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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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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2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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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10화 - 4

DUMMY

희세는 한참을 나를 때리다가 씩씩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다.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 세면대를 한 팔로 부여잡고 겨우 서 있다.


“보, 보지 마! 변태야!!”

“그런 눈으로 안 봤어요!! 그럼 난 어떡하라고!”

“나인이 봐 나인이!!”


희세는 볼이 상기된 체로 숨을 헐떡인다. 온통 물에 젖어서 옷이 착 달라 붙어 있다. 한 손은 가슴 쪽을, 한 손은 하반신 쪽을 가리지만 양 손만으로 모든 걸 가리기엔 역부족이다. 땀인지 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줄줄 흐르는 희세는 정말 야해보인다. 희세는 잔뜩 짜증을 부리며 자기 몸을 지키려 한다. 나는 그 요청대로 애써 눈을 케이나인 쪽으로 돌렸다. 최대한 본능을 억눌러야지.


희세는 수건 한 장을 주고 ‘나가!’ 하고 외친다. ……쫓겨나버렸다. 뭐, 어떡하라는 거야. 단순히 머리하고 몸만 젖은 게 아니라 모든 옷이 흠뻑 다 젖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바지까지 벗을걸. 아아, 바지 벗었다고 해도 팬티가 젖었으니 별 수가 없었겠네. 하는 수 없이 거실에 나와 머리와 몸에 묻은 물만 대충 닦고 바닥에 수건을 깔고 우두커니 앉았다. 희나는 TV를 보다 잠들었는지 리모콘을 들고 쌕쌕 잘도 자고 있다. 귀엽네.

목욕탕에선 ‘가만히 좀 있어!! 으이구, 내가 너 때문에!! 진짜!!’하는 희세의 목소리와 쏴아 하는 샤워기 소리가 들린다. 케이나인도 지은 죄는 아는지 별다른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예쁘다 예쁘다 하는 것만 들었는데, 희세가 케이나인에게 짜증 피우는 건 처음 본다. 하긴, 그것 때문에 괜히 부끄러운 꼴 보이게 됐으니. 자존심 센 희세에게 그런 모습을 나 ‘따위’ 의 ‘변태새끼’ 에게 보이는 건 정말 더 없는 수치였겠지. 음… 확실히 야시시 하긴 하다. 물에 젖은 희세… 으으! 불건전하다! 안돼 안 돼, 괜히 아까 아침에 꾼 꿈까지 겹쳐져서 더 어색해질 것 같잖아. 얼른 머리를 휘저으며 생각을 지웠다.


“보, 보지 마!”

“아, 안 봐! 보이지도 않고!”


드디어 목욕탕의 문이 열렸다.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목소리만인 희세 말이 들린다. 으아, 징하다. 희세는 주볏거리며 나온다. 중요 부위를 수건으로 전부 가렸다. 이어 털이 물에 젖은 케이나인이 보인다. 수건으로 닦은 듯 어느 정도 물기는 없지만 그래도 충분히 축축해 보인다. 희세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한다.


“나, 이제 샤워할 거니까, 나인이 털 좀 말려줘.”

“응, 알았어. 아, 헤어 드라이기로 옷 말리면 되겠네. 후후.”

“맘대로 하셔.”


희세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 방 쪽으로 들어간다. 수건으론 앞부분 밖에 안 가려져서 뒷부분은 물에 젖어 옷이 찰싹 달라 붙은 모습 그대로 보인다. 이야, 참 숨막히는 뒷태네… 아니, 아니지! 케이나인 털이나 말려주자!


“월!”

“기분 좋은가보네. 좋아?”

“월월!”


희세는 샤워하러 들어갔고, 나는 헤어 드라이기를 가지고 케이나인을 말려준다. 샤워를 마쳐 기분이 좋은지 케이나인은 잠잠하게 앉아 있다. 따듯한 바람이 기분 좋은지 연신 느긋한 표정으로 바람을 느끼고 있다. 입 쪽으로 바람을 뿜으니 핥핥 거리며 공기를 먹으려 한다. 후훗, 귀여운 녀석. 나도 개 키우고 싶다. 이어서 내 옷을 말리는데 이거, 좀 그렇다. 반팔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바람을 뿜으며 말렸지만, 팬티 쪽이 심각한 문제다.

