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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동인

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한림팔기장
작품등록일 :
2022.04.13 12:33
최근연재일 :
2022.08.02 09: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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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78
추천수 :
32
글자수 :
1,064,609

작성
22.04.2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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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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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닌자되다 2

역사는 반복된다.




DUMMY

교토 오마찌 별채.


“류세이라는 자가 이가닌자들을 계속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번 후시미 동쪽 나찰 골짜기에 모인 인원이 스무 명이 넘었습니다. 그쪽으로 저희 인원 한 명을 위장하여 들여보내 놓았습니다.”


“잘했군. 음, 그 많은 인원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혹, 그들의 활동 본거지는 알아냈는가?”


“예, 교토 남쪽 겐닌사 앞 칼갈이 상점에 류세이가 칼갈이로 위장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정보 수집과 닌자들의 활동을 이 류세이가 관리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간혹 검은 복장의 사내가 상점 뒤 별채로 숨어드는데, 그자에게 보고하는 것 같습니다. 멀리서 어림짐작으로 봐도 죠닌급은 되어 보였습니다.”


“죠닌급이라! 그자의 정체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가의 난 이후 죠닌급 닌자가 드물다고 봐야 해.”


“그래서 급히 이가분지로 올빼미를 날렸습니다. 며칠 내로 확인이 될 것입니다.”


“그럼, 그자에 대해서는 그때 이야기하지.”


“아! 잊을 뻔했습니다. 행정청에서도 전쟁 반대와 관백 암살 소문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잘못하면 우리와 맞닥뜨릴 수 있는데 그땐 어떻게 할까요?”


“행정청이라. 누가 책임자지?”


“교토의 치안은 부교 마에다 겐이가 맡고 있습니다.”


“그래? 되도록 부딪치지 말고 부딪쳐도 피하는 게 상책이야. 잘못하여 꼬이게 되면 활동하기 힘들어질 수가 있어. 아이들에게도 주지시키도록.”


“네, 알겠습니다.”


사카야마가 차를 마시며, 신조의 보고를 들었다.


‘음, 마에다 겐이라? 히데요시의 5부교 중 하나가 아닌가?’


“그자뿐만 아니라 5부교에 대해서도 정보를 수집해 보게.”


“네, 네? 5부교를 모두 다 말입니까?”


“응, 아무래도 5부교 모두가 수상해.”


“잘 알겠습니다.”


신조가 밖으로 나가고 홀로 차를 마시며 신조가 보고한 내용들을 되짚어 보고 있었다.


‘이가닌자라. 음······, 설마, 쓰즈라 주조는 아니겠지?’


흔들리는 등잔불을 바라보는 사카야마의 얼굴이 묘했다.



*



츠바사가 어릴 적 이가분지에서 닌자기술을 배우기 위해 여러 스승을 찾아다녔지만, 노부나가의 이가 정벌 이후 많은 닌자가 죽임을 당하거나 살아남아도 팔이나 다리가 하나 없는 자들만 남았다.


혹 온몸이 온전한 자도 이가를 떠나 텅 빈 이가분지에는 실력이 있는 닌자가 별로 없었다.


있다고 해도 한가로이 남에게 기술을 전수해 줄 여력도 되지 못했다.


사카야마 즉, 츠바사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닌자기술을 익혔다.


하지만 고난도의 기술을 비천한 츠바사에게 가르쳐 주는 자가 없었다.


전쟁으로 인해 죠닌들도 몇 남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자손에게도 전수하기도 버거웠다.


제법 이름난 닌자에게는 일을 거들어 주며, 배우거나 어깨 너머로 겨우 기초적인 기술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홀로 배우는 기술이 늘지 않았지만, 열심히 수련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 있기에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낙담에 낙담으로 지쳐 가고 있을 때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근래에 이가 최고의 닌자인 쓰즈라 주조님이 오토기 고개로 돌아오셨데.”


“정말? 우리 함께 가서 닌자기술을 배워 보자.”


“어림도 없어. 몇 사람이 이미 가보았는데, 기술은커녕 무엇에 홀렸는지 암자에 틀어박혀서는 염불만 외우고 있다는데.”


그다음 날 이른 아침에 오토기 고개로 달려갔다.


