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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동인

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한림팔기장
작품등록일 :
2022.04.13 12:33
최근연재일 :
2022.08.02 09:00
연재수 :
170 회
조회수 :
14,484
추천수 :
32
글자수 :
1,064,609

작성
22.05.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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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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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꽃을 찾는 벌

역사는 반복된다.




DUMMY

사카이의 미도리 상점으로 들어가니 사카히로가 물건들을 정리하다 반갑게 맞아 주었다.


사카히로를 만나러 간 것은 라나의 부탁이었다.


료우타와 사카히로가 상점 뒤 별채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객주는 잘 운영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네, 딸아이를 좋아하나?”


“······.”


갑작스런 물음에 당황하여 얼굴이 벌게져 사카히로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여 다다미를 쳐다보았다.


“그 아이의 운명이 기구하지만, 그 또한 그 아이의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네. 조선으로 간다지? 그 아이를 잊게. 서로가 불행한 일이야.”


“······.”


“다카도라는 아주 약삭빠르고 영리한 사람이지. 권력을 따라가는 불나방과 같은 존재야."


"······."


여러 이야기에 사카히로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지 헷갈렸다.


"전쟁은 항상 새로운 주인을 만들어 내지. 노부나가도 그랬어. 히데요시의 정권도, 새 관백인 히데츠구도 오래 가지 못해. 히데나가가 죽은 순간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고 봐야 해. 이번 전쟁으로 더 빨라지겠지만."


사카히로의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었다.


"간토의 너구리가 발톱을 숨기고 있지만, 이번 전쟁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면, 그 날카로운 발톱을 들어낼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겠나? 전쟁에 참여하는 다이묘들은 대부분 히데요시의 가신들과 주고쿠나 규슈의 다이묘들이지. 그들은 상당 부분 전력 손실을 입을 테고. 반대로 간토의 무력은 그대로 보존이 된다면······. "


"세상이 뒤집힐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지금 다카도라가 히데츠구에게 붙어서 권력 맛을 보고 있지만, 그자의 속성상 또 다시 주군을 바꿀 수 있네. 그자가 과연 물 흐르듯 배를 잘 갈아 탈 수 있을까? 배를 자주 갈아타다 보면, 한 번은 가라앉게 마련. 다만, 난파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


말을 하다 멈춘 사카히로가 잠시 장지문 밖 하늘을 올려 보다 료우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 아이가 걱정이야. 아직 어리고 여린 아이인데. 다 이 못난 아비의 죄를 그 아이가 짊어지고 가는 것 같아 미안하기 그지없다네.”


사카히로의 긴 설명에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의 말에 아버지로서 딸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애절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근래에 다카도라의 행보가 넓어졌다.


히데나가가 죽은 이후부터 여러 다이묘와 교토의 문화생활을 배운다는 핑계로 고관들과 대다이묘, 그리고 거상들과 자주 다과회 모임을 하고 있었다.


코카와성보다는 주로 교토에 머물렀으며, 자주 오사카를 방문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가라앉아 조용조용히 말을 하는 사카히로를 힐긋 보았다.


그가 입술을 무겁게 다물고는 장지문 너머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무어라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라서 료우타도 가만히 눈만 깜박거렸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사카히로가 이야기를 이었다.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귀족들이고, 전국의 다이묘들 아닌가? 간혹 그들과 차를 마시는데, 근래에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아. 물론 전쟁 때문이겠지. 히데요시의 광적인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겠지만. 자네도 겉으로 드러난 전쟁 명분은 잘 알고 있겠지."


사카히로가 료우타를 지긋이 바라봤다.


너도 알지 하는 표정이다.


"네, 섬이나 다른 여론은······, 실상은 가신들에게 나눠줄 땅이 부족한 현실을 타파하고······, 평화의 시대에 필요가 없어진 무장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자신의 권력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그렇지, 문제는 가장 강한 경쟁자인 간토의 이에야스가 조선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 아무튼 세상이 전쟁 속으로 소용돌이쳐 가지만, 뒤에서는 발 빠른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어. 이곳 사카이의 이마이 소큐도 그러한 부류라고 볼 수 있고, 권력을 눈앞에 둔 미츠나리가 근래의 분위기에 위기를 느끼고 움직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정보망을 통해 아는 사실, 다카도라 성주 또한 다도와 문화 행사를 핑계로 다이묘들이나 거상들뿐만 아니라 자주 이에야스를 초빙한다고 하더군. 현재의 실세와 미래의 실세인 히데츠구를 주군으로 모시며, 혹 전쟁 뒤를 위해 묘수를 두려 하는데, 악수가 되면, 어떻게 되겠나? 내 딸아이뿐만 아니라 섬까지 모두 위험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있어서 걱정이야.”


