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한림동인

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한림팔기장
작품등록일 :
2022.04.13 12:33
최근연재일 :
2022.08.02 09:00
연재수 :
170 회
조회수 :
14,126
추천수 :
32
글자수 :
1,064,608

작성
22.05.19 12:00
조회
76
추천
0
글자
22쪽

순정 1

역사는 반복된다.




DUMMY

사냥터에서 돌아온 관백이 조카인 히데츠구를 양자로 들이고는 12월에 자신의 자리인 관백을 물려주고 태합 자리에 올랐다.


히데요시가 관백에서 물러났지만, 태합의 자리에서 실질적인 최고의 권력을 누리며, 히데츠구를 뒤에서 움직였다.


주라쿠성까지 히데츠구에게 물려주고 오사카성으로 가 명나라 정벌을 독려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관백이라고 하지만 군사와 외교, 다이묘들에 대한 명령권은 태합이 된 히데요시가 가지고 있었기에 히데츠구는 이름뿐인 관백이었다.


지난여름 오와리로 매사냥을 가기 전,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위해 내년 2월까지 히젠에 나고야성 축성을 명령했다.


그 완공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


대부분의 전국 다이묘들이 할당받은 작업량을 채우기 위해 자신들의 영지에서 수백의 백성들을 데리고 왔으며, 다른 다이묘와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 누가 더 큰 바위를 가져오는지, 누가 더 빨리 책임량을 채우는지 눈치를 보며 경쟁했다.


오사카성을 쌓을 때보다 더 치열한 경쟁이었다.


전쟁에 앞서 만드는 성채이기에 다이묘들은 태합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나고야성을 축성하는데 들어가는 인건비와 자재비용은 물론 명나라 정벌을 위한 군사들의 무기와 군량미, 그리고 바다를 건널 배를 자신들의 재물로 채워야 했기에 가지고 있던 금은과 각종 보화, 그리고 땅까지 팔아 가며, 성 축성 비용과 전쟁 비용을 감당했다.


히데요시가 명나라와 조선을 정벌하여 땅을 나눠 준다는 구실로 다이묘들이 앞다퉈 경쟁하게 만든 것이다.


재물이나 금은보화가 부족한 다이묘들은 사카이 등의 거상들에게 자금을 빌렸다.


서슬 퍼런 히데요시의 눈 밖에 나거나, 잘못 불만을 토로했다가 누가 고발이라도 하면, 모든 영지를 몰수당하거나 죽음으로 대신해야 하기에 적극적으로 충성을 다짐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앞장을 설 수밖에 없었다.


충성 경쟁이 과하여 무리하게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부상자가 속출했으며, 또 수많은 사람이 좋지 못한 환경에서 모여 일하다 보니 돌림병이 창궐하여 시체 더미가 산을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충성 경쟁 속에도 불안감이 자라나고 있었다.


다이묘들은 자신들의 재산 탕진과 과도한 책무, 그리고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타국에서의 전쟁에 대한 불안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불만과 원망이 새싹처럼 자라나 죽순이 올라가듯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고 있었다.


견디다 못한 세력 중 부역과 어려운 환경에 반발하여 봉기도 하였지만, 나고야성은 축성을 시작한 지 여덟 달 만에 거의 완공이 되어 가고 있었다.


습지와 늪으로 이루어져 쓸모없던 땅에 단지 조선과 가깝고 수천의 배를 정박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수개월 만에 거대한 성과 도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히데요시의 미치광이 놀음과 이에 충성 경쟁을 한 다이묘들 때문에 가능하였다.



한해의 마지막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새해 인사차 새 관백 히데츠구를 알현한 다카도라 성주는 며칠 교토의 저택에서 머물게 되었고, 칸베에가 교토에서 코카와성으로 돌아온다는 연락이 왔다.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정원에 나와 산책하고 있던 료우타 앞으로 유키가 걸어왔다.


“료우타님, 무슨 생각을 찬바람을 맞으면서 하고 계세요?”


“오, 유키히메님. 오랜만입니다. 요즘은 바쁘신가 봅니다. 하루도 안 빠지고 불던 바람이 근래에 조용하군요.”


