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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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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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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4.02.1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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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글자
19쪽

15화. 가까운 미래에, 당신은. - 1

DUMMY

아아, 안녕들 하십니까. 팔자도 기구한 여고의 변태 씨, 정웅도라고 합니다. 나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테니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근데 누구한테 말하는 거냐.


이름은 정웅도. 키는 180이 안타깝게 안 된 178. 마른 편은 아니고, 나름 잔근육으로 탄탄하게 다져진 몸이라 생각하지만 최근엔 통 운동을 안 해 살이 찌는 것도 같다. 중3 방학 때, 정말 어이없으면서도 안타까운 사건으로, 아니 사건이랄 것도 없고, 간단하다. 엄마가 원서를 안 넣었다. ……이게 말이 돼?!

해서 남아 있는 학교 위주로 넣다보니 어쩌다보니 여고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됐다. 뭐, 명분상으로는 원래 남녀공학이었다고 하지만. 처음 다녔을 때엔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 엉뚱한 오해로 무슨 강간범 취급당하듯 왕따 당해버리고, 겨우 해결은 했지만 거국적 단위로 변태 인증(?)을 하게 돼서 순식간에 칭호가 ‘변태 씨’ 로 굳어져 버렸고.

지금은 일종의 관용구 같은 게 된 것 같다. 그 칭호가 싫어 벗어나고자 노력도 해 봤지만…… 소용 없다. 아니, 더 심해진 것 같다. 잘 해결은 했지만.


지금은 아주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누리고 있다. 성빈이, 리유, 희세와는 완전하게 밥 패밀리를 이루어 점심, 저녁을 같이 먹는 사이이고 반의 나머지 여자애들 어느 누구하고도 친밀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다. 희세만큼 존재감이 강하고 여왕처럼 애들을 확 휘어잡는 건 아니지만, 약방의 감초처럼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정도는 된 것 같다. 후훗, 그럼, 내가 누군데. 사나이 정웅도인데! 이제부터가 시작인거지, 흐핳하!


“부탁이 있어요!”

“응, 친구끼리는 존댓말 쓰는 거 아니야?”

“웅웅, 어쨌든!”


수업이 시작되기 전, 혼자 지금까지 내가 이 여고에서 적응하며 살아온 내력을 업적처럼 회상하며 훈훈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리유가 와서 내 책상 구석 쪽에 붙어서 쪼그리고 앉아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해맑은 눈으로 올려다보는 게 꼭 고양이처럼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앙증맞게 눈을 감으며 내 손을 느낀다. 더욱 귀여워 더욱 쓰다듬어주면 더욱 좋아한다. 그러다 머리를 털며 리유는 큰 소리로 말해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부탁이 있다니까!”

“응, 뭔데?”


리유는 약간 화난 듯 생떼 부릴 것 같은 느낌으로 말한다. 나는 그제야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리유를 반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리유는 ‘헤헤’ 웃으며 나를 빤히 본다. 그러더니 몸을 돌려 다른 쪽을 쳐다본다.


“저 애.”

“응?”


결코 그 쪽을 손으로 가리키지는 않고, 약간 애처로운 것 같은 불쌍한 느낌의 눈빛으로 교실 오른편 구석을 쳐다보며 말한다. 정확히 어디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기에, 나는 ‘쟤? 저쪽 쟤?’ 하며 물어봤다. 입을 다물고 고개를 흔드는 리유의 풀죽은 표정을 세 번 정도 보고 나서야 겨우, 리유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대강 왜 그러는 지 알 것도 같고.


저 애는 그러니까…… 이름이 특이했지. 근미래. 희귀성씨에 ‘ㄱ’자로 시작하는 성이라 출석번호 1번인 여자애. 하지만 그 외의 특이점은 없는 것 같다. 굉장히 조용하고, 소심한 듯한 성격. 실제로 소심한 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애들하고 전혀 어울리질 않는다는 것. 이동수업 같은 것 할 때에도 혼자 돌아다니고, 점심이나 저녁도 혼자 먹는 걸로 알고 있다. 쉬는시간에는 늘 휴대폰만 들여보고 있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소심한 여자애다.

