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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동인

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한림팔기장
작품등록일 :
2022.04.13 12:33
최근연재일 :
2022.08.02 09: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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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4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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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6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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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0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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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기억의 저편에서 온 자들

역사는 반복된다.




DUMMY

이름 모를 꽃들이 하나둘 피어나다가 온 산과 들이 봄꽃 향기로 뒤에 덮였다.


코카와성으로 들어갈 날짜가 되어 라나와 센, 그리고 료우타가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섬을 떠났다.


라나와 센, 그리고 타이요우가 배를 타고 오사카로 가기로 했지만, 료우타와 사카야마는 육지를 통해 사카이로 갔다.


바닷길뿐만 아니라 산을 넘고 마을을 지나 올빼미섬으로 오는 길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산과 들을 지나 사흘 만에 코카와성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사카야마와 함께 산속에서 밤을 지새웠으며, 호를 파고 숨어서 낮을 보내기, 있었던 자리의 흔적 없애기, 임무 수행 후 적이 추격할 때 추격을 피해 무사히 돌아오기 위한 여러 방법과 임무 수행 전 도주로를 미리 확보하는 방법 등을 배웠다.


도주로에 자기만 아는 올가미, 그리고 나무를 휘어 줄로 묶어서 적을 공격하게 하고, 화약을 설치하여 줄을 건드리면 터지게 하는 방법과 적과 대면하여 포위되었을 때, 연막 화약을 터뜨려 적의 시야를 어둡게 하는 법 등을 실전처럼 배웠다.


도주로가 올빼미 섬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면서 둥지로 돌아올 수 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구마노 강을 따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을 따라 도주로를 역으로 올라갔다.


여러 도주로를 돌아 키노강 상류에서 강물을 따라 내려와 코카와성으로 향했다.


료우타의 가슴은 사카야마를 따라가며 닌자로서 조금씩 뿌듯함이 묻어났다.


처음 가는 길이라 무척 힘들고 피곤했지만, 초보 닌자의 가슴은 어느덧 닌자의 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닌자의 길이 첩자와 청부살인 등을 주업으로 하는 것에 대한 망설임도 있었지만,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도전으로 모든 의문과 망설임을 가슴 한구석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료우타가 코카와성으로 들어가서 칸베에와 그동안 있었던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올 때까지 사카야마가 하시모토의 한 절에서 기다렸다.


료우타가 돌아오자 두 사람은 다시 이마이 고개를 넘어 오사카로 향했다.


사카이로 들어 온 료우타 일행은 번화한 거리를 구경했다.


거리는 따스한 봄 햇살과 함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얼마 전 지진으로 일부 건물들이 무너져 목재 거리에는 일꾼들이 쉴 새 없이 톱을 켜고 있었다.


잘 잘린 목재들이 한쪽에 쌓여 있었고 그 목재들을 실은 마차들이 줄을 이어 사카이 밖으로 나갔다.


목재 거리가 끝나자 주물 거리로 들어섰다.


많은 상점에서 철포를 제작하고 있었다.


“와! 저 많은 철포 좀 보십시오. 사카야마님! 관백이 천하통일 후 저렇게 많은 양은 필요 없는 것 아닌가요?”


“곧 전쟁이 일어날 거란 소문이야. 관백이 명나라와의 전쟁을 위해 먼저 조선을 침략한다더군. 아, 참. 이 주물 거리는 이마이 소큐가 조성한 거리야. 노부나가 때 취락을 형성해서 지금까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소큐가 엄청난 거상이 되었지. 녹봉 2천 석이 넘는 영지도 하사받았다지. 여기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니 잘 봐두게”


“알겠습니다. 어쨌든 대단하네요.”


두 사람은 여러 이야기를 하며 사람들과 상점들을 구경했다. 모르는 것들을 물어보면 사카야마가 자세하게 설명을 곁들여 말해 주었다.


상인복장의 두 사람이 물건도 사지 않으면서 주인들과 흥정도 하고 물건의 품질에 대해서도 물어보며 상점들을 거쳐 갔다.


마차를 피해 이번에는 생선 상점들이 늘어 선 거리로 들어갔다. 들어서기도 전에 생선 비린내가 진동했다. 코가 예민한 료우타가 코를 막았다.


온갖 생선들이 눈을 뜨고 길거리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저건 돼지고기 아닌가요? 선어 거리라고 했는데 웬 돼지고기입니까?”


