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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237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2.22 20:24
조회
2,243
추천
49
글자
20쪽

18화 - 2

DUMMY

‘띵동.’


약속한 대로, 나는 희세네 집 앞에 서 있다. 황금 같은 주말, 하지만 하루를 온전히 공부에 헌납하기로 마음먹었다. 기말고사를 잘 봐야 하니까……! 이 정도 투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성적만 올라갈 수 있다면. 거기다 희세가 직접 가르쳐준다고 하잖아. 보통 이런 건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는 건데, 가르쳐주는 쪽에서 자기가 가르쳐준다고 제안하는 건 절호의 기회인 거지.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잖아.


『열려 있어, 들어 와.』

“아아.”


희세의 목소리가 들린다. 날카롭게 찢어지는 새침한 평소 목소리가 아닌, 왠지 모르게 다정하게 들리는 것 같은 목소리다. 희세의 말에 나는 철로 된 문을 밀었다. 아, 열려 있구나. 조금 심장이 두근거린다. 설렘이랄까? 그건 희나나 케이나인을 볼 것도 기대가 돼서 그렇다. 공부 시작하기 전부터 놀 생각 만만인 것 같은데. 스스로 우스워 피식 웃으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왔어?”

“응.”


희세는 현관까지 나와 있다 들어오는 나와 딱 마주쳤다. 조금 작은 느낌의 면티와 짧은 면 핫팬츠. 저번에 왔을 때엔 꽤나 단정하게 입고 있었던 것 같은데. 씨익 장난기가 돌아 나는 손을 들어 주먹 윗날 부분으로 코를 막으며 말했다. 꼭 코피가 나는 걸 막는 것 같은 느낌으로.


“오, 오늘 복장…… 엄청 좋다.”

“……으으 진짜! 오자마자 성희롱이야?! 무슨 생각 하는 건데! 보지 마!!”

“우후후. 죄송합니다. 몹쓸 눈이라.”


이런 반응을 의도하고 한 행동이지만, 정말 내 예상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행동해줘서 기쁘다. 아니, 그치만 조금 작은 듯한 티셔츠는 터질듯한 박력감을 보여주고, 짧은 핫팬츠 밑으로 보이는 허벅지는 너무 튼실해서 눈이 부실 지경인데. 희세 너를 안 보면 어디에 눈을 두라는 거야. 이건 네가 너무 몸매가 좋은 게 잘못인거지.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했다간 바로 쫓겨날 수도 있기에, 적당한 수위의 농담으로 끝냈다. 희세 역시 어느 정도 만성이 됐는지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다. 그런 틈을 타서 힐끔힐끔 희세 엉덩이를 살폈다.


“오빠! 히히히.”

“아유, 희나 더 예뻐졌네. 키도 좀 큰 것 같은데?”

“헤헤헤, 정말?”

“응, 쑥쑥 크는구나. 한창 클 때지.”

“히히힛!”


육감적인 희세의 몸매를 구경하며 한참 음심을 품고 있는데 그 음탕하고 더러운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희나가 등장한다. 희세와 세트처럼 비슷하게, 밝은 색깔 면티와 짧은 핫팬츠를 입고 있다. 그치만 정반대로 귀여움만 가득한 희나다. 아아, 정화된다. 희나와 친해지는 건 아주 간단하다. 리유에게 하던 대로 그대로 하면 된다. 아니, 오히려 이 쪽이 더 쉽다. 이 쪽은 나이에 맞게 귀여워해주면 더욱 좋아하니까. 그리고 그게 맞지, 한참 귀여움 받을 나이니까.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리유와 똑같은 표정으로 싱글벙글 웃으며 좋아하는 희나다.


“월! 월월!”

“아, 너도 있었구나. 이양! 겁나 따뜻해!”

“히히히. 야압!”

“야야, 무거워, 하하.”


케이나인도 짖으며 반갑게 나를 반긴다. 처음 나를 봤을 때부터 경계하지 않고 나를 반기던 녀석이다. 오래간만에 보니 더욱 좋아하겠지. 털썩 주저 안고 녀석을 끌어 안자 케이나인 역시 흥이 돋았는지 나를 덮쳐 쓰러뜨리며 짖는다. 우옷, 뭐야 이 괴력은?! 희나도 그런 나와 케이나인을 보고 그 위에 올라온다. 으악, 무거워! 다 죽게 생겼다 이 놈들아!


