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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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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2.2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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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7
추천
102
글자
21쪽

19화 - 2

DUMMY

“수, 술이잖아?!”

“후훗! 그렇지요!! 언제 마셔보겠어요, 이런 날 아니면!”


희세는 미래가 올린 병을 보고 떨리는 목소리로 답한다. 미래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당당한 목소리로 말한다. 미래가 붙들고 있는, 익숙한 초록색 투명한 병. 길 가다 곧잘 보이는 소주병이다. 그것도 멀쩡히 들어 있는. 나 역시 흠칫 놀라기는 마찬가지이다. 성빈이도 마찬가지로 놀랐고.


“아, 아무리 그래도! 학생 신분으로 음주라니! 안 돼, 그건 범죄야!”

“아잉, 언니~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굴어요! 여자면서! 딱딱하게 구는 건 웅도 오빠만♡”

“무, 무슨 개소리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봉지에 있는 많은 잘강잘강 소리를 내는 것중 하나만 꺼냈을 뿐인데 희세는 바로 기각해버린다. 아아, 그럴만도 하지. 화려한 생김새와 도도한 표정과는 다르게 희세는 되게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성격이니까. 당장 지금 미래가 치는 섹드립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며 얼굴이 빨개진다. 어이어이, 너무하잖아, 내가 뭘 어쨌다고. 미래는 희세에게 달라붙으며 징징대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러면 희세는 잘 버티지 못하게 된다. 과도한 스킨십에, 잔뜩 싫어하는 ‘언니’ 라는 목소리에, 희세가 질색하는 ‘여자애가 교태부리는 것’ 까지 하고 있으니.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하고 있구나, 미래. 아니, 미래라면 분명 노리고 한 것임에 틀림 없다.


“으으, 좀 떨어져!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학생이 술이라니!”

“흐응. 저희나라는 음주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요! 5공화국의 3S 정책 모르세요?! 그 때부터 소주값이 싸져서 지금에 이르고 있는 거라구요! 마셔 줘야해요!”

“3S 정책은 그런 거 아니야! 게다가 왜 이런 때에만 그렇게 똑똑한건데!!”


희세와 미래는 엉겨 붙어 논쟁을 펼치고 있다. 희세 말대로, 이런 때에만 똑똑해지는 미래. 희세의 격한 반응에 ‘흥!’ 하며 토라진 표정이 돼선 떨어져 나온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말한다.


“좋아요, 우리나란 민주주의 공화국이니까! 투표로 해요. 이 술을 마시겠다, 마시지 않겠다로요!”

“그런 걸로 마실 수 있을 것 같아?! 술이라고, 술!”

“어머, 자신 없으신가보죠? 천하의 희세 언니가, 이런 쪽엔 약하신가 보네요?”

“뭐, 뭐얏?! 좋아, 맘대로 해 봐! 정의는 승리하니까!”

“후훗! 좋아요.”


희세는 보기 좋게 미래의 도발에 넘어가며 대답한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누가 봐도 도발인 게 뻔히 보이는데. 어쩌면 자존심 센 희세의 성격을 미래가 잘 이용한 것일지도. 희세는 나를 힐끔 보며 ‘정의는 승리하니까!’ 하고 말한다. 무언의 압박일까. 아니, 나도 마실 생각은 없었다. 술 얘기만 하면 나는 굉장히 약해지니까. 학기 초에, 단순히 선생님이 준 술 초콜릿 만으로도 인사불성이 된 나인데. 정확하게 측정할 순 없지만 굉장히 술이 약한 것 같다, 나는. 게다가 약한 건 둘째치고 그 때…… 정말 기억은 안 나지만 성빈이 가슴을 덥썩 잡았다고 하니까. 굉장히 음란하네, 나란 녀석. 본능이 그런 건가. 변태 씨의 칭호를 받기 적합한 애였어. 하하.


‘딸깍.’

