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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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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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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2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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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글자
23쪽

10화 - 2

DUMMY

희세와의 실랑이도 적당히 끝을 내고, 지금은 평화롭게 쇼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있다.

놀러 와서 TV를 보는 건 좀 그렇지만, 뭐 딱히 할 것도 없고, 희세가 먼저 TV나 보자고 켰으니 따를 수밖에. 토요일 오후인지라 그리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하진 않는다.


“재미없네.”

“응.”


희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얼마나 지루한지 희나는 하품을 하고 있다. 덩달아 케이나인도 하품을 한다. 이럴 거면 왜 놀러 온거야. 다 같이 잠이나 잘까.


“뭐 먹을래?”

“응? 뭐?”

“나, 요리 잘 하니까.”


희세는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약간 오만해보이기까지 한 그 거만한 표정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그리 이상한 기분이 들지도 않는다. 네가 뭘 못 하겠니.


“만들어주면 나야 좋지. 근데 난 만들 줄 모르는데.”

“흐흥! 너 따위가 뭘 만들겠어, 미천한 남자애 주제에. 만들어 주는 거나 감사하게 먹어!”

“네네, 알겠습니다.”


희세는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보며 말한다. 후훗, 이거 조금만 더하면 역차별일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간 야단을 부릴 희세이기에, 가만히 그냥 져 준다. 이런 때 아무 말도 못 하는 건 내가 병신인 게 아니라, 져 주는 거지. 후훗, 나 좀 센스 있는 남자인 듯. …아니면 그냥 정신승리인가.

희세가 요리를 해주는 건 좋은데, 대체 저 자신감은 무엇일까. 뭔가 희세의 이미지라면, 요리치인 게 더 귀여울 것 같다. 자신만만하게 저렇게 말했는데 나오는 결과물은 엉망진창… 그래서 ‘미안…! 망쳐버렸어!’ 하면서 말하지만 나는 ‘아냐, 괜찮아. 네가 만든 건 다 맛있는걸.’ 하고 먹어주고, 그럼 희세가 감동해서 희세도 먹… 이게 무슨 소리야!! 아무리 망상력이 폭발해도 그렇지!! 너무하잖아!!!

그나저나 저 당당한 자신감으로 무얼 만들어 주려는 걸까. 희세는 예쁘고, 세련된 공주님 같은 스타일이니까, 쿠키? 케이크? 집도 적당히 크고 TV도 큰 편이니 오븐 정도는 당연히 갖추고 있을 것 같다. 왠지 그럴 것 같은 분위기의 희세니까. ‘같이 곁들이라고 홍차도 타 왔어─’ 이렇게 말하거나, ‘음, 역시 다즐리야’ 이런 식으로 말한다거나. 흠, 그것 괜찮은 상상이군요. 뭔가 귀족적이라 더 기품 있어 보여.


“김치 부침개 해줄게.”

“너무 서민적이잖아?!!!”


너무나 예상 밖의 소박한 음식이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에 희세는 약간 불쾌한 표정으로 ‘…왜? 김치 부침개가 뭐 어때서?’ 하고 묻는다. 이크. 나는 얼른, ‘아니야, 우와,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만들기 힘들 텐데?’ 하곤 희세를 치켜세우는 말을 해 줬다. 다시금 금방 우쭐한 표정이 되는 희세. ‘그야 난 좀 하니까!’ 하곤 고개를 쳐든다. 휴우, 다행이네. 요즈음은 너무 마음속의 말들이 나도 모르게 막 튀어나오는 것 같아. 난감하게.


“그럼 내가 선심 써서 만들어주지! 후훗. 기다려.”

“어… 같이 할까?”

“무, 무, 무, 무슨 소리를!! 무, 무슨 연인도 아니고, 내가 왜 너랑 같이 요리를 해?! 미쳤어?!!”

“아, 아니, 난 그냥 먹기만 하기 그래서…”

“닥치고 그냥 TV나 보고 있어! 나인이랑 놀아주던가! 흥!”


