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잔챙이들 (2)
황구가 급브레이크를 밟듯이 동작을 멈추며 돌아보았다.
“왜? 빠따질 한 방이면 끝인데.”
꽁태가 몇 걸음 걸어와 거북이처럼 목을 쭉 빼서 강수를 뚫어지게 보았다.
“이 새끼 너······!”
강수도 덩달아 목을 빼서 꽁태를 응시했다.
“너, 깡수지? 장깡수.”
꽁태가 얍삽한 웃음을 입가에 흘리며 말했다.
순간 강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 새끼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지? 기억을 잃기 전에 함께 일했던 마약상인가?
“너, 나 알아?”
강수의 말에 꽁태가 낄낄 웃었다.
“내가 새꺄 널 왜 몰라 새꺄. 난 또 누구라고 존나 바짝 긴장했네.”
꽁태가 시선을 돌려 황구를 보았다.
“황구야, 빠따 치워라. 이 새끼 완전 밥이다.”
꽁태가 긴장을 푸는데, 강수가 꽁태의 멱살을 움켜잡아서 캐비닛 쪽으로 밀어붙였다. 꽁태의 등짝이 보디체크하듯이 철제 캐비닛에 쿵 부딪혔다.
“내 이름 어떻게 알아?”
강수가 꽁태를 쏘아보았다.
“이 새끼가 겁대가리 상실했나!”
꽁태가 바둥거리며 목소리를 높였고, 황구가 달려들며 강수를 향해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야구방망이가 날아오기도 전에 강수의 뒤차기가 황구의 턱에 꽂혔다.
퍽!
황구는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이게 완전 밥인 새끼가······!”
꽁태가 허우적거리며 발버둥 쳤다. 그러나 강수의 파워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내가 누구야?”
강수가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지만 꽁태는 습관적으로 깐죽거렸다.
“뽕 빨아서 대가리 먹통 됐냐, 새꺄?”
“빨리 말해라. 나 어떻게 아냐구?”
강수가 꽁태의 멱살을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꽁태의 발이 허공에 뜨며 허우적거렸다.
“숨이 막혀서······ 일단 멱살부터 놓고······”
강수가 멱살을 놓자, 꽁태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며 졸렸던 목이 아프다는 듯이 만졌다.
“깡수야, 나 공태다. 지공태.”
“니가 누구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냐고 물었잖아!”
강수는 꽁태의 멱살을 다시 잡으며 노려보았다.
“장깡수, 진짜 기억 안 나? 덕상고 1학년 6반. 담임선생은 사무라이.”
“······?”
“니는 깡수. 나는 꽁태. 전교 꼴찌. 니가 350등 하면 내가 349등. 내가 350등 하면 니가 349등. 그래서 선생님들이 꼴찌하는 꽁태, 깡통 같은 깡수라고 그랬잖아.”
강수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추억이었다.
“그래서? 계속 말해봐.”
“너 진짜 대가리 먹통이야? 교통사고 당했어? 아니면······”
“궁금증 접고, 나에 대해서 아는 거 전부 말해.”
강수의 말에, 꽁태는 바닥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황구는 여전히 떡실신 중이었다.
“깡수야, 내가 궁금한 거부터 하나 물어도 될까?”
“뭔데?”
“너 완전 똥개였는데, 어떻게 셰퍼드 됐어? 재열이 그 새끼처럼 미국 가서 태권도 단증 따고 스테로이드 맞고 근육 키웠냐?”
“꽁태야.”
“왜?”
“아직 덜 맞아서 니 아가리가 수다 떠나 보다. 좀 더 맞아야겠다.”
강수가 다가오자, 꽁태는 발딱 일어나서 뒷걸음쳤다.
“깡수야, 쏘리. 쏘리.”
“얻어터지기 싫으면 나에 대해서 아는 거 친절하게 브리핑해 라.”
“깡수야, 내가 너에 대해서 아는 건 딱 하나다. 재열이 그 새끼하고 고등학교 3년 동안 쭉 같은 반이 돼서 학창 시절의 추억이라곤 빵셔틀 밖에 없었다는 거.”
강수는 꽁태의 말을 들으니 어렴풋이 고등학교 생각이 났다.