“이 술, 그냥 버리시겠습니까? 이 좋은 날, 한 잔의 술로 갈증난 목을 축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맥주도 있었어?!”

“여러분, 저희는 어린애가 아닙니다. 이걸 마심으로써, 어른으로써의 길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일탈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깥에서 보기엔 작은 분탕질이겠지만 저희에게는 아주 큰 한 걸음인 것입니다!”

“오오! 이거 마시면 어른 되는 거야?”

“아니야, 그런 거!!”


미래는 봉지에서 마저 맥주병을 꺼내 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한다. 희세는 깜짝 놀라 말했지만 미래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잇는다. 꼭 무슨 정치선동하는 느낌으로 말하는 미래. 미래의 말에는 묘하게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어, 청소년이 술을 마시는 것을 정말 정당화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리유는 ‘어른이 된다’ 는 말에 넘어갔는지 벌써 찬동하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말한다. 희세가 저지하지만 별 소용이 없는 것 같다. 미래는 의기양양하게 자리에 앉는다. 희세는 그런 미래를 보며, 약간 자신 없는 표정으로 나선다.


“소, 솔직히!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술이라고! 청소년이 이런 것 마시면 안 되는 건 모두 뻔히 알잖아? 아무리 우리끼리 노는 거고, 아무도 모른다고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거야. 종업식이고, 모두 들떠있는 파티지만 술 같은 거 안 마셔도 훨씬 건전하게 놀 수 있다구!”

“에에. 재미없어, 히이.”

“재미가 아니라! 상식이고 법률이라고!”

“에에. 고리타분해요, 언니.”

“넌 시끄러!”


희세의 말에 미래와 리유가 야유하듯 말한다. 희세는 이에 억지주장 하듯 밀어 붙인다. 저게 100퍼센트 맞는 말인데, 왜 억지주장처럼 보이지.


“자, 그럼! 마시는 걸 찬성하는 사람은 손을 드세요!”

“나! 나!”

“후훗.”

“나, 나도……”

“에엣, 성빈이 너도 마신다고?!”


미래는 말을 마치고 바로 손을 번쩍 든다. 미래의 말을 따를 게 익히 예상되던 리유는 당연하다는 듯 번쩍 손을 든다. 그리고 의외의 인물, 성빈이. 살짝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손을 든다. 희세는 깜짝 놀라 성빈이를 보며 말한다. 성빈이는 ‘에헤헤…….’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희세는 ‘제정신 맞아?! 미래랑 리유 사이에 있으니까 너도 맛 간 거 아니야?!’ 하며 말하지만 성빈이는 ‘한 번 정도는 마셔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하는 대답을 한다. 희세는 한 방 맞은 표정이 됐다. 나도 좀 얼떨떨하다. 솔직히 희세보다 훨씬 모범생처럼 생긴 성빈이인데. 실제로도 그렇고. 성적 빼고는 모든 면에서 희세보다 모범이 되는 성빈이니까. 특히 성격 쪽에서. 아, 성적도 결코 낮은 건 아니다. 희세가 지나치게 높은 거지. 이러면 결국 마시는 쪽으로 가는 건가.


“무, 무효야! 6:4잖아!”

“에에? 과반수 모르세요? 똑똑한 희세 언니가 그걸 모를 리도 없고, 혹시 패배를 인정하기 싫은 과한 자존심? 후훗.”

“크윽…… 아니야! 이건 ‘술’이라는 중요한 문제잖아! 그렇게 간단하게 마실 수 없어!”

“헤에. 그렇다면…….”


미래는 은근한 표정으로 희세를 도발한다. 하지만 희세의 의견표현은 완고하다. 정말 완강하다 싶을 정도로 희세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뭔가 애처로울 느낌이 들 정도로. 그게 맞는 거지, 희세의 의견이. 희세는 분명 나중에 올곧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다.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미래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더니 힐끔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오빠는, 술 안 드시려구요? 남자가?”

