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잔챙이들 (5)
제니의 작업실은 폐공장을 개조한 30평 규모였다. 제니는 카메라와 조명을 세팅하고 강수의 증명사진을 찍었다.
“우리 오빠 몽타주 속에 강동원이 숨어 있네.”
“땡큐, 제니.”
“오빠 네임이?”
“유형국.”
“본명 아니지? 본명은?”
“이 바닥에서 본명 내놓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바보 아닌가?”
강수의 말에, 꽁태가 끼어들었다.
“본명 감출 이유가 뭐 있어? 장강수 너, 구린 거 있어? 제니 씨, 나는 지공태. 나는 솔직한 사람이거든. 우리 제니 씨 본명은?”
꽁태가 제니에게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제니는 악수하지 않았다.
“나도 솔직하지 않는데 어쩌나?”
제니가 까칠하게 돌아서자, 꽁태는 멋쩍어졌다.
“형님, 제니한테 관심 있어?”
황구가 꽁태의 속마음을 캐치하고 귓속말을 했다.
“예쁘잖아. 예쁘면 까칠해도 돼. 그래야 매력이 있어. 쉬우면 재미없잖아. 내가 72시간 내에 제니를 옆구리에 낀다.”
꽁태가 황구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꽁태 형님 비주얼로? 제니한텐 씨도 안 먹혀. 제니 눈이 얼마나 높은데.”
황구가 빈정거리자, 꽁태가 내기를 제안했다.
“얼마 빵 할래?”
“백만 원 빵.”
“콜.” 꽁태가 황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강수 형님이 보증 서시죠.”
황구가 강수를 보았다. 강수는 꽁태와 황구가 너무 한심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수는 집중해서 신분증 위조 작업을 하는 제니에게 다가갔다.
“작업 얼마 걸려?”
“민증이니까 20분. 근데 복강동은 검열이 쎌 거고······ 그러면 경찰이 봐도 진품하고 구별 못 할 특A로 뽑아야지. 5시간 정도. 작업비는 특A니까······”
“뭔 작업비까지 받으려고 그러냐. 내가 뉴욕대 학위증 500에서 1300으로 땡겼으니까 요건 서비스로 해주라.”
“완전 날강도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2백은 줘야지.”
“나 완전 개털이다.”
“지갑 줘봐.”
“개털이 지갑 있겠어? 없어.”
“쟤들은?”
제니가 저쪽에 서 있는 꽁태와 황구를 보았다.
“개털의 친구도 개털이잖아.”
“나 개털 알레르기 있는데. 짜증 나네.”
“제니야, 니가 위조한 신분증도 가끔 좋은 일에도 써주고 그래야 천당 간다. 교회도 다니는데.”
강수가 작업대에 놓여 있는 성경책을 펼쳤다.
“잠언 21장 13절에 좋은 말씀이 적혀있네.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제니야, 개털인 오빠가 부르짖는 소리 들리지?”
강수의 말에 제니가 픽 웃었다.
“오빠 몽타주도 좋고······ 그래요. 좋은 일 한 번 해야지. 근데 복강동 폭파시키는 플랜이 어떻게 돼요?”
***
보이스 피싱 조직은 총책, 콜센터 관리책, 대본을 쓰는 작가, 콜센터 상담원 배우들, 대포통장 모집책, 현금 인출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강동 보이스 피싱 조직에 침투하기 위해서는 구멍을 내야 한다. 구멍이 나면 그 구멍을 메우려는 것이 조직의 생리이다.
어떻게 콜센터에 구멍을 낼까? 콜센터에 잠입해야 점조직으로 움직이는 복강동 총책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다.
강수는 대구지방법원 맞은편에 위치한 복강동 콜센터를 감시하며 고민했다.
배우를 구멍 내야겠다. 배우가 없다면 복강동은 낚싯바늘이 없는 낚싯대이니까.
이왕 구멍 낼 거라면 복강동 톱스타 배우를 구멍 내자.
복강동 톱스타 배우는 누구일까?
그는 바로 김배우,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연기과 출신으로 복강동 최고 에이스이다. 검사나 경찰도 김배우에게 피싱 걸리면 얄짤없이 털린다.
김배우가 복강동에서 연기하게 된 사연은 울렁증 때문이었다. 한예종 동기생 중에서도 비주얼과 연기는 최고 에이스였다. 하지만 그 출중한 능력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말짱 도루묵이 되었고, 말더듬이가 되었다.