“잠깐 잠깐!! 뭐하는 거야!! 공부하러 왔어, 놀러 왔어!? 희나, 일어나! 케이나인도 저 쪽 가고!”

“히잉…….”

“깨갱…….”


희세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복식 호흡으로 굉장히 강력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엄청난 기세에 서로 엉켜 붙어 놀고 있던 우리 셋은 기가 죽었다. 희나는 풀 죽은 표정이 돼 공손히 쇼파에 앉고, 케이나인 역시 꼬리를 내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헥헥거리며 이 쪽을 안타깝게 쳐다볼 뿐. 남은 나는 덩그러니 바닥에 누운 체 흉한 자세로 희세를 올려다봤다. 우와, 가슴에 가려서 얼굴이 잘 안 보여. 크긴 크구나.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


“일어나! 공부하려고 왔잖아! 무슨 생각이야?!”

“아아, 미안. 읏챠! 그럼 해볼까.”

“바보, 멍청이. 얼른 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희세는 새침하게 톡 쏘아 붙이곤 뚜벅뚜벅 걸어간다. 나는 그런 희세 뒤를 따랐다.

솔직히 방금 전엔, 애들을 너무 오래간만에 봐서 흥분해서 그랬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큰 실례가 아닌가. 모처럼만에 공부 가르쳐 주겠다고 직접 희세가 말해준 건데, 오자마자 공부할 생각 전혀 없이 놀러온 것처럼 행동했으니. 희세로써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그 생각이 든 건, 희세 방에 와서. 큰 상에 이미 공부할 준비를 완벽히 마치고 책들이 이것저것 펴 있다. 심지어 책상 밑에는 그릇에 잘 깎은 과일까지 미리 준비돼 있다. 준비성 엄청 철저한데, 희세. 그리고 그런 준비성을 보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 찬다. 그래, 희세의 이런 노력에 나도 부응해야지. 오늘 하루, 열심히 공부해보자.


“괜히 미안해지네.”

“흥, 열심히 공부하라고 준비한 거니까. 머, 멍청이라곤 다시 안 할게.”

“어어. 나는 국어를 잘 못하겠어.”

“응, 그럼 국어부터 해 볼까. 국어는 이 책. 여기 공책.”


희세의 말에 나는 얼른 자리에 앉았다. 이제부터 본격 공부 모드다!


나는 희세가, 그냥 단순하게 사기캐라서 공부를 잘 하는 줄 알았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그건 다 타고난 것인 줄 알았다. 어느 정도 팔자론자(?)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헌데 이렇게 희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으니 확실하게 알게 됐다. 희세가 공부 잘하는 것, 정말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라는 거.

공책부터 다르다. 엄청 가지런히, 깨끗하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 공책. 꼭 누구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 같은 정도로 잘 정리돼 있다. 그것도 핵심 내용만 잘 뽑아내서. 이것만 가져다 팔아도 될 정도로 완성도 높은 정리 노트이다. 공책 뿐만 아니라 책에도, 중요한 부분에는 강조하는 마크와 밑줄, 특유의 동글납작한 귀여운 마크들이 가득하다. 거기에 무엇보다 차이가 나는 건 바로 집중력. 한 10분 정도 책을 보면 금세 질려서 고개를 까딱까딱 다른 짓을 하려 하는 나와는 달리, 희세는 한 번 집중 모드에 들어가면 누가 뭐라 하든 그것만을 바라보고 있다.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열심히 책에 있는 내용을 파악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와, 무서울 정돈데. ……정신을 잃었나? 손으로 희세 눈 앞을 까딱까딱 하니 희세는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하지 마. 공부 해.’ 하고 말한다. 읏, 무섭다. 시키는 대로 해야지.


“아니…… 난 이걸 모르겠는데.”

“이건, 설명해주기 애매한데.”


모른다고 하니까 바로 옆으로 와서 설명해준다. 희세의 설명은 굉장히 서술자 중심으로 듣기 편해서 쉽게 이해가 간다.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해주기도 귀찮고 힘들 텐데 열심히 최대한 나한테 가르쳐 주려 한다. 가르침 받는 내가 미안해질 정도로.


“너가 공부 잘 하는 이유가 있구나. 난 그냥 네가 머리가 좋아서 절로 공부를 잘하는 줄 알았는데.”

“흥, 그런 게 어디 있어. 노력하지 않고 잘 하는 건 금방 망해. 공부는 그나마 쉬운 편이지. 너도 열심히 해봐,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으니까.”