희세는 굉장히 과민반응하며 날카롭게 말한다. 어째 무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좀 언짢다. 나름대로 배려한다고 한 말인데. 연인은 개뿔, 이렇게 하면 누가 저런 여자애랑 사귀겠나. 얼굴 예쁘면 뭐해, 성격이 저렇게나 개차반인데. 뭐, 강한 정도의 새침데기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괜찮을지도? 괜찮을 리가 없잖아. 폭언에, 욕설에, 가혹행위에. 다른 건 몰라도 눈은 좀…


“히히힛.”

“케이나인, 손.”

“월.”


희나는 뭔가 귀여운 웃음소리를 내며 내 옆으로 온다. 나는 케이나인을 쓰다듬으며 내 손을 내밀고 말했다. 영특한 케이나인은 앞발을 들어 내 손 위에 올려놓는다. 오, 정말 똑똑한 개네! 재밌어, 멋있어! 품에 꼭 끌어 안아보니 따뜻하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들린다. 꼭 큰 인형을 껴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아니, 인형보다 더 푹신하고 말랑말랑해서 좋다. 이래서 아까 희세가 그렇게나 기분 좋은 표정 지은 거구나. 그치만 확실히 그 때의 케이나인 허리는 좀 요망했어. 이, 이놈이! 임마, 나 남자야! 왜 나한테까지 요망한 허리를! 발버둥 치며 케이나인에게서 벗어났다.


“오빠, 오빠는 여자야?”

“아아니, 너는 내가 여자로 보이니? 허허.”

“그럼 언니 학교 여고인데 왜 같은 학교야?”

“아… 그게.”


날 보고 여자냐고 물어보는 건 평생토록 처음 들어본다. 거기다 ‘오빠’ 라고 칭하면서 여자냐고 물어보는 불합리함은 뭔데. 희나의 물음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 깊고도 어려운 사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오빠가 갈 학교가 없어서, 거기로 원서를 넣었어. 그래서 가게 된거야.”

“에에. 언니 학교 성적 되게 높다고 그랬는데. 아니었어?”

“아~ 나도 성적이 낮은 건 아니야. 음, 그러니까─ 아, 모르겠다. 어찌됐든 그냥 들어가게 됐다야.”

“흐응~ 이상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대충 얼버무리자 희나는 리유만큼이나 귀여운 말투로 말하곤 내 옆으로 와 앉는다. ‘희세가 뭐라 할 텐데’ 하고 말하니 ‘괜찮아, 언니 요리 하잖아.’ 하곤 더욱 내 옆에 밀착한다. 허허. 귀엽네.


“보통 안 그러지 않나? 처음 보는 오빠한테?”

“응? 나?”

“그래.”


그래, 보통 처음 보는 낯선 남자에게 이렇게 밀착하거나 귀여움 받으려고 하진 않잖아. 희세를 닮아 요망한 건가. 아니, 희세는 완전 보수적이라 여자가 애교부려도 귀여움 받아도 안 된다는 급진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앤데. 절대 닮은 건 아니지. 희나는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헤헤’ 하곤 말한다.


“언니가, 오빠 좋은 사람이라고 했거든. 그래서 실제로 보니까 정말 좋은 오빠 같아서. 나, 오빠 있으면 좋겠다 하고 늘 생각했으니까!”

“에에.”


희나의 말에 나는 살짝 놀란 표정이 됐다. 희세가 나를 칭찬하는 말을 했다고. 그럴 리가… 그렇게나 변태로 매도하고 눈을 찔러대는데. 저번에 한 번, 정말 한 번 그 딱 한 번만 부드럽게 약간 수줍은 얼굴로 ‘고마워’ 라고 한 게 전부인데. 그것 말고는 나에게 따뜻한 표정을 보여준 적이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헉, 설마…! 학교에선 나를 마주하기 부끄러우니까 잔뜩 뭐라고 하고 욕하고 변태라고 매도하는 거고, 집에선 여동생한테는 솔직하게 수줍은 소녀처럼 ‘언니 학교에 어떤 애 있는데~’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 부끄럼쟁이! 으아, 모에에에에~~~~


……는 상상 속의 동물이고. 상상 속의 동물, 기린이나 대붕 같은 건가. 아니면, 제 여자친구는 예수님이에요 / 있다고 믿는데 안 보여요… 이런 건가. 애초에 그럴 리가 없잖아, 저 희세가.


“앗 뜨거! 아오! 뭐야 이건!!”

