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도망자 (2)
봉순에게 박경위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봉순 클리닝을 개업했을 때 ‘당신의 보금자리에 남아있는 범죄의 흔적을 깨끗하게 청소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명함을 형사들에게 돌리고, 서울의 모든 경찰서 화장실에 실링을 붙였다.
그런데도 일거리는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기업형 클리닝 업체들이 경찰 간부들에게 커미션을 먹이고 일거리를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봉순 클리닝이 개업하자마자 폐업할 위기에 처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박경위였다.
“내가 너한테 살인사건 청소 용역 물어다 주면, 나한테 커미션 얼마 줄 수 있냐?”
“경위 계급으로 어떻게 용역 물어다 줄 수 있어요? 간부들이 업체 끼고 일거리 다 물어가는데.”
“내가 현장 뛰잖아. 현장에서 바로 너한테 넘기면 돼. 커미션 얼마 줄래?”
“얼마 드릴까요?”
“8프로.”
“3프로.”
“나 광수대 소속이거든. 수도권 사건들 다 물어줄 수 있는데······ 3프로는 적다. 5프로. 됐냐?”
봉순과 박경위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대신 악수를 했고,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봉순은 돈을 벌겠다는 악바리 정신으로 사건 현장을 청소했다.
“봉순아, 형사가 뒷돈 받아먹는다고 너무 나쁘게 보지 마라. 형사 월급이 워낙 박봉이잖아.”
박경위는 커미션을 받아먹을 때마다 죄책감에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박경위는 형사로서 능력이 탁월했다. 예리한 분석력과 끈질긴 근성을 모두 갖췄다고나 할까.
커미션 받아먹는 형사의 능력이 뛰어나 봐야 얼마나 뛰어나냐고?
3년 전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봉천 여대생 살인사건의 진범을 검거한 형사가 바로 박경위였다. 또 미궁에 빠진 수정 룸살롱 살인사건, 공덕동 할머니 실종사건도 박경위의 머리로 해결을 했다.
***
“박경위가 냄새 맡은 게 분명해.”
봉순은 여자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서 휴대폰 전원을 껐다. 어쩌면 박경위가 폰 위치를 벌써 추적했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경부고속도를 타고 달리다간 박경위에게 뒷덜미를 잡힐 수 있다. 빨리 안성IC에서 내려서 국도를 타야 한다.
조급한 마음에 화장실을 나가려던 봉순은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다.
나한테 강수 씨는 어떤 존재일까? 단순한 동업자를 넘어서는 남녀의 관계인가? 나도 모르게 강수 씨한테 마음을 준 건가?
봉순은 마음이 혼란스러워 변기 위에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너 누구랑 통화했어?”
봉순이 여자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강수가 눈앞에 버티고 있었다.
“깜짝이야. 왜 여자 화장실 앞까지 따라왔어요? 남자 화장실은 저쪽인데.”
“말 돌리지 말고. 박경위랑 통화했지?”
“아니에요. 박경위님은 왜 갑자기······.”
“인터내셔널파 단속해달라고 니가 부탁했잖아.”
“귀는 밝아서······. 맞아요. 박경위님이랑 통화했어요. 어제 우리 집에 난리 나서 경찰들 왔었잖아요. 그래서 박경위님이 걱정된다고 전화 왔더라구요. 근데 그게 왜요?”
“그럼 왜 강릉이라고 거짓말했어?”
“그냥 경찰이랑 엮이는 게 귀찮으니까.”
봉순이 다마스로 가려다가 강수를 노려보았다.
“내가 통화하는 소리 들었으면······ 나 오줌 누는 소리까지 다 들었겠네? 강수 씨 변태야?”
봉순이 소리를 꽥 지르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 보았다.
예쁜 여자가 만만한 남자와 실랑이를 벌일 때는 꼭 흑기사가 나타나는 것은 예정된 코스이다. 우락부락한 해병대 소위가 봉순에게 흑기사처럼 말을 걸었다.
“내가 도와드릴까요?”
“상관 말고 그냥 가라.”
강수는 자신을 만만하게 깔보는 해병대를 흘겨보며 봉순의 팔을 잡아끌었다.
“무식하게 아가씨한테 이러면 안 되지.”