“에이, 나는 좀 무리지. 머리 쓰는 건.”

“피이, 그런 패배의식 가지고 있는 시점부터 이미 망했어. 남자새끼가, 큰 포부도 없네.”


희세는 신랄하게 나를 까내리며 말한다. 뭐, 맞는 말이긴 한데 반박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저…….”

“응? 뭐야.”

“노, 놀면 안 될까요, 언니…….”


어디선가 굉장히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힐끔 쳐다보니 희나가 거의 울먹이는 듯한 표정으로 희세를 보며 말한다. 아니, 친언니한테 왠 존댓말?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납득이 갔다.


“안 돼. 지금 공부하고 있잖아. 방해하지 말고 케이나인하고 놀고 있어.”

“그치마아안~! 오, 오빠도 왔는데에~! 오자마자 놀지도 못 했는데~~ 조, 조금만 놀면 안 되요~?”

“슷! 누가 그렇게 앙탈부리면서 말하래?! 여자애가 그럼 안 된댔지?? 나중에 커서도 그렇게 모든 걸 애교랑 앙탈로 떼울 거야? 그러니까 여자애들이 만날 무시 당하는 거라고 몇 번 말해?!”

“으아아앙!! 그치마안~!!”


어이어이, 누가 그런 말을 하는 건데. 저 나이 때 애교 안 부리면 언제 부리라고. 귀여워 죽겠는데 그걸 막다니. 이건 어린 아이에 대한 모독이다. 아동학대야. 잠자코 보고 있을 수 없어 입을 열었다.


“좀 쉴까? 얼마 안 한 건 알지만, 나도 희나랑 놀고 싶은데.”

“무, 무슨 나태한 소릴! 그런 식으로 현실에 타협하면 목표한 바는 못 이루는 거라고! 이 패배자, 쓰레기!”

“그래, 그럼 뭐…… 공부나 계속 해야지. 쉬고 싶어 죽겠지만…… 공부 해야지. 에휴. 희나랑 놀아주나 싶었는데…… 계속 해야지. 휴우…….”

“……이익, 뭐라는 거야!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똑바로 해!”


남자가 애교를 떨거나 앙탈을 부린다면 굉장히 재수 없을 것 같은데.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 희세의 말에 바로 단념하는 듯 책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희세에게 들릴 듯 말 듯 작게 말하며 희세 눈치를 살살 보며 약올리는 듯 말하고 있다. 속되게 말하면 ‘간 본다’ 라고 하겠지. 희세는 꾹꾹 눌러 참다 폭발해서 거의 날 폭행할 수준으로 화를 내며 말한다. 이에 나 역시 당당하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놀고 싶어! 모두와 함께!”

“너 공부하러 왔잖아!! 왜 피공부자가 공부자보다 더 놀고 싶어 하는데!!”

“놀게 해 줘! 부탁이야!”

“우와아아! 놀게 해 줘~! ……요.”


나는 기어이 온건책에서 급진정책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게, 희나 불쌍하잖아. 언니의 위세에 눌려 한참 다 들어줄 나이에 저렇게 언니한테 존댓말 쓰고 있고. 총대를 멘다는 심정으로 희세에게 달려들었다. 덩달아 희나마저 의기양양한 태도로 내 옆에 바싹 붙어 한 마디 한다. 희세의 노려보기에 바로 기가 죽어 내 엉덩이 뒤로 얼굴을 가리며 숨지만.

희세는 입을 꾹 다물더니 ‘맘대로 해! 시험 망쳐도 난 모르니까! 멍청이 멍청이 바보야!!’ 하고 ‘에이씨!’ 하며 책을 덮어 버린다. 그렇게까지 격하게 말하니까 또 슬쩍 미안한 기운이 감도는데. 하지만 이내 격정적인 기쁨을 표시하며 희나가 내 품에 안겨 발을 요리조리 놀리는 것을 보고 희세에 대한 건 잊었다. 신이 나서 케이나인과 희나와 함께 거실로 나와 왁자하게 뒹굴거리기 시작한다.


“간질간질간질~~”

“아하하하하! 우하, 우하하하하! 간지러 오빠─!!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

“……!! 벼, 변태야!! 어딜 만지는 거야?! 떨어져!”

“엇.”

“으앙.”