“헤에에. 쟤가?”

“우웅, 진짜 그랬는데.”


희세는 짜증을 잔뜩 부리며 후라이팬을 쾅 하고 가스레인지에 놓는다. 기름이라도 튀었나, 잔뜩 짜증을 부린다. 난폭한 그 모습을 힐끔 보고 씨익 웃으며 희나를 보며 말했다. 희나는 약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믿기지가 않아, 그건 패스.


“근데, 희세 요리 잘 하냐?”

“응! 엄청 잘 해! 엄마만큼 잘 해!”

“헤에.”


희나는 방긋 웃으며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내가 생각했던 갭이 있는 미소녀는 아니구먼. 뭐, 요리를 잘 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좋지. 여자애가 해준 요리라. 허허, 청춘은 청춘이구나. 여자애가 날 위해 해 준 요리를 먹게 되다니. 남고였다면 꿈도 못 꾸겠지? 여고로 온 게 이거 하나는 좋구나. 나머진 전부 불편하지만.


“엄마한테 요리 배운 지 벌써 3년 됐거든! 그래서 엄마만큼 잘 해! 김치도 담글 줄 알아, 우리 언니!”

“오오, 그건 대단한데.”


희나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쭉 피고 말한다. 오, 그 자세는 희세의 당당한 포즈와 붙박이로 똑같네. 표정까지 비슷한 것 같아. 하긴, 자매니까. 희나는 언니 자랑을 하는 게 몹시 기쁜 듯 굉장히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그건 확실히 감탄할 만하네. 간단한 요리 정도야 딸이고 여자애니까, 엄마한테 배울 수 있다고 하지만 김치를 담그는 건 좀…. 과연 요즘 애들 중에 김치를 담글 수 있는 애가 있을까? 나야 김치 담글 때 그저 배추 나르고 소금 나르고 양념 나르고 하는 힘세고 강한 노동력이 필요한 것만 도왔지만, 보통 일이 아니니까. 여러 과정들이나, 그런 것들이. 잠깐. 생각해보니까 굳이 여기서뿐 아니라 집에서도 난 그냥 단순한 노예였구나… 크흑. 잠깐 눈물 좀 닦고.


“어쨌든 굉장하니까! 기대해도 좋아, 언니 요리 솜씨!”

“으흠. 기대되네.”


희나는 팔을 쭉 뻗어서 동그라미를 크게 그리며 말한다. 귀엽다. 케이나인이 그런 희나를 쓰러뜨리고 혀로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희나는 ‘꺄하핫, 간지러~~ 에에에~’ 하며 좋아한다. ……이건 어째 희세 것보다 더욱 위험해 보이는데. 아니, 망상 망상!!


“뭐라도 도울 거 있어?”

“으앗앗! 까, 깜짝이야!”

“뭐, 놀랄 게 뭐있다고 그래. 허허.”


희세는 화들짝 놀라 어깨를 들썩이며 한 마디 한다. 높은 톤의 놀라는 목소리가 귀엽다. 그러더니 노려보듯 나를 흘겨보며 ‘뭐! 왜!!’ 하고 신경질 낸다. 나 참, 자기가 놀래놓곤. 내가 놀래키려고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한숨을 푹 쉬고 ‘도와줄 거 없나 해서 왔어’ 하고 말했다. 이에 희세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도와줄 거 없으니까 그냥 푹 쉬세요~ 응?”

“아니, 할 게 없어. 그냥 옆에서 구경해도 될까?”

“마, 맘대로 해! 어차피 별 것도 없으니까.”


희세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나는 식탁에 앉아 요리를 하는 희세의 뒷모습을 구경한다.


음, 앞치마를 차고 머리를 묶은 희세의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이채롭다. 성숙한 외모의 희세이니만큼, 그렇게 하고 있으니 대학생 자취하는 누나 같은 느낌이다. 야무지게 머리까지 핀으로 찔러 평소의 공주님 같은 도도한 맛은 전혀 없고 살림꾼 같은 푸근한 이미지가 도드라진다. 이것도 이것대로 괜찮네. 하긴, 원판이 예쁜 애니 뭘 한들 안 괜찮겠어.