“저도 사카히로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무시할 수 없기에 상황을 보면서 대응해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날에 대해서는 촌장님과 원로분들, 그리고 사카야마님과 사카히로님께서 잘 대응해 갈 거라 믿습니다.”


“물론 그렇겠지만 힘든 싸움이 될 거야. 자네는 전쟁터에서 몸조심하게.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지 아나?”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전쟁터로 가는 제게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따로 하실 말씀이 있다고 여겨집니다만.”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이 어색해 얼굴을 들어 사카히로를 한 번 보고는 찻잔에 시선을 두었다.


그런 모습을 사카히로가 뜻 모를 눈빛으로 바라봤다.


“사실은, ······그 아이도 자네를 좋아하더군.”


“네?”


그녀를 잊어버리라고 한 사람이 갑자기 다시 라나 이야기를 꺼내자 무슨 의도로 그와 같은 말을 하는지 몰라 고개를 들고 사카히로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이 정권이 위험해지리라는 것이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섬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말인데······"


말을 하다 장지문 밖을 한번 보고는 말을 이었다.


"딸아이를 부탁하네.”


“······.”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를 쳐다보았다.


“히데츠구는 일본을 이끌어갈 인물이 되지 못해. 분명 큰 내홍이 일어날 거야. ······자네가 그때 딸아이를 돌봐주게. 사실 이 말을 하려고 자네를 부른 거라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카히로를 쳐다보았다.


“라나님에겐 사카히로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 하지만, 나보다 자네가···.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알게 될 거네. 후후.”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이라니요?”


그의 얼굴을 보며 묻다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는 모습에 고개를 숙였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선에서 우선은 무탈하게 돌아와야 합죠.”


료우타의 농스러운 말에 사카히로도 함께 웃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웃음 뒤에 알 수 없는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사카히로를 보며,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지만,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반드시 살아 돌아와 라나님을 지키겠습니다.’


사카히로가 밖으로 나가 술 한 통과 안줏거리를 들고 들어왔다.

그가 주는 잔을 받아 마셨다.


사카히로도 직접 자신의 술잔에 술을 붓고는 단번에 술잔을 비웠다.


술자리 속에 사카히로가 라나의 처지와 전쟁터로 가는 료우타와 섬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많은 이야기를 했다.


술이 한 잔 두 잔, 잔이 돌수록 라나에 대한 안타까움이 커졌다.


그의 사랑은 라나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었다.


비정상적인 만남과 그 이후의 삶이 그녀의 어머니 츠유에 대한 미안함으로 인해 더더욱 그녀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성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고뇌와 고통 속에 헤매었을까?


그 심정이 고스란히 료우타에게로 전해져 왔다.


술 한 통이 다 비워졌는데도 사카히로의 근엄한 자세만은 빈틈이 없었다.


‘역시 닌자!’


새벽녘이 되어서야 눈을 붙일 수 있었다.


해가 오동나무 가지에 걸리자 잠자리에서 일어난 료우타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상점으로 나갔다.


이미 사카히로가 일어나 일하고 있었다.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와 길을 걸었다.


그녀와 자신의 관계는 누구나 아는 현실의 벽으로 서로 다가갈 수 없는 운명이지만 사카히로의 말처럼 또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변고가 있을 것이다. 그때 라나를 부탁한다.’


곰곰이 사카히로의 이야기를 되씹으며 관문을 지나 오사카로 갔다.



예전부터 번성한 사카이와 새로운 도시 개발로 번성해 가는 오사카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국의 사람들이 번화한 거리를 다녔으며, 두 도시를 오고 가는 상인과 일반인들도 많았다.


속내를 보면 전쟁으로 인한 초조함이 묻어나 있었다.


전쟁 준비로 거상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었다.


큰길마다 무기들과 군량미를 나르는 마차들이 길을 가득 메웠으며, 바삐 어디론가 가는 한 무리의 병사들도 있었다.