바지가 청바지이니, 이걸 말리기엔 헤어 드라이기의 화력으론 무리다. 그래서 팬티만이라도 말리려는데… 이거, 엄청 변태 같잖아?! 바지 입은 체로 헤어 드라이기 바람을 넣으면, 꼭 특저 부위에 바람을 쐬는 것 같고! 그렇다고 바지를 벗고 말리면! 그러다 희세라도 나오면! 난 영락없이 강간범(!) 수준으로 격상될거야!! 게다가 여기 지금 희나도 자고 있는데! 하는 수 없이 나는 타협안으로, 바지를 살짝만 내리고 헤어 드라이기로 살살 팬티를 말린다. ……어이어이, 어디가 타협안인데! 더 변태 같잖아!!

이 헤어 드라이기, 늘 희세가 이것으로 머리를 말리겠지. 그걸로 지금 나는, 팬티를 말리고 있다. ……정말 훌륭한 변태 같은데. 아니, 불가항력이잖아 이건!!


“후우─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에엣?! 뭐, 뭐, 뭐, 뭐야 변태새끼야!! 얼른 옷 입어!!”

“어쩔 수 없다고!! 최대한 머리를 짜 내본 건데!!”


희세는 상쾌한 목소리로 목욕탕에서 나온다. 밝은 노란색 티셔츠와 짧은 분홍색 바지를 입고 나온다. 훨씬 가볍고 캐주얼해보여 발랄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희세는 무얼 입어도 잘 어울리는구나. 나는 그런 희세를 힐끔 쳐다본다. 구석에서, 소심하게 쭈그리고 앉아서. 희세는 그런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눈을 가리고 말한다. 나는 지금, 구석에서 변태처럼 쭈그리고 앉아 있다. 바지를 벗고서.

어쩔 수가 없잖아. 팬티 자체는 얇고 면 소재이기 때문에 헤어 드라이기 만으로 금세 마르지만, 그럼 뭐하나. 두껍고 무거운 청바지가 한껏 물을 머금고 있어, 금세 다시 젖어버리는 걸. 하는 수 없이 특단의 대책으로, 그냥 쿨하게 바지를 벗었다. 그리고 수건으로 짠 가렸는데, 너무 변태 같아 대책이 안 선다. 그래서 최대한 안 보이도록, 구석에 숨어 있었다. 희세는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변태 변태 변태새끼야!! 얼른 입으라니까~~!!’ 하며 난리를 피운다.


“…저질. 최악이야, 진짜.”

“아하하… 미안합니다. 그, 옷 같은 거 얻어 입을 수 없을까?”

“……엄청 싫은데. 기분 나쁜데. 어쩔 수 없지. 그대로 밖에 나갔다간 진짜 변태니까.”


희세는 얼굴이 잔뜩 상기돼서 최대한 내 얼굴 쪽으로만 시선을 보내며 말한다. 나도 멋쩍어서 얼굴이 화악화악 달아오른다. 아무리 그래도, 나랑 동갑인 여자애 앞에서 팬티 바람으로만 있는 건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 수건으로 가리긴 했지만, 아슬아슬한 건 마찬가지잖아? 희세는 내 부탁에 굉장히 싫은 티를 내며 말한다.


“입기 전에 샤워 해.”

“에에. 그래도 되?”

“그, 그래도 되는! 나인이 씻기면서 땀도 나고, 물에도 젖고, 그랬는데 그 몸으로 내 옷을 입겠다고?! 절대 허락 못 해!!”

“아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 말에 희세는 잔뜩 나를 몰아 세운다. 나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라, 희세가 싫어할까봐 한 말이었다. 샤워, 나도 좋아하지. 희세 말대로 땀도 나고 물에도 젖어 찜찜하긴 하니까. 하지만 그런 거 있잖아, 사춘기 여자애들은 사소한 것으로도 엄청 민감한 거.

예를 들면, ‘아빠 팬티하고 같이 빨지 말라니까! 따로 놓아!’ 라고 함부로 엄마한테 말해서 아빠를 상처 준다거나. 드라마나 애니매이션에서 자주 나오는, 고등학생 나이 대인데 어쩌다 동거하게 되면 꼭 화장실을 따로 배정해주잖아. 그런 것처럼, 자기가 늘 샤워하는 데에서 외간남자(?)가 씻는다면, 그게 기분 나쁘지 않을까 해서 한 말이었다.


