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진짜 쓰레기 (2)
“기회 주시면 최고 실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저는 영혼을 팔고 몸뚱이를 팔아서라도 돈 벌어야 합니다. 제발 기회 주십시오.”
강수는 무릎을 꿇은 채 민실장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왜 이래? 부담스럽게.”
말은 이렇게 했지만, 민실장은 속으로 웃었다.
이놈 참 절박한 놈이네. 우사장이 말한 캐스팅 조건에 100% 부합하는 인생 막장에 몰린 놈이다.
“좋아, 유형국 씨. 내일 회사로 출근해. 리딩해 보고 최종결정하도록 하지.”
콜센터에 잠입하기 위해 강수가 세운 구멍 내기 작전은 성공이었다.
***
“우리 기획팀에서 준비 중인 대본인데, 연기해보세요.”
복강동 사무실에서 서작가가 강수에게 대본을 내밀었다. 강수가 대본을 훑어보다가 숨을 크게 토해낸 후 리딩을 했다.
“김상철 씨 되시죠? 저는 주미 한국 대사관 영사과 박태석 행정관인데요, 아드님이 브라이언 킴이죠? 아드님께서 코카인 흡입하다가 뉴욕 경찰한테 걸렸는데 말입니다.”
“됐어.”
민실장이 강수에게 대본을 그만 읽으라고 말한 후 서작가를 보았다.
“음색 어때?”
“호흡도 좋고 딕션도 좋고. A그룹이네요.”
“검사, 형사, 금감원 쪽. 괜찮네. 피싱 시스템 설명해 주고, 감정 연기 시켜서 콜센터 투입해.”
“합격입니까?”
강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민실장을 보았다.
“형국 씨, 우리 열심히 파이팅해서 80평에 벤츠, 알지?”
민실장이 강수의 어깨를 툭 치자, 강수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죽을 각오로 실적 올리겠습니다.”
“우리는 조폭 아니다. 90도로 허리 꺾지 마.”
민실장이 밖으로 나가자, 서작가가 다리를 꼬며 앉았다.
“형국 씨.”
“예.”
강수가 서작가 맞은편에 공손한 자세로 앉았다.
“편히 앉아. 편히. 나는 어려운 사람이 아니니까.”
“예.”
그러나 강수는 계속 공손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인상도 좋고 인성도 좋아 보이는데······ 피싱 연기의 기본이 뭔지 알아?”
“모릅니다.”
“낚시할 줄 알면 설명하기가 쉬운데. 보이스 피싱은 목소리로 낚시하는 직업이야.”
“예.”
“낚싯대를 던지면 물고기들은 바늘을 덥석 물어. 왜 물겠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을 못 하니까······”
“그렇지. 리얼리티. 가짜지만 진짜 같은 리얼리티.”
“······.”
“우리 직업을 영화 장르로 분류한다면 호러에 속해.”
“그게 무슨 말씀인지······?”
강수는 속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겉으로는 모른 척했다. 그러면 서작가가 우쭐거리며 설명할 것이고, 설명하다 보면 의심의 끈을 늦추기 때문이다.
“호구들의 공포심을 이용한다는 거야.”
“공포심.”
“피싱할 때 우리는 정보를 쥐고 있고, 호구들은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시작한단 말이야. 호구들한테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걸 선명하게 각인시켜줘. 그리고 우리를 안 믿으면 호구 너희들은 씹창난다. 호구들 가슴 깊숙이 공포를 심어주는 거지.”
“우리 말을 듣지 않으면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고, 돈도 몽땅 날려 먹는다고 말이죠?”
“그렇지. 똑똑하네. 호구들한테 공포를 심어주면 80프로 먹고 들어가는 거야. 나머지 20프로는 디테일을 살려서 해결하면 되고. 언더스탠?”
강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작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콜센터 가서 실전 교육합시다.”
***
지프에 타고 있던 꽁태, 황구, 제니는 복강동 건물을 바라보았다.
“강수 형님 잘하고 있을까?”
황구가 걱정하자, 꽁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못 했으면 좋겠다.”
“왜?”
“깡수가 신분 뽀루 나서 복강동에서 인생 마감하면 우리는 프리 아니냐. 우리가 왜 깡수한테 코 끼여서 이 짓 해야 하냐? 이유가 없잖아.”
“그래도 동창이잖아.”
