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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썰

다크 히어로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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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썰
작품등록일 :
2021.12.16 12:26
최근연재일 :
2022.05.08 10:05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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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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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7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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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3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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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7화. 닥치고 쓰레기 (3)

DUMMY

강수는 헤어샵에서 커트를 하고 샴푸를 했다. 강수의 기억 속에는 봉순이 이발해준 것이 전부였다.

봉순과 비교할 수 없는 디자이너의 섬세한 가위질이 강수의 촌빨을 하나씩 잘라냈다.


강수는 동성로 번화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멈추고 고깃집 유리창에 반사된 자신을 보았다.

8만 원짜리 커트를 하고, 고가 브랜드의 옷을 입은 강수에게서 더 이상 싸구려 체육복을 입은 촌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 돈질하니까 뽀대가 나네.


강수는 런웨이를 걷는 모델처럼 보무도 당당하게 걸었다.

동성로는 휘황찬란했고, 흥청거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강수도 그들처럼 흥청거리며 놀고 싶어졌다. 그러나 놀아본 기억이 없어서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몰랐다.

그때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스테이크 냄새가 강수의 후각을 자극했다.


원목 인테리어로 아늑함이 느껴지는 레스토랑에는 그윽한 스테이크 냄새와 품위 있는 와인 냄새가 가득했다.

강수는 창가 자리에 앉아서 18만 원짜리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를 주문해서 신나게 칼질을 하고, 와인을 마셨다.

지명수배자들을 잡아 현상금을 받았을 때 삼겹살이 고작이었는데······.

강수는 문뜩 봉순을 떠올렸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봉순. 봉순. 봉순······.

왜 배신한 봉순이 자꾸 생각날까. 강수는 봉순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털어내 버렸다.

봉순을 기억 속에서 밀어내니 고독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고독은 악마가 노는 마당이고, 고독은 지옥보다 더한 고통이다.


강수는 고독을 떨쳐내려고 군중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네온사인의 현란한 불빛과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서서히 강수의 뇌파를 자극했다. 강수는 어지러워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도경정이 쏜 총알이 강수를 향해 괴물처럼 날아와서 강수를 물어뜯었다.

“아악!”

강수는 자신도 모르게 괴성을 토해내며 눈을 번쩍 떴다. 옆으로 지나가던 행인들이 강수를 힐끔거리며 욕했다.

“또라이 새끼.”

“뭘 쳐다보는데!”

강수가 행인을 쏘아보며 소리 지르자, 행인들이 길바닥에 떨어진 똥을 피하듯이 멀어졌다.

계속해서 도심의 소음과 불빛이 강수의 뇌를 자극했다.

인생 뭐 있어? 화끈하게 노는 거지.

강수는 EDM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성로 클럽 골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오늘은 불금. 클럽 에로스 앞에는 클러버 150명이 길게 줄을 서 있었고, 클럽 맞은편 커피숍에는 여자들이 손거울을 보면서 클럽용 화장을 했다. 거의 무대 화장 수준이었다.

“과감하게 펄 발라. 조명빨 받게.”

20대 후반의 여자들이 수다를 떨었다.

“핑크색 입고 오면 어떡해? 노땅 티네? 요새 유행하는 드레스 코드는 블랙이야.”

“블랙은 우리 신입생 때 유행했잖아.”

“유행은 돌고 돌아. 오늘 VIP룸 못 올라가면 다 니 탓이야.”


강수는 먼발치에서 흘러드는 여자들의 수다를 엿들으며 클럽 에로스로 향했다.

“야, 샌달 신으면 입뻰 당해.”

“입뻰이 뭔데?”

“입장 뻰지 먹는다고.”

클럽에 처음 온 대학생들이 걱정을 늘어놓는 목소리가 들렸다.


클럽 에로스 앞에는 검정 양복을 입은 가드들이 지키고 있었고, 복장 착용 안내문이 적혀있었다.

남성은 민소매, 티셔츠, 등산복, 샌들 착용 금지.

“룸에 갈 거다.”

강수의 말에, 가드가 클럽 에로스 안으로 강수를 안내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엠프에서 흘러나오는 EDM 음악이 벽을 울렸다. 이태원에 김필녀를 잡으러 갔을 때는 시끄러운 음악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었다.

그러나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던가. 강수가 놀자고 마음먹으니 심장박동이 서서히 빨라지며 아드레날린이 분출했다.


클럽 안으로 들어가니, 1층 플로어에서 남녀 클러버들이 광란의 춤을 추고 있었다. 플로어 뒤에는 DJ가 과장된 몸짓을 하며 디제잉을 하고 있었고, 여러 빛깔의 레이저 광선이 눈을 자극했다.

