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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그라운드

타임 패트롤(Time Patrol)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ground38
그림/삽화
ground38
작품등록일 :
2023.11.04 22:57
최근연재일 :
2024.04.19 18:37
연재수 :
111 회
조회수 :
23,170
추천수 :
701
글자수 :
594,503

작성
24.03.04 18:40
조회
85
추천
2
글자
10쪽

시공관리국 15 : 처형장

DUMMY

어두운 방 속, 창살 달린 작은 창문 너머로 분홍빛, 연보랏빛 감도는 하늘이 내다보였다.

아우렐리아와 채옥은 잠들었고, 엠마 레이워드는 허리를 꼿꼿이 세워 의자에 앉은 채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


죽음을 앞두었기 때문일까.

오늘따라 엠마는 옛 기억이 떠올랐다.


-미스터 한!

-선배님!


E급 패트롤 한승민.

지구-656 시공 출신의 그를, 엠마는 ‘미스터 한’이라고 불렀다.

6팀의 막내 팀원이었던 그녀가 4팀으로 옮긴 이후 처음 생긴 후배이자, 첫 부하.

엠마가 그를 부를 때면, 한승민은 패트롤의 기운을 닮은 푸른 머리카락에 환한 미소를 보이곤 했다.


패트롤로서 자질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어느 하나 특출난 것 없는, 무엇하나 잘 하지도 못하던 E급 대원.


-죄송합니다. 선배님은 A급이신데 저 때문에.


덕분에 매번 약한 시공에 배정받게 마련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미스터 한은 그것이 못내 마음에 쓰였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불만은 없었다. 임무는 수행할 뿐, 거기에 토를 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손쉽게 해치우고 돌아갈 수 있는 임무였다.

···분명 그랬어야 했다.


팔이 여덟 개 달린 괴물의 형상을 한 변칙자.

E급이라고 전달받은 변칙자의 강력함은 분명 A급이었다.

엠마는 당황했고, 놈의 촉수는 망설임 없이 정확히 엠마의 미간을 노렸다.


-선배님! 조심하십쇼!


한승민이 엠마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동시에 한승민의 가슴을 꿰뚫고 엠마의 눈앞에서 멈춘 놈의 촉수.

꿰뚫린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가 그 끝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괴물은 ‘그어어어어!’ 소리를 지르며 한승민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한승민의 손은 촉수를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조각나는 그 순간까지 그것을 붙잡고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에 엠마는 말을 잃었다.

뒤이어 나타난 제피르 팀장이 그녀를 구하기 전까지는.


-너 때문이다. 너 때문에 죽은 거야!!!!


어느새 연분홍색 하늘에 하얀 달이 걸려 감옥의 내부에 스며들고 있었다.

엠마의 푸른 눈에는 더 이상 초점이 없었다.

그 푸른 눈에는 원망도, 심지어는 한 줌 의문조차 없었다.


“나도 곧 가겠구나. 너에게.”


한승민을 지키지 못한 것은 엠마의 작은 트라우마였다.

부하의 몸에 구멍이 나는 것을 보고도 움직이지 못한 것은, 부하의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을 보고도 움직이지 못한 것은 사실 무서웠기 때문이다.


패트롤은 동료를 버리지 않는다고?

습관처럼 내뱉던 그 말은 사실 그때의 그 일이 가슴에 응어리져 남았기 때문이었다.


‘소년···.’


그 소년을 마주한 뒤로부터 미스터 한이 다시금 생각나기 시작했다.

왜일까. 소년은 어딘지 모르게 미스터 한을 닮아 있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주제에 덥썩 패트롤을 하겠다 나서는 것부터.

엠마를 위해서 기꺼이 몸을 던지던 어리석음까지.

그 행동 하나하나가 자꾸만 죽음을 각오한 엠마의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나는 추한···. 구할 가치가 없는 인간이다. 소년.”


이 죽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죄이리라.

그렇게 엠마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벌써 저 멀리서 엠마를 향해 걸어오는 한 무리 패트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패트롤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앞에 선 자의 기운 덕이었다.

숨쉬기 어려운 압박감. 무엇보다도 무겁고, 패기 넘치는 발걸음.


1팀장, 오리온스 테일이었다.


때가 된 것이었다.

엠마는 단정히 앉은 채, 초점 없는 시선을 복도를 향해 옮겼다.


“나와라. 엠마 레이워드. 그리고 홍채옥.”


“나, 나오라니요! 어딜 말입니까!”


어느새 일어난 채옥이 오리온스 테일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채옥은 벽에 기대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를 향해 몇몇 패트롤이 다가와 양 팔을 잡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잠깐만요!”


“젠장···!”


그러나 아무런 기운도 없는 채옥이 패트롤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아우렐리아도 저항할 의지는 없어 보였다.

오리온스 테일은 그 모습을 말없이 보고 있다가 엠마 레이워드에게 시선을 옮겼다.


