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나오를 죽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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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에 찬 함성을 지르며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무사들을 단칼에 베어나갔다.
무사들이 겁을 먹고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무, 무엇하느냐? 저, 저놈을 막아랏.”
미치나오가 무솔이 다가오자 무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나 좌측 복도로 몸을 숨겼다.
무사들과 병사들의 창과 칼이 무솔의 칼에 힘없이 튕겨 나가거나 두 동강이 났다.
무솔의 뒤에서도 병사들이 몰려왔다.
옆의 장지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병사들도 무솔을 따라 장지문을 밀고 들어 왔다.
갑작스런 소란에 두려움으로 방안에서 꼼짝 못 하고 숨죽이고 있던 여인들이 무솔과 병사들의 난입으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일어나 이리저리 피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병사들과 뒤섞였다.
여자들을 피하며 다시 눈앞의 장지문을 부수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장지문을 부수자 미치나오가 바로 눈앞에 보였다.
“네 이노옴!”
고함을 치며 미치나오를 향해 날아올랐다.
병사들이 무솔을 따라 방으로 몰려 들어가다 보니 미치나오의 방비가 허술해져 있었다.
미치나오 뒤에서 나타난 무사가 달려와 칼을 강력하게 맞부딪쳐 왔다.
그 틈을 노려 미치나오가 복도 뒤로 도망을 갔다.
도망가는 미치나오를 따라 눈길을 주며 칼을 받아친 무사의 가슴을 발로 차고는 멀리 도망가는 미치나오를 향해 달렸다.
앞뒤로 병사들이 창을 겨누며 막아섰다.
무솔의 솜씨에 병사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았다.
무솔이 칼을 앞으로 세우자 서로 무서워 뒤로 가려고 아옹다옹하며 자기네들끼리 다투었다.
무사하나가 앞으로 나오자 용기를 얻은 병사들이 앞뒤로 무솔을 둘러쌌다.
사면초가였다.
너무 많은 병사가 무솔을 압박해 왔다.
주변을 둘러보다 건물을 들어올 때를 떠올렸다.
옆 기둥에 걸려 있는 사방등이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사방 등을 뽑아 휘두르며 병사들 위협했다.
병사들이 다가오다 뒤로 조금 물러나자 뒤로 거리를 벌리며 사방등을 던졌다.
사방등의 기름이 퍼지며 불이 장지문에 옮겨붙자 병사들이 불을 끄려고 허둥거렸다.
뒤로 계속 물러나며, 사방 등 몇 개를 병사들과 방안으로 던졌다.
불길이 장지문과 다다미에 옮겨붙으며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무솔 뒤로 창과 칼을 들고 조여 오던 병사들이 무술이 던진 사방 등에 놀라 움찔하며, 쉽게 다가오지 못하고 창을 겨누며, 머뭇거리고 있는데 불길이 바로 앞 장지문으로 올라붙었다.
복도가 연기로 뿌옇게 싸여 갔다.
주변을 살피다 불이 붙은 장지문을 걷어차고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어깨로 밀고는 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은 절벽이었지만 오른쪽으로 두 근거리에 정원의 끝자락이 보였다.
뒤를 돌아 어머니가 있는 방으로 달려가다 몇 걸음 못가 멈춰야 했다.
건물 여기저기가 불길 속에 무너져 내려 도저히 근처로 갈 수가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 연기 속에서 어머니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병사들의 소리에 잠시 불기둥을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 창으로 달렸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머니, 못난 아들의 불효를 용서하십시오.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하고 또 뜨거운 불 속에 계시게 한 저를·····. 반드시 동생들을 찾아 조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부디······.”
울먹이면서도 창을 열고 턱으로 올라가 망설이지 않고 아래로 뛰었다.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돌을 발돋움 닫기로 뛰어 몸을 구르며 어렵사리 정원 마당에 닿을 수 있었다.
몇 번을 앞으로 구르고는 재빠르게 일어서며 주변을 살피자, 많은 병사가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는 건물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건물이 일부 무너지며 아수라장이 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다른 곳들을 살폈다.
혼마루 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천수각 건물로 불이 옮겨붙었다.
건물들이 불타면서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불을 끄기 위해 많은 병사와 사람들이 물을 길어 나르고 있었고, 일부는 무솔을 찾기 위해 병사들이 허둥대고 있었다.
재빠르게 근처 정원수 어둠으로 들어가 놈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멀찌감치 미치나오가 넓은 정원 건너편에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놈을 보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눈이 치켜 올라가며 망설이지 않고 미치나오에게로 곧장 내달렸다.
‘아버지! 어머니!’
도저히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를 살려두고는 죽어서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었다.
무방비 상태였다.
병사들과 하인들이 불이 난 건물로 인해 우왕좌왕하느라 미치나오를 보호할 겨를이 없었다.
“히, 히카루! 여기, 여, 여기 놈이 있다!”
미치나오가 달려오는 무솔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옆에 있던 여자들이 무솔이 칼을 높이 들고 달려오자 혼비백산 도망을 갔다.
