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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동인

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한림팔기장
작품등록일 :
2022.04.13 12:33
최근연재일 :
2022.08.02 09: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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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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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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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닌자되다 5

역사는 반복된다.




DUMMY

히데나가가 죽은 지 일주일 후 장례식이 교토에서 제일 큰, 아니 그 규모가 주라쿠성과 맞먹을 정도의 규모인 대덕사에서 치러졌다.


절 안뿐만 아니라 들과 산에 추모객들로 가득했다.


촌장 마모루도 코카와성으로 들어가 다카도라 성주와 함께 히데야스를 따라 대덕사로 갔다.


“인산인해군요.”


“그러게, 말이오. 공의 인덕이지요. 공의 평화에 대한 노력과 관백에 대한 충성, 백성들에 대한 사랑을 알기에 공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추모하는 것이겠지요.”


히데나가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누나의 아들인 조카 히데야스를 양자로 들여 대를 잇게 했다.


히데나가의 부탁으로 그의 가신들은 히데야스를 주군으로 섬기게 되었다. 다카도라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히데나가가 죽기 전 다카도라에게 올빼미 섬을 활용해 전국의 안정을 도모하도록 다시 한번 강조하고는 눈을 감았다.


또한 고마키, 나가쿠테 전투에서 실수하여 관백의 질책을 받은 조카 히데츠구를 그동안 히데나가가 지원하며 전공을 세우게 하는 등 많은 보살핌을 주었는데, 그 또한 다카도라에게 잘 보살 펴 달라고 부탁했다.


“앞으로 일본 정국이 시끄러워지겠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관백 전하를 떠받치는 큰 기둥이 하나 쓰러졌으니 앞일이 큰일입니다.”


대덕사 한구석의 거실에 나가마사와 히데야스, 다카도라, 우에쓰키, 그리고 촌장 마모루가 앉아서 앞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가마사공, 앞으로 일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앞으로도 관백 전하가 태평성대를 이룩할 수 있도록 더욱 일본 정국의 안녕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공이 없지만 남은 우리가 힘을 합쳐 관백 전하를 보필해야겠지요.”


“공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상중이지만 센 리큐의 주변이 수상하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관백 전하 앞에서도 다도 스승으로서 의기를 세우시고 좀처럼 본인의 의견을 굽히지 않으니, 불같은 성격의 관백 전하가 화가 날 수밖에요. 그 누구도 자신에게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리큐 거사는 다도만큼은 굽히지 않아요.”


다카도라가 히데야스와 눈을 마주치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그렇습니까? 다도문화를 이끄시는 분이니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리큐 거사는 소소하고 소박한 다도문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장려하고 격려해야 맞는데, 관백 전하는 다도를 정권 유지 도구로 그것도 다이묘들에 대한 포상으로 활용하고 있으니, 리큐 거사로서는 당연히 거북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지요.”


“그렇소. 리큐 거사는 다도실을 작게 만들어 누구나 평등한 세상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관백 전하는 화려한 것과 과시를 좋아하시는데 그러한 취미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불만이겠죠.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명나라로 가기 위해 조선을 정벌하는 것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그가 조선을 선망하는 것도 이유겠지요. 하지만, 상인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것이라 여겨 관백 전하가 크게 노했다고 하니 큰일입니다.”


아사노 나가마사는 히데요시 정권의 5부교 중 첫째로 정국이 무탈하게 돌아가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히데나가의 죽음과 관백 히데요시와 센 리큐의 의견대립으로 점점 태풍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내일이 눈에 선한 듯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부교들이 힘을 합쳐 관백 전하와 리큐 거사를 화해시키면 안 되겠습니까?”


“허허, 그게 이미 시기를 놓친 것 같아요. 그나마 있는 희망의 끈도 히데나가공이 죽음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언제 사달이 날 것인가만 남았어요. 허허, 참!”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흘러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나가마사와 히데야스가 정무로 바빠 먼저 일어나 나간 뒤 나머지 사람들은 조용한 침묵 속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촌장 마모루는 떠나가는 히데야스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히데나가에 비하면, 과연 성주가 주군으로 따를 수 있을까? 인물이 영 미덥지 못하다.’


마모루가 차로 입술을 축이고는, 헛기침하며 침묵을 깼다.


