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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동인

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한림팔기장
작품등록일 :
2022.04.13 12:33
최근연재일 :
2022.08.02 09: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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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57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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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64,609

작성
22.04.2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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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닌자되다 3

역사는 반복된다.




DUMMY

칸베에가 신년 하례를 위해 도요토미 히데츠구의 일로 교토에 있는 다카도라 성주에게 가면서 섬에 기별을 넣어 료우타를 오게 했다.


여러모로 료우타를 챙겼다.


교토에서 있을 신년 축하 행사를 보여 주기 위해 부른 것이다.


관백이 주최하는 신년 축하 행사는 웬만한 고관이나 다이묘가 아니면 참석하기가 어려웠다.


료우타는 닌자 수업을 중단하고 코카와성으로 가 칸베에와 함께 교토로 들어왔다.


교토에 온 료우타는 며칠을 주라쿠성과 교토 주변을 구경하며 보냈고 신년 축하 행사도 칸베에 따라 들어가 멀찍이서 보았다.


어느 날 칸베에가 료우타에게 호코사 앞 칼 가는 거리에 가서 맡겨 둔 칼을 가져오라며 심부름을 보냈다.


신시에 심부름가다 호코사란 절을 구경하고는 칼 가는 거리로 들어갔다.


길게 늘어선 거리에는 일꾼들이 한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웃통을 벗고 칼을 갈고 있었다.


칼을 갈고 있는 풍경이 신기하여 시간 흘러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하다 날이 거뭇해져서야 카루라는 가게에 들어가 세 자루의 칼을 받아 들고 다카도라 성주의 저택으로 돌아오기 위해 강둑길로 들어섰다.


노을이 하늘에 꽃으로 피었다가 무거움에 지쳐 떨어졌는지 강물이 잔잔히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강 건너편 거리에 하나둘 피어오르는 불빛이 더하여져 가모강은 점점 더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출렁이는 불빛에 이끌려 가모강의 돌다리를 건너 야나기초로 향했다.


동쪽 하늘에 달이 떠오르고 있었지만 야나기초의 거리는 이미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길거리에 화장하고 야한 웃음을 머금은 여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했다.


처음 보는 세상에 신기하면서도 여인네들의 옷매무새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며, 사람들 사이를 얼른 지나가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잘생기고 귀엽게 생긴 사내가 그들 앞을 지나가는데 그냥 보낼 리가 없었다.


기녀들은 앞다투어 료우타를 유혹했다.


서로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하는 여인부터, 료우타 앞에 두 명의 여인이 팔로 앞을 막아서서는 서로 차지하려 싸우자 그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이, 이러지 마시오. 나, 난···.”


여인들에게 료우타의 간절함은 들리지도 않았다.


겨우 여인들의 팔을 뿌리치며 어쩔 줄 몰라 하며 이리저리 피해 걷다 보니 방향을 잃어버리고는 눈앞에 보이는 어둠이 짙은 작은 골목으로 줄달음을 쳤다.


멀찍이 달아나고서야 가슴을 진정하고는 달빛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따라가는데 골목 어딘가에서 칼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벽에 몸을 붙이고 고개를 내밀어 살펴보니 한 사내가 복면을 한 자객 대여섯 명과 싸우고 있었다.


남들 싸움에 말려들기 싫어 돌아서려다 느낌이 이상해서 다시 돌아보니 자객들에게 포위된 자가 쥰세이였다.



*



료우타와 헤어진 쥰세이가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강을 건너면서 주변을 다시 살폈다.


자객의 습격을 받고 난 뒤 예민해졌다.


여각으로 바로 가지 않고 여러 골목길을 돌고 돌아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는 여각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동료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쥰세이, 왜 이렇게 늦었나?”


신조가 쥰세이가 들어오자마자 급하게 물었다.


“시모교를 지나오는데 미행이 붙어서 늦었습니다.”


“아니, 미행이라고?”


“네, 대여섯 명이었는데, 닌자들 같았습니다.”