외모도 결코 튀지 않는 스타일이다. 앞머리 있는 조금 긴 단발 정도 머리에, 그나마도 늘 깔끔하게 포니테일로 한데 묶고 있다. 가끔 머리핀으로 앞머리까지 고정하기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건 몇 번 못 봤다. 시력이 나쁜지 크고 귀여운 뿔테 안경을 쓰고 있다. 그렇다고 또 그 뿔테 안경도 엄청 튀는 것은 아니고, 요즘 여고생들 중 누구라도 아무나 쓰고 있을 것 같은, 그런 안경. 도수가 쌔 보이는 안경 탓인지 눈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피부가 안 좋거나 한 건 아니지만 워낙 피부미인인 희세나 리유 같은 애들이랑 놀다 보니 그냥 그저 그런 여자애다.

음, 확실히 엄청 수수하긴 하다. ‘그냥’ 여자애. 대한민국 어느 학교에나, 반에 한두명쯤 있을 법한 소심한 여자애. 그렇다고 또 모범생일 것 같은 느낌은 아니다. 소심하면서 모범생인 여자애 타입은 반장인 채영이지. 저 애는 그냥, 그냥 여자애.


“쟤 왜?”

“외로워 보여서. 친구가 돼 줘.”

“……내가?”

“응.”


저 여자애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이게 끝이다. 생각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이고 리유에게 말하자 리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나는 잠시 리유가 한 말을 인식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다. 잘 이해가 안 가는데.


“무슨 말이야. 친구가 돼 달라니. 내가?”

“웅.”

“……너는?”

“나는 힘들어, 친구 없으니까. 헤헷☆”

“…….”


리유의 천진난만한 웃음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도시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 백 보 양보해서, 참견하기 좋아하는 리유의 성격상 혼자 애들하고 동떨어져 지내는 여자애를 보고 동정심을 느껴 나에게 말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좀 더 판단해보자면, 저렇게 혼자 다니는 여자애를 보면 공감되고 안타까운 그런 마음이 들겠지, 리유라면. 자기가 그런 비슷한 무시를 당하고 있었으니까.

근데, 말이 이상하잖아. 희세 때처럼 ‘저 애랑 친구가 되는 걸 도와주세요’ 도 아니고, 내가 저 애랑 친구가 돼 달라니. 이제 내 교우관계까지 간섭하는 거야? 아니면 뭐, 차마 저 애랑 친구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안쓰러우니까 내가 대신 친구가 돼 달라, 그런 말인가? 별 생각을 다하며 언짢은 표정으로 리유를 쳐다보니 리유는 약간 겁 먹은 표정이 돼서 대답한다.


“우, 웅이 네가 먼저 친해지고 나면 다 같이 얘기할 수 있으니까…… 화났어?”

“아니, 화난 게 아니라. 뭐, 됐어. 말 걸기 껄끄러우니까 내가 대신 걸어봐달라, 그렇게 이해하면 되지?”

“웅웅! 헤헷. 고마워, 역시 웅이야.”


굉장히 눈치가 없는 편인 리유지만 내가 기분 좋지 않은 건 귀신 같이 알아챈다. 어린아이 앞에서 화난 표정 지으면 좋을 게 없지. 금세 웃는 표정으로 말하니 리유 역시 방긋 웃으며 말한다. 방실방실 웃으며 말한다. 리유의 칭찬에 다시금 언짢았던 기분이 풀렸다.





“음─ 근미래?”

“응.”


자, 그럼 어디 공략해볼까. 무슨 일이든 계획을 잘 짜서 행해야지. 내가 알고 있는 저 여자애에 대한 정보는 굉장히 단편적인, 외적으로만 알 수 있는 정보 뿐이기에 더욱 많은 정보를 알아야 한다. 다행이 내 옆에는 공식 인증 지혜 주머니(?), 성빈이가 있기에 별다른 걱정은 없다. 내 물음에 성빈이는 앞의 지선이와 얘기하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말한다. 지선이까지 나를 같이 본다.


“미래…… 잘 모르겠는데. 같은 중학교도 아니었고. 사실 별달리 얘기를 안 해봐서, 나도 잘 몰라.”

“그래…….”


성빈이는 결코 발이 좁거나 하지 않다. 오히려 희세보다도 유리한 면이 있다. 희세는 반의 대부분의 여자애들과 친하고 엄청 영향력도 강하지만 그건 뭔가 독단적인 면이 있다. 누님처럼 화려하고 여왕님처럼 군림할것만 같은 이미지인지라, 그래, 그 이미지란 게 굉장히 드세 보이고 센 편이기에 약간의 부담감을 가지고 잘 못 다가가는 애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성빈이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다정하고 배려해주는 타입이기에, 전문용어로 말하면 치유계라고 하지. 하여튼 그렇기에 반에서 성빈이가 잘 모를 정도라면 정말 교우관계가 좋지 않다는 얘기인데. 가만히 나와 성빈이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지선이가 입을 연다.