스태프가 강수의 팔목에 감긴 VIP용 빨간색 밴드를 발견하고 잽싸게 다가왔다.

“VIP로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강수는 스태프의 안내를 받으며 2층으로 올라가서 50만 원짜리 룸으로 들어갔다.


“돔 페리뇽 가져와.”

강수는 다리를 꼬며 스태프에게 60만 원짜리 샴페인을 주문했다. 그리고 포만감 가득한 표정으로 소파 깊숙이 등을 기댔다.

잠시 후, 스태프가 샴페인을 가져오자, 강수는 향을 음미하고 한 모금 마셨다.

돔 페리뇽은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때 축하주로 사용되었고, 세계의 왕실과 윈스턴 처칠, 살바도르 달리가 사랑했던 샴페인이다.

강수는 돔 페리뇽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아이러니하게도 봉순과 함께 마시던 소주 생각이 났다.


여자 클러버들이 룸에서 나오는 강수를 힐끔힐끔 보았다.

“저 남자 돔 페리뇽 가져간 룸 맞지?”

강수는 여자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2층 난간으로 가서 플로어를 보았다.

플로어에서 춤추는 클러버들에게 세상을 두 곳으로 나누라고 한다면, 클럽과 클럽이 아닌 곳으로 나눌 것이다.


“이야, 물 반 고기 반이네. 먹이 없이 낚싯대만 던져도 걸리겠다.”

강남에서 원정 온 금수저들이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보았다.

“강남이나 홍대에 비하면 대구는 수질이 너무 안 좋아.”

“패션은 후져도 얼굴이 되잖아. 강남은 죄다 성형이라 개성이 없어.”

“가끔 촌 동네에서 노는 것도 좋지. 기분 전환도 되고, 애들이 순진해서 낚싯대만 던져도 걸려들거구.”

“너네 아버지 30층 빌딩 올린다며? 언제 준공식이야?”

“다음 달.”

“페라리가 지겨워졌는데, 뭘로 바꾸면 좋을까?”

“람보르기니 우라칸으로 갈아타.”

“그러지 뭐. 맘에 안 들면 또 갈아타면 되니까.”

“나는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볼 때가 제일 행복해. 여기 있으면 우월감이 느껴지지 않아?”

“저기 흰색 원피스 어때? 죽이지 않냐?”

“육감적이네.”


클럽에서 룸이 있는 2층은 권력이다. 1층 바에서 술을 마시는 클러버들은 하층민이고, 2층 룸이나 테이블에 앉은 클러버들은 상류층이다. 그리고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신데렐라가 타는 꽃마차이다.

여자들은 2층의 남자가 부킹해 주길 바라고, 1층의 남자들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는 여자들을 닭 쫓던 개처럼 쳐다볼 수밖에 없다.


청춘들은 일회용 밴드를 발뒤꿈치에 붙이고 플로어에서 광란의 춤을 추었다. 직장 상사의 갑질과 기득권들의 갑질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를 분출하는 것이다.

청춘들이여, 장미꽃보다 더 붉게 열정을 불태워라!

DJ가 EDM의 비트를 한껏 끌어 올렸다. 수백 명의 클러버들이 강력한 비트에 맞춰 광적으로 몸을 흔들며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그리고 눈이 맞은 남녀들은 몸을 비볐다.

오늘만 살다가 죽는다는 듯이.


강수도 화려한 조명이 번쩍이는 플로어에 올라가서 춤을 췄다.

어색했다.

그러나 서서히 리듬에 몸을 맡기며 욕망을 토해냈다. 강수는 미친 듯이 춤을 췄다. EDM도 미친 듯이 터져 나왔고, 조명도 미친 듯이 번쩍였다.

그 순간 강수 앞에서 춘추던 여자가 봉순으로 바뀌었고, 또 어느 순간에는 130킬로그램 뚱땡이 강수로 바뀌었다.

강수는 10년 전쯤에 홍대 클럽에서 춤을 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들은 모두 부킹을 받았는데, 뚱땡이 강수는 클럽이 폐장할 때까지 외톨이었다.


허겁지겁 플로어에서 빠져나온 강수는 화장실로 가서 거울 속 자신을 응시했다. 욕망을 분출한 탓인지 눈동자가 발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놀다 죽자.”

강수는 목을 우두둑 꺾으며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어머, 오빠 빨간색 밴드 있네. 나 2층에 데려가면 안 돼?”

D컵 가슴을 가진 여자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강수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성형해서인지 아니면 VIP용 밴드를 탐했기 때문인지 천박해 보였다.


