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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동인

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한림팔기장
작품등록일 :
2022.04.13 12:33
최근연재일 :
2022.08.02 09:00
연재수 :
170 회
조회수 :
14,452
추천수 :
32
글자수 :
1,064,609

작성
22.05.04 12:30
조회
92
추천
1
글자
21쪽

여인들

역사는 반복된다.




DUMMY

섬의 인원만으로 교토나 오사카에서 움직이는 닌자들을 찾아 감시하고 계속 쫒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었다.


행정청의 움직임도 근래 들어 수상했다.


오사카에서 제법 큰 마천루라는 여각을 운영하는 레이에게 여각을 드나드는 사람들 속에 닌자를 파악하고 그들이 교토나 오사카에 나온 이유를 알아내고 또한 정체를 파악하도록 의뢰해 두었다.


스스무가 동쪽 하늘에 달이 떠오르자 마천루로 갔다.


“오! 오마찌님, 오랜만이에요. 이층으로 올라가셔요.”


“하하하, 레이, 잘 있었소! 그동안 보고 싶어서 혼났소. 인제 보니 못 보던 사이에 더 예뻐졌소!”


“어이구! 한동안 안 보여 죽었나 싶었는데 그 입을 보니 살아 있는 것이 맞네요. 호호호.”


이층으로 올라 복도를 따라가며 아래 음식을 주문해 먹고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구석방에 들어서자 진지한 얼굴로 레이를 바라보았다.


“요즘 어떻소? 장사할 만하오?”


“그럼요. 주신 은자로 잘 운영하고 있어요. 평소에 못 보던 자들이 여각이나 유곽을 들락거리며, 소문을 내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유혹해 보았는데, 잠자리에서조차 농락당하지 않는 것이 아주 까다로운 닌자들인 게 분명해요.”


“어허! 이곳 쿠노이치가 천하제일인 줄 알았는데 그깟 별 볼 일 없는 닌자들을 못 다루었다니, 다른 꽃밭을 찾아봐야 할 것 같소.”


입을 삐죽 내민 레이가 스스무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야! 허 참. 여자들이란······.”


“은자 몇 푼 주고는 우릴 아주 형편없는 종자로 만드시네요. 호호호.”


“은자 몇 푼이라니. 지금까지 마천루에 퍼부은 것만 해도 세토내해가 육지가 될 텐데······.”


“아, 그래요? 인제 보니 스스무님은 세토내해가 뉘 집 요강단지인 줄 아시는군요. 하긴 그것이 별 볼 일 없으니 그럴 만도 하지. 호호호!”


얼굴이 붉어진 스스무가 잠시 씩씩거리다 창에 드리워진 소나무 그림자를 보며, 씩 웃었다.


“하하하, 그렇지. 내가 아무 하고나 별을 보나.”


“아휴, 내가졌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이 일을 못 한다고 하시면 서운합니다.”


“알지, 내가 다 알지. 하하하, 이제 농은 그만.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 계속 수고해 주소.”


“그런데 요즘 닌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어요. 한동안 뜸했는데 지난 가을 이후 자주 눈에 띄더니 근래에 무엇이 그리 바쁜지 여각이나 유곽을 들락거리는 게 문턱이 닳겠어요.”


여종업원이 술과 안주를 가지고 들어와 잠시 대화를 멈추었다.


술상을 놓고 레이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인 여인이 밖으로 나갔다.


“저 아이가 밖을 경계할 거예요.”


힐끗 밖으로 나가는 여인의 몸을 훔쳤다.


몸에 딱 달라붙는 중국식 복장으로 갈라진 옷 사이로 드러난 뽀얀 허벅지를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앞에 예쁜 여우를 두고 어디로 눈을 흘기세요. 에구, 남자들이란.”


얼굴에 웃음기를 품고 다시 한번 문밖으로 눈길을 주었다가 앞에 앉은 레이를 바라보았다.