“어지간한 도발로 나를 넘어가게 하려 하지 마라. 난 의지의 사나이니까.”

“후훗♡ 역시 제가 선택한 오빠네요.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미래의 말에 대답했다. 그렇게 쉽게 넘어가진 않지. 미래를 잘 알기에, 그게 도발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워낙 희세에게 ‘남자새끼가 ~~도 안해/못해!’ 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내성 생겼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오빠, 자☆은 달고 있으신가요?”

“푸흡!!”

“불☆ 두짝 달리신 분께서 어떻게 술을 마다할 수가…… 정말, 실망이에요.”

“무, 무, 무, 뭐라는 거야!! 어지간히 하랬잖아!”

“으흥흥. 보여서 증명할 수 없다면, 저는 못 믿을 수밖에 없잖아요? 아니면, 여고 다니면서 품성도 소녀처럼 바뀌신 건지~? 우훗훗, 웅도 언니?”

“으으…… 으으아아아!”


미래의 도발에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분노가 멈추지 않고 심장을 중심으로 온 몸으로 뻗쳐 나가는 기분이다. 뭐라고, 웅도 ‘언니’라고?! 앞의 다른 말들은 그러려니 넘어가겠지만 ‘언니’ 라는 말만큼은 참을 수 없다. 평소에 ‘오빠’ 라고 귀엽게 말하는 미래가 한 말인지라 더욱 타격이 크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깟 것, 얼마든지 마실 수 있어!”

“야, 야! 이거 너 넘어오게 하려는 수작질이잖아! 겨우 그런 거에 넘어가면 어쩌자고!”

“상관 없어! 이건 남자의 자존심이야!”

“후훗♡ 역시, 오빠는 상남자군요. 그럼 언니, 이제 1:4네요?”

“으으…….”


나는 이게 도발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순순히 넘어가게 됐다. 아니, 짜증나잖아. 난 당당한 남자다. 다른 건 몰라도 자☆과 불☆은 건드리면 안 되는 말이었어. 내 소우주가 가만히 있질 않아. 미래는 가늘고 긴 손가락이 매력적인 손으로 입을 가리며 새침하게 웃는다. 희세는 낭패감 가득한 표정이 되 눈가가 움찔거린다.


“맘대로 해! 난 안 마실 거야!”

“후훗. 자, 그럼!”


긴긴 실랑이 끝에 결국 희세의 허락까지 떨어졌다. 허락이라기보단 포기 같지만. 미래는 방긋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능숙한 것처럼 소주병을 들더니 위아래로 흔든다. 앞으로 팍! 하며 소주병 안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미래. 병을 뒤집더니 팔꿈치로 병 끝을 탁탁 몇 번 친다. 그러더니 경쾌한 소리가 나게 소주병을 깐다.


“너 되게 능숙하다?”

“아빠가 하는 거 많이 봤거든요. 이것도 아빠한테 사달라고 한 거에요.”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몹쓸 아버진데.”

“어멋, 무슨 그런 말을~ 아빠 덕분에 이런 고급 성인문화도 체험해 보는 건데요!”


미래는 까르르 웃으며 미리 준비해온 잔에 소주를 따른다. 그러더니 얼굴에 미소가 돈다. 빈 잔 하나를 나에게 내민다. 나는 ‘뭐야?’ 하는 표정으로 잔을 받았다.


“자, 오라버니♡ 제 잔 받아주세요♡”

“뭐, 뭐 하는 거야!! 그런 짓은 진짜 하지 말아야지! 여자애가!!”

“어멋? 오라버니는 가만히 계신데 왜 언니가 날뛰시는 거에요. 혹시, 샘·나·세·요?”

“으으……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겠네! 흥! 난 너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맘대로 해, 그렇게 술집 여자처럼 술 따라주던가!”

“어멋, 술집여자라뇨.”