“네가 기분 나쁠까 해서. 나 따위가 들어가서 샤워해도 되나 싶어서.”

“에에? 또 무슨 야한 생각을…… 단순히 몸 씻는 건데 뭐가 어때서! 얼른 씻기나 해, 보기 민망하니까!!”

“아, 알았어.”

“옷은 찾아다 화장실 입구 쪽에 놓을 테니까.”


희세는 애써 내 존재를 외면하며 말한다. ‘오오 나인이 깨끗해졌네!’ 하면서 케이나인을 끌어안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런 쪽은 또 남녀평등이냐. 단순히 씻기만 하는 거니까? 흐흥, 그렇다면 뭐 마다할 건 없지.


은은하고 상큼한 레몬 냄새 비슷한 새콤한 향기. 향이 독특해서 참 좋은 샴푸네. 아, 이거 어디서 맡아본 적 있다 싶었는데, 희세 머리 냄새였어. 희세가 늘 쓰는 그 샴푸로, 머리를 감는구나… 그러면 어째 내 머리에서 희세 머리 냄새가 나니까… 무슨 엉뚱한 생각을!!

아, 이 샤워볼… 아직 거품이 남아 있어. ……정말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이걸로 씻으면, 희세랑 같은 냄새가… 같은 몸 냄새가… 이거 제 살 냄새에요. 으아아아!! 나는 잠시 샤워볼을 코에 대고 냄새를 킁킁 맡다 도저히 자신을 용납할 수 없어 샤워볼을 땅바닥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정말, 이러다간 변태의 극에 달한 자가 될 것 같아. 자제하자, 정웅도. 남자가 변태인 건 상관없지만 변태가 남자인 건 아니야. 나는 변태 같은 게 아니다. 상남자의 길을 걸어야지. 이런 찌질한 변태가 될 순 없어. 의연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씻어야지.

……그래도, 냄새 좋네.



“우에에, 저질.”

“네가 준 옷이잖아!! 나보고 뭘 어떡하라고!!”

“저, 저질인 건 저질이잖아! 그게 내 옷 중에 제일 큰 사이즈인데!”

“아우… 근데 이건 내가 봐도… 흐흐흐.”


샤워를 마치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다시금 당당하게 섰다. 그래, 이 정도 변태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거든. 하지만 곧 나는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다.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나를 보고, 희세가 한 마디 한다.

분홍색 트레이닝복. 거기서 끝나면 상관없는데, 문제가 있다면 나와 희세의 체격 차이. 나는 신장 178의 건장한 남성. 희세는 키 165 조금 안 되는 평범한 아담한 사이즈의 여자애. 그 여자애의 사이즈가 아무리 크다 해도, 기본적으로 글래머러스하면서도 다른 곳은 마른 편인, 사기에 가까운 몸매인 희세이기에 옷 사이즈가 전반적으로 작은 편일 것이다. 그걸 건장한 체격의 내가 입으니 굉장히 작은 옷이 됐다. 상의 쪽은 그나마, 희세가 가슴이 큰 편이라 내 떡 벌어진 어깨도 어느 정도 커버하는 편이지만(그래도 팔뚝 쪽이 터질 것 같고 옷이 찰싹 달라붙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반신 쪽은 아주 가관이다. 스키니진 같아 보이는 영역을 넘어 거의 레깅스 수준으로 찰싹 달라붙은 다리에, 특히 민망한 중요 부위. 마치 개그 프로그램에서 개그맨들이 쫄쫄이 입고 중요 부위를 가리고 쩔쩔매는 그것과 꼭 같은 모양새이다. 희세는 그런 나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이건 내가 봐도 너무 저질인지라 굉장히 부끄럽다.


“고마워, 꼭 빨아서 갖다 줄게.”

“아냐, 그냥 월요일 날 학교에서 줘. 집에서 빨게.”

“그래도 되겠어?”

“기숙사 사는 애가 빨래하기 더 힘들잖아. 그러느니 그냥 내가 빨게.”

“…오. 배려까지 해 주는 거? 진짜 고맙네.”