“닌자라! 어디 다치지는 않았나.”


“네, 위험한 순간에 료우타가 나타나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는지 쥰세이의 몸이 떨렸다.


“료우타라고······? 아니 지금 섬에 있는 료우타가 교토에 나타났다는 말인가?”


“네, 칸베에 부관을 따라 교토에 왔다가 우연히 만났습니다.”


“천만 다행이로군. ······자넨 목상에 대해 알아보러 갔는데 미행을 당했단 말이지. 음······, 닌자라?”


심각한 얼굴로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목상 사건은 분명히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해. ······혹 우리의 정체가 발각된 것은 아니겠지?”


“글쎄요? 무엇인가 있기에 닌자들이 절 잡아가려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섬에 대해 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참! 그 자객들이 목상을 언급했습니다.”


“목상을······?”


“네.”


‘생포하려 했다. ······리큐와 목상, 그리고 닌자라!’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신조가 어두운 얼굴로 두 사람에게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앞으로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움직여야겠다. 동료들에게도 전파하도록.”


목상과 생포하려 했다는 말에 신조의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아 참! 행정청 사람들도 목상의 안치 배경을 조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그들과 맞닥뜨리지 않도록 모두 조심하게. 사카야마님의 특별한 명이야.”


신조가 게닌들과 차를 마시며,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의논하였다.


“그런데, 칼칼이는 어떤가?”


“루세이가 닌자들을 모아서 교토나 오사카 등지로 보내어 계속 소문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쥰세이 옆에 앉아 있는 고로오가 대답했다.


교토나 오사카 등지에서 닌자들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과 관백에 대한 반란이나 암살 소문이 암암리에 퍼져 나갔다.


“칼갈이 상점에 드나드는 자의 정체는 밝혀졌습니까?”


“우려한 대로야.”


“네? 설마 그자는 아니겠지요?”


“이가분지로 갔던 쇼타가 돌아왔는데 불행히도 그곳에 쓰즈라 주조가 사라졌다고 했어. 묘하게도 사라진 시기와 교토에 소문이 퍼진 시기가 비슷해. 그리고 이가의 닌자들 일부가 교토로 몰려갔다고 하니 정황상 주조가 맞을 게야.”


“모두 설마 했는데, 그자는 탈속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요?”


쓰즈라 주조의 이름이 나오자 모두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이가닌자라면 누구나 그를 알고 있었기에 공포가 밀려왔다.


“혹 그가 아닐 수도 있지만, ······사카야마님께서 특별히 조심하라고 전언이 왔어.”


“주조인지는 모르지만, 어젯밤과 오늘 낮에 변복을 한 자가 주라쿠성을 살피고 돌아갔다고 하네.”


“음, 정말 관백을 암살하려 하는 것일까요?”


뿌리가 같은 이가로써 적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모두 말이 없었다.


신조와 여러 동료는 갖가지 추측을 하며, 하나라도 놓친 게 없는지 다시 정보들을 정리해 나갔다.


섬사람들이 열심히 리큐의 목상과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을 조사하여 중간 보고를 한 직후 일본 정국의 안정과 평화 수호를 위해 올빼미섬을 이용하려 했던 히데나가가 1월 22일 세상을 달리했다.


리큐에 대한 조사 보고가 다카도라를 통해 히데나가에게 전달되었지만, 불과 며칠 후 생을 마감한 것이다.


*


2월 초,


히데나가가 죽자 정국이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리큐의 거취에 대한 여러 소문이 퍼져나갔다.


급박한 상황에 사카야마의 지시로 신조와 쥰세이가 목상을 만든 기술자를 찾기 위해 다시 대덕사와 목재상 거리를 돌아다녔다.


지난번 자객 사건도 있어서 신조의 부엉이조가 뒤를 몰래 따랐다.


리큐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오사카와 사카이, 그리고 다시 교토의 목재상 거리를 훑었다.


“가게 주인들이나 일꾼들이 모두 우릴 피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한데······.”


