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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동인

왕도깨비 (부제-닌자가 된 조선무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한림팔기장
작품등록일 :
2022.04.13 12:33
최근연재일 :
2022.08.02 09: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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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7
추천수 :
32
글자수 :
1,064,609

작성
22.05.0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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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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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산적 사이가

역사는 반복된다.




DUMMY

라나의 이야기에 푹 빠져 듣는 료우타가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면 그 고에몬이라는 사람은 지금도 도적질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호호호, 지금은 이가의 가사기고개에 살고 있다고 들었어요. 간혹 사카이에 오시면 예전의 버릇이 나오긴 하지만, 이제 연세가 있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라나의 아버지가 들어 왔다.


“어떤가? 차 맛이······.”


“네, 좀 색다르긴 하지만 향이 좋습니다.”


“난 사카히로, 아니 간스케라고 하네. 너무 긴장하지 말게나. 하하하.”


라나의 아버지 간스케가 자신을 소개하고는 료우타를 자세히 관찰했다.


간스케의 시선을 의식한 료우타가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다다미를 봤다가 라나를 봤다가 다시 간스케를 봤다.


간스케가 별다른 말 없이 료우타를 관찰하고는 라나를 잘 돌봐 달라는 당부를 하였다.


아직 몸이 완전치 못한 자신에게 라나를 부탁한다는 말에 료우타가 멋쩍어 그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딸을 볼모로 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아버지의 마음이 전해져 왔다.



홀로 상점 밖에서 여러 상점을 구경하고 있던 료우타,


한 시진이 지나 밖으로 나온 라나와 함께 코카와성으로 가기 위해 미노야마 관문을 지나 동남쪽으로 내려갔다. 며칠 전 사카야마와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좀 늦었죠? 아버지가 말씀이 길어지셔서···.”


아버지와 이야기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라나가 미안한지 괜한 말을 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지만 봄 햇살이 두 사람을 괴롭혔다.


땀방울이 이마에 맺혔다.


서둘렀지만, 가와치가노를 지나고 있을 때 벌써 서쪽 하늘에 붉은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오늘 해지기 전 안묘사까지 들어가기 위해서 걸음을 재촉했다.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라나를 보았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가슴 속으로 들어 온 여인이었다.


옛 기억은 잊어버렸지만, 새로운 삶 속으로 다가와 가슴에 버티고 선 여인, 단절된 삶 속에서 희망을 품게 해 준 여인, 그런 그녀가 어느 날 터 어두운 표정으로 있을 때가 많았다.


아마도 코카와성으로 가는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그런 것 같았다.


료우타의 마음이 짠했다.


오늘도 얼핏 그러한 모습이 보였다.


여름이 온 듯 지는 햇볕이 따가운지 그녀가 땀을 열심히 닦으며 길을 걷고 있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왜 그렇게 보세요?”


“아, 아닙니다. 날이 너무 습하고 더워서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요.”


당황하며 머리의 해를 가리켰다.


손을 들어 입을 가리며 그녀가 웃었다.


폭이 좁은 아마미천을 따라 올라갈 때 신시(오후 4시경)가 지나고 있었다.


“료우타님, 해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해요.”


“그럼 누가 먼저 안묘사 까지 가는지 내기할까요?”


“좋아요.”


그녀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료우타는 머리 뒤로 넘어 가는 해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라나의 뒤를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얼마를 달려가자 억새밭이 앞을 막았다.


망설임 없이 억새가 웃자란 늪을 가로질렀다.


그녀는 분명 늪을 둘러 갔을 것이다.


최대한 억새를 누르며 달렸지만,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일백 보쯤 지나자 늪의 가장자리가 보였다.


“늪으로 들어 오는 게 아니었는데!”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억새로 이루어진 늪이라 쉽게 생각한 것이 잘못일까?


둘러 오는 것보다 더 늦고 말았다.


분명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더 멀어져 있었다.


늪을 가로지른 것이 실수였다.


조금 더 가자, 작은 마을이 나왔다.


