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보니까 여기서는 진짜 https://namu.wiki/w/%EC%95%8C%ED%94%84%EB%A0%88%ED%8A%B8%20%EB%A1%9C%EC%A0%A0%EB%B2%A0%EB%A5%B4%ED%81%AC#s-2.3
https://namu.wiki/w/%EB%A1%9C%EC%A0%A0%EB%B2%A0%EB%A5%B4%ED%81%AC%20%EA%B3%84%ED%9A%8D 의 의견이 대세 겠네요. 여기서는 위의 인물처럼 히틀러등의 수뇌부들이 소련을 완전히 다른 세력들(우크라이나 국민정부, 백군, 백군 산하의 벨라루스 자치정부 )로 대체하며 이들을 독립국 등으로 만들자는 의견에 동의할거니까요. (물론 독립국으로 만들자, 자립국이나 자치국으로 만드자 등으로 세부사항에 대한 의견 등은 다르겠지만요.)
이 시점에서 히틀러는 오토 프랑크에 대한 사심을 떠나 폴란드인들의 저항과 그들의 분노를 받는 유대인 문제, 폴란드인을 비롯하여 다민족 국가로서의 독일의 사회혼란 방지라는 정치적 계산에 따라 뉘른베르크 법을 집행하였을 것이고 독소전 계획 입안에서도 점령지 비용문제라는 경제적 문제를 가장 크게 걱정하여 로젠베르크의 의견에 나름 동의를 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친독 정권으로서의 자치국으로 생존시키고 벨라루스도 독립시키는 정책을 택할겁니다. 다른걸 떠나 그 이면에는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를 흔들면서 그 세력이 커지는 걸 막는 방어적 족쇄라는 것에 큰 의의가 있죠. 그러나 이것은 러시아 제국을 계승한다는 러시아해방정부의 분노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러시아해방정부 입장에서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모두 러시아의 일원으로 보는것인데 독일의 이 결정은 너무나도 노골적인 것이죠. 이들의 시작으로 카자크는 물론이고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를 비롯하여 중앙아시아까지 러시아에서 이반될 것이고 이는 독일에 의한 러시아 포위망이 형성된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 충분하죠. 이런 다민족 국가특성에서 민족독립이 어떤 결과를 끌고 간 것인지는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예만 봐도 충분하며 중국이 위구르와 티베트 독립에 민감한지를 떠오르면 납득이 될겁니다. 자금과 무기에서 독일의 지원에 의존적이고 이로 인해 독일의 입김이 강한 만큼 소수민족들로 이루어진 위원회는 표면적으로 러시아 해방정부의 의지지만 그 이면에는 독일의 생각과 개입이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죠. 키릴을 비롯한 러시아 수뇌부 입장에서는 이들이 언제든 소련에게 보이듯 배신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라 골치아플테고, 이들은 독일에 이용당함을 알지만 우크라이나처럼 독립의 기회로 여겨 적극 이용할겁니다. 그러니 의도치않게 벌써부터 러시아 백군과 독일제국간의 경쟁은 시작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크라이나의 약탈과 범죄는 독일처럼 의도적인 것이며 복수심을 빙자하여 러시아의 힘을 약화시키고 약탈을 통해 얻은 경제로 체급을 키운다는, 원역사 속 나치독일과 일본 그리고 전후 소련의 약탈과 같은 마인드를 가지지 않겠습니까? 지금이야 도덕적 잣대로 들이대나 그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고 쉬우면서 간단한 방법입니다. 자유니 존중이니는 어려운 것이고 그걸 생각하는게 도리어 등신이라고 취급 받는 시대입니다.