료우타가 한 손으로 코를 막고는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며 물었다.


“하하하, 저건 바다에 사는 고래 고기야. 얼핏 보면 돼지고기처럼 보이지. 한번 먹어 보자고.”


“고래 고기라고요. 물고기인가요?”


“어허, 그럼 바다에서 잡히는 게 물고기지 육고기일까? 저 녀석은 길이가 오십 자가 넘는 것도 있어. 등에 입이 있어 그곳으로 물을 뿜기도 하지. 어부들이 먼바다까지 나가서 잡아 오는데, 저 한 놈 잡기가 멧돼지 백 마리 잡기보다 더 어렵다는군.”


“와, 대단하네요. 저도 한번 보고 싶네요. 살아 있는 것을요.”


“저 고래 고기가 백성들에겐 아주 중요한 음식이야. 예전 왕가에서 무슨 일로 육고기를 못 먹게 했는데, 그게 벌써 몇백 년이 되었을 거야. 뭐 가난한 백성들이야 알게 모르게 먹는다고 하지만, 제법 잘 차려진 상에서는 생선 외 다른 고기류를 찾아보기 힘들지. 저 고래 고기가 육고기 맛이 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아.”


“그래서 상에 올라오는 음식이 전부 생선류 군요.”


한 음식점으로 들어가 고래 고기를 먹었다.


약간 비릿하면서도 돼지고기와 다른 질감이었다.


료우타가 음식을 먹으며 들은 고래 이야기가 신기하고 경이로웠지만, 생전 처음 먹어 보는 고래 고기 맛은, 다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카야마가 음식값을 치르고 있는 동안 먼저 음식점을 나와 생선 가게에서 상인이 회를 뜨고 있는 것을 넋 놓고 구경하고 있었다.


비린내에 익숙해졌는지, 회 뜨는 모습이 신기하여 손을 모으고는 정신을 팔고 있었다.


“꼼짝 마라! 이놈.”


여러 명이 료우타를 둘러싸고 칼로 위협했다.


눈앞에 칼을 보고는 놀라 엉거주춤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칼과 이상한 물건들을 손에 쥔 자들이 료우타를 몰아세웠다.


“그동안 네놈을 잡기 위해 몇 개월을 고생했는지 모른다. 젠장! 여기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 놈을.”


“누, 누구신지요?”


“허, 이놈이 시치미를 뚝 떼네. 잔말 말고 조용히 우리랑 가자.”


우두머리인 자가 눈짓하자, 료우타를 둘러싸고 있던 무리가 가까이 다가오며 압박했다.


눈이 매섭게 생긴 자가 줄로 료우타를 묶으려 다가오자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다.


“당신들은 누구요?”


마침 사카야마가 모리배들을 밀치고 료우타에게로 왔다.


“넌 또 누구냐? 다치고 싶지 않으면 끼어들지 말고 비켜라! 우리는 저놈에게 볼일이 있다.”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자가 앙칼스러운 목소리를 뱉었다.


“여긴 나와 같은 일행이오. 무슨 일로 그러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멀리서 온 상인이오. 여기 사카이에서 상인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을 거요.”


“저놈은 미치나오공을 죽인 놈이다. 다치기 싫으면 썩 물러나라. 뭣 하느냐? 당장 저놈을 묶어라!”


사카야마의 말을 무시하고는 지시를 하자 다섯 명의 무리가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면서 경계했다.


“우리는 코카와성에서 온 상인들이오. 우리를 건드리면 당신들 목숨을 보전해 줄 수 없소.”


“조금 전과 말이 다르군! 크크. 어디 누구 목숨이 보전되는지 보자. 두 놈 다 포박해라.”


사람들이 많은 거리에서 막무가내인 자들을 무력으로 대항하기가 껄끄러웠다.


상인복장으로 변복하였고 코카와성의 상인이라고 했기에 무턱대고 칼을 뽑을 수 없어 난감했다.


점점 압박해 오는 무리를 보며 빠져나갈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사카야마가 료우타를 향해 눈짓했다.


‘······.’


무슨 뜻인지 몰라 사카야마를 향해 입으로 물었다.


“줄 행 랑 !”


한 글자 한 글자를 말하는 사카야마의 입 모양을 보며 료우타가 다시 입술 모양을 내며 되물었다.


“아! 36계 말씀이죠?”


“이얏!”


무리 중 하나가 칼을 들고 공격해 왔다.