희나와 케이나인과 엉켜 붙어 놀다가 나는 몹쓸 손을 놀려 희나의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희나는 굉장히 간지럼을 잘 타는지 손을 갔다 대기만 했는데도 단번에 자지러진다. 효과음과 함께 손을 요리조리 놀리니 희나는 미친 듯이 발악하며 까르르 웃는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도 묘한 즐거움에 빠져 더욱 희나를 간지럽혔다. 희나는 이제 너무 웃어서 눈물이 다 나올 정도다. 방에 있던 희세가 거실에 나와 우리를 보고 큰 소리로 말한다. 남녀간의 스킨십에 과도하게 부끄럼을 느끼는 보수적인 희세 입장에선 이것조차 불가능한 모양이다. 희나를 나에게서 떼어내 번쩍 들어올린다. 힘도 세지, 아무리 여자애라도 꽤 무거울 텐데.


“왜, 잘 놀고 있었는데.”

“마, 만지고 있었잖아! 얼마나 변태인 거야?! 이제 하다 하다 안 돼서 너보다 한참을 어린 여자애를 노려?”

“이보세요, 당신의 역겨운 상상력을 그런 쪽에 발동하지 마세요. 나는 명백하게, 성인 여성이 좋으니까요.”

“뭐, 뭐?! 벼, 변태새끼!”

“아니 어떻게 해도 변태인 거야?! 어쩌라고! 성인군자라도 될까?! 출가해서 스님이라도 돼? 아니, 스님도 성욕은 있어!”

“뭐래는 거야, 변태새끼가! 닥쳐, 변태변태!!”


희세는 비록 자기 여동생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었겠지만 나는 희세의 도가 지나친 변태 발언에 약간 발끈해서 소리쳤다. 이래도 변태, 저래도 변태라면 나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만날 내가 희세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것에 스스로도 죄책감을 느끼고 자제하려 하는데. 그런 노력은 생각도 안 해주고 무작정 변태로 매도하니 짜증이 날 수밖에. 나의 화냄에 희세는 지지 않고 마찬가지로 나와 맞선다.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서로 쳐다보는 나와 희세. 곧 희세가 먼저 ‘흥!’ 하며 자기 방 쪽으로 걸어간다. 희나는 그냥 멀뚱히 세워두곤. 나는 희나에게 ‘신경 쓰지 마, 언니 삐친 거니까.’ 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희나는 그래도 자기 언니가 걱정되는 지 ‘언니, 화났어?’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걱정스런 눈으로 희세를 쳐다본다. 벌러덩 누워 있던 나는 자세를 바로하고 앉았다.


“저리 좀 가줄래? 거치적 거리니까.”

“네네, 알겠습니다.”


희세는 ‘나 삐쳤음’ 이라고 말하는 목소리와 태도로 말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그리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답했다. 희세는 DVD 플레이어를 실행한다. 힐끔 희세를 쳐다보며 말했다.


“공부 안 해?”

“누가 누구한테 말해! 네가 안 하는데 내가 왜! 나 참.”

“……미안합니다. 조금만 쉬고 다시 공부 할게.”

“됐어! 짜증나. 놀던지 공부하던지 맘대로 해. 더 신경 안 쓸테니까.”


희세는 신경질적으로 말하고 리모콘을 조작해 DVD를 시청하기 시작한다. 나는 약간 풀이 죽었다. 이 정도로 화낼 줄은 몰랐는데. 희나 역시 불안한 표정으로 나와 희세를 번갈아 쳐다보며 공손히 앉아 있다. 케이나인은 희세에게 가 희세의 손을 핥는다. 음…… 뭔가 애매해졌는데. 놀기도 그렇고, 다시 들어가서 공부한다고 하기도 그렇고.

희세는 늘 보는 외국 드라마를 본다. 헌데 이거, 시즌 1인데? 분명 시즌 7까지 봤다고 들었는데. 힐끔 희세를 올려다보며 ‘본 거지 않아?’ 하고 물었다. 희세는 퉁명스럽게 ‘본 거 또 보는 거야. 당연한 거 아냐?!’ 하고 말한다. 나는 깨갱 기죽은 강아지가 돼 고개를 돌렸다. 보통 한 번 보면 드라마 다시 보지 않지 않나? 아, 모르겠다.


“케이나인, 너는 영어 못하니?”

“월!”

“레이져 나간다거나 그러진 않아?”

“헥헥, 월!”

“아 시끄러! 안 들리잖아!”