쌀가게에서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군량미 때문에 쌀값이 몇 배 오르다 보니 서민들의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겉모습과 달리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딘지 불안해 보이고 어수선한 길거리를 보면, 전쟁이 벌써 시작된 느낌이었다.


오사카 별채로 왔을 때, 벌써 해가 서녘 하늘 아래에서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기분도 안 좋고 며칠 후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울컥한 료우타가 탁자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스스무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벌써 날이 어두워지네. 오늘 기분도 그렇고 하니, 나가서 술이나 한잔하세. 전쟁은 잠시 있게나. 자, 가자고.”


스스무가 료우타의 어깨를 툭 치며, 앞서 밖으로 나갔다.


료우타를 떠밀어 아지 강변의 유곽 마천루로 들어갔다.


익숙한지 자연스럽게 이층으로 올라가 제일 안쪽의 내실로 들어갔다.


마천루 안 복작거리는 사람들을 보다 스스무가 다른 이들과 달리 이층으로 가자 급히 따라붙었다.


스스무를 말없이 따라가면서도 궁금증이 일어 주변을 살폈다.


다른 주쿠(음식점)나 유곽과 같으면서도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두리번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간 방은 다른 방들과 떨어져 있었으며, 조용한 곳이었다.


“오마찌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삼십 대 중반의 여인이 고소데옷을 입고는 야한 웃음으로 들어왔다.


분명 고소데가 맞는데 일반 옷과 달랐다.


여인이 걸을 때마다 갈라진 옷 사이로 왼쪽 허벅지가 하얗게 드러났다.


여인이 료우타를 힐끔 보며 눈에 웃음을 머금고는 탁자에 앉아 있는 스스무의 어깨에 손을 살며시 올리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레이, 동안 잘 있었나. 보고 싶었네.”


스스무가 그녀의 엉덩이를 만지며 큰 소리로 말했다.


멋쩍은 료우타가 눈을 옆으로 돌렸다.


레이가 그런 료우타를 돌아보더니 눈을 찡긋하며 인사를 했다.


“와우, 이 멋진 총각 좀 보소.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넘 귀였다. 아이고, 가지고 싶어라!”


“어허! 하하하.”


스스무가 여인을 타박하며 웃었다.


그녀의 말에 료우타가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료우타는 이곳이 처음이지. 여기는 이곳 마천루의 주인이며, 우리와 협력 관계인 레이라고 하네.”


“잘 부탁드립니다. 료우타라고 합니다.”


레이가 료우타에게 눈인사하며, 오마찌 옆에 앉았다.


“반가와요. 어쩜 이리도 잘생기셨을까. 레이라고 해요. 호호호.”


그녀의 말에 료우타의 얼굴이 연분홍빛이 되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숫기가 없으시다. 호호호.”


“오늘은 일하러 온 것이 아니라네. 이 친구는 곧 있을 명나라 정벌로 이 땅을 떠나야 하네. 오늘 밤 부탁하네, 레이.”


그녀가 료우타를 보며 눈웃음을 치고는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엉덩이가 씰룩거렸다.


료우타는 스스무를 힐긋 보고는 급히 눈길을 방 여기저기로 던졌다.


“자네도 돌아오면 이곳을 종종 이용하게. 여기 일하는 여인들은 레이를 비롯하여 대부분 여자 닌자인 쿠노이치라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며, 소문들의 근거, 또 소문의 배후까지 이런 유곽을 통해 흘러나가고 들어오지.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곳이야.”


“썩 내키지는 않습니다. 제가 술을 잘 못 해서요.”


“이봐! 올빼미는 여자 보기를 돌보듯이 해야 해, 특히 쿠노이치는 더. 올빼미가 밤에만 울 수는 없어."


"······."


"많은 먹이를 혼자 다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 잘 만 이용하면 임무 수행에 요긴하게 써먹을 수가 있어. 섬의 입장에서도······.”


두 사람이 쿠노이치와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여인들이 고개를 숙이며 들어와 술과 안주를 내려놓았다.


그녀들의 몸을 아니,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다.


세상이 넓고, 알아야 할 것도 많다고 생각하며, 그녀들 뒤를 따라가던 눈길이 방으로 들어오는 레이와 마주쳤다.