“무, 무슨!! 후, 훔쳐갈 까봐 그래!! 게다가 네 방에서 말리면, 네 불쾌한 냄새가 내 옷에 밸 수도 있잖아! 그, 그러니까 그러는 거지! 누가 누굴 배려해?!!”

“아아, 네네. 알겠습니다.”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굉장히 흉한 엉성한 자세로 희세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희세는 내 ‘고맙다’는 말에 상당히 당황해하며 부끄러워한다. 여전히 짜증 부리는 듯한 대답이지만, 이제는 그 대답의 진의를 읽을 수 있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저 반응은, ‘응, 고맙다면 나도 좋아.’ 정도의 반응이겠지.


자리에 앉자 잠시 어색해하던 희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갑자기 환한 표정이 돼서 말한다.


“응, 맞다. 너 몇 시즌부터 안 봤다고 했지?”

“뭘?”

“드라마 있잖아 드라마!”


아, 그것 때문에 그렇게 표정이 환해진 거구나. 저번에 둘이서만 밥 먹을 때, 우연히 그 드라마 광팬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 웬만하면 나와 희세의 대화 주제는 그 드라마 얘기뿐이다. 하긴, 외국 드라마인지라 나도 이 드라마 보는 애는 처음 봤다. 희세는 ‘얼른 일어나, 멍청아!’ 하곤 나를 잡아끈다. 나는 중요 부위를 한 손으로 가린 체 엉거주춤하게 일어났다. 대뜸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우앗, 여자애 방에 난생 처음으로~! 라지만 별다른 기대할 시간도 없이 그냥 냅다 희세가 끌고 들어가서 들어오게 됐다. 보통 여자애들은 남이, 특히 남자가 자기 방 들어온다고 하면 엄청 싫어하고 그러지 않나? 하지만 드라마 얘기로 이미 이성을 반쯤 잃은 희세는 눈이 초롱초롱하다.

희세 방은 아주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깔끔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로 각이 잡혀 있다. 책도 가지런, 인형들도 가지런하게. 여자애 방답게 핑크색, 빨간색 이런 물건들이 많고 벽지도 커튼도 죄다 채도가 높은 색색의 것들이라 방이 굉장히 화려해 보인다.


“쨔잔! 이거 봐! 장난 아니지!”

“오오. 이거 산거야?!”

“물론이지! 흐핳! 더빙판도 있어!”

“오, 장난 아니네!”


희세는 마치 자신의 작품을 자랑하는 예술가가 된 것처럼 자랑스럽게 책장 한 켠을 가리킨다. 흥밋거리로 삼고 있는 드라마의 전 시즌이 DVD로 있다. 우리 집은 DVD는커녕 그거 플레이어도 없는데! 거기다 더빙판까지! 세상에. 내가 처음 접한 게, 더빙판으로 접했었거든, 그 드라마. 거기다 그 책장의 아래 칸에는 관련 상품들이 이것저것 놓여 있다. 그러니까, 오타쿠라면 피규어 같은 것이겠군. 이런 건 고상하게 ‘모형’ 이라고 하겠지.


“장난 아니네. 우와, 벌써 시즌 7까지 나왔어?!”

“응응! 이건 최신으로 구한 거! 얼마나 힘들었는데.”

“와, 대단하다 너도. 난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서 보는데.”

“흥! 더러운 불법 다운로더! 너 같은 족속들 때문에 예술 산업이 망하는 거야! 뭐, 이건 선진국 거니까 상관없으려나. 그래도 나처럼 제대로 된 컨텐츠 값 지불을 하고 보는 훌륭한 사람이 돼야지! 흐흥!”

“그래, 이건 진짜 대단하다.”


희세의 당당한 자랑과 조롱에 나는 별로 불쾌한 기분도 들지 않고 덥썩 인정했다. 그건 맞는 말이니까, 뭐라 반박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이 정도면 참 대단하다. 남자애가 애니매이션을 이 정도로 보고 모형도 모으고 DVD도 모은다면 100% 오타쿠 소리 들을 텐데. 희세 같은 미소녀가 외국 드라마로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 전혀 불쾌하지 않고 도리어 더욱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정도다. 이것도 외모 지상주의의 한 단면일까.


“어디부터 볼까?”

“음… 시즌 4까지 봤어. 결말은 봤어.”