다 쓰러져 가는 암자에 다 헤진 스님 복장으로 작은 불당 앞에서 독경을 하는 주조를 만났다.


호흡을 크게 하고는 마당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쓰즈라 주조님, 닌자기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몇 번을 사정했지만, 주조는 독경만 외우고 있을 뿐이었다.


다리가 저리다 못해 마비가 오고 그 고통이 다리를 지나 허리로 올라왔다.


“쓰즈라 주조님, 이가를 다시 살릴 수 있도록 닌자기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지만 주조의 독경 소리만이 방안을 넘어 하늘 높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매미가 장단을 맞추는지 매미의 울음소리가 주조의 독경 소리를 따라 자신을 조롱하는 소리로 들렸다.


매미가 방해해도, 정신이 혼미해져도 의지를 꺾지 않고 버텼다.


땡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인내하고 인내했다.


닌자기술을 익히려는 자가 이 정도 햇살을 못 이기고 포기한다면 닌자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굳센 바위와 같은 정신으로 모든 것을 인내하며,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주조를 애타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힘겹게 버티던 육신이, 그리고 정신이 서서히 무너져 갔다.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나 의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가의 재건은 말뿐이었다.


어떻게든 좋은 기술을 익혀 살아남고자 함이었다.


삶 앞에 이런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독경 소리가 귀를 통해 가슴을 후벼 팠다.


‘도대체, 이게 뭐람. 잘난 척하고 있는 작자에게 무엇을 더 바랄까.’


참다못한 츠바사가 꿇었던 무릎을 힘겹게 펴고 일어나 마루를 쿵쿵거리며 불당 안으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꿇어앉아 있던 다리가 뻐근하고 저렸지만 이를 악물고 다리를 뻗었다.


책상다리하고 앉아 몇 시진을 독경하고 있는 주조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조님, 부디 저에게 닌자기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무작정 사정해 보았다.


주조는 눈을 감은 채로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주조 앞에 퍼질러 앉아 눈을 감았다.


어느덧 해가 산 능선에 걸려 하늘을 붉게 물들이자 주조가 눈을 떴다.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가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으악!”


주조의 눈은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세상살이를 초월한, 아니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그의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으며, 무언지 모르게 무아의 지경에 들어간 것 같은 눈빛에 기겁하고 암자를 뛰쳐나왔다.


*


‘쓰즈라 주조! 그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설마, 그런 주조가 세상 밖으로······. 아니겠지. ···그럼 누구란 말인가? 이가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왜 꼭 이가라고만 생각했을까?’



신조 아래에 있는 닌자 쥰세이가 신조의 지시로 궁 서쪽에 있는 대덕사를 찾아갔다.


참배를 온 신자처럼 행동하면서 리큐의 목상이 안치된 곳을 찾았다.


아니 찾아다니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대덕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건물 안 열 자 높이에 목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저 목상을 말하는 것일까? 별로 닮지도 않았는데, 음.”


목상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절 안으로 들어갔다.


본당 불전에 합장하고 난 뒤 절 분위기를 살폈다.


소문이 퍼져서 그런지 절 안이 썰렁했다.


리큐의 목상이 안치되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대덕사의 스님들은 안절부절못했다.


가능하면 외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조용히 수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관백 히데요시가 대노했다는 소문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목상을 치울 수도 없었다.


그렇게 되면 리큐의 목상을 안치했다는 것을 시인하게 되는 것이었다.


일반인들도 가급적 대덕사에 가지 않았다.


혹 소문에 연루될까? 겁이 났던 것이다.


스님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가 간혹 마당을 지나가는 스님들에게 여쭤보았으나, 대답은커녕 혼비백산 걸음을 빨리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목상에 대해 알아보려 했지만, 모두가 그를 피했다.


희망 없이 부엌이 있는 건물을 지나가는 데 안에서 머리에 두건을 쓴 여인이 밖으로 나와 옆 건물의 문을 열고 들고 가는 것을 보고는 주변을 살피며, 재빠르게 그 여인을 따라 들어갔다. 쌀을 보관하는 광이었다.


들어가면서 나무로 만든 문을 얼른 닫았다.