“지금이야. 도망쳐···.”


“멈춰라!”


어디서 나타났는지 구경꾼들을 헤집고 병사들과 무사가 무리와 료우타 일행을 애워쌓다.


삼십육계를 하려던 두 사람과 공격하려던 무리가 누군가의 외침에 어리둥절하며 한 곳을 쳐다봤다.


“웬 놈들인데 사카이에서 칼을 들고 설치느냐? 나는 사카이의 치안 담당 기무라 준케이다.”


“아, 저는 가시마성의 다카키라고 합니다. 저놈은 구로시마가의 고노 미치나오공을 죽인 놈으로 포박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 어떤 놈이냐?”


다카키가 료우타를 가리켰다.


“아닙니다. 우리는 코카와 번의 도도 다카도라 성주의 상인들입니다. 여기 코카와성에서 발급한 통행증이 있습니다.”


료우타가 통행증을 준케이에게 보여 주었다.


통행증에 시오노미 료우타에 대한 통행 허가증이 기록되어 있었다.


“음, 저자가 분명 미치나오공을 죽인 자가 맞는가? 내가 듣기로는 미치나오공이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알고 있다.”


“그, 그게 미치나오공이 병이 아니라 살······, 하여튼 저놈이 성주님께 몹쓸 짓을 해서 잡아가려는 것입니다”


“그래? 저자는 코카와성 소속의 상인으로 특별 통행증을 소지하고 있는데, 잘못 본 것이 아닌가?"


“그, 글쎄요. 분명 미치나오공을 죽인 놈······, 아니 닮아서······.”


다카끼가 얼굴에 난 흉터를 실룩거리며, 료우타를 이리저리 훑어보면서 말을 더듬었다.


“그럼, 행정청으로 가서 사실을 따져 보면 알게 되겠지. 그렇게 하겠는가? 만약 저자가 미치나오공과 무관한 자로 판명이 나면 네놈들의 목숨은 보전해 줄 수가 없다. 사카이에서 칼을 휘두르다니, 또한 코카와 성주는 무서운 사람이라서 말이야.”


“아, 아닙니다. ······닮기는 했지만 저희가 잘못 본 것 같습니다.”


“좋다. 그럼 돌아가라. 한 번 더 사카이에서 함부로 칼을 뽑거나 치안을 어지럽히면 그때는 용서하지 않겠다. 알겠는가?”


벌겋게 달아오른 다카키가 준케이에게 목례하고는 무리를 이끌고 구경꾼들을 헤치고 가면서 뒤를 한번 슬쩍 보고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료우타와 사카야마도 치안 담당 준케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오사카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들은 내가 미치나오라는 자를 죽였다고 했다. 살인자가 나와 닮았을까? 아니면, 내 기억 저편에서 온 자들일까······?’


“사카야마님, 고노 미치나오공이라는 분은 어떤 분입니까?”


다카키 일행이 사라진 곳을 힐끔 보고는 간략하게 가시마성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빠른 걸음으로 오사카를 향해 걸어갔다.


“가시마성이라고 하면 아마 구로시마 미치후사가 영주로 있는 성일 거야. 그곳 성주의 동생이 얼마 전에 죽었다는 소문은 있긴 했는데···.”


사카야마를 따라 걸으며, 사카야마의 이야기와 다카키라는 자를 기억 속에서 떠올려 보려 했지만, 가시마성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다카키라는 자도 낯선 이름과 얼굴이었다.


‘오사카에서 만난 여인도 날 아는 것 같았어. 분명 나는 그자와 닮았거나 그들이 아는 자일 가망성이 높아. 음·······.’


료우타의 복잡한 마음과 달리 두 사람은 사카이의 여러 관문을 지나 야마토 강가에 다다랐다.


야마토강은 나라 지방에서 흘러들어 바다 근처에서 요도강 하구와 만나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저기 셋슈의 영주 소큐의 저택이 보이는군!”


“대저택이군요.”


“후후후, 웬만한 시골의 성보다 낫지.”


‘소큐가 리큐 거사의 할복 이후 움직임이 없다. 왜일까?’


사카야마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잠시 걸음을 늦추었다.


료우타도 따라 걸음을 늦추며 사카야마를 보다가 사카이에서 있었던 일을 떠 올려 보았다.


걸음을 멈추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머릿속은 달랐다.


잠시 멈췄던 걸음을 재촉하여 소큐 저택을 바라보며 오사카로 들어갔다.