망할 놈의 카메라 울렁증.
김배우는 복강동 총책이 지급한 보너스를 들고 박딜러가 기다리는 벤츠 전시장으로 향했다.
***
박딜러는 벤츠 전시장 뒤에서 담배를 뻑뻑 피웠다.
“똥 밟았어요? 인상이 왜 그래?”
김배우가 다가오자, 박딜러는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오늘 E클래스 계약하기로 했는데 빵꾸 나서요.”
“빵꾸 낸 놈이 누군데?”
“대구지검 최철민 검사. 보이스 피싱 당했다네. 검사 새끼가 얼빵하게 보이스 피싱이나 당하고 말이야.”
“뭘로 당했대?”
“딸내미가 교통사고 났다는 전화 받고 낚였다네요.”
김배우는 마음속으로 박장대소했다. 어제 김배우가 낚시한 놈이 최검사였기 때문이다.
“피싱하는 애들이 검사가 속을 만큼 연기력이 좋았나 봐?”
김배우는 자신의 연기력이 어땠는지 박딜러에게 넌지시 물었다.
“검사가 속을 정도니까, 거의 송강호급 아니었겠어요?”
보이스 피싱 배우들이 연기력을 품평 받는 유일한 방법은 피해자들이 통장으로 송금하는 돈뿐이다. 피해자들이 송금하는 금액이 보이스 피싱 배우들에게는 관객의 수치요, 연기력의 척도이다.
영화배우가 시나리오 캐릭터에 따라서 연기의 평가가 달라지듯 보이스 피싱 배우도 피싱 시나리오에 따라서 낚시질 실력이 달라진다.
그러나 김배우는 검사를 낚시질한 것은 시나리오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연기력이 출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박딜러에게 다시 물었다.
“송강호만큼 연기를 잘했다? 피싱하는 애가? 아무리 연기 잘한다고 해도 송강호급은 아니겠지.”
“에이, 아니에요. 최검사가 속을 정도였으면 송강호보다 잘했으면 잘했지 못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최검사는 진짜 의심 많거든요.”
“그래서?”
“피싱하는 애가 현장학습 갔다가 교통사고 난 딸내미 담임 선생님 흉내를 냈다는데, 순진하게 말하다가 때로는 울먹거리고, 또 때로는 말도 더듬었대요.”
“그래요?”
“그러니까 최검사가 완전 의심줄 팍 끊어버리고 딸내미가 사고 난 줄 알고 천오백 계좌 이체한 거죠.”
김배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표시 나지 않게 웃었다.
“보이스 피싱하는 애들도 점점 진화해요. 옛날엔 연변 말투였는데, 이젠 아카데미 주연상이라니까요.”
“들어가요. 내가 최검사가 빵꾸 낸 E클래스 계약할게.”
김배우가 박딜러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 벤츠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
강수는 꽁태가 운전하는 지프를 타고 벤츠 전시장에서 나오는 김배우를 미행했다.
저놈을 어떻게 복강동에서 구멍 낼까?
강수는 한참 고민하다가 운전하는 꽁태에게 물었다.
“꽁태야, 연기 좀 하냐?”
“깡수 너, 내가 알파치노인 거 몰라? 고등학교 때 애들이 전부 나한테 알파치노라 그랬는데. 내가 영화배우 됐으면 황정민, 이병헌, 공유······ 걔들 전부다 입뽕도 못 하고 밥 굶었어.”
“진짜야?”
강수가 황구에게 묻자, 뒷좌석에 앉아 있던 황구가 끼어들었다.
“구라가 날로 발전한다는 거 빼고는 꽁태 형님 입에서 나오는 건 전부 구라 뻥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강수 형님 인생에 도움이 될 겁니다.”
“오빠, 연기는 내가 좀 하는데.”
황구 옆에 앉아 있던 제니가 상체를 앞으로 내밀어서 강수를 보며 계속 말을 했다.
“유치원 때부터 학예회에서 주인공으로······”
“제니야, 사기 치지 마라. 니 연기는 내가 봐서 잘 안다. 뉴욕대 학위 위조. 그때 버벅거렸잖아.”
“그건 필드에 처음 나가서, 긴장해서 그런거구. 대본만 줘봐. 씬스틸러 되니까.”
“연기는 내가 좀 하죠.” 이번엔 황구가 나섰다.
모두가 연기파라는 말에 강수는 급 짜증이 올라왔다.