“어흠, 섬의 보고서를 보셨겠지만, 누군가 리큐 거사를 모함한 것이 분명합니다. 목상을 만든 목재상도 찾아냈지만,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누군가 뒤에서 관백 전하와 싸우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마모루의 말에 두 사람은 어두운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꼭, 그렇다고 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도 할 수가 없는 묘한 상황이오.”


다카도라가 혀를 차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관백 전하는 리큐 거사를 할복하게 할 거요. 표면적으로야 전쟁에 대해 반대와 다기들을 비싸게 팔아 이득을 취한 것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리큐 거사의 오만함에 있을지도······. 거기에다가 목상 사건이 터졌으니, 원 참.”


“오만함이라니요?”


다카도라의 이야기에 우에스키와 마모루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얼굴을 들었다.


“와비차라 하여 서민적이면서도 수양을 중히 여기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작은 다실과 작고 낮은 다실입구를 만들어서 다실로 들어오려면 모두 무릎을 꿇게 했소. 다이묘들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고 관백 전하도 예외 없이 고개를 숙이게 했으니 오죽했겠소. 그리고 히데나가공이 병 치료차 거성으로 돌아간 이후 리큐 거사의 정치에 대한 관여가 많아졌소. 관백 전하는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시는데, 리큐 거사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으니, 관백 전하의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것이지요.”


가만히 듣고 있던 우에쓰키가 한마디 했다.


“일본의 앞날에 어둠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공의 죽음과 리큐 거사의 일, 그리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명나라 정벌이 어떤 소용돌이를 일으킬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카도라는 앞을 내다보는지 멀리 상수리나무 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히데나가의 죽음을 애도하는지 서녘 하늘이 다른 날 보다 더 붉게 물들고 있었다.


마모루는 다카도라를 힐긋 돌아보고는 장례에 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을 멀리 바라보았다.


“세상이 평온해지면, 작은 일에서부터 권력에 아부하는 자들이 나타나게 되고,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암암리에 움직이게 된다오. 앞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날 거라 보오. 우리는 그 일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일본의 평화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야 하오. 모두 관백 전하를 위한 일이니, 최선을 다해 주시오.”


다카도라는 비장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며 조용하게 말을 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된 듯이 조용히 고개를 끄떡였다.


코가와성으로 돌아온 다카도라는 앞일을 걱정했다.


그동안 관백의 뒤에서 히데나가가 잘 보좌했기에 정국이 안정되었다.


또한 행정적으로 일 처리를 원만하게 하여 혈기 왕성한 히데요시의 뒤처리를 잘하여 정국 운영에 누수가 생기지 않도록 권력을 튼튼히 받치는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해 왔다.


그런 그가 죽음으로 전국은 또다시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히데야스는 지혜와 힘이 없다. 히데츠구 또한 젊음뿐이지 않는가? 관백의 유일한 상속자인 츠루마츠는 너무 어리니···. 하늘에 지혜를 빌려야 할 때로다.’


다카도라는 일개 아시가루에서 전공을 세우며, 자신의 영달을 위해 아니 자신의 출세에 시기하는 자들과의 다툼으로 어쩔 수 없이 계속 주군을 바꾸어 왔다.


이제 겨우 히데나가의 오른팔로 최고의 줄을 잡고 승승장구 출세의 길을 기약했는데, 느닷없이 히데나가가 죽어 버린 것이다.


히데야스는 도요토미 씨(氏) 이지만 별로 영향력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히데야스를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달려 온 자신의 삶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


히데나가의 장례식을 마치고 섬으로 돌아온 마모루가 다른 원로들과 둘러앉았다.


“신조와 그 동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두 원로를 쳐다보았다.


두 원로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촌장, 앞으로 어떻게 하실 예정이오? 누군가 우리 쪽 움직임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요?”


“돌아온 쥰세이에게 그동안의 일을 보고 받았습니다. 신조와 게닌들의 죽음은 저의 불찰 때문입니다. 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아직 우리의 정체가 드러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목상에 관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난 것이니······.”


말을 하다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촌장, 쥰세이가 데리고 온 두 여자는 어떻게 할 거요?”


마모루가 말을 하다 생각에 잠기자 그를 넌지시 바라보고는 후지마로 원로가 한숨을 쉬며 다그쳐 물었다.


“우선 섬에서 다른 아녀자들과 공동생활을 하도록 하고 적응 여부를 살펴보아야지요.”


