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진짜 쓰레기 (3)
강수는 지프에 타면서 제니를 보았다.
“제니야, 검사 신분증 얼마 만에 제작할 수 있어?”
“퀄리티에 따라 다르지.”
“어두운 데서 슬쩍 보면 속아 넘어갈 정도면 돼.”
“5분.”
“검찰 신분증은 어따 쓸 거야?”
꽁태가 운전하며 강수에게 물었다.
“홍회장을 잡아야지. 그래야 복강동 보이스 피싱 조직을 박살 낼 수 있으니까.”
제니는 작업실에서 검사와 수사관 신분증 3개를 뚝딱 만들었다.
“나도 검사로 해주지. 수사관 말고.”
황구가 신분증을 보며 입을 비죽거렸다.
“니는 공부할 관상이 아니잖아, 인마. 내 몽타주 정도 돼야 사법고시 패스한 검사라고 믿지.”
꽁태는 검사 신분증을 목에 걸고 거울을 보았다.
“신분증이 사람 완전 달라 보이게 만드네. 근데 깡수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뭐야?”
“낚싯바늘.”
“낚싯바늘?”
***
민실장과 친구 3명이 팔공 컨트리클럽에서 2 대 2로 편을 먹고 내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머들개 짓 하면 또 땅만 판다.”
민실장이 스윙하려는 친구에게 말했다.
“머들개가 뭐야?”
“머리 들면 개새끼.”
그러나 친구는 스윙하면서 머리를 들었고, 골프채는 뒤땅을 때렸다.
“아, 머들개 새끼.” 민실장이 구박을 줬다.
“왜 자꾸 머리를 드는지 모르겠네.”
“뭐 빨아먹을 거 없나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게 습관이 돼서 그래.”
그린을 향해 걸어가며 민실장과 친구들은 수다를 떨었다.
“저 캐디 내가 찜했으니까 침 삼키지 마라. 라운드 끝나면 내가 데리고 간다.”
“니 마누라 알면 새꺄 니 인생 트리플보기 난다, 새꺄.”
“우리 마누라 로마 투어 갔어요. 그래서 인생 트리플보기 날 일 없어요.”
“오늘 내기에서 지면 내가 니 인생 트리플보기 만들 줄 알어.”
민실장이 같은 편인 친구에게 말하고 스윙을 했다. 골프공이 또르르 굴러서 홀 안으로 들어갔다.
18홀을 돈 끝에 민실장 팀은 1타 차이로 내기에서 이겼고, 상대방 팀인 친구들은 백만 원권 수표 다섯 장을 건넸다.
“레슨 받았는데 핸디가 줄지를 않네.”
친구가 투덜거리자, 민실장이 수표를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이기려고 스윙하니까 안 되는 거야, 인마. 무심하게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스윙을 해야 공이 맞아.”
“내기에서 지니까 훈계까지 듣네.”
친구가 캐디에게 신경질적으로 골프채를 건네다가 저쪽을 보았다.
“쟤 뭐야?”
민실장도 친구가 바라보는 곳을 보았다.
산안개가 어른거리는 라이트 밑으로 몸매가 늘씬한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제니였다.
“철용 씨, 라운딩 재미있었어요?”
섹시하게 멋을 부린 제니가 민실장에게 웃음을 흘리며 인사했다.
“내기에서 이겼으니까 재미있었다고 할 수 있겠죠. 근데 나 아세요?”
민실장은 눈빛에 경계심을 일으켰다. 보이스 피싱 조직의 일원이라면 모든 사람을 의심부터 하고 보는 법이니까.
“철용 씨가 벌써 나 잊었다니까 섭섭하네. 라운딩 끝났는데 뭐 할 거예요?”
제니가 민실장에게 팔짱을 끼며 농염하게 웃었다. 그러자 친구들은 부러워 죽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미인을 숨겨두고 응? 철용이 너 진짜 의리 없다.”
“나는 조일증권 펀드 매니저 곽경식입니다.”
친구들이 제니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제니는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철용 씨하고 단둘이서 즐기고 싶은데······ 이럴 땐 센스 있게 자리 피해주시는 것도 매너 아닐까요?”
제니가 민실장의 팔을 끌며 자리를 떴다.
“철용아, 재미있게 놀고 후일담 들려주라.”
제니는 민실장에게 팔짱을 끼고 주차장으로 왔다.
“오빠 차 어디 있어?”
“저기 딱 보이잖아. 반짝반짝 광택 나는 람보르기니. 근데 내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어여쁜 아가씨 네임이 생각나지를 않네. 아가씨 네임이 뭐지? 우리가 어디서 인연을 맺었어? 럭키룸에서? 아니면······”
“만난 적 없어. 그러니까 이름도, 얼굴도 기억 못 하는 거야.”
