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녕하십니까~!

가문의 영광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블랙빙고
작품등록일 :
2021.10.28 20:13
최근연재일 :
2022.10.01 11:40
연재수 :
212 회
조회수 :
51,255
추천수 :
621
글자수 :
1,208,896

작성
22.03.18 15:20
조회
151
추천
1
글자
12쪽

눈의 여왕(1)

DUMMY

순간, 그 남자가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영화에서처럼 사방에서 도끼를 든 병사들이 나타나 나를 잡아가거나,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올 수도.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는 델라볼타씨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외모는 베스푸치씨를 쏙 빼닮아 전체적으로 날카로웠고 내가 아직 중세 예법에 익숙지 않은 탓에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남자다.


「과도하게 섬세한데? 원래 피렌체 사람들이 다 저런 거야? 아니면 저 자식만 저런 거야?」


그 단어였어. ‘섬세함’

내가 계속 느끼던 이질적인 분위기라는 게.


「그렇죠?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나 봐요. 개성이라 생각하고 넘기면 되지만.」


그건 그렇고, 방금 내게 취했던 손짓은 무슨 의미였던 거지?


-털썩

도리아씨가 비틀거리며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의 옷 앞섬도 소매도 와인으로 흥건히 젖어있다. 아마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죄다 흘린 것 같다.

그런 도리아씨를 보며 눈살을 찌푸린 델라볼타씨가 그 젊은 남자를 소개했다.


“이 젊은이는 저와 한 가족이 될 마르코 베스푸치입니다. 그의 가문은 피렌체에서 금융업을 크게 하고 있어요. 하하하.”


그때,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도리아씨가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메디치 가문과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지요? 베스푸치 가문 말이에요. 델라볼타씨. 든든하시겠어요. 암요. 허허허.”


그는 분명 거나하게 취기가 올라 있으니 취중 진담이려나?

델라볼타씨는 몰래 숨겼던 것을 들킨 어린아이의 표정이 되었다.


“그렇지요. 아무래도 베스푸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다 보니 메디치 가문과도 친분이 있는 것이고요.”


그는 헛기침과 함께 황급히 화제를 바꿨다.


“으흠, 그건 그렇고 제 사위 될 사람은 능력이 출중해서요. 제노아의 성 조지 은행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답니다. 어제부터 출근하기 시작했어요. 아하하.”


델라볼타씨는 흡족한 듯 연신 베스푸치씨의 어깨를 두드렸다. 베스푸치씨는 자신의 칭찬이 이어지자 민망한 듯, 귀밑머리를 쓸어 넘겼다.


“과찬의 말이십니다. 델라볼타씨. 후훗”


그 둘을 바라보던 도리아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미간을 좁혔다. 그러던 중 손에 쥐고 있던 와인잔이 기울어졌다.


결국, 얼마 남지 않았던 와인이 그의 가슴 위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앗, 뭐 닦을 것이라도 드릴까요?”


도리아씨는 반쯤 감긴 눈으로 괜찮다는 손짓을 해댔다.


“그 젊은이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델라볼타씨의 영향력도 한몫했겠죠. 성 조지 은행에 꽤 많은 자산을 예치하고 계시니까요. 음냐.”


잠꼬대 같지만, 왠지 전부 들으라는 것 같다.

자신에 대해 안 좋은 말이 계속되자, 베스푸치씨의 얼굴이 조금씩 달아올라 귀까지 빨개졌다.


‘델라볼타씨의 영향력이 뭐에 한몫했다는 거지?’


「취업 청탁 같은데? 이틀 전에 델라볼타씨가 은행에 뭐 부탁하러 간다고 했잖아? 방금 도리아씨 말과 조합해 보면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것 같구나.」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피렌체에서 금융업을 하는 가문인데 굳이 델라볼타씨에 부탁했을까요?」


「그게 바로 문제인데 말이다. 마르코라는 저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이상해. 외모 갖고 뭐라 하는 건 좀 그렇지만 내가 사람은 좀 보는 편이거든?」


「제가 보기엔 평범하진 않지만, 그래도 저 정도면 깔끔한 외모죠.」


「그렇게 봤다면 할 수 없고. 아무튼, 피렌체에서 유명한 금융 가문 자제가 굳이 여기까지 와서 장인어른께 도움을 받을 정도면 다른 이유가 있겠지.」


정략결혼 같은 건가?