희세는 김치통에서 김치를 꺼내 도마 위에 놓고 썬다. 익숙한 칼놀림. 장갑도 안 끼고 그냥 썰어 희세의 고운 흰 손이 빨갛게 된다. ‘장갑 안 껴?’ 하니 ‘이딴 거 하는데 무슨 장갑을 껴! 그냥 하면 되지.’ 하고 말한다. 능숙하게 김치를 썰은 희세는 적당한 스테인리스 그릇에 김치를 담고 찬장에서 흰 가루를 꺼내 붓는다. 그리고 김치통에서 김칫국물과 정수기에서 물을, 소금 약간을 넣고 국자로 잘 젓는다. 음. 되게 잘 하네? 그냥 엄마가 하는 것처럼 술술 잘도 만든다. 한 번의 막힘 없이 망설임 없이 하는 걸 보니 자주 하나보다.

나는 구경하는 게 재밌어서 식탁에서 계속 희세를 구경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수수한 모습도 괜찮구나. 앞치마…… 무슨 음란한 생각을 하는 거냐, 또!! 아니, 딱히 알몸에 앞치마만 걸친 걸 상상하거나 그러진 않았어! 앜!! 그러면 지금 뒤에서 보면 엉덩이랑 등이랑 그대로 보일 거 아니야?! 으아아아!!

……작작 좀 해야겠다. 또 희세가 음란한 눈으로 봤다고 뭐라 할라.


“요리 되게 잘하네?”

“이게 뭘 잘한다고! 그냥 썰어서, 넣고, 물 넣고, 섞어서 굽는 거잖아!”

“그래도. 되게 능숙한데.”

“흐, 흥! 이따 점심 해주면 아주 기절하시겠네. 이 정도 가지고 그러면!”

“오오, 점심도 만들어주게?”

“그래야지 어떡해! 흐흥.”


희세는 갑자기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깔보는 눈빛으로 내려다본다. 수수하게 머리 묶고 앞머리 핀으로 고정한 모습으로 그런 표정 지으니까 심히 안 어울린다. 순수하던 애가 갑자기 타락한 것 같은, 그런 느낌.


“엄마한테 딱한 네 사정을 말하니 뭐라도 먹이라고 하더라구. 확실히, 거지 같이 사는 네 처지는 내가 봐도 꽤나 불쌍하니까, 많이많이 먹으라구. 우리 엄마의 자비야. 물론 나의 자비도 들어가 있지만.”

“헤에. 어머니한테 내 얘기도 하는구나.”

“아, 아, 아니!! 그건!! 엄마가 물어봤으니까!! 남학생 다니는 건 여기저기 유명하니까!!”


희세는 무심결에 던진 내 말에 왈칵 얼굴이 붉어지더니 홱 몸을 가스레인지 쪽으로 돌리며 말한다. 오, 나 그렇게 유명인이었나? 하긴, 여고에 남학생이 다니고 있으니 소문이 날 수도 있겠구나. 민감한 학부모라면 학교에 뭐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딴 쓰레기가 우리 딸 능욕하면 어떡하냐고. ……당신의 그 역겨운 상상력 덕분에 내가 쓰레기가 됐군요. 뭐, 이해한다. 애초에 지금 학교에서 내 이미지가 뭔데. 『변태 씨』 잖아.


“그러니까 되게 여성스럽다.”

“무, 무슨 말이야?! 그럼 평소엔 여성스럽지 않다는 말이야?!”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부침개 끝을 살짝 숟가락으로 뜯어 간을 보곤 방긋 웃는 희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절로 웃음이 나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에 희세는 또 내가 시비 거는 줄 알고 곡해하여 알아 듣곤 전투적인 표정으로 말한다. 저 놈의 사고방식 좀 어떻게 고쳤으면 하는데. 왜 내가 말하면 다 안 좋게 말하는 건 줄 아냐구. 나는 조금은 더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말했다.


“‘여자애가 남자애한테 질 수 없어!’ 이런 성격이니까, 요리 같은 건 전혀 못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어떤 여자애들보다 잘 하니까. 그거 말한 거야.”

“흥, 나는 그런 어리석은 애들이랑은 다르지!”


