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성난 황소 (2)
“도대체 어떤 놈이길래 희강이 당했을까? 조직에서 잔뼈가 굵은 희강은 실수한 적이 없는데.”
희강의 전화를 받은 구양길은 가래 끓는 소리를 토해내며 똘마니들을 총소집했다.
영업장에 흩어져 있던 인터내셔널파 똘마니들이 연장을 챙겨서 곧장 구양길의 사무실 앞으로 집합했다. 어떤 놈은 대낮부터 술을 빨아서 술냄새가 풀풀 풍겼다. 또 어떤 놈은 호랑이 문신을 등짝에 새기다가 달려왔기에 등짝에 새겨진 호랑이가 외눈깔이었다.
***
구양길은 희강이 강수와 봉순을 잡았다고 처음 연락해 왔을 때 KD바이오 천백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건 세 개 구했습니다. 안전한 물건이니 사용하셔도 될 겁니다.”
조비서를 통해 구양길의 말을 전해 들은 천백은 사악한 웃음을 머금었다.
“구양길 같은 잡것들은 곱게 말하면 말을 듣지 않는 족속들이야. 고삐를 바짝 당겨서 윽박지르고 위협해야 겁먹고 동작이 신속해져.”
천백은 휠체어를 타고 KD바이오 실험실로 들어갔다.
긴장한 연구원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었다. 천백이 사악한 눈빛으로 맞은편에 서 있는 KD바이오 수석 연구원 배박사를 노려보았다.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실적을 내지 못한 배박사가 잔뜩 겁에 질렸다.
5년 전, 연구원이었던 닥터김이 사소한 데이터 분석을 실수하자, 천백이 조비서에게 지시했었다.
“저년 눈깔 하나 파내버려.”
조비서는 천백의 지시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100% 수행한다. 천백이 대통령 불알을 가져오라고 하면 조비서는 목숨 걸고 청와대에 돌진할 것이다.
천백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조비서는 메스로 닥터김의 왼쪽 눈알을 파냈다. 눈앞에서 닥터김의 눈알이 파내져서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배박사는 오줌을 지릴 뻔했었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지? 천백이 내 눈알도 파내는 건 아닐까? 배박사는 너무나 불안해서 현기증이 일어났다.
천백이 천천히 휠체어를 타고 배박사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모니터의 카메라가 천백의 눈동자를 인식하자 AI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 물건이 세 개 들어온다.”
“만반의 준비를 하겠습니다.”
배박사가 군기 바짝 든 이등병처럼 차렷 자세를 취했다.
“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실적을 내. 수단 방법 따지지 말고.”
“알겠습니다.”
배박사를 응시하던 천백은 휠체어를 움직여 베드에 누워있는 화장터 최씨에게 다가갔다.
“이 인간은 언제쯤 의식을 회복할 거 같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선이라는 게 뭐야?”
“그, 그건······”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때 구시렁거리는 변명이야. 배박사.”
“예.”
“내 유언장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알아?”
“모, 모르겠습니다.” 배박사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죽으면 여기 있는 KD바이오 연구원들을 몽땅 내 옆에 매장하라고 적혀 있어.”
배박사의 등골에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잘들 해.”
천백이 사악한 눈빛으로 배박사를 응시하다가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
인터내셔널파 사무실로 돌아온 희강은 그동안 벌어졌던 사태를 구양길에게 낱낱이 보고했다. 그러자 구양길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서랍을 열어서 쇠좆매를 꺼냈다.
“희강아, 너까지 나를 엿 멕이냐?”
“보스, 제가 왜 구라 치겠습니까? 믿어주십시오.”
희강의 말이 끝나자마자 구양길은 쇠좆매로 희강을 후려쳤다. 쇠좆매의 매서운 맛에 희강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 새끼가 슈퍼맨이야? 베트맨이야? 너 약 빨았어.”
“조금 있으면 그놈 여기로 올 겁니다. 그럼 보스께서 직접 확인하십시오. 그놈이 어떤 놈인지.”
“이 개새끼가 끝까지 나를 엿 멕이네.”