미래는 특유의 애교 섞인 목소리를 더욱 간드러지게 내며 말한다. 너무 하이톤이라 꼭 일본 야동에 나오는 배우들 교성 같은 느낌이다. 굉장히 거부감이 느껴지는데. 조금 좋지 않은 표정으로 미래를 쳐다보는데 옆에서 희세가 난리를 피우며 말한다. 미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희세에게 더욱 놀리는 말을 한다. 희세는 입을 꾹 다물고 미래를 보다 팔짱을 끼고 아예 몸을 돌려버리며 말한다. 술집여자라. 뭐, 그런 느낌이 나긴 했어, 방금 전 미래는.


“자, 건배!”

“야!”

“응…….”


미래는 신이 나서 소주잔을 하늘 높이 들며 말한다. 헌데 어째 먹겠다고 한 여자애들 반응이 그리 썩 좋진 않다. 신나하는 리유 빼곤 성빈이는 뭔가 떨떠름한 표정이고. 나 역시 그리 기분이 좋진 않다. 모르겠다, 마셔나 보자. 술은 처음 마셔보는데.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 잔 쭉 들이켰다.


“크헉?! 뭐야, 이건. 기록적으로 맛없는데.”

“으앙, 써!”

“에에…… 목이 뜨거워.”

“아하하하. 이런 맛이네요, 이런 걸 왜 돈 주고 사먹는지.”


다들 얼굴을 잔뜩 찌푸리게 됐다. 나 역시 굉장한 맛없음을 느꼈다. 리유는 혀를 내밀며 괴상한 소리를 내고, 성빈이 역시 손으로 입을 막고 씁쓸한 뒷맛을 느끼고 있다. 유일하게 미래만은 괜찮은 표정으로 웃는다. 하는 말은 굉장한 혹평이지만.


“맛으로 먹는 게 아니지 않을까?”

“그럼, 뭣 때문에?”

“글세…… 취하려고?”


나의 조심스런 추측에 성빈이는 입을 가린 체로 묻는다. 내 대답에 미래는 ‘좋아요, 그럼 한 잔 씩 더 받으세요!’ 하면서 호기롭게 다시금 병을 든다. 성빈이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잔을 든다. 리유 역시 ‘에에 더럽게 맛없는데!’ 하면서도 잔을 든다. 희세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빛으로 그런 애들을 쳐다보며 콜라가 든 잔을 기울인다.


“으헉!”

“어어. 뭔가 왔나요, 오빠?”

“야, 난 그만 먹어야겠다. 핑핑 도는데?”

“아하하, 올 게 왔네요! 오빠가 제일 약한가 봐요. 더 마셔 봐요! 어떻게 되나 보게!”


두 잔 만에, 나는 손을 내저으며 뒤로 빠졌다. 이 느낌…… 저번에 느꼈던 그 느낌이다. 머리가 무거워지면서 빙글 돌기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 그 때엔 뭔지 몰라서 두통의 다른 종류인 줄 알았지만, 한 번 경험해본 나는 이게 무엇인지 알게 됐다. 취했다는 증거! 역시 나는 술이 약하구나. 여자인 성빈이도, 심지어 리유조차 멀쩡한데. 얼굴이 화악화악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미래는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으며 말한다. 나는 애써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나, 저, 저번에도 이상한 짓거리 했, 했잖아. 이제 더는 안 마신다. 아, 성빈아 미안해. 갑자기 생각나네.”

“엇…… 어, 괜찮아.”


나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 몸을 사렸다. 성빈이는 살짝 얼굴이 빨개졌다. 내 말에 미래는 ‘에에~~ 오빠 남자 맞아요?! 겨우 두 잔 마시고! 여자애들도 멀쩡한데!’ 하는 도발을 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도발에 걸려들만큼 이성이 유지되지 않는다. 정신이 하나 없다. 으으, 안 돼. 기억이 남아있는 동안에 최대한 여자애들한테서 멀리 떨어져야 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실례되는 짓을 할 확률이 높으니까……! 나는 상에서 떨어져 쇼파에 기대앉았다.