20여 호가 산골짜기를 따라 흩어져 있는 마을이었다.


서녘으로 기운 해는 마을에 붉은 노을을 그려 넣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 얼마쯤 가자 우물이 있었다.


햇살이 약해졌지만, 뜨거운 열기는 아직 가시지 않고 있었다.


“혹, 상인 한 분 지나가지 않았나요?”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던 여인이 허리를 펴며, 료우타를 바라보았다.


“네, 여기서 물을 마시고 조금 전에 아마미 고개로 달려가셨습니다.”


그녀에게 물을 얻어 마시고 감사 인사를 하고는 아마미 고개를 향해 달려갔다.


산을 오를수록 길이 좁아지고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이마로 흘러내리는 무더위를 닦으며 투덜거렸다.


보법으로는 타이요우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이었는데, 라나의 달음질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무슨 걸음이 그렇게도 빨라. 나랑 같이 가기 싫은가?”


제법 산골짜기를 올랐을 때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산골짜기를 따라 길게 늘어지던 료우타의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멀리 산속에서는 부엉이 소리가 들려왔다.


“푸드덕.”


오른쪽 대여섯 보 앞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순간 놀라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새를 무서워하다니. 졸장부가 아닌가?”


어디선가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눈길을 던졌다.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말이 거칠었다.


작은 길이 어스름하게 보일 뿐, 깊은 산속은 나무들이 울창하게 겹겹이 서 있어서 빛조차 없는 어둠이 짚게 깔려 물체를 분간할 수 없었다.


“하하하, 바닥에 바짝 엎드려 무엇 하는가?”


“누, 누구냐? 모습을 나타내라.”


“자신 있다면 일어나 보시게. 자네의 실력을 보고 싶군.”


고양이 걸음으로 왼쪽 산 아래 바위로 숨어들었다.


바위 안쪽에서 냇물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료우타의 움직임을 살피는지 상대의 움직임이나 말이 없었다.


‘살기가 실린 목소리는 아니다. 누굴까?’


바위 위를 살피며, 칼을 조심스럽게 뽑아 칼집을 바위에 걸쳤다.


두서너 걸음을 기어서 뒤로 물러났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 채 공격하려 하다 보니 온몸이 긴장되고 경직되었다.


“이보게, 어디로 숨어들었나? 어둠 속을 즐기는 것을 보니 자넨 닌자인 게로군. 비를 흠뻑 맞아 벌벌 떨고 있는 올빼미 말이야.”


“······.”


상대의 비꼬는 소리에 본때를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동해 바위를 향해 뛰었다.


그러다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아니 느낌에 칼집 끝을 밟고 바위 위로 뛰어오르려다가 멈칫했다.


조심스럽게 바위로 다가가 바위에 기대 놓은 칼집 옆에 몸을 기대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얼마 후 그림자가 바위 아래로 사뿐히 내려왔다.


“아니, 바위에 기대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이름 모를 자가 료우타님을 놀리고 있는데······.”


“하하하, 이렇게 가만히 있으니 아름다운 올빼미가 제 발로 찾아오지 않습니까. 힘들게 찾아갈 필요가 없지요.”



라나가 바위 아래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고는 뒤에 쫓아오는 그를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목소리를 변조해서 료우타를 놀리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놀라 몸을 사리는 것으로 보아 제대로 걸려들었었다.


하지만, 변조한 목소리이지만 낯설지 않은 느낌과 살기가 없는 것이 이상하여 움직이면서도 생각하다, 곧 그녀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피식’ 웃으며, 한심한 자신을 꾸짖고는 바위에 기대 눈을 감고 그녀를 기다렸다.


“이 샘에서 흘린 땀을 좀 씻고 가는 게 어떠세요?”


그녀의 장난에 묘한 기분으로 그녀를 보다, 그녀의 말에 료우타가 샘물을 떠 마시고는 뒤로 물러나 라나를 바라보았다.


“료우타님, 먼저 씻으세요.”


수줍은 듯 웃은 그녀가 바위 뒤로 돌아가 작은 풀밭에 앉았다.