아와지섬으로 넘어 가는 해를 따라 세토내해에 붉은 노을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 노을 속에 여러 배들이 들어와 정박하고 있었다.


중국 배와 남만 배도 보였다.


그 배들에서 쏟아져 나온 뱃사람들이 오사카 거리와 사카이 번화가를 메우고 있었다.


이국에서 온 뱃사람들은 일본인들과 여기저기에서 시비가 붙기도 하였지만, 그들 씀씀이로 인해 유곽과 장사꾼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각 상점은 그들에게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그들 소매를 붙잡아 상점 안으로 끌어들였다.


유곽의 기녀들도 씀씀이가 헤픈 그들을 유혹했다.


점점 어둠이 짙어 가자, 복작거리던 거리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져 갔다.


두 사람도 걸음을 바삐 움직여 오마찌 만물상 안으로 들어갔다.


매캐한 책 냄새가 코를 찔러 왔다.


오마찌는 없고 일 보는 아이가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뒷문으로 나가 별채로 갔다.


라나와 일행들이 저녁 식사를 위해 모여 있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식탁에 앉아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저녁 식사 이야깃거리로 도주로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료우타는 올빼미의 길이 너무 힘들고 버겁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모습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어이없다며 웃었다.


“돌 위에서도 3년이라 했다!”


타이요우의 말속에 비웃음이 있었다.


그런 농담도 있냐며 평소보다 더 크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닌자가 아니라 부처님이 되겠네요.”


료우타의 대답에 모두 어이가 없어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타이요우의 강렬한 눈빛이 온몸을 강타하는 것 같아 고개를 약간 숙였다.


“농은 그만하고······.”


저녁상을 물린 뒤 사카야마가 일행들을 모아 놓고 앞으로 진행될 일들을 일러 주고는 각자 모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도록 당부했다.



료우타가 사흘에 걸쳐 산속을 헤쳐 왔기에 온몸이 지쳐있었다.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방으로 돌아와 목욕 후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창문이 열렸는지 밤기운이 스며들어 왔다.


봄기운이라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밤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차가운 밤공기에 몸을 옹그리던 료우타가 살며시 눈을 떴다.


차가운 밤바람에 살기를 느끼며 조용히 눈을 떠 어둠 속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창문 닫히는 소리와 멀리 발걸음 소리가 사라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료우타가 아직 잠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침입자가 물러났다.


긴장되고 안심이 안 되어 침상에 앉아 눈을 감았다.


적막감이 감돌고 있는 방안에 눈을 감고 있는 료우타, 풀벌레 소리만이 귀를 어지럽혔다.


‘누굴까? 분명 살기가 있었는데······?’


일각이 지날 즈음 조심스럽게 일어나 창문을 단속한 뒤 혼잣말하고는 피곤이 가시지 않은 지 곤한 얼굴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풀벌레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려는 순간,


“사악삭.”


미세하고 생소한 소리가 풀벌레 소리 속에 얹혀 숨어들어 왔다.


‘분명 풀벌레 소리와 다른 소리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어둠 속을 살폈지만 어떤 움직임도 살기도 느낄 수가 없다.


공기의 흐름도 정상이다.


적막감 속에 아무 움직임도 변화도 없다는 것이 더 긴장되었다.


손에 땀이 배어 나오고 입안이 바짝 말라왔지만 침을 삼킬 수가 없었다.


사카야마와 산을 헤쳐 오면서 여러 이야기를 들은 게 있다 보니 그 이야기들에 자신을 몰아넣고 있었다.


살며시 뜬 눈에는 창문이 꽉 닫혀 있었다.


초고수의 닌자가 다가오고 있다면, 침을 삼키는 순간 비수가 날아들 것이다.


더더욱 긴장된 몸은 경직되어 갔다.


‘혹, 이것도 닌자의 훈련일까?’


지금까지 많은 훈련 속에서도 이러한 긴장감과 느낌은 처음이었다.


일천한 경험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낯설어서인지 당황스러웠고 점점 더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침입자의 공격을 기다리는 동안 점점 어둠이 눈에 익어 갔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움직임도.


방 바깥에서도, 창문 너머에도 사람의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텅 빈 방에 허무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누운 채로 버텼다.


얼마 후 무엇인가 움직이는 소리가 반복되고 있었다.