“흐흥, 그럼 시즌 5부터 보면 되겠네? 여기부터 장난 아니야!”

“오, 그래? 이 시즌부터 배우 바뀌지 않았나?”

“응응! 장난 아니야! 후후. 더 말해주고 싶지만… Spoilers~☆”

“아하하.”


희세는 손가락으로 총을 쏘는 것 같은 모양을 나에게 하며 말한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 따라하는 거다. 허헣, 귀엽네. 드라마 얘기 하니까 딴 사람이 된 것 같은 희세다. 완벽한 여자애인 희세도, 자기 취미 얘기할 때엔 평범한 소녀처럼 되는구나. 창피한 바지 덕분에 잘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이끌고 희세는 거실로 나왔다. 희세는 DVD에 CD를 넣곤 쪼르르 부엌 쪽으로 간다. 그러더니 간단한 과자와 과일 음료를 따라 정갈하게 쟁반에 담아 온다. 오오, 장난 아니야. 손님 접대 제대로 하네? 고맙다고 말해도 평소의 새침한 반응보단 ‘닥치고 드라마나 봐.’ 하는 느낌의 건성인 대답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드라마로 시선을 옮겼다.


“으아─ 이제 그만 보자.”

“왜에~!! 남자 새끼가 근성도 없어! 겨우 세 편 봤는데!”

“두 시간 넘게 드라마만 봤잖아! 질리지도 않어?”

“흥, 두 시간 정도야. 재미있잖아!”


보다 보다 지친 내가 백기를 들고 항복하자 희세는 ‘근성 없는 놈’ 하며 혀를 끌끌 찬다. DVD에서 CD를 빼며 나를 흘겨본다. 아무리 재밌어도 그렇지, 2시간을 줄창 드라마만 보는 건 좀 아니잖아? 그리고 애초에 내가 좀 진득이 무언가 오래 하질 못 하는 성격인지라. 오죽하면 축구 빼면 2시간 단위로 해본 게 거의 없을 정도다. 축구도 2시간 하면 힘들어서 쉬지만. 희세는 DVD를 정리해서 방에 두곤 내 주변에 와 앉는다. 짧은 바지인지라 희세의 희고 튼실한 허벅지가 눈에 띤다. 음, 매끈하네.


“오늘 진짜 호강하네.”

“흐흥. 영광으로 알아야지. 밥 차려줘, 드라마 보여줘, 재미있게 놀아줘. ……네, 네가 불쌍해서 그런 거니까! 흐흥.”

“아아. 좀 쉬고 싶네.”


나는 희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털썩 누웠다. 아아, 쌔근쌔근 잠이 올 것만 같다. 희나는 아까부터 이미 자고 있다. 봄이잖아? 온도도 딱 적당하고, 마침 오후의 따스한 햇살도 든다. 배불리 먹은 데다 샤워까지 한 나는 급격히 졸리기 시작했다.


“뭐야, 잘 거야?”

“아아, 아니.”

“자고 있잖아, 이미!!”

“그, 그럴 리가~ …….”

“아, 진짜!! 뭐야, 놀러와선!!”


희세는 잔뜩 짜증을 부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벌써 잠에 취해 의식이 몽롱해졌다. 아, 오늘 일찍 일어나기도 했다. 할 것도 없으면서 괜히. 그대로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다면 오전 내내 잤겠지.


“응헝?”

“자. 그냥 자면 감기 걸리니까.”


무언가 가볍고 폭신한 게 배 쪽에 툭 떨어지는 느낌이 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깼다. 희세가 새침한 표정으로 말하는 게 보인다. 어리둥절해 배 쪽을 보니 베개와 이불이다. 오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나는 베개를 베고 이불을 펴곤 누웠다. 말랑말랑하고 폭신폭신해 금방이라도 잠에 빠질 것 같다. 희세는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며 말한다.


“으휴, 친구네 놀러 와서 자는 새끼가 어디 있어, 대체? 하여튼…”

“고마워. 재워줘서.”

“재, 재워주긴 누가! 귀, 귀찮으니까 안 깨우는 거지! 흥! 저녁까지 실컷 퍼질러 잠이나 자라! 메─롱!”

“헤헤헤.”


약간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말하는 희세는 왠지 되게 귀여워 보인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 잠에 취한 체로 한 마디 했다.