“……넵.”


나는 바닥에 벌러덩 누워 케이나인을 위에 올리고 말했다. 케이나인은 혀를 쭉 빼고 침을 질질 흘리며 헐떡거린다. 우왁, 침 묻었다. 더러워. 은근슬쩍 침을 닦아 케이나인에게 묻혔다. 네 침이니까 네 털에 묻어야지. 희세는 나의 혼잣말에 매우 짜증스럽게 말한다. 그렇게 크게 말하지도 않았는데. 지은 죄가 있기에 나는 꼬리를 내리고 대답했다. 그냥 누워서 케이나인이나 쓰다듬어준다. 케이나인도 내 곁에 얌전히 누워 있다.


“언니~~”

“뭐, 뭐야, 왜 이래!”

“어, 언니도 같이 놀자아~ 무서운 표정 짓지 말구~!”

“시끄러, 드라마 보고 있잖아!”

“만날 본 거 또 보고 본 거 또 보면서! 오빠하고도 화해 하구~!”

“내가 왜 저딴 변태새끼랑 놀아! 미쳤어?! 시끄러우니까 얼른 비켜.”


희나는 희세의 다리에 매달려 생떼를 부리며 말한다. 희나의 억지에 희세는 완강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물끄러미 쳐다보는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희세는 금세 고개를 돌려버린다. 어이어이, 여기 네가 부른 거 아니야. 물론 희세는 공부하려고 불렀는데 내가 놀고 있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희나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려 징징댄다. 희세는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몇 번이고 시끄럽다고 윽박지르지만 희나는 정말 끈질기게 희세에게 말한다. 결국 희세는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놔, 넘어진다니까~ 잠깐, 잠깐만!”

“언니이이이~”


희세는 앞으로 나가려는데 희나는 와락 희세의 다리에 매달린다. 순간적으로 앞으로 나가려는 힘과 희나가 붙들은 힘이 충돌해 희세는 휘청거린다. 나는 얌전히 아까부터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음, 뭔가 불안한데. 하지만 뭔가 굉장히 귀찮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희세이니 알아서 잘 균형을 잡겠지. 저 정도에 쓰러지겠어. 하고 무심한 시선을 케이나인으로 옮겼다. 복스럽게 생긴 케이나인. 견종이 뭘까? 개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대충 골든 리트리버처럼 생겼다. 아닌가.


“꺄아아앗!”

“??!?”

“월!”


케이나인을 보고 ‘나도 개 키우고 싶다.’ 하며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날벼락 같은 희세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린다. 그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우와, 뭐야 이거. 푸욱 하고 온 얼굴에 느껴지는 이질적인 느낌. 압도적인 중량감. 압도적인 물컹거림. 물침대라면 이런 느낌일까. 아니,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말랑말랑, 말캉말캉, 포근포근. 근원적인 무엇인가에 닿는 듯한 따듯함과 부드러움. 이건…… 이건……! 그래, 「그것」이구나. 근데 다 좋은데 숨 막혀 죽겠다. 정말 한 치의 틈도 없이 숨통을 꽈악 막아버리는구나. 소리조차 못 지르겠어. 앞도 보이지 않는다. 내 미래인가. 이렇게 캄캄하다면.


“읏…… 꺄아아아앗~!!”

“아…… 아아……?”

“피, 피!! 피 나!! 어, 어떡해!!”


그러니까,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것이다. 희세는 희나 덕분에 넘어졌고, 쭉 넘어졌는데 공교롭게도 넘어진 곳 위에 내가 있었다. 내 몸 위로 겹쳐 넘어진 건 아니고, 절묘하게 내 머리가 희세 가슴에 닿게 누워 있었다. 그러니까, 나하고 희세는 직각으로 기묘하게 대치하고 있다. 내 위에 있던 케이나인은 개 답게 빠른 반사신경으로 피했다. 이 자식, 자기 위험하니까 바로 도망가는 꼴 하곤. ……잘 했다, 케이나인.

희세는 ‘읏……’ 하며 몸을 일으키다 이내 호흡곤란과 동시에 천국에 가는 비슷한 황홀경을 느낀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다. 역시, 당연한 건가. 이제 엄청 세게 나를 때리거나 하겠지. 하지만 희세는 얼굴이 빨개져서 놀란 표정으로 말한다. 피? 피라니. 그 정도로 강한 충격은 안 받았는데. 애초에 희세의 무게가 실린 강한 누름이었다 해도, 눌린 부위가 말캉말캉한 가슴인데 어떤 충격이 있겠어. 하지만 희세는 거의 울먹이는 표정이다. 응? 몸을 일으키니 주르르 피가 티셔츠를 적신다.