“절대 평범한 애는 아니야.”

“오, 좀 아는 거 있어?”


시크한 성격에 독설도 잘 내뱉는 성미와는 다르게 그리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닌 지선이가 말을 꺼내니 나는 반가운 마음에 말했다. 지선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며 이어 말한다.


“친해져보려고 학기 초에 말 걸어 봤었는데…… 실패했어.”

“응? 뭐, 왜? 좀 이상한 애야?”

“……그건 직접 가서 말 걸어 봐.”

“……??”


지선이는 내 물음에 표정이 싹 굳으며 고개를 앞쪽으로 한다. 내가 의아하여 계속 고개를 갸웃 거리며 ‘뭔데? 뭐?’ 하고 말해도 묵묵히 대답하지 않는다. ‘직접 가서 말 해봐……’ 하고 은은히 대답할 따름이다. 이상하네.


그 말 그대로,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직접 다가가서 말을 걸어 봐야지.


가까이에서 본 미래는 휴대폰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깨알같이 글씨가 써 있는 걸 보니 소설이라도 보는 모양. 평소와 마찬가지로 단정한 포니테일 머리에 돋보이는 뿔테 안경을 쓰고 있다. 극히 평범한 외모지만 자세히 보니 또 예쁘장한 것 같기도 하다. 꾸밈 없이 수수한 모습이라 평범해 보이는 것이겠지. 확실히, 희세처럼, 아니 성빈이 정도로만 가꿔도 충분히 예쁜 여자애가 될 것 같은 외모다.


“저기.”

“네? 저요?”

“아…… 응??”


나는 잠자코 미래의 앞에 서서 말을 걸었다. 다른 여자애들이 쳐다보면 조금은 창피할 수 있으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래는 고개를 싹 돌려 시선을 내 쪽으로 하며 말한다. 목소리 예쁘다. 정말 의외로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 살짝 놀라울 정도다. 어디 성우 지원 하실 의향 있으신가요? 목소리 만큼은 어떤 미소녀에 비길 데 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내가 놀란 건 그런 예쁜 목소리 때문이 아니다. 얘 방금 나한테 존댓말 쓴 거지? 리유처럼 자기가 당황스러울 때나 말을 체 못 이을 때 장난스럽게 하는 존댓말이 아니라, 정말 윗사람한테 하는 것 같은 명백한 존댓말. 잘못 들었나 하여 다시금 말을 걸었다.


“방금 뭐라고…….”

“네, 부르시지 않았어요?”

“……으엣.”


방긋 웃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말하는 미래. 뭔가 소름이 돋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몰라 뭐야 얘 무서워. 슬쩍 뒤를 돌아 지선이를 쳐다봤다. 성미와 얘기하고 있다. 슬슬 지선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인데.

이런 상황에 처하면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이나 지식이 거짓부렁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에. 유치원 때 처음 친구라는 걸 알게 된 뒤로 10여 년 동안 줄곧, 나는 그렇게 행동해왔다. 친구에겐 존댓말을 쓰지 않는다. 존댓말은 어른들에게만 쓰는 것이다. 그 어른이란 것도, 젊은이가 아닌 중년 이상으로 꽤나 큰 어른들 개념이다. 당장 친척 형이나 누나들한테도 반말 쓰는 걸. 헌데 이 여자애, 그런 내 상식을 무참히 깨부숴 버렸다. 재차 확인해보려 말을 걸었는데 아주 정확한 존댓말을 구사하는 여자애다.


“왜 존댓말을…….”

“아, 신경 쓰이나요? 데헷.”

“……무지.”


전혀 친하지도 않고, 도리어 지금은 묘한 두려움까지 약간 느끼고 있기에 리유에게 하듯이 시큰둥하게 ‘친구끼리는 존댓말 쓰는 거 아니야─’ 하고 말할 수가 없다. 미래는 뒷머리를 긁으며 혀를 쭉 내밀며 말한다. 우와, 장난 아니야. 진짜 ‘데헷’ 이라고 직접 말로 했어. 이런 여자애는 처음 본다. 미래는 그렇게 수줍게 웃다 갑자기 정색하곤 나를 올려다본다.