신조가 혼잣말을 했다.


오사카와 사카이에서는 아무 정보도 얻을 수가 없었다.


교토의 목재상 주변을 탐문해도 아무 소득이 없어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오사카와 사카이와는 달리 교토의 목재상들은 쥰세이의 보고처럼 어딘가 불편해하고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신조님! 혹 목재상들이 협박받고 있거나 무언가 위험한 일이 있기 때문에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어. 젠장!”


겨울바람에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 무언가 생각을 한 쥰세이가 신조를 돌아보았다.


“여각이나 유곽에 가면 어떤 정보가 있지 않을까요?”


“유곽? 내가 왜 그걸 생각 못했지.”


“······.”


“보자······, 목재상에서 가까운 유곽이 어디지? 마천루에서 심어 놓은 쿠노이치가 있을까?”


신조와 쥰세이는 여러 유곽과 기생집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교토에 있는 마천루의 정보원으로부터 목재상들이 자주 드나드는 유곽을 알아냈다.


두 사람은 상인으로 변복하고는 야나기초의 한 유곽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두 사람이 유곽으로 들어가려다 제지당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자리에 앉고 조금 있으니 여인이 들어 왔다.


그 여인이 다다미에 두 손을 짚고 절을 했다.


“여기 가장 좋은 술과 안주를 부탁하네.”


야나기초에서 가장 큰 기생집에 앉아 술을 시켰다.


정보에 의하면, 야나기초의 레이야가 운영하는 기생집이 목재상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었다.


유곽 중 가장 비싼 곳으로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못 내는 곳이었다.


‘이곳이 마지막, 여기에서도 소득을 얻지 못하면 목상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는데······.’


신조는 절을 하는 여인을 바라보며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었다.


술상이 들어오자 여인이 두 사람에게 술을 한 잔 따라 주었다.


“이곳 주인 레이야라고 합니다. 혹 찾으시는 아이가 있는지요?”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고운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오! 안주인께서 직접 이렇게 맞이해 주니 황송하오이다. 목소리가 참 아름답소. 하하하. 우리는 그냥 술이나 한잔하려고 들어 왔으니 아무나 들여보내 주시오.”


옆에 앉아 있던 쥰세이가 입을 헤벌쭉 벌리고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뿌다!’


레이야가 술을 한 잔씩 따르며, 두 사람의 행색을 살폈다.


‘이들은 상인들이 아니다. 무사들일까? 아니면.’


“뭘 그렇게 유심히 훑어보시오. 우리는 먼 이요에서 온 사람들이오. 이번에 루손에 갔다가 좋은 물건을 가지고 와 교토의 귀부인들에게 팔아 한밑천 잡고 돌아가는 길이오. 남들이 행색을 알면 위험해서 이렇게 남루하게 변복한 것이니 너무 홀대하지 마시오. 하하하.”


“아, 네. 송구스럽습니다. 이곳은 꽤 부유한 상인들이나 무사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잠시 실례했습니다.”


닌자들은 여러 지방의 방언이나 습관들을 배우고 익혀 상대를 속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신조도 이요의 방언을 섞어 가며 조심스럽게 말을 뱉었다.


“참, 팔고 남은 것이 하나 있는데, 어디 보자···.”


신조가 주머니에서 유리구슬을 꺼내 레이야에게 건넸다.


“오, 정말 아름답습니다. 값이 꽤 나갈 것 같은데.”


‘휴, 눈치채지 못해 다행이다. 남만에서는 흔한 물건인 것을. 후후!’


레이야는 유리구슬을 들여다보며 연신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모습을 신조가 겸연쩍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참한 아이들을 들여보내겠습니다.”


미소를 함박 머금고는 밖에다 지시했다.


그런 신조의 모습을 보며, 쥰세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신조님. 그 유리구슬은 어디에서, 혹···.”


쥰세이가 캐묻다 신조의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기녀 두 사람이 들어 왔다.