“코, 코피네.”

“어, 엄청 나잖아! 희나, 휴지 휴지!!!”

“어, 어! 여기!”

“야야, 너무 당황하지 마, 그냥 코피인데…….”

“그래두!! 피잖아, 피!!”


희세는 어째 희나보다 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불안정하게 파르르 떨리는 손을 보니 굉장히 당황한 것 같다. 가슴팍에 내 코피가 묻어 있다. ……어째 굉장히 야릇한 느낌인데. 희나가 휴지를 가져다준다. 희세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울먹이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코피를 막으며 괜찮다고 연신 희세를 진정시켰다. 피가 좀 많이 나오긴 했다. 바닥에도 흥건하네.

……가슴에 부딪혔는데 이렇게 피가 많이 나오다니. 뭔가…… 진성변태가 된 것 같은 느낌인데.


작가의말

편의점에서 글을 많이 쓰면 이익을 보는 기분입니다. 알바도 하고, 글도 쓰고. 

...물론 퀄리티는 보장하지 못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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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9

  • 작성자
    Lv.66 rosemary..
    작성일
    14.02.22 20:36
    No. 1

    쿠쿳 1타인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2 20:43
    No. 2

    그렇습니다. 단 일격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6 rosemary..
    작성일
    14.02.22 20:37
    No. 3

    느하하하 이거야이거야!!!! 희세의 가슴에 묻어버리는 얼굴..... 내가 바라는 환상이야...!!!!!!!!!!!!!으하하하하하하하핳ㅎ하핳하ㅏㅎ하핳ㅎ.............크흑 젠장..(눈물이 앞을 가린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2 20:45
    No. 4

    이런 장면에 꼭 일러스트를 넣어 줘서, 그 푹 눌린 가슴의 볼륨감이나 황홀경에 달한 웅도의 뿅가죽는 표정이나 희세의 당황스럽고 부끄러워하는 모에한 표정을 표현해줘야 하는데... 크윽... 이래선 써비스'씬'이 아니라 그냥 야설일 뿐이잖아요! ㅠㅠ 아마추어라 웁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2.22 21:01
    No. 5

    슬슬 안구태러도 넣어주는 게 신선할 거 같아요. 1회용 (남자)전학생 히로인이라던가. 이상, 개소리였습니다.
    그나저나 역시 웅도는 충실히 신사의 길을 걷는군요. 코피라니, 높은 레벨의 스킬이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2 21:05
    No. 6

    뭐랄까, 코피는 스킬이 아니라 본능이겠죠. 과연 부딪힌 충격 때문에 난 것일까요, 아니면 너무 좋아서 난 걸까요. 정답은 여러분 마음 속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케이루스
    작성일
    14.02.22 21:29
    No. 7

    올ㅋ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정말로 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2 21:51
    No. 8

    그렇습니다.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 스스로 모에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꼬미루비
    작성일
    14.02.22 21:52
    No. 9

    진성변태.... 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2 22:39
    No. 10

    웅도 말씀하시는 거죠? 후후, 이건 의도한 게 아니니까, 변태가 아닙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0 dsafsdas..
    작성일
    14.02.23 00:09
    No. 11

    피봤네요. 그럼 흉기가 뭔지 자세히 살펴볼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3 08:23
    No. 12

    어멋... 너무 위험한 발언인데... 그치만 저도 같이 보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olfam
    작성일
    14.02.23 00:26
    No. 13