“이쁜 꽃이라 나도 모르게 그만. 푸하하! 그건 그렇고····. 평온한 세상이 되면 조용해지다가 그 평온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자들이 다시 고개를 내밀게 되어 있소. 그러한 바람이 솔솔 불고 있다는 증거지. 이제 그동안 수집한 정보나 들어 봅시다.”


“원, 서방님도 급하셔라. 자 한잔하세요.”


레이가 술잔에 술을 따랐다.


“내가 언제부터 댁의 서방님이 되었소. 뭐, 듣기에 나쁘진 않소만, 아니, 그럼 서방님과 오늘 밤 별을 따러 가지 않겠소. 푸하하!”


“별 볼 일 없다는 분이······.”


“오늘 밤은 별이 많소이다. 푸하하. 자자. 계속하시오.”


“아시다시피 지난가을부터 전쟁 반대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오랜 전란으로 지친 백성들이 이제 좀 평온한 세상을 맞아 좋아지려나 보다 하는데 또다시 명나라나 조선을 정벌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민심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증거죠. 물론 여기 드나드는 종족들이 다른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소문을 내기는 하지만.”


“물론 닌자들일 거고,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무리일 거요.”


“네, 이곳뿐만 아니라 교토의 유곽에도 낯선 자들이 들락거리며, 교묘히 소문을 퍼뜨리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행정청에서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러 나왔었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스스무는 하늘거리는 등잔불을 보고 있었다.


“최근에 얼굴이 낯선 나이 든 사람을 본 적이 있소?”


“어디 나이 든 사람이 한둘이 야죠. 서방님도?”


“푸하하! 장가도 안 간 나보고······. 이제 날 들어 앉히겠소.”


못 들은 척 레이는 술을 한 잔 들이마셨다.


“술을 잘 마시면 곤란한데, 술주정하는 부인은 싫소이다.”


“호호호, 누가요? 중요한 정보라 목이 말라 그런 거죠. 근래에 관백에 대한 암살 이야기도 공공연히 들려온답니다. 사카이에서 들어 온 정보에 의하면, 이가의 죠닌 중의 죠닌이 움직이고 있다고 해요. 공공연히 이가라고 소문을 내고 있어요. 그런데 그자가 최근에도 사카이를 다녀갔다고 합니다.”


“사카이? 음, 관백 암살에다 이가라·····. 사카이 어딘지는 모르고·····.”


“네, 워낙 번화한 거리라 어디로 사라지는 바람에. 우리 아이들이 쫒기에는 실력이······. 호호호.”


“레이는 그자가 누구라 생각하오?”


“아마도 지금 오마찌님이 생각하는 자일 거예요.”


“하하하, 그래요? 난 지금 조금 전에 나간 여인을 생각하고 있소만······.”


“아야!”


눈을 흘기며 스스무의 가슴을 때렸다.


“이런 엉큼한 사내 같으니라고. ·····농은 그만하시죠.”


스스무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을 했다.


“이가에 남아 있는 죠닌급 닌자라고 해봐야 몇 안 되지. 그것도 주조를 움직일 정도의 인물이라면 더더욱. ·····아마도, 예전부터 사카이에 줄을 대고 있다던 이가 최고의 죠닌, 닌자 중의 닌자, 바로 지로자에몬일 게야.”


‘······음, 지로자에몬이 움직인다?’


다시 한번 속으로 지로자에몬의 이름을 되뇌며, 인상을 찌푸렸다.


“호호호, 어려운 싸움이 될 거예요. 그자는 쓰즈라 주조의 스승이죠. 주조만으로도 벅찬데 그 스승인 지로자에몬까지 상대하려면 밑천 다 털리겠어요. 호호호.”


“밑천이 다 털려도 좋아! 그 스승이라는 자의 은신처를 알아봐줘.”


“저희도 노력하고 있어요. 그자는 임무를 맡으면 여자는 물론이요, 술을 한 입도 대지 않기로 유명하죠. 또한 그 움직임이 귀신 뺨칠 정도라고 하니 힘든 싸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언젠가 걸리겠죠? 호호호.”


스스무가 레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단순에 비웠다.