자신 이외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자객의 숨소리. 숨소리가 아니라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반각(약8분)이 지날 무렵,


잽싸게 이불을 침상이 붙어 있는 벽으로 던지며 반대편 벽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침상 머리 위나 그 어디에도 텅 빈 어둠만이 있었다.


당연히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내가 지금 귀신과 싸우고 있는 걸까?’


빈방에 풀벌레 소리만이 창을 넘어오고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여러 생각들을 하면서도 자신이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산을 넘어온 후유증이라 생각하기엔 너무도 이상했다.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 료우타가 용기를 내어 조용히 몸을 낮추고 등잔불이 있는 곳으로 갔다.


잔뜩 경계하며 부싯돌로 불을 켰다.


두근거리는 심장에 몇 번을 시도하고서야 등잔불에 불이 붙었다.


심호흡하고는 반대편 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가 흔들거리는 등잔불을 침상 위 벽에 비추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등잔불에 엄지손가락만 한 검은 물체가 벽에 붙어 있었다.


"독거미? 그래서 사람의 기가 느껴지지 않은 거였어. 엄청나게 겁먹었네. 젠장······. 그런데 누가 거미를 방으로 안내했을까?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은 것인가? 너무하네. 정말. 사흘 동안 괴롭혔으면 되었지."


아직 끝나지 않은 훈련의 연장이라 생각하고는 씁쓸한 얼굴로 되돌아섰다.


두 날의 수리검이 어둠을 가르며 날아가 거미 몸통을 영원히 벽의 장식품으로 만들었다.


‘넌 앞으로 내 삶의 기준이다. 이제 잠을 자도 되려나······!’


*


다음 날 아침, 쥰세이가 방으로 들어오다 벽에 수리검에 꽂혀 있는 독거미를 보고 놀라며 자세히 살폈다.


“누가 여기다 장난질 친 거야?”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온 쥰세이를 보며 사카야마가 무슨 일인지를 눈으로 물었다.


“아 글쎄 벽에다 누가 독거미를 수리검으로 죽여서 꽂아 놓았지 뭡니까.”


“독거미라고···?”


“네.”


사카야마가 쥰세이가 나온 방으로 가 벽에 붙어 있는 독거미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제, 이 방에서 잠을 잔 사람은 료우타 뿐인데···.’


잠시 밖에 나갔던 료우타가 들어오자 쥰세이가 독거미 이야기를 하며 짜증을 냈다.


“하마터면 간 떨어질 뻔했어.”


“무슨? 난 죽다 살아날 뻔했다고. 사흘 동안 고생고생해서 왔는데, 깊은 밤에 독거미로 시험을 볼 줄 누가 알았겠어.”


“아니, 무슨 소리야?”


쥰세이와 료우타가 이야기하는 것을 멀리 듣고 있던 사카야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라나가 코카와성으로 가기 전에 함께 갈 곳이 있다며 료우타를 데리고 사카이로 갔다.


사카야마와 지나온 거리를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번화가 끝 골목에 있는 어느 상점으로 들어갔다.


지난번 타이요우가 들어갔다가 나온 상점이었다.


상점 주인처럼 보이는 사람은 사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라나를 보자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상점의 별채로 들어가 일하는 사람이 가져다준 차를 마시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별채 마당이 꽤 넓군요.”


“이 상점의 주인은 저의 아버지예요.”


“커컥, 네?”


라나의 입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나오자 너무 놀라 차를 마시다가 사레가 걸렸다.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습니다. 정말 라나님의 아버지라는 말씀인가요?”


“네, 사카야마 오라버니의 아버지이기도 하죠. 료우타님이 코카와성으로 들어가면 앞으로 섬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아신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통해 한번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여기 상점과 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예요. 올빼미섬이 있게 된 것도 다 아버지가 상점을 운영하면서 벌어들인 돈으로 시작하게 된 거예요”


너무 놀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라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만큼 앞으로 료우타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죠.”