강수는 D컵을 외면하고 2층으로 올라가려다 봉순을 닮은 흰색 원피스 여자를 발견했다. 흰색 원피스는 금수저들이 눈독 들였던 여자였다.

“나랑 놀래요?”

강수의 말에, 흰색 원피스는 수줍게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같이 놀면 좋죠.”

원피스 옆으로 두 명의 친구들이 다가왔다.

“2층 가요.”

강수는 원피스와 친구들을 데리고 2층 룸으로 들어갔다.


강수는 크랜베리 보드카와 레드불을 유리잔에 섞어서 흰색 원피스와 친구들에게 건넸다.

“오빠, 직업이 뭐야? 의사? 변호사?”

원피스의 친구인 레깅스가 강수에게 물었다. 그러나 강수는 선뜻 백수라고 말하지 못했다. 원피스가 싫어할까 싶어서였다.

“유학생?”

이번엔 원피스의 친구인 C컵이 물었다.

“아니.”

“그럼 뭐 하세요?”

원피스가 궁금한 눈빛으로 강수를 보았다.

“백수.” 강수가 설핏 웃었다.

“백수가 룸에서 돔 페리뇽 마셔?”

레깅스가 궁금증을 일으키자, C컵이 말했다.

“부모님이 빌딩 몇 채 가지고 계시겠지. 맞죠, 오빠?”

“오빠 진짜 백수야. 부모님도 없고.”

“농담이 지나치다.” 레깅스가 뚱하게 말했다.

“부모님이 빌딩 없으면 룸에서 놀면 안 돼?”

강수가 정색하며 말하자, 레깅스와 C컵이 뾰로통해졌다.

“난 상관없어요. 오빠가 백수든 고아든.”

원피스의 말에 강수가 시선을 돌렸다.

“진짜?”

“클럽 오는 남자들한테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전부 의사래잖아. 거짓말하는 것보다 솔직한 게 난 좋아. 오빠랑 결혼할 것도 아니고, 원나잇 하는데 직업이 뭔 상관이야.”

강수는 원피스에게만 마음을 담아 돔 페리뇽을 따라주었다. 그러자 레깅스와 C컵은 더욱 뾰로통해졌다.

“오빠, 우리 에프터 클럽까지 달릴래?” 원피스가 눈웃음을 쳤다.

“오빠는 좋지. 화끈하게 달리자. 내일 세상이 망할지도 모르는데.”

“원샷, 오빠.”

강수는 원피스와 건배를 하고 보드카를 원샷 때렸다. 원피스가 강수 옆에 바짝 붙어 앉으며 알통을 만졌다.

“와우, 우리 오빠 알통 장난 아니다. 니들도 만져봐.”

원피스가 친구들을 보았다. 하지만 레깅스는 시선도 주지 않았고, “언제부터 우리 오빠래?” C컵은 빈정거렸다.

친구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원피스는 상관하지 않았다.

“오빠, 답답하다. 우리 춤추러 가자.”

원피스가 강수의 팔목을 잡고 룸 밖으로 나갔다.

“앙큼한 년. 내숭 떠는 거 봐.”

레깅스와 C컵은 보드카를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강수와 원피스는 플로어에서 몸을 밀착해서 춤을 추었다.

“오빠, 나랑 진도 어디까지 뺄 거야?”

“끝까지.”

“끝까지가 어디까진데?”

“니가 상상하는 거.”

새벽 3시가 되자, 갑자기 음악이 멈추고 모든 조명이 꺼졌다. 그리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다가 천둥이 치듯이 비트 있는 음악이 쏟아지고, 조명이 현란하게 번쩍였다. DJ 보잉이 디제잉을 했다.

환락, 이것이 진짜 삶이다. 봉순이는 영원히 잊어버리자.

강수는 원피스와 몸을 밀착해서 비비고 흔들었다. 원피스는 몸이 바짝 달아올랐다.

“오빠, 우리 2차 가자.”

“친구들은?”

“걔들을 우리가 왜 상관해. 지금부턴 오빠랑 나랑만 생각하고 즐기자.”

원피스가 강수의 손목을 잡고 클럽 에로스를 빠져나갔다.


클럽 밖은 서서히 새벽이 찾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원피스의 몸은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오빠, 차는 뭐야?”

“택시.”

“농담.”

“진짜야. 오빠 백수랬잖아.”

강수가 정차한 택시의 문을 연 후 원피스를 보았다. 그런데 원피스가 서울에서 원정 온 금수저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페라리에 올라탔다.

“야!”

강수가 원피스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원피스가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며 뻑큐를 날렸다.

“백수 오빠, 안녕.”

“니미.”

강수의 입에서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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