그녀의 눈길이 묘했다. 순간 민망해서 얼른 얼굴을 돌렸다.


온몸이 화끈거리며 열기가 올라오자 손으로 부채질했다.


그녀가 스스무 옆에 앉아서 두 사람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레이, 오늘 밤 이 친구에게 세상 모든 아픔과 전쟁을 잊도록 만들어 주게.”


“그러죠. 오늘은 특별히 모셔야 하겠군요.”


그녀가 료우타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녀의 말에 홍당무가 된 료우타가 멀뚱히 스스무를 쳐다보자 그가 눈웃음을 했다.


더더욱 당황하여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가 생글거리며 왼쪽 벽에 있는 줄을 잡아당기자 좀 전에 들어왔다가 나간 여인이 들어 왔다.


“여기 하이난 부탁해요.”


레이가 료우타와 스스무의 빈 술잔에 술을 다시 따라 주었다.


“어서 한잔하시고 저도 따라 주세요. 멋진 무사님이 따라 주는 술이 고프네요. 호호호.”


술잔을 입에 살짝 갔다 대기만 했던 료우타는 겸연쩍은 듯 잔을 비우고 그녀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술잔이 오고 가며 둥근 탁자에 둘러앉은 세 사람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다.


료우타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술을 입술에 살짝 축이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동원령이 내려져 온 나라가 난리예요. 나고야성이 거의 완공되었데요. 성이 어마어마하다고 하던데, 동원령으로 모든 전쟁 준비가 끝났다고 봐야겠죠.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3월에 나고야성을 떠나 쓰시마로 제1군이 출발한다고 하네요.”


레이가 전쟁에 대해 별로 기분이 안 좋은 듯 이야기를 뱉어냈다.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네. 그런데 여기 오사카성에 있는 태합이 직접 나고야성으로 간다는 말이 있더군.”


“새 관백에게 정사를 맡겨 놓고 오사카성에서 전쟁 준비를 진두지휘하고 있잖아요. 늙은이가 어디서 그런 정열이 나왔는지, 수많은 병사가 이름 모를 타국에서 죽어 가겠죠. 지금 민심이 흉흉해요. 저기 쌀가게에서 급등한 쌀값 때문에 한바탕 소란이 났어요. 우리도 시대가 어수선하니 손님도 줄고 재료도 비싸져서 재미가 없어요. 뻔질나게 들어오던 남만인과 중국 배도 뜸해지겠죠.”


레이가 그동안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는데, 문을 열고 여인이 들어 왔다.


료우타는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세상에 라나 만큼 어여쁜 처자가 있다니···.’


여인이 들어올 때 환한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그녀의 밝은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호호호, 너무 노골적이다. 울 총각. 즐겁게만 노시고, 이 꽃은 꺾지 마시고요. 호호호.”


레이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료우타를 보며 웃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하하, 젊음이 곧 정렬이지 않소. 좋을 때 아니겠소. 후후. 아니 유곽에서 꽃을 꺾지 못하다니···. 자네 아쉽지만 어쩌겠나. 크크크. 그런데 오늘 처음 보는 처자로군.”


“아휴, 꽃은 눈으로 보아야 예쁘지요. 호호호. 지난번 남만인 배 때문에 누군가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했을 때, 작업한 아이가 이 아이예요.”


“그래? 후후후. 인연이 있는 아가씨로군.”


스스무가 레이의 말에 웃으며, 료우타를 슬쩍 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물로 목을 축이고 있던 료우타 앞으로, 아니 스스무 옆으로 꽉 끼는 오소데를 입은 여인이 다가와 앉았다.


“하이난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여인이 료우타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웃으며 인사를 했다.


하이난의 눈길에 얼른 고개를 숙였지만 놀라는 표정을 료우타도 느꼈다.


힐끔 쳐다본 여인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녀의 눈길에 급히 고개를 숙였다.


제대로 얼굴을 마주 보지도 못하면서 힐끔거리다 몰래 엿보다 들킨 사람처럼 당황하여 얼른 고개를 숙였다.


얼굴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레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료우타 옆으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살짝 올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손길에 어색한 미소로 어깨를 보고는 살짝 옆으로 옮겨 앉으며, 고개를 앞으로 더 숙였다.


그런 모습을 앞에 앉은 하이난이 살짝 웃으며 바라보았다.


