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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가문의 영광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블랙빙고
작품등록일 :
2021.10.28 20:13
최근연재일 :
2022.10.01 11:40
연재수 :
2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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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621
글자수 :
1,208,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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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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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눈의 여왕(2)

DUMMY

-삐기덕 삐기덕

-쿵덕 덜컹 쿵

-문질문질


“으응? 아아 아파···.”



졸다가 마차 벽에 머리를 찧은 윌이 이마를 비벼 대고 있다.

쿵 소리에 다들 윌을 쳐다봤지만, 이마를 문지르던 윌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모두 피곤하겠지.

특히, 윌과 레이디 러셀은 연회가 끝날 때까지 쉴 새 없이 춤을 췄으니까.



그녀가 응접실을 떠나지 않았다면 나와 같이 영국으로 도망가자고 말할 뻔했다. 내게 걸려있는 거리 제한만 아니라면 영국이 아니라 어디라도 데리고 가고 싶었다.

잠시 그렇게 이성의 끈을 놓을 뻔했지만, 황급히 들어온 로시네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로시네가 그녀를 찾아온 건 연회의 호스트인 그녀의 어머니 델라볼타 부인의 두통이 점점 심해져서 그녀를 찾았다고 한다. 델라볼타 부인이 저택으로 들어가자 점점 연회의 여흥도 식었다고.

다시 연회장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델라볼타씨와 함께 참석자들에게 배웅 인사를 하는 중이었다.



“휴우···.”


어느새 깨어난 도리아씨의 깊은 한숨이 마차에 가득 찼다.


“그 아이를 시모네타 델라볼타로 부를 날이 얼마 안 남았네요. 봄의 새신부가 되는 건 축복받아야 마땅한 일인데 말이죠···.”


시모네타 델라볼타.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아씨의 말을 듣고 보니 나만의 착각이었다. 나란 남자는 여태껏 그녀의 제대로 된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레이디 러셀이 졸린 눈을 비비며 도리아씨를 불렀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조금 전까지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말소리에 깼나 보다.

도리아씨는 조금 전 자신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이다.


“어떤 거 말씀이시죠? 레이디 러셀?”


“죄송해요. 제가 졸다가 제대로 못 들었는데요. 방금 말씀하신 내용요.”


도리아씨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만나셨던 봄의 새신부인 델라볼타 가문의 시모네타 델라볼타씨 얘기였습니다. 다들 애칭으로 모네뜨라 부르죠.”


나도 기억나는 대로 도리아씨 얘기를 추가했다.


“도리아씨는 그 이름으로 불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아쉬워하셨고요. 맞죠?”


“네, 맞습니다. 공자님. 곧 시모네타 베스푸치로 불릴 거라는 말이었어요. 당연히 베스푸치 가문과 혼인을 하니까요. 허허허.”


도리아씨의 말에 레이디 러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모네타 베스푸치?”


결혼하면 성이 바뀌는 거 당연한 거다.

레이디 러셀도 올해 말이 되면 오스틴 네빌이 되는 거고.

음, 이건 정말 별로다. 하필 네빌 가문이라니···.


레이디 러셀은 아직도 뭔가를 떠올리려는 표정이다. 점점 심각해지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나까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뭐지···? 어쩌면 이번 임무의 열쇠 같기도 한데.'


정적이 흐르자 도리아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네뜨가 더 어렸을 땐 가문끼리 꽤 돈독했거든요. 저희 부부는 아들 하나만 있어서 딸같이 대해줬어요. 그래서 그런지···.”


도리아씨도 이 결혼을 마음에 걸려 하는 분위기다.

레이디 러셀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 결혼에 무슨 문제라도?”


“아닙니다. 레이디. 다른 가문의 경사에 뒷얘기는 아닌 것 같네요. 그냥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죄송합니다. 허허허.”


'그럼 도리아씨의 가족들은?'


“가족분들은 같이 안 사시나 봐요. 실례되는 질문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하하하. 아들놈 교육 때문에 지금 키오스에 있습니다.”


레이디 러셀은 ‘키오스가 어디야?’라는 시선을 보내왔다.


“키오스라면···. 그리스 옆에 있는 섬 아닌가요? 제 기억이 맞는다면 제노아의 무역···. 식민지였던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그곳을 아시는군요. 공자님. 식민지는 어감이 좀 그렇고요. 제노아의 중요한 해외 무역거점 중 하나이죠.”


