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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동인

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한림팔기장
작품등록일 :
2022.04.13 12:33
최근연재일 :
2022.08.02 09: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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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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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6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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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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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죠유지와의 재대결

역사는 반복된다.




DUMMY

료우타가 당당하게 반항아를 앞세워 죠유지의 앞으로 나아갔다.


마음과 달리 당당한 모습이 아니었다.


자꾸만 다른 방향으로 가려는 것을 힘겹게 말고삐를 잡았다.


죠유지와 겨루기도 전에 진을 뺐다.


“서로 정정당당하게 대련하도록, 또한 부상당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칸베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은 말을 앞으로 달리게 하여 맞부딪쳤다.


물론 료우타가 제대로 달려갔을 리 만무하다.


겨우 반항아를 달래며 죠유지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고 싶었지만 반항아는 터벅거리며 걸어 나갔다.


죠유지가 먼저 중간에 도착해 료우타가 오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겨우 참았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마!’


료우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겨우 중간 지검에 도착한 료우타를 향해 죠유지가 곧바로 공격을 가했다.


몇 번이나 반항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죠유지의 공격에 당해내지 못하고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났지만, 순간순간 결정적인 공격을 피해 나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반항아를 다루는 솜씨가 조금은 나아졌다.


그제야 료우타의 공격도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말과 말이 뒤엉기고 서로의 장창과 칼이 치열하게 공격과 방어를 거듭했지만 죠유지가 갑자기 말을 오른쪽으로 돌려 공격하자 반항아를 힘겹게 다루며 가까스로 장창을 막아 냈다.


죠유지가 일급 무사답게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장창을 휘둘러 료우타를 위협했다.


그런데 손속에 사정을 둔 것이 아니라 정말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는 듯 료우타의 목숨을 노리는 공격이었다.


죠유지의 모습을 보면서 칸베에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가 펴졌다.


‘어차피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저 정도는 이겨 내야겠지.’


“와!”


두 사람의 대련에 숨을 죽이며 구경하던 병사들이 죠유지의 공격이 우세하자 창과 철포를 들고 하늘을 찌르며 고함을 질렀다.


죠유지의 창끝이 예리할수록 료우타의 칼 또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료우타가 말을 못 다룰 것으로 생각한 자신의 기계(奇計)가 빗나가자 평정심이 흔들린 죠유지의 창은 점점 예리함이 떨어지고 있었다.


반항아를 좀 더 잘 다루게 된 료우타는 죠유지를 거칠게 공격했다.


도도 다카노리가 이들을 멀리서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 또한 료우타와 대결을 한 적이 있기에 죠유지와의 재대결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분명 말을 잘 다루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기마 대결을 한 것 같은데, 덤으로 예측할 수 없는 료우타의 발 공격을 묶은 효과도 있을 거고, 이런 모든 이점을 가지고 대련을 함에도불구하고 절대적으로 유리한 형국이 아니다. 저자는 대련할수록, 시간이 갈수록 실력이 늘고 있다. 알 수 없는 인물, 만약 저자가 적이었다면···. 생각하기조차 싫군.’


다카노리는 고개를 강하게 흔들며, 두 사람의 결투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거칠게 몰아붙이던 죠유지에게 틈이 보였다.


찰나의 틈을 노려 공격하다 반항아를 잘못 다루어 두 말이 살짝 엉겼다.


반항아가 놀라 갑작스럽게 앞 다리를 드는 바람에 료우타가 말에서 떨어졌다.


다행히 질퍽한 땅으로 떨어져 다치지는 않았다.


“자, 인제 그만. 그만하면 되었다.”


죠유지가 땅에 떨어진 료우타를 비웃으며,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장창을 들고 고함을 질렀다.


그의 의기양양한 모습에 병사들도 고함을 질렀다.


자리로 들어가는 죠유지의 뒷모습을 보며, 옷에 묻은 흙을 털어 내고는 뒤로 물러났다.


켄베에 부관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료우타가 아무도 모르게 숨을 뱉었다.


“내일은 개인 장구와 할당된 식량을 챙기며 하루를 쉬도록 하라. 모레, 키노 강을 따라 와카야마로 가서 군함을 타고 간토로 갈 것이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도록 하라.”


칸베에의 명령에 모든 병사가 우렁차게 대답하고 흩어졌다.


훈련을 마친 병사들이 노을을 따라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료우타도 발길을 성으로 돌렸다.