환한 창고가 갑자기 삐익 소리와 함께 어두워지자 여인이 뒤돌아보다 쥰세이를 보고는 놀라 소리치려 했다.


잽싸게 그 여인의 입을 막았다.


“해칠 마음이 없으니 고함치지 마시오. 궁금한 것이 있어서 물어보려 그러는 것이오.”


그 여인은 놀란 눈으로 준세이의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절 입구에 안치된 목상 말이오. 리큐의 목상이라고 한다는데 언제 누가 안치한 것인지 아시오.”


리큐라는 말에 겁을 잔뜩 먹은 여인이 쥰세이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어어읍.”


“이런, 미안하오.”


여인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거둬들였다.


여인이 숨을 헐떡이며, 쥰세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나무 문으로 들어오는 햇살만이 밝게 보일 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리큐 거사님을 도울 방법을 찾기 위해 그런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말해 보시오.”


“······.”


“내 이름은 쥰세이라고 하오. 한시라도 빨리 진실을 밝히지 못하면, 리큐 거사님의 목숨이 위태하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부디 알고 있는 것이 있으면, 알려 주시오. 이 일은 나라의 안녕과 관련된 엄청난 일이오. 누군가 리큐 거사님을 모함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가 있소.”


간절한 눈빛으로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그 간절함이 전달되었을까?


“그게···. 정말 리큐 거사님을 살릴 수 있는 거죠.”


“당연히! 부디 아는 게 있으면 알려주시오.”


“호, 혹 제 신변에 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오. 아무 염려하지 마시오. 나 쥰세이가 그대의 목숨을 보장하오. 만에 하나 그대의 신변에 문제가 있으면, 내 목숨도 내놓겠소. 사나이로서 약속하오.”


어디에서 그런 배짱이 나왔는지 환한 얼굴로 여인의 두 손을 잡았다.


여인이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그러면, ···저도 자세히는 모르나 지난해 섣달 초쯤 두 사람인가가 찾아와서 큰 스님을 뵙고는 많은 금을 시주했는데, 그때 목상도 있었어요. 나라의 평화를 기원하고 목상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건강과 복을 기원하기 위해 부처님을 만들었으니 안치하고 싶다고 했어요.”


“혹, 인상착의는 기억이 나시오?”


그녀는 나지막하게 말을 하면서도 연신 밖을 살폈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 않아요. 큰 스님이 너무 고마워 어디 사는 누구인지 물었는데, 류큐에서 왔다는 말만 하고는 떠났어요.”


“류큐라?”


난감한 표정으로 그 여인을 다시 쳐다보았다.


어둠이 눈에 익자 발그스름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절에서 일하는 여인이라 그런지 어딘가 맑고 순수해 보였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어두운 창고 안에 남녀가 있어서일까?


이상한 생각을 했는지 쥰세이가 얼굴이 홍조가 되어 말을 더듬었다.


“류, 류큐는 거짓말일 거요. 그, 그 이후 리큐 목상이 안치되었다고 소문이 났겠지요.”


“네? 아, 네”


그녀도 분위기가 이상한지 발그레해진 얼굴을 옆으로 돌리면서 잡혀 있던 손을 빼려 했다.


“아, 이런, 미안하오.”


당황한 쥰세이가 여인의 손을 놓아주었다.


쥰세이의 입김에 정신이 몽롱해져 가는 여인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혈기 왕성할 나이의 쥰세이였다.


‘내가 왜 이러지. 이, 이러면 안 되는데.’


그녀도 이상한 분위기에 두 눈을 꼭 감았다.


쥰세이의 몸이 그녀에게로 점점 다가갔다.


“엄마야!”


쥐 한 마리가 찍찍거리며 두 사람 옆으로 재빠르게 지나갔다.


놀란 여인이 소리를 지르며 그의 품으로 안겨 왔다.


엉겁결에 여인을 품에 안고는 어정쩡한 자세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있었다.


갑작스런 소동에 긴장하였는지 온몸이 뻣뻣해졌다.


여인과 그의 심장 뛰는 소리가 뒤엉켰다.