희세는 내 잔잔한 말에 그제야 내가 희세에게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 칭찬하는 것임을 자각했는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러더니 한 손은 팔짱을 끼고, 한 손은 뒤집개를 내 쪽으로 뻗으며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능력도 없고 내세울 거라곤 ‘남자’ 라는 성별밖에 없는 버러지들이 그 더러운 입을 놀릴 때, 그딴 놈들은 발라 버릴 수 있다구! ‘여자면 집에 가서 밥이나 해!’ 이딴 말 하면? 난 진짜 밥도 할 수 있다구! 하하하!!”

“……그런 이유로 요리를 잘 하는 거야?”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구. 그냥 취미야, 사실은.”


희세의 당당한 말에 나는 조금 어이가 없어 물었다. 살짝 부끄러웠는지 희세는 얼른 고개를 돌리며 딱딱한 말투로 대답한다. 정말 뼛속까지 남자에게 지고 싶지 않은 희세구나. 그래도 그 자세는 본받을 만하다. 남자에게 지지 않는다고 모든 걸 열심히 하면서, 정작 본인이 그토록 싫어하는 여성적인 일까지 마스터하다니. 그건 뭐, 희세가 그만큼 완벽초인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슬슬 부침개가 완성되는 것 같아 나는 부엌 구석에 있는 상을 펴고 젓가락을 깔았다. 일을 도와주지는 못하니 이 정도라도 해야지. 희세는 완성한 부침개 몇 장을 예쁜 그릇에 담아 상 위에 올린다.


“자, 가서 먹자.”

“응.”


먹음직해 보이는 부침개에 침이 절로 고인다. 사실 아침도 안 먹어 굉장히 배고픈 참인데. 기숙사에 혼자 있는데 급식도 아니고 도시락제면 남자애 혼자 있는데 밥을 제 때 챙겨 먹을까. 성빈이라도 와서 말해줬다면 먹었을 텐데, 어째 성빈이도 별다른 말이 없어서. 상을 들고 거실로 가니 희나는 ‘와아아~’하고 온다. 케이나인은 벌써부터 냄새를 맡았는지 멍청하고 졸려보이는 눈은 어디로 가고 총명하고 밝게 빛나는 눈으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내 쪽으로 다가온다. 저 녀석, 덩치 큰 데다 힘도 세서 저러고 다가오면 무섭다. 얼른 상을 내려놨다.


“어어, 케이나인! 기다려!”

“월! 월월!”

“어어, 왜 그래! 부침개 안 준다─?”

“끼이잉.”


정말 영특한 개네! 희세가 한 번 위협하니 금세 바로 앉아 식탁에서 발을 뺀다. 희세는 같이 갖고 온 작은 접시에 부침개를 하나 올려 케이나인에게 준다. 케이나인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뜨거운데. 동물은 뜨거운 거 못 먹는다던데.


“오, 맛있어!”

“아무렴, 누가 한 건데! 흐흥.”

“으응! 언니, 맛있어!”


희세는 나와 희나의 칭찬에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당당하다. 기분이 좋은지 살짝 얼굴이 발그레 해져서 고개를 쳐든다. 그러더니 젓가락으로 부침개를 맛보곤 ‘흐흥, 맛있긴 하네.’ 하고 말한다. 나는 괜히 장난 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근데 김치 부침개는 결국엔 김치 맛이잖아? 그치?’ 하고 장난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 김치도 내가 담갔는데?’ 하고 말하는 희세. 우왓, 완벽한 수비!! 뭐라 반박할 말이 없다!! 나는 할 말이 없어 묵묵히 김치 부침개를 먹으며 ‘맛있네’ 만 연발해서 말했다. 내 코를 납작하게 누른 희세는 깔깔 웃으며 ‘흐흥, 그런 무른 수는 나한테는 안 통하지! 꺄하하하!’ 하고 마음껏 날 비웃는다. 크윽, 뭐지 이 패배감.


부침개는 몇 장 안 돼서 금방 먹었다. 나도 나지만 의외로 작고 귀여운 희나가 꽤나 많이 먹는다. 도리어 희세보다도 더 많이 먹는 것 같아. 다 먹고 나니 배가 부르기는커녕 더욱 고프다. 뱃속에는 거지가 들었나 더 많은 먹음먹이들을 달라고 요동을 친다. 다 먹었어도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연거푸 들린다.