외성을 지나 내성 해자를 따라 걷고 있을 때, 칸베에가 다가왔다.


“자네, 말을 타 본 기억이 없다고 했는데 금세 말을 다루더군. 자네의 끝은 어딘지 모르겠어.”


“과찬이십니다.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아까 그 말 어떤가?”


”거칠기는 하지만 훌륭하고 좋은 말이라 생각합니다.“


“그 길들여 지지 않은 말 자네가 길들여 보게. 내가 자네에게 주는 선물이네.”


“네?”


겨우 부관의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너무 과한 선물입니다. 물려주십시오.”


못 들은 척하며, 더 가까이 다가왔다.


웃음을 머금은 그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자네, 무사의 대결에서 손속에 정을 두었더군.”


“네? 아, 아닙니다. 제가 말을 잘못 다루어 떨어진 것입니다.”


료우타의 대꾸를 외면하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던 칸베에가 료우타를 되돌아보며 웃었다.


‘칸베에 부관님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그 찰나의 순간에 나의 행동을 꿰뚫어 보다니···.’


숙소로 돌아와 목욕하려고 옷을 벗었다.


별채 전속의 나이 많은 하녀가 기다리고 있다가 옷을 받았다.


몸 여기저기 생체기가 보였다.


하녀는 목욕탕에 들어간 료우타를 입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목욕탕은 뿌연 김으로 가득했다.


사방 등이 걸려 있는 부분만 붉은빛이 감돌 뿐 구름 속에 앉아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미지근한 물에 온몸의 나른함을 느끼며 깜빡 잠이 들었다.


누군가의 손길에 흠칫 놀라며 눈을 떴다. 목욕물로 료우타의 몸에 물을 끼얹어 주었다.


‘히로시의 손길이 아닌데···?’


늙은 하녀의 손길이 아니었다.


온몸이 긴장됐다.


살며시 눈을 떠 물을 끼얹고 있는 손길을 보았다.


부드러운 여인의 손이었다.


갑자기 온몸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유키! 이런, 잠이 드는 바람에 방심하고 말았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료우타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잠이 깬 거 다 알아요. 괜히 잠든 척하지 마세요.”


“흠흠, 이게 무슨 짓이오. 어서 나가시오.”


“왜요? 손님을 위해 목욕물을 데우고, 몸을 씻겨 주는 게 우리 예법인데, ······모르세요?”


예법이라는 말에 료우타는 황당해하면서도 당황했다.


과연 그런 예법도 있는지 알 길이 없기에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손을 내 저었다.


“그래도 그렇지? 성주님의 따님을 시종같이 부린다는 것은 목숨을 내 놓아야 할 일입니다. 제가 죽임을 당하길 원하십니까?”


“노파 이외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호호호.”


무엇을 생각했는지 료우타가 벌떡 일어나며 유키를 향해 돌아섰다.


“아휴 깜짝이야!”


놀란 유키가 뒤로 돌며 얼굴을 가렸다.


그래도 여자라고 알몸의 남자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뒤로 돌아 눈을 두 손으로 가리며, 재빠르게 목욕탕 밖으로 사라졌다.


발소리가 멀어져서야 료우타가 한숨을 내쉬었다.


료우타의 하체를 감싸고 있던 수건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침실로 돌아와 하녀가 주는 옷을 받아 입었다.



간단하게 차려진 저녁을 먹고 난 후 휴식을 취하며 창을 내다보니 별들이 술시(오후8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잠시 벽을 향해 앉아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신 수련에 집중했다.


한 시진이 지나 습한 기운에 장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늙은 하녀 히로시가 옆방에서 내다보았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편히 주무세요.”


복도 끝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키노강이 보이는 성벽으로 갔다.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달이 머리 위 별 무리 속에서 서녘 하늘로 넘어가고 있었다.


성벽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갔다.


조카마치 아래 유곽이 있는 곳에서 불빛들이 흔들렸다.


내일모레 전쟁터로 가기 전 고된 훈련으로 지친 육체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늦은 밤까지 병사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성루에서 경비를 서던 병사가 누군지 확인했다.


키노강의 서쪽 하늘을 바라보던 료우타는 성벽에 걸터앉았다.


‘나는 누구일까?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아. 자주 꿈에 보이던 말 탄 무장은 어디로 갔는지 근래에 나타나지 않고, 그와 내가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일까······? 오사카에서 만난 여인과 사카이의 무사들은 나의 과거를 알고 있지 않을까? 그들이 본 내가 그들이 찾는 내가 아닐까?’