제니의 말에 민실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팔짱을 풀었다.
“만난 적이 없는데 나를 어떻게 알까, 우리 이쁜 아가씨가?”
“검찰이니까 알지.”
제니가 민실장 눈앞에 가짜 검찰 수사관 신분증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민실장이 거북이처럼 목을 빼서 신분증을 살폈다. 제니의 위조실력은 민실장의 날카로운 눈썰미에도 들통나지 않았다.
“검찰? 하, 돌겠네. 이렇게 깊은 밤에 독고다이로 나 잡으러 오셨어? 내가 뭔 죄지었는데?”
민실장이 아이언 골프채를 꺼내서 제니를 겨누었다.
“에이, 착각도 야무지시다. 내가 혼자 왔을까?”
발걸음 소리에 민실장이 돌아보았다.
민실장 뒤에서 양복을 입은 꽁태와 황구가 다가왔다.
“이 새끼가 민실장이야?”
꽁태가 민실장 코앞에 바짝 다가왔다. 민실장은 꽁태가 대포통장을 상납하던 복강동 대구 지점의 이인자이다. 호사스럽게 람보르기니 타고 야간 골프 치는 민실장을 보니 꽁태는 화가 치밀었다.
“대구지검 형사2부 김정곤 검삽니다.”
“그래서? 뭐? 이것들이 야밤에 떼거리로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내가 뭔 죄지었는데? 응?”
“너, 김배우 알지?”
김배우라는 단어에 민실장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두뇌를 풀가동했다.
검찰이 어떻게 김배우를 알지? 폭력으로 유치장에 처박힌 김배우가 보이스 피싱에 대해서 말했을 리가 없을 텐데.
“김배우? 김배우가 누구야? 영화배우야?”
민실장은 오리발을 내밀었다.
“강수사관, 민실장이 김배우를 모른다네. 이거 어떡하지?”
꽁태가 황구를 보았다.
“영감님께서 친절하게 설명하시니까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겁니다.”
황구는 말을 끝내자마자 민실장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묵직한 주먹에 민실장이 휘청했다.
“우리 영감님 심기 건드리지 마라.”
민실장이 피 묻은 침을 퉤 뱉어내며 독기어린 눈빛으로 꽁태를 쏘아보았다.
“검찰이면 사람 두들겨 패도 되는 거야?”
“법적으로 그러면 안 되지. 근데 너 같은 새끼한테는 그래도 돼.”
꽁태가 민실장의 귀싸대기를 쩍쩍! 연속으로 후려쳤다.
“복강동 민실장님, 눈깔아.”
민실장이 쏘아보다가 눈을 내리깔았다.
“김배우가 다 불었어. 그러니까 조용히 입 다물고 가면 니가 빠져나올 구멍을 알려주지.”
***
민실장은 람보르기니 트렁크에 처박혀서 제니의 작업실까지 왔다.
“너희들 검사 아니지? 여기 어디야?”
민실장이 수갑을 찬 채 소리치자, 제니가 팔짱을 낀 채 민실장을 응시했다.
“여기? 복강동 검거하기 위해서 세팅한 특별수사본부. 니들이 검찰 수뇌부에 뇌물 먹였다는 거 우리가 모를 줄 알아? 공식적으로 오픈해서 수사하면 니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니까, 시크릿하게 수사하는 거야.”
민실장은 제니를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그리고 어느 책에서 읽었던 구절을 떠올려다.
남자의 인생을 빵구 내는 세 가지는 도박, 골프, 여자이다.
민실장은 골프를 치다가 여자에게 낚여서 여기까지 끌려온 자신을 질책했다. 하지만 모든 후회는 때늦게 찾아오는 법이 아니던가.
“변호사 선임할 권리 있으니까 내 폰 줘. 변호사 없으면 묵비권 행사할 거니까.”
민실장은 독사처럼 대가리를 꼿꼿하게 처들었다. 그러자 황구가 민실장 앞에 우뚝 서며 노려보았다.
“미란다 원칙을 읊어줘야 하나? 민실장, 넌 새꺄 묵비권 행사하면 얻어터지고, 변호사 선임하면 죽을 것이고, 니가 털어놓는 복강동 정보만이 니 목숨을 구원한다. 알겠어?”
“대한민국 검찰이 이래도 되는 거야? 응? 법 절차대로 해야지!”