    희세와 공부를 마치고 조금 늦은 시간에 집을 나선다. 희세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문가에서 내가 "잘가." 라고 말했다.
    "데려다줄까?"
    "괜찮아." 아무렴, 시험공부까지 도와줬는데 데려다주는 건 좀 미안하지. 희세는 내 대답에 흥하고 고개를 돌리더니, 그래도 내가 발걸음을 돌리자 잘가라고 크게 소리친다. 나도 뒤돌아서 손을 흔들었다.
    시험을 잘 볼지 모르겠다. 공부하지 않았냐고? 별로 못하고 희나랑 케이나인이랑 많이 놀았다. 희나는 귀엽고, 나인이는 크고, 희세 크고 귀엽지(?). 날이 벌써 어둡다. 땅거미가 지고, 조금만 더 어두워지면 골목길에도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질 것 같다. 기숙사까지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전신주 아래에 낯익은 얼굴이 있다. 성빈이었다. 플레어 스커트에다, 위에는 저지를 입고 긴 머리를 매만지는 성빈이. 날 보더니 가까이 다가온다. 여기까지 어쩐일이지?
    "성빈이 거기서 뭐..."
    "뭐하고 왔어?"
    "응?"
    "희세집에서 뭐하고 왔냐고."
    반가운 마음에 성빈이에게 인사했다. 그런데 성빈이가 다짜고짜 내 말을 끊고 묻는다. 놀랐다. 평소에 얌전하고 착한 성빈이가 이런 강압적인 태도라니. 그러고보니 성빈이 눈이 조금 무섭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어서 머리카락이 흘러내려서, 눈가 주변에 옅은 그림자가 깔려있다. 평소와 달리 조금 게슴츠레하게 뜬 눈에 그런 연출(?)까지 더해지자 공포스럽다. 성빈이가 웃고 있었다는 점이 더 그렇다. 눈은 조금 무서운데 입가는 환하게 미소짓고 있으니 그 갭이 조금 미묘하게 다가온다.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아니, 그것보다 내가 희세네 집에 갔다온 건 어떻게 알았지? 희세가 연락했나?
    "그냥 시험 공부나 같이 했어. 희세가 말했어?"
    "시험 공부만 했어? 시험 공부만? 정말?"
    "음, 그렇게 묻는다면 글쎄..."
    사실은 공부하기보다는 놀았지. 내가 찔려서 말꼬리를 움츠리자 갑자기 성빈이는 미소를 지우고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온다. 왜지? 왜저러지? 착하던 성빈이가 갑자기 왜 저러는지, 어디 몸이 불편해서 그런데 걱정하는데 성빈이가 갑자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묻는다.
    "나희세 그년이랑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 있었냐고?"
    "성빈아, 왜 그래? 어디 아파?"
    "있었지? 있었지? 넌 잠시라도 가만히 내버려둘수가 없어. 이제 더는 참을 수가 없다고."
    "무슨 소리야, 성빈아. 괜찮아?"
    "나희세 그년이랑 어디까지 갔어? 내가 안보는 사이에 또..."
    "성빈아 그게 무슨..."
    나는 말을 멈추고 숨을 헉 몰아쉴 수 밖에 없었다. 성빈이가 감춰두었던 뒷손에서 꺼내드는 그...

    어떤가요. 이 느낌대로 본편에 넣어주시길 바랄게요
    는 왕뻥이고, 아무 생각없이 얀데레 느낌을 써보는데 참 어렵네요. 얀데레이면서 매력적인 캐릭터에게는 이거랑은 약간 다른 공식이 필요할텐데(이대로 쓰면 큰일나죠), 아무래도 일반적이지는 않은 경우라 사전에 좀 생각을 해두었어야 할 것 같아요.
    어디까지나 장난으로 쓴 거니 웃으면서 봐주세요. 김태신님 문체랑 제 문체랑 너무 달라서 어설프게 따라하려다가 더 망했네요.
    원래 라이트노벨 분야는 별로 안좋아하는데, 처음엔 왕따문제가 흥미로워서 읽다가, 요새는 여러모로 정이 들어서 계속 읽게 되네요. 아무튼 잘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3 08:24
    No. 14

    우옿ㅎ옳롧 장문의 댓글! 나름대로 이것도 팬픽인가요 후후훗!
    하지만 역시, 이런 얀데레보다는 모에한 얀데레(?)가 좋아요. 판을 차려야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로야크
    작성일
    14.02.23 00:30
    No. 15

    웅도의 신사로서의 수행은 오늘도 순조롭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3 08:24
    No. 16

    그렇습니다. 변태의 길 항해에 순풍이 부네요. 순풍순풍...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Yaksa
    작성일
    14.02.23 03:47
    No. 17

    코피는 오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3 08:25
    No. 18

    어느 정도... 소설적 허용으로... 아뇨, 근데 그렇게 정통으로 묵직한 가슴으로 푹 내리찍으면 코피가 날 만한 충격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 충격력은 둔기와도 마찬가지라구요! 죄송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4 12:03
    No. 19

    흥분보단 타격에 생긴 코피....부부럽다..(음.?)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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