“···.”


초점이 없는 눈동자. 그러나 단정한 몸짓.

죽음을 각오한 자의 모습이었다.

문득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였으나 방법은 없었다.

중앙실의 명령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자.”


패트롤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엠마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오리온스 테일은 몸을 돌렸다.

처형장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


잠시 뒤. 시공관리국 탑의 앞 넓은 광장에는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엠마의 처형을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개중에는 납득이 된다는 표정도, 되지 않는다는 표정도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모두 입을 다문 채였다.

시공관리국 중앙실의 결정에는 누구도 반기를 들지 못했다.


그 넓은 군중 한가운데, 높은 단상 위에는 엠마 레이워드와 홍채옥이 앉아 있었다.

수백 수천의 동료들이 지켜보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던지, 채옥은 “큭···.” 하는 신음과 함께 눈을 감았다.

엠마는 여전히 초점 없는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남길 말은 있는가.”


쿠웅. 오리온스 테일의 발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네. 있습니다.”


그제야 엠마는 오리온스 테일의 눈을 보았다.

거구의 남자가 안타까운 듯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을 본 엠마가 말을 이었다.


“침입자. 소년···아니, 진시윤과 아우렐리아를 무사히 돌려보내 주십시오.”


“···그리하지.”


오리온스 테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엠마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이 자가 그녀의 소원을 들어줄 것인지 아닌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아니,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하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이제는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끝까지 나는···. 이기적이로군.’


엠마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조 어린, 모든 것을 내려놓은 미소였다.


+++++


“허. 팀장이란 놈들이 뭐 이렇게 안 와?”


단상의 아래, 팀장이 모여있는 한쪽 구석에서 키에라 스톰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도착한 이라고는 단상 위의 1팀장, 그림자 속의 2팀장, 그리고 5팀장인 자신뿐이었다.

키에라 스톰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젓다가 한 구석에 시선을 멈췄다.


“키에라! 예쁜 얼굴을 여기서 보니 좋군.”


제피르 랜더가 헤실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입 싸 물어. 죽여버리기 전에.”


“하핫, 그 말 할 줄 알았지.”


제피르 랜더가 씩 웃으며 나서자, 키에라 스톰이 도끼눈을 떴다.

동시에 키에라 스톰의 그림자에서 셀렌 마렉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하가 죽으려니 이제야 나타나는 건가?”


“거기 있을 줄 알았어, 셀렌. 그림자 속에서 크고 아름다운 것이 출렁출렁하더라구.”


“이···변태 새끼!”


“하핫.”


제피르 랜더가 씩 웃자 셀렌 마렉이 벌어진 앞섬을 추스르며 인상을 썼다.


“잡담들은 그만해라.”


어느새 단상에서 내려온 오리온스 테일이 팀장들을 슥 훑어보고 있었다.

마침 그때 3팀장, 매그너스 카엘도 도착한 참이었다.


“···6팀장은 어디 간 거지? 뭐···상관없나.”


그 말에 제피르 랜더의 눈이 한번 움찔하며 주변을 훑었다.

네로 블레이즈의 모습을 찾는 듯했으나, 그에게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이제 시작하지.”


오리온스 테일이 주머니에서 팔찌 하나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자, 촤라락! 소리를 내며 팔찌가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모양을 바꾸더니 그것은 이내 거대한 낫의 모양으로 변했다.

그 자체로 검정색 기운을 뿜어냈는데, 마치 거대한 화염이 날개처럼 펼쳐지는 모습이었다.


“···장관이로군.”


매그너스 카엘이 넋이 나간 듯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키에라 스톰이 비아냥대듯 입을 열었다.


“장관은 무슨.”


“너는 모른다, 키에라. 저 낫이랑 한번 붙어보고 싶단 말이지.”


“···미친놈.”


“저거 이름이 아마···태초의 낫이었지? 저 검정색 기운도 세레노스 님 본인 것이라고. 태초의 기운이라니. 정말 단 한 합만 겨뤄보고 싶군.”


매그너스 카엘은 여전히 낫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정말 탐나는 물건이야.”


쿠구구구구···.


푸른 기운이 더욱 짙게 일렁이며 땅이 울렸다.

기운은 점차 형체를 이루어, 어느새 낫을 쥐고 있는 사신(死神)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


단상 위의 채옥과 아우렐리아가 소리를 질렀다.

엠마는 초연히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슬프지는 않다.

미련도 ···없다.


“···다들 고맙다.”


500년 전, 시체 더미 위에서 울고 있던 그날 구해준 제피르 팀장도.

믿고 따라주던 채옥도.

그리고···.


진시윤. 그대에게도.


“안녕.”


사신을 닮은 기운이 온 힘을 담아 낫을 내려쳤다.

엠마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 위로 푸른 기운이 밝게 쏟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

···

···


이상한 일이었다.

몸을 베어내는 감촉도, 기운이 몸을 통과하는 감촉도 없었다.