***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전교 1등을 먹던 강수는 감나무에서 떨어진 후 체중은 130킬로그램까지 불어났고, 성적은 꼴찌로 급추락했다.
강수의 인생 최악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시작되었다. KD그룹 천회장의 조카 천재열과 같은 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재열은 개학식을 하던 날 퀸카 동급생의 가슴을 만졌다. 퀸카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윤리 선생이었다. 윤리 선생은 곧장 교장실로 찾아와서 교장에게 삿대질했다.
“천재열, 그 학생 당장 퇴학시켜요!”
1시간 후 재열의 엄마가 비서들을 데리고 교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퀸카 성희롱 사건은 무마되었고, 이튿날 퀸카는 전학을 갔다.
그 후로도 천성적으로 더럽고 후천적으로 재벌의 빽을 믿고 까부는 재열은 매일매일 열심히 사고를 쳤다. 재열의 엄마도 열심히 교장실을 들락거렸다.
그런데 두 달 후부터 재열의 엄마는 더 이상 학교에 찾아오지 않았다.
재열의 엄마가 교장부터 담임선생까지 온라인으로 촌지를 쏜다는 소문이 있었다. 또 다른 정보통에 의하면 재열의 외삼촌이 학교 재단을 인수했고, 6촌 형이 서울시 교육감으로 선출되었다는 소문이었다.
그야말로 돈과 권력이 있으면 죄가 없어지는 헬조선이었다.
강수는 못 먹어도 고, 얻어터져도 대가리 빳빳이 드는 성격이었다. 그렇기에 재벌 3세 재열이 앞에서도 턱 바짝 들고 자존심 굽히지 않았다.
당연히 재열이는 일진들을 동원해서 강수를 융단폭격으로 짓밟았다. 그래도 강수는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촌지 받은 선생님들은 강수가 재열이에게 짓밟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교 꼴찌는 좀 맞아야 정신 차려. 우리 선생님들이 때릴 수 없으니 재열이가 대신 때려주는 거야.”
강수의 담임 사무라이의 궤변이었다.
재열의 폭력은 계속되었지만, 강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2학년 될 때까지만 참자.
그런데 강수와 재열은 2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되었다. 강수는 재열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1년 동안 더 얻어터지고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꽁태의 설명을 들은 강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재열이 그 개자식을 찾아내서 죽여 버리리라.
꽁태는 부들부들 떠는 강수를 보며 겁에 질렸다.
“깡수야, 나는 너 괴롭힌 적 없다. 진짜다. 하나님께 맹세한다.”
“또 나에 대해 아는 거 말해.” 강수는 꽁태를 노려보았다.
“재열이 빼고는 아는 게 없는데.”
“우리 집은 어디였어? 우리 부모님은 계셨지?”
“나는 모르지. 너랑 안 친했고, 학적부 기록하는 선생님도 아닌데.”
그때 꽁태의 폰이 벨을 울렸다. 폰 화면에는 발신 번호 제한 표시가 떠 있었다.
“여보세요? 물건 받으러요? 지금?”
꽁태는 전화 통화를 하면서 강수의 눈치를 살폈다.
“물건 가지러 오라고 해라.”
강수가 위압적으로 명령했다.
“예. 지금 물건 가지러 오세요.”
꽁태가 전화를 끊자, 강수는 꽁태를 다그쳤다.
“대포폰, 대포통장 어디로 넘겨?”
“동창이라도 내 비즈니스는 간섭 안 했으면 좋겠는데. 우리의 찐한 우정을 생각해서.”
“나랑 안 친했다면서?”
“뭐 그건 그런데······ 야, 장깡수! 내가 왜 너한테 내 사적인 비즈니스를 보고해야 하는데? 너 짜바리야, 뭐야? 이게 사람을 존나 만만하게 보고.”
꽁태가 대차게 외쳤다. 그 소리에 놀란 듯이 바닥에 퍼질러 있던 황구가 고개를 쳐들며 강수를 쏘아보았다.
“저 개새끼가! 방심한 틈에 뒤차기를 날려!”
황구가 달려들자, 강수는 가볍게 잽을 날렸다. 황구는 곧바로 떡실신했고, 강수는 시선을 돌려 꽁태를 노려보았다.
“물건 어디로 넘겨?”
“복강동.”
겁에 질린 꽁태가 냉큼 말했다.
“복강동이 뭐 하는 곳인데?”
“낚시.”
“보이스 피싱?”
“응. 10분 후에 택배기사 올 거다.”