“아! 그리고 상단들에 들어가 있는 아이들 정보로는 각 상단에서 모임이 자주 열리고 있다고 해요.”


“그야 우리도 알고 있지.”


별 정보가 아니라 생각했는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야휴, 끝까지 들어 보세요. 그 모임에 평소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있다는 그죠. 아마도 간토의 사람들이 아닐까 해요.”


“간토? 설마···?”


간토라는 말에 되물으며 레이 가까이 몸을 가져갔다.


“사카이의 상인들 속에 간토의 상인들이라······. 좀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오. 구체적으로 좀더.”


“그러잖아도 아이들에게 특별히 그들의 움직임에 대해 주의시키었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그런데 그들의 움직임에 그림자가 붙어 있어서 쉽지는 않아요.”


“그림자라! ······간토가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면, 당연 한조가 움직일 터!”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혼잣말로 스쳐 가듯 말을 했다.


“아직은 모르겠어요. 워낙 경계가 심하고 또 은밀히 움직이는 것 같아요. 잘못하다가는 우리 쪽이 드러날 수 있어서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요.”


“음······. 어쨌든 임무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겨야 그게 그림자들의 삶이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알아봐 주게. 대가는 충분히 치룸세.”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술을 다시 한 잔 들이마신 스스무가 팔뚝으로 입가를 스윽 닦았다.


“교토의 야나기초에도 사람을 좀 넣었으면 하는데.”


“호호호, 이미 손을 쓰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푸하하! 역시 레이야. ·····술기운이 올라오는군. ·····어때? 레이! 이제 우리 일도 좀 보자구.”


레이를 능청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이 반달눈이 되며 게슴츠레해졌다.


모든 불이 꺼진 마천루, 새벽 여명에 검은 그림자가 몰래 밖으로 나와 어딘가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코카와성에 들어간 라나와 료우타는 칸베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 나와 각자의 처소로 갔다.


처소를 가기 전 료우타는 구모베에게 가서 그동안의 근황을 알렸다.


라나가 천수각 동남쪽 내전에 딸린 별채로 갔는데, 그곳은 시녀들과 하녀들이 기거하는 곳 맞은편으로 위에서 특별한 명령이 떨어져 제일 깨끗하고 큰 방으로 안내되었다.


료우타는 성주의 경호병들이 숙식하는 곳으로 혼마루 내 어전 건물 옆에 있는 건물 내 북서쪽 제일 끝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주위에 방이 여럿 있었는데 대부분 비어 있었다.


섬 동료들과 다른 건물에 숙소가 정해져 의아했지만, 료우타는 신경 쓰기 싫어 그냥 방안에 누워 지난밤의 피곤함을 잠시 달랬다.


한낮의 열기가 늦봄이라기보다 초여름의 열기로 방안 가득하였지만, 북쪽으로 난 창문으로 키노강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책을 보기에 좋은 날씨였다.


언제 일어났는지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책을 보고 있던 료우타는 방 안에 있는 것이 답답하여 밖으로 나왔다.


따가운 햇볕이 정원의 나무들과 건물 지붕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성의 지리도 익힐 겸 성안을 돌아다녔다.


처음 성에 왔을 때보다 꽃이 피어 더더욱 아름다운 정원과 나무들이 눈 속으로 들어왔다.


북쪽으로는 키노강이 흐르고 성 밖의 해자와 내성 사이에도 해자가 있었으며 성의 각 모서리에는 성루가 있었다.


성의 북동쪽 끝 키노강 절벽 위 천수각이 있었으며, 천수각의 앞쪽에 료우타가 있는 경호동 건물이 있었다.


그 맞은편에 혼마루의 어전을 비롯해 성의 업무를 보는 건물인 행정청, 그리고 그 서쪽에 무사들의 숙소와 무기고가 배치되어 있었다.


경호동 건물 옆 무사들의 숙소 앞 공터에 무사들이 훈련이나 무예 수련을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섬에서 겨룬 적이 있던 도도 다카노리를 만났다.