“으음…….”

“머저리. 술도 약한 새끼가 주는 대로 덥썩 마셔? 자.”

“아, 고마워. 꿀꺽. 크아, 얼음물이네.”

“마시고 정신 좀 들으라고.”


술기운이 더욱 돌아 정신이 하나 없다. 쇼파에 기대 땅바닥을 보며 손으로 머리를 짚고 있는데 옆에서 희세의 볼멘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보니 희세가 물 잔을 내민다. 마침 목이 타던 참인데. 벌컥벌컥 마시니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에 어느 정도 나아진 기분이다. 희세는 내 옆에 조용하게 앉는다.


“넌, 왜 술 안 마셔?”

“안 되는 거잖아, 청소년 음주가! 아우, 술 냄새. 두 잔 밖에 안 마셨는데 이러잖아.”

“하하하. 그렇, 그렇지.”

“에에, 혀 꼬인 거 봐. 가뜩이나 못 봐주겠는데 술에 취하니까 더 꼴불견이네, 너.”

“아하하하하.”


희세는 비꼬듯이 나에게 말한다. 하지만 어째, 그 비꼬는 말이나 신경질적인 말투도 죄다 귀여워 보이고 예쁘게 들린다. 어, 왜 이러지. 눈을 비비고 고개를 흔들며 희세를 보는데, 오늘따라 희세가 굉장히 예뻐 보인다. 아니, 평소에도 예쁘긴 하지만, 이렇게 물도 챙겨주고, 새침데기처럼 말하지만 내가 걱정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옆에 앉아서 말도 걸어주고 하고 있잖아. 아아. 좋은 여자애구나. 이런 여자애랑 사귄다면…… 어떨까? 행복하겠지? 재미있겠지?

……잠깐만. 이거 취한 것 같은데. 안 돼, 얼른 떨어져야 해. 이 이상 이성을 잃어버리면……! 안 돼, 정말…… 너무 기분이 좋잖아. 희세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 안 돼, 이러지 마. 냉철하고 시크한 상남자 정웅도로 돌아와. 이 이상 정신줄을 놔 버리면…… ……끄아아앙! 내가, 내가 아니게 되버렷~!!


“희세야아앙~”

“히이이익! 뭐, 뭐얏?!”

“헤헤헤헤.”

“미, 미친놈아! 떨어져, 닿잖아!”

“아하하. 말랑말랑~ 희세는 진짜 예쁘고 좋은 애구나~”

“읏, 으읏…….”


나는 옆에 있는 희세를 보고 참지 못하고 희세 품으로 뛰어들었다. 얼굴 쪽에 몰캉 닿는 희세의 가슴. 기분 좋은 내음까지 나는 것 같아 더욱 희세의 품에 갈망하듯 파고들었다. 희세는 깜짝 놀라 양손으로 나를 막으려 하지만 애초에 여자애, 기본적으로 남자인 내 힘을 막을 순 없다. 아, 얼굴을 가슴에 파묻고 싶다~ 희세는 굉장히 당황한 목소리로 비명조차 못 지르고 애써 나를 떼어내려고만 한다. 그렇게나 부끄러워하는데 막상 이런 상황이 닥치면 소리조차 못 지르는구나. 기분이 더욱 좋아져 마구 희세 가슴팍에 얼굴을 문지른다.


“그만해!”

“엌!”

“아, 성빈아 고마워.”


엄청난 힘으로 나는 밀려나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몸이 잘 가눠지지 않지만 겨우 상체를 일으켜 보니 얼굴이 새빨개진 성빈이가 양손을 쭉 뻗은 체 내 쪽을 보고 있다. 성빈이가 달려와서 나를 떨어뜨려 놓은 모양이다. 아, 내가 너무 막 나갔나. 하긴,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인데. 지금 정신이 없어서 좀 가치판단이 이상해진 것 같다. 여자애잖아, 그러면 안 됐는데.