허울뿐인 지금의 자신을 생각하며 키노강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반 시진 넘게 강바람을 맞으며 하늘의 별과 달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멍하니 생각도 하며, 어둠 속에서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달빛에 은빛으로 빛나는 강물을 잠시 보고는 왔던 길을 거슬러 계단을 내려와 우물가로 갔다. 한낮의 대련으로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목이 말랐다.


우물물을 떠 마시자 차가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갈증을 해결해 주었다.


물을 한 번 더 마시려고 하는데 저 멀리 천수각 옆 내전 건물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몰래 나오고 있었다.


물을 마시던 료우타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 그림자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내전 경비병들과 아는 체를 하며 나오는 것으로 보아 도둑은 아니었다.


‘하늘의 별들이 자시로 가고 있는 이 시각에 누굴까?’


정원을 둘러보며 그림자가 어둠을 뚫고 우물이 있는 곳으로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우물가로 지나가려던 그림자가 우두커니 서 있는 료우타를 보았다.


사내였다.


멈칫 놀란 기색이 어둠 속에서 보였으나, 이내 그 사내는 우물각 안으로 들어와 뻘쭘하게 서 있는 료우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살며시 속삭였다.


“이봐! 남의 물건을 탐내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저기 내전은 넘보지 말라고. 욕심을 부리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가 있어. 행동함에 있어서 각별히 유념해야 할 거야.”


그 사내는 묘한 말을 남기고 밤 당번이 묵는 경비병 숙소로 사라졌다.


‘저자는······. 행정관 아래 자금을 담당하고 있는 자가 아닌가? 저자와 마님이···, 설마!’


숙소로 돌아오는데 서쪽 하늘 아래에서 별똥별들이 무수히 떨어지고 있었다.


묘한 기분이 든 료우타는 고개를 돌려 자금 담당 행정관인 이케다 다케오가 사라진 곳을 쳐다보았다.


‘저자를 조심해야겠다. 성주님이 없는 틈을 타서 내전 깊숙이 드나들고 있다니. 성주님의 먼 친척인 것으로 아는데, ······마님도 멀리하는 게 상책. 잘못 걸려들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몸서리가 쳐지는지 료우타가 몸을 떨고는 숙소로 갔다.


여자 나이 서른 살이 넘어가면 자진해서 남편의 잠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관습이었다.


대부분 남편을 젊은 소실에게 양보하고 노후의 삶을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일반 아녀자들의 삶, 아니 무사들 특히 다이묘를 남편으로 둔 여자의 숙명이었다.


서른도 젊은 나이였지만, 뭇 사내들의 탐욕 앞에서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다.


일반적인 관습일 뿐 여자의 몸에 들어 있는 사랑의 감정은 늙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잠자리를 요구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보니 타오르는 욕망을 해소할 마땅한 일이나 대상이 있어야 했다.


카오루 부인은 취미나 일이 아니라 욕정을 풀 남자로 정하고 뭇 남성들을 훑었으며, 마음에 둔 상대를 몰래 침실로 끌어들였다.



아침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내일 전장에 갈 도구들을 챙겼다.


죠유지와의 대결에서 졌지만, 칸베에 부관이 허락하여 마음이 들떠 있었다.


활과 화살, 그리고 반쪽 대나무를 헝겊으로 닦았다.


대부분 무장은 장창을 필수적으로 소지한다고 하였으나, 내키지 않았다.


무기고에 쓸 만한 물건들이 별로 없었다.


여덟 자가 넘는 장창들은 거추장스럽게 보였다.


마을 한 귀퉁이에 있는 칼갈이에게 칼을 갈아 달라고 했는데 아직 가져오지 않았다.


얼마 동안 전쟁하는지 알 수가 없어 짚으로 만든 신을 여러 켤레 챙겼다.


먹을 식량은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무사들의 식량은 식량 담당 군사들이 가져온다고 했으니 젓가락만 챙겼다.


누군가 복도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료 형, 좋겠수.”


“왜 또 시비냐?”


“형은 전쟁터에 가잔 수. 나도 따라 가면 안 될까요. 잘 싸울 수 있어요.”


“미안. 타이요우님도 성에 남기로 했는데 칸베에 부관님이 허락하실까? 넌 아직 어려.”