그는 창을 들고 무예 수련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그는 료우타를 의식하면서도 모른 척했다.


지난날 자존심이 구겨진 기억으로 료우타가 달갑지 않았다.


그렇게 료우타가 지나가기를 바라며 창으로 수련하고 있는데, 이 각(약 30분)이 지나도 그대로 서 있자 무예 수련을 멈추고는 땀을 닦으며 료우타 앞으로 걸어왔다.


“반갑다. 내가 연장자이니 하대를 해도 되겠지.”


일급 무사가 닌자에게 하대하겠다고 묻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그만큼 료우타와의 대결로 그 실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 네, 당연한 말씀입니다. 긴 창을 자유자재로 다루시는 모습이 그 옛날 삼국지의 조자룡을 보는 듯합니다.”


“하하하, 조자룡을 아는가? 비꼬는 것 같지는 않군. 칸베에 부관님의 배려로 봐준 거라네. 다음번에 겨룰 때는 조심하게. 그때는 창에 사정을 두지 않을 걸세.”


“네, 앞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아직 배움이 많이 부족합니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들어가서 차나 한잔하세.”


다카 노리는 료우타의 무식함을 조롱하려 예법에 따라 다도를 진행했다.


그냥 물을 마시듯 들이키는 료우타를 보며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다카노리가 그저 즐거워서 웃는 줄 알고 그를 따라 얼굴에 환한 웃음이 퍼져나갔다.


그런 료우타를 비꼬듯,


“자네는 다도를 아는가?”


“예? 저같이 무식한 자가 다도를 알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앞으로 무사가 되고자 한다면, 다도를 익혀야 할 게야. 자네처럼 차를 마시면, 천한 자가 되는 것이지. 특히 도도가의 사람이 되려면 더더욱 말일세.”


다카노리가 크게 웃으며, 직접 차를 따라 주었다.


“헤헤, 그렇습니까? 그럼 천한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물 한 잔과 다를 바 없는 차로 사람을 구별한다면 그 또한 별 볼 일 없는 자들의 놀이가 아닐까요?”


다카노리가 한 대 맞은 것처럼 어이가 없어서 쓴웃음을 지었다.


“다도는 차차 익혀 나가도록 하고, 예전 나와 겨룰 때 자네의 검술은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것이었어. 누구한테 사사 받은 것인가?”


섬에서의 대결 때 사용한 검술과 발놀림에 대해 궁금한 부분을 물어보았지만, 료우타는 순간적인 반응으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얼버무렸다.


한 다경의 시간이 지나자 다카노리는 업무가 있다며 일어섰다.


“앞으로 종종 여기로 놀러 오게. 차도 한 잔 마시며, 다도를 배워 보게나.”


훈련소를 나온 료우타는 내성을 따라 동쪽으로 걸어갔다.


그 끝 작은 건물에 구모베에와 게닌들의 숙소가 있었다.


구모베에는 오늘도 닌자들과 함께 닌자수업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곳 성주가 섬사람들을 전쟁터나 첩보활동에 활용할 것이기에 성주의 전략에 따라 협력할 수 있도록 평소에 암호나 전술을 익히며 훈련하고 있었다.


료우타도 다른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훈련에 참여하기로 했었다.


구모베에와 인사를 나누고 성벽을 따라 북쪽으로 걸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녀들이 바쁘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바삐 지나던 하녀들은 키가 크고 우람하며 잘생긴 사내가 지나가자 모두 넋을 놓았다.


그녀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채 생각에 몰두했다.


그녀들의 숙소를 따라가다 보니 장지문을 열고 앉아 있는 라나를 만났다.


이곳에는 쉽게 만나 담소를 나눌 여유나 여건들이 허락되지 않아 자주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화사한 날개를 접고 앉아 있는 한 마리 나비처럼 장지문에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며칠 만에 본 그녀의 모습은 왠지 초췌해 보여 안쓰러웠다.


그런 그녀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짝 웃어 보이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천수각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느낌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 료우타가 작은 휘파람을 불었다.


