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닥치고 쓰레기 (2)
<36화. 닥치고 쓰레기 (2)>
7층 허공에 동동 떠 있던 여고생이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강수가 복도 창문으로 팔을 뻗어서 추락하는 여고생을 붙잡은 것이다.
“왜 자살하냐? 내신 망쳐서? 아님 남친하고 헤어져서?”
“아뇨.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어서요······.”
“그래? 아직도 죽고 싶어? 죽어서 엄마 만나고 싶어? 그러면 말해. 이 손 놔줄 테니까.”
여고생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강수가 여고생을 창문 안으로 끌어당기자, 주차장에서 구경하던 주민들도, 119도 감탄의 손뼉을 쳤다.
강수는 창문을 통해 손뼉 치는 사람들을 보았다가 여고생에게 시선을 옮겼다.
“내가 니 목숨의 은인이다.”
“감사합니다.” 여고생이 강수에게 눈물을 흘리며 인사했다.
“말로만?”
“그럼 어떻게······?”
“전번 줘.”
“왜요······?”
“닥치고 줘.”
여고생이 울상을 지으며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강수가 메모지를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천만 원 모아놔. 목숨값이니까. 그때 전화할게. 안 비싸지?”
“예.”
강수는 여고생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 시크하게 돌아섰다.
***
폭주족이 슈퍼차저를 장착한 포드 머스탱을 몰고 질주하고 있었다. 운전의 상식은 전방 주시인데, 폭주족 이놈은 조수석에 탄 글래머의 가슴을 탐하고 있었다.
항상 이런 순간에 참혹한 비극이 발생한다.
폭주족이 오른손을 글래머의 브래지어 속에 넣을 때 초등학교 2학년이 축구공을 서툴게 드리블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축구공을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을 어깨 위로 높게 들어서 건넜다.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모범생이었다.
폭주족은 머스탱의 소음기를 불법 개조해서 굉음을 내며 돌아다니는 탓에 깊은 밤 서민들의 단잠을 깨우곤 했다. 이제는 초등학생을 교통사고로 죽게 해서 학생의 부모님을 슬픔으로 잠 못 들게 하려고 지랄발광하는 중이다.
폭주족은 운전의 상식을 무시하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초등학생이 과속으로 질주하는 머스탱을 발견했지만, 너무나 놀라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엄마······!”
꿈 많은 초등학생과 난폭한 머스탱이 끔찍하게 충돌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순간 강수가 초등학생의 뒷덜미를 잡고 머스탱 보닛을 박차며 점프했다. 그리고 우아하게 착지했다.
체조 기술로 따진다면 10점 만점에 10점을 줄 만한 고난도 기술이었다.
“괜찮아?” 강수가 초등학생에게 말했다.
“우와, 아저씨 슈퍼맨이에요?” 초등학생은 강수의 힘과 점프력에 완전 뻑이 갔다.
그런데 머스탱에서 내린 폭주족은 초등학생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고 찌그러진 보닛을 보았다.
“아, 썅. 어제 유리막 코팅했는데. 야, 너. 이거 어떡할래?”
폭주족이 운전 습관만큼이나 더럽게 말했다. 그러자 강수가 초등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축구공 잠깐만 빌려줄래?”
“예, 슈퍼맨 아저씨!”
강수는 축구공을 건네받아 폭주족에게 다가가서 난폭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보닛이 찌그러졌어요?”
강수가 말하자, 폭주족이 욕부터 토해냈다.
“그래 존만아. 이거 어떡할래? 꼬라지 보니까 완전 거지 같은데, 니 주제에 변상할 수 있겠어?”
“어떻게든 변상해야죠.”
어금니까지 드러내며 웃던 강수가 폭주족을 향해 축구공을 내던졌다. 강력하게 날아간 축구공이 퍽! 폭주족의 면상에 꽂혀서 잠시 머물다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서 폭주족의 코에서 쌍코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변상? 지랄하네. 내 다리가 니 똥차에 박혔는데. 그것도 횡단보도에서. 그럼 이 시추에이션의 끝이 어떻게 되겠냐?”
강수의 저돌적인 말과 행동에 폭주족이 뒷걸음쳤다. 횡단보도 사고는 형사처벌 대상이다. 엿 됐다.
“죄송합니다. 횡단보도인지 몰랐습니다.”