오슈로 료우타가 가기로 정해지자 타이요우가 코카와성에 남게 되었다.


이번 출정에서 공을 세워 무사로서 출세할 기회로 삼고 당당한 모습으로 성으로 돌아와 라나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타이요우였다.


오사카에서 돌아와 자기 대신 료유타가 가게 된 것을 알고는 칸베에 부관을 여러 번 찾아가 사정하였지만, 그의 명령은 바뀌지 않았다.


료우타의 숙소로 찾아와 분노를 표출했지만, 료우타는 미안한 마음에 가만히 그의 화를 받아 냈다.


방을 나가는 그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내 기필코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타이요우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꼭 전쟁터에 가고 싶은 마음에 그의 분노를 묵묵히 참았다.



“내가 왜 어려. 이래 봬도 웬만한 일반 무사보다 내 실력이 월등하다고. 형, 형이 부탁하면 되잖아. 제발······.”


“남아서 학문이나 익히지 왜? 또 꿈이 바뀐 거야?”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쟁터에 한번 가보고 싶어요.”


“아서라. 나도 한 번도 못 겪어 봤지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야. 불구경하듯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란다.”


센은 자신이 좋아하는 형과 함께 전쟁터에서 싸우고 싶었다.


공도 세우고 칭찬도 듣고 싶었으나 형이 끝내 거절하자 혀를 삐죽 내밀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형, 미워요. 같이 안 놀 거야.”


센의 토라진 모습이 귀여운지 료우타가 씩 웃으며, 나가는 센을 바라보았다.


전쟁 준비물들을 채기고 난 뒤 라나가 있는 건물로 갔다.


정원 옆으로 들어서며 가로질러 가는데 유키가 내전에서 나와 료우타를 불렀다.


못 들은 척 빠른 걸음으로 걸었지만, 시녀와 하녀들이 료우타를 보고 있어서 멈추어 섰다.


씩씩거리며 다가온 유키는 료우타의 팔을 쳤다.


“아니, 사람이 부르면 대답해야지. 왜 못 들은 척 도망을 가세요. 제가 뭐 어떻게라도 할까 봐 겁이 나시나요. 순 겁쟁이 무사님이군요.”


“다른 일을 생각하느라 못 들었습니다. 미안하게 되었으니 그만하시지요.”


“호호호, 용서하겠어요. 그 대신 나랑 키노 강가로 산책나가야 해요.”


그녀는 료우타의 대답도 듣지 않고 팔을 끌어당겨 서쪽 문으로 향했다.


끌려가던 료우타가 라나가 있는 숙소로 고개를 돌렸는데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라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에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정원 건너편에서 두 사람이 성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타이요우가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키노 강변을 따라 걸었다.


쨍쨍한 햇살이 내려와 더위를 더했다.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제가 없어서 외롭다는 이야기와 자신은 어린아이 취급하지 말라는 둥, 여러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낸 유키는 그 와중에 료우타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료우타도 자기를 좋아해 달라며,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난처했다.


유키는 성주의 딸로 근본도 모르고, 또 닌자가 된 자기와 연을 맺을 수가 없다.


아무리 두 사람이 좋아한다고 해도 성주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성주가 알게 되면 료우타의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 열셋 밖에 안 된 앳된 소녀였다.


“인제 그만 일어나시지요. 내일 전장으로 나가려면 오늘 일찍 쉬어야 합니다.”


료우타가 일어나 둑을 따라 걸었다.


함께 더 있고 싶은 유키는 투덜거리며 일어나 달려와서는 료우타의 팔을 두 손으로 안으며, 팔짱을 끼었다.


어색한 료우타가 팔을 빼려고 했지만, 그녀가 힘을 주며 팔을 꽉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어정쩡한 자세로 성을 향해 걸었다.


료우타의 얼굴이 약간 발갛게 홍조가 되었다.


그녀가 팔을 꼭 안아서인지 뭉클한 느낌이 든 것이다.


아직 어린 소녀로만 생각한 그녀의 가슴이 풍만하게 느껴 오자 민망한 료우타는 넘어지는 척하며 팔을 뺐다.


성으로 돌아오니 마님이 찾는다는 전갈이 와 있었다.


영 내키지 않았지만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종과 같은 존재였다.


방으로 들어가 옷을 단정히 하고 내전으로 향했다.