레이디 러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곳에서 무슨 교육을 받는 걸까요?”


“저희 가문의 해외 사무소가 그곳에 있습니다. 레이디 러셀. 그래서 일을 배우게 하려고 아들놈을 보냈지요. 제 아내도 같이 갔고요. 저도 어릴 적부터 해외 무역사무소로 보내져서 일을 배웠거든요. 상인의 손엔 어릴 때부터 잉크가 묻어 있어야 하니까요.”


도리아씨는 거나하게 취한 듯 술 냄새를 풍겼지만, 그의 말투는 어울리지 않게 논리적이고 허리도 꼿꼿하게 세웠다.


“도리아씨, 정말 죄송한 질문인데요. 취한 거 아니었나요? 지금 굉장히 멀쩡해 보여서요.”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도리아씨가 박장대소를 했다.


“아하하. 제가요? 그렇게 보였으면 다행이네요. 전 지금껏 술자리에서 취한 적이 없습니다.”


레이디 러셀이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아까 보니 다들 엄청나게 마셔대던데···. 도리아씨는 대체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얼마 못 마십니다. 딱 마실 수 있는 만큼만 마시기 때문에 안 취하는 거예요. 저도 많이 마시면 취하긴 합니다. 취하면 술버릇이···. 말이 많아집니다. 하하하.”


“어쩐지, 저희는 그런 줄도 모르고 도리아씨답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평소에 너무 반듯하시고 철두철미하신 분으로 생각해서···.”


“저는 체질상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거든요. 그게 또 좋은 점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이나 욕도 마음껏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술 취해서 저러나 보다 하고 이해해주니까요. 하하하.”


“어머머, 그거 영업비밀 아니에요? 도리아씨? 저희에게 발설해도 되는 거예요?”


“아하하, 그러네요. 이런. 제가 취하긴 했나 봅니다. 비밀을 잘 지켜주시면 내일부터 식단 메뉴에 더욱 신경을 쓰겠습니다.”


아니겠지. 우리는 잠시 왔다 가는 거니까.

보통 사람들은 순례자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 몇 달 안에 순례자의 존재가 기억에서 사라진다고 들었다.

우리가 하는 말들, 얼마 후면 모두 잊힐 테니까.

아무리 도리아씨의 비밀을 사람들에게 얘기한다고 해도 결국 그 비밀은 지켜질 것이다.


이곳에서 만났던 모두가 우리와 함께했던 시간을 잊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음, 나도 취했나? 왜 점점 감정적으로 돼가는 거야.

아니다. 이미 저택에서 그녀를 봤을 때부터 취기가 올랐었다.


“도리아씨는 저희를 잊지 않겠죠? 민감한 부분이라면 대답 안 해주셔도 돼요."


난 붉게 타오르는 내 뺨을 가리켰다.


"저도 술기운 때문인지 그냥 궁금해서 물었던 거예요. 우리가 했던 말들, 함께한 시간. 도리아씨에게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 되는 건지···.”


“저는 불행하게도 잊지 못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니까 왜 그게 불행하냐면요. 그 기억을 공유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이해되시나요?”


레이디 러셀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거 이해되는 것 같아요. 저희 할머니는 친구분들이 모두 돌아가셨거든요. 가끔 그런 말씀을 종종 하세요. 좋았던 기억이 떠올라도 함께 추억하고 공감해줄 사람이 없어서 슬프다고요.”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순례자분들과 정말 끈끈한 우정을 만들어도 그 소중한 추억을 나눌 사람이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순례자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존재니까요.”


“저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문을 지키는 자들도 망각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떠버리와 문지기는 전통적으로 사이가 개와 고양이 같다고 할까요? 아시다시피 썩 좋지는 않아요.”


잠시 말을 멈춘 그는 자신이 한 말을 복기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제가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어요. 기껏 몇십 년. 아등바등 돈을 긁어모으는 저희의 모습요. 영원한 존재 앞에서 유한자의 자격지심 같은 거죠. 셀 수 없이 오랜 시간 동안 문을 지키는 자들에 대한 저의 자격지심 말이에요.”


눈을 찌푸리던 그가 인상을 풀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입가엔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도···여러분들이 떠나신 후에 생각날 때면 저는 스트로치씨를 찾아가겠죠. 딱히 중요한 업무나 문제가 없어도요. 왜냐하면···. 음, 유일하게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상대가 그밖에 없으니까요. 허허.”