이미 스탈린의 정책이든 소련의 정책이든 그것에 불만이 있지만 내가 사는 농지와 집을 부수고 들어와서는 해방자라 하는 외국인보다는 개새끼도 우리의 개새끼가 낮다는 게 인간의 마인드이고 우크라이나와 독일이 저지른 짓은 아무리 착한 짓 해도 나쁜 짓에 비해 기억이 안 남는 인간의 심리상을 떠오르면 이미 바닥에 물을 흘린것과 다름없습니다. 항상 사람의 첫 인상이 중요하고 그것이 생각에 있어서 고정된 참고사항으로 보지 않나요? 그러니 선봉대고 고위층 중에서 가장 고위층인 한스의 아들 오토와 그의 부하들이 벌인 짓은 첫 단추를 잘 못 낀겁니다. 처음에 잘하다 조금만 잘못해도 그 잘못을 크게 받아들이지만 처음부터 인상이 안좋은데 나중에 잘하면 그것이 어떤 꿍꿍이지 않을까하는 의심이 들기 마련이죠 인간의 개인으로서는 처음에 실수를 강하게 탓하다 이후 용서하면 그 고마움이 더 크다고 느끼는 사례가 있지만 꿍꿍이가 있나 하는 의심이 있기 마련이며, 특히 냉혹한 국제사회에서는 더욱 의심이 큽니다. 이런 의심의 싹을 트게 한뒤 그후에 벌어진 우크라이나와 독일의 잘못은 분노를 더 극대화할 것이고 이제야 수습해도 이미 많은 민심이 구관이 명관이며 구체제는 역시 구체제라는 확신을 가지죠. 어찌되었든 구체제의 농노 같은 대우는 없고 여성과 남성이 같이 일하는 사회니 차라리 이게 낮다는 생각이 많을겁니다. 그런만큼 오토와 스테판 그리고 한스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죠
벌써부터 카자크 병력들은 후방 교란 명목으로 러시아 내전시기부터 자행된 약탈이 있을 것이고 기병으로 이루어진 유목민족의 약탈은 이미 역사에서 칭기스칸으로 증명되듯 아주 잔혹할 것이며 군사적 입장에서는 편하나 그 이후에 문제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조조가 서주에서 학살을 한 것을 보듯 하나를 초토화해 공포를 전염시킬 경고의 목적을 가졌고 생활이 현지인과 다른 칭기스칸의 방식은 외국인으로서 직접 통치할 입장이 아닌 독일에게는 가장 매리트가 있는 방법이고 일반 러시아 장군들도 군사적 입장에서 볼때는 볼셰비키에 대한 복수를 더하니 쉽게 택할겁니다. 백년전쟁 당시 말탄 약탈자 혹은 마상 습격을 뜻하는 셰보셰란 초토화 전술을 영국군이 벌였고, 에드워드 3세는 원정군의 비용을 현지 조달하는 동시에 약탈의 피해와 습격의 공포를 퍼뜨리면서 백성들이 영주에게 탄원하고 그 영두들이 국왕을 탄원하는등 불만 유발 시켜 배신을 하게하는 한편 프랑스군이 모집되고 준비할 시간을 못 만들게 함으로서 약화된 전력이 오게하였고 그를 통해 단기전을 벌여 원정군의 비용소모를 줄이고자 하였죠. 그 결과가 크레시 전투로 프랑스군이 대패를 하게 되며 영국 장궁병 신화와 기사도의 몰락을 보여주었습니다. 아까 말했듯 소련은 다민족 국가라고 하였는데, 아무리 탄압을 해도 여러 소비에트공화국이 묶인 연방이기에 연방을 지키지 않으면 해체가 되는 것이고 이는 소련의 붕괴죠. 그렇기에 소련군은 아무리 냉정해야할지라도 상당한 병력을 즉시 동원해 투입시켜야하는등 전쟁수행에 차질이 벌어질 수 밖에 없으며 카자크를 통한 습격으로 행정망을 망가뜨리면 중앙정부의 통제만이 여러 소비에트공화국을 뭉칠 수 있는 연합체인 소련 특성상 그들을 보호해야 하니깐요.
그러나 서주를 통치해야하는 조조의 입장을 가진 러시아 수뇌부로서는 이후의 통치에 큰 어려움을 줄 수 밖에 없죠. 석주 학살 후 서주 세력은 유비에게 흡수되었으며 이는 조조에게는 미래의 라이벌을 키워준 계기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백년초기만해도 약탈과 단기 원정에 집중한 것과 달리 후반에는 프랑스를 흡수한 제국으로 가야하였던만큼 셰보셰는 역효과를 내었죠. 이전에는 프랑스에 머물던 노르만족이 영국에 들어가 잉글랜드 왕국을 만들었고 민족개념도 희박하여 문제가 없었으나 잦은 셰보셰는 프랑스인들의 분노를 샀으며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은 부르고뉴 같은 영주 세력의 힘을 약화시켜 프랑스 중앙집권에 기여하게 되었죠. 특히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통일제국을 만들려고 한 영국 헨리 5세는 사심이 들어간 보복을 동반하였는데, 이는 당시 약탈과 강간에 대해 보상으로 생각하고 도덕개념이 낮은 당대에도 엄청난 비난이 나왔을 정도입니다. 크래시 전투를 재현한 아쟁쿠르 전투에서 잡은 프랑스포로가 잉글랜드 원정군을 넘어 제거할 필요가 있음에도 잔혹하게 죽였으며 민간인에 대한 보복은 약탈을 즐긴 잉글랜드군조차 동정심을 느꼈을 정도입니다. 결국 이로 인해 잔다르크의 활약이 더욱 영향을 주었으며 잉글랜드는 기존 노르망디 부근의 영지도 상실하며 칼레를 뺀 모든 프랑스 점령지를 내놓았죠. 특히나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는 부담 중의 부담입니다. 거기다 우크라이나가 이미 이탈하였고, 카자크들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이탈이 계속 나오는만큼 러시아의 부담은 더 커지죠. 그렇기에 러시아는 슬슬 독일에 대한 독립과 의존도 완화에 고심할 수 밖에 없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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