해병대는 강수의 어깨를 잡아서 세웠다.
그러자 강수는 해병대를 노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근육이 팽창하고 0.1초 내에 강수의 주먹이 해병대의 턱을 열두 조각 골절상으로 만들 판이었다.
“해병대 아저씨 몇 기에요?”
봉순의 말 한마디가 날아가는 강수의 주먹을 멈추어 세웠다.
“1253기인데······”
“우리 오빠는 1232기에요. 우리 오빠가 한참 선배네.”
“필승!”
해병대는 강수를 향해 우렁차게 거수경례를 때렸다.
“다치기 전에 조용히 가세요. 남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지 마시고.”
낡아빠진 방법이지만, 군기 바짝 든 해병대에겐 주먹보다 기수를 따지는 것이 약발 잘 받는다. 군복을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봉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봉순이 종종걸음으로 다마스로 향했지만, 강수는 여자 화장실 앞에서 말뚝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뭐해요. 가요, 빨리.”
봉순이 소리쳤지만, 강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놈들한테 습격당해서 살림살이 다 부서지고, 보증금도 못 받고 도망쳤는데, 천하의 짠돌이 차봉순이는 경찰에 신고도 안 했어. 왜일까?”
강수는 봉순에게 성큼 다가서며 계속 말을 이었다.
“다마스 도색하고, 가짜 번호판까지 붙여서 도망까지 치고 말이야. 차봉순이 인터내셔널파 배후가 무서워서 이 지랄한다고? 그건 아냐.”
“아니면 뭔데요?”
“내가 누구야? 내가 저지른 범죄가 뭐야?” 강수는 봉순을 다그쳤다.
그 순간 봉순의 입에서 “악질 마약 유통책에 살인 용의자!”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빨리 말해. 너, 나를 쉴드치려고 이러는 거잖아. 내가 범죄자가 아니면 경찰이 왜 총을 쐈겠어? 사실대로 말해. 나 충격받지 않을 거니까.”
“개꿈 꿔서 사람 진짜 피곤하게 괴롭히네. 따라오든 말든 강수 씨 자유니까 알아서 해요.”
봉순은 냉정하게 돌아서서 다마스로 갔다.
***
다마스가 안성IC에서 빠져나와 국도로 접어들었을 때 박경위는 경부고속도로 위에서 그랜저의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다마스 어디로 빠졌어?”
박경위가 교통과 여경에게 전화로 물었다.
“30분 전에 안성IC로 빠져서 17번 국도 탔습니다.”
“계속 추적해서 알려줘”
대한민국에는 800만 대의 CCTV가 감시하고 있다. 서울 시내는 10걸음 단위로 CCTV가 존재하니 시민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중계할 수 있을 정도이다. 또 전국에 깔린 공공기관의 CCTV만 해도 120만 대가 넘는다. 그러니 다마스가 CCTV의 시야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박경위는 여경과 통화를 끝내고 봉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봉순의 폰은 꺼져 있었다.
IT시대에 도주하는 범죄자의 제1 행동강령은 폰의 전원을 끄거나 폐기하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짭새들의 추적을 잠시나마 따돌릴 수 있다.
봉순이 폰을 껐다는 것은 범죄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박경위는 그랜저의 가속페달을 더욱 힘껏 밟았고, 그랜저가 2005년식 낡은 다마스를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였다.
박경위는 17번 국도를 빠져나와 지방도를 달리는 다마스를 발견했다. 앞지르기해서 다마스를 막아 세울까?
박경위는 가속페달을 밟으려다 생각을 바꾸었다.
봉순이 다마스를 도색하고 번호판까지 갈았으니 잠적할 계획이 틀림없다.
조폭들과 달리 마약사범들은 점조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일망타진하기가 쉽지 않다.
마약 판매책은 콧물, 아이스, 작대기란 은어와 함께 텔레그램 아이디를 메일로 날리거나 인터넷 게시판에 흘린다. 그러면 중독자들이 판매책에게 연락하고, 판매책은 비트코인으로 입금되면 마약을 택배로 보낸다.
중독자나 판매책이나 마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중독자는 마약의 환각 때문이고, 판매책은 고수익 때문이다.