“저들로 인해 여기가 위험해지지 않을까요?”


이번에는 스오 원로가 군침을 흘리고 있는 후지마로 원로를 보고는 혀를 찼다.


“우리의 일이 무엇입니까? 모든 일이 생명과 직결된 일입니다. 우리에게 협조한 자들을 우리가 보살펴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들은 우리를 믿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야 그렇지요. 다만, 아직 어린 나이라 그냥 저렇게 살도록 두지는 않겠지요.”


후지마로 원로의 말에 마모루가 고개를 흔들었다.


“쥰세이가 코헤이란 여자를 마음에 들어 하니 그녀도 쥰세이가 좋다면 함께 살도록 배려해야겠지요.”


“히데나가공의 장례식이 대단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괜히 헛기침하는 후지마로 원로의 얼굴을 보고는 스오 원로가 화제를 돌렸다.


마모루가 히데나가의 장례식에 관한 이야기를 두 원로에게 들려주었다.


열려 있는 장지문 너머 바다 위를 배회하는 갈매기를 바라보며, 마모루가 한숨을 쉬었다.


“히데나가공이 갑자기 쓰러졌다는 것이 맘에 걸립니다. 그가 죽으면 가장 이익이 되는 자가 누굴까요?”


“글쎄요. 아무래도 히데요시의 정권이 흔들리겠지요. 그렇게 되면,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자가 아닐까요? 물론 간토의 너구리도 이익을 보겠지만.”


스오 원로가 후지마로 원로의 동의를 구하는 듯 바라보며 말을 했다.


“그렇지요. 그런데 히데나가공이 조선과의 전쟁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전쟁이 실제 일어나지 않을까요? 물론 리큐 거사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고 들었소만, 물론 간토의 너구리도 마찬가지고요.”


간토 지방의 영주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히데나가와 마찬가지로 여러 사정을 들어 전쟁을 반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너구리인가?


그의 진심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네, 두 원로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히데요시 정권의 혼란과 전쟁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자들은 일부 거상들 즉, 미리 전쟁 물자들을 매집한 거상들이겠지요. 전쟁이 아니라 무역으로 먹고살기를 바라지만, 벌써 자기 살길을 모색한 무리와 그렇지 못한 상인들 간의 대립이 점점 심해질 것입니다. 근래에 소큐의 움직임도 그렇고 아무래도 또 다른 변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다른 변고라니요? 뭐, 우리 같은 자들이야 정국이 혼란할수록 좋소이다. 그렇지 않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후지마로 원로님. 하지만, 이 일로 인하여 코카와성에서 일정들을 당기고 싶어 합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불리한 형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히데나가공의 지원으로 활동할 때는 어느 정도 보장이 되지만, 만약 다카도라 성주가 변심을 하게 되면 우리의 운명이 얄궂게 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나도 촌장의 생각에 동의하오. 다카도라가 누구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다가는 큰코다칠게요. 허 참! 어떤 좋은 수가 없겠소? 이러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우선, 다카도라 성주의 지시를 따라야겠지요. 그러면서 성주의 약점을 잡아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성주의 약점은 자신이 만들어 주었다.


그 약점이 알려지는 순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성주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료우타가 섬의 운명을 위한 안배가 될 수 있을까? 행여 기억이라도 돌아오게 된다면···.’


료우타를 생각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라나 일행은 언제 보낼 거요?”


“아직 료우타의 닌자기술이 부족합니다. 그 아이의 수련이 올라 올 때까지 최대한 미루어 보려고 합니다.”


*


신조를 찾으러 갔던 사카야마가 급히 섬으로 돌아와 신조 일행의 행적에 대한 조사 내용을 보고했다.


“자네 무슨 다른 할 말이라도 있는가?”


사카야마가 무슨 말을 하려다 머뭇거렸다.


“아, 아닙니다.”


허공을 잠시 바라보던 사카야마가 뭔가 결단을 한 눈으로 마모루에게 고개를 돌렸다.


“리큐 거사의 목상 사건을 재검토해야 할 듯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게, 촌장님도 잘 아시다시피 신조 일행이 리큐 거사의 목상 사건을 조사하다가 당했습니다. 리큐 거사의 소문과 목상 사건이 발생하기 얼마 전에 우리에게 청부의뢰가 되었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사카야마를 보던 마모루의 눈이 커지며 잠시 흔들렸다.


