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넘버36을 수거하라 (3)
“죽여!”
거산공업 입구에 서 있던 희강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강수를 보며 핏대 올려 외쳤다. 사방에서 인터내셔널파 똘마니 200여 명이 연장을 들고 튀어나왔다.
일빠로 저놈 허파에 사시미를 담그고 보스의 오른팔이 되리라!
개미 떼가 꿀 냄새 풍기는 먹잇감에게 바글바글 몰려들듯 똘마니들이 강수를 향해 달려들며 연장을 휘둘렀다.
강수는 성난 황소처럼 돌진했다. 봉순이부터 살려야 한다. 똘마니들을 향해 돌진하던 강수는 오른발로 땅바닥을 힘껏 박차며 높이뛰기 선수처럼 도약했다.
봉순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있던 희강은 연장을 휘두르는 똘마니들 머리 위로 솟구쳐서 날아오르는 강수를 발견했다. 똘마니들도 연장을 든 채 자신들의 머리 위로 날아오르는 강수를 보았다.
아마도 희강이나 똘마니들이나 머릿속으로 공통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와, 존나 환상적이네. 한 마리 새처럼.
강수가 희강 앞에 쿵 착지하자, 녹 쓴 철가루가 흩날렸다. 그 모습에 입을 떡 벌리고 있던 희강은 엉겁결에 뒷걸음을 치다가 바닥에 뒹구는 쇠뭉치를 밟고 넘어졌다. 강수는 엉덩이 걸음으로 허둥지둥 뒤로 도망치는 희강을 보다가 봉순을 향해 미소를 머금었다.
“다친 데 없어?”
봉순은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다. 저것들은 내가 쓸어버릴 테니까 눈물 닦아라.”
강수가 똘마니들을 노려보는데 봉순이 강수의 손을 잡았다.
“강수 씨······.”
“나만 믿어.”
강수는 봉순을 2층으로 올려보내고 철제 사다리를 부숴 버렸다.
똘마니들은 강수의 육체적인 능력을 똑똑히 목격했던 터라 선뜻 달려들지 못했다. 오히려 강수가 다가오자 뒷걸음을 쳤다.
“야, 야, 야, 저거 담궈! 빨리 담그라고 새끼들아!”
희강이 똘마니들을 향해 악다구니를 치자, 강수가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
“뭐 하냐, 지금? 모양 빠지게. 이거 완전 양아치네. 똘마니 이백 명 굴리는 놈이 치졸하게 여자나 납치해서 협박이나 하고 말이야. 내가 분명히 말했다. 봉순이 건들면 니 뼈를 모조리 발골해 버린다고.”
희강을 노려보던 강수가 똘마니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니들한테는 감정 없다. 다치기 전에 꺼져라.”
“감사합니다.”
두 달 전에 인터내셔널파에 가입한 막내 똘마니가 강수에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대한민국 조폭 중에 넘버원 인터내셔널파가 가오가 실종됐냐!”
형님 똘마니들이 바늘 같은 시선으로 막내를 쏘아보았다.
“죄송합니다, 형님. 제가 선빵 날리겠습니다!”
막내 똘마니가 마지못해 후들거리는 다리로 강수를 향해 다가왔다.
“니는 씨바 내가 재낀다.”
막내가 마치 인디언 전사처럼 혓바닥으로 사시미를 핥더니 강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웃기는지 강수는 코웃음을 치다가 가볍게 주먹을 날렸다. 아구통이 휙 돌아간 막내가 그 자리에 픽 꼬꾸라졌다.
“막내가 용감하게 쓰러졌다. 니들이 진짜 형님이면, 형님답게 가오 지켜라!”
희강이 자극하자, 30살 비계를 필두로 똘마니 이백 명이 강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후욱- 후욱- 강수는 라마즈 호흡을 하듯이 온몸의 피를 끌어올렸다. 뇌혈관이 팽창하며 아드레날린이 분출했다.
강수는 떼거리로 몰려오는 비곗덩어리들 속으로 저돌적으로 파고들었다. 비곗덩어리들이 강수를 향해 사시미를 날렸지만, 철판을 찌르는 것 같았다.