카오루 부인의 방에는 이미 라나가 와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지난번보다 더 화려하면서 어깨와 목이 많이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화장했는지 이마가 훤하게 불빛에 빛났다.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그녀의 옆자리로 오라며 손짓했다.


주춤거리며 그녀의 옆에 앉은 료우타는 라나를 힐긋 보았다.


그런 료우타를 못 본 척 차를 입에 대었다.


“내일 전장으로 간다고 들었는데 준비는 잘하셨나요?”


“네,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험한 전쟁터에서 싸우려면 튼튼한 갑옷이 있어야 하는데, 혹 준비는?”


“아닙니다. 저는 일반 복장이 편합니다. 그래야 움직이기 편하고 자유롭습니다.”


“아니지요. 요즘은 칼이나 창으로 싸우기보다 대포나 철포로 싸우는 시대입니다. 철포에 잘못 맞으면, 위험하지요. 여기!”


카오루 부인이 시녀를 부르자 장지문을 열고 두 명의 시녀가 무엇인가를 들고 들어왔다.


“내가 료우타를 위해 준비한 갑옷이라오. 한 번 입어 보세요.”


“네?”


“사양하지 말고 한 번 입어 보세요.”


“아! 네. ······미, 미천한 저를 위해 갑옷을 선물로 주시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마지못해 감사 인사를 하고 갑옷을 받으려 했다.


“여기서 한 번 입어 보세요.”


“네? 여, 여기 서요? 아닙니다. 숙소로 가져가서 입어 보겠습니다.”


당황한 료우타의 얼굴이 벌겋게 올라왔다.


라나도 놀란 얼굴로 료우타와 눈이 마주쳤다.


“자 일어나 봐요. 내가 입혀 줄게요.”


카오루 부인은 일어나 갑옷을 들었다.


당황하며 일어난 료우타는 어정쩡한 자세로 라나를 보며 서 있었다.


카오루 부인은 시녀의 도움을 받아 갑옷을 입혔다.


그녀의 찐한 향내가 료우타의 코를 자극했으며, 부드러운 손길이 몸을 조여 왔다.


방안에는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창을 통해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와 모두를 끈적끈적하게 만들었다.


“오, 멋진 무사가 되셨네. 내가 제대로 봤어. 갑옷이 딱 맞아. 딱. 이 멋진 사나이를 누가 장군이라고 하지 않겠어. 황홀해.”


갑옷을 입은 료우타의 모습은 웬만한 무사 못지않게 당당한 체격으로 우람했으며, 멋진 모습이었다.


묘한 감정의 라나도 료우타를 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자리에 앉은 카오루 부인은 연신 칭찬하며 차를 따라 주었다.


주뼛거리며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던 료우타는 흠칫 놀랐다.


그녀의 손이 무릎을 꿇고 앉은 그의 무릎에 올라와 있었다.


그녀가 차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료우타의 무릎을 쓰다듬었다.


당황한 료우타가 자신도 모르게 힐긋 라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모습을 카오루 부인은 놓치지 않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왼 입술을 살짝 들어 올리며 미소 지었다.


라나도 료우타의 당황한 눈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만 고개를 숙였다.


“라나는 어때? 내가 선물한 갑옷이 잘 어울리지. 정말 멋지고 탐이 나는 사내야.”


“······네, 아주 잘 어울립니다. 멋진 선물입니다.”


라나의 속마음이 복잡했지만 드러내지 않으려고 억지웃음을 하며, 카오루 부인과 료우타를 번갈아 보았다.


“라나도 비단옷을 한 벌 선물할 테니 가져가서 입어 봐요.”


시녀가 라나의 옷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저까지 신경을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님.”


“내가 챙겨야지 누가 챙겨 주겠나. 내년 초여름 자네를 성주님의 측실로 들이기로 했으니 내가 보살펴야 하지 않겠나. 그동안 예법을 충실히 잘 익히도록 하게.”


료우타의 무릎을 여전히 쓰다듬으며, 라나가 아닌 료우타를 보며 말을 했다.


일부러 라나의 처지를 료우타가 들으라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너무 놀라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얼굴이 어두워지며 낙심한 표정이 되었다.


‘라나님이 여기 온 이유가 단순히 볼모로 온 것이 아닌 성주의 측실이 되기 위한 것이었다니.’


라나가 고개를 숙이고는 찻잔만 만지작거렸다.