여인의 눈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몽롱한 기분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고, 고맙소. 다음에 인연이 된다면 사례를 하리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나무 문틈으로 밖에 누가 있는지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여인이 뭔가 아쉬운지 밖으로 나가는 쥰세이를 따라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밖으로 나가 건물 모퉁이를 돌아가려던 쥰세이가 건물 뒤편에서 창고로 다가오는 그림자가 보이자 놀라 재빠르게 금방 빠져나온 광으로 되돌아왔다.


“쉿!”


문틈으로 밖을 살폈다.


대여섯 명의 무리가 경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엇인가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묻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일각의 시간이 지나자 무리가 물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 나가서 금방 다녀간 자들이 누군지 알아봐 주시오.”


여인이 힐끔 쳐다보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광을 나갔다.


여인의 향내에 빠졌는지 고자질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여인이 오지 않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급히 밖으로 나오려 문고리를 잡았다.


그때 문이 확 열렸다.


깜짝 놀란 쥰세이가 뒤로 물러나며 칼을 뽑아 들었다.


“저예요.”


“휴, 난 또. 깜짝 놀랐소. 하하하.”


숨을 크게 내쉬며 작은 소리로 웃었다.


“행정청에서 목상과 관련하여 조사를 나왔다고 해요.”


“행정청에서요?”


“지난번 목상이 안치되고 얼마 되지 않아 조사를 나왔었는데, 오늘은 목상이 안치된 경위나 여러 사정들을 물어보았다고 해요.”


“그럼 두 번을 조사 나온 것이군요. 지난번에는 그냥 목상의 존재를 확인하러 나온 것이고 이번은 그 내막을 캐고 있다는 것이죠?”


“네, 그런 것 같아요.”


“이제 정말 가봐야겠소. 정말 고맙소.”


“몸조심하시고 꼭 리큐 거사님을 살려 주세요.”


여인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인의 두 손을 꼬옥 붙잡고는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는 밖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왔다.


아쉬운 눈길로 뒤를 돌아보며, 여인의 향내를 털어내듯 몸을 한 번 흔들었다.


여인도 꿈인 듯 생시인 듯 사라진 쥰세이의 채취에 쌀가마니 위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대덕사를 나와 목재상 거리로 갔다.


사람 크기만 한 목상을 만들어 옮기려면 가까운 곳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보였다.


목재상 거리는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분주했다.


관백이 절과 신사를 부흥시키면서 많은 목재가 필요하다 보니 기술자들이 쉴 새 없이 나무를 자르고 짜고 있었다.


바빠서 그런지 쥰세이의 궁금증에 대해 일꾼들이 하던 일을 하면서 모른다는 말만 간단히 하고는 상대해 주지 않았다.


아예 대꾸도 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거리 끝까지 갔지만 목상에 대해 아는 자는 없었다.


아니 목상 이야기만 하면 분주함을 핑계로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인가가 있다. 느낌이 이상해!’


목재상 거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는 다른 일행을 만나기 위해 여각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침 일찍 교토로 와 돌아다녀서 그런지 배도 고프고 피곤함도 몰려왔다.


언제 해가 서산으로 졌는지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동료들은 벌써 와 있겠지?’


시모교 시내를 지나갈 즘 이상한 느낌에 살짝 뒤를 살폈다.


그림자가 건물 뒤로 사라졌다.


‘이런!’


야나기초의 유곽들이 들어서 있는 곳으로 방향을 바꾸어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림자도 그를 따라 빨리 걷기 시작했다.


야나기초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유곽을 찾는 사람들과 그들을 유혹하는 여인들, 그리고 대낮부터 유곽에 왔다가 초저녁에 돌아가는 사람들로 벅적거렸다.


사람들 속에 들어오자 느긋하게 주위를 구경하듯 걸었다.


그러자 그림자들이 약 서른 보 거리에서 그를 살피며 다가왔다.


앞서가던 쥰세이가 뒤를 힐긋 바라보고는 기생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제치며, 잽싸게 유곽의 뒷골목으로 달렸다.


뒤에서 쥰세이를 욕하는 소리와


“비켜!”


라는 소리가 뒤엉겨 들려왔다.


유곽 뒷골목으로 들어가 골목을 요리조리 달리다 담벼락 중간에 있는 뒷문 그림자로 숨어들어 처마에 달라붙었다.