“아… 배고프네. 아침 안 먹었거든.”

“뭐?! 하아, 확실히 거지새끼는 거지새끼네. 변태까지 합치면 변태거지새끼인가?”

“그건 좀 봐주라, 더 붙이는 거는.”

“흐흥! 오늘 너 호강한다! 점심도 만들어 줄 테니까, 기다려.”

“이번에도 도와줄 거 없어?”

“됐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니까. 희나랑 나인이랑 놀고 있어.”

“네, 네.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흥!”


약간 멋쩍어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니 희세가 알아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또 자존심 때문인지, ‘밥 차려줄게’ 라고 말하기는 부끄러운지 자기 의지로 밥을 지으러 가는 것처럼 열심히 포장해서 말하곤 간다. 참, 여러모로 고맙네 오늘은. 희세 말마따나 정말 호강하는구나. 고향을 등지고 타지에 나와 생활한지 어언 한 달 남짓, 오래간만에 집 밥 좀 먹어 보겠구나. 흐뭇한 기분이 돼 나는 요리를 하러 가는 희세의 뒷모습을 훈훈하게 쳐다봤다.



“자, 먹어!”

“우오…… 이걸 다 했어?”

“응. 다 먹어!”


희세는 호전적인 말투로 말한다. 한 상 차려진 밥상은 그야말로 호화판이다. 메인으로 청국장이 있고, 고기볶음 같은 거에 야채도 종류별로 있다. 다 좋은데, 스타일이 완전 한정식이네! 난 좀 여자애 같은 요리 기대했는데! 샐러드라던가, 쿠키라던가, 케이크이라던가! 좀 유럽적인 느낌의 도도한 공주님 같은 희세는 정녕 없는 건가! 이건 장금이잖아!!


“응? 왜. 뭐 불만 있어? 싫어하는 거라도?”

“아니아니! 청국장 좋아해?”

“응. 내가 만들고 내가 먹지요─ 헤헷.”

“좋은 자급자족이네. 나도 좋아해.”

“잘 됐네, 나 청국장 잘 끓이니까. 맛있어.”


희세는 약간의 실망이 담긴 내 눈의 의미를 알아챘는지 귀신 같이 날 보고 묻는다. 나는 얼른 다른 얘기로 관심을 돌렸다. 꽤나 친해졌다고 생각이 드는지 약간 귀여운 장난까지 치는 희세. 뭐, 금방 원래의 고압적인 표정으로 돌아왔지만. 한 숟가락 들어 맛을 보니 과연 맛있다. 다른 음식들도 한 정성 들어가 다들 맛있다. 정말 푸근한 고향 밥상 같은 느낌이다. 다만, 공주님 같은 이미지의 도도한 희세가 만들었다고는… 상상이 잘 안 된다. 차라리 성빈이가 만들었다면 딱 맞을 것 같은데. 리유는… 아예 요리가 불가능하겠지. 라면이라도 잘 끓여주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


“으아! 배 터질 것 같아!”

“아하하, 진짜 배 빵빵해졌어!”


나는 밥을 다 먹고 거의 실신할 지경이 돼서 거실에 쓰러져 누웠다. 희나는 내 배를 꾹꾹 찌르며 깔깔 웃는다. 희세가 무슨 어머니 인심도 아니고, 밥을 한 가득 고봉밥으로 준데다 고기볶음하고 청국장 최대한 많이많이 먹으라고 해서 배가 한계가 되도록 먹었다. 정말 넘어올 정도까지 먹어버렸다. 죽을 것 같아… 좀만 쉬게 해줘… 확실히, 맛은 있었다. 특히 간이 심심한 편인데도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되는 묘한 마력이 있다. 설마, 마약?! 아아, 아니겠지.

희세는 누워 쓰러져 있는 나를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아마 자기 밥을 이토록 많이 맛나게 먹어준 대상이니 그런 눈으로 보는 거겠지. 요리는 취미가 안 맞는지라 안 해봤지만, 보통 자기가 만든 거 맛있게 먹어주면 되게 기쁠 거 아냐? 그런 기준이라면 나는 충분히 합격선이지. 엄청 맛있게 많이많이 먹었거든. 연거푸 맛있다고 칭찬했고. 칭찬할 때마다 부끄러워서 새침하게 ‘다, 닥치고 먹기나 해! 밥 먹을 때 얘기하는 거 아니야!’ 하고 쏘아 붙이는 희세의 반응도 귀여웠지.