“사실, 나도 부담이 되었다네. 청부를 승낙하고 나서부터 리큐의 소문이 나돌기 시작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일이 확대될 줄은 몰랐네.”


“그래서, 이번 리큐의 정보를 전달해 줄 때 그들을 다시 한번 더 엄밀히 미행할까 합니다만.”


마모루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미행을? 위험하지 않을까? 저들이 우리의 정체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면, ·····쉽지 않은 결정이군.”


“우리 조직의 안위와 관련될 수 있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좋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자네 혼자 직접 임무를 수행하게.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세나.”


신조의 죽음, 아니 눈동자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기에 좀 더 시간을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월 초,


달이 서쪽으로 기우는 시각에 카이토가 난젠사 근처의 오동나무 아래 흙을 파고는 주변을 살핀 뒤 상자 속에 첫 청부 보고서를 넣고 흙으로 다시 묻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약 이 각이 지나자 두 명의 그림자가 오동나무 아래로 숨어들었다.


한 명이 주위를 살피는 동안 다른 복면 하나가 오동나무 아래에서 상자 속 두루마리를 찾아 품에 넣었다.


잠시 무엇인가 말을 주고받고는 산 위로 올라가다가 다시 서쪽으로 갔다.


얼마 못 가 방향을 바꿔 남쪽으로 내려갔다.


혹시 있을 미행을 의식한 행동으로 보였다.


쇼렌인사 뒤 작은 암자에서 다른 복장으로 변복하고 나와서 히가시산의 능선을 따라가다 고마쓰 골짜기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극도로 주위를 경계하며, 무엇인가 손짓하고는 어디론가 빠르게 사라졌다.


사카야마가 고마쓰 골짜기에서 달이 떠오르기도 전에 은폐하고 있다가 새벽녘 누군가 스쳐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몰래 고개를 내밀어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주변이 다시 조용해지자 은폐물로 몸을 숨기고는 잠을 청했다가 신시에 교토의 오마찌 만물상으로 돌아왔다.


별채 침실로 들어가자마자 잠을 청한 사카야마가 해가 머리 위를 지나갈 때쯤 별채에서 나와 어딘가를 들렀다가 오후 해 질 무렵 돌아왔다.


“그럼 놓쳤단 말인가?”


큰 오마찌가 놀라며, 물었다.


“놓쳤다고도 볼 수 있고 아니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놓친 거면 놓친 거지, 무슨 그런 말이 있나?”


“제 말을 끝까지 들어 보십시오. 지난번 게닌들 때문에 고마쓰 골짜기에서 놓쳤기에, 미리 고마쓰 골짜기에 숨어들어 가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두 복면이 골짜기로 들어왔습니다. 그곳에 세 채의 별장이 있는데, 그 세 채의 별장을 다 이용한 것 같기는 합니다만, 낮에 그곳의 별장들을 조사했습니다. 한 채는 지금 비어 있고 다른 두 채 중 한 채는 이마이 소큐의 소유이고 다른 한 채는 마에다 겐이의 별장입니다.”


“마에다 겐이? 두 채 중 어느 한 곳으로 두 복면이 들어갔다는 말인가?”


“정황상 마에다 겐이의 별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자는 종교 관련 담당뿐만 아니라 교토의 치안을 담당하는 오 부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그렇다면 그자가? 아니지. 청부는 사카이 상인들에 대한 것이 아닌가?”


“저도 그런 부분이 걸려서 조사를 좀 더 해 보았습니다.”


성미가 조금 급한 큰 오마찌는 답답한 듯이 어서 말하라며, 손짓했다.


사카야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혹시나 해서 비어 있는 별채가 누구 것인지 알아보고 왔습니다. 그 별채에 대해 아는 자가 극히 드물어 알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주인을 알아내기 어렵다는 사실 자체가 의심스러운데 그게 묘하게도 예전 오미의 성주가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히데요시와의 전쟁에서 지면서 빈집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빈집과도 관련이 없다는 것인가?”


“좀 더 들어 보십시오. 지금 그 오미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큰 오마찌가 잠시 생각하더니,


“그렇지! 이시다 미츠나리로군. 하하하. ·····이런.”


오미의 주인을 맞추어 기분이 좋아 웃다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웃음을 뚝 멈추었다.


