그래도 뿌듯하다, 거기서 엉뚱하게 오해하지 않고 내 원래의 의도를 알아줘서. 다만 몸이 밀착된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서 말을 제대로 못 했다는 거잖아. 고개를 끄덕이며 희세를 보니 희세 역시 팔짱을 끼고 아까보다 더욱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봐, 다 말 하면 되잖아.”

“응.”


희세는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고 서 있는 나를 올려다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변태 씨」라는 칭호도, 너무 부담스럽게 여기지 마. 진짜 별 생각 없이 부르는 별명 같은 거니까.”

“그래도, 좀…… 변태도 아닌데 변태라고 하는 건.”

“흐흥, 변태 맞잖아. 나한테 저지른 수많은 그 음란한 눈빛은 뭐라고 설명해야 옳을까나?”

“아아, 아아. 알았어, 알았다구.”


희세는 이어 말했다. 나는 좀 억울한 마음에 말했다가 본전도 못 찾게 생겼다. 괜히 시선을 피하며 대충 대답했다. 희세가 희세 것만 알고 있어서 다행이지, 리유에게나 성빈이에게나 저지른 짓까지 알면 아마 저런 식으로 말하지 못하겠지. 분명 ‘저리 꺼져, 씹변태새끼야!!’ 하며 발악을 하겠지. 어휴.


“뭐, 사실은 저번에 네가 나 도와준 거 퉁 치는 셈 치고 도와준 거니까. 너무 그렇게 고마워하진 마! 하하하.”

“고마워. 역시 너 밖에 없네.”

“…에, 엣? 뭐, 뭐가?!”


희세는 마치 거만한 여왕님 같은 느낌으로 고고하게 웃으며 말한다. 물론 장난이라는 건 딱 봐도 티가 난다. 나는 희세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껴 말했다. 희세는 당당한 태도에서 순간 살짝 당황한 표정이 되더니 머리를 매만지고 자세를 바로하고 나를 보며 묻는다.


“리유한테 이런 걸 부탁해서 될 리가 없고, 성빈이는 뭔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들어만 주니까. 반면에 희세 너는,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어떨 땐 저돌적이다 싶을 정도로 주관 뚜렷하게 밀어 붙이니까. 그게 도리어 잘 맞는 것 같아. 정말, 여자애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


솔직하게 희세에게 느꼈던 점을 말했다. 뒷부분에 ‘여자애지만’ 이란 부분은 희세가 태클 걸 것을 예상하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 거니까. 거듭되는 변태 논란에 거세게 해쳐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쉽게 풀이 꺾여 좌절한 나에 비하면, 희세는 여자애인데도 얼마나 곧고 바른 대나무 같은가. 약간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이런 여자애랑 친구인 것도 참 좋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라 별로 정돈되지 않은 말로 그냥 말했다. ‘여자애지만’ 부분에서 태클을 걸어올 줄 알았는데 희세는 의외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어째 흰 얼굴은 살짝 홍조가 돌아 있다.


“…….”

“……더 할 말 없어?”

“응? 뭐? 응, 더 없는데.”

“……됐어, 이제 가! 짜증나.”

“어? 어어? 어어어??”

“꺼지라구! 이제 됐으니까!”


희세는 어째 신경질적이 돼서 격한 말투로 말한다. 어이어이, 방금 전까지 굉장히 훈훈하게 잘 얘기하고 있었는데. 이건 무슨 경우야. 희세가 굉장한 기세로 나를 내쫓았기에, 나는 하는 수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아 희세를 보니 아직도 잔뜩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이다. 화를 식히려고 책을 본다. 나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어쨌든, 변태 사건(?)도 어떻게 무사히 지나간 것 같다. 여전히 나는, 「변태 씨」이지만. 뭐, 상관 없으려나. 변태라고 불려도, 묵묵히 여자애들하고 같이 지내면 여자애들도 아니까. 내가 변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닌가?! 반대인가?! 변태이고 싶진 않은데!!