“우리 웅도한테 왜 꼬리쳐, 이 나쁜 년아!”

“뭐, 뭣?!”


성빈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울먹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대뜸 희세에게 말한다. 희세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일어서 있는 성빈이를 올려다본다. 나도 멀뚱멀뚱 성빈이를 쳐다봤다. 당연히 나한테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가슴만 크면! 끅! 다야! 짜증나게. 저리 가, 젖소년아!”

“뭐, 뭐, 뭐, 뭐라는 거야!! 너 취했잖아! 가, 가슴이 뭐 어쨌다고! 정말.”

“에헤헤. 나 잘못한 거 아니구나. 희세가 나쁘네. 희세가 잘못했네.”

“네 잘못이야!! 멍청이 변태 왕변태새끼야!!”


성빈이는 전에 없던 공격성을 내비치며 말한다. 취했는지 얼굴은 벌게져서, 울먹이고 있는 얼굴과는 딴판으로 굉장히 거친 어투로 희세에게 말한다. 누구에게 험하게 말하거나 대하는 걸 전혀 본 적이 없는 성빈이이기에 굉장히 색다르다. 희세는 잔뜩 당황해서 일어나서 성빈이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고 한다. 뭐라고 속삭이는 걸 보니 진정시키려고 하는 모양이다. 나는 실실 웃으며 그런 둘을 보고 말했다. 희세는 잔뜩 화를 내며 성빈이를 화장실 쪽으로 데려가려 한다.


“놔! 이거 놔! 난 웅도랑 같이 놀 거야!”

“야, 야! 너 취했다니까!”

“흥흥! 안 취했거든!”


성빈이는 희세의 손을 뿌리치고 내가 있는 쇼파 쪽으로 온다. 희세의 주의에도 꿋꿋이 내 쪽으로 오는 성빈이. 다소곳하게, 내 옆으로 와 앉는다.


“자, 웅도야~”

“에헤헤헤. 이야야앙~”


성빈이는 아까 내가 희세에게 안겼을 때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며 손을 벌린다. 품에 안기라는 말일까. 여자애 쪽에서 먼저 그러는데, 내가 마다할 이유는 없지. 나는 내가 들어도 이상한 소리를 내며 성빈이 품에 안겼다. 마찬가지로 달달하고 좋은 향이 나고 포근한 느낌이다. 가슴 쪽의 존재감이 희세보단 좀 압도적으로 부족하긴 하지만,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포근하고 말캉거린다. 게다가 성빈이는 이러고 있는 나를 자애로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기까지 하는걸.


“웅도, 나 좋아?”

“응응! 너무 좋아.”

“히힛, 나도 좋아.”

“에헤헤헤.”

“우후후훗♡”

“뭐 하는 거야, 떨어져 둘이! 이러면 안 되잖아!”

“왜 안 데는데! 너는 하고선! 이 가슴 큰 년아!”

“……가슴 얘기는 그만 좀 해!!”


나와 성빈이가 좋은 한 때를 보내고 있는데 훼방꾼 희세가 와서 또 방해한다. 나는 영 좋지 않은 기분이 돼서 희세를 노려봤다. 뭐라고 한 마디 하려 했지만 성빈이가 먼저 혀가 꼬인 귀여운 목소리로 말한다. 희세는 성빈이의 가슴 공격에 굉장히 부끄러워하며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나와 성빈이 사이를 떼어놓으려 안간힘을 쓴다. 아니, 나도 좋고, 성빈이도 좋아하는데 왜 방해질이야! 나쁜 년! 가슴만 큰 년! 아니, 그건 좋지만.


“으응! 비니 나빠! 웅이 내 꺼란 말야!”

“응, 그럼 리유도 이 쪽으로 와.”

“이야아아~ 히히히힛.”

“어멋, 저도 참전해도 될까요? 저는 뒤 쪽으로♡”

“우왁. 아하하. 다들 너무너무 좋네.”