“그야, 그 바람이 들어갈 틈 하나 없는 목석이 미워서 다른 곳으로 바람이 불고 있답니다. 호호.”


“다른 곳으로···. 그렇군요. 훈풍이 될 거라 믿습니다.”


유키는 가벼운 농을 주고받은 뒤 료우타에게 혀를 날름 내밀고는 정원을 지나 내전이 있는 건물로 사라졌다.


해가 서서히 기울자 날이 점점 더 추워졌다.


유키가 나온 건물에서 타이요우가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비실비실 웃으며, 나왔다.


“어? 료우타!”


정원 연못 앞에 서 있는 료우타와 눈이 마주치자 놀라며, 정색했다.


“타이요우님,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봅니다.”


“좋은 일은···. 넌 재수 없어. 나의 앞길을 막지 말고 비켜.”


퉁명스럽게 말을 하고는 료우타를 밀치며, 자신의 숙소가 있는 건물로 걸어갔다.


‘유키와 같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무슨 꿍꿍이로 유키에게 접근하는 걸까? 설마······.’


타이요우가 사라진 건물을 보며 눈에 근심이 가득했다.


툇마루를 올라 마루를 불만 가득 실은 걸음으로 쿵쾅거리며, 걸어가던 타이요우가 료우타를 힐끗 쳐다보았다.


‘저 녀석 때문에 되는 게 없어. 라나와 잘 되려고 하는데 느닷없이 나타나 혼을 빼놓더니, 출세 좀 해 보려고 여기 들어 왔는데, 칸베에 부관님은 저 녀석만 좋아하고. 어휴, 정말 원수가 따로 없지. 오슈 반란군을 무찔러 공을 세워 무사로 출세하고 싶었는데, 젠장. 저놈이 공을 가로채 버렸어. 내가 이대로 물러날 줄 아나 본데, 네 놈이 오슈에 가 있는 동안 난···.’


“크크크.”


타이요우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웃었다.


‘그녀도 네 놈을 좋아하는 거 다 알지만, 그럴수록 내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어. 두고 봐! 그녀도 라나 때문에 속상해하더군. 그녀의 질투심을 잘 활용하면···. 후후후. 내 꼭 이루리라.’


“크크크.”


무엇이 즐거운지 타이요우가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섣달그믐을 앞두고 칸베에가 카오루 부인과 함께 성으로 돌아왔다.


“료우타, 앞으로 히데츠구 전하를 주군으로 모시게 되었다네.”


“네? 히데야스공은 어떻게 합니까?”


“히데츠구공이 관백 전하가 되면서 전국의 안전과 행정을 맡아 일하려면 자기 사람이 필요하여 동생인 히데야스공에게 양해를 구했어.”


칸베에가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실은 오슈에서 성주님과 관백 전하 간에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졌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성주님의 재빠른 상황 인식과 특별히 히데나가공의 유언으로 자네들을 활용하기 위해 그렇게 하기로 내부적으로 합의를 한 거 같은데, 뜻밖에 태합 전하가 관백 자리를 물려주어 쉽게 이루어졌다네. 그 정도만 알고 있게나.”


“네, 알겠습니다. 저야 어떻게 되던 충성으로 성주님을 보필하겠습니다······.”


“하하하. 아, 그리고 수도권에서 닌자들 간의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더군.”


순간 놀란 료우타가 침을 꼴깍 삼키며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처럼 했다.


“하하하, 시치미를 뚝 떼고 있구만! 전쟁의 소용돌이에 수도권이 혼란으로 들어가고 있어. 하지만 태합 전하의 지시로 수도권 경비가 강화될 거야. 함부로 무기나 위험한 도구를 가지고 다니면 위험해. 앞으로 닌자들의 활동도 위축될 거고. 그러면 그대들의 수고도 좀 들겠지.”


칸베에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넌지시 료우타를 넘겨보며 웃었다.


집무실을 나온 료우타는 추위도 이기도 복잡한 마음도 다잡기 위해 무예수련을 하려고 수련장으로 가다가, 발걸음을 돌려 무기고로 가 언월도를 들고나왔다.


