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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썰

다크 히어로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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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썰
작품등록일 :
2021.12.16 12:26
최근연재일 :
2022.05.08 10:05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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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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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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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7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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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4화. 도망자 (3)

DUMMY

“장강수 넘기면, 봉순이 니가 얻는 건······”

봉순을 바라보던 박경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랜저가 스르르 움직였다.

“어, 어, 어······ 차가 왜 이래?”

박경위가 당황하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자 그랜저가 멈추었다.

“으으윽!”

강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그랜저 범퍼를 잡고 들어 올렸다. 그랜저 뒷바퀴가 지면에서 들리고, 강수가 걸음을 옮기니 그랜저가 3미터 난간을 향해 전진했다.

“뭐야?”

박경위가 후진 기어를 넣고 다급히 가속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허공에 뜬 뒷바퀴는 헛돌 뿐이었다.

“강수 씨······”

봉순이 나직이 탄성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강수가 안간힘을 쓰며 그랜저를 떠밀었다.

그러자 그랜저가 3미터 난간 아래로 추락했다.

쿵! 앞 범퍼가 박살이 나면서 에어백이 터졌다.

강수가 난간 위에서 추락한 그랜저를 분노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랜저 엔진룸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봉순과 박경위가 비틀거리며 하차했다.

“이게 뭐야?”

박경위는 황당한 표정이었다.

봉순은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강수는 보이지 않았다.

강수 씨가 모든 것을 엿들었다. 그러면 마약 유통책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봉순은 걱정이 몰려왔다.

박경위가 수사관 특유의 매서운 눈빛으로 그랜저를 살폈다. 평지에 정차한 그랜저가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뭔가에 떠밀리듯 움직였고, 가속페달을 밟았지만, 헛바퀴만 돌았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박경위가 폰 플래시를 켜서 그랜저 뒷범퍼를 보니, 사람의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강수의 손자국이다.

“씨바 이게 뭐야? 사람이 이런 거야······?”

박경위는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험회사에 전화해서 견인차를 부르려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봉순을 지그시 응시했다.

“장강수 어딨어?”

어둠 속에서도 봉순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말 안 하면 너 그 새끼랑 마약 유통책으로 엮여. 내가 너라도 살려보려고 이러는 거야. 장강수 어디 있어?”

“그 사람 죽은 사람이랬잖아요.”

“죽은 놈 지문이 맥주캔에 찍혀 있고, 니 방에도 잔뜩 찍혀 있어? 근데 죽었다구?”

“예. 죽었어요. 장강수는 죽었어요.”

봉순은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봉순이 강수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박경위가 모텔 데스크로 찾아가서 경찰 신분증을 내밀 때 주인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놈의 모텔 장사, 더러워서 못 해 처먹겠네. 뻑하면 경찰들 찾아오고 말이야. 또 뭔 사고입니꺼?”

주인이 박경위에게 306호 비상키를 내밀며 투덜거렸다. 박경위는 대답하지 않고 비상키를 들고 306호로 향했다.

박경위가 권총을 앞세워 조심스럽게 306호를 수색했지만, 강수는 보이지 않았다.


***


강수의 마음처럼 먹구름이 무겁게 엄습한 하늘은 달빛도 별빛도 없었다.

나는 마약 유통책 장강수. 기억에도 없는 죄 때문에 쫓기는 인생이 시작된 건가?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한 기억이라도 있다면 억울하지는 않을 텐데······. 기억이 없으니 꼭 누명을 쓴 것처럼 억울함만이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치밀어 올랐다.


방향도 없이 얼마나 걸었을까? 이따금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강수 옆으로 헤드라이트를 앞세운 차량이 휙휙 지나갔고, 하늘이 폭우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강수는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이 비가 나의 죄를 씻어준다면 좋으련만.

그때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점점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자, 강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죄지은 자는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다. 헤드라이트와 함께 구급차가 사이렌을 토해내며 지나갔고, 다시 시커먼 어둠이 강수를 엄습했다.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저 멀리 어둠에 묻혀 있는 자그마한 경산역이 보였다.


경산역 구석에 공중전화가 “나 좀 바라봐주세요.”라는 듯이 외롭게 서 있었다.

강수는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고 봉순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자마자 봉순의 애타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강수 씨? 강수 씨 맞죠?”

“······.”

“강수 씨 미안해요. 강수 씨는······”

봉순이 말하는데, 강수는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봉순이 박경위에게 했던 말이 머릿속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장강수 넘기면 내가 얻는 건 뭔데요?”


경산역을 빠져나가던 강수는 묵직한 돌멩이 하나를 힘껏 던졌다. 비를 뿌려대는 하늘에 대항하듯이 돌멩이가 날아갔다.

“차봉순! 나 팔아넘겨서 뭐 얻을 건데?”

강수는 하늘을 향해, 봉순을 향해 소리쳤다. 서러움, 울분, 죄책감과 그리움이 뒤엉킨 목소리였다.

하늘로 치솟았던 돌멩이가 추락하면서 어딘가에 주차된 승용차에 떨어졌다. 그러자 승용차에서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리며 새벽을 깨웠다.

강수는 달렸다.

봉순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도망치려고 달렸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달렸다.


***


봉순은 베스트모텔 306호 침대에 앉아서 핸드폰만 뚫어지게 응시했다.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렇게 12시간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강수 씨가 다시 전화할 거야. 아니면 다시 돌아올지도 몰라.


시간이 지날수록 봉순의 마음은 확신에서 불확신으로 바뀌었다.

강수 씨가 영영 떠난 건가······.

봉순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가슴이 미어터졌다. 옆방에서는 눈치 없이 정사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봉순아, 너는 울어라. 우리는 신나게 떡을 칠 테니.