샘가로 다가가 윗옷을 벗고 흘러내리는 샘물에 몸을 씻었다.


한낮의 열기가 어둠 속에서도 채 식지 않았지만, 샘물은 얼음물처럼 차가 왔다.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차가움에 몸을 약간 떨며 땀을 훔쳤다.


“물이 너무 차갑군요. 그래도 땀이 씻겨 내려가니 기분은 좋습니다. 저는 다 했으니 이제 라나님 차례입니다.”


하늘 위에는 상현달이 동쪽 하늘에서 떠올라 별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산 능선을 따라 별들의 세계와 암흑의 세계가 서로 다투며 조금씩 그 영역을 구분 짓고 있었다.


바위 뒤 한적한 곳에 앉아 눈을 감았다.


어둠에 갇힌 세계에서는 풀벌레 소리와 간간이 짐승들 소리, 야행성 새들의 소리가 앞다투어 들려왔다.


밤하늘의 밝은 별들 몇이 빛나는 눈으로 아름답게 어울리며 반짝였으며, 서쪽 하늘에는 아직 붉은 기운이 남아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물이 몸을 타고 내리는 소리가 머리 위 하늘에 가 있던 눈을 바위 뒤로 돌려놓았다. 조심스러운 손놀림과 물소리에 자꾸만 신경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내가 왜 이러지.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만 머리를 흔들며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자신도 모르게 눈과 귀가 바위 뒤로 넘어갔다.


바위 뒤 어둠 속에서 상상의 꼬리를 물고 그녀가 다가왔다.


환한 그녀의 모습에 정신이 든 료우타는 멋쩍게 웃으며 걸음을 앞서 나갔다.


“마, 많이 늦었습니다. 길이 더 어 어두워지기 전에 서두릅시다.”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료우타 옆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은 서로 웃으며 밤길을 걸어갔다.


멀리서 사나운 짐승 우는 소리가 메아리로 휘돌아 두 사람을 감싸고돌았다.


“혹, 오니 이야기 아세요?”


“오니요? 처음 들어 봅니다. 오니가 무엇인가요?”


“옛적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인데요. 이렇게 어둡고 침침한 밤에 험한 산골짜기를 넘어가면 오니가 나타나 심술을 부린데요.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머리는 소처럼 뿔이 두 개 달렸고, 큰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데, 꼭 산적처럼 나타나서는 사람들을 골탕 먹이거나 때론 죽이기도 한데요.”


“그런가요. 혹 산적들이 변장한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어두운 밤이고 공포에 질려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두 사람은 재미난 이야기를 하며 서로 웃었다.


산 고개로 올라갈수록 어두움은 더 짙게 깔려 내려왔으며, 달빛이 죽은 숲속에서 짐승 소리와 야행성 새들의 소리가 기괴하게 울려 왔다.


“저 새소리 들리세요?”


“네, 울음소리가 구성지네요. 무슨 새 일가요?”


료우타는 야밤의 새 소리가 구슬프게 들리는지 애처로운 눈빛으로 라나를 쳐다보았다.


“저 새는 올빼미에요. 주황색의 큰 눈을 가진 새로 야행성이지요. 그래서 주로 밤에 활동하는 닌자들을 올빼미에 비유하곤 한답니다. 부엉이는 올빼미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올빼미랑 습성도 비슷하죠. 그래서 시오노미섬을 올빼미섬 또는 부엉이 섬이라고 부릅니다.”


“아! 그렇군요. 시오노미섬은 올빼미섬이라하고 기이섬은 부엉이 섬이라고 부르면 되겠네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 저 소리는 올빼미의 울음소리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죠.”


“네? 아니 지금까지 올빼미 울음소리라면서 또 아니라는 것은 무슨 이야기죠. 그럼 부엉이 소리입니까?”


“풉! 저 소리는 올빼미 즉, 산적들이 내는 신호에요. 잘 들어 보세요.”


라나는 살짝 미소 지으며 등짐에서 칼을 꺼냈다.


료우타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엉겁결에 들고 있던 칼집을 꽉 쥐었다.