“이게 말로 죄송하다고 끝날 상황이야?”
“그럼 어떻게······?”
강수는 잠깐 고민하다가 포드 머스탱과 글래머를 번갈아 보았다.
“니가 제일 사랑하는 게 얘야, 쟤야?”
“제일 사랑하는 거요? 그건 당연히 얘죠.”
폭주족이 글래머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포드 머스탱을 가리켰다.
“제가 제일 사랑하는 애마가 기스 났으니까, 제가 성질낸 거예요.”
“야! 이 쌩양아치 새끼야. 내가 이깟 똥차만도 못해?”
글래머가 폭주족에게 달려들며 손톱을 세웠다.
“이게 왜 이 지랄이야.”
폭주족이 팔을 쭉 뻗어서 달려드는 글래머의 이마를 툭툭 밀어냈다. 글래머는 달려들다가 도저히 안 되자 하이힐을 집어 던졌다.
“쌍년이 왜 이 지랄이야.”
폭주족도 성질을 못 참고 주먹을 날렸다. 대낮에 엉겨 붙어서 개싸움을 하는 폭주족과 글래머를 떼어놓은 강수는 폭주족에게 물었다.
“니가 제일 아끼는 게 머스탱이랬지?”
“예. 당연히 머스탱이죠.”
“아가씨는 머스탱한테 고맙다고 해야 돼.”
강수가 글래머를 보며 찡긋 웃더니 머스탱의 보닛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쿵! 마치 해머 같았다. 그리고 앞유리창, 백미러, 문짝을 순차적으로 박살 냈다. 순식간에 반짝반짝 광택이 나던 포드 머스탱이 폐차가 되었다.
“내 애마가······!”
폭주족이 부들부들 떨며 112에 신고하려고 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빨리 신고해라. 니가 존나 사랑하는 머스탱이 박살 났다고. 그러면 나도 횡단보도 교통사고로 신고할 테니까. 그것도 아동보호구역 횡단보도.”
강수가 폭주족에게 바짝 다가가서 얼굴을 들이밀며 융단폭격하듯 윽박질렀다.
“나 아니었으면 저 꼬맹이는 죽었을 거고, 너는 민식이법에 적용돼서 무기징역이야. 신고해 씹새야! 빨리 신고해!”
“제가 왜 신고를 해요? 그냥 시간 본 거예요. 그럼 머스탱 수리비랑 병원비랑 샘샘인 거죠?”
폭주족이 실실 웃으며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 샘샘이다. 이거까지 합쳐서.”
강수가 마무리로 폭주족에게 딱밤 한 방을 먹였다. 그 충격에 뇌진탕 먹은 폭주족은 머스탱 보닛에 나자빠졌다.
***
강수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폭주족의 말처럼 싸구려 운동화에 허름한 추리닝이 볼품없었다.
괴력을 가졌으면 그에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지.
강수는 갑자기 멋을 내고 싶어졌다. 봉순이와 함께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한 생소한 감정이었다.
강수의 주머니에는 귀부인에게 반강제적으로 빼앗은 75만 원과 금을 판 돈이 빵빵하게 들어 있었기에, 곧장 대구의 중심지 반월당에 자리 잡은 백화점으로 갔다.
백화점 2층에는 럭셔리 매장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점원들의 눈에 허름한 추리닝 차림으로 등장한 강수가 이물질처럼 보였다. 마치 반짝반짝 광택이 나는 수퍼카에 떨어진 새똥 같다랄까.
“싼티 이빠이네. 저런 애들은 구경 온 애야.”
강수의 귀에 도끼눈 점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들려요. 목소리가 너무 크시네.”
강수는 도끼눈 점원을 향해 시니컬하게 웃음을 날리고 옆 매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데님바지와 셔츠를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보조개 점원이 탈의실에서 나온 강수를 보며 입을 쩍 벌렸다. 늘씬하고 근육질의 몸매에 럭셔리 브랜드를 걸치니 환골탈태 그 자체였다.
“역시 사람은 옷빨이야.”
점원들이 소곤소곤 말했다.
강수가 계산을 끝냈을 때 옆 탈의실에서 정장을 갈아입고 나온 대기업 사원 뺀질이가 계산하기 위해 카드를 내밀었다.
“270만 원인데, 몇 개월 할부로 할까요?”