구양길은 쇠좆매로 희강을 무식하게 구타했다. 그러나 희강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구양길이 무지막지하게 희강을 두들겨 팰 때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구양길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뭐야?”
“보스, 짭새들입니다.”
똘마니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경찰이 뜨면 조폭은 이유 불문 토낀다. 일단 토낀 후에 자초지종을 따지는 것이 조폭들의 생리이다.
“짭새들 막아!”
구양길이 똘마니들에게 지시하며 금고를 열어서 장부를 꺼냈다.
구양길과 희강이 뒷문으로 도망치고 난 후 서울경찰청 소속 형사들이 들이닥쳐서 인터내셔널파 똘마니들을 연행했다.
***
한 시간 전, 강수와 봉순은 구양길을 응징하는 방법으로 설전을 벌였다.
“혼자서 감당 못 해요. 걔네들 최소 백 명 이상 연장 들고 매복하고 있을 건데.”
“그럼 어떡해? 맨날 쫓겨 다닐 거야?”
“왜 쫓겨 다녀요? 머리를 써서 잡자는 거죠.”
“머리보다 주먹이 빠르다.”
“주먹보다 머리가 효율적일 때도 있어요. 괜히 삼육 씨 다치면······”
“다치면? 너, 나 걱정하냐?”
“내가 왜 삼육 씨를 걱정해?”
“에이, 거짓말. 걱정하지?”
“그래요. 그래. 아주 많이 걱정한다. 동업자니까. 영업에 지장 있을까 봐 걱정해야지.”
봉순이 고덕식을 보며 물었다.
“누구 말이 맞아요? 머리에요, 주먹이에요?”
“머리로 해결되는데 주먹을 왜 써요? 머리 나쁜 놈들이나 주먹질하지.”
“2 대 1. 머리로 갑시다.”
봉순은 승합차 앞에 널브러져 있는 30살 비계에게 다가갔다.
“야, 비곗덩어리. 구양길이 마약 밀매하지? 구양길이 마약 어따 짱 박아 둬?”
신음을 흘리며 널브러져 있던 30살 비계가 봉순을 노려보았다.
“조직을 배신하라고? 씨발년이. 우리 인터내셔널파는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어!”
30살 비계가 결기 있게 외쳤다.
“꼴값 떠네. 니가 구양길을 위해 죽어도 구양길은 널 위해 절대 안 죽어.”
“좆 까!”
30살 비계가 봉순을 향해 침을 퉤 뱉었다. 봉순은 짜증 나는 눈빛으로 30살 비계를 노려보았다.
“하여튼 이것들은 말로 하면 안 된다니까. 뭐해요, 삼육 씨? 이럴 때 주먹을 써야죠.”
강수가 성큼 다가와서 30살 비계의 팔목을 꺾었다. 그러자 30살 비계가 외마디 비명을 토해냈다.
“아아악!”
“구양길이 밀수한 마약 어딨어?”
“보스께서 너희들 가만 안 둔다. 너희를······”
강수가 30살 비계를 허공에 번쩍 들어서 딱밤을 딱, 딱, 딱 먹였다. 30살 비계는 타이슨의 핵펀치에 맞은 듯이 골이 찡하게 울려서 하늘이 노래졌다.
“아직도 의리가 목숨보다 중하냐?”
“아뇨. 아뇨. 살려주세요.”
“구양길이 마약 어디 있어?”
“지하실 바닥에 있습니다.”
***
봉순의 신고를 접수한 서울경찰청 형사들이 지하실에서 히로뽕 100kg을 찾아내고, 인터내셔널파 똘마니들을 마약사범으로 연행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수와 봉순 옆으로 고덕식이 다가왔다.
“자수하러 가겠습니다.” 고덕식이 강수와 봉순에게 가볍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모범수 되면 언젠가 가석방될 수도 있어요. 희망 잃지 마세요.” 봉순이 애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수는 고덕식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고 발걸음을 옮겼다.
구양길이 도망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강수는 화가 치밀었다.
“주먹으로 했으면 구양길이 잡았을 거 아냐.”
“그래도 내가 머리를 썼으니까 히로뽕도 찾아냈고 똘마니들 일망타진한 거예요. 히로뽕 100키로면 시가로 얼만지 알아요?”