산적들이라면서도 그녀의 얼굴이 밝다.


서너 발자국을 더 가자, 여러 무리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나타났다.


“우리가 그 유명한 사이가 산적이다.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모두 내놓아라.”


덩치가 제법 우람한 사내가 길을 막고는 고함을 쳤다.


덩치 뒤에 복면을 한 다섯 명이 좁은 길을 막아서며 각종 무기를 들고 있었다.


라나가 료우타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실력을 구경 한번 해 볼까요.”


하는 표정으로 장난기가 다분하다.


“그럼 오니?”


그가 두 손을 머리에 올려 뿔 모양을 만들고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자신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두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하며 말을 주고받자 어이가 없었는지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우리는 코카와성 소속의 상인들입니다. 괜히 우리를 건드렸다가는 뒷일을 책임져 줄 수 없습니다. 그만 물러나시죠.”


“뭐라? 코카와성? 잘 됐다. 우리의 원수 놈들이구나. 씹어 먹어도 마땅찮을 놈들.”


산적들의 험악한 말에 라나와 료우타가 서로 쳐다보았다.


“우리는 당신들과 아무 관련이 없다. 우리와 엮이면 그대들의 산적질도 여기서 끝이다.”


라나가 제법 의기 있게 산적들에게 소리쳤다.


앞에 선 산적이 크게 웃었다.


“으하하, 웃기는 놈이로군! 히데요시를 데리고 와 봐라. 우리가 겁을 낼까? 네 놈은 사이가님에 대해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놈이구나. 사이가님은 한 때는 노부나가와 맞짱을 뜨신 분으로 가신의 배신만 없었다면 노부나가를 죽이고 천하를 통일하셨을 것이다.”


“사이가? 처음 들어 본 이름인데, 혹 지나가는 개 이름인가요?”


산적들을 약 올리는 라나를 보며 료우타가 빙긋 웃었다.


“뭐라. 아직 뜨거운 맛을 못 본 모양이군. 다카도라도 벌벌 떨던 우리를 개 취급하다니, 웬만하면 물건만 뺏고 목숨은 살려 두려 했는데, 저 두 놈을 죽여라.”


산적들이 두 사람을 향해 칼과 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순간 밤하늘의 달빛에 칼이 번쩍였다.


“으악!”


달려오던 다섯의 도적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비집고 번개와 같이 지나가는 그림자를 보며 경악했다.


그들의 발아래는 복면이 두 조각난 채 떨어져 있었다.


“어설픈 실력으로 산적질 할 생각을 말거라. 다음에는 목이 떨어질 것이다.”


복면이 잘려 나간 헝겊을 보며 얼어붙은 듯 서 있던 산적들은 라나의 서슬 퍼런 말에 정신을 차리고는 산골짜기의 어둠 속으로 내달아 꼬리를 감추었다.


“료우타님의 검술은 이제 신기에 다가간 듯합니다. 무섭기까지 하네요.”


“아니, 저들의 실력이 형편없었던 것이죠. 하하하.”


“저들의 움직임은 낮은 수준이 아니었어요. 저들을 상대로 어둠 속에서 칼의 깊이를 조절 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라나의 칭찬에 손사랫짓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짙푸른 밤하늘에서 별똥별이 남쪽으로 떨어지는 곳에서 불빛이 희미하게 비쳐 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걸음을 재촉하여 좁은 산길을 따라 산 능선을 넘어 안묘사에 들어갔다.


불당이 놓인 건물과 뒤로 별채가 두 동이 있었지만, 고개를 넘어가는 상인들과 신사참배 여행객으로 두 사람이 등을 붙일 곳이 없었다.


사정하여 겨우 헛간에 여장을 풀었다.


마른 풀을 바닥에 깔고 봇짐에서 긴 천을 꺼내 마른 풀 위에 깔아 놓고는 라나에게 그곳에서 잠을 청하도록 했다.


한쪽 벽에 헛간의 마른 풀을 쌓아 놓은 곳에서 료우타는 눈을 감았다.