“전 빠른 년생이거든요!”

“아니, 그 전에…… 친구잖아. 빠른 년생이고 자시고.”

“아뇨, 전 확실하게 한 살 어린데요. 열 여섯 살!”

“…….”


게임이라면 이런 효과를 ‘스턴’ 이라고 하겠지. 뭐라 말을 이어야 할지 난감하다. 확실히 정상인 여자애는 아닌 것 같다. 나는 묵묵히 말하지 않고 미래를 내려다봤다. 미래는 예쁜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하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인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수수하게 생겼지만 그렇게 고개 까딱이니까 나름대로 귀엽긴 하다. 기본기가 갖추어지지 않은 얼굴은 아니니까.


“그런데, 왜 부르셨어요? 무슨 용무라도 있으신가요?”

“아아, 그 말투 엄청 거슬리는데. 좀 반말로 하면 안 될까? 나까지 존댓말 써야 할 것 같잖아.”

“어멋, 그건 안 되죠. 연장자한테 존댓말을 쓰는 건 제 원칙이랍니다! 숙녀의 비밀원칙을 그렇게 함부로 바꿀 순 없·지·요?”

“…….”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 이질감을. 귀엽긴 한데, 확실히 예쁜 목소리와 중간 이상 가는 외모로 굉장히 상큼발랄한 귀여움을 선사하긴 하는데…… 뭔가, 만화 캐릭터를 그대로 현실로 무리하게 대입시킨 것 같은, 그런 위화감이 든다. 이 여자애. 게다가 방금 처음 말을 건 남자애인 나한테 이런 식으로 애교 비슷한 수작을 부리는 건 또 무슨 상황인가.

다시 한 번 할 말을 잃은 나. 이렇게는 대화가 성립이 안 된다. 대화를 길게 끌면 안 되겠다. 두 마디밖에 안 나눴지만 나는 조금 미래에 대해 파악하게 된 것 같다. 할 말을 얼른 하고 반응을 살피는 게 제일 나을 것 같다. 해서 나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말을 건 데에는 이유가 있어.”

“네, 뭔데요?”

“친구 되고 싶어서.”

“어머, 세상에─ 그렇게 속보이는 말을 뻔뻔스럽게! 우후훗♡”

“…….”


정말 알면 알수록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뭔가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말없이 서 있자 가만히 나를 올려보며 입을 여는 미래.


“남녀가 서로 알아가려면, 누구인지 서로 소개를 해야지요. 그렇죠?”

“……네네, 그렇지요.”

“어멋, 왜 존댓말을? 이상하잖아요.”

“넌 안 이상하고! 진짜! 이상하잖아!”

“후훗, 전 안 이상하답니다.”


나는 체념한 표정으로 건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상하다’ 는 말에 참지 못하고 미래에게 쏟아 부었다. 누가 누구더러 이상하다는 거야! 다른 애는 몰라도 이 애에게 그런 말 듣고 싶지는 않다. 미래는 나의 반응에 방긋 웃으며 ‘재밌어요~’ 하고 말한다. 웃는 모습 하나는 귀엽네. 그래도, 확실하게 정상은 아닌 애다. 골치 아프다.


“제가 아는 바로는. 이름은 정 웅도이고, 저보다 한 살 많은 거, 확실히 맞죠?”

“응, 난 빠른 년생 아니니까. 나도 이제 모르겠다, 존댓말을 쓰건 반말을 쓰건.”

“네, 그럼 웅도 『오빠』라고 부를게요, 웅도 오빠?”

“……!!”


나는 그리 이 애에게 거리를 둘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됐다. 기본적으로 나는 여자애들에게 굉장히 신사적으로, 나쁘게 말하자면 조금 거리를 두고 얘기를 시작한다. 성빈이나 희세, 리유처럼 아주 친한 애들이 아니라면. 그게 당연한 게 아닌가, 남자하고 여자의 차이가 있는데. 어느 정도 가면이나 장막을 치는 셈이지. 진짜 내 모습을 보는 건 나와 친한 애들인 것이고. 하지만 이 애는 기본적으로 사고가 정상이 아닌데다 그리 여자애처럼 느껴지지도 않으니까. 괜히 지선이가 경고한 게 아니구나. 괜히 혼자 겉돌고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건성으로 대충 말했는데 미래는 밝은 목소리로 수줍게 웃으며 살짝 볼을 발그레 물들이며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시공간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심장이 덜컥 뛴다. 몸이 굳어 버린 것 같다. 방금 전에 뭐라고 했어? 오, 오, 오…… 오빠라고?!