산 위에서 눈 회오리를 일으키며 매섭게 바람이 불어왔지만, 해가 저물도록 올 한해의 액운과 불운을 지우고자 언월도를 휘둘렀다.


세상의 모든 것이 눈으로 뒤덮이고, 얼음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지만, 수련장의 뜨거운 열기로 료우타의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렸고 얼었던 마당이 료우타의 발놀림에 녹아 질퍽하게 되었다.


늦도록 수련하는 중에 센이 창을 들고 와 대련을 요청하여, 한바탕 놀았다.


센의 실력이 많이 향상되어 제법 두 사람이 겨루기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센이 반 시진을 함께 하다 돌아갔다.


그래도 몸이 다 풀리지 않은 료우타가 자신의 칼을 들고 검술을 시현했다.


하얀 김이 온몸에서 뿜어 나와 연기처럼 하늘로 올라갔다.


수련을 마치고 서쪽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 붉은 기운이 드리웠다.


숙소로 돌아와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 목욕하고 있는데, 카오루 부인의 전갈이 왔다.


내전에서 저녁 식사 자리가 마련되어 성에 있는 고관들과 무사들이 초대되었다.


목욕 후 옷을 정갈하게 입고 내전으로 갔다.


한 해의 마지막을 주요 인물들을 모아 저녁을 대접하는 자리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사흘 전에 교토에서 돌아왔을 때 인사를 드린 후 보지 못했지만, 카오루 부인은 시녀를 통해 그의 일과를 보고 받고 있었다.


부인의 거실 앞에 서자 시녀들이 장지문을 열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멀뚱히 쳐다보다 부인의 손짓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입술을 꾹 다물고 문지방을 넘어 들어갔다.


부인이 거실의 가운데 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 유키와 다카도라의 측실 미미, 우에쓰키의 정부인, 칸베에의 부인이 반대편으로, 여러 중신과 칸베에, 성주 동생과 그 부인이 마주 앉아 있었다.


제일 아래쪽으로 가 앉았다.


료우타가 들어가자 모두 의외라는 듯 바라보았다.


새해의 덕담과 명나라 정벌에서의 무사함을 기원하고는 식사를 했다.


카오루 부인은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새해 선물로 비단 한 필을 주었다.


그녀의 화려한 옷차림과 매무새는 뭇 남성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검은 이를 드러내며, 이마 멀찍이 그려진 눈썹으로 활짝 웃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이상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지만, 다른 고관 부인들도 마찬가지라 별난 치장이라 여기며 웃음을 참았다.


반 시진에 걸쳐 식사가 끝나자 시녀들이 그릇들을 가져 나가고 다과와 술이 들어왔다.


카오루 부인이 첫 잔을 직접 돌아가며, 술을 따라 주었다.


료우타 앞에 온 그녀는 술병을 들고 한쪽 다리만 무릎을 바닥에 대고는 료우타가 든 술잔에 술을 부었는데, 살짝 그녀의 평상복 아랫부분이 벌려졌다가 덮였다.


무릎을 꿇고 술잔을 받던 료우타가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그곳으로 향하자 당황하여 얼른 시선을 거두며 고개를 들었다.


부인과 눈이 마주치자 술기운이 돌기도 전에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앞으로 있을 전쟁 준비를 잘해 주시길 바래요. 특히 성주님께서 새 관백 전하의 측근이 되셨으니, 여러 중신과 가신들께서 좀 더 분발해서 성주님의 업적에 누가 되지 않도록 힘써 주세요.”


카오루 부인의 말이 계속 이어질 동안 중신들과 참여한 사람들은 크게 대답하며, 경청했다.


술과 다과를 곁들인 자리가 한 시진쯤 지나자 칸베에와 관료들이 그들 부인과 함께 돌아갔다.


반에 반 시진을 같이 있던 측실 미미도 유키와 같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찬 기운을 막기 위해 방한용 천이나 병풍으로 창문을 막고 있었지만, 한겨울의 냉기가 방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한 잔 더 하게.”