원래 유력가문일수록 혼례를 통해 힘 있는 가문과 인맥을 만들고 세를 넓혀갔으니.


아니다. 내가 남의 혼사까지 걱정할 처지는 아니잖아? 그리고 사람은 외모나 행동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고 배웠다.


그냥···. 질투라는 감정이겠지.

그녀들을 닮은 그녀라서.


아···머리 아프다. 그만 생각해야지.


델라볼타씨는 도리아씨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베스푸치씨에게 사과한 후, 서둘러 테이블을 떠났다.


나를 괴롭히던 두통은 그 청년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던 말에 최고치를 달렸다.


“공자님이 제 결혼 상대와 무슨 짓을 하든 저는 신경 안 씁니다.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나마 있던 저의 죄책감을 덜어주거든요. 그러니 뭘 하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세요. 그래야 저도 맘 놓고 제 인생을 즐기죠. 훗.”


뒷말은 모르겠고 그가 알았던 것은 분명하다.

피렌체에서 다 전해 듣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무슨 죄책감?

원래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나?


이거 뭐 대놓고 바람을 피우겠다는 거야? 뭐야?

내가 모네뜨와 오해받을만한 뭐가 있었다면 억울하지나 않지.

기껏 서로 웃고 떠든 거밖에 없는데 말이야.


그런데 저놈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가?

자기와 결혼할 여자와 내가 바람이 나도?

순간, 누군가 마구 명치 끝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통증이 밀려온다.


귀빈석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앉았던 자리엔 아무도 없다. 이리저리 연회장을 둘러봤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두둥 칫

새로운 악사들이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다.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우리 테이블로 몰려들었고, 그들은 그대로 나를 지나쳐서는 윌과 레이디 러셀에게 향했다.


“이제 무도회 시간이에요. 공자님? 저희와 나가서 춤춰요. 얼른 요~”


“레이디? 저희와 같이 한 곡 춰요. 빨리 일어나세요. 이렇게 아름다우신 분이 자리만 지키고 있는 건 옳지 않다고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이게 무슨 상황이래?’라는 시선을 교환했다.


윌이 정중하게 사양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아직 춤을 배우지 못했어요. 저와 추시면 발을 밟힐 수 있고 창피를 당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윌의 손을 이끌던 젊은 아가씨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어머머? 공자님께 발을 밟힌다면 전 영원히 발을 씻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 춤은 그리 어렵지 않답니다. 제가 하나씩 알려드릴게요.”


레이디 러셀 쪽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이미 볼 발갛게 취기가 오른 그녀는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목을 붙잡힌 채 끌려나가는 윌은 함빡 미소를 지었다.

‘너도 따라와! 재미있을 것 같은데?’라는 눈짓을 보냈지만, 나는 멋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윌도 어깨를 으쓱하더니 그대로 무대로 끌려나갔다.


원래 춤은 두세 번 권하는 거라고!

한 번 더 권했으면 못이기는 척하며 따라 나갔을 텐데.


그들이 중앙으로 나간 후, 테이블에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도리아씨와 나.

우리 둘만 남았다.


어느새 기둥 주위에는 수많은 젊은이가 모여 리듬에 따라 군무를 추기 시작했다.



영국에 있는 그녀가 생각났다.

몇 년 전 저택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였다.

내가···. 아니, 정확히는 자작님께서 자신의 순서를 잊어먹고 춤을 권하지 않자 그 짧은 순간,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서 펑펑 울었다던 그녀.


보고 싶다.

그녀도 보고 싶고 지수도 보고 싶고.

취기 때문인지 오늘따라 다들 너무 보고 싶다.



