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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썰

다크 히어로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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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썰
작품등록일 :
2021.12.16 12:26
최근연재일 :
2022.05.08 10:05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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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6
추천수 :
1,134
글자수 :
271,339

작성
21.12.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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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화. 대가리에 총 맞고

DUMMY

“사무실 보러 왔습니다.”

20평 임대 광고가 붙어 있는 출입구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사무실 나갔습니다.”

거구가 대답했지만, 쾅쾅쾅!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열어보세요. 사무실 보러 왔다니까요.”

“문 열지 마.”

닥터김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내가 있는데 왜 긴장해? 긴장 풀어.”

거구는 성큼성큼 출입구로 가서 외부 감시창을 통해 밖을 살폈다. 분명 목소리는 들렸는데,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구가 돌아서려 할 때 또 노크 소리가 들렸다. 거구가 다시 외부 감시창으로 밖을 보려는데, 쾅! 문이 부서지고, 부서진 문이 거구의 얼굴을 강타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실신할 상황이지만, 거구는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설 뿐이었다.

“닥터김 어디 있어?”

험상궂은 사내 3명이 들이닥치며 거구를 노려보았다.

“좆 까!”

거구는 코뿔소처럼 돌진해서 사내들을 밀어붙였다. 시비조차 걸지 못할 정도로 더러운 인상의 사내들이지만, 거구의 완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사내들이 전기 충격기를 거구의 목에 찔렀다. 4만 볼트의 전류가 거구의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무사로서 명성을 떨쳤을 법한 괴력의 소유자 거구는 닥터김을 지켜야겠다는 일념으로 어금니를 꽉 깨물며 버텼다.


***


20년 전, 거구가 이혼한 아빠를 따라서 춘천으로 이사 갔을 때 닥터김을 처음 만났다. 그날 이후로 거구에게 닥터김은 줄리엣이고 춘향이었다.

하지만 닥터김에게 거구는 로미오도 이몽룡도 아니었다. 그냥 아쉬울 때 호출하는 방자일 뿐이었다.

거구도 닥터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여자 옆에서 평생을 머무를 수 있다면 이몽룡인들 방자인들 어떠하리.


친구들은 일방통행 짝사랑을 하는 거구를 이해하지 못했다.

“니가 새꺄 은행나무 침대에 나오는 황장군이야? 세상에 절반이 가시나들인데, 저딴 사감 선생같이 생긴 년이 뭐가 좋냐? 맛이라도 봤어? 맛보면 더럽게 맛없을 거다. 내가 친구로서 숭고하게 충고하는데, 제발 정신 차려라. 저년 저거 니 피 몽땅 빨아 처먹고 버린다.”

“야박한 세상에 태어나서 사랑도 모르는 새끼들. 니들이 안타깝고 불쌍하다. 사랑은 인마, 헌혈이야. 내 피 몽땅 수혈해주는 거.”

거구의 가슴속에는 오로지 닥터김뿐이었다.


***


“누나는 내가 지킨다!”

사랑에 눈먼 놈은 부처님도 막지 못한다고 했던가. 거구는 헐크처럼 사내들을 밀어붙였다. 그때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렸고, 거구는 썩은 고목처럼 쓰러졌다.

“누나······”

거구의 애절한 눈빛을 목격한 닥터김은 인체 모형 더미 속에 숨어서 숨죽이고 있다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상국아!”

닥터김은 거구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사망해도 울지 않았고, 미국에 유학 갔을 때 원숭이라고 놀림 받아도 울지 않았다. 바늘로 찔러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독한 년이란 소리는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데 이몽룡도 아닌 방자가 죽었는데, 닥터김은 오열하며 말했다.

“발바닥이 왜 좋은데? 내 발바닥이 왜 좋아?”


***


7년 전쯤에 닥터김은 거구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상국아, 내가 왜 좋은데?”

거구는 얼굴이 발개지며 대답하지 못했다.

“괜찮으니까 말해 봐. 내가 어디가 어떻게 좋아? 가슴이 커서 좋아? 아니면 각선미가 좋아?”

닥터김의 다그침에 거구는 수줍게 입을 열었다.

“발바닥이요. 누나 발바닥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요.”

그 말을 남기고 거구가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바람에 왜 발바닥이 사랑스러운지 물어볼 수 없었다.


이제는 거구가 죽었기에 영영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닥터김은 증오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권총을 쏜 놈을 노려보았다.

“USB 어디 있어?”