민실장이 소리 지르자, 황구가 민실장의 귀싸대기를 후려쳤다. 쩍! 민실장의 턱이 휙 돌아갔다.
“이 새끼 더럽게 말 많네.”
민실장이 성깔이 바짝 올라온 눈깔로 황구를 쏘아보았다.
“검찰이 폭력을 사용해! 응?! 민주국가에서! 응?! 내가 고소해서 반드시 너 옷 벗긴다!”
“눈깔에 성깔 담긴 것 좀 봐. 강수사관님, 한 대 더 때려야 말이 통할 거 같네요.”
제니의 말에 황구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민실장이 눈깔을 내리깔았다.
“죄송합니다.”
“그래. 진작 그렇게 나왔으면 내가 고운 말로 했을 거 아냐.”
황구가 뒤쪽을 보며 계속 말했다.
“영감님, 세팅했으니까 조사 들어가시죠?”
저쪽에 앉아 있던 꽁태가 느긋하게 일어나서 민실장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한참 동안 민실장을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민철용.”
“······.”
“김배우 알지? 복강동 최고 톱스타 배우.”
“······.”
“강수사관, 이 새끼가 기억이 가물가물한가 보다. 프로필 읊어줘라.”
“황구가 파일을 펼쳐서 김배우의 프로필을 읊었다.
“김상호, 나이 31세, 한예종 연기과 졸업, 복강동 대구 지점 보이스 피싱 배우 5년 차. 지난 5일 동성파크월드 입주자 380명 중도금 피싱 작업으로 대박 쳤습니다.”
황구는 강수가 복강동에서 빼낸 정보를 읊었다. 그러자 민실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계속해, 강수사관.”
“복강동은 서울, 대구, 부산 세 개 지점에 각각 오십여 명의 배우들을 고용해서 연간 천억 원을 피싱합니다. 대구 지점은 6년 전에 법원 맞은편에 사무실을 오픈했고, 지점 관리는 우사장이 책임지고, 민실장 이 개새끼는 배우들과 현금 인출책을 관리합니다. 그리고 대본은 서작가라는 놈이 작성하구요.”
황구의 브리핑이 끝나자, 꽁태가 민실장의 턱을 움켜쥐며 노려보았다.
“팩트와 틀린 점이 있어?”
민실장이 꽁태의 얼굴에 침을 퉤 뱉으며 악다구니 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구! 법대로 해! 법대로. 빨리 영장 쳐서 구속시켜! 그럼 대한민국 최고 로펌 선임해서 3년만 살다 나오면 되니까. 니들이 내가 차명 계좌로 꿍친 돈 찾아낼 수 있을 거 같아?! 검찰 총동원해도 못 찾아내 개새끼들아!”
“민실장님, 우리는 법대로 하기 전에 민실장님 사진이랑 신상정보 인터넷에 뿌릴 거예요.”
제니의 말에 민실장은 뜨끔해졌다. 그 표정을 간파한 제니가 계속 썰을 풀었다.
“사모님께서 민실장님 피싱질 하는 거 모르죠?”
“모르지.” 황구가 거들었다.
“우리가 사모님께 친절하게 설명하고, 아드님한테도 아버지 직업이 뭔지 상세하게 브리핑할 겁니다. 그러면 우리 민실장님은 어떻게 될까요?”
“대한민국에서는 다 산 거지. 유승준처럼 말이야.” 황구가 제니의 말에 힘을 보탰다.
“말이 너무 길다. 일단 인터넷에 이 새끼 신상 뿌려라.”
꽁태의 지시에, 황구와 제니가 저쪽에 놓여 있는 컴퓨터 앞으로 갔다.
민실장의 눈에 갈등이 꿈틀거렸다.
민실장은 신도 10만 명이 다니는 교회의 전도사이며, 대학 동창회 회장이며, IT기업 재직 15년 차의 존경받는 아버지에, 애처가의 가면을 쓰고 살았다.
가면이 벗겨지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검사님, 제가 빠져나갈 구멍이 뭡니까? 어떻게 하면 되죠? 가족들은 모르게 해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민실장이 다급하게 말하자, 꽁태가 민실장을 보며 고민하다가 꽁태와 제니를 호출했다.
“우리 민실장님이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뭘까?”
꽁태의 질문에, 황구가 말했다.
“영감님, 제 생각에는 말이죠, 우리가 10개월 동안 복강동 추적했는데 적당한 보상 받고, 민실장만 복강동에서 살짝 아웃시켜주면 어떨까요?”
“적당한 보상? 그래. 고생했는데, 보상받아내야지. 어떻게 받아내면 좋을까?”
꽁태가 민실장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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