“으으으!! 뭐 하는 거야, 진짜 다들!!!!”


가만히 둘이서 술을 마시고 있던 리유와 미래까지 내 쪽으로 온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리유는 술을 잘 마시나보다. 이 쪽으로 오니 술 냄새가 확 올라온다. 평소에도 잘 웃는 리유지만 지금은 조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실실 웃으며 내 반대쪽 옆구리를 파고든다. 희세나 성빈이 같은 볼륨감은 없지만 그래도 여자애라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리유의 몸이 내 옆구리 전체에 느껴진다. 아, 기분 좋다. 미래 역시 달라붙어 내 뒤쪽으로 온다. 목덜미에 미래의 가슴이 푹 느껴진다. 우홋. 희세와 성빈이와는 또 다른 미래의 달달한 냄새가 느껴진다. 마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진다. 야, 기분 좋다! 여기가 낙원이로구나, 여기가 천국이로구나! 머리가 정신이 없는 게 정말 좋다. 게다가 이게 내가 강제한 게 아니라, 여자애들이 먼저 와서 이러는 거잖아? 정말, 가만히 있어도 이렇게나 여자애들이 꼬이다니. 나란 남자, 좀 마성의 남자인 듯하다.

모두가 행복한 이 와중에, 희세는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져서 발만 동동 구르다 아주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성빈이와 미래와 리유를 떼 놓는다. 모두 불만스런 목소리로 ‘우씨, 뭐하는 거야!’ 하고 말했지만 희세는 굉장히 호전적이 돼선 ‘안 돼, 안 된다니까! 이게 뭐하는 짓이야!!’ 하며 발악하듯 외친다. 아아, 정말. 지금 희세는 안 예뻐 보인다.


작가의말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만년 누려보세.


...누려보고 싶어도 누릴 것이 있어야 누리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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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16화 - 4 +25 14.02.19 2,317 58 22쪽
65 16화 - 3 +23 14.02.19 3,070 56 19쪽
64 16화 - 2 +23 14.02.17 3,065 72 20쪽
63 16화. 놀러가요, 오빠! - 1 +21 14.02.16 2,873 63 19쪽
62 15화 - 4 +17 14.02.15 2,507 62 25쪽
61 15화 - 3 +24 14.02.14 2,310 53 24쪽
60 15화 - 2 +17 14.02.13 2,396 60 20쪽
59 15화. 가까운 미래에, 당신은. - 1 +23 14.02.12 2,511 64 19쪽
58 14화 - 4 +21 14.02.11 2,260 59 19쪽
57 14화 - 3 +18 14.02.10 3,803 139 21쪽
56 14화 - 2 +17 14.02.09 2,415 58 24쪽
55 14화. 나는 변태가 아니야! - 1 +21 14.02.08 2,484 51 19쪽
54 13화 - 4 +28 14.02.07 3,021 76 19쪽
53 13화 - 3 +21 14.02.06 2,449 56 22쪽
52 13화 - 2 +25 14.02.05 2,103 57 20쪽
51 13화. 전화위복 - 1 +21 14.02.04 2,698 53 17쪽
50 12화 - 4 +16 14.02.03 3,155 55 21쪽
49 12화 - 3 +24 14.02.02 2,585 73 22쪽
48 12화 - 2 +16 14.02.01 2,496 76 17쪽
47 12화. 데이트? 소풍? - 1 +23 14.02.01 3,040 65 18쪽
46 11화 - 4 +11 14.01.31 2,606 57 19쪽
45 11화 - 3 +21 14.01.31 2,711 69 17쪽
44 11화 - 2 +9 14.01.30 2,538 56 17쪽
43 11화. 시험 - 1 +7 14.01.30 3,003 106 19쪽
42 10화 - 4 +11 14.01.29 2,900 70 23쪽
41 10화 - 3 +11 14.01.29 2,759 56 22쪽
40 10화 - 2 +7 14.01.28 3,738 8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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