“아닙니다. 소인도 그만 물어 가겠습니다.”


“잠깐, 오래 앉아 있었더니 다리가 영 불편한데, 좀 주물러 주게나.”


료우타가 카오루 부인의 얼굴을 보다, 고개를 숙이고는 잠시 망설였다.


부인은 술기운이 올라왔는지 하얗게 드러난 목과 뺨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사방침에 몸을 기대고 다리를 쭉 뻗고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료우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술에 취해 그런 것인지 료우타를 바라보는 눈길이 야했다.


마지못해 부인 곁으로 다가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는 쭈뼛쭈뼛 다리를 주물렀다.


“좀 더 시원하게 주물러 줘요.”


야릇한 말을 하며 눈을 지그시 감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좀 더 강하게 다리를 주무르며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나의 존재······! 한낮 노리개 신세란 말인가?’


눈을 감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올라오는 굴욕감을 누르고 있는데, 라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지금 교토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제 몇 개월 후면 성주의 측실이 되어야 하는 그녀, 그녀가 보고 싶다······.’


그녀와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니 아픔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료우타! ······딴생각하고 있나 본데,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어. ···자, 이쪽 다리도 주물러 줘요.”


라나 생각에 두 손이 카오루 부인의 다리를 잡고 멈춘 것을 그녀가 료우타의 생각을 읽었는지 뼈 있는 말을 했다.


흠칫 놀라 다시 부인의 다른 다리를 주무르려고 보니 맨다리였다.


비단옷 깃을 옆으로 제쳐,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있었다.


삼십 대 초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싱싱하고 매혹적인 다리였다.


머뭇거리는 그를 보며, 부인은 검은 이를 드러내며 묘한 웃음으로 즐기고 있었다.


“뭐 하는가?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가슴 저 아래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을 느꼈다.


부인에 대한 분노인지, 아니면 수치심인지, 그도 아니면 욕정인지도 모를 뜨거움이 그의 얼굴까지 후끈하게 만들었다.


그런 료우타를 보며 즐기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부인이 그의 윗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마, 마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가만히 있어. 넌 어차피 도도가의 재물일 뿐이야. 특히 닌자는, 주인의 처분에 순응하면 되는 거지. 금덩어리? 필요한 만큼 주지. 라나가 자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나. 그녀도 성주님의 노리개일 뿐이야.”


“이러지 마십시오. 저는 한낱 재물이 아닙니다. 금덩어리에 몸을 파는 자가 아닙니다.”


윗옷을 반쯤 벗기고 료우타의 가슴을 어루만지려는 부인을 노려보며, 뒤로 약간 물러나 두 손으로 옷을 꽉 쥐고는 벗겨진 상위를 추슬렀다.


“네가 이르면 너의 무리에게 좋지 않을 거야. 특히 라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도 장담 못해. 어때, 그래도 반항할 건가?”


입꼬리를 올린 부인의 시커먼 입에서 라나의 이름이 나오자 겨울바람이 살을 에는 강둑에 홀로 서 있듯이 얼어붙어 버렸다.


“여기, 목욕물 데웠지?”


목욕물을 준비한 시녀를 돌려보낸 그녀는 료우타를 데리고 목욕탕으로 들어가 그의 상의를 벗기고 바지의 허리끈마저 풀었다.


멍한 상태로 부인의 손길에 몸을 내맡겼다.


아니 포기였다.


정신이 나갔는지 아니면 체념했는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바지가 흘러내리자, 곧 속옷까지 다 벗겨졌다.


“오, 이런, 아주 멋져, 아주!”


부드러운 부인의 손길에 아랫도리가 뻣뻣해져 왔다.


그제야 지금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를 깨닫고는 수치심으로 온몸을 떨었다.


단단하고 우람하게 빛나는 료우타의 몸에 감탄하며, 자신의 옷고름을 풀었다.


형용할 수 없는 육체가 따스한 김 사이로 뽀얗게 드러났다.


눈길을 차마 두지 못해 옆으로 돌렸다.


속으로 울음이 터졌다.