오빠. 영어로는 브라더. 일본어로는 오니쨔응. 하지만 어떤 단어도, 한국어에서의 이 「오빠」라는 말의 어감을 따라올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떤 단어도, 어떤 말도 여자의 애교 섞인 콧소리로 ‘오빠♡’ 라고 하는 말은 따라올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자애다. 변태 소리 듣고 취급도 마찬가지지만 어디까지나 평균이라고.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남중─남고 테크를 타는 남학생이라면 필연적으로, 여자애들과 멀어지게 돼 있다. 아니, 설령 남녀공학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인 일이 하나 있다. 나는, 나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여고에 와서 이렇게 여자애들하고만 얘기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지만 하나,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있다.

바로 ‘오빠’ 소리를 듣는 것. 같은 나이인 친구들이 오빠라고 불러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1년 뒤 2학년이 됐을 때 들어오는 후배들에게 오빠 소리를 들을 것 같지도 않다. 보통 평범하게 학교 다니기만 한다면 후배들하고 친하게 지낼 만한 이유가 전혀 없거든. 무슨 일본 애니에 나오는 고등학교도 아니고, 정확하게 한국 고등학교의 현실을 말하자면 지금의 학교는 과연 선배─후배 관계가 존재하나 싶을 정도로 서로 남남이니까. 그나마 노는 애들이라면 자기들끼리 선후배 관계를 만들고 놀겠지만 여긴 여고이고, 난 그런 부류 애들도 아니니까. 그나마 기숙사 쪽이라면 좀 괜찮겠지만 여튼.

대학교에 간다 해도, 보통 대학교를 1학년 다니고 군대를 가는 게 이 나라 청년들의 불행한 현실이다. 남중─남고─군대라니! 그런 착찹하고 답답한 현실을 버티고 나서야 스물 셋, 스물 넷 된 나이 든 어린애(?)들은 처음으로, 자기보다 서너살 어린 후배에게 ‘오빠’ 소리를 듣게 된다. 나도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했고, 딱히 고등학교 기간동안 오빠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거, 이거……! 너무 좋잖아?!


“뭐, 뭐라고…… 했어?”

“네, 웅도 오빠?”

“……끄흣!”


더듬거리며 말하는 나의 말에 미래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귀엽게 예쁜 목소리로 말한다. 그아아앗! 순식간에 미래의 목소리가 내 귀를 뚫어 뇌까지 들어오는 기분이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얼마나 청아하고 고운 목소리인가! 순식간에 미래에 대한 매력치가 +80 이상은 된 것 같다. ‘오빠’ 라는 말의 파괴력이 이렇게나 강한 것이었나.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고 어떻게든지 아껴주고 싶어졌다.

방금 전까지 미래에 대한 평은 ‘그냥 수수하게 안 꾸미고 있는 여자애인데 성격이 또라이’ 정도였는데, 「오빠」공격의 엄청난 파괴력으로 인해 그 인식조차 재창조되고 있다. 뭐라 말을 이으려 했지만 곧 수업종이 울려 나는 ‘이따, 이따 올게’ 하곤 자리로 돌아갔다. 아직도 머릿속에 미래가 말한 ‘오빠’ 소리가 청명하게 맴돌고 있다. 아아. 아아! 좋구나, 그거!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굉장히 늦게 올렸지요? 3박 4일이 된 친구들과의 여정 가운데 완벽하게 비축분을 소비하고 간신히 써서 올립니다. 오늘을 넘기지 않아 다행이네요. 점점 늦게 올리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요. 내일부터 다시 두문불출 할 것이기에 딱히 걱정은 없습니다.