잠결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잠을 깼다.


밖 본당 건물 앞이 시끄러웠다.


잠이 깬 료우타와 라나가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횃불이 어지럽게 이리저리 흔들렸다.


칼과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본당과 별채로 들어가 사람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잠을 자다 엉겁결에 끌려 나온 사람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서로 얼굴을 보며 마당으로 끌려 나왔다.


여기저기서 겁을 먹은 아이들과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마당 가득했다.


“이봐, 호리토, 그 두 놈 찾아보라고. 분명 이곳에 있을게야.”


그들은 한 시진 전 료우타에게 당한 산적들의 무리로 스무 명이 넘었다.


방들을 샅샅이 뒤지며, 료우타와 라나를 찾고 있었다.


“저들이 우리를 찾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인원이 많고 저들의 실력을 모르니 그냥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어떨까요?”


“제 생각에는 우리 때문에 아무 잘못 없는 저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니 우리가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뭐, 료우타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우리를 찾는가?”


뒤에서 나타난 료우타의 당당한 걸음에 산적 무리가 놀란 표정으로 서로 눈짓하며 하나둘 료우타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대장, 저놈들이 맞습니다.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네 놈들이 우리 아이들을 농락한 자들인가?”


산적 무리의 두목인 자가 반달 모양의 날이 멋진 칼, 아니 창을 들고 무리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의연한 모습으로 산적들 앞으로 나아갔다.


“당신이 두목이오? 아무 죄가 없는 사람들은 놓아주시오.”


"두, 두목! 저, 저놈이 맞습니다."


얼굴이 제법 큰 산적이 료우타를 보고는 겁을 먹었는지 뒤로 물러 나며 손가락질을 했다.


“하하하, 배짱이 두둑하구나. 실력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내가 진다면 그렇게 하지. 난 사이가 요난지에몬(要汝文)이라고 한다.”


“저는 료우타라고 하오. 그럼.”


산적들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두 사람이 싸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모두를 상대하려 칼집에 힘을 주었으나, 사이가란 자는 무인답게 일대일 대결을 원했다.


'별난 산적도 있군!'


산적들은 소리를 지르며 두목을 응원했다.


그들의 고함에 마당에 잡혀 있던 사람들도 고개를 들고는 두 사람의 대결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두목이란 자의 품세가 보통이 아니다. 칼끝이 날이 선 것이.’


진검으로 그것도 목숨을 내놓고 벌이는 싸움이라 긴장감이 대단했다.


섬에서 죠유지나 다카노리와 겨눌 때와는 또 다른 압박감이었다.


속으로 긴 숨을 뱉어내며 상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이가가 여덟 자가 넘는 반달칼 즉 나기타타를 휘둘러 왔다.


밤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상대의 기를 죽게 할 만큼 묵직했다.


소리보다 먼저 다가오는 나키타나를 옆으로 한 발짝 빠지며 가볍게 피했다.


몇 번의 반달칼이 료우타의 몸을 향해 날아왔지만, 그때마다 몸을 누이거나 옆으로 돌리면서 피해 나갔다.


나기타타를 휘두르면서 생각대로 안 되는지 사이가가 씩씩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피하기만 하지 말고 칼을 뽑아라. 그것이 무사의 예의가 아닌가?”


“산적도 그런 말을 할 줄 아는군. 좋다. 그럼 한 수 배우는 마음으로 임하지.”


칼집에서 칼 아귀를 왼손으로 살짝 밀어 올렸다.


산적들이 들고 있던 횃불에 칼집에서 빠져 나온 료우타의 칼이 번쩍였다.


몇 번의 부딪침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귀가 아플 정도로 고요한 산골짜기를 깨웠다.


일반 칼이라면 사이가의 나기타타에 부러지거나 칼집을 잡은 손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을 것이나 료우타의 외날 칼은 일반 칼 보다 무게 와 두께가 두 배 정도 되기에 무난하게 방어를 해 냈다.


‘이 산적 두목은 무사 출신이군. 이런 실력으로 산적질이나 하고 있다니···.’