입술을 깨물었는지 입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먼저 욕조로 들어간 부인은 료우타의 손을 잡아당겼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그는 부인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그의 언 몸을 녹이는 것이 욕조의 따뜻한 물인지, 부인의 손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방으로 돌아오니 이미 이부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손길에 이끌리어 이불 속으로 몸을 뉘었다.


아직 여자 경험이 없는 료우타는 수치심과 두려움, 그리고 라나에 대한 미안함이 섞여 천장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노련한 부인의 손길이 그의 몸에 닿을 때마다 움찔거렸다.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생각과는 달리 몸은 뜨거움으로 주체할 수 없을 무아의 세계로 달려가고 있었다.


긴 호흡법과 단전으로 몸을 다잡아 보려 해도 꽃다운 청춘은 아름다운 손길에 춤을 추었다.


그런 자신을 보며, 수치심으로 눈물을 흘렸다.



밤새 괴로운 듯 몸을 뒤척이다 깜박 잠이 들었다.


둘은 함께 꽃이 만발한 길을 걸었다.


꽃향기에 취한 벌들이 윙윙거리며, 들꽃 속을 왕래하고 있었고, 이를 시기하듯 하얀 나비가 내려와 살포시 꽃에 앉았다.


나비를 시샘하듯 그는 들꽃들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 그녀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를 빙긋 바라보는 그녀, 활짝 핀 목련 같은 그녀가 살포시 다가와 입술에 입을 맞춰 감사의 표시를 했다.


라나였다.


아니 그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는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카오루 부인이 웃으며, 그를 보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두 팔을 휘저으며, 눈을 떴다.


‘휴, 꿈이었구나. 그런데 여기가······.’


어둠 속에서 주변을 둘러보던 그가 옆에 잠들어 있는 카오루 부인을 보고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인의 다리가 허리에 올라와 짓누르고 있었다.


살며시 부인의 다리를 내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밤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놀람과 부끄러움, 그리고 모멸감이 온몸으로 엄습했다.


주섬주섬 옷들을 챙겼다.


방안 여기저기에 그녀의 욕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갑자기 온몸의 피가 역류하듯 몸이 떨려왔다.


부인을 바라보던 고개를 획 돌리고는 옷을 대충 챙겨 입고 후다닥 방을 나왔다.


쌓여 있던 눈이 바람에 휘날리는 내전 건물을 나와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활과 칼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긴 겨울밤의 끝이 어디인지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온 세상은 어둠으로 짙게 깔려 있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차갑고 매서웠다.


외성으로 나온 그는 마구간이 있는 건물로 가 마부를 깨웠다.


준요시가 부스스한 눈으로 료우타를 보고는 말은 못 하고 짜증 나는 얼굴로 일어나 아카쿠마를 데려다주었다.


“한밤중에 웬 찌랄 이야! 백없는 사람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멀리 마구간을 나가는 료우타를 보며 주먹을 날렸다.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말을 몰고 나오는 료우타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오사카에 급한 용무가 있어서요.”


병사들이 성문을 열어 주자 밖으로 나온 그가 아카쿠마에 올라타고 강변길을 거슬러 예전 촌장과 함께 다카도라를 따라 나라에 있는 고리야마성으로 갔던 길을 달렸다.


강에서 불어오는 얼음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아카쿠마와 함께 바람처럼 어둠을 뚫고 달리는 그를 동쪽 산 능선에 걸린 초승달이 따라왔다.


얼마를 달리자 라나와 함께 넘어왔던 아마미 고갯길이 보여 사이가를 찾아갈까 고민하다 그냥 강변을 따라 계속 달렸다.


점점 추위가 심해졌다.


하시모토시를 지날 즈음 동쪽 하늘에서 어스름이 가시며 밝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살을 에는 산바람을 맞으며 쉬지를 않고 아카쿠마를 채근했다.


녀석은 반항아 시절을 잊어버렸는지 주인의 말을 잘 듣는 애마가 되어 쏜살같이 달려갔다.


아침햇살이 북쪽으로 달려가는 둘의 언 몸을 녹이고 있었다.