“자자. 오늘은 만사 잊어버리고 술이나 푸세.”


스스무와 레이는 쩔쩔매는 료우타의 행동을 보고 서로 눈을 마주치며, 크게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었다.


스스무의 건배사에 나머지 사람들도 술잔을 비웠다.


하이난이 료우타에게 술을 따라 주겠다며, 일어섰다.


그제야 눈을 탁자에만 고정하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어? 낯이 익다······.’


술잔을 내밀며 쳐다본 그녀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볼수록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방으로 들어올 때는 그녀의 미모에 멍해 아무 생각도 없었다.


힐끔거리며 쳐다볼 때는 잘 몰랐다.


“잘생긴 오라버니, 한 잔 받으세요.”


“뭐야, 저 녀석만 따라 줘? 넌 내 짝이잖아. 자 나도 한 잔 줘.”


스스무가 시샘하듯 웃으며, 옆에 앉은 하이난의 엉덩이를 자신의 몸쪽으로 당겨 술을 마시고는, 빈 술잔을 그녀 앞에 들이밀었다.


그녀가 술을 따르면서 료우타를 살짝 쳐다봤다.


제법 잔이 돌았다.


스스무가 기분 좋게 술이 올라왔는지 노래 한 가락을 뽑았다.


레이도 젓가락을 들고 장단을 맞추었다.


멀뚱하게 있을 수 없어 료우타도 몸을 조금씩 움직였다.


‘어디서 봤을까?’


그녀와의 인연을 생각하느라 엇박자로 가는 줄도 모르고 눈동자가 흐릿하다.


스스무 옆에 앉은 하이난을 정면으로 본 순간부터 어디서 보았는지를 생각하느라 술자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하이난도 그런 료우타를 의식하는지 힐끔거리며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하이난은 잠시 나갔다가 오겠다며, 일어섰다.


문을 열고 나가는 그녀를 보며 잠시 머뭇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나 볼일 좀 보고 오겠다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복도 끝, 불빛이 닿지 않는 곳에 하이난이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그녀를 향해 걸어가는데, 가슴이 뛰었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걸음걸이가 급해졌다.


“하, 하이난이라고 했습니까? ······혹, 우리 만난 적이 있는지요?”


“호호호. 그럼요. 무사님께서는 생각이 안 나실지 모르지만, 지난겨울, 남만의 인도 사절단이 교토로 가기 위해 오사카를 지나갈 때, 거리에서 만났는데, 기억이 안 나시나 봅니다.”


“네?"


그녀의 말에 어둠 속에서 눈을 크게 뜨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 밀고는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아! 이제야 생각이 납니다."


생각이 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는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기에 쉽게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잘하면 자신의 과거를 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물밀듯 밀려왔다.


"저······."


그녀가 얼굴을 옆으로 살짝 돌렸다.


"아! 미, 미안하오."


료우타의 얼굴이 바로 그녀 눈 앞에 있었다.


멋쩍은 얼굴로 료우타가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료우타님이라고 했지요? 어떤 분하고 너무 많이 닮았어요. 물론 키가 한 뼘이나 더 크고, 더 남자다워지셨지만···.”


“또 그 말씀이군요. 저를 닮은 분과 인연이 있어나 봅니다. 하이난님의 목소리가 그자를 떠올리시는지 다정다감합니다만···, 눈가도 촉촉한 것 같고.”


황급히 눈을 껌벅거린 그녀가 그냥 스쳐 가는 인연이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어둠이 완전히 눈에 익자 술을 마셔서 그런지 그녀의 발그레한 얼굴이 환하게 다가왔다.


“혹,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까? 왠지, 아름다운 여인이 추억하는 그 사람이 무척 궁금해집니다.”


“아? 네. 그러죠. 그런데 얼굴 좀···.”


또다시 자신도 모르게 그녀 얼굴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이런,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하하하.”


멋쩍은 웃음을 웃었다.


그런 그를 보며 그녀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따라 웃었다.