보조개 점원이 상냥하게 말했다.
“일시불로 해주세요.”
뺀질이는 거금을 일시불로 계산하는 능력자임을 으스대며 거만을 떨었다.
“고객님, 결재했습니다.”
뺀질이는 카드를 받아 들며 명령조로 말했다.
“아가씨, 지금 산 거 입고 갈 테니까, 내가 입고 온 거 다림질 좀 해주세요.”
기가 막힌 요구였지만 270만 원 구매 고객이 구매 취소를 할까 봐 점원은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다림질을 시작했다. 매장용 다리미가 30분 동안 스팀을 뿜어내자 뺀질이가 입고 온 꾸띠롱 브랜드 정장의 주름이 펴졌다.
뺀질이는 바로 옆에 위치한 꾸띠롱 매장으로 가더니 조금 전 록시테르 매장에서 다림질했던 정장을 반품하겠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고객님, 이 옷은 지난주에 구입하셔서 바로 입고 가셨잖아요. 입으셨던 옷은 반품할 수 없습니다.”
꾸띠롱 점원이 웃으며 말하자, 뺀질이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입고 갔었다는 증거 있어요? 없잖아요. 택도 붙어 있는데 반품 안 된다는 게 말이 돼요?”
없는 놈이 있는 척은 하고 싶어서 비싼 옷을 일주일씩 입고는 반품하는 양심에 털 난 인간. 뺀질이가 그런 놈이다.
“고객님, 입고 가셨으면서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뭐가 말이 많아! 옷이 마음에 안 들면 반품하는 거지. 소비자 보호법도 몰라? 고객 응대를 이딴 식으로 하면 고소당해.”
누가 봐도 입었던 옷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인데, 뺀질이는 억지를 쓰며 매장 직원을 고소하겠다고 윽박질렀다.
록시테르 매장에서부터 꾸띠롱 매장까지 뺀질이를 따라온 강수가 반품하려는 뺀질이의 정장을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정장이 찢어졌다.
“찢어진 옷은 반품할 수 없을 텐데.” 강수가 약 올리듯 말했다.
강수의 행동에 뺀질이는 물론, 꾸띠롱 점원도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잠시 후, 상황을 인지한 꾸띠롱 점원은 통쾌한 웃음을 지었고, 뺀질이는 기가 막혀 강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너 뭐야? 이게 얼마짜린 줄 알아? 250이야. 당장 물어내!”
“내가 찢었단 증거 있어?”
“내가 봤잖아, 방금!”
“그 옷 아까 입고 있던 거 나도 봤는데. 입었던 옷은 반품 불가 몰라?”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뺀질이가 강수를 향해 주먹을 날렸지만, 강수가 그 주먹을 맞을 리 없고 중심을 잡지 못한 뺀질이는 앞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여기서 왜 추태를 부리세요.”
강수는 뺀질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는 척하다가 뺀질이가 조금 전에 산 록시테르 정장의 소매를 확 잡아당겼다. 그러자 양복 어깨 박음선이 터지며 소매가 쑥 빠져버렸다. 그러자 뺀질이가 울먹이며 악다구니를 쳤다.
“야! 이거 얼만 줄 알아?”
“270이잖아. 좀 전에 록시테르에서 일시불로 계산할 때 봤거든.”
“너 스토커야?”
뺀질이가 입에 게거품을 물자, 강수가 쏘아붙였다.
“250만 원짜리 옷하고 270만 원짜리 옷이 찢어져서 억울하지? 그런데 입장 바꿔 생각해봐. 입다가 반품하면 직원 입장이 뭐가 돼? 옷 살 돈은 없는데, 비싼 옷 입고 잘난 척하고 싶었어?”
“야! 나 KD물산 과장이야.”
“4년제 대학 나와서 대기업 간 놈이 옷 한 벌 만드는데 얼마나 힘든지도 몰라? 디자이너가 디자인하고, 원단 고르면 재단사가 재단하고 수십 년 미싱을 밟은 장인이 한땀 한땀 만들어 낸 소중한 작품을 공짜로 입다가 던져주는 그 심보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거지?”
강수는 약이 올라 부들부들 떠는 뺀질이의 귀에 한 마디 더 속삭였다.
“나, KD물산 본사 인사과 과장인데, 억울하면 본사로 찾아와. 내가 니 인사고과 평가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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