아니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아카쿠마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인의 고삐에 반응하며 속도를 늦추었다.


고리야마성을 지나가는 료우타의 모습은 하룻밤 사이에 바보가 된 것처럼 멍한 얼굴이었다.


지난밤의 일부터 모든 것을 잊으려고 말을 타고 달렸지만, 쉬이 생각들이 지워지지 않고 그를 괴롭혔다.


자신의 과거와 근래에 일어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눈물이 핑 돌며 차가운 뺨으로 흘러내렸다.


파발마처럼 달리다 이제는 걸음보다 더 늦은 속도로 요도 상류에서 강을 따라 내려갔다.


벌써 해가 머리를 지나고 있었지만,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둘은 겨우 나루터 여각으로 들어가 배고픔을 해결했다.


요도강 하류로 가는 화물들이 나루에 가득 쌓여 있었고 그 옆으로 강이 풀리면 떠내려 보낼 목재들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무작정 달리고 달려 온 곳이 처음 가는 길인데도 그 길이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인지 아닌지 관심이 없었다.


그냥 달리고 달려 작금의 현실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사케 한 잔을 마시자 온몸이 따뜻해지며 정신도 돌아오고 있었다.


얼음이 언 강을 보며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하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술기운이라도 빌리고 싶었으나, 낯선 곳이라 두 잔만 입에 대고 밖으로 나왔다.


먹이를 충분히 먹었는지 아카쿠마가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말 위에 올라탔다.


갈림길에서 아카쿠마가 가지를 못하고 맴돌았다.


자신의 등에서 주인이 어디를 갈지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었기에 답답한 듯 머리를 흔들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방향을 정한 듯 말고삐를 낚아 챘다.


요도강을 따라 내려가다 어느새 가모강 강변길을 올라갔다.


교토의 오미야거리를 따라 붉은 햇살을 등지고 북쪽으로 달려 오미야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아카쿠마가 걸음을 늦추었다.


눈앞에 다카도라 성주의 저택이 있었다.


쉬지 않고 달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묻어났다.


요도강 상류에서 방황하던 아카쿠마를 요도강 하류로 몰아 도착한 곳이 라나가 있는 교토였다.


하류도 달릴 때만 해도 그냥 강을 따라 막연하게 오사카로 가고자 했는데, 언제부터 방향을 교토로 향했는지 기억이 없었다.


자신이 왜 여기로 왔는지를 생각하며 물끄러미 저택을 바라보았다.


매서운 바람이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싸늘하게 감돌며 지나갔다.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저택에서 고요함이 묻어 나왔다.


말 위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아카쿠마의 고삐만 열심히 잡아당겼다.