곱게 화장한 두 사람은 무릎을 꿇어 인사를 했다.


레이야가 각각 신조와 쥰세이 옆으로 기녀들을 앉게 했다.


냉랭한 공기가 화롯불 때문이 아니라 기녀들로 인해 따스하게 변했다.


“그럼! 재미있게 노시다 가십시오.”


레이야가 목례하고 밖으로 물러났다.


신조가 두 사람의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유즈루와 코헤이로 열일곱 동갑내기 고향 친구였다.


“오라버니들 어디서 오셨나요? 이곳 교토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흠흠, 어디를 봐서······. 우리 교토사람이야. 물론 먹고 살기 위해 멀리 루손까지 돌아다니다 보니 행색이 이래서 그렇지.”


쥰세이가 목소리에 잔뜩 힘을 주고 으스댔다.


하지만 신조가 레이야에게 이요사람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을 기억 못하고 얼떨결에 교토사람이라고 말을 했다.


신조도 그런 사실을 모르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농을 했다.


“하하하, 자네 행색이 나는 촌놈이요 라고 쓰여 있는데 교토사람이라고 우길 텐가?”


신조가 쥰세이를 핀잔주듯 농으로 분위기를 띄우며 옆에 앉은 여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형님도 참. 스스로 촌놈이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런 곳에서는 교토사람 인척, 아니면 멋진 상인이나 무사처럼 행동해야죠. 크크.”


기녀들이 두 사람의 농이 재미있다며 팔에 딱 달라붙으며 아양을 떨었다.


보드랍게 스쳐 가는 손길과 몽글한 느낌에 신조가 긴장했다.


“자 한 잔씩 드세요. 너무 뻣뻣하게 있지 마시고요. 혹 이런 곳이 처음은 아니겠지요.”


“무, 무슨! 우리가 얼마나 여자들과 술을 좋아하는데······.”


쥰세이 보다 어른으로서 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눈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벌을 유혹하는 꽃 앞에 온몸이 달아올라 당황했다.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목석같이 얼어붙어 있는 쥰세이를 보며, 우습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했다.


경험이 있는 자신도 여인의 교태에 빠져드는 것을 겨우 진정하고 있는데 이제 겨우 열여섯인 쥰세이, 처음이라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은 당연한 듯했지만, 왠지 씁쓸했다.


“이봐! 한잔하세.”


신조가 쥰세이를 위해 술을 따라 주었다.


얼떨떨한 기분의 쥰세이가 술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풋!”


“아이씨! 뭐가 우스워······.”


“이런 곳은 처음인가 봐요. 이 오라버니 넘 귀엽다. 호호호. 자, 제 술도 한 잔 받으세요.”


그렇게 네 사람은 술을 주고받으면서 루손 이야기를 시작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조는 가보지도 않은 루손이며, 이요국에 대해 능청스럽게 풀어 놓았다.


점점 방 안 분위기는 술기운으로 황홀해져 갔다.


‘음, 여기 온 목적을 잃어버리겠어. ······여인의 향기에 취해 주색에 빠지는 이유를 알겠군.’


신조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 물을 한 잔 들이켰다.


“유즈루, 요즘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안주로 삼는가?”


“그야, 관백 전하의 동생 히데나가공의 죽음이지요. 모두들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도 대덕사에서 치러진 장례식을 보면서 신불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는걸요.”


“그래? 하긴 정말 아까운 분이 돌아가셨지. 그런데 세상 소문이 병환으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는 소문도 있던데. 여기에 대해서는 말이 없던가?”


“어머!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물론 그렇게 의심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랫동안 병치레로 몸이 약해진데다가 많은 정무를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고도 해요.”


유즈루가 문 쪽으로 힐끔 바라다보고는 조용하게 말했다.


“음.”


“관백 전하가 몹시 절망하셨다고 해요. 내정을 잘 보살피고 나라의 평화를 도모하셨는데, 흐흑.”


쥰세이 옆에 앉아 있던 코헤이가 말을 하다 흐느꼈다.