아, 전 화(14화)를 기준으로 권수가 바뀌었습니다. 이번 화부터 4권 시작이네요. 어멋, 벌써?! 하핳, 이 기세로 한 8~10권까지 갔으면 좋겠네요. 내용이 시궁창이니 양이라도 많아아죠, 하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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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3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2.12 23:49
    No. 1

    음? 저게 이상한 가요? 흔하지 않나? 아, 하긴 내 주위 인물들은 장난으로라도 평범이라고 할 수는 없는 애들이었지.
    오빠, 오빠라... 자주 듣는 말인데.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08:26
    No. 2

    에... 아무래도 제가 알고 있던 상식이 잘못된 것이 맞는 것 같네요 ㅠㅠ ㅋㅋ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59 케이루스
    작성일
    14.02.13 00:03
    No. 3

    헐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 이 소설의 결론은 하렘하렘인가요! 벌써 손댄 여자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08:27
    No. 4

    우홋! 그렇지요, 아무래도. 배경이 여고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제 잘못이 아니에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6 케듀시어스
    작성일
    14.02.13 00:25
    No. 5

    오빠...마법의단어...!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08:27
    No. 6

    그렇지요, 오빠... 저도 들어보고 싶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3 소희와순규
    작성일
    14.02.13 01:40
    No. 7

    서현이가 드디어 등장했군요... 희세=싴, 성빈=탱, 리세=규, 정희=수영, 사감선생님=윤아, 담임선생님=파니, 성미=유리, 미래=서현, 여학생1=효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08:27
    No. 8

    후훗, 과연 저 여자애가 서현일까요... 아직안 잘 모르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광인입니다
    작성일
    14.02.13 01:43
    No. 9

    그거 듣기시른데.. 오빠라니.... 주변에 저보다 어린 여자애들이... 넘쳐흘러서..
    그거말고 주인님은 어떨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08:28
    No. 10

    우와, 주변에 저보다 어린 여자들이 넘쳐 흐르시다니, 부럽네요... 라기보다 주인님이라니!!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근데 그거 괜찮네요. 역시 한 신사력 하시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6 rosemary..
    작성일
    14.02.13 03:08
    No. 11

    오빠가 최고임 주인님은 이미 매체를 통해서 너무 봤더니 식상하다능능능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08:28
    No. 12

    ...그게 더 이상해요. 그게 더 타락한 것처럼 보여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3 낭만클럽
    작성일
    14.02.13 05:07
    No. 13

    오빠란 호칭은 취향을 많이 타는것 같아요...

    전 오빠 소리만 들어도 주먹이 불끈...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08:29
    No. 14

    아, 그건 친구가 그런 경우를 봤어요. 여동생이 개년이라... 허허... '오빠' 모에는 아무래도 여동생이 있으면 힘들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2.13 07:44
    No. 15

    아! 그러고 보니 저는 주인님이라고 부를 일은 많지요. 이 몸, 노예니까요.
    그리고 귀여운 동생에게 오빠라는 말을 들으면 아빠미소가 만들어지죠. 허헣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08:29
    No. 16

    오, 그 말 괜찮네요. 아니 뭐가 괜찮아!! 음, 역시 리유 같은 애가 오빠라고 해주면 참 좋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피리휘리
    작성일
    14.02.13 10:35
    No. 17

    요편은 평범하닷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11:40
    No. 18

    평범... 네, 그렇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dsafsdas..
    작성일
    14.02.13 15:09
    No. 19

    아아 여러분 모두 '오빠'란 단어에 꽂혀서 놓치고 있는 게 있어요
    저 친구의 최대 매력포인트는 바로 성우 목소리 입니다. 흫흐흫흐흫
    목소리를 아주 잘 느낄 수 있는 편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17:48
    No. 20

    후훗, 날카로우시군요. 그렇습니다, 이 여자애는! 목소리가 모에~~!! 애니화까지 노리는 신의 한수! (은)는 개뿔, 출판도 안 됐는데... 허헣...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Yaksa
    작성일
    14.02.13 17:36
    No. 21

    여자들은 어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지 그란데 동갑내기가 언니라면서 추켜세우면 괜히 싫어할 지도 모르겠군 왕따 당할 수도 있는 캐릭터인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3 17:48
    No. 22

    오오... 뒤를 찔린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이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3 23:24
    No. 23

    오빠~ 아니죠 오빠아아 맞습니다!
    왕건이 생각나는건 왜일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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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16화 - 3 +23 14.02.19 3,070 56 19쪽
64 16화 - 2 +23 14.02.17 3,065 72 20쪽
63 16화. 놀러가요, 오빠! - 1 +21 14.02.16 2,873 63 19쪽
62 15화 - 4 +17 14.02.15 2,507 62 25쪽
61 15화 - 3 +24 14.02.14 2,310 53 24쪽
60 15화 - 2 +17 14.02.13 2,396 60 20쪽
» 15화. 가까운 미래에, 당신은. - 1 +23 14.02.12 2,513 64 19쪽
58 14화 - 4 +21 14.02.11 2,261 59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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