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닥치고 쓰레기 (4)
원피스에게 뒤통수 된통 얻어맞은 강수는 봉순과 숙박했던 경산의 베스트모텔로 향했다.
봉순과 헤어진 지 며칠이 지났으니 봉순은 당연히 서울로 갔을 것이다. 그래도 봉순의 냄새라도 맡을 수 있지 않을까.
강수는 봉순에게 전화로 심하게 퍼부었던 게 후회스러웠다.
강수는 봉순과 함께 숙박했던 베스트모텔 306호에 투숙했다. 그리고 삐거덕거리는 침대에 누워 봉순과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봉순은 낡은 다마스에 타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청순하고 섹시했다. 경찰들을 때려눕히던 상황이라 정신이 없었지만, 봉순의 첫인상은 문신처럼 지울 수가 없다.
강수는 봉순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지우려고 눈을 질끈 감았다. 잊으려고 눈을 감았는데, 봉순의 모습은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리움은 점점 커졌다. 봉순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간절히 절박해 본 적 있어?”
반지하방에서 봉순이 술에 취해 간절하게 말했었다.
“간절히 절박해······.”
강수도 절박하게 그리워하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때 옆방 305호에서 주고받는 남녀의 말소리가 강수의 그리움을 박살 냈다.
“이거 놔요!”
“이년이 왜 이래?”
“제발 놔 주세요. 제발요.”
여자는 애원하고, 남자는 겁박하는 목소리였다.
“누가 널 잡아먹니? 응? 너도 재미 보고 좋잖아.”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같이 술 처먹고 응? 좋다고 따라와 놓고 응? 지금 와서 왜 이 지랄인데? 응?”
“따라온 거 아니잖아요······. 제발 보내주세요.”
“아, 이년 이거 어이가 없는 년이네. 응? 혼자 술집에 술 마시러 온 년이 응? 요조숙녀 코스프레야? 너도 이런 거 좋아하잖아.”
곧이어 쫙! 거칠게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우, 몸매 좋은데!”
강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 305호 벽을 쾅! 쾅! 쾅! 주먹으로 두드렸다.
여자를 거칠게 다루던 남자의 목소리가 멈추고, 여자가 애원하듯 소리 질렀다.
“살려주세요! 여기 305호예요!”
다시 남자의 욕지거리와 함께 여자의 뺨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리 닥쳐, 쌍년아!”
남자는 강수가 두드렸던 벽을 자신도 두드리며 엄포를 놓았다. 쾅! 쾅! 쾅! 쾅! 쾅!
“상관하지 말고 니 볼일이나 봐라. 뒈지기 싫으면!”
305호에는 옷이 찢어져서 알몸 상태인 여자가 벌벌 떨고 있었다.
여자는 몇 시간 전 펍에서 맥주를 마신 것까지는 기억이 선명했다. 5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홧김에 간 펍이었다. 여자는 평소에 주량이 센 편은 아니었지만, 맥주 한두 잔에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맥주 한 잔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온 것이 화근이었던 걸까?
화장실을 다녀와서 두 번째 잔을 마신 여자는 정신이 아득해지며 어지러움과 구토가 몰려왔고, 온몸에서 힘이 쫙 빠졌다.
누군가가 술에 무엇을 타기라도 한 것일까?
걱정과 동시에 몸이 기울어졌고, 그때 옆 테이블의 남자가 자신의 자리로 옮겨 앉으며 일행인 척 부축했던 기억이 마지막이었다.
여자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베스트모텔 305호 붉은빛 조명 아래였다. 여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남자가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강수는 305호 문손잡이를 확 잡아당겼다. 손잡이가 쑥 빠지며 동그란 구멍이 생겼고 문이 스르르 열렸다.
강수는 뜯어낸 문손잡이를 벌거벗고 있던 남자의 뒤통수를 향해 던졌다.
빡! 남자의 뒤통수에 정확히 맞았다.
“시바 뭐야, 너?”
뒤통수를 감싸 쥔 남자는 충격에 금방 일어나지 못하고 입으로만 욕을 내뱉었다. 여자는 벌거벗겨진 몸을 이불로 덮으며 구원의 눈빛으로 강수를 보았다.
“안 볼 테니까 얼른 옷 입어요.”
강수는 여자를 배려해서 고개를 돌렸다.
“고, 고맙습니다.”
여자는 얼른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때 쓰러져 있던 남자가 살그머니 일어나서 의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강수의 뒤통수를 향해 내리쳤다.
퍽!
의자는 박살 났다. 하지만 강수는 아무렇지 않았다. 놀란 남자가 강수의 등 뒤에서 달려들며 목을 졸랐다.
옷을 입던 여자는 구세주가 역습당하는 상황이 되자, 또 다시 울상이 되어 떨기 시작했다.
강수는 악을 쓰며 목을 조르는 남자를 쳐다봤다. 까무잡잡하고 쪽 째진 눈매에 이마에 깊게 파인 상처. 분명 어디서 본 얼굴이다.
어디서 봤을까?
강수는 봉순의 지명수배범 파일을 보았었다.
“몽타주 한 장, 한 장이 우리한텐 돈이에요. 이 인간은 박철민. 강도강간으로 5백. 이 인간은 강태석. 방화에 살인미수로 3백. 이 인간은 조동수. 마약 밀수로 4백······.”
봉순은 수백 명이나 되는 지명수배범들의 죄상을 낱낱이 말하며 언젠가 모두 잡아서 떼돈을 벌자고 강수를 부추겼었다.
지금 강수의 목을 조르고 있는 이놈의 이름은 최양수. 성폭행 스물다섯 건으로 지명수배 중.
별명은 날파리.
달콤한 과일에 날파리가 꼬이듯 예쁜 여자만 보면 달려든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강수는 기억을 떠올리려고 집중했다.
현상금이 얼마였더라? 3백이었나? 5백이었나?
봉순이 돈 관리를 하니 강수는 현상금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날파리를 잡으면 3백이든, 5백이든 돈이 생기는 것은 분명하다.
날파리는 의자로 강수의 머리를 가격하고, 아무리 목을 졸라도 강수가 꿈쩍도 하지 않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강수가 웃으며 물었다.
“너, 날파리지?”
“뭐?”
“날파리 맞잖아. 몽타주랑 완전 똑같네. 흐흐흐······. 이야, 날파리 너 경산에 있었구나. 진짜 반갑다. 반가워.”
강수는 절친을 만난 것처럼 날파리의 손을 덥석 잡고 악수를 했다.
“봉순이가 알면 횡재했다고 기분 째지게 좋아할 건데. 아쉽다.”
강수는 싱긋 웃으며 날파리를 덜렁 들어서 벽에 내던졌다.
쿵!
날파리는 벽에 처박혔다가 침대 위에 떨어졌다.
“개잡놈의 새끼. 물뽕 먹여서 강간이나 하는 너같이 더럽고 야비한 새끼는 숨 쉬는 공기가 아깝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너는 숨 쉬지 마라.”
강수가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자, 여자 앞에서 기세등등했던 날파리가 비굴한 눈빛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게 아니구요······ 제가 혼자서 재미 보려는 야비하고 치사한 놈은 아닙니다. 사실 여자들도 좋아하거든요, 강간당하는걸.”
“이 개새끼가 뭐래?!”
머리끝까지 성질이 치민 강수는 날파리의 귀싸대기를 왕복으로 수십 차례 후려쳤다. 날파리의 이빨이 부러지고 코피가 터졌다.
“살려주세요, 제발! 죽을죄 졌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날파리가 눈물, 콧물, 핏물을 흘리며 싹싹 빌었다.
“이 새끼 어떡할까요?”
강수가 여자를 바라보았다.
“저런 개새끼가 교도소 가고 전자발찌 채운다고 버릇 고치겠어요? 다시는 강간 못 하게 완전 병신으로 만들어 주세요.”
여자가 날파리를 쏘아보았다.
“이건 내 뜻이 아니다. 나 원망하지 마라.”
강수는 날파리의 아랫도리를 향해 니킥을 먹였다.
퍼억!
쌍방울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날파리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혼절했다.
여자는 통쾌해서인지 아니면 강간당할 뻔한 위기에서 벗어났기 때문인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현상금이 5백이면 좋은데······. 나 좀 도와줄래요?”
강수가 여자를 보았다.
“어떻게요······?”
“현상금 챙겨야죠. 5백이면 좋겠다. 폰 있죠?”
“예.”
“경찰에 신고해요. 성폭행 지명수배범 날파리 잡았다고. 그리고 현상금 받아서 나 주면 돼요.”
***
경찰이 날파리를 유치장에 처박아 넣고 여자에게 현상금을 건넸다. 날파리의 현상금은 강수의 바람대로 5백만 원이었다.
여자는 현상금을 들고 강수가 기다리는 스타벅스로 갔다.
“5백이에요.”
여자는 강수에게 현상금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심부름 값 이십 프로.”
강수는 백만 원을 여자에게 내밀었다.
“아니에요. 저는 도와주신 것만으로 충분해요.”
여자는 손사래를 쳤다.
“정신과 상담비로 써요. 강간당할 뻔했는데 외상후 스트레스 생길 거니까. 갑니다. 남자 조심하시구요.”
강수가 테이블 위에 백만 원을 놓고 나가자, 여자는 강수의 뒷모습을 보며 꾸벅 허리를 숙였다.
스타벅스에서 마시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나온 강수는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봉순이 잡으려고 했던 놈을 잡아서일까? 봉순에게 전화해서 날파리 잡았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강수의 머릿속에는 온통 봉순 생각밖에 없었다.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면 그 사람을 잊는 데 걸리는 시간이 사랑했던 시간의 두 배가 걸린다고 했던가.
강수는 어느 책에서 읽은 문장이 기억났다. 그게 사실이라면 봉순을 잊기 위해서는 아직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강수는 곧장 국민은행으로 갔다. 봉순의 계좌번호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보다 머리가 좋네.”
심부름 값으로 여자에게 백만 원을 줬으니 4백만 원이 남았다. 지명수배범을 잡을 때 봉순은 머리, 강수는 힘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현상금은 반띵.
“반띵 하기로 했으니까······.”
강수는 2백만 원을 봉순의 계좌로 송금했다. 봉순이 좋아할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휘파람이 불어졌다.
***
봉순은 21살에 결혼해서 70년 동안 해로하다가 한날한시에 사망한 노부부의 집을 청소했다.
노부부 시체는 옆집에서 악취가 난다고 신고해서 두 달 만에 발견이 되었다. 자식들이 모두 이민 가서 발견이 더 늦었다고 했다.
노부부가 살았던 집 안은 참으로 참혹했다. 부패한 시체에서 발생한 구더기는 파리가 되고, 파리는 알을 까고, 알은 구더기가 된다. 노부부의 집은 그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학습의 현장이었다.
노부부의 작은 냉장고 속을 보니 형편없는 식사를 하며 여생을 마쳤을 궁색한 삶이 그려졌다. 봉순은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인생은 낯선 여인숙에서 보내는 하룻밤과 같다.
봉순은 어제 아침부터 청소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강수 씨가 함께 있었다면 훨씬 쉬울 텐데······.
그때 딩동! 봉순의 폰에서 입금을 알리는 알림 소리가 울렸다. 2백만 원이 입금되었다. 입금자는 날파리.
“날파리? 날파리가 뭐야?”
봉순은 국민은행 앱에 로그인했다. 2백만 원을 보낸 사람은 분명 날파리였다.
봉순은 궁금증이 증폭했다. 그래서 서둘러 청소를 끝내고 다마스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반지하 방으로 돌아온 봉순은 곧장 지명수배자 파일을 펼쳤다.
파일 속에는 날파리가 야비하게 웃고 있었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