선글라스를 낀 도경정이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닥터김은 죽기 살기로 도경정에게 달려들어서 할퀴고 물어뜯었다.

사랑을 잃은 년의 눈깔에는 뵈는 게 없는 법. 사내 3명이 달려들어서 가까스로 닥터김을 떼어냈다.

“이 쌍년이! 너 이 새끼 사랑한 거야? 엉? 야, 옷 벗겨서 뒤져.”

사내들이 저항하는 닥터김을 전기 충격기로 실신시킨 후 옷을 홀라당 벗겨서 몸수색했다.

“없습니다.”

“뭐? 없어? 다시 뒤져. 똥구멍까지 싹 다 뒤져!”

사내들이 진짜로 실신한 닥터김의 똥구멍까지 뒤지려고 할 때 창밖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사내들이 거구와 다툴 때 강수는 말머리 가면을 쓰고 영화 제작용 더미 속에 숨어 있었다. 거구가 권총에 맞아 죽고, 닥터김이 난동을 부리는 틈을 이용해서 가까스로 창문으로 도망쳐 나왔는데, 염치없게도 폰이 벨을 토해냈다.

썅!

이 개 같은 타이밍에 대출 광고 전화가 올 게 뭐람.

지나친 대출 광고로 인생 조지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강수도 그 대출 광고 전화로 인생 종 치게 생겼다.


“야, 이리 와라.”

도경정이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강수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이라.

태풍은 휘몰아치고, 도경정은 강수를 향해 글록19를 겨누었다. 전 세계 특수부대에서 가장 애용한다는 권총, 글록19.

저 새끼 뭐야?

“좋은 말로 할 때 이리 와라. USB만 주면 그냥 보내줄 테니까.”

도경정이 강수를 살살 꼬드겼다. 그러나 강수는 개겼다.

“내가 왜 니 말을 들어! 신고 안 할 테니까 너나 꺼져, 개새끼야. 나 아무것도 못 봤으니까.”

살인을 목격한 자는 반드시 죽는 법이 아니던가. 도망쳐야 한다.


강수는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빗물에 젖은 배관은 참기름을 바른 듯이 미끄러웠다.

그래도 유일한 동아줄은 도시가스 배관뿐이다. 강수는 가스 배관을 목숨줄처럼 부여잡고 6층으로 내려갔다.


6층에는 쭉쭉빵빵 몸매의 여자들이 레깅스 차림으로 필라테스를 하고 있었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지상에는 마이바흐 S600이 여유롭게 정차하고 있었다.

순간 도시가스 배관을 잡고 있던 강수의 손이 미끄러졌지만, 다행히도 에어컨 실외기가 발밑에 있었다. 하지만 실외기는 130kg 강수의 몸무게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실외기가 부서지는 순간 강수는 가까스로 전깃줄을 부여잡았다. 그런데 전선의 피복이 벗겨진 탓에 강수의 온몸에 220볼트 전류가 흘렀다. 그 순간 도경정이 글록19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인간의 시력으로는 날아오는 총알을 볼 수가 없다.

아니다.

그 총알에 맞아 죽는 놈은 또렷이 볼 수가 있다. 3.95g 무게의 파라벨럼 총알이 900m/s 속력으로 날아와 강수의 이마뼈를 강타했다.

빠악!

총알이 강수의 대뇌로 파고들었고, 강수는 6층에서 추락했다. 저 밑에는 마이바흐 S600이 주차되어 있었다. 어떤 놈이 타는 마이바흐 S600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수의 130kg 몸뚱어리가 추락하기엔 호사스러운 장소였다.

아, 엿 같은 인생, 이렇게 쫑나네!

쿠우웅!

가속도가 붙으며 추락한 강수는 마이바흐 S600을 박살 냈다.


***


“강수야!”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강수의 엄마는 악몽을 꾼 듯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집에서부터 13km 거리에 떨어져 있는 강수가 총에 맞은 걸 알았을까? 어쩌면 엄마라는 존재는 초감각적으로 그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강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수가 전화를 받지 않자, 몇 번이고 전화를 걸고, 몇 번이고 카톡을 보냈다.

「강수야, 안 좋은 꿈 꿨다. 오늘은 집에 빨리 오면 좋겠다. 톡 확인하면 답해 주라.」


***


폰이 카톡카톡 소리를 토해낼 때 강수는 이마에서 샘물처럼 퐁퐁 시뻘건 피를 흘리며 마이바흐 S600 천장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119는 강수를 싣고 가장 가까운 대룡 종합병원으로 직행했다.