라나가 문틈으로 들어 온 찬바람에 흔들리는 등잔불을 바라보고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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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통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1 22.06.17 55 0 9쪽
77 풍전등화 2 22.06.16 55 0 9쪽
76 풍전등화 1 22.06.16 5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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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산적 무리들 3 22.06.15 54 0 14쪽
73 산적 무리들 2 22.06.14 5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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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도망자 22.06.13 57 0 11쪽
69 미치나오를 죽이다 22.06.12 54 0 10쪽
68 어머니의 죽음 22.06.12 57 0 10쪽
67 출생의 비밀 22.06.11 77 0 10쪽
66 함께 살자 22.06.11 50 0 10쪽
65 무너진 계획 22.06.10 52 0 10쪽
64 여동생 22.06.10 55 0 10쪽
63 카에데 부인 22.06.09 51 0 13쪽
62 가시마성 2 22.06.08 57 0 10쪽
61 가시마성 1 22.06.08 59 0 11쪽
60 조선 도공들 2 22.06.07 59 0 11쪽
59 조선 도공들 1 22.06.07 54 0 12쪽
58 왕년의 해적들 2 22.06.06 55 0 9쪽
57 왕년의 해적들 1 22.06.06 73 0 13쪽
56 구루시마의 의심 22.06.05 54 0 11쪽
55 료우타의 검술 22.06.05 55 0 10쪽
54 숨은 실력자 타이요우 22.06.04 55 0 9쪽
53 조선 침략의 전초 기지 22.06.04 59 2 13쪽
52 기억에 없는 기억들 2 22.06.03 55 0 9쪽
51 기억에 없는 기억들 1 22.06.03 64 0 12쪽
50 남만인 배 글로벌호 2 22.06.02 57 0 11쪽
49 남만인 배 글로벌호 1 22.06.02 64 0 12쪽
48 과거에서 온 추적자들 22.06.01 68 0 13쪽
47 스스무의 회상 22.05.31 72 0 13쪽
46 하이난 3 22.05.30 67 0 16쪽
45 하이난 2 22.05.29 102 0 22쪽
44 하이난 1 22.05.28 64 0 20쪽
43 꽃을 찾는 벌 22.05.27 73 0 22쪽
42 벌을 찾는 꽃 22.05.26 71 0 25쪽
41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5 22.05.25 75 0 18쪽
40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4 22.05.24 68 0 17쪽
39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3 22.05.23 77 0 19쪽
38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2 22.05.22 71 0 19쪽
37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1 22.05.21 70 0 22쪽
36 순정 2 22.05.20 73 0 22쪽
35 순정 1 22.05.19 79 0 22쪽
34 토끼 사냥 22.05.18 84 0 25쪽
33 오마찌 칸의 죽음 22.05.17 75 0 20쪽
32 불타는 오마찌 별채 22.05.16 83 0 19쪽
31 고가 닌자 마리지천 22.05.15 102 0 25쪽
30 함정 22.05.14 83 0 27쪽
29 암살자를 막아라 2 22.05.13 86 0 26쪽
28 암살자를 막아라 1 22.05.12 85 0 25쪽
27 적진 속으로 22.05.11 91 0 23쪽
26 죠유지와의 재대결 22.05.10 87 0 25쪽
25 카오루 부인 22.05.09 104 0 22쪽
24 히데츠구의 의심 22.05.08 115 0 24쪽
23 이가분지 2 22.05.07 95 0 16쪽
22 이가 분지 1 +2 22.05.06 97 1 19쪽
21 반항아와의 만남 +2 22.05.05 93 2 19쪽
20 여인들 +2 22.05.04 93 1 21쪽
19 산적 사이가 +2 22.05.03 85 1 25쪽
18 이가 닌자 간스케와 고에몬 +3 22.05.02 89 2 26쪽
» 기억의 저편에서 온 자들 +1 22.05.01 104 1 21쪽
16 유곽 아이루 +2 22.04.30 92 1 22쪽
15 닌자검 +2 22.04.29 95 1 22쪽
14 닌자되다 6 +1 22.04.28 100 1 26쪽
13 닌자되다 5 +2 22.04.27 104 2 25쪽
12 닌자되다 4 +2 22.04.26 110 1 24쪽
11 닌자되다 3 +2 22.04.25 123 1 25쪽
10 닌자되다 2 +2 22.04.23 121 1 23쪽
9 닌자되다 1 +4 22.04.22 159 1 25쪽
8 올빼미섬 7 +2 22.04.21 208 1 30쪽
7 올빼미섬 6 22.04.20 216 1 25쪽
6 올빼미섬 5 +2 22.04.19 200 1 28쪽
5 올빼미섬 4 +2 22.04.18 216 1 28쪽
4 올빼미섬 3 22.04.16 236 2 29쪽
3 올빼미섬 2 +3 22.04.15 284 1 27쪽
2 올빼미섬 1 +4 22.04.14 433 3 29쪽
1 안개 속 검은 그림자 +8 22.04.13 1,060 3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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