도리아씨는 정말 취한 건지, 아니면 우리 앞에서도 취한 척하는 건지 분간을 못 하겠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적어도 거짓말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레이디 러셀도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망각의 축복이라는 거···.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럼 죽을 때까지 그 괴로움을 안고 가시는 거예요?”


도리아씨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미소를 보였다.


“나이가 들어 은퇴할 때까지예요. 그나마 끝이 있으니 다행이죠. 때가 되어 이 일을 넘겨주면 그때는···. 저도 여러분들을 잊겠죠. 그럼 스트로치씨만 남는 거죠. 어쩌면 우리네 사는 인생과도 같아요.”


말을 끊은 그가 자신의 이마를 '탁'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이런···. 제가 말씀드렸죠? 전 취기가 오르면 말이 많아진다고요. 허허허. 정말 오늘은 말이 많았네요. 조만간 고급 와인 들고 정의부에 먼저 가야겠어요. 그들이 방금 했던 얘기를 문제 삼아 오기 전에요. 하하하.”


영국의 아르마 남작님과 영지의 버머씨가 떠올랐다.

어쩌다 이들은 이런 운명의 고리? 회전목마? 적당한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쩌다 이런 쳇바퀴 운명에 걸려든 것일까?



어느새 저택에 도착했다.

윌을 깨운 후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풀썩.

옷 갈아입기 귀찮다.

그냥 이대로 누웠다가 내일 아침 일어나서 씻어야겠어.


그대로 눈을 감았다···. 싶었는데 바로 눈이 떠졌다.


뭐지? 이 느낌은?

뭔가 싸한 기분이 들며 유령이라도 스치고 지나간 것처럼 한기와 함께 소름이 돋았다.



그때였다.


-똑똑 똑똑


“공자님? 공자님?”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살바토레씨가 뛰어 들어왔다.


“빨리 내려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갑자기 무슨 일이죠?”


살바토레씨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려가 보시면 도리아씨가 알려주실 거예요. 급하게 공자님을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복도에는 레이디 러셀과 윌도 나와 있었다.


‘뭐지? 다들 피곤해서 곯아떨어진 거 아니었어?’


그 둘도 나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저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우선 다 같이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아니, 그보다···레,레이디 러셀은요.”


“응? 왜?”


레이디 러셀이 눈을 비비며 되물었다.


“···뭐라도 좀 더 걸치고 내려오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녀는 귀찮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방에 들어갔다.



1층에 내려가자, 잠옷 바람에 잠이 덜 깬 얼굴의 도리아씨가 있었다.


“엉엉, 제발 부탁이에요. 도리아씨.”


나이든 여성이 울먹이자 살바토레씨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디서 본 얼굴이다.

나의 발소리를 들은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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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인류를 구원할 준비(2) 22.09.30 77 2 14쪽
210 인류를 구원할 준비(1) 22.09.29 72 1 12쪽
209 태양의 동쪽(2) 22.09.28 61 1 13쪽
208 태양의 동쪽(1) 22.09.27 63 1 12쪽
207 기쁨의 평원(3) 22.09.26 54 1 13쪽
206 기쁨의 평원(2) 22.09.25 65 1 13쪽
205 기쁨의 평원(1) 22.09.24 58 1 13쪽
204 영원의 강(2) 22.09.21 65 1 13쪽
203 영원의 강(1) 22.09.20 55 1 12쪽
202 사흘 만에 돌아오다(2) 22.09.19 60 1 14쪽
201 사흘 만에 돌아오다(1) 22.09.18 6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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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달의 호수(1) 22.09.14 63 1 13쪽
198 태양의 서쪽(2) 22.09.13 64 1 13쪽
197 태양의 서쪽(1) 22.09.12 60 1 12쪽
196 오랜 벗을 만나다. 22.09.11 64 1 13쪽
195 천년의 고도에서(3) 22.09.10 63 1 12쪽
194 천년의 고도에서(2) 22.09.07 59 1 13쪽
193 천년의 고도에서(1) 22.09.06 71 1 13쪽
192 Officially missing you(3) 22.09.05 68 1 12쪽
191 Officially missing you(2) 22.09.04 60 1 13쪽
190 Officially missing you(1) 22.09.03 67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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