쥰세이를 쫓아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휴, 큰일 날 뻔했네.”


“저쪽을 살펴라.”


목소리와 발소리가 멀어지자 안심하고 처마 아래로 내려오려다 바짝 긴장한 채 귀를 바싹 세웠다.


미행하는 무리가 다른 골목으로 갔다가 돌아와 쥰세이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심장 소리만 가득 울려 퍼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매달려 있는 뒷문 처마를 지나 여러 명의 무리가 달려갔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와 쥰세이의 심장 소리가 교차했다.


발소리가 멀어지자 처마에서 버티다 내려와 멀리 달려가는 무리를 바라보았다.


‘휴. 미행당하다니. ······누가 어디서부터 날 미행한 것일까?’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들어 온 곳으로 나가려고 돌아서자 눈앞에 복면의 그림자가 여럿 노려보고 있었다.


“누, 누구냐?”


“알 것 없다. 네놈은 누구인데 목상에 관해 묻고 다니는 것이냐?”


뒤를 돌아보고는 자신이 포위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젠장, 네놈들 정체를 먼저 밝혀라!”


“크크, 말로는 안 되는 놈이군. 잡아랏.”


우두머리가 명령을 내리자 앞뒤에 있던 무리가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이얏!”


뒤로 돌아 달려오는 자의 칼을 비켜나며, 그 뒤의 복면과 칼이 부딪쳤다.


뒤에서 칼을 휘두른 자를 몸을 숙이며 허리를 베고 옆 담장을 향해 발돋움하고는 날아올랐다가 또 다른 복면을 발로 차며 땅으로 내려왔다.


“안 되겠다. 그물을 던져라!”


순식간에 그물이 날아와 덮쳤다.


좁은 골목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 그들이 던진 그물을 피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순간적으로 칼집을 던져 쳐냈지만, 또 다른 그물이 날아와 덮쳤다.


움직일 공간이 작아서일까, 쇠사슬로 만들어진 그물을 칼로 끊어 낼 수가 없었다.


그물 안에서 발버둥을 쳤다.


그럴수록 그물이 몸을 옥죄어 왔다.


“우아악!”


그물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단검을 목에 가져가 목을 찔렀다.


생포되면 아무리 버틴다고 해도 섬이 노출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자신 때문에 섬에 큰 변고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되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쉬리릭!”


“악!”


갑자기 어디선가 수리검이 날아와 단검으로 목을 찌르려는 손등에 박혔다.


“어이! 잘 생겨서 얼굴값을 할 줄 알았더니 인제 보니 꼴값하시네.”


골목 어두운 곳에서 복면을 한 자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쥰세이를 그물로 잡았다고 생각한 자객들이 달려오는 복면에 놀라 우두커니 바라만 보면서 서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막아랏!”


복면은 맞달려오는 자객들을 향해 수리검을 날리고는 칼을 들고 수리검에 이마를 맞아 허우적대는 그림자의 등을 밟고 날아올라 칼을 내려쳤다.


순식간에 칼이 허공을 가르는데, 자객은 복면의 칼에 당한 것인지, 발놀림에 당한 것인지 알지 못한 채 나가떨어졌다.


어떤 자는 목을, 어떤 자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네, 네놈은 누구냐?”


부하들이 모두 쓰러지자 우두머리가 칼을 들고 뒤로 물러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자의 칼이 어둠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나? 난 오니라고 하지. 부하들을 데리고 얼른 사라지는 게 어떨까?”


복면이 우두머리를 향해 타이르듯 말을 건넸다.


겨우 목과 가슴의 통증을 이겨 낸 자객들이 비틀거리며 일어나서는 몸을 살폈다.


“네놈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다음엔 사정을 봐주지 않겠다. 철수하라!”


우두머리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뒤를 돌아 냅다 도망을 갔다.


부하들도 땅에 떨어진 칼을 주워 들고는 비틀거리며 우두머리를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 다음에 꼭 보자구. 하하하.”


자객들이 사라진 골목 어둠 속으로 중얼거리듯 말을 뱉은 복면이 그물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쥰세이에게 다가가 앞에 서서 노려보았다.


“누, 누구요? 누군데 날 살려 준 거요?”