한 방향으로 가지 못하자 아카쿠마가 반항하듯 뜨거운 김을 쏟아내며, 주인의 아래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돌고 돌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2 조선의 바다 3 22.06.19 64 0 9쪽
81 조선의 바다 2 22.06.18 52 0 9쪽
80 조선의 바다 1 22.06.18 48 0 10쪽
79 통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2 22.06.17 51 0 10쪽
78 통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1 22.06.17 54 0 9쪽
77 풍전등화 2 22.06.16 54 0 9쪽
76 풍전등화 1 22.06.16 54 0 10쪽
75 비싼 목숨 값 22.06.15 56 0 10쪽
74 산적 무리들 3 22.06.15 54 0 14쪽
73 산적 무리들 2 22.06.14 50 0 14쪽
72 산적 무리들 1 22.06.14 54 0 12쪽
71 어머니의 유품 22.06.13 51 0 10쪽
70 도망자 22.06.13 57 0 11쪽
69 미치나오를 죽이다 22.06.12 54 0 10쪽
68 어머니의 죽음 22.06.12 55 0 10쪽
67 출생의 비밀 22.06.11 76 0 10쪽
66 함께 살자 22.06.11 50 0 10쪽
65 무너진 계획 22.06.10 52 0 10쪽
64 여동생 22.06.10 55 0 10쪽
63 카에데 부인 22.06.09 51 0 13쪽
62 가시마성 2 22.06.08 56 0 10쪽
61 가시마성 1 22.06.08 58 0 11쪽
60 조선 도공들 2 22.06.07 58 0 11쪽
59 조선 도공들 1 22.06.07 53 0 12쪽
58 왕년의 해적들 2 22.06.06 53 0 9쪽
57 왕년의 해적들 1 22.06.06 71 0 13쪽
56 구루시마의 의심 22.06.05 53 0 11쪽
55 료우타의 검술 22.06.05 53 0 10쪽
54 숨은 실력자 타이요우 22.06.04 54 0 9쪽
53 조선 침략의 전초 기지 22.06.04 57 2 13쪽
52 기억에 없는 기억들 2 22.06.03 54 0 9쪽
51 기억에 없는 기억들 1 22.06.03 61 0 12쪽
50 남만인 배 글로벌호 2 22.06.02 55 0 11쪽
49 남만인 배 글로벌호 1 22.06.02 62 0 12쪽
48 과거에서 온 추적자들 22.06.01 66 0 13쪽
47 스스무의 회상 22.05.31 70 0 13쪽
46 하이난 3 22.05.30 66 0 16쪽
45 하이난 2 22.05.29 101 0 22쪽
44 하이난 1 22.05.28 62 0 20쪽
43 꽃을 찾는 벌 22.05.27 71 0 22쪽
42 벌을 찾는 꽃 22.05.26 69 0 25쪽
41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5 22.05.25 74 0 18쪽
40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4 22.05.24 67 0 17쪽
39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3 22.05.23 76 0 19쪽
38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2 22.05.22 69 0 19쪽
37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1 22.05.21 69 0 22쪽
36 순정 2 22.05.20 72 0 22쪽
» 순정 1 22.05.19 77 0 22쪽
34 토끼 사냥 22.05.18 82 0 25쪽
33 오마찌 칸의 죽음 22.05.17 75 0 20쪽
32 불타는 오마찌 별채 22.05.16 83 0 19쪽
31 고가 닌자 마리지천 22.05.15 101 0 25쪽
30 함정 22.05.14 82 0 27쪽
29 암살자를 막아라 2 22.05.13 85 0 26쪽
28 암살자를 막아라 1 22.05.12 85 0 25쪽
27 적진 속으로 22.05.11 90 0 23쪽
26 죠유지와의 재대결 22.05.10 86 0 25쪽
25 카오루 부인 22.05.09 104 0 22쪽
24 히데츠구의 의심 22.05.08 114 0 24쪽
23 이가분지 2 22.05.07 95 0 16쪽
22 이가 분지 1 +2 22.05.06 97 1 19쪽
21 반항아와의 만남 +2 22.05.05 92 2 19쪽
20 여인들 +2 22.05.04 92 1 21쪽
19 산적 사이가 +2 22.05.03 85 1 25쪽
18 이가 닌자 간스케와 고에몬 +3 22.05.02 89 2 26쪽
17 기억의 저편에서 온 자들 +1 22.05.01 103 1 21쪽
16 유곽 아이루 +2 22.04.30 92 1 22쪽
15 닌자검 +2 22.04.29 95 1 22쪽
14 닌자되다 6 +1 22.04.28 100 1 26쪽
13 닌자되다 5 +2 22.04.27 104 2 25쪽
12 닌자되다 4 +2 22.04.26 109 1 24쪽
11 닌자되다 3 +2 22.04.25 120 1 25쪽
10 닌자되다 2 +2 22.04.23 119 1 23쪽
9 닌자되다 1 +4 22.04.22 155 1 25쪽
8 올빼미섬 7 +2 22.04.21 205 1 30쪽
7 올빼미섬 6 22.04.20 213 1 25쪽
6 올빼미섬 5 +2 22.04.19 197 1 28쪽
5 올빼미섬 4 +2 22.04.18 213 1 28쪽
4 올빼미섬 3 22.04.16 233 2 29쪽
3 올빼미섬 2 +3 22.04.15 281 1 27쪽
2 올빼미섬 1 +4 22.04.14 426 3 29쪽
1 안개 속 검은 그림자 +8 22.04.13 1,047 3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