우락부락한 힘으로 료우타의 칼을 눌러 왔다.


시간이 갈수록 힘의 무게가 고스란히 몸에 전해졌다.


피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칼로 대응하기에 점점 힘에 부쳤다.


‘시간을 끌면 불리하겠는데.’


사선으로 휘둘려지는 사이가의 창을 막으며, 칼과 창의 힘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옆으로 비켰다.


사이가의 힘이 창과 함께 앞으로 기울자 발로 등을 내려쳤다.


“윽.”


사이가가 기우뚱하자 잡혀 있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조용히 못 해!”


산적 무리 중 누군가가 칼을 들어 보이며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움츠러들면서도 두 손을 간절히 모으고 있었다.


“네 놈은 일반 상인이 아니군! 무사들인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지. 이제부터는 조심해야 할걸.”


료우타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칼의 기가 사이가를 압박했다.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상대의 기세에 사이가가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칼을 받아치려고 하면 어느새 발이 몸을 가격했다.


주위에 둘러싸고 있던 산적 무리는 료우타의 솜씨에 입을 딱 벌리고는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사이가가 비틀거리면서도 중심을 잡으려 노력했으나 재차 들어오는 공격에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따라가 공격하지 않고 사이가가 다시 일어나길 기다렸다.


“사이가님!”


“죽여랏.”


두목이 쓰러진 것을 본 부하들이 칼과 창을 앞으로 하며 료우타에게로 달려들었다.


“멈춰라. 사나이 대 사나이, 무사 대 무사로 싸운 것이다.” ·


산적들이 사이가의 일갈에 달려오다 멈춰 섰다.


겨우 일어선 사이가가 료우타 앞으로 두세 발 다가왔다.


조심스레 그의 공격을 기다렸다.


가까이 다가온 사이가가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고는 패배를 인정했다.


“음·····, 료우타라고 했나? 내가졌다.”


멀뚱히 서 있던 무리가 사이가의 눈짓에 쭈뼛거리며 그의 뒤로 와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하면서 라나를 보자, 그녀 또한 어깨를 으쓱하며 살포시 웃었다.


“명에 따르겠소. 애들아, 저들을 풀어 주어라.”


산적 무리가 료우타와 사이가의 눈치를 보며 사람들에게로 달려가 묶인 줄을 풀어 주었다.


“이제 물러가 주시오”


“저······.”


“무슨 할 말이라도 있소?”


“저 그게, 저희 소굴로 가셔서 대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오.”


사이가의 갑작스런 높임말과 함께 자신들의 소굴로 같이 가자는 말에 놀란 료우타가 라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망설인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산적들은 이또코보산 깊은 골짜기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고 있었다.


대략 10여 호의 집들이 있었으며,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산골짜기 아래 기와노마을에 살고 있었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에게 패한 후 옮겨 다니며 패잔병 등의 무기를 빼앗아 무장한 무사들인 노부시로 살았는데, 다카도라의 부대로 인해 뿔뿔이 흩어지고 몇만 살아남아 이 산속으로 들어와 평소에는 농사를 짓거나 사냥해서 먹고살았다.


하지만 너무 형편이 어려워 아마미 고개와 마키오산 일대에서 숨어 살면서 사카이나 오사카에 중요한 시장이 서는 날 오가는 상인들이나 사람들에게 산적질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한 잔 받으시오.”


“아, 네 감사합니다.”


사이가가 료우타와 라나에게 술을 따라 주며 료우타의 검술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의 궁금증에 대충 얼버무리면서 넘기려 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이 정도 검술과 무예를 지닌 분을 본 적이 없소이다. 도대체 어디서 수련하였기에.”


사이가와 료우타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올라오자 사이가가 노래를 불렀다.


료우타도 사이가의 노래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 사이가가 정색을 하고는 바로 앉으며 료우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사이가를 보며 료우타도 자세를 바로잡으며 갑자기 왜 그러냐는 눈을 했다.


“앞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오.”


“네?”