“말이 동창이지, 깡수하고 나는 안 친했어.”
“강수 오빠 고등학교 때 어땠어요?” 제니가 궁금한 눈빛으로 꽁태를 보았다.
“제니 씨, 아픈 추억 떠올리기 싫은데······.”
“강수 오빠 얘기 좀 해줘요?”
“내가 왜 깡수 얘기를 해? 깡수 기억하기도 싫은데.”
“그럼 꽁태 오빠 얘기부터 하고, 강수 오빠 얘기해줘요.”
제니의 제촉에 꽁태가 차창 밖으로 먼 하늘을 보았다.
“내 얘기라······.”
***
꽁태는 중학교 때까지는 일진이었다. 미들급 동양 챔피언 권투선수 출신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주먹이 묵직했다.
그래서 한 학년 위의 형들도 때려눕혔다. 그러나 동급생들에게 삥을 뜯거나 빵셔틀을 시키지는 않았다.
“뽁싱해라. 니 주먹이면 밥벌이는 될 거다.”
꽁태의 아버지는 쌈박질하는 꽁태에게 권유했다. 하지만 꽁태는 심판이 있는 링 위에서 주먹질하기는 싫었다.
또 권투는 인기 스포츠가 아니어서 돈도 되지 않았기에 링 위에 올라가서 글러브를 끼기 싫었다. 그냥 야생마처럼 뒷골목에서 싸우는 것이 꽁태 스타일이었다.
꽁태는 고등학교 진학해서 KD그룹 천회장의 조카 재열과 같은 반이 되었다. 강수가 재열에게 개겼듯이 꽁태도 재열에게 개겼다. 그 대가는 처절한 짓밟힘이었다.
다음 날, 꽁태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가서 재열과 카르텔을 형성한 일진을 향해 휘둘렀다.
“다 덤벼 씨발아!”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다고 해서 1대8의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었다. 꽁태는 재열에게 자근자근 짓밟히고 다시는 개기지 않았다. 그런데 강수는 1년 동안 재열에게 개겼다.
“남자가 무릎 꿇을 줄도 알아야지.”
꽁태는 강수를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강수가 재열에게 굴복하지 않기를 바랐다.
***
꽁태는 아팠던 고등학교의 진실을 감추고 제니에게 구라를 쳤다.
“학교 다닐 때 깡수는 완전 내 밥이었어. 먹이사슬로 따지면 나는 포식자, 깡수는 식물. 그런 관계였다고 할까. 내가 물 떠오라고 하면 깡수는 쫄래쫄래 달려가서 물 떠오고 그랬어.”
“꽁태 오빠 악질이었네.”
제니가 쏘아붙였다.
“제니 씨, 말을 그렇게 하면 내가 섭섭하지. 제니 씨가 남자의 세상을 몰라서 그런데, 남자들의 세상은 정글이야. 사자가 사슴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세계.”
“근데 지금은 왜 강수 형님 앞에서 깨갱거려?”
황구가 꽁태의 약점을 공략했다.
“그건······ 동창이니까. 동창이라 봐주는 거지. 학교 다닐 때 내 심부름 많이 해서 불쌍하니까.”
“강수 형님이 안 무서우면 지금 핸들 돌려서 가면 되는데, 여기서 왜 기다려?”
“그러게 말이야.” 제니가 황구의 편을 들었다.
“말을 왜 또 섭하게 하실까. 제니 씨, 나 의리 없는 놈 아냐. 깡수가 사지에서 독고다이로 고군분투하는데 외면하면 그거 인간의 도리가 아냐.”
“조금 전에는 강수 오빠가 복강동에서 인생 마감했으면 좋다고 했잖아.”
제니가 꽁태에게 날카롭게 일침을 가했다.
제니는 머릿속으로 강수의 얼굴을 떠올렸다. 3년째 연애를 하지 못했던 제니는 강수를 보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강수가 이상형에 가까운 몽타주였기 때문이다.
강동원 닮은 강수와 파트너가 되면 일할 맛 나겠는데.
제니는 껌딱지처럼 강수를 따라다녀서 꼭 파트너로 만들 플랜을 구상했다.
“꽁태 오빠는 강수 오빠처럼 독고다이로 복강동 들어갈 수 있어요?”
제니가 꽁태를 빤히 보았다. 꽁태가 대답하지 못하자, 황구가 대신에 말했다.