“맞습니다. 사카이의 감찰을 겸하고 있는 5부교 중 으뜸인 자죠. 다만, 다른 누군가 그렇게 오해하도록 그 빈집을 이용했다고 할 수도 있으니 쉽게 결론을 내리면 안 될 것 같습니다만, 그 빈집을 이용하여 혼란케 할 수 있는 자는 분명 오미와 그 저택에 대해 잘 아는 자일 것입니다.”


관백 히데요시의 고소(小姓)인으로 자라 교토의 부교가 된 이시다 미츠나리.


어릴 때부터 히데요시의 고소(주군의 시중을 드는 무사로 온갖 궂은일을 하였으며, 때로는 주군의 남색 상대가 되기도 한다)가 되어 히데요시를 보좌한 인물로, 무장으로서의 능력보다 행정업무로 인정받고 있었다.


각 영지의 토지조사와 영지 분할 등을 담당하였으며, 전국이 통일되기 전 각 세력과 히데요시와의 관계에서도 복종하게 만드는 등 외교에서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히데나가의 사후에는 관백의 재정까지 담당하는 등, 히데요시의 주요 가신 중 한 명이었다.


히데요시는 자신이 어릴 적 오다 노부나가의 조오리(신발) 담당이었기에 미츠나리의 그러한 신분과 충성심, 그리고 현명한 판단력을 높이 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5부교 중 두각을 나타나게 되었고 실무적으로 2인자 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렇다면······, 넓게 보면 5부교나 사카이의 거상 중 누군가가 되겠네.”


“허 참, 제가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추리를 하시는군요. 우선 그 정도로 범위를 한정해야 할 듯합니다. 그리고 근처 소큐의 별장이 있다는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음, 점점 머리가 복잡해지는군. 쩝”


“아이들을 좀 더 풀어 미츠나리와 소큐를 감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조직들, 특히 마천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잘 알겠네. 마천루는 내가 이야기해 두겠네. 오늘은 좀 쉬게. 자네는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 촌장님과 상의하도록 하게. 섬의 결정처럼 교토나 수도권의 임무와 관련해서 앞으로는 자네가 모든 것을 주관하고 이끌어 가게.”


*


촌장 마모루가 료우타에게 닌자가 습득해야 하는 기본적인 것들과 특별히 주요한 기술들을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전반적인 닌자기술들을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을 배우는 것보다 기본적인 것과 지속해서 혼자서라도 익힐 수 있는 것들을 배우도록 했다.


또한 주요 기술 중 섬에서 최고인 동료들을 붙여 주었다.


료우타가 최고의 기술을 배우는 것에 대해 일부 반발이 있었지만, 지난 대결에서 보인 료우타의 실력에 대부분 경의를 표하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그들의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물론 료우타도 자신의 검술과 단궁 실력을 가르쳐 주었다.


닌자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동안 봄이 턱밑까지 다가와 있었다.


쌀쌀한 바닷바람에 늦게 핀 매화꽃이 살살 불어오는 봄바람에 흩날렸다.


겨우내 땀을 흘리며 익힌 기술들은 초보 수준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중 제일은 수리검 던지기와 호흡 조절하기, 바위나 절벽을 기어오르기였다.


조금만 익혔는데도 일취월장하여 다른 이들이 놀랄 정도였다.


다른 기술들은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특히 닌자의 은둔술과 잠행술을 익히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보법은 타이요우의 건들거림 속에서도 빠르게 익혀 갔다.


타이요우와 보법으로 험난한 기이섬 꼭대기까지 누가 먼저 올라가는지 내기하면 긴 다리 때문인지 둘이 엇비슷해서 한 번씩 돌아가며 이겼다.


얼마 배우지도 않은 료우타가 자신과 엇비슷해지자 타이요우가 신경질적으로 대하며, 더 이상 보법에 대해 알려 주지 않았다.


닌자기술이 얼마나 많은지 그 종류를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적을 교란하기 위한 연막을 만들고 뿌리는 방법, 대나무를 이용해 갈고리를 성벽이나 담 위에 걸고 올라가는 법, 돋우므로 올라가지 못하는 어중간한 담은 칼자루를 받쳐 놓고 올라가서는 칼에 매어둔 줄을 당겨 칼을 회수하는 법, 닌자복을 평상복으로, 평상복을 닌자복으로 순식간에 변복하는 법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기술들을 배워 나갔다.