“어허! 내가 언제 널 살려 줬다고. 난 그냥 내 솜씨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을 했을 뿐인데.”


“뭐? 그럼 날 죽일 테냐?”


“내가 언제 죽인다고 했나? 평소에 날 무시한 대가를 치러야지.”


“무, 무시? 내, 내가?”


“알 만도 한데, ···어디 형님 해 보거라!”


“뭐라? ···형님! 누, 누구냐? 네놈은······”


“싫으면 관두든가?”


돌아서는 복면을 보고는 다급해진 쥰세이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냥 갈까 봐 말을 높였다.


“나도 자존심이 있소. 아무나 형님이라고 할 수 없소. 그대가 비록 내 목숨을 구해 줬다고 해도 말이오.”


“오! 나름 기개를 펴시는군. 그럼 어쩔 수 없지.”


복면의 사내가 칼집에서 칼을 뽑아 높이 들었다. 칼끝이 달빛에 반짝 빛이 났다.


달을 등지고 칼을 높이 치켜든 복면을 노려보다 포기를 했는지 눈을 감으며 소리쳤다.


“그래,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사나이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을쏘냐. 나도 자존심이 있는 놈이다. 어서 죽여랏.”


“꼴에.”


“······.”


모든 것을 내려놓았는지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이 얏!”


기합 소리와 함께 어둠을 가르는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치자 움찔했다.


죽음 앞에 당당하다고 하지만 막상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그 누가 담담할 수 있을까?


잠시 침묵이 내려앉은 듯 고요함 속에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고 있던 쥰세이가 살며시 눈을 떴다.


‘내가 아직······?’


몸 여기저기를 살폈다.


쥰세이의 몸이 아닌 그물이 찢겨 있었다.


“으하하, 인제 그만 일어나. 바보처럼 굴지 말고. 여긴 아직 이승이야.”


복면이 쥰세이 앞에 앉으며, 얼굴을 가린 두건을 아래로 내렸다.


“어! 너, 너는···, 젠장! 날 가지고 놀았군.”


“그러게, 세상일이란 모르는 일이니 잘했어야지. 날 바보라고 놀리고 제대로 닌자도 아닌 것이 흉내만 잘 낸다고 흉본 사람이 누구더라!”


“료우타···! 미안했다. 그동안 내가 놀린 거 사과하지.”


쥰세이가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하며 손등에 꽂힌 수리검을 빼다가 두 날 수리검을 보고는 황당한지 료우타를 쳐다보았다.


‘바보같이, 두 날 수리검을 몰라보다니.’


수리검을 보며 어처구니없어하는 쥰세이를 보며 료우타가 씩 웃었다.


“좋아! 우린 동료가 아닌가? 아니지, 나에게 목숨을 빚졌으니 내가 형님이다. 하하하.”


“형님 좋아하네. 이 세상 형님 많겠다. 하하하. 그런데 코카와성에 있어야 할 형님께서······.”


쥰세이는 농으로 형님이라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형님으로 인정하며, 료우타를 바라보았다.