“그걸 뭐하러 물어. 꽁태 형님은 죽어도 못 가.”
“강수 오빠 진짜 용감하죠?”
“완전 카리스마 쩔지.”
제니와 황구가 강수 편을 들자, 꽁태는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배고프다. 선짓국이나 먹으로 가자.”
꽁태는 씁쓸한 기분으로 지프에서 하차했다.
***
콜센터에서 실전 연기를 트레이닝 받은 강수는 복강동 조직을 파악하려고 오감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콜센터 배우들이 피싱하는 목소리 속에서 민실장이 우사장과 전화 통화하는 목소리를 찾아냈다.
“배우 한 명은 서작가가 트레이닝 시키는 중이구요, 내일 두 명 더 캐스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실장이 전화로 우사장에게 보고했다.
우사장은 자택 서재에서 민실장과 통화하며 CCTV를 보고 있었다.
“캐스팅 원리원칙 지켰지?”
“예.”
“우리 대구 콜센터가 서울, 부산보다 실적이 떨어지는 거 알지? 이번에 유학생 프로젝트로 무조건 실적 올려야 돼. 배우들 트레이닝 잘 시켜. 회장님께서 특별히 관심 가지는 프로젝트니까.”
“유학생 프로젝트는 아이템이 좋으니까 실적도 좋을 겁니다. 빵빵하게 돈줄 있는 집에서 아들딸 유학 보냈으니까, 살짝만 겁주고 터치하면 피싱될 겁니다.”
“민실장.”
“예, 사장님.”
“구약성서 잠언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개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어라. 개미는 두목도 없고, 감독자도, 통치자가 없어도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여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좋은 말씀입니다, 사장님.”
“그래, 민실장. 우리도 개미처럼 일하자. 알겠지?”
“예, 사장님.”
우사장이 전화 끊기를 기다렸다가 민실장은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너나 개미처럼 일해라 새꺄. 나는 베짱이처럼 놀 거니까.”
민실장은 콜센터를 빠져나가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오늘 필드 뛰자. 팔공 컨트리에 예약 걸어놨으니까.”
“형국 씨, 뭔 생각해?”
서작가의 목소리에 강수는 민실장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서작가를 바라보았다.
“긴장을 해서······”
“형국 씨는 내일부터 실전에 투입될 거니까, 8시까지 출근해.”
“알겠습니다.”
“우리 비즈니스는 보안이 생명인 거 알지?”
“예.”
“술 처마시고 횡설수설하지 말고, 잠꼬대도 하지 마. 낮말은 검찰이 듣고, 밤말은 경찰이 들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서작가가 피싱질 하는 배우들을 향해 손뼉을 짝짝 쳤다.
“여기까지 비즈니스하고 퇴근합시다.”
배우들이 헤드셋을 벗고 기지개를 쭉 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모두가 주먹을 쥐고 구호를 외쳤다.
“철통 보안! 피싱은 보안이 생명이다! 자나 깨나 입조심! 벽에도 귀가 있다! 오늘의 말실수는 내일의 감빵 생활!”
배우들이 외치는 구호에 강수의 관자놀이가 불끈거렸다. 저것들을 당장 때려죽일까? 그러나 강수는 어금니를 꾹 깨물며 화를 억눌렀다.
배우들이 콜센터를 빠져나간 후 강수는 서작가 작업실로 들어갔다.
“왜?” 서작가가 강수를 보았다.
“궁금한 게 있어서요.”
“뭔데?”
“복강동 회장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몰라, 어떤 분인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으니까. 근데 홍회장님이 왜 궁금해?”
“취직했으니까 홍회장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게 도리인 거 같아서요. 서작가님께서 모르시면······ 민실장님은 아시겠죠?”
“내가 모르는데 민실장이 어떻게 알아.”
“민실장님이 서작가님보다 직급이 높으니까······”
“민실장이 나보다 직급이 높다고 누가 그래? 내가 브레인이야. 복강동 대구 지점 브레인. 복강동은 내가 쓴 시나리오로 굴러가는 거야. 시나리오 없는 영화 봤어? 민실장은 엑스트라야!”
발끈하는 서작가를 보면서 강수는 생각했다. 사람은 역시 감정을 건드려야 해.
“그럼 홍회장님을 아는 사람은······?”
“우사장님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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