어떤 것들은 빠르게 습득하였지만, 어릴 적 몸이 부드러울 때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나, 장시간을 요하는 것들은 배우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우선 시간이 부족하여 어려운 것들은 그 활용이나 쓰임새만 익히고 넘어갔다.


주요한 기술 중 닌자라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것 중에 사람들 속에서 변복하는 것이었다.


라나에게 배우기는 했지만, 어딘가 어설픈지 사카야마가 직접 가르쳐 주었지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시간과 장소를 구애받지 말고 변복할 수 있도록 하라는 엄명을 사카야마가 내렸다.


변복은 임무 수행을 위한 절대적인 기술이었으며, 또한 미행하는 적을 따돌리거나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기술이라 특별히 사카야마가 강조했다.


사카야마는 틈틈이 오사카에서 활동하면서 료우타의 일정을 확인하고 지시를 내려 조금이라도 빈틈이 없도록 관리했다.


닌자기술뿐만 아니라 닌자 고유의 암호도 익혔다.


이가뿐만 아니라 고가나 다른 닌자들의 암호도 해석할 수 있도록 훈련했다.


간혹 라나나 센이 찾아와 여유 시간을 가질 때도 있었지만, 총책임자인 사카야마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주지 않았다.


어떤 날은 암호를 외우다가 지쳐 쓰려져 잠을 잔 적도 있었다.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호흡법을 연마하고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기도 했다.


*

교토나 오사카 아니 일본 전국의 사람들이 꽃놀이로 한창이다.


특히 봄의 향기를 내 뿜는 벚꽃들이 남쪽에서부터 시작하여 순식간에 일본 전역을 점령해 나가고 있었다.


봄의 향기와 꽃들의 웃음을 따라 라나와 타이요우 그리고 센은 교토의 벚꽃 놀이에 갔다가 사카야마와 함께 섬으로 돌아왔다.


기이섬과 시오노미섬에서도 몇 그루의 벚나무가 섬을 활짝 웃게 했다.


코카와성으로 갈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벚꽃이 완전히 지기 전 코카와로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교토와 오사카를 돌아보고 섬으로 들어 온 사카야마가 편안한 얼굴로 료우타에게 말을 했다.


“료우타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이제 실전으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지난번처럼 실수하지 말고. 사흘 후야.”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이젠 시간이 부족하니, 이틀 동안 잠행술을 집중적으로 연마하도록 하자.”


어젯밤 잠을 설쳤다.


사카야마가 말한 날이 되었다.


료우타의 닌자기술을 최종적으로 시험하는 날이다.


지난번처럼 몇 가지만 시험을 받는 것이 아니다.


종합적인 능력을 평가받는 날이라 잔뜩 긴장한 채 밤이 되길 기다렸다.


“드디어 오늘 밤이다. 촌장님 집으로 숨어들어서 촌장님이 가장 아끼는 닌자검을 훔쳐 오도록. 만약 실패하면, 사흘 동안 저 소나무 위에서 은둔술로 있는 거야. 알겠지?”


“네, 사카야마님.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스승님이라고 하니 쑥스러운데. 내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잘하게나.”


라나와 센도 격려해 주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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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3 ST아리리
    작성일
    22.05.25 16:36
    No. 1

    작가님,, 이정도 글 쓰려면 사전 조사로 '대망'시리즈 정독은 필수였겠네요..

    내말이 맞죠??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한림팔기장
    작성일
    22.05.25 17:16
    No. 2

    네, ㅎㅎㅎㅎ
    임진왜란 관련 소설과 논문들을 읽었습니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또 또 읽었고요
    이 소설을 쓸 때 아마도 년 100권 정도 읽었나 봅니다.

    요즘은 손이 가지 않아 절독 중입니다 만...
    대신 웹소설로 ㅋㅋㅋㅋ
    저는 책으로 읽는 걸 좋하 하고 지금도 그렇지만....