강수가 주먹을 날리고 발차기를 할 때마다 비곗덩어리들이 신음을 토해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으아아아악!”
강수는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괴성을 질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쩌렁쩌렁하게 울리는지 유리창이 박살 날 정도였다. 그리고 광기 어린 분노로 똘마니들을 박살 냈다.
2층에서 봉순은 만화 같은 상황을 목격했다. 강수가 똘마니들을 쓰러뜨리는 모습에 안도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머리에 총알이 박혀서 강수 씨가 괴력을 가지게 된 걸까? 만약에 강수 씨가 기억을 되찾아서 범법자가 된다면, 저 무시무시한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게 될까?
봉순이 걱정하는 사이에 강수는 이백 명이 넘는 똘마니들을 쓰러뜨리고 거친 숨을 토해냈다. 바닥에 널브러져서 신음을 흘리는 똘마니들은 거의 중환자 수준이었다.
“씨발······!”
희강이 뒷걸음을 치다가 거산공업 밖으로 황급히 도망쳤다. 보스의 체통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다. 일단 살고 봐야겠다.
강수는 꽁지 빠지게 줄행랑치는 희강의 뒤를 천천히 따라붙었다.
뼈가 앙상한 시커먼 개가 희강을 보며 컹컹 짖었다.
“개새끼까지 지랄이네.”
희강이 잽싸게 마세라티에 올라타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천천히 걸어오던 강수가 속도를 높였다.
순식간이었다.
강수가 마세라티 차창을 박살 냈고, 흙 속에 박힌 무를 뽑듯 희강을 마세라티 운전석에서 끌어냈다. 그리고 한 손으로 희강을 번쩍 들어 올렸다.
“용희강, 어디부터 발골해 줄까? 선택해라. 손가락부터 발골할까, 아니면 이빨부터 발골할까?”
“사, 살려주세요······.”
열여덟 살에 조폭의 세계에 입문해서 맞짱의 달인으로 다이다이 붙으면 천하무적이던 희강. 건달은 죽어도 가오라고 외쳤던 용희강이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을 했다.
“그래? 그럼 니 뒤에 있는 새끼가 누군지 말해라. 그럼 숨통은 붙여줄 테니까. 누구야, 대룡병원 의사 죽이라고 지시한 놈이?”
“그, 그건······”
희강은 선뜻 말하지 못했다. 강수가 두렵기도 하지만 천백은 더 두렵기 때문이다.
“기억이 안 나냐? 이러면 기억나겠지.”
강수가 희강의 손가락 한 개를 나무젓가락 부러뜨리듯 똑 부러뜨렸다. 아아악! 희강이 천지가 떠나갈 정도로 괴성을 내질렀다.
“이제 기억나지? 누구야?”
“마, 말하면 살려 줄 겁니까?”
“그래. 살려준다. 말해라.”
희강이 천백의 이름을 말하려는 순간 그르렁거리는 엔진 소리가 들렸다. 강수가 엔진 소리가 나는 곳으로 돌아보았다.
저만치서 모자부터 운동화까지 나이키로 깔맞춤한 나이키가 지프 핸들을 잡고 있었다. 나이키가 어금니를 깨물며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았다. 그러자 엔진이 폭발하면서 지프가 강수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강수는 희강을 내동댕이치고 목뼈를 우두둑 꺾어서 풀었다. 그리고 지프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갔다.
쇳덩이로 만든 지프와 유기체 인간이 충돌하는 순간이다. 나이키는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강수는 땅바닥을 박차며 점프했다.
그 결론은 강수의 드롭킥이 지프 앞 유리창을 뚫고 나이키의 턱을 박살 냈고, 지프는 달려오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방치된 중장비에 들이박는 것으로 끝이 났다.
“강수 씨······!”
강수가 지프에 박힌 다리를 빼낼 때 봉순이 달려왔다. 봉순은 아무 망설임 없이 강수를 포옹했다. 강수는 봉순의 따뜻한 체온이 너무나 좋았다.