“후훗, 정말 나태하고 게으른 남자의 표상이구나. 밥을 먹자마자 드러 누워버리다니… 희나야, 이걸 봐. 이게 바로 남자야. 이런 쓰레기라구. 얼마나 게으르고, 천박하고, 나태하니? 저런 건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야.”

“말이 심하네?!! 10살짜리 여자애한테 뭘 가르치는 거야!! 그 정도면 병이다, 병!!”

“뭐, 뭐가! 내가 틀린 말 했어?! 너의 지금 모습을 보라구! 얼마나 나태하고 게을러!”

“배 터질 것 같다고! 모처럼 맛있게 다 먹었다구! 봐, 이 용맹스런 전사의 최후를!”

“놀고 있네, 살이라 팡팡 쪄라.”


희세는 악담을 마구 퍼부으며 말한다. 나는 뭐라 반박하려 했지만 몸이 너무 무거워 숨조차 쉴 수 없어 겨우 누워서 반박했다. 희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와 희세를 번갈아보며 쳐다본다. 여전히 툴툴대는 희세다. 정말, 이럴 때 보면 너무 심하다 싶다니까, 저 남성 혐오증은. ‘나태하고 게으른 남자’ 어쩌고 왈가왈부해서, 거동하기도 힘든 몸을 힘겹게 일으켜 열심히 설거지를 했다. 참,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한 마디 하면 얼마나 좋아. 예쁘고 착하고 참하고. 하긴, 그 희세니까 그럴 리가 없나.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적을 말이 없네요, 헤헷.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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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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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17화 - 3 +18 14.02.21 2,108 54 20쪽
68 17화 - 2 +25 14.02.20 2,155 54 18쪽
67 17화. 여난. - 1 +23 14.02.20 2,351 44 18쪽
66 16화 - 4 +25 14.02.19 2,318 58 22쪽
65 16화 - 3 +23 14.02.19 3,070 56 19쪽
64 16화 - 2 +23 14.02.17 3,065 72 20쪽
63 16화. 놀러가요, 오빠! - 1 +21 14.02.16 2,874 63 19쪽
62 15화 - 4 +17 14.02.15 2,507 62 25쪽
61 15화 - 3 +24 14.02.14 2,310 53 24쪽
60 15화 - 2 +17 14.02.13 2,396 60 20쪽
59 15화. 가까운 미래에, 당신은. - 1 +23 14.02.12 2,513 64 19쪽
58 14화 - 4 +21 14.02.11 2,261 59 19쪽
57 14화 - 3 +18 14.02.10 3,803 139 21쪽
56 14화 - 2 +17 14.02.09 2,415 58 24쪽
55 14화. 나는 변태가 아니야! - 1 +21 14.02.08 2,484 51 19쪽
54 13화 - 4 +28 14.02.07 3,022 76 19쪽
53 13화 - 3 +21 14.02.06 2,449 56 22쪽
52 13화 - 2 +25 14.02.05 2,104 57 20쪽
51 13화. 전화위복 - 1 +21 14.02.04 2,698 53 17쪽
50 12화 - 4 +16 14.02.03 3,155 55 21쪽
49 12화 - 3 +24 14.02.02 2,586 73 22쪽
48 12화 - 2 +16 14.02.01 2,496 76 17쪽
47 12화. 데이트? 소풍? - 1 +23 14.02.01 3,040 65 18쪽
46 11화 - 4 +11 14.01.31 2,606 57 19쪽
45 11화 - 3 +21 14.01.31 2,711 69 17쪽
44 11화 - 2 +9 14.01.30 2,538 56 17쪽
43 11화. 시험 - 1 +7 14.01.30 3,003 106 19쪽
42 10화 - 4 +11 14.01.29 2,901 70 23쪽
41 10화 - 3 +11 14.01.29 2,759 56 22쪽
» 10화 - 2 +7 14.01.28 3,739 8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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