그만큼 히데나가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큰 아픔이요 슬픔이었다.


“히데나가공도 가고 곧 리큐 거사님도 할복할 것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니 큰일이야. 큰일······.”


쥰세이가 신조와 눈을 마주치고는 여인들을 살폈다.


리큐 거사란 말에 유즈루와 코헤이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런 모습을 본 신조가 얼른 말을 받았다.


“그러게나. 리큐 거사님은 다도를 통해 무인들을 교화시키고 계신 분인데, 안타깝군. 내가 힘이 있다면, 리큐 거사님을 멀리 루손으로 피신시켜 드리고 싶어.”


신조에게 술을 따라 주는 유즈루의 눈이 슬펐다.


“리큐 거사님까지 죽게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두 걱정해요.”


“허허, 그러게, 말이야. 대덕사에 목상을 안치해서 관백 전하가 노했다고 하더군.”


이번에는 쥰세이가 바깥의 눈치를 보며 누가 들으면 어떻게 할 거냐는 표정을 지었다.


“대덕사 스님께서 고마운 마음에 목상을 안치했다고 하는데 뭐가 그렇게 큰 죄일까요. 살아 있는 신불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위해 신사를 짓는 다이묘도 있는데······.”


코헤이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면서도, 할 말을 했다.


“어허!”


쥰세이가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호호호, 이 오라버니는 겁이 많으시네요. 여자의 치마폭에서는 천왕도 욕해요. 혹 행정청에서 나오신 것은 아니죠?”


두 사람에 대해 긴장이 풀렸는지 유즈루가 경계하듯 농으로 한마디 던졌다.


“하하하, 그렇지. 그래······. 세상살이 비밀이 어디 있겠나. 이런 곳에서라도 속 시원히 험담을 할 수 있어야 세상이 태평한 거야. 그래서 말인데······.”


신조가 웃다가 정색하고 얼굴을 유즈루에게 가까이 들이밀었다.


“리큐 거사님은 화려하고 형식적인 것을 싫어하시기에 직접 목상을 안치하지 않았을 거야? 목상은 도대체 누가 깎았을까? 내가 가서 보았는데 둥글넓적한 얼굴이 너구리를 닮았는데 말이야.”


옆에서 술을 마시다 신조의 말에 귀를 기울인 쥰세이,


“아, 누가 만들기는요. 솜씨가 제일 좋은 기술자가 만들었겠죠. 그래도 천왕에게서 리큐 거사라는 칭호를 받은 분인데.”


“호호호, 맞아요. 목재상 거리의 최고 기술자가 만들었다고···. 흡.”


유즈루가 말을 하다 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 모습을 본 신조와 쥰세이의 눈이 동시에 빛났다.


“지난해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도 둥글넓적한 얼굴인데 그 기술자에게 부탁해서 목상 하나 만들어서 절에 모셔야겠어. 요즘 꿈이 뒤숭숭해서 말이야. 그 기술자 좀 소개해 주시게?”


신조가 능글스럽게 말을 하며 기녀들의 얼굴을 살폈다.


유즈루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신조의 눈길을 피하며 그녀는 쥰세이 옆에 있는 동료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하고는 술잔을 입에 갔다 대었다.


신조의 눈에 유즈루의 손이 조금 떨리는 것이 보였다.


“왜? 그 기술자 이름을 모르는가? 아니면 가게 이름이라도 알려주게.”


“저, 그, 그게······. 저희도 잘 모릅니다. 그냥 추측으로 목재상 거리의 최고 기술자가 만들지 않았을까 여겨 말해 본 것입니다. 워낙 그 목상이 잘 만들어져서······.”


코헤이가 유즈루를 보며, 겨우 말을 했다. 너무 당황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하하, 난 또······, 잘 알고 있는 줄 알았더니, 할아버지께서 서운해하시겠어. 쩝! 그런데······, 유즈루!”


신조가 나긋한 목소리로 유즈루를 불렀다.