“여기 위험하니 빨리 피하자. 가면서 이야기해줄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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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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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조선의 바다 1 22.06.18 50 0 10쪽
79 통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2 22.06.17 52 0 10쪽
78 통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1 22.06.17 55 0 9쪽
77 풍전등화 2 22.06.16 55 0 9쪽
76 풍전등화 1 22.06.16 54 0 10쪽
75 비싼 목숨 값 22.06.15 57 0 10쪽
74 산적 무리들 3 22.06.15 54 0 14쪽
73 산적 무리들 2 22.06.14 50 0 14쪽
72 산적 무리들 1 22.06.14 55 0 12쪽
71 어머니의 유품 22.06.13 52 0 10쪽
70 도망자 22.06.13 58 0 11쪽
69 미치나오를 죽이다 22.06.12 55 0 10쪽
68 어머니의 죽음 22.06.12 57 0 10쪽
67 출생의 비밀 22.06.11 78 0 10쪽
66 함께 살자 22.06.11 50 0 10쪽
65 무너진 계획 22.06.10 52 0 10쪽
64 여동생 22.06.10 55 0 10쪽
63 카에데 부인 22.06.09 51 0 13쪽
62 가시마성 2 22.06.08 57 0 10쪽
61 가시마성 1 22.06.08 59 0 11쪽
60 조선 도공들 2 22.06.07 59 0 11쪽
59 조선 도공들 1 22.06.07 54 0 12쪽
58 왕년의 해적들 2 22.06.06 55 0 9쪽
57 왕년의 해적들 1 22.06.06 73 0 13쪽
56 구루시마의 의심 22.06.05 54 0 11쪽
55 료우타의 검술 22.06.05 55 0 10쪽
54 숨은 실력자 타이요우 22.06.04 56 0 9쪽
53 조선 침략의 전초 기지 22.06.04 60 2 13쪽
52 기억에 없는 기억들 2 22.06.03 55 0 9쪽
51 기억에 없는 기억들 1 22.06.03 64 0 12쪽
50 남만인 배 글로벌호 2 22.06.02 57 0 11쪽
49 남만인 배 글로벌호 1 22.06.02 64 0 12쪽
48 과거에서 온 추적자들 22.06.01 68 0 13쪽
47 스스무의 회상 22.05.31 72 0 13쪽
46 하이난 3 22.05.30 67 0 16쪽
45 하이난 2 22.05.29 102 0 22쪽
44 하이난 1 22.05.28 64 0 20쪽
43 꽃을 찾는 벌 22.05.27 73 0 22쪽
42 벌을 찾는 꽃 22.05.26 72 0 25쪽
41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5 22.05.25 75 0 18쪽
40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4 22.05.24 68 0 17쪽
39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3 22.05.23 77 0 19쪽
38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2 22.05.22 71 0 19쪽
37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1 22.05.21 70 0 22쪽
36 순정 2 22.05.20 73 0 22쪽
35 순정 1 22.05.19 79 0 22쪽
34 토끼 사냥 22.05.18 84 0 25쪽
33 오마찌 칸의 죽음 22.05.17 76 0 20쪽
32 불타는 오마찌 별채 22.05.16 83 0 19쪽
31 고가 닌자 마리지천 22.05.15 102 0 25쪽
30 함정 22.05.14 83 0 27쪽
29 암살자를 막아라 2 22.05.13 86 0 26쪽
28 암살자를 막아라 1 22.05.12 85 0 25쪽
27 적진 속으로 22.05.11 91 0 23쪽
26 죠유지와의 재대결 22.05.10 87 0 25쪽
25 카오루 부인 22.05.09 105 0 22쪽
24 히데츠구의 의심 22.05.08 115 0 24쪽
23 이가분지 2 22.05.07 95 0 16쪽
22 이가 분지 1 +2 22.05.06 97 1 19쪽
21 반항아와의 만남 +2 22.05.05 93 2 19쪽
20 여인들 +2 22.05.04 93 1 21쪽
19 산적 사이가 +2 22.05.03 86 1 25쪽
18 이가 닌자 간스케와 고에몬 +3 22.05.02 89 2 26쪽
17 기억의 저편에서 온 자들 +1 22.05.01 104 1 21쪽
16 유곽 아이루 +2 22.04.30 92 1 22쪽
15 닌자검 +2 22.04.29 95 1 22쪽
14 닌자되다 6 +1 22.04.28 100 1 26쪽
13 닌자되다 5 +2 22.04.27 105 2 25쪽
12 닌자되다 4 +2 22.04.26 110 1 24쪽
11 닌자되다 3 +2 22.04.25 123 1 25쪽
» 닌자되다 2 +2 22.04.23 122 1 23쪽
9 닌자되다 1 +4 22.04.22 159 1 25쪽
8 올빼미섬 7 +2 22.04.21 208 1 30쪽
7 올빼미섬 6 22.04.20 216 1 25쪽
6 올빼미섬 5 +2 22.04.19 200 1 28쪽
5 올빼미섬 4 +2 22.04.18 216 1 28쪽
4 올빼미섬 3 22.04.16 236 2 29쪽
3 올빼미섬 2 +3 22.04.15 284 1 27쪽
2 올빼미섬 1 +4 22.04.14 434 3 29쪽
1 안개 속 검은 그림자 +8 22.04.13 1,060 3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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