순금이 킬로그램당 7300만 원인데, 정제된 마약은 킬로그램당 13억 원이 넘는다. 그래서 마약은 인간, 무기, 야생동물과 함께 암시장의 4대 품목 중의 하나이다.
마약사범으로 투옥된 죄수는 죄수 번호를 파란색으로 표기한다. 마약에 중독된 놈들이 빨간색을 보면 피 생각을 하고, 피 생각을 하다 보면 마약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하여튼 마약사범을 따로 분리하는 이유는 투약 중단으로 정신이 불안해서 교도소 내에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고, 특히 히로뽕에 중독된 놈들은 골다공증을 앓고 있어서 툭 하면 고관절이 골절되는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마약 중독자들은 교도소에서도 마약을 반입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특별히 관리해야 한다. 그만큼 마약이라는 늪에 욕망을 담그면 살도 녹고 뼈도 녹고 영혼까지 녹아 없어져도 못 빠져나온다는 뜻이다.
박경위는 조용히 강수와 봉순을 미행해서 마약사범 일당을 검거하거나 최소한 다량의 마약을 획득할 계획을 머릿속으로 구상했다.
***
탈탈거리며 달리던 다마스는 대구를 지나 경산의 외진 곳에 자리 잡은 베스트모텔로 숨어들었다.
베스트모텔은 베스트가 아니라 삼류 여인숙 수준이었다. 삐거덕거리는 복도며, 삐거덕거리는 침대며, 만취해서 삐거덕거리는 사장이며 모든 것이 삐거덕거려서 영혼마저 삐거덕거릴 판이었다.
강수와 봉순은 객실 하나를 대여해서 투숙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도 오지 않았다. 옆 객실에서는 남녀가 뭔 짓을 하는지 삐거덕거리는 침대를 더욱 삐거덕거리게 만들었다. 그 소리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그래서 봉순은 객실 밖으로 나갔다.
모텔 밖은 달빛도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암흑이었고 침묵 그 자체였다.
봉순은 삐거덕거리는 침대 소리가 싫어서 밖으로 나왔는데, 어둠과 침묵이 무서웠다. 알 수 없는 미래 같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한날한시에 돌아가신 후부터 봉순은 미래를 알 수 없는 가난한 인생을 살았다. 너무나 세상이 두려웠다.
그러나 지금 봉순이 느끼는 감정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알지 못하는 공포가 다가오는 것 같아서 불길했다. 알지 못하기에 대처를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더 두려워진다.
봉순이 밖으로 나갔을 때 강수는 청각과 시각을 극도로 예민하게 작동시켰다. 청각으로 봉순의 목소리를 엿들었고, 시각으로 봉순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봉순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움직였지만, 강수는 봉순의 모든 것을 느꼈다.
“내가 강수 씨를 사랑하는 걸까······?”
저만치 은행나무 아래에서 봉순이 나직이 읊조리는 목소리가 강수의 귀에 또렷이 들렸다.
강수의 심장이 뜨거워졌다. 봉순도 나와 같은 감정이구나. 봉순도 나를 사랑하는구나. 이럴 때는 남자가 먼저 용기를 내야 하는 법이다.
강수는 봉순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봉순이 나직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철의 장막처럼 강수 앞을 막았다.
“돈도 안 되는 사랑······ 그딴 감정은 나한테 사치야. 범죄자를 사랑해서 인생 망칠 일이 있어? 행복은 돈밖에 없어. 돈 밖에.”
그때 어둠 속에서 움직이던 실루엣이 봉순 쪽으로 다가왔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은 박경위였다.
“박경위님······!”
봉순은 나직이 탄성을 내질렀다.
“봉순아, 나하고 잠깐 이야기하자.”
박경위가 주변을 기민하게 살피더니 봉순을 데리고 그랜저로 갔다.
강수는 조용히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서 귀를 세웠다. 그랜저 안에서 봉순에게 말하는 박경위의 목소리가 너무나 선명하게 들렸다.
“마약 유통책 장강수, 나한테 넘겨라.”
“장강수 넘기면······ 내가 얻는 건 뭔데요?”
봉순의 목소리에 강수의 근육이 꿈틀거렸고, 눈동자에 배신감이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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