멀리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던 그녀가 신조의 부름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동그란 눈동자가 떨고 있었다.


“우리는 무서운 사람들이야.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지. 어떤가? 오늘 우리 목이 붙어 있을 것 같은가?”


“네? 무, 무슨 말씀인지······?”


“후후, 그 기술자가 누구인가? 모두가 쉬쉬하는 것이 무슨 곡절이 있는 게 분명해. 안 그런가?”


“맞습니다. 우리가 거사님을 구하든지 해야지 이러다 큰일 날 것만 같습니다.”


쥰세이가 신조의 말을 얼른 받았다.


신조가 제법인데 하는 표정으로 두 기녀를 향해 엄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리큐 거사의 목이 떨어지기 전에 우리 목이 먼저 떨어질 수도 있겠지. 그대들 목도 마찬가지. ······우리 목도 붙어 있고 리큐 거사님의 목도 무사할 수 있는 기회라네.”


“······.”


두 여인이 서로 눈치만 볼 뿐 몸을 움츠리고는 말을 못 했다.


“여러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야! 어서 말해 보게.”


신조가 친 오라버니처럼 부드럽게 말했다.


유즈루와 코헤이가 몹시 몸을 떨며, 눈을 다다미 바닥에 떨구었다.


“······.”


“어서!”


움츠러든 그녀들을 향해 신조가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일갈했다.


그러자 유즈루가 힐끔 코헤이의 눈치를 보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저···, 그게···.”


“유즈루!”


쥰세이 옆에 앉은 코헤이가 자신의 무릎을 쳤다.


유즈루가 말을 하려다 놀라 코헤이를 쳐다보았다.


“허허, 자네들은 리큐 거사님이 죽기를 바라는군.”


신조가 혀를 차며, 헝겊에 싸여 있던 단검을 조용히 꺼냈다.


“리큐 거사님의 목숨을 건지지 못할 바에야 관백 전하를 암살할 수밖에, 그런데 말이야. 오늘 이 자리에서 이 말을 들은 자는 다 죽어야 해.”


두 기생은 신조의 말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는 벌벌 떨었다.


“우, 우리는 잘, 잘 모릅니다. 그냥 소, 소문에 그 목상을 마, 만든 기술자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만 들었습니다.”


유즈루가 코헤이의 눈치를 보며 말을 더듬었다.


코헤이도 포기를 했는지 유즈루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가 등잔불에 빛났다.


신조와 쥰세이는 속으로 숨을 몰래 뱉어내며 겉으로 담담한 척했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다.


닌자의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사라진 것은 곧 죽음, 문제는 누가 기술자를 죽였느냐 하는 것이다.


“리큐 거사님의 목상이 안치되었다는 소문이 나자 바로 사라졌겠지. 물론 죽임을 당했을 거야. 안 그런가?”


신조는 약간 짓궂은 눈길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유즈루와 코헤이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하지 못했다.


서로 미루는 눈치였다.


“리큐 거사님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이번이 마지막이야. 곧 관백 전하가 할복을 명 할 거야. 그 전에 손을 써야 해. 자! 어서.”


“······.”


신조는 더 이상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두 여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압박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람들은 반대로 행동하거나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술로 달아올랐던 방 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코헤이가 유즈루를 한 번 쳐다보고는 침을 꼴깍 삼켰다.


“사, 사실은 기술자가 이곳에 술을 마시러 왔었습니다. 연거푸 술을 마셔서 잔뜩 취해서는 자신 때문에 리큐 거사님이 죽게 생겼다면서 울먹였습니다. 무엇 때문이냐고 물어도 술만 퍼마셨습니다. 제가 겨우 달래서 물었는데, 그게······.”


어렵사리 말을 꺼낸 코헤이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다다미 바닥을 보고만 있었다.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


신조는 온몸이 경직되어 떨고 있는 코헤이를 바라보았다.


쥰세이가 그녀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가만히 포개었다.