봉순의 체온이 분노한 강수의 감정을 억누를 때 강수는 희강이 내동댕이쳐졌던 곳을 보았다. 그곳에 희강은 없었고, 마세라티도 없었다. 대신에 자욱한 흙먼지 너머로 사라지는 마세라티의 엔진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
국제무역 사장실로 돌아온 희강은 비밀금고를 열며 전화를 걸었다.
“빨리 짐 싸서 집 앞에 나와 있어.”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어요?” 폰 너머에서 와이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서재에 있는 금괴하고, 카드, 통장, 여권만 챙겨서 나와. 20분 후에 갈 테니까.”
희강은 전화를 끊고 금고에서 무기명 채권을 꺼냈다.
어디로든 토껴야 한다. 장강수 그 괴물 같은 새끼가 쫓아오지 못할 곳으로, 사악한 천백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토껴야 한다.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왜 그러셨어요?”
희강이 놀란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너······ 어떻게 니가 여기에······.”
희강의 시선이 머문 곳에 빨간 옷을 입은 산타가 버티고 있었다.
“목소리에 반가움이라곤 모기 눈깔만큼도 없네. 왜 반갑지 않을까? 살인으로 달려간 동생이 이렇게 멀쩡하게 나타났는데.”
“산타야, 지금 우리 조직 상황이 말이다······”
“형님이 쿠데타 일으켜 보스를 죽인 개 같은 상황 말입니까? 아니면 달려간 동생한테 면회 한 번 안 오고, 변호사도 선임 안 해주는 그런 좆도 의리 없는 상황 말입니까?”
“산타야 니가 뭔가 오해하는데, 지금 니가 생각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산타가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이내 차분한 눈빛으로 희강을 바라보았다.
“희강이 형님, 제가 빨간 옷 입을 때는 사시미질한다는 거 아시죠?”
순간 산타가 사시미를 앞세워 희강에게 달려들었다. 희강도 사시미를 꺼냈다.
태어난 시각은 다르지만 죽는 날은 함께 죽자며 맹세했던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너는 죽고 나는 살아야겠다며 사시미를 휘두르는 사이가 되었다.
끝내 희강의 옆구리에 산타의 사시미가 파고들었다. 정확히 4번과 5번 갈비뼈 사이를 관통해서 허파를 찔렀다. 희강은 뜨거운 숨을 토해내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희강이 형님,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습니까? 진짜 형님을 존경했는데······.”
“지랄하네. 이 모든 게 산타 너 때문이야 인마. 니가 장강수 그 새끼한테 달리지 않았으면, 구양길이가 그 새끼한테 복수 안 했을 거고, 그러면 우리 인터내셔널파가 이 꼬라지 안 났어. 산타 니가 구양길이 죽이고 우리 애들 반병신 만들고 인터내셔널파 개박살 낸 원흉이야. 알겠냐, 등신 새끼야. 뭘 알고 까불딱거리든가 사시미질을 해.”
희강이 숨을 할딱거리며 마지막 단어까지 정확하게 마무리 짓고 눈을 감았다.
산타는 소파에 앉아서 희강의 피가 묻은 사시미를 응시했다. 유독 새빨간 피였다.
모든 것이 나 때문에 시작되었다니······.
산타는 자괴감에 고개를 떨구며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러다 독사처럼 머리를 치켜들며 복수심을 불태웠다.
이 모든 사태의 시발점은 장강수, 그 개새끼다.
산타는 교도소로 향하던 호송차 안에서 교도관 2명을 살해하고 탈출했다. 대한민국은 섬이다. 3면은 바다가 막고 있고, 위쪽은 북한이 막고 있어 도망칠 곳이 없다. 필리핀으로 튀어봤자 도망자 생활로 개고생하다가 인터폴에 잡힐 것이다.
차라리 장강수 그놈을 끌어안고 장렬하게 자폭하자. 그것이 뽀대 나는 조폭의 최후이리라. 자살폭탄이 된다고 해서 인생 막장에 떨어진 산타는 밑질 게 없다.
산타는 의리를 지키다 죽었노라. 훗날 건달들의 술자리에서 산타는 그렇게 회자 될 것이다.
내 손으로 장강수를 죽이겠노라! 산타는 사시미의 날을 바짝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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