    여튼 감사~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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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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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조선의 바다 1 22.06.18 50 0 10쪽
79 통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2 22.06.17 52 0 10쪽
78 통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1 22.06.17 55 0 9쪽
77 풍전등화 2 22.06.16 55 0 9쪽
76 풍전등화 1 22.06.16 54 0 10쪽
75 비싼 목숨 값 22.06.15 5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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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산적 무리들 2 22.06.14 5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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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도망자 22.06.13 57 0 11쪽
69 미치나오를 죽이다 22.06.12 54 0 10쪽
68 어머니의 죽음 22.06.12 57 0 10쪽
67 출생의 비밀 22.06.11 77 0 10쪽
66 함께 살자 22.06.11 50 0 10쪽
65 무너진 계획 22.06.10 52 0 10쪽
64 여동생 22.06.10 55 0 10쪽
63 카에데 부인 22.06.09 51 0 13쪽
62 가시마성 2 22.06.08 57 0 10쪽
61 가시마성 1 22.06.08 59 0 11쪽
60 조선 도공들 2 22.06.07 59 0 11쪽
59 조선 도공들 1 22.06.07 54 0 12쪽
58 왕년의 해적들 2 22.06.06 55 0 9쪽
57 왕년의 해적들 1 22.06.06 73 0 13쪽
56 구루시마의 의심 22.06.05 54 0 11쪽
55 료우타의 검술 22.06.05 55 0 10쪽
54 숨은 실력자 타이요우 22.06.04 56 0 9쪽
53 조선 침략의 전초 기지 22.06.04 59 2 13쪽
52 기억에 없는 기억들 2 22.06.03 55 0 9쪽
51 기억에 없는 기억들 1 22.06.03 64 0 12쪽
50 남만인 배 글로벌호 2 22.06.02 57 0 11쪽
49 남만인 배 글로벌호 1 22.06.02 64 0 12쪽
48 과거에서 온 추적자들 22.06.01 68 0 13쪽
47 스스무의 회상 22.05.31 72 0 13쪽
46 하이난 3 22.05.30 67 0 16쪽
45 하이난 2 22.05.29 102 0 22쪽
44 하이난 1 22.05.28 64 0 20쪽
43 꽃을 찾는 벌 22.05.27 73 0 22쪽
42 벌을 찾는 꽃 22.05.26 72 0 25쪽
41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5 22.05.25 75 0 18쪽
40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4 22.05.24 68 0 17쪽
39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3 22.05.23 77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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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1 22.05.21 70 0 22쪽
36 순정 2 22.05.20 73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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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토끼 사냥 22.05.18 84 0 25쪽
33 오마찌 칸의 죽음 22.05.17 75 0 20쪽
32 불타는 오마찌 별채 22.05.16 83 0 19쪽
31 고가 닌자 마리지천 22.05.15 102 0 25쪽
30 함정 22.05.14 83 0 27쪽
29 암살자를 막아라 2 22.05.13 86 0 26쪽
28 암살자를 막아라 1 22.05.12 85 0 25쪽
27 적진 속으로 22.05.11 91 0 23쪽
26 죠유지와의 재대결 22.05.10 87 0 25쪽
25 카오루 부인 22.05.09 105 0 22쪽
24 히데츠구의 의심 22.05.08 115 0 24쪽
23 이가분지 2 22.05.07 95 0 16쪽
22 이가 분지 1 +2 22.05.06 97 1 19쪽
21 반항아와의 만남 +2 22.05.05 93 2 19쪽
20 여인들 +2 22.05.04 93 1 21쪽
19 산적 사이가 +2 22.05.03 86 1 25쪽
18 이가 닌자 간스케와 고에몬 +3 22.05.02 89 2 26쪽
17 기억의 저편에서 온 자들 +1 22.05.01 104 1 21쪽
16 유곽 아이루 +2 22.04.30 92 1 22쪽
15 닌자검 +2 22.04.29 95 1 22쪽
14 닌자되다 6 +1 22.04.28 100 1 26쪽
» 닌자되다 5 +2 22.04.27 105 2 25쪽
12 닌자되다 4 +2 22.04.26 110 1 24쪽
11 닌자되다 3 +2 22.04.25 123 1 25쪽
10 닌자되다 2 +2 22.04.23 121 1 23쪽
9 닌자되다 1 +4 22.04.22 159 1 25쪽
8 올빼미섬 7 +2 22.04.21 208 1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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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올빼미섬 5 +2 22.04.19 200 1 28쪽
5 올빼미섬 4 +2 22.04.18 216 1 28쪽
4 올빼미섬 3 22.04.16 236 2 29쪽
3 올빼미섬 2 +3 22.04.15 284 1 27쪽
2 올빼미섬 1 +4 22.04.14 433 3 29쪽
1 안개 속 검은 그림자 +8 22.04.13 1,060 3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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