잠시 후,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택배기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꽁태는 택배기사에게 대포폰 30개와 대포통장 70개가 든 인조가죽 가방을 넘겼고, 택배기사는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
강수는 꽁태가 운전하는 지프를 타고 택배기사를 쫓았다. 그러나 8차선 대로는 퇴근길 차량으로 꽉 틀어막혔고, 택배기사가 탄 오토바이는 차량 틈새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달렸다.
강수의 분노 게이지가 급상승했다.
“오토바이 놓치면 나한테 죽는다.”
“걱정 붙들어 매셔. 우리는 핸들 잡으면 아이큐가 200이거든.”
꽁태가 핸들을 꺾어서 칼치기 하며 1차선에서 갓길로 순식간에 빠졌다. 그리고 골목길을 이용해서 내달렸다.
“내가 길 찾는 거 하고 운전은 대한민국 최고다.”
“형님 운전면허 7번 만에 땄잖아.”
강수에게 얻어터져서 뒷자리에 뚱하게 앉아 있던 황구가 꽁태를 면박했다.
“필기에 7번 물먹은 거고. 운전이 책상에 앉아서 연필로 해? 핸들 잡고 도로에 올라오면 우리는 물 만난 물고기야.”
꽁태가 핸들을 몇 번 꺾어서 골목을 빠져나가니 저 앞에 택배기사의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었다.
“야, 꽁태. 너 왜 대포통장 모집책 짓거리해?”
강수의 말에 꽁태가 한숨을 푹 토해냈다.
“인생에 사연 없는 놈 있냐? 우리 아부지 보이스 피싱으로 1억 5천 사기당해서 화병으로 돌아가시고, 팍팍한 인생살이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밀리고······ 뭐 그렇게 살다 보니까 보이스 피싱 모집책 짓꺼리 하고 있더라.”
“이야,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구라 터네. 형님 아부지 빚 1억이잖아. 우리 아부지가 1억 5천이지.”
황구가 끼어들었다.
“그래 너네 아부지가 빚 더 많아서 좋겠다. 축하한다.”
“그래도 형님은 군대도 갔다 왔지. 나는 과체중으로 군대도 못 갔어. 군대 가서 말뚝 박는 게 내 꿈이었는데.”
“내 꿈도 짭새였는데 일찌감치 포기했다. 운전면허 7번 만에 붙은 대가리로 짭새 시험을 어떻게 통과하겠냐. 황구야, 우리는 총체적으로 불쌍한 영혼들이다.”
꽁태와 황구는 모자란 형제처럼 서로 자기가 더 불쌍하다고 칭얼댔다.
“자격증도 없지, 빚은 늘어나지, 엄마는 아프지, 어쩌겠냐. 대포통장 모집책이라도 해서 밥은 먹고 살아야지. 인생이 대포 인생인데.”
“형님 엄마가 아프다고? 아부지보다 엄마가 먼저 돌아가셨잖아.”
“그래. 그래. 니 똥 굵다.”
꽁태와 황구의 말을 듣고 있으면 어디까지 진실인지, 어디까지 구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대포통장, 대포폰 복강동에서 가져간댔지? 복강동이 어디야?”
강수가 꽁태에게 물었다.
“복강동은 세상에 없는 동네다. 절대 안 잡힌다고 해서 붙여진 조직 이름이랄까. 보이스 피싱 애들은 마약상보다 백 배나 더 점조직이거든. 냄새가 살짝만 구려도 조직 해산하고 잠수 타버려.”
“근데 형님, 형님 정체가 뭡니까?”
황구가 강수에게 물었다.
“그래 깡수야. 니 왜 이 지랄이고? 니 머리도 내 머리 같아서 짭새는 아닐 거고. 니 정체가 뭔지 진짜 궁금하다.”
“넌 머리 나빠 공부 못 한 거고, 난 공부 안 해서 공부 못 한 거지. 구별해서 말하자.”
강수가 툭 쏘아붙였다.
“계란이나 달걀이나 똑같은 거지. 그럼 깡수 니 짭새가?”
“아니.”
“그럼 왜 이 짓꺼리 하는데?” 꽁태가 강수를 보며 물었다.
강수는 왜 보이스 피싱 조직을 쫓는지 궁금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봉순이가 사기꾼들을 너무나 증오해서였다.
“사기꾼 새끼들은 모기야. 싸그리 잡아서 살충제 뿌려야 돼!”
강수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택배기사가 오토바이를 5층 건물 앞에 정차시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니들은 여기 있어라.”
강수는 지프에서 내려 택배기사가 들어간 건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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