작가의말

친구네 집에서 아직도 집에 안 왔습니다. 물론 친구 집에서 글이 써 질리가 없으니 오늘이 마지막 비축분이네요. 내일 집에 가서 쓰지 않는다면... 후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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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1

  • 작성자
    Lv.60 dsafsdas..
    작성일
    14.02.11 22:08
    No. 1

    가슴 쫌 만졌다고, 뭐 닳어?
    안 달지. 그러니까 한번만 더ㅎ
    결국 말로 푸나요? 말로 풀려면 저렇게...
    하지만 무엇보다도 입은 말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1 23:09
    No. 2

    입으로 어떤 걸... 그런 거 말씀하시는 거겠죠? MT 가서 종이 입으로 옮기는 벌칙게임. 그렇죠, 하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광인입니다
    작성일
    14.02.11 22:22
    No. 3

    윗분말씀에 공감합니다. 입은 더 중요한임무를.. 손도 새로운 임무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1 23:10
    No. 4

    이, 입하고 손이라니... 대체 두 가지가 동시에 운용되는 일이 무엇이 있기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2.11 22:26
    No. 5

    희세의 츤데레는 미사카씨와 맞먹는 군요. 난 미사카씨가 훨씬 좋지만.

    +가끔 댓글의 드립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댓글이 쌓이길 기다려랴 하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1 23:11
    No. 6

    뭔가 신사들이 모이는 아편굴이 된 것 같아요... 물론 굉장한 신사력을 제공해주셔서 영감을 얻고 있지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2.11 23:40
    No. 7

    왜 나는 여기에서 "입에 단단한 막대를 넣고 흔들다가 하얀 거품이 나면 끝나는 일이 뭐게?" 라는 퀴즈를 내고 싶어지는가? 이거 참 미스테리로군요. 맞추신 분께는 포돌이가 은색의 선물을 들고 손수 모시러 갈 것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2 02:15
    No. 8

    그야 당연히 펠...!
    양치질.
    양치질이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똑딱똑딱
    작성일
    14.02.11 23:48
    No. 9

    신사들의 아편굴ㅋㅋㅋㅋㅋ부,부정할수가 없다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2 02:17
    No. 10

    후후후후후... 다들 여기서 깊고♂어두운♂환상을 풀고 가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6 rosemary..
    작성일
    14.02.12 00:39
    No. 11

    역주행님. 그거슨 바로 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삿사 정... 내게 은팔찌를!!!!! 더해서 은발찌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2 02:18
    No. 12

    ...여러분에겐 어울려요. 충분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Yaksa
    작성일
    14.02.12 01:45
    No. 13

    남자라면 벌떡벌떡 서는걸 자랑스러워해야지 풀이 죽기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2 02:19
    No. 14

    자신의 건강함을 여성들 앞에서 인증하는 건... 어멋, 저 남자 좀 봐. 우홋! 멋진 남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피리휘리
    작성일
    14.02.12 06:21
    No. 15

    없는 리유에게 애도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2 09:04
    No. 16

    없는 애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케이루스
    작성일
    14.02.12 12:40
    No. 17

    신사들의 아편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이 캐리하는 우학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2 12:55
    No. 18

    아편굴이니까 독자들이 중독되면 좋겠는데... 아, 그러면 4대 중독법에 지정되니까 안되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1 정체무실
    작성일
    14.07.02 07:54
    No. 19

    음란마귀님들아... -0-...
    아니, 이런 연상을 하는 내가 음란 마귀인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7.02 07:55
    No. 20

    환영합니다.
    지극히 정상이십니다, 하핫.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3 23:18
    No.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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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16화 - 3 +23 14.02.19 3,071 5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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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15화 - 3 +24 14.02.14 2,311 53 24쪽
60 15화 - 2 +17 14.02.13 2,396 6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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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 - 4 +21 14.02.11 2,262 59 19쪽
57 14화 - 3 +18 14.02.10 3,804 139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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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13화 - 2 +25 14.02.05 2,104 5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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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12화 - 2 +16 14.02.01 2,497 7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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