별채 앞에 있는 정원은 지난번 왔을 때의 앙상했던 각종 나무가 푸른 잎사귀와 꽃을 피우고 있었고 큰 연못 안에 있는 작은 섬에도 각종 꽃과 나무들이 푸르름이 짙어 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작은 와송들이 화려한 꽃들과 대비 되면서 기품을 뽐내고 있었다.


누구의 솜씨인지는 모르지만, 계절에 따라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고독하게 모습을 연출할 수 있도록 정원을 꾸며 놓았다.


정원을 잘 모르는 료우타가 보기에도 솜씨가 꽤 있는 자의 손길이 곳곳에 보였다.


정원은 가꾸는 사람을 닮는다고 했든가.


성주의 작품이라면 그의 성품과 예술성이 정원 곳곳에 잘 들어나 있었다.


정보에 의하면 이곳 성주가 성 축성에 일가견이 있다고 들었다.


덩치가 6척이 넘어 섬세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외형과 달리 자신만의 축성술로 정원과 성을 만든다고 했다.


이곳 코카와성도 사이가 무리를 소탕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지은 것이지만 그의 실력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어느덧 서쪽으로 지는 붉은 여울이 연못에 붉게 물들며 가라앉았다.


길게 늘어지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뒤돌아 천수각 앞마당으로 걸어갔다.


천수각 앞 정원에 들어선 료우타는 남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느끼며, 붉은 노을에 눈을 감아 봄의 정취를 즐겼다.


어디선가 이야기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천수각 정원 한 귀퉁이에 팔 품이 넓고 꽃 그림이 수놓아진 평상복을 입은 여인과 좀 더 어려 보이는 여인이 햇빛 가리개를 들고 정원의 꽃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뒤 시녀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그 두 사람의 모습과 정원의 꽃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그 두 사람 중 어린 여인이 료우타를 보고 알은체했다.


지난번 처음 성에 들어와 촌장이 성주를 만나러 간 뒤 홀로 정원을 거닐다 연못의 다리 위에서 만난 유키였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유키가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지난번의 경험으로 내키지 않았지만, 조심스럽게 그녀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유키가 자신의 어머니, 즉 다카도라 성주의 두 번째 부인인 카오루(花音 かのん) 부인에게 료우타를 소개했다.


“만나서 반가 와요. 앞으로 성주님을 잘 보필해 주세요.”


료우타를 본 카오루 부인의 눈빛은 여름의 햇볕보다 더 따가웠다.


인사를 할 때 얼핏 본 얼굴이 이상하여 다시 살짝 고개를 들어 힐끔거렸다.


환하게 드러난 이마가 이상하게 보여 잘못 보았나 싶어 다시 힐끔 보니 눈썹이 없었다.


뽀얀 피부에 붉은 햇살이 비쳤다.


햇살에 반짝이는 이마를 보자 갑자기 웃음이 나와 참느라 혼났다.


그런 료우타를 두 사람은 누가 질세라 쳐다보았다.


유키와 달리 얼핏 본 부인의 모습은 도도하면서도 어딘가 차가워 보였다.


해가 지고는 있었지만, 초여름의 습기가 아직도 온몸을 감싸고 있어서인지 두 모녀의 눈길이 끈적이고 있었다.


“앞으로 자주 우리 모녀와 차를 마셔요.”


카오루 부인이 입꼬리를 올리며 료우타를 지그시 바라봤다.


“아닙니다. 저같이 미천한 자와 차를 마신다는 것은 고귀한 신분에 누가 될 뿐입니다.”


“에이, 그러지 마세요. 누구더라. 맞다, 라나님과 같이 차를 마시면 되겠네. 호호호.”


유키가 장난끼 섞인 모습으로 카오루 부인과 료우타를 번갈아 보았다.


“그래요. 함께 자주 오세요. 성주님이 안 계시니 심심해서 그래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며, 또 그쪽의 세계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워 료우타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코카와성에 들어 온 지 며칠 동안 평온하고 조용하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한가하게 책을 읽고 있는데 하인이 와 죠유지가 부른다는 것이다.