“몰라.”
“400억이 넘어. 100키로가 넘는 히로뽕이 시중이 풀리면 어떻게 될 거 같아요?”
“몰라.”
“회사 출근해서 하루종일 업무에 시달리다가 사장한테 쌍욕 얻어먹은 회사원이 스트레스 풀려고 클럽 갔다가 꼬임에 넘어가서 히로뽕 빨고, 히로뽕 한 번 빨면 중독자 되는 건 시간 문제고. 히로뽕 빨다가 월급 다 날리고, 대출받아서 히로뽕 빨고, 그러다가 몸 다 망가지고, 가정파탄 나고, 그렇게 될 거 아니에요. 그럼 구양길은?”
“몰라.”
“히로뽕 팔아서 400억 벌고, 그 돈으로 똘마니들 모집해서 세력 키우고, 또 히로뽕 밀수해요.”
능숙한 혀는 우수한 무기라고 했던가. 봉순에게는 혀가 주먹이고 칼이다.
“졌다. 졌어. 1절만 하고 끝내라. 봉순이 너한테 내가 어떻게 이기냐.”
강수는 따발총처럼 수다 떠는 봉순에게 백기 투항했다. 봉순이 강수의 눈을 응시하며 다짐을 받았다.
“나는 머리. 삼육 씨는 주먹. 앞으로 업무 분담 확실히 해요. 알았어요?”
“알았다.”
“약속해요.”
“약속한다. 됐냐?”
봉순이 생긋 웃자, 강수가 심통이 난 얼굴로 말했다.
“근데 구양길이는 어떻게 잡을 거야?”
“머리는 내가 쓴다니까.”
봉순이 셜록홈즈 같은 눈빛으로 구양길의 사무실을 찬찬히 살폈다.
***
마약 밀수범으로 도망자 신세가 된 구양길은 경찰에게 쫓기고 천백에게 추궁당할 판이다. 아니다. 경찰보다 더 무서운 천백은 구양길을 죽이고도 남을 놈이다.
천백에게 물건을 3개를 넘기기로 했는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구양길은 혀가 바짝바짝 말랐다.
“희강아,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냐?”
“천백이를 왜 그렇게 무서워하십니까? 애들 하나 시켜서 담가 버리면 되잖습니까. 아니면 인신매매로 경찰에 신고하시죠?”
“신고해봐야 물증도 없고, 또 물증이 있어도 대형 로펌 고용해서 빠져나올 거다. 법 위에 돈인 세상 아니냐. 마약이야 애들 감빵에 보내서 해결하면 되는데······”
구양길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희강을 바라보았다.
“희강아, 내가 없으면 우리 인터내셔널파가 어떻게 되겠냐? 선장 없는 배가 침몰하는 건 시간 문제 아니냐. 동남아 조폭들도 무섭게 치고 들어오는 판인데.”
구양길의 말이 맞기에 희강은 걱정이 몰려왔다.
“희강아, 니가 나를 좀 살려줘야겠다.”
“어떻게 말입니까?”
“니가 천백이 그 새끼 담궈라.”
“예? 제가 말입니까?”
“왜? 후달리냐? 천백을 잡아야 우리 인터내셔널이 살지 않겠냐?”
천백을 죽여 버리자고 제안한 것은 희강이었다. 그러나 직접 사시미를 손에 쥐자니 망설여졌다. 토끼 같은 마누라의 귀여운 눈빛이 생각나서였다. 그런 희강의 심리를 구양길은 단번에 눈치챘다.
“너도 결혼하더니 나약해졌구나. 옛날 같으면 단번에 형님 제가 천백이 담그겠습니다. 그렇게 말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이 일이 죄송하다고 끝날 일은 아니다. 산타도 없고, 우리 조직에서 너만한 칼잡이가 어디 있냐? 희강아, 니가 그 연놈들 잡아 왔으면 이런 사태도 생기지 않았다. 이 사태가 다 너 때문이다. 내 말이 틀렸냐?”
희강은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 떠넘기는 구양길에게 배신감이 들었다. 하지만 보스 구양길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다.
“천백······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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