“희세 너 되게 착하구나.”

“뭐, 뭣?!”

“너 여자친구로 둔 남자애는 진짜 좋겠다.”

“에, 에, 에에에엣?!!”


희세는 내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친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 나는 그런 희세가 재미있어 방긋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요리도 잘하고, 막 챙겨주고, 좀 떽떽거려도 착하잖아? 그러니까.”

“에, 에에, 그…”

“응?”


희세는 무언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다. 나는 눈이 반쯤 감겨서 대답했다.


“나, 남자애들이 볼 때… 괜찮은 여자애야?”

“아아, 말하면 뭐해, 엄청 괜찮지!! 당장이라도 여왕님처럼 남자애들 한 100명 쭉─ 뒤로 세워놓지 않을까 싶은데.”

“그, 그래? 헤헤헷. 근데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어. 나 여중 다녔으니까… 지금도 여고고.”

“아─ 아깝네. 의외이기도 하고. 남녀 공학이었으면 인기 엄청 많았을 텐데.”

“응…….”

“…….”


희세는 내 말에 조금 잔잔한 말투로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잠들었다.


“야, 야!”

“응헝? 응응?”

“그… 더 할 말 없어?”

“응? 어, 없는데. 나 좀 잘게. 어우……”

“…….”


희세의 물음에 나는 지금은 온 신경이 잠에만 집중돼 있기에 대충 대답하고 돌아누웠다. 졸려 죽겠는데 무슨 말은 무슨 말. 방금 전에 했던 말은 희세가 너무 잘 대해줘서 그거 고맙다고 하는 말인데. 희세는 어쩐 일인지 아무 말이 없다. 방으로 갔나보네. 잠이나 자야지.


‘뻐억!!’

“끄아아악!! 뭐, 뭐야!!”

“됐어!! 병신!!”

“뭐, 뭔데?! 왜, 왜 때린 건데?!!”

“꺼져!! 됐으니까 잠이나 퍼 자!!”


희세는 냅다 내 등짝에 싸커킥을 날린다. 풀파워로 공을 차는 그런 느낌으로, 정말 강하게 등짝을 가격한다. 엄청난 타격에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희세는 잔뜩 삐친 얼굴로 ‘흥!’ 하며 몸을 돌린다. 나의 저항에도 완강하게 소리 지르며 그대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아 버린다. 뭐, 뭐야 이거. 뭣 때문에 저러는 거야. 솔솔 오던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내가 말한 것 중에 기분 나쁜 말이라도 있었나…? 돌이켜 생각해 봐도 도통 모르겠다.


뭐가 뭔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미안한 입장인 것 같아 얼른 사과를 했다. 희세는 그래도 한동안 통 방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내가 끈질기게 문 앞에서 미안하다고 말하니 그제야 나와서 ‘아 거 참 시끄럽네!’ 하고는 나왔다. 내가 방긋방긋 웃으며 ‘미안해.’ 하고 말하니 피식 웃으며 ‘짜증나’ 하고 말한다. 참, 비위 맞춰주기 힘든 여자애구나. 여기서 눈치 없게 더 잔다고 할 수는 없고, 더욱 비위를 맞춰 주기 위해 드라마 한 편 더 보자고 했다. 좋다고 다시 DVD를 꺼내오는 희세. 결국엔 오후 내내 드라마만 봤다.


“자.”

“응? 뭐야?”

“쿠키. 직접 구운 거. 가면서 먹어. 가서 먹던지.”

“우와. 대단하네. 진짜 직접 만든 거야?”

“뭐, 간단하니까.”


오후 늦게,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 돼서야 나는 희세네 집에서 가려고 한다. 이제 슬슬 부모님 올 때가 됐으니 얼른 꺼지라고 말하는 희세. 하지만 그렇게 거칠게 말하면서도, 거실에서 신발을 신는 나에게 작은 바구니에 담긴 과자를 준다. 초코 쿠키. 작은 바구니에 담은 것도 되게 정갈하게 담아서, 난 당연히 제과점 같은 데서 만든 수제 쿠키인 줄 알았다. 우와, 엄청나네. 그래, 내가 바랐던 공주님 같은 이미지의 희세가 만드는 게 이거 였다구! 얼른 하나 먹어보니 확실히 가게에서 파는 것하곤 맛이 다르다. 충분히 맛있다. 희세는 종이백에 내 젖은 옷들을 잘 털어 정갈하게 개서 넣어서 준다. 참, 극진하게 호강 받고 가네.