코헤이가 고개를 들어 쥰세이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숙였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어, 어느 날 밤에 잠을 자는데 누군가 몰래 자신의 집으로 숨어 들어와 목상을 의뢰했다는 것입니다.”


눈물 때문에 코가 막히는지 잠시 술잔을 한 잔 들이켜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자가 황금 한 장을 주면서 얼굴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주었는데, 좋은 일로 목상을 안치하고 싶지만, 얼굴이 알려지는 것은 싫다고 했답니다. 그 얼굴이 리큐 거사님인 줄 모르고 목상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흐느껴 울다가 술이 만취해서는 쓰러져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모깃소리만 한 목소리가 점점 안정을 찾았는지 조용조용하게 말을 했다.


말을 마친 코헤이가 신조와 쥰세이를 둘러보고 유즈루와 눈빛을 교환했다.


“그 기술자는 왜 사라졌을까?”


“·····그게, 목상이 리큐 거사님이라는 소문이 돌고 난 뒤 행정청에서 조사가 나왔다고 합니다. 아마 무서워서 도망을 갔거나···, 목상을 의뢰한 자가······.”


코헤이가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진정시키며 말했다.


“행정청에서 조사했다고······. 그런데 왜 사람들이 쉬쉬하는가?”


“그, 그것은 기술자가 사라져 자신들의 목숨도 아까웠고 또 그 이후 행정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그 기술자와 목상에 대해 언급을 못 하도록 조처했다고 했습니다.”


“젠장! 그래서 모두가 우리를 피했던 거야. 그럼 그 기술자 이름은?”


코헤이는 얼굴이 하얗게 사색이 되어 유즈루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그것만은 묻지 말아 주십시오. 자, 잘못··· 하다가는 저희 목숨이······.”


“그런가? 말하지 않으면, 이 칼에 목이 먼저 떨어질 텐데.”


코헤이가 이미 무릎걸음으로 뒤로 물러나 있는 유즈루 옆으로 가서 고개를 숙이며, 흐느꼈다.


쥰세이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바깥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어떤가? 리큐 거사님을 살리는 길이 자네들의 목숨보다 귀하지 않을까? 물론 미안하네만, 삶이 그렇지 않은가? 혹 아나? 귀한 생명들이니 다른 곳에서 꽃필지······.”


“······, 무, 무슨 말씀인지······.”


유즈루와 코헤이가 동시에 숙였던 고개를 들고 신조를 바라보았다.


신조가 무엇인가 결심했는지 쥰세이에게 눈짓했다.