‘아무···일도 없다···?’


엠마가 천천히 눈을 떴다.

여전한 기운의 폭풍 속에 한 남자가 낫을 막아내는 모습이 보였다.


“잘 있었습니까?”


엠마는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끔뻑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생각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그저 눈에 담을 뿐.


“내가 말했죠? 구할 거라고.”


소년. 진시윤이 검정색 기운을 일렁이며 눈앞에 서 있었다.


작가의말

조팔봉입니다. 추천과 선호작은 많은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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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시공의 끝과 시작, 그리고 24.04.19 71 5 11쪽
110 태초의 유일신, 아담 크롤러 7 24.04.18 59 4 15쪽
109 태초의 유일신, 아담 크롤러 6 24.04.17 55 5 10쪽
108 태초의 유일신, 아담 크롤러 5 24.04.16 57 4 10쪽
107 태초의 유일신, 아담 크롤러 5 24.04.15 61 3 11쪽
106 태초의 유일신, 아담 크롤러 4 24.04.13 64 2 12쪽
105 태초의 유일신, 아담 크롤러 3 24.04.12 64 4 9쪽
104 태초의 유일신, 아담 크롤러 2 24.04.11 65 3 10쪽
103 태초의 유일신, 아담 크롤러 1 24.04.10 68 4 12쪽
102 고대의펜던트2 24.04.09 63 5 8쪽
101 고대의 펜던트 1 24.04.08 61 5 12쪽
100 태초의 공간 : 타임 스내쳐스 8 24.04.05 63 5 11쪽
99 태초의 공간 : 타임 스내쳐스 7 24.04.04 69 5 10쪽
98 태초의 공간 : 타임 스내쳐스 6 24.04.03 70 5 9쪽
97 태초의 공간 : 타임 스내쳐스 5 24.04.02 65 6 9쪽
96 태초의 공간 : 타임 스내쳐스 4 24.04.01 72 6 10쪽
95 태초의 공간 : 타임 스내쳐스 3 24.03.29 81 6 11쪽
94 태초의 공간 : 타임 스내쳐스 2 24.03.28 74 6 11쪽
93 태초의 공간 : 타임 스내쳐스 1 24.03.27 75 6 10쪽
92 잊혀진 이야기 5 : 결말과 시작 24.03.12 85 6 13쪽
91 잊혀진 이야기 4 : 아담 크롤러 24.03.11 82 5 16쪽
90 잊혀진 이야기 3 : 3409번째 24.03.08 79 4 13쪽
89 잊혀진 이야기 2 : 타임 스내쳐스 24.03.07 80 3 13쪽
88 잊혀진 이야기 1 : 시공관리국 24.03.06 85 2 15쪽
87 시공관리국 16 : 결전 24.03.05 89 2 13쪽
» 시공관리국 15 : 처형장 24.03.04 86 2 10쪽
85 시공관리국 14 : 기억 24.02.29 87 2 9쪽
84 시공관리국 13 : 제피르 랜더 24.02.28 93 2 11쪽
83 시공관리국 11 : 각자의 신념 24.02.27 92 2 11쪽
82 시공관리국 10 : 탈옥 24.02.26 98 4 13쪽
81 시공관리국 9 : 결착 +1 24.02.23 100 4 12쪽
80 시공관리국 8 : 매그너스 카엘 24.02.22 97 4 10쪽
79 시공관리국 7 : 선택 24.02.21 100 2 11쪽
78 시공관리국 6 : 중앙실 24.02.20 99 2 12쪽
77 시공관리국 5 : 네로 블레이즈 24.02.19 103 3 12쪽
76 시공관리국 4 : 이유 24.02.16 111 4 13쪽
75 시공관리국 3 : 폭풍전야 24.02.15 114 4 12쪽
74 시공관리국 2 : 조우 24.02.14 105 3 12쪽
73 시공관리국 1 : 수감된 패트롤 24.02.13 115 4 12쪽
72 버려진 자들의 혁명 6 : 최고의 혁명가 24.02.12 121 3 12쪽
71 버려진 자들의 혁명 5 : 주인공이 아닌 삶 24.02.10 119 3 12쪽
70 버려진 자들의 혁명 4 : 혁명 24.02.08 119 2 12쪽
69 버려진 자들의 혁명 3 : 기억 24.02.07 118 2 13쪽
68 버려진 자들의 혁명 2 : 시스템 24.02.06 124 3 11쪽
67 버려진 자들의 혁명 1 : 제트 게바라 24.02.05 122 3 12쪽
66 버려진 자들의 행성 7 : 탈출 24.02.02 126 3 14쪽
65 버려진 자들의 행성 6 : 반쪽끼리의 만남 24.02.01 124 5 14쪽
64 버려진 자들의 행성 5 : 헤라클레스 24.01.31 126 5 12쪽
63 버려진 자들의 행성 4 : 투기장 24.01.30 13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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