료우타가 놀라 술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무, 무슨 소리입니까? 저는 나이도 어리고 또 산적들과 인연을 맺고 싶지 않습니다.”


사이가의 갑작스런 말에 당황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라나를 쳐다보았다.


라나도 뜻밖의 이야기에 눈만 동그래졌다.


“군웅할거 시대에 나이가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리고 우리도 산적으로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에게 패하고 죽지 못해 이렇게 산속으로 도망을 와 목숨을 연명하고 있소이다.”


“내 목숨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여긴다면 그 또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하하. 비록 산적질로 먹고 살지만, 목숨을 가벼이 여긴 적은 없었소. 다만, 저 많은 식구를 먹여 살리려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했지요.”


‘하긴, 이들이 단순한 산적이었다면, 일대일 대결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이가 이자는 무인 출신으로 그나마 무인의 자존심이 남아 있다.’


“그런데 복장은 상인 복장인데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오?”[


“후후, 사연이라기보다는 앞으로 코카와성의 상인으로 할 일이 많아서요.”


사이가의 끈질긴 부탁에도 료우타는 힘도 없고 이 많은 사람을 이끌 명분이나 지도력도 없다고 거절했다.


결국 사이가가 자신의 말을 거둬들였다.


두 사람은 새벽 첫닭이 울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이 밝아 오자 료우타와 라나는 그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는 코카와성으로 향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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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3 ST아리리
    작성일
    22.05.27 20:38
    No. 1

    달달한 연애도 하고 부하도 얻고..

    이번화에서 료우타 복터졌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한림팔기장
    작성일
    22.05.27 20:46
    No. 2

    ㅋㅋㅋ
    말만 부하고 도움이 하나도 안되요 ㅋㅋ

    그냥 그 지역이 사이가 무리들의 반정부군들이라 언급한 정도 입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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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함께 살자 22.06.11 5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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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여동생 22.06.10 5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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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가시마성 2 22.06.08 5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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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조선 도공들 1 22.06.07 54 0 12쪽
58 왕년의 해적들 2 22.06.06 55 0 9쪽
57 왕년의 해적들 1 22.06.06 73 0 13쪽
56 구루시마의 의심 22.06.05 54 0 11쪽
55 료우타의 검술 22.06.05 55 0 10쪽
54 숨은 실력자 타이요우 22.06.04 56 0 9쪽
53 조선 침략의 전초 기지 22.06.04 59 2 13쪽
52 기억에 없는 기억들 2 22.06.03 55 0 9쪽
51 기억에 없는 기억들 1 22.06.03 64 0 12쪽
50 남만인 배 글로벌호 2 22.06.02 57 0 11쪽
49 남만인 배 글로벌호 1 22.06.02 64 0 12쪽
48 과거에서 온 추적자들 22.06.01 68 0 13쪽
47 스스무의 회상 22.05.31 72 0 13쪽
46 하이난 3 22.05.30 67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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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불타는 오마찌 별채 22.05.16 83 0 19쪽
31 고가 닌자 마리지천 22.05.15 102 0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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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암살자를 막아라 2 22.05.13 86 0 26쪽
28 암살자를 막아라 1 22.05.12 85 0 25쪽
27 적진 속으로 22.05.11 91 0 23쪽
26 죠유지와의 재대결 22.05.10 87 0 25쪽
25 카오루 부인 22.05.09 104 0 22쪽
24 히데츠구의 의심 22.05.08 115 0 24쪽
23 이가분지 2 22.05.07 95 0 16쪽
22 이가 분지 1 +2 22.05.06 97 1 19쪽
21 반항아와의 만남 +2 22.05.05 93 2 19쪽
20 여인들 +2 22.05.04 93 1 21쪽
» 산적 사이가 +2 22.05.03 86 1 25쪽
18 이가 닌자 간스케와 고에몬 +3 22.05.02 89 2 26쪽
17 기억의 저편에서 온 자들 +1 22.05.01 104 1 21쪽
16 유곽 아이루 +2 22.04.30 92 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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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올빼미섬 7 +2 22.04.21 208 1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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