쥰세이가 방을 나가 한 쪽 귀는 밖으로, 다른 쪽 귀는 방안으로 향하며 복도를 왔다 갔다 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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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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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조선의 바다 1 22.06.18 50 0 10쪽
79 통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2 22.06.17 52 0 10쪽
78 통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1 22.06.17 55 0 9쪽
77 풍전등화 2 22.06.16 55 0 9쪽
76 풍전등화 1 22.06.16 54 0 10쪽
75 비싼 목숨 값 22.06.15 56 0 10쪽
74 산적 무리들 3 22.06.15 54 0 14쪽
73 산적 무리들 2 22.06.14 50 0 14쪽
72 산적 무리들 1 22.06.14 55 0 12쪽
71 어머니의 유품 22.06.13 51 0 10쪽
70 도망자 22.06.13 57 0 11쪽
69 미치나오를 죽이다 22.06.12 54 0 10쪽
68 어머니의 죽음 22.06.12 56 0 10쪽
67 출생의 비밀 22.06.11 77 0 10쪽
66 함께 살자 22.06.11 50 0 10쪽
65 무너진 계획 22.06.10 52 0 10쪽
64 여동생 22.06.10 55 0 10쪽
63 카에데 부인 22.06.09 51 0 13쪽
62 가시마성 2 22.06.08 57 0 10쪽
61 가시마성 1 22.06.08 59 0 11쪽
60 조선 도공들 2 22.06.07 59 0 11쪽
59 조선 도공들 1 22.06.07 54 0 12쪽
58 왕년의 해적들 2 22.06.06 55 0 9쪽
57 왕년의 해적들 1 22.06.06 73 0 13쪽
56 구루시마의 의심 22.06.05 54 0 11쪽
55 료우타의 검술 22.06.05 55 0 10쪽
54 숨은 실력자 타이요우 22.06.04 55 0 9쪽
53 조선 침략의 전초 기지 22.06.04 59 2 13쪽
52 기억에 없는 기억들 2 22.06.03 55 0 9쪽
51 기억에 없는 기억들 1 22.06.03 63 0 12쪽
50 남만인 배 글로벌호 2 22.06.02 57 0 11쪽
49 남만인 배 글로벌호 1 22.06.02 64 0 12쪽
48 과거에서 온 추적자들 22.06.01 68 0 13쪽
47 스스무의 회상 22.05.31 71 0 13쪽
46 하이난 3 22.05.30 67 0 16쪽
45 하이난 2 22.05.29 102 0 22쪽
44 하이난 1 22.05.28 64 0 20쪽
43 꽃을 찾는 벌 22.05.27 73 0 22쪽
42 벌을 찾는 꽃 22.05.26 71 0 25쪽
41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5 22.05.25 75 0 18쪽
40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4 22.05.24 68 0 17쪽
39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3 22.05.23 77 0 19쪽
38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2 22.05.22 71 0 19쪽
37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1 22.05.21 70 0 22쪽
36 순정 2 22.05.20 73 0 22쪽
35 순정 1 22.05.19 79 0 22쪽
34 토끼 사냥 22.05.18 84 0 25쪽
33 오마찌 칸의 죽음 22.05.17 75 0 20쪽
32 불타는 오마찌 별채 22.05.16 83 0 19쪽
31 고가 닌자 마리지천 22.05.15 102 0 25쪽
30 함정 22.05.14 83 0 27쪽
29 암살자를 막아라 2 22.05.13 86 0 26쪽
28 암살자를 막아라 1 22.05.12 85 0 25쪽
27 적진 속으로 22.05.11 91 0 23쪽
26 죠유지와의 재대결 22.05.10 87 0 25쪽
25 카오루 부인 22.05.09 104 0 22쪽
24 히데츠구의 의심 22.05.08 115 0 24쪽
23 이가분지 2 22.05.07 95 0 16쪽
22 이가 분지 1 +2 22.05.06 97 1 19쪽
21 반항아와의 만남 +2 22.05.05 92 2 19쪽
20 여인들 +2 22.05.04 93 1 21쪽
19 산적 사이가 +2 22.05.03 85 1 25쪽
18 이가 닌자 간스케와 고에몬 +3 22.05.02 89 2 26쪽
17 기억의 저편에서 온 자들 +1 22.05.01 103 1 21쪽
16 유곽 아이루 +2 22.04.30 92 1 22쪽
15 닌자검 +2 22.04.29 95 1 22쪽
14 닌자되다 6 +1 22.04.28 100 1 26쪽
13 닌자되다 5 +2 22.04.27 104 2 25쪽
12 닌자되다 4 +2 22.04.26 110 1 24쪽
» 닌자되다 3 +2 22.04.25 123 1 25쪽
10 닌자되다 2 +2 22.04.23 121 1 23쪽
9 닌자되다 1 +4 22.04.22 159 1 25쪽
8 올빼미섬 7 +2 22.04.21 208 1 30쪽
7 올빼미섬 6 22.04.20 215 1 25쪽
6 올빼미섬 5 +2 22.04.19 200 1 28쪽
5 올빼미섬 4 +2 22.04.18 215 1 28쪽
4 올빼미섬 3 22.04.16 236 2 29쪽
3 올빼미섬 2 +3 22.04.15 284 1 27쪽
2 올빼미섬 1 +4 22.04.14 433 3 29쪽
1 안개 속 검은 그림자 +8 22.04.13 1,060 3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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