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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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는 칼루가에 있는 4군 사령부로 돌아갔다. 포로로 잡은 안토노프에게서는 여전히 아무 정보도 알아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한스는 현재 전황에 대한 보고를 확인했다. 세르푸코프 쪽 4군의 돌출부는 철도역 부분만 유지한 상태로 점차 가늘어지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가다가는 4군이 점령한 구역은 철도 부분만 생선뼈 모양으로 남게 될 것 이다.
'지금 탄약, 연료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무엇보다 의료 시설이 제일 부족하다.'
추위 속에서 최전선 독일 병사들은 추위와 이질에 고통받고 있었으나 제대로 된 의료 시설과 의약품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것 이다. 한스는 현재 소련군이 공세할 것 으로 예상되는 구역에 루프트바페 출격 회수를 체크해보았다.
'겨우 이거밖에 출격 안했다고?'
라스푸티차 때도 활주로가 엉망이 되는 바람에 루프트바페 출격 회수가 감소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출격 회수가 줄어든 상태였다. 지금 4군 장군들 또한 공군 지원이 너무 적다고 건의하고 있었다.
항공기 출격은 단순히 화력 지원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양날개에 철십자가 그려진 자랑스러운 루프트바페 항공기가 많이 출격할수록 아군의 사기가 올라가고, 소련군으로서는 공세를 주저하게 된다. 지금 일선의 병사들조차 왜 요새 하늘에 우리쪽 항공기가 예전만큼 안 보이냐며 아우성이었다.
한스는 세르푸코프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전투비행단 쪽으로 연결되는 전화를 걸고 출격 회수를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엔진을 가동하며 최대한 항공기를 보전하였으나 착륙 시스템 고장 등으로 현재 출격 가능한 항공기의 숫자가 매우 적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관총들도 얼어버려서 출격해도 사격이 불가능한 상태요!"
한스가 말했다.
"사격은 하지 않고 고고도 비행만 해도 되니 일단 출격 회수는 늘리시오! 그래야 놈들의 공세를 미룰 수 있소!"
"전혀 상황을 이해 못하는구려. 지금 한 전투 비행단은 고작 Ju52 수송기 두 대가 기용 가능한 전력의 전부요! 이걸로 부상자들을 이송하고 보급을 하고 있소."
"Ju52를 폭격기로 쓰면 되지 않소!"
그리고 이 때, 우크라이나 출신에 에이스 파일럿 올렉시는 세르푸코프쪽 전투 비행단에 속해 있었다. 올렉시는 야간 전투 제대에서 치열한 야간 전투를 하다가 2주 전에 주간 전투 제대로 이적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출격 가능한 항공기가 하도 없었기에 요새는 출격을 거의 못하고 있었다.
올렉시, 에두아르드, 루슬란은 임시 비행장 근처 오두막에서 뜨뜻하게 불을 때면서 코코아를 마셨다.
에두아르드가 말했다.
"우리 쪽 보병들도 우샨카 쓰고 다녀서 로스케랑 구분이 안되네. 아군 오사 주의해야 해. 2주 전에 내가 독일 녀석들에게 기총 소사 할뻔했다니까."
루슬란이 말했다.
"그래도 요샌 한가해서 좋네."
2주 전까지만 해도 올렉시는 뒤질 뻔한 상황을 매일 서너번씩 경험해야 했다. 굳이 소련군의 항공기와 맞붙지 않더라도 이렇게 구름이 낮게 깔리고 눈보라까지 생기고 비행운이 선명하게 남는 겨울에는 비행이 무척 힘들다. 더군다나 야간 전투 제대는 자살 특공대나 마찬가지다.
올렉시는 출격 일정을 검토해보았다. 오늘 14:30 올렉시가 Ju52 수송기를 타고 출격을 할 예정이었다. 올렉시, 에두아르드, 루슬란 모두 20기 이상 격추하고 훈장도 받았다. 하지만 지금 전황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만약 소련군에게 밀리게 되면 앞으로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될지 생각하면 다들 머리 속이 복잡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슬란이 말했다.
"놈들 반격 끝나면 다시 모스크바로 가겠지?"
"그럴걸?"
"남부 전선 쪽은 어떻게 되는거지?"
올렉시가 속으로 생각했다.
'다시는 놈들이 우리 땅을 밟게 할 수는 없다...'
루슬란이 말했다.