“료우타! 그동안 잘 쉬었나?”


“네,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그래?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죠유지가 넌지시 료우타를 보고 웃으며 밖을 향해 소리쳤다.


“부르셨습니까?”


한 사내가 복도로 와 장지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기 료우타를 데려가서 말똥을 치우게 하게나. 오늘부터 막내라네.”


그 사내는 료우타를 힐긋 쳐다보았다.


료우타도 무슨 말인지 몰라 죠유지를 보았다가 그 사내를 보았다.


그 사내와 눈이 마주쳤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다시 죠유지를 향해 물었다.


“저, 제가 말똥을 치워야 합니까?”


“그럼. 여기에 자네 말고 또 누가 있는가? 내가 할까? 앞으로 구모베에와 자네는 내 아래 있게 되었다. 성주님의 명령이네.”


“아·····! 네.”


“이봐, 빨리 데려가지 않고 뭘 하나?”


사내는 당황하여 엉거주춤 일어나 료우타를 보았다.


료우타도 성주의 명령이라는 말에 일어나 쭈뼛쭈뼛하며 사내를 따라 나갔다.


료우타를 데리고 가는 사내가 자신을 소개했다.


아시가루의 총대장 혼다 미도루가 내성 바깥의 외성 남쪽 입구 근처 성주의 말과 중신들의 말이 있는 건물로 데리고 갔다.


“어서 오시오!”


마지못해 걸어가는 료우타에게 미도루가 엄중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봐, 준요시! 여기 이자가 오늘부터 이곳 마구간의 제일 막내야.”


“아, 정말입니까?”


“그럼, 내가 자네와 농을 하겠는가.”


“아, 죄송합니다.”


말에게 먹이를 주고 있던 준요시라는 사내가 함박웃음을 웃으며 료우타를 힐끗 쳐다보고는 대답했다.


“료우타라고 했나? 준요시가 자네가 할 일을 알려 줄걸세. 수고하게나.”


미도루가 하대 말을 툭 던지고는 몸을 돌려 마구간 건물 밖으로 나갔다.


대답하려다 미도루의 등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쥰요시가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료우타를 쳐다보았다.


오랫동안 홀로 마구간에 관한 일을 해 오고 있던 쥰요시가 밑으로 사람이 들어오자 너무도 기분이 좋아졌다.


“료우타라고, 오늘 내로 여기 마구간 모두를 청소하게. 어떻게 하는지는 알겠지?”


료우타가 모른다는 얼굴로 준요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한 번도 말똥을 치운 적이 없어?”


“네, 없습니다.”


“좋아! 그럼 내가 시범을 보일 테니 잘 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53 ST아리리
    작성일
    22.05.29 13:24
    No. 1

    이때 여인들의 화장법이 눈썹밀고 이빨 검게 칠하는 거 였나요?
    아무리 시대별 미의 기준이 달라도 나는 영~~ 아니던데..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한림팔기장
    작성일
    22.05.29 13:50
    No. 2

    일본 여인들의 특징입니다

    눈섭은 왜 밀었는지 모르지만

    이를 검게 한 것은 아마도

    못난 덧니가 많은 여성들이 그것을 감추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아니 통설? 인지 그렇습니다.