강수는 장장 15시간 동안 수술을 받았다. 그야말로 집도의 5명이 달라붙은 대수술이었다.

집도의 사담인즉, 강수의 두개골 안쪽에 지방이 많지 않았다면, 아마도 총알이 전두엽을 정통으로 관통해서 사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비곗덩어리가 쿠션 기능을 했고, 그 바람에 운 좋게도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이다.


강수가 대수술을 막 끝낸 시각에 YTN 뉴스에선 신종마약을 유통한 일당을 소탕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일명 신의 눈물로 불리는 신종마약 CLB를 유통한 일당이 소탕되었습니다. 마약 공급책들은 경찰의 급습에 총을 쏘며 저항해 피치 못한 총격전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앵커의 목소리가 흐르며 마약 공급책들을 소탕한 현장이 중계되었다.

그곳은 바로 SF아카데미였다.

누군가의 힘에 의해서 강수, 닥터김, 거구가 신종마약 공급책으로 둔갑이 된 것이다.


***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나고, 강수는 스물여덟 살 생일에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다.

식물인간, 뇌 손상으로 장기적인 무의식 상태에 빠진 인간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식물인간은 육체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식물을 자근자근 짓밟는다고 식물이 “나 아파서 죽어요.” 호소하지 않는 것처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에서 식물인간이 된 우마서먼이 강간을 당해도 전혀 저항하지 못하는 것처럼.

간호조무사가 강수의 등에 난 욕창을 소독할 때 귀싸대기를 왕복으로 후려쳐도 강수는 전혀 고통도 분노도 못 느낀다는 뜻이다.


2년 후, 팔뚝에 꽂힌 링거액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유지하던 강수는 130kg 몸무게에서 54kg으로 홀쭉해졌다.

강수 옆에도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두 명의 남자가 누워있었다. 세 사람을 유심히 보면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었다.

“형제야?”

KD바이오 황실장이 식물인간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황실장은 전형적인 7급 공무원 타입의 외모이지만, 눈빛은 국정원 요원처럼 매서웠다.

“아닙니다. 하나는 2년 전에 들어온 물건이고, 둘은 작년 여름에 들어왔습니다.”

대룡병원 원무과장이 감정 없이 말했다.

“근데 더럽게 닮았네.”

“부부도 살다 보면 닮는다고 하잖습니까. 병실을 같이 쓰니까 닮는 게 아닐까요.”

원무과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자, 황실장이 심드렁한 눈빛으로 베드에 누워 있는 식물인간들을 쳐다보았다.

“어떤 게 상태가 좋아?”

“1번 베드는 가족이 있고, 2번 베드는 여러 가지 문제로 복잡한데······ 3번 베드로 하시죠.”

“3번 베드는 깨끗해?”

“마약사범에 가족도 없고, 면회도 없고, 퍼펙트합니다.”

3번 베드에 누워있는 강수에게 가족이 없다니! 어떻게 된 일인가? 강수에게 분명히 엄마와 형이 있었는데.

황실장이 강수의 귀싸대기를 툭 후려쳤다. 그러나 강수는 반응하지 않았다.

“참하네, 물건.”

“뇌에 총알이 박힌 상태라서 연구할 가치 있을 겁니다.”

“요샌 물건이 딸려. 비트코인으로 입금할게.”

“입금되면 곧바로 사망 처리하겠습니다.”

강수를 바라보던 황실장이 밖으로 나가자, 원무과장이 뒤따라 나갔다.


그리고 밤이 찾아왔다.

간호사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을 때 두 명의 남자가 강수를 이동 침대에 태워서 대룡 종합병원을 기민하게 빠져나갔다. 당연히 CCTV는 원무과장이 꺼놓았다.


강수를 태운 르노 마스터 밴이 밤거리를 유영하듯 질주했다. 밴은 곧장 의정부를 지나, 동두천을 지나, 연천군으로 향했다. 그리고 깊은 산으로 흘러들었다.

그곳은 불빛 하나 없는 산 중의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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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화. 넘버36을 수거하라 (1) +3 22.01.09 231 21 12쪽
24 24화. 대룡병원 (2) +4 22.01.08 235 25 12쪽
23 23화. 대룡병원 (1) +3 22.01.07 251 2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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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조폭의 왕 (3) +6 21.12.30 347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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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넘버36의 부활 +11 21.12.21 982 4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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