“······님?”


“공자님?”


연회장의 소음과 사람들의 분주함에 소리를 못 들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나를 불렀다.


로시네였다.


“춤 권하러 오신 거예요?”


“아하 하하! 정말이지 공자님은···. 진짜 엉뚱하시다니까.”


허리를 젖히며 깔깔대던 그녀가 귓속말을 해왔다.


“조용히 저를 따라오세요. 빨리요.”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모두 자기들끼리 술에 취해 떠들어 대거나 젊은 남녀의 군무를 바라보는 데 여념이 없다.


로시네는 최대한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연회장의 외곽을 돌아 나갔다.

아무 생각 없이 그녀를 쫓았다.


저택에 들어선 그녀는 홀에 있던 촛대를 집어 들었다.


“이쪽이에요. 공자님. 계단 조심하시고요.”


계단을 올라 3층에 도착하자, 그녀는 전에 왔던 응접실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


“아가씨, 여기 도착했습니다.”


로시네가 들어가 보라고 눈짓했다.



응접실에 들어서자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가 보였다.

창문은 안뜰을 향한 탓에 하고 연회장의 소음은 작았다.

음악 소리와 가끔 들려오는 취기 가득한 고함들.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녀는 내가 들어온 이후 미동도 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그녀는 왜 나를 보자고 했을까?

그녀는 헛소문을 듣고 내게 실망했을까?

아니면 결혼계획을 숨겨서 내게 미안할까?


내게 화를 내고 싶은 걸까?

사과하고 싶은 걸까?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으로 저기 앉아 있을까?

그녀는 왜 나를 보자고 했을까?


“······?”


“네? 방금 뭐라고 했죠? 모네뜨?”


처음으로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사막에 가 봤냐고 물었어.


응접실에 들어온 내내 내가 준비했던 문제 유형과 해답이 아니었다.

시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문제였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어요. 대신에 고모님이 이집트에 계시는데 편지에 그 풍경을 설명해 주셨거든요.”


“그래? 풍경이 어떻다고 하셨는데?”


“자고 일어나면 사막이 움직여서 풍경이 달라져 있데요. 그리고 사막의 밤은 너무 고요해서 지구가 움직이는···. 아니, 별들이 움직이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라고 하셨어요.”


“그래? 시인 같은 분이시구나. 리차드의 고모님은.”


뭔가 실수하는 느낌이 든다.


「릭! 릭! 혹시 고모가 있나요?」


「응, 두 명이나 있지. 그런데 모, 상관없어. 오래전에 유산문제로 아버지와 척지곤 왕래가 없으니까. 하하하.」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사막은 왜 물었어요?”


어두운 가운데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난 사막을 가본 적이 없어. 하지만 가끔 그곳에 있었던 것 같아. 왜 그런 거 있잖아. 어릴 적부터 몇 번이고 얘기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직접 경험했던 것 같은···. 사막이 딱 그런 경우야. 어때? 나와 같이 가는 거?”


그녀의 말을 들으며 한쪽으로는 내가 할 말들을 정리하고 있던 차에,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은 나는 준비한 답변들을 초기화했다.


“그런데 그곳에 왜 가고 싶은 거죠?”


“누구도,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는 거지. 오직 뜨거운 모래와 바람밖에 없는 그곳에서 말이야. 순수한 자유를 느껴보고 싶었어. 그게 다야.”


“사막이 그런 곳이라면, 갈 수만 있다면 꼭 가고 싶네요. 당신과 함께요.”


그녀의 눈과 입이 웃었다.


“고마워.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줘서. 고맙다는 말은 진심이야.”


그녀는 자세를 바로잡고 정면으로 내 눈을 응시했다.


“사실 네가 이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 무수한 생각을 했거든? 미안하다고 얘기할까? 아니면 화를 내볼까. 나는 너에게 어떤 의미였냐고 물어볼까, 다 필요 없이 그냥 도망이라도 가자 할까?”