    모나리자도 눈썹이 없어요! ㅋ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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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도망자 22.06.13 57 0 11쪽
69 미치나오를 죽이다 22.06.12 54 0 10쪽
68 어머니의 죽음 22.06.12 56 0 10쪽
67 출생의 비밀 22.06.11 77 0 10쪽
66 함께 살자 22.06.11 50 0 10쪽
65 무너진 계획 22.06.10 52 0 10쪽
64 여동생 22.06.10 55 0 10쪽
63 카에데 부인 22.06.09 51 0 13쪽
62 가시마성 2 22.06.08 57 0 10쪽
61 가시마성 1 22.06.08 59 0 11쪽
60 조선 도공들 2 22.06.07 59 0 11쪽
59 조선 도공들 1 22.06.07 54 0 12쪽
58 왕년의 해적들 2 22.06.06 55 0 9쪽
57 왕년의 해적들 1 22.06.06 73 0 13쪽
56 구루시마의 의심 22.06.05 54 0 11쪽
55 료우타의 검술 22.06.05 55 0 10쪽
54 숨은 실력자 타이요우 22.06.04 55 0 9쪽
53 조선 침략의 전초 기지 22.06.04 59 2 13쪽
52 기억에 없는 기억들 2 22.06.03 55 0 9쪽
51 기억에 없는 기억들 1 22.06.03 63 0 12쪽
50 남만인 배 글로벌호 2 22.06.02 56 0 11쪽
49 남만인 배 글로벌호 1 22.06.02 64 0 12쪽
48 과거에서 온 추적자들 22.06.01 68 0 13쪽
47 스스무의 회상 22.05.31 71 0 13쪽
46 하이난 3 22.05.30 67 0 16쪽
45 하이난 2 22.05.29 102 0 22쪽
44 하이난 1 22.05.28 64 0 20쪽
43 꽃을 찾는 벌 22.05.27 73 0 22쪽
42 벌을 찾는 꽃 22.05.26 71 0 25쪽
41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5 22.05.25 75 0 18쪽
40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4 22.05.24 68 0 17쪽
39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3 22.05.23 77 0 19쪽
38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2 22.05.22 71 0 19쪽
37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1 22.05.21 70 0 22쪽
36 순정 2 22.05.20 73 0 22쪽
35 순정 1 22.05.19 79 0 22쪽
34 토끼 사냥 22.05.18 84 0 25쪽
33 오마찌 칸의 죽음 22.05.17 75 0 20쪽
32 불타는 오마찌 별채 22.05.16 83 0 19쪽
31 고가 닌자 마리지천 22.05.15 102 0 25쪽
30 함정 22.05.14 82 0 27쪽
29 암살자를 막아라 2 22.05.13 85 0 26쪽
28 암살자를 막아라 1 22.05.12 85 0 25쪽
27 적진 속으로 22.05.11 91 0 23쪽
26 죠유지와의 재대결 22.05.10 87 0 25쪽
25 카오루 부인 22.05.09 104 0 22쪽
24 히데츠구의 의심 22.05.08 115 0 24쪽
23 이가분지 2 22.05.07 95 0 16쪽
22 이가 분지 1 +2 22.05.06 97 1 19쪽
21 반항아와의 만남 +2 22.05.05 92 2 19쪽
» 여인들 +2 22.05.04 93 1 21쪽
19 산적 사이가 +2 22.05.03 85 1 25쪽
18 이가 닌자 간스케와 고에몬 +3 22.05.02 89 2 26쪽
17 기억의 저편에서 온 자들 +1 22.05.01 103 1 21쪽
16 유곽 아이루 +2 22.04.30 92 1 22쪽
15 닌자검 +2 22.04.29 95 1 22쪽
14 닌자되다 6 +1 22.04.28 100 1 26쪽
13 닌자되다 5 +2 22.04.27 104 2 25쪽
12 닌자되다 4 +2 22.04.26 110 1 24쪽
11 닌자되다 3 +2 22.04.25 122 1 25쪽
10 닌자되다 2 +2 22.04.23 121 1 23쪽
9 닌자되다 1 +4 22.04.22 159 1 25쪽
8 올빼미섬 7 +2 22.04.21 208 1 30쪽
7 올빼미섬 6 22.04.20 215 1 25쪽
6 올빼미섬 5 +2 22.04.19 200 1 28쪽
5 올빼미섬 4 +2 22.04.18 215 1 28쪽
4 올빼미섬 3 22.04.16 236 2 29쪽
3 올빼미섬 2 +3 22.04.15 284 1 27쪽
2 올빼미섬 1 +4 22.04.14 433 3 29쪽
1 안개 속 검은 그림자 +8 22.04.13 1,060 3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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