“잘 가, 오빠~ 다음에도 또 놀러 와!”

“응. 재밌었어, 희세야!”

“…흥! 학교에서 봐. 잘 가구.”

“응! 케이나인도 다음에 보자!”

“월!”


한 손에는 작은 바구니, 한 손에는 내 옷이 들어 있는 종이백을 들고 작별인사를 한다. 희세는 아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안녕한다. 나는 얼른 현관을 나와 살짝 뛰듯이 걷는다.


아, 재밌었네. 희세의 의외의 면들도 많이 보고. 중간에 고자(?)가 될 뻔 하기도 했지만. 케이나인 샤워 시키면서 좋은 구경 했으니, 쌤쌤인가. 밥도 맛있게 먹었고, 드라마도 보고 참 재미있었다. 참 좋은 아이네, 희세. 역시 사람은 생긴 것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하던가. 희세가 나중에 남자친구 사귀면 그 남자친구는 참 호강하겠다야. 이렇게 극진한 대접이라면. 게다가 희세, 엄청 자존심도 세고 능력 있는 여자애니까. 어쩌면 기둥서방? 후후, 좋겠네. 누군진 몰라도.

으아, 그나저나 이런 츄리닝은 창피한데. 너무도 당당하게 내 특정 부위가 도드라져 보이잖아. 희세 혼자 앞에서도 부끄러운데, 이걸 입고 당당히 거리를 걸어야 하다니. 안 되겠다, 뛰어야지!

기숙사까지 뛰어 간다. 괜히 즐겁다. 즐거워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확실히 희세랑 더 많이 친해진 느낌. 좋네, 다음에도 놀러 가야겠다. 희세가 허락만 해준다면.


작가의말

아아... 늦게 올렸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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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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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17화 - 3 +18 14.02.21 2,108 54 20쪽
68 17화 - 2 +25 14.02.20 2,155 54 18쪽
67 17화. 여난. - 1 +23 14.02.20 2,351 44 18쪽
66 16화 - 4 +25 14.02.19 2,318 58 22쪽
65 16화 - 3 +23 14.02.19 3,070 56 19쪽
64 16화 - 2 +23 14.02.17 3,065 72 20쪽
63 16화. 놀러가요, 오빠! - 1 +21 14.02.16 2,874 63 19쪽
62 15화 - 4 +17 14.02.15 2,507 62 25쪽
61 15화 - 3 +24 14.02.14 2,310 53 24쪽
60 15화 - 2 +17 14.02.13 2,396 60 20쪽
59 15화. 가까운 미래에, 당신은. - 1 +23 14.02.12 2,513 64 19쪽
58 14화 - 4 +21 14.02.11 2,261 59 19쪽
57 14화 - 3 +18 14.02.10 3,803 139 21쪽
56 14화 - 2 +17 14.02.09 2,415 58 24쪽
55 14화. 나는 변태가 아니야! - 1 +21 14.02.08 2,484 51 19쪽
54 13화 - 4 +28 14.02.07 3,022 76 19쪽
53 13화 - 3 +21 14.02.06 2,449 56 22쪽
52 13화 - 2 +25 14.02.05 2,104 57 20쪽
51 13화. 전화위복 - 1 +21 14.02.04 2,698 53 17쪽
50 12화 - 4 +16 14.02.03 3,155 55 21쪽
49 12화 - 3 +24 14.02.02 2,586 73 22쪽
48 12화 - 2 +16 14.02.01 2,496 76 17쪽
47 12화. 데이트? 소풍? - 1 +23 14.02.01 3,040 65 18쪽
46 11화 - 4 +11 14.01.31 2,606 57 19쪽
45 11화 - 3 +21 14.01.31 2,711 69 17쪽
44 11화 - 2 +9 14.01.30 2,538 56 17쪽
43 11화. 시험 - 1 +7 14.01.30 3,003 106 19쪽
» 10화 - 4 +11 14.01.29 2,901 70 23쪽
41 10화 - 3 +11 14.01.29 2,759 56 22쪽
40 10화 - 2 +7 14.01.28 3,738 8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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