자신이 내뱉은 말들에 민망했는지,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


“아니, 잠시라도 이렇게 보고만 있을래. 조금 전까지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들이 훑고 지나갔는데···. 네 얼굴을 보자마자 모래 빠져나가듯 사라져버렸어. 전부 부질없는 생각이었던 거야. 솔직히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


다시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미···. 나의 미래는 결정되었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가문의 영광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공지] 작품 제목 변경 (이전: 생명나무 순례자 이야기) 22.01.06 264 0 -
공지 [연재주기] 월화수 토일 (주 5일 연재) 21.11.26 231 0 -
212 가문의 영광이 되다 (완결) 22.10.01 154 2 15쪽
211 인류를 구원할 준비(2) 22.09.30 77 2 14쪽
210 인류를 구원할 준비(1) 22.09.29 72 1 12쪽
209 태양의 동쪽(2) 22.09.28 61 1 13쪽
208 태양의 동쪽(1) 22.09.27 63 1 12쪽
207 기쁨의 평원(3) 22.09.26 54 1 13쪽
206 기쁨의 평원(2) 22.09.25 65 1 13쪽
205 기쁨의 평원(1) 22.09.24 58 1 13쪽
204 영원의 강(2) 22.09.21 65 1 13쪽
203 영원의 강(1) 22.09.20 55 1 12쪽
202 사흘 만에 돌아오다(2) 22.09.19 60 1 14쪽
201 사흘 만에 돌아오다(1) 22.09.18 64 1 12쪽
200 달의 호수(2) 22.09.17 61 2 13쪽
199 달의 호수(1) 22.09.14 63 1 13쪽
198 태양의 서쪽(2) 22.09.13 64 1 13쪽
197 태양의 서쪽(1) 22.09.12 60 1 12쪽
196 오랜 벗을 만나다. 22.09.11 64 1 13쪽
195 천년의 고도에서(3) 22.09.10 63 1 12쪽
194 천년의 고도에서(2) 22.09.07 59 1 13쪽
193 천년의 고도에서(1) 22.09.06 71 1 13쪽
192 Officially missing you(3) 22.09.05 68 1 12쪽
191 Officially missing you(2) 22.09.04 60 1 13쪽
190 Officially missing you(1) 22.09.03 67 1 13쪽
189 바뀌지 않는 것들(3) 22.09.01 60 1 13쪽
188 바뀌지 않는 것들(2) 22.08.31 61 1 13쪽
187 바뀌지 않는 것들(1) 22.08.30 65 1 12쪽
186 엣지코트(4) 22.08.29 60 1 12쪽
185 엣지코트(3) 22.08.28 60 1 13쪽
184 엣지코드(2) 22.08.27 62 1 12쪽
183 엣지코트(1) 22.08.25 65 1 13쪽
182 성탑과 영원의 정원(3) 22.08.24 62 1 12쪽
181 성탑과 영원의 정원(2) 22.08.23 62 1 12쪽
180 성탑과 영원의 정원(1) 22.08.22 67 1 13쪽
179 출정 전야(2) 22.08.21 59 1 13쪽
178 출정 전야(1) 22.08.20 61 1 13쪽
177 백작부인을 만나다(2) 22.08.18 67 1 12쪽
176 백작부인을 만나다(1) 22.08.17 71 1 13쪽
175 영지에 도착하다(2) 22.08.16 69 1 13쪽
174 영지에 도착하다(1) 22.08.15 82 1 13쪽
173 악마의 문이 열리다(2) 22.08.07 68 1 12쪽
172 악마의 문이 열리다(1) 22.08.06 68 1 13쪽
171 별을 찾다(3) 22.08.05 67 1 13쪽
170 별을 찾다(2) 22.08.03 70 1 12쪽
169 별을 찾다(1) 22.08.02 72 2 12쪽
168 두번의 이적(2) 22.07.31 72 1 11쪽
167 두번의 이적(1) 22.07.30 73 1 13쪽
166 창궐(3) 22.07.29 70 1 13쪽
165 창궐(2) 22.07.27 69 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