"남부 전선 쪽에 전력이 집중되었으면 좋겠는데 독일 놈들은 당연히 모스크바 쪽을 계속 주공으로 하겠지. 망할 러시아 해방군 새끼들도 그걸 원할거고..."
전쟁 초반에는 러시아 해방군(백군)과 우크라이나군의 소련군 포로 학살이 심각했다. 하지만 에브게니루드비크 밀러가 러시아에 대한 미래를 약속하며 이러한 포로 학살을 막았고, 독일 제국 또한 우크라이나에 독립을 보장하며 포로 학살을 막았다. 물론 그래봤자 일선 부대에서 소련군 포로를 죽이는 것을 막을 수야 없었지만 국제 사회에서 여론 형성에 도움이 될 것 이었다.
그 때, 비행대대장님이 오더니 일정을 변경했다.
"오늘은 수송 임무가 아니라 폭격 임무를 할 것 이다!!"
'???'
그렇게 Ju52 수송기에는 보급품이 아닌 폭탄 500kg이 실리게 되었다. 기총 사수들이 MG15 기관총을 점검했다. 다행히 기관총을 발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늘은 그래도 다른 때보다는 바람도 덜 불었지만 구름이 낮게 깔린 상태였다. 이렇게 되면 오인 폭격 위험이 있다.
한편, 오토와 집행유예 부대원들은 여전히 세르푸코프쪽에서 철도 교차점을 지키고 있었다. 이 철도 교차점은 정말로 중요한 구역이었다. 에밀이 말했다.
"우리가 방어하는 구역이 점점 얇아지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포위되는건...악!!"
알프레트가 에밀을 쿡 찔렀다. 그 때, 슈바이거 소대장이 와서 외쳤다.
"지금 무기가 부족한 것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 이다! 그런고로 오늘은 로스케가 설치한 대전차 지뢰를 수거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 대전차 지뢰는 놈들의 전차를 격파하는 무기로 잘 활용될 것 이다!!"
소련군이 설치한 원반 형태의 대전차 지뢰를 수거한 다음, 소련군이 공세를 해오면 소련군 전차의 궤도 사이에 끼워넣어서 적 전차를 격파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슈바이거 소대장이 외쳤다.
"어때? 다들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오토와 동료들은 흰 설상복을 입고는 삽을 갖고 가서 소련군이 여기저기 매설해둔 대전차 지뢰를 수거하는 임무를 했다. 그리고 농가에서 노획한 손수레에 대전차 지뢰를 겹치지 않게 놓고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으갸갸갸..."
그 때, 항공기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쉬이이 쉬이이이이
'!!!'
요새는 로스케 항공기도 많았기에 오토와 동료들은 잔뜩 긴장하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장 시력이 좋은 요하네스가 외쳤다.
"우리 쪽 항공기입니다!! Ju52 같습니다!!"
에밀이 외쳤다.
"근데 우리 지금 우샨카(러시아인들이 주로 쓰는 귀를 덮는 털모자) 쓰고 있잖아!"
"튀어!!"
"우아아아악!!!"
오토와 동료들은 모두 손수레를 내팽개치고는 관목림으로 튀기 시작했다.
쉬이이 쉬이이이이이
다행히 올렉시가 조종하는 Ju52는 오인 사격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그렇게 오토와 동료들은 다시 대전차 지뢰가 들어있는 수레를 들고는 달려갔다. 잠시 뒤, 엄청난 폭격 소리가 들렸다.
쿠궁!! 쿠과광!! 쿠궁!!
Ju52가 소련군 포병대에 폭격을 한 것 이었다. 소련군 포병대는 Ju52를 향해 대공포를 쏘기 시작했다.
펑! 펑! 펑! 펑! 펑!
다행히 올렉시의 Ju52는 무사히 돌아오고 있었다. 오토와 동료들은 Ju52를 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우오오!!"
"좋았어!!"
그렇게 오토와 동료들은 소련군의 원반형 대전차 수류탄을 노획하고는 오두막으로 돌아와서 불을 쬤다. 이 원반형 대전차 수류탄은 소련군이 공세해오면 유용하게 쓰일 것 이었다. 그 때, 헬무트가 말했다.
"아까 삽질하러 나간 두 녀석들 아직도 안 돌아오는데?"
바실리가 외쳤다.
"이 추위에는 몇 분만 기절해도 얼어죽을 수 있습니다! 빨리 찾아야 합니다!!"