“우리 배우님 프로필 읊어보시죠.”
꽁태가 룸미러로 황구를 보았다.
“교회에서 연극반으로 크리스마스 때면 단독 주연.”
“니가 교회 다녀? 예수님께서 통곡하시겠다 새꺄.” 꽁태가 빈정거렸다.
“옛날에 다녔다는 거지.”
“옛날에 언제?”
“13살.”
“아역 배우네. 아역 배우는 대부분 성인 되면 로봇 연기해, 새꺄. 뭘 알고 깝죽거려.”
“안성기, 고아성, 김새론······ 아역 배우 출신 명배우들 네임 계속 읊어줘?”
“반말하지 마, 새꺄.”
꽁태와 황구는 덤앤더머처럼 수다를 떨었다.
“근데 강수 오빠, 연기파 배우가 왜 필요한지 목적을 말해줘야 하는 거 아냐?”
제니가 강수를 바라보자, 꽁태가 끼어들었다.
“제니 씨, 복강동 침투할 배우가 필요한 거예요.”
“복강동엔 강수 오빠가 침투하는 거 아냐?”
제니의 질문에 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배우가 왜 필요한데?”
“저 새끼 복강동에서 프레임 아웃시켜야 하니까.”
강수가 앞서 달리는 아우디를 보았다. 아우디에는 김배우가 타고 있었다.
“깡수야, 그렇게 간단한 문제를 왜 빙빙 돌려서 말하냐. 액션배우 필요하다고 하면 될 것을.”
꽁태는 말을 끝내자마자 액셀을 밟아 아우디를 추월했다.
아우디를 운전하던 김배우는 애인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오빠가 오늘 달링한테 선물 주려고 벤츠 E클래스 쿠페에 도장 찍었다.”
“정말 오빠? 빨랑 집으로 와. 내가 풀 서비스해줄게.”
스피커폰 너머에서 호들갑 떠는 달링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오빠 액셀 이빠이 밟아서 간다.”
김배우가 전화를 끊고 액셀을 밟았다.
그 순간 꽁태가 운전하는 지프가 칼치기 해서 들어오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 쿵!
김배우의 아우디가 지프의 뒤를 들이박았다.
“아씨, 칼치기해서 급브레이크 밟고 지랄이야.”
김배우가 뒷목을 잡으며 운전석에서 하차했다.
지프에서 하차하는 꽁태를 향해 김배우가 대뜸 소리 질렀다.
“어이, 아저씨. 운전을 왜 이따위로 해? 짜증 나게.”
“쏘리합니다.”
꽁태가 장난스럽게 거수경례를 하며 지프를 살폈다.
“에이, 내 애마가 찌그러졌네.” 꽁태가 약 올리는 어투로 말했다.
“니 눈깔에 내 애마가 찌그러진 거는 안 보이냐?” 김배우가 도끼눈을 떴다.
“아저씨, 왜 반말이야? 응? 아저씨 나이가 몇 개야?” 꽁태가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나이는 왜?”
“반말 찍찍하니까. 나는 나이 어린놈이 초면에 반말 찍찍하면 혈압이 상승하거든.”
꽁태의 말에 김배우가 비웃음을 흘렸다. 덩치 작은 꽁태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야 인마, 이 상황에 반말 안 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반말하면 혈압 상승한다고 했다.”
“혈압 상승하면 어쩔 건데?”
김배우가 손가락으로 꽁태의 이마를 쿡쿡 찔렀다.
“혈압 상승하면 어떡할 거냐구?”
“황구야!”
꽁태가 소리치자, 황구가 지프에서 하차해 큰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황구의 덩치에 김배우가 움찔하며 뒷걸음쳤다.
“황구야, 이 새끼가 나한테 반말 찍찍한다. 어떡하면 좋겠냐?”
“반말하는 거 형님이 제일 싫어하잖아.”
“그래. 그러니까 저 새끼 좀 맞아야겠지?”
“당연히 맞아야지.”
황구가 주먹을 불끈 쥐며 김배우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성큼성큼 달려갔다.
“야야, 말로 하자.”
“뭘 말로 해. 주먹으로 해야 갈등이 효율적으로 해소되지.”
황구는 다짜고짜 김배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김배우가 엉겁결에 주먹을 휘둘렀다.
퍽!
김배우의 주먹이 황구의 턱에 꽂혔고, 황구가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지며 신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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