그러면서도 한참을 망설이든 그녀가, 자신을 보고 있는 료우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료우타의 얼굴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당황하여 허리를 뒤로하며 얼굴을 멀리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호호호. 좋아요. 오늘 밤 자시에 야마자기초 입구로 오세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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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함께 살자 22.06.11 50 0 10쪽
65 무너진 계획 22.06.10 52 0 10쪽
64 여동생 22.06.10 55 0 10쪽
63 카에데 부인 22.06.09 51 0 13쪽
62 가시마성 2 22.06.08 57 0 10쪽
61 가시마성 1 22.06.08 59 0 11쪽
60 조선 도공들 2 22.06.07 59 0 11쪽
59 조선 도공들 1 22.06.07 54 0 12쪽
58 왕년의 해적들 2 22.06.06 55 0 9쪽
57 왕년의 해적들 1 22.06.06 73 0 13쪽
56 구루시마의 의심 22.06.05 54 0 11쪽
55 료우타의 검술 22.06.05 55 0 10쪽
54 숨은 실력자 타이요우 22.06.04 56 0 9쪽
53 조선 침략의 전초 기지 22.06.04 60 2 13쪽
52 기억에 없는 기억들 2 22.06.03 55 0 9쪽
51 기억에 없는 기억들 1 22.06.03 64 0 12쪽
50 남만인 배 글로벌호 2 22.06.02 57 0 11쪽
49 남만인 배 글로벌호 1 22.06.02 64 0 12쪽
48 과거에서 온 추적자들 22.06.01 68 0 13쪽
47 스스무의 회상 22.05.31 72 0 13쪽
46 하이난 3 22.05.30 68 0 16쪽
45 하이난 2 22.05.29 102 0 22쪽
44 하이난 1 22.05.28 64 0 20쪽
» 꽃을 찾는 벌 22.05.27 74 0 22쪽
42 벌을 찾는 꽃 22.05.26 72 0 25쪽
41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5 22.05.25 75 0 18쪽
40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4 22.05.24 68 0 17쪽
39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3 22.05.23 78 0 19쪽
38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2 22.05.22 71 0 19쪽
37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1 22.05.21 70 0 22쪽
36 순정 2 22.05.20 73 0 22쪽
35 순정 1 22.05.19 79 0 22쪽
34 토끼 사냥 22.05.18 84 0 25쪽
33 오마찌 칸의 죽음 22.05.17 76 0 20쪽
32 불타는 오마찌 별채 22.05.16 83 0 19쪽
31 고가 닌자 마리지천 22.05.15 102 0 25쪽
30 함정 22.05.14 83 0 27쪽
29 암살자를 막아라 2 22.05.13 86 0 26쪽
28 암살자를 막아라 1 22.05.12 86 0 25쪽
27 적진 속으로 22.05.11 91 0 23쪽
26 죠유지와의 재대결 22.05.10 87 0 25쪽
25 카오루 부인 22.05.09 105 0 22쪽
24 히데츠구의 의심 22.05.08 115 0 24쪽
23 이가분지 2 22.05.07 95 0 16쪽
22 이가 분지 1 +2 22.05.06 97 1 19쪽
21 반항아와의 만남 +2 22.05.05 93 2 19쪽
20 여인들 +2 22.05.04 93 1 21쪽
19 산적 사이가 +2 22.05.03 86 1 25쪽
18 이가 닌자 간스케와 고에몬 +3 22.05.02 89 2 26쪽
17 기억의 저편에서 온 자들 +1 22.05.01 104 1 21쪽
16 유곽 아이루 +2 22.04.30 92 1 22쪽
15 닌자검 +2 22.04.29 95 1 22쪽
14 닌자되다 6 +1 22.04.28 100 1 26쪽
13 닌자되다 5 +2 22.04.27 105 2 25쪽
12 닌자되다 4 +2 22.04.26 110 1 24쪽
11 닌자되다 3 +2 22.04.25 123 1 25쪽
10 닌자되다 2 +2 22.04.23 122 1 23쪽
9 닌자되다 1 +4 22.04.22 159 1 25쪽
8 올빼미섬 7 +2 22.04.21 208 1 30쪽
7 올빼미섬 6 22.04.20 216 1 25쪽
6 올빼미섬 5 +2 22.04.19 200 1 28쪽
5 올빼미섬 4 +2 22.04.18 216 1 28쪽
4 올빼미섬 3 22.04.16 236 2 29쪽
3 올빼미섬 2 +3 22.04.15 284 1 27쪽
2 올빼미섬 1 +4 22.04.14 434 3 29쪽
1 안개 속 검은 그림자 +8 22.04.13 1,061 3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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