결국 동료들이 나가서 기절 상태의 데니스와 비르타넨을 찾아내서 업고 데려왔다. 데니스와 비르타넨 둘 다 삽질을 하다가 기절한 것 이었다. 둘 다 수염에 고드름이 낀 상태였다. 오토가 물었다.
"핀란드인은 추위에 강한거 아니었나?"
비르타넨이 이를 닥닥 부딪치며 말했다.
"우리도 이 날씨에는 사우나에만 쳐박혀 있습니다."
잠시 뒤, 슈바이거 소대장이 와서는 내일 정도에 소련군이 공세를 해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 놈들의 움직임에 따르면 빠르면 내일 공세를 할 가능성이 높다!"
슈바이거 소대장이 떠난 다음, 오토는 현재 남아있는 총기들을 점검했다. MP40는 평소에는 아주 좋은 총기였지만 추위에는 약했기 때문에 다들 PPSh-40 기관단총을 탐냈다. 가장 좋은 것은 DP-28 경기관총이었다. 이건 거치시켜서 쓸 수도 있고 서서 사격할 수도 있었다. 물론 탄약수랑 같이 2인 1조로 운용하는 것이 좋겠지만, 급한 상황에서는 달려가면서 사격을 할 수도 있었다.
다들 DP-28 경기관총 혹은 PPSh-40을 탐냈다. 스테판이 말했다.
"내가 PPSh-40을 쓰겠네."
"아니야. 내가 쓰겠네!"
"니가 MP40 쓰라고!"
그 때, 슈바이거 소대장이 와서 외쳤다.
"주목!! 조만간 소련군이 공세를 할 예정이기 때문에 놈들의 움직임을 잘 감제하기 위하여 37구역 농가를 모두 불태우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비록 37구역에 살던 민간인들이 모두 피난을 가기는 했지만 그렇게 가옥을 다 태워버리면 그들은 돌아올 집이 없어질 것 이었다. 하지만 어쨋거나 명령은 명령이니 오토와 동료들은 농가에 불을 피웠다.
화르르
짚을 지붕에 덮어서 만든 농가가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농가를 불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8.8cm 대전차포들이 내일 있을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포병들은 얼어붙은 땅에 폭약을 써서 깊게 땅을 파둔 다음 대전차포를 그 위치에 거치시켜두었다.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일주일 뒤에도 내가 살아있을까?'
오두막으로 돌아와보니 부상병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보초를 서다가 발에 동상이 걸린 녀석들이 많았다.
바실리가 말했다.
"연고가 다 굳어버려서 쓸 수가 없습니다."
결국 오토는 스테판, 헬무트, 볼프강, 게오르크와 함께 몇 시간 전 아군 병력이 사살한 파르티잔들의 시체가 널려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미 그 파르티잔 시체들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총에 맞아서 한 쪽 팔을 위로 뻗고 죽어있는 시체는 마치 미켈란젤로도 조각상으로 만들어내지 못할 것 같은 기괴한 형상이었다.
그리고 시체의 얼굴 피부는 진홍색으로 변해있었다. 모세혈관이 얼어붙은 것 이었다. 오토와 동료들은 시체의 다리를 도끼로 절단했다.
퍽! 퍼억!! 퍽!!
그리고 손수레에 시체의 다리들을 산처럼 쌓아서 운반해왔다. 그 다음, 모닥불을 피운 다음 이 꽁꽁 얼어붙은 다리들을 녹였다. 적당히 녹이니까 군화를 벗길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오토와 동료들은 그렇게 피가 묻은 군화를 손수레에 운반해서 오두막으로 돌아와서 부상병들에게 제공했다.
한편, 블라슈크가 있는 소련군 부대는 49군으로 배치를 받았다. 표도르가 있는 전차 부대 또한 모두 49군으로 배치되었다. 조만간 49군은 50군과 함께 세르푸코프에 돌출된 독일군을 양쪽에서 포위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소련 서부방면군 사령부에서 주코프는 정보부로부터 새로운 무전을 받았다.
'독일 제국이 터키와 비밀리에 협상을 시도하고 있다고? 터키?'
주코프는 커다란 전선 지도에서 캅카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주코프는 중부집단군을 박살내는 것이 급했다. 주코프는 전선 지도에서 부대 모형을 움직이며 세르푸코프를 포위하였다.
'4군을 시작으로 중부집단군이 완전히 절멸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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