달려오는 기세에 미치나오도 아이를 안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불같이 달려와 미치나오 앞에 다다르자 땅을 딛고 날아올라 칼이 공기를 갈랐다.
그때 누군가 무솔의 칼을 튕겨냈다.
히카루였다.
“히카루! 그래, 네놈이, 네놈이 우리 아버지를 죽이고 도공들을 잡아 오라고 시킨 놈이었지!”
“그렇다. 어린놈이 겁을 상실했구나.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하지만 히카루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솔의 칼에 눈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멀리 피하지 못한 미치나오가 아기를 안고는 벌벌 떨고 있었다.
“이놈!”
이글거리는 눈으로 미치나오를 향해 달려가며 격하게 고함을 질렀다.
히카루가 단 한칼에 쓰러지자 얼어붙어 버렸다.
“저기 있다. 잡아라.”
무사들과 병사들이 무솔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원수만이 눈앞에 있었다.
십여 보를 달린 다음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하늘에 있는 무솔을 본 미치나오, 그만 아이를 팔에서 떨어트리고 말았다.
아이가 땅에 떨어지자 비명을 지르고는 곧 조용해졌다.
하늘을 가르며 두려움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미치나오의 목을 망설임 없이 베었다.
미치나오의 목이 땅에 떨어져 굴렀다.
오늘 처음 사람의 목숨을, 아니 상처도 입힌 적이 없던 칼이라고 누가 믿겠는가?
그의 칼은 어머니의 죽음 앞에 시퍼렇게 날을 세우며 울었다.
두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불길에 녹아내리는 천수각을 바라보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앞서서 달려오던 병사들이 땅에 떨어져 굴러오는 미치나오의 목을 보고는 놀라 멈칫했다.
뒤의 병사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몰려오는 바람에 앞에 있던 병사들이 밀려 쓰러지고 그 뒤 병사들이 넘어진 병사들을 밟으며 쓰러지고, 난장판이 되어 뒤엉켰다.
아수라 지옥 같은 모습에 정신을 차린 무솔이 고함을 내지르고는 바깥 성으로 달려 나갔다.
“어머니!”
병사들이 우왕좌왕했다.
대리 성주인 미치나오와 히카루가 죽자 지휘 계통이 엉망이 되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보게, 여기! 여기로 오게.”
가게치카가 달려가는 무솔을 불렀다.
어디로 나갈지 몰라 갈팡질팡하다 그를 부르는 소리에 방향을 틀어 가게치카가 숨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는 길을 잘 아는지 무솔을 데리고 내성을 쉽게 빠져나갔다.
가게치가가 달빛을 피해 나무 그늘과 건물 처마 아래를 따라 어둠을 헤쳐 나갔다.
눈앞에 외성이 나타나자 망설임 없이 외성의 성곽으로 올라갔다.
“여기는 성벽이 낮다네. 또한 바다가 깊고 바위가 없는 곳이야. 내가 먼저 뛰어내릴 테니 자네도 여기로 뛰어내리게.”
병사들이 무솔을 향해 쫓아오고 있었다.
가케치카가 외성 성벽 위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무솔을 향해 웃으며, 고함을 지르고는 훌쩍 바다로 뛰어내렸다.
병사들이 성벽 바로 아래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불길이 치솟는 내성을 올려 다 보며 잠시 어머니를 생각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는 단단히 짐들을 단속하고 가게치카를 따라 성 밖 바다로 뛰어들었다.
겨우 수면 위로 올라와 육지를 확인하고는 헤엄을 쳐 올라왔다.
뒤를 돌아 성을 보니 성벽 위 횃불들이 여기저기에서 일렁거렸다.
천수각 건물과 주위에 불길이 벌겋게 하늘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병사들의 어지러운 고함이 어둠을 뚫고 건너왔다.
땅으로 올라와 성을 바라봤지만, 아직 병사들이 성 밖으로 쫓아 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게치카가 무솔을 따라 육지로 올라왔다.
얼굴에 흘러내리는 바닷물을 손으로 훑고는 무솔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어디로 갈 건가?”
“글쎄요. 아니···, 교토로 갈 예정입니다.”
말을 하다 잠시 망설인 무솔이 교토로 가는 것을 밝혔다.
두 사람은 앞으로 달려가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이마바리로 가서 배를 타고 큐슈로 갈 것이네.”
달리며 생각했다.
‘어디로 가야 하나?’
“교토로 가려면, 추적자들이 따라붙을 거네. 근처 바다는 위험하니 저기 동쪽 산을 올라 계속 동쪽으로 가게. 그러면 바다가 나올 게야. 큰길이나 마을로 가면 위험해. 산이 거칠지만, 추적자들을 따돌리기에는 더없이 좋을 게야. 며칠은 가야 해. 동쪽 끝에 다다르면 바다에 큰 섬이 있고 그 건너편이 오사카라네. 그럼 몸조심하게. 운이 따른다면 살아서 만날 수 있겠지. 그때는 편안하게 술이나 한잔하세!”
“네. 감사합니다.”
가케치카가 뒤돌아보며 웃고는 앞으로 내달렸다.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그를 보며 발걸음을 반대로 돌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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