알 수 없는 분노가 가슴 속에서 올라옴을 느낀 료우타가 카오루 부인에게 내일 출정을 위해 쉬어야겠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갑옷으로 전공을 세우고 오시게.”


급히 나가는 료우타 뒤에 카오루 부인의 얄미운 말과 웃음이 따라왔다.



서쪽 산언저리에 해가 걸려서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오늘따라 은빛 뭉게구름이 연붉은빛으로 물들어 가는 것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카오루 부인이 입혀 준 갑옷을 방구석에 던져버렸다.


성 밖으로 나가 마구간에서 칸베에로부터 선물로 받은 말, 반항아를 타고 키노 강변을 따라 달렸다.


반항아가 콧방귀를 뀌면서도 주인을 알아보는지 반항 벗이 쏜살같이 달렸다.


라나를 떠 올리며, 무수히 잠자던 감정들이 길게 늘어져 앞서가는 검은 그림자가 되어 흐느적거리며 달려 나갔다.


어둠이 내려앉은 들판에 무성한 잡초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말발굽 아래로 스쳐 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아마미고개 입구였다.


반항아를 이또코보산으로 몰았다.


사이가 두목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두 사람은 밤이 깊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살이와 오슈의 잇키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가슴 저 한구석에서 치밀어 오른 분노가 조금씩 사라졌다.


술기운이 올라오자 사이가가 당시 여러 다이묘와 함께 노부나가를 압박하며 궁지로 몰아간 이야기를 했다.


가장 강력한 부대를 가지고 있던 다케다 신켄의 갑작스러운 병이 아니었다면 노부나가 군대를 잡을 수 있었다면서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밤하늘에 달이 머리 위에서 산속 움막 주위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자정이 지나갈 무렵 사이가 두목과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말을 타고 코가와성으로 돌아온 료우타가 깜짝 놀랐다.


숙소 복도 입구에서 라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안 자고 여기서 무엇 하십니까?”


짐짓 알면서도 퉁명하게 쏘아붙였다.


“밤이 늦었는데 어디를 갔다 오십니까? 술도 많이 드신 듯합니다.”


료우타의 거친 말에 얼굴이 달아오른 그녀는 겨우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말을 했다.


“제가 라나님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다녀야 합니까?”


마음 한편으로는 자신보다 라나가 더 가슴이 아플 것이라는 생각에 다정하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거친 말이 쏟아져 나왔다.


쏘아붙인 말을 주워 담고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렸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쌀쌀맞게 굴던 료우타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녁 내내 자기를 걱정하며, 기다렸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울컥했다.


‘바보, 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가 더 걱정스러운 것을.’


“료우타님이 무사 한 것을 뵈었으니 되었습니다. 그만 주무세요.”


그녀가 료우타를 보다 눈이 마주치려 하자 얼른 고개를 숙이고는 돌아서서 복도 나갔다.


“답답해서 바람 쐬러 갔다가 아마미고개의 사이가 두목이랑 술 한잔하고 오는 길입니다. 라나님도 성주님의 측실이 되는 것이 좋은가요?”


복도 끝으로 걸어가던 그녀가 멈춰 섰다.


잠시 정적이 어둑한 복도를 지나 료우타에게로 밀려왔다.


그녀가 뒤로 돌아 료우타를 보며, 미소를 짓고는 복도를 나가 정원을 가로질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참을 그녀가 사라진 정원 끝을 바라보다 밤하늘을 올려 다 보았다.


까마득한 밤하늘에 맑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바보, 나보다 더 라나님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텐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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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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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조선의 바다 1 22.06.18 50 0 10쪽
79 통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2 22.06.17 52 0 10쪽
78 통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1 22.06.17 55 0 9쪽
77 풍전등화 2 22.06.16 55 0 9쪽
76 풍전등화 1 22.06.16 54 0 10쪽
75 비싼 목숨 값 22.06.15 56 0 10쪽
74 산적 무리들 3 22.06.15 54 0 14쪽
73 산적 무리들 2 22.06.14 50 0 14쪽
72 산적 무리들 1 22.06.14 54 0 12쪽
71 어머니의 유품 22.06.13 51 0 10쪽
70 도망자 22.06.13 57 0 11쪽
69 미치나오를 죽이다 22.06.12 54 0 10쪽
68 어머니의 죽음 22.06.12 56 0 10쪽
67 출생의 비밀 22.06.11 77 0 10쪽
66 함께 살자 22.06.11 50 0 10쪽
65 무너진 계획 22.06.10 52 0 10쪽
64 여동생 22.06.10 55 0 10쪽
63 카에데 부인 22.06.09 51 0 13쪽
62 가시마성 2 22.06.08 57 0 10쪽
61 가시마성 1 22.06.08 59 0 11쪽
60 조선 도공들 2 22.06.07 59 0 11쪽
59 조선 도공들 1 22.06.07 54 0 12쪽
58 왕년의 해적들 2 22.06.06 55 0 9쪽
57 왕년의 해적들 1 22.06.06 73 0 13쪽
56 구루시마의 의심 22.06.05 54 0 11쪽
55 료우타의 검술 22.06.05 55 0 10쪽
54 숨은 실력자 타이요우 22.06.04 55 0 9쪽
53 조선 침략의 전초 기지 22.06.04 59 2 13쪽
52 기억에 없는 기억들 2 22.06.03 55 0 9쪽
51 기억에 없는 기억들 1 22.06.03 63 0 12쪽
50 남만인 배 글로벌호 2 22.06.02 56 0 11쪽
49 남만인 배 글로벌호 1 22.06.02 63 0 12쪽
48 과거에서 온 추적자들 22.06.01 68 0 13쪽
47 스스무의 회상 22.05.31 71 0 13쪽
46 하이난 3 22.05.30 67 0 16쪽
45 하이난 2 22.05.29 102 0 22쪽
44 하이난 1 22.05.28 64 0 20쪽
43 꽃을 찾는 벌 22.05.27 73 0 22쪽
42 벌을 찾는 꽃 22.05.26 71 0 25쪽
41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5 22.05.25 75 0 18쪽
40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4 22.05.24 68 0 17쪽
39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3 22.05.23 77 0 19쪽
38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2 22.05.22 71 0 19쪽
37 적(敵)은 혼노지에 있다 1 22.05.21 70 0 22쪽
36 순정 2 22.05.20 73 0 22쪽
35 순정 1 22.05.19 79 0 22쪽
34 토끼 사냥 22.05.18 84 0 25쪽
33 오마찌 칸의 죽음 22.05.17 75 0 20쪽
32 불타는 오마찌 별채 22.05.16 83 0 19쪽
31 고가 닌자 마리지천 22.05.15 102 0 25쪽
30 함정 22.05.14 82 0 27쪽
29 암살자를 막아라 2 22.05.13 85 0 26쪽
28 암살자를 막아라 1 22.05.12 85 0 25쪽
27 적진 속으로 22.05.11 91 0 23쪽
» 죠유지와의 재대결 22.05.10 87 0 25쪽
25 카오루 부인 22.05.09 104 0 22쪽
24 히데츠구의 의심 22.05.08 115 0 24쪽
23 이가분지 2 22.05.07 95 0 16쪽
22 이가 분지 1 +2 22.05.06 97 1 19쪽
21 반항아와의 만남 +2 22.05.05 92 2 19쪽
20 여인들 +2 22.05.04 92 1 21쪽
19 산적 사이가 +2 22.05.03 85 1 25쪽
18 이가 닌자 간스케와 고에몬 +3 22.05.02 89 2 26쪽
17 기억의 저편에서 온 자들 +1 22.05.01 103 1 21쪽
16 유곽 아이루 +2 22.04.30 92 1 22쪽
15 닌자검 +2 22.04.29 95 1 22쪽
14 닌자되다 6 +1 22.04.28 100 1 26쪽
13 닌자되다 5 +2 22.04.27 104 2 25쪽
12 닌자되다 4 +2 22.04.26 110 1 24쪽
11 닌자되다 3 +2 22.04.25 122 1 25쪽
10 닌자되다 2 +2 22.04.23 121 1 23쪽
9 닌자되다 1 +4 22.04.22 159 1 25쪽
8 올빼미섬 7 +2 22.04.21 208 1 30쪽
7 올빼미섬 6 22.04.20 215 1 25쪽
6 올빼미섬 5 +2 22.04.19 200 1 28쪽
5 올빼미섬 4 +2 22.04.18 215 1 28쪽
4 올빼미섬 3 22.04.16 236 2 29쪽
3 올빼미섬 2 +3 22.04.15 284 1 27쪽
2 올빼미섬 1 +4 22.04.14 433 3 29쪽
1 안개 속 검은 그림자 +8 22.04.13 1,060 3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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