봉순은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또 울었다. 어느 시인은 사랑을 잃고 시를 썼고, 봉순은 사랑을 잃고 울었다.

강수가 떠나고 나서 더 선명해진 것은 강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놓친 물고기가 더 큰 법이고, 떠난 사랑이 더 애절한 법이 아니던가.


체크아웃 콜이 와서 봉순은 베스트모텔을 나왔다.

간절한 사랑을 잃고, 꿈꾸던 것을 잃고, 그 모든 것을 잃어도 인간은 밥을 먹어야 한다. 밥 먹는 동물이 인간이고, 희망을 찾아 움직이는 동물이 인간이다.

다시 시작하리라. 다시 청소하고, 다시 돈을 벌고, 강수를 잊기 위해 몇 달이고 소주를 마시리라.

시간이 흐르면 개 같은 사랑도 기억에서 지워지리라.


***


다마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봉순은 반지하방으로 가기 전에 노량진에 들렀다. 첫째 동생 봉희가 노량진 고시원에서 대학 입학과 동시에 4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량진에는 학원이 생겼고, 고시원이 생겼고, 공시생들이 바글거렸다.

취업 전쟁의 시대에 공무원은 철밥통이고 구조조정의 공포가 없다. 그래서 노량진의 청춘들은 꿈과 낭만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에 몰빵한다.

이놈의 나라에는 공시 준비생이 86만 명이다. 공시생 100명 중 딸랑 2명만 합격의 영광을 누린다.

낙방한 나머지 98명은 다음 해에 있을 공시를 준비한다. 그래서 노량진은 공시생들의 개미지옥이다.


“언니, 미안해.”

노량진 컵밥 거리에서 봉희는 봉순을 보자마자 고개를 떨구었다. 시청공무원 시험에서 또 물을 먹었기 때문이다.

봉순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하루에 알바 세 탕을 뛰면서 봉희의 대학 등록금을 대주고 공시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나 봉순은 단 한 번도 봉희를 타박하지 않았다. 동생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안락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언니의 도리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삼겹살 컵밥 두 개 주세요.”

봉순은 컵밥을 사서 봉희와 거리를 걸으며 먹었다.

“언니······ 나 공시 포기할까? 언니랑 같이 청소나 할까?”

“니가 뭔 청소를 해? 청소 아무나 할 수 있을 거 같아? 응? 너 시체에서 나온 구더기 치울 수 있어? 자살한 사람이 싼 똥오줌 치울 수 있어?”

“미안해, 언니······.”

“미안해할 에너지 있으면 공부해. 10년이고 20년이고 공부해서 합격해.”

봉희는 겨우 네 살이 더 많은 봉순이 부모님 같았다. 7남매 중에 제일 머리가 좋았던 봉순이 언니가 대학도 못 가고 연애도 못 하고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청소하는 것이 가슴 아팠다.

“고시원비 오르지?”

봉순이 봉희에게 돈봉투를 건넸다.

“어떻게 알았어, 언니?”

“돈 걱정하지 말고 공부에 집중해. 세상은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럽고 힘들어. 그러니까 무조건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해. 그리고 시집도 가고······.”

봉순은 강수 생각이 떠올라 말꼬리를 흐렸다. 봉순의 꿀꿀한 기분을 알아챘는지 봉희가 팔짱을 꼈다.

“언니, 우리 극장 갈까? 초대권 두 장 있는데. 우리 극장 가자, 언니.”

갑자기 봉순이 걸음을 멈추고 봉희를 보았다.

“봉태야, 내가 너의 누나 봉희다. 나랑 한국에 가서 같이 살자. 핀란드어로 말해 봐.”

“응?”

“내가 핀란드어 공부하랬지?”

“응. 근데 언니······”

“핀란드어로 말하라니까.”

“언니 그게······ 우리 봉태 찾지 말자. 응? 봉태 3살 때 핀란드에 입양 갔는데, 완전 핀란드 사람 됐을 거야. 우리랑 언어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고······”

순간 봉순이 봉희의 귀싸대기를 후려쳤다. 감정이 듬뿍 실린 귀싸대기 한 방이었다.

“언니······ 미안해.”

봉희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너, 나. 봉식이, 봉선이, 봉수, 봉민이, 봉태······ 우리는 남매야. 남매니까 반드시 만나서 같이 살아야 돼. 알았어?”


***


봉순은 봉희와 헤어지고 곧장 반지하방으로 돌아왔다.

실내는 엉망진창 그대로였고, 집주인의 잔소리가 폭풍처럼 쏟아졌다.

봉순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방 청소를 했다. 그러다 방바닥에 뒹구는 소주병을 발견했다.

블랙맘바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강수가 사 오라고 해서 사 왔던 소주였다.

소주병을 보니 강수 생각이 났다.

강수 씨는 나를 구하려고 소주를 사 오라고 한 거야.

봉순은 소주를 마셨다. 한 잔을 마셨을 뿐인데 술기운이 뜨겁게 올라왔다. 강수를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찌그러진 비키니 옷장에 강수가 입던 주황색 체육복이 혓바닥처럼 삐죽이 튀어나와 있었다. 봉순이 시장에서 사다 준 이만 원짜리 싸구려 체육복이었다.

봉순은 체육복을 반듯하게 접어서 서랍에 넣고, 다시 소주를 마셨다. 그러다 문뜩 폰을 보았다. 강수와 찍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다. 이럴 때 사진이라도 있었으면 좋을 텐데······. 왜 강수 씨와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 왜······?

봉순의 마음속에 그리움이 켜켜이 쌓일 때 폰이 벨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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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화. 넘버36을 수거하라 (1) +3 22.01.09 